먼저 위의 위키데이 행사에 참가 신청서를 접수하려니 몇 가지의 구체적인 이야기를 적어야 했다. '정상에서' 라는 그 분의 닉네임을 따서 팀 이름을 '정상에서' 라고 지었고, 목표는 이 분께 전자의수를 재능기부로 만들어 드리는 것이라고 적었다.
하지만 위키데이 참가신청서는 위키데이 행사 종료 후의 중/장기 계획도 요구했고, 여기에서부터 뭔가 일이 커지고 있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재능기부로 시작했지만, 그냥 재능기부로 끝날 일 같지 않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다.
"본격적 3D 프린팅 전자의수 제작 착수"
위와 같이 위키데이 참가신청서를 접수한 이후 본격적인 전자회로 구현 및 팔에 장착할 부분들을 제작해 나가게 된다. 제일 먼저 한 일은 아래 그림과 같이 고무줄 및 구리철사를 연결하여 손이 쥐어졌다 잘 펴지는지를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 테스트를 위해 검정색 고무줄과 구리철사로 임시 연결한 3D 프린팅 의수의 모습 ]
[ 와이어를 당기면 손가락이 구부러지고, 놓으면 고무줄의 탄성으로 펴지는 방식 ]
상당한 시간을 각 부품의 가공 및 사포질에 쏟은 결과 손가락들이 와이어를 잡아당길 때에 부드럽게 동작하는 것을 확인했다. 아래는 일단 맥주 한 잔을 하며 '좋아요'를 만들어 본 모습이다.
[ 아래 네 손가락의 와이어를 손으로 당겨서 펴지지 않게 하고 있는 중 ]
드디어 2015년 1월 23일, 위키데이 창작 해커톤 행사날이 됐다. 앞서 1화에서 언급했던 '니오' 님과 함께 '정상에서' 님을 위한다는 의미로 '정상에서' 라는 이름의 팀으로 참가했다. 총 20개 팀이 이 행사에 참가했고, 한 번쯤 이름을 들어본 팀들과 우리보다 많은 인원들로 구성된 팀들이 꽤 있었기에 나름 긴장이 되는 순간이었다.
[ 위키데이 2기/3기 창작 지원 행사가 시작되었고, 20개의 참여팀이 호명되는 순간 ]
나는 3D 프린터를 참가한 사람들 중에서 제일 잘 다루는 편이었다. 하지만 전자의수를 당장 내일까지 제작 완료 후 발표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으니, 제한시간에 대한 압박감이 커져왔다.
게다가 함께 팀으로 참가하신 '니오' 님은 당일 회사업무 때문에 오후에나 작업에 합류할 수 있었다. 따라서 나 혼자서 작업을 시작해야 했다. 이런 작업의 긴장감은 그 날 밤 9시까지 화장실을 한 번도 갈 엄두를 못 낼 정도로 심했다.
[ 최초로 시도한 전자의수 제작에 사용된 부품들의 일부 모습 ]
이 작업을 위해 지난 1화에서 소개하지 않은 추가 구매 물품들은 다음과 같다. 전부 필요한 것들은 아니지만 당장 필요한 상황에 없으면 곤란하기에 여유 있게 구매했다
드디어 위키데이 첫 날의 마지막을 알리는 밤 9시를 약간 앞둔 상황에서 전자의수의 제작을 1차 마무리할 수 있었다. 아래는 당시 촬영한 동영상으로, 어깨의 관절을 머리 (귀)쪽으로 움직일 때 전자의수 손가락이 구부러졌다 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생애 처음으로 전자의수라는 것을 만들어서 손에 끼우고 1월 23일 밤에 테스트하기까지 대략 걸린 시간은 다음과 같다. 물론 대부분이 처음이라 겪는 시행착오였다. 앞으로는 작업 중 터득한 노하우를 공개하여, 다른 사람들은 이런 시간낭비를 겪지 않게 할 계획이다.
위와 같은 작업을 첫날 밤에 마친 후에 조금은 쉬고 싶었다. 하지만 위키데이의 일정 상 다음날 오후 1시에 발표를 해야 하기에 발표 준비를 해야 했다. 다행인 것은 '팀'이었기에 서로 도와가며 노력할 수 있었고, 각자의 센스를 발휘하여 세 시간만에 멋진 발표자료를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다섯 시간을 못 자고 일어난 다음 날 아침.
