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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기의 일생
(자유시)
박 민우
나에 할아버지에 할아버지에 할아버지에 할아버지에 할아버지에 할아버지에 할아버지에 할아버지에 할아버지는 동이(東夷)였다.
60년 전, 나는 군위 읍내 장터에 있었다. 이놈 저놈 말고도 큰놈, 작은놈, 뚱보, 홀쭉이, 큰동이, 작은동이, 중두리, 망데기, 바탱이, 뚝배기 모두가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사람들은 나를 밑동이 좁고 배가 불룩했으므로 '항아리'라 불렀다.
그 날 둥그렇게 터진 아가리 위로 모자를 쓰고, 새신랑 지게 타고 '수서리'로 왔다. 그러던 첫해에는 새색시 머리 위에 가마도 타고 물도 길었으며, 그해 겨울 나는 혹독한 추위 속에서 홀로 있었다. 그때부터 내 이름은 '독(獨)'이었다.
지독하게 추운 겨울이 가고 새색시는 양지바른 곳에 나를 두고, 메주와 소금을 넣고 또 배가 잔뜩 부르게 물도 주었다. 그때부터 내 이름은 '장독'이 되었다.
어언 60년 세월에 간장독, 된장독, 쌀독, 술독으로 여러 번 이름이 바뀌면서 나도 늙어갔다. 할머니가 된 그 색시는 대구에 사는 막내딸 집에 갔다. 나도 함께 그곳으로 가게 되었다.
예쁜 막내딸의 이름은 '엄지엄마'이다. 모두가 그렇게 부른다. 그곳에서 나는 항아리 인생 최고의 달콤 새콤함을 맛보았다.
여름 초입 새파란 매실을 가득히 넣고 흑설탕 20 키로에 매실이 곰삭아, 나로 하여금 잉태한 매실은 검은색으로 태어났다. 새콤 달콤함의 매실을 낳으려 얼마나 애태웠던가, 내 속도 새까맣게 타버리고, 오랜 세월 탓인지 한쪽 손잡이가 떨어졌다. 이제 내 이름은 '단지(斷指)'이다.
이듬해 겨울, 검은 천을 드리운 할머니는 수서리 뒷산으로 가고, 나는 동구 밖으로 나와 쓰레기 더미 옆에서 나를 데리고 갈 누군가를 기다고 있었다.
첫 번째 아이가 돌팔매로 나를 때리는데 '동(東)'하고 소리냈다.
두 번째 아이가 돌팔매로 나를 때리는데 '통(通)'하고 소리냈다.
세 번째 아이가 돌팔매로 나를 때리는데 '통(統)'하고 소리냈다.
네 번째 아이가 돌팔매로 나를 때리는데 '통(洞)'하고 소리냈다.
다섯 번째 아이가 돌팔매로 나를 때리는데 '통(桶)'하고 소리냈다.
여섯 번째 아이가 돌팔매로 나를 때리는데 '통(筒)'하고 소리냈다.
일곱 번째 아이가 돌팔매로 나를 때리는데 '통(痛)'하고 소리냈다.
여덟 번째 아이가 돌팔매로 나를 때리는데 '통(慟)'하고 소리냈다.
아홉 번째 아이가 돌팔매로 나를 때리는데 '퉁'하고 소리냈다.
열 번째 아이가 돌팔매로 나를 때리는데 그만, '툭'하고 소리냈다.
아이들은 가버리고 없지만 이제 곧 누군가 나타나서 나를 칠 것을 알고 있다. 그들은 나를 망치로 때리던가, 아니면 나를 높이 쳐들어 땅에 내리칠 것이다.
한평생 외로운 독, 서럽기도 하지만 나도 살 만큼 살았다. 지금은 단지, 그 색시 품에 옹기고 싶은 마음뿐이다.
* 수서리 : 군위군 군위읍 수서리, 지명.
* 동이(東夷) : 동이(東夷)의 어원은 뚱이(산스크리트), 지혜로운 사람, 천문학에 밝은 사람의 뜻이며, 뚱이는 물항아리에 씨줄, 날줄 걸쳐 놓고 물 속에 비친 별들의 좌표를 연구하였다. 漢字로 소개한 동, 통은 모두 같은 계열의 글자이므로 어원은 산스크리트 어 '뚱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