"'정상에서' 님을 만나다"
우리의 주인공인 '정상에서' 님께서 직접 부산에서 판교테크노밸리로 올라와 주셨다. 비록 두 손은 없으셨지만, 매우 긍정적인 분이셨고 그래서 팀 '정상에서'도 열심히 마무리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 '정상에서' 님과 함께한 프로젝트 팀 '정상에서'
('니오' 님은 사진 찍히는 것을 싫어하셔서 대신 사진을 찍어주셨다.) ]
이제 '정상에서' 님과 해야 할 일은 내 어깨 관절의 움직임에 맞추어 놓은 부분을 '정상에서' 님의 어깨 관절의 움직임에 맞추도록 수정하는 일이었다.
다행히 비슷한 체구를 가진 분이셔서 한 시간 정도에 작업을 완료했고, 시연을 위해 종이컵을 잡을 수 있을 정도의 손가락 움직임을 주도록 전자의수의 동작을 조절했다. 아래는 '정상에서' 님과 함께 테스트한 두 번째 테스트 영상이다.
마지막으로 최종 전시와 시연이 이루어졌다. 어깨 관절을 움직일 때에 전자의수의 손가락들이 구부러지고 펴지는 것을 모든 사람이 확인할 수 있었다.
여기서 내가 한 가지 결정적 실수를 했다. 종이컵을 의수에서 약간 멀리 놓은 것이다. 그 결과 동작 시연 중 의수의 손가락이 종이컵에서 살짝 미끄러졌고 종이컵을 놓치고 말았다. 이로 인해서인지 위키데이 행사에서 1등은 못했고 2등에 머물렀지만, 많은 분들꼐서 더 나은 전자의수를 만들 것을 응원해 주셨다.
[ 개선해야 할 부분이 10가지가 넘는 첫 번째 3D 프린팅 전자의수 ]
"3D 프린팅이 적정기술이 되다"
하지만 직접 해보니, 개인별 다품종 극소량 생산에 해당되는 의수 제작이야말로 3D 프린팅이 가장 널리 활용되어야 하는 분야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한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부품들의 조합으로 구현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기에 누구나 전자의수를 쉽게 제작할 수 있게 노하우를 공유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아래는 첫 번째 전자의수 제작 경험을 통해 알게 된, 이 분야의 가치 있는 일들이다.
만약 위와 같은 일들이 진행되어 3D 프린팅 기술을 통해 국내 절단・지체 장애인분들에 대한 (전자)의수 보급률을 증가시킨다면, 좀 더 자유롭게 손을 쓸 수 있게 된 수 많은 장애인분들이 이 사회에 훨씬 더 큰 가치를 제공할 것으로 본다.
먼저 1) 이미 결혼한 분은 자식의 교육에 더 신경을 쓸 수 있고 2) 일할 수 있는 분은 보다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고 3) 젊은 학생은 보다 창창한 내일을 위해 더 열심히 배울 수 있을 것이다.
[ '정상에서' 님께 드린 왼쪽의 전자의수와, 아직 드리지 못한 오른손 의수 부품 ]
어쨌든 '정상에서' 님께는 아직 미완성인 첫 번째 전자의수를 드렸지만 1달 이내로 개선된 전자의수를 제작해 드리기로 약속했다. 1월 24일의 만남이 첫 만남이었기에 이 전까지는 여러 가지 기술(근전도 및 기타 센서들의 활용)을 활용할 수 없었으나 직접 만나서 양 팔의 상태를 확인하였고 휴대용 3D 스캐너를 써서 3차원 스캔도 할 수 있었다. 전자의수의 개선은 지금까지의 제작 경험과 얻은 지식들을 가미하여 개선하고 있다.
이후의 이야기는 다음 화에서 이어서 다루도록 하겠다.
첫댓글 대단하십니다
큰 일이 이루어지는 순간의 생생한 기록입니다. 앞으로 많은 분들께 좋은 영감을 불러일으킬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