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추
정명여고 3 김 민 경
“ 한, 둘, 서이, 너이... 어라? 우리 아라 왔능겨? ”
달달 떨리는 손으로 해진 머리칼을 한 주먹 움켜진 엄마가 어설픈 인사를 건넸다. 아침에 먹은 케첩이 입가에 덕지덕지 수를 놓은 것도 모르고 맨발로 달려와 가방을 받아 내린다. 책이 잔뜩 든 가방이 허공에서 숨을 고를 틈도 없이 바닥으로 추락한다. 흐미- 우리 아라 가방은 겁내도 무겁다잉- 과 같은 소리를 늘어놓는 엄마를 외면하며 방향을 못 잡던 내 눈동자도 함께 추락한다. 오늘도 가방 옆에 수북이 쌓인 갈색의 영롱한 단추들, 실 뭉텅이들은 내 것인지 엄마의 것인지도 모를 머리카락들과 함께 나뒹군다.
“ 우리 아라, 배 안고픈감? 엄마야가 저녁에 맛난 고기 사왔는디! 고기! 우리 아라는 돼지 싫다, 그제? 엄마야는 돼지가 좋은디 아라가 싫어하니께 닭이 더 좋다! 암만! ”
갈색 바탕에 초록색, 빨간색 체크가 교차로 그려진 교복 조끼를 방바닥에 벗어놓고 부엌에 가 밥그릇에 물 한 사발을 들이켰다. 귀퉁이에 놓인 주황색 푸대자루 안에는 어김없이 때깔 고운 토끼인형이 갈색 눈을 달고 잠들어 있었다. 신선이 따로 없었다. 아침에 나갔을 때는 한 개 였던 자루가 세 개가 된 걸 보니 오늘도 하루 종일 쭈그리고 앉아 단추 눈알을 붙인 게 분명했다. 괜히 토끼 귀를 잡아 뜯고 싶었다. 마구 못살게 괴롭히고 저 분홍색 얼굴에 새까만 그림자가 드리우게 패주고 싶었다. 물론 상상에서나 가능할 법한 일이었다.
“ 옆집 아지매가 우리 아라 주라꼬 콩나물도 이만큼이나 더 줬다. 착하제? 아지매 참- 착하제? ”
엄마가 붙인 인형을 가져가 수금을 해주는 아주머니를 말하는 것 같았다. 이만 원 줘야 할 것을 만 원만 주고 밤새 까놓은 밤을 한 주먹씩 가져가는 아주머니가 콩나물을 딱 그 한 주먹 만큼 더 준 모양이었다. 몇 걸음 걸으면 부엌에서 베란다까지 도착하는 집구석에 야금야금 빼갈 것이 무어라고 양심에 청산가리를 쏟아 부은 아주머니가 그렇게 좋았나보다.
“ 우리 아라- 저걸로 맛난... ”
“ 엄마는 바보가? 돈 띠먹고 미안해가 몇 개 더 얹어주는 콩나물이 뭐 좋다고 다 받아왔는데! 그라고 멍청하니께 사람들이 다 호구라 본다 아이가! 학교에서 내 별명이 뭔 줄이나 아나? 호구 딸이다! 호구 딸! ”
엄마의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차올랐다. 남의 집 엄마들은 가슴으로 운다던데 엄마는 그 의미를 전혀 모르는 바보 같았다. 가슴에 돌덩이가 제 집을 만들고 내려앉은 것 마냥 묵직했다. 집을 부수려고 아무리 가슴을 내리쳐도 집주인은 옴짝 달싹 안하고 더 견고해졌다. 가슴에 멍만 늘 뿐이었다.
그 날 저녁은 콩나물 없는 닭도리탕이었다. 질질 거리는 엄마를 앞에 두고 우악스레 퍼 넣은 밥이 맛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도 뻑뻑한 살코기를 목구녕 끝까지 밀어 넣으며 먹었다. 바닥에 뒹굴어 다니는 수십 개의 갈색 단추들이 모두 내 가슴 속 돌집만 쳐다보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고개도 들지 못하고 체한다며 앞에 놓아두는 물도 마시지 못한채 저녁을 먹었다. 그 후로도 엄마의 손을 거쳐 세상 빛을 보는 토끼들은 매일 두 세 포대씩 늘어갔고 옆집 아주머니는 꾸준히 돈을 떼어먹었다. 몇 번이고 돈을 받아오라고 인형 눈 붙이는 일 좀 그만하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단추 눈구멍들의 살기에 쪼그라들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어메, 우리 아라 소매에 단추 떨어진겨? ”
어김없이 가방을 받아들다가 소매 끝을 본 엄마가 호들갑을 떨었다. 호구 딸이라는 소리를 들은 후 부터는 어설프게 치마 주름을 다려놓고 조끼에 종이비누를 펴발라 향기를 내는 등 옷매무새에 신경을 많이 썼다.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는 내게 엄마는 얼른 와이셔츠를 벗으라며 옷을 잡아당긴다. 인형 뭉치 위에 벗어 놓은 와이셔츠를 끝없이 만지작거리는 손놀림에 괜히 목이 시큰거렸다. 돌집 주인이 목 위까지 전세를 냈나보다. 밥도 먹지 않고 서둘러 이부자리에 누웠다. 밥을 먹으라는 엄마의 성화에도 모로 누워 잠을 청했다. 엄마가 와이셔츠에 단추를 달고 간식으로 가방에 넣어줄 밤을 다 깔 때 까지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유난히 밤이 길었다.
엄마의 까끌까끌한 손이 팔꿈치며 종아리를 만지며 잠을 깨웠다. 죄 헝클어진 머리를 감고 밤새 냉돌에 놓아 차가워진 와이셔츠를 집어 들었다. 소매에 팔을 끼워 넣고 목 끝까지 단추를 잠궜다. 찬 기운에 온 몸이 찌릿찌릿 해진다. 왼쪽 소매를 잠그고 오른쪽 소매 단추를 보는 순간 다른 의미로 온 몸이 찌르르 울렸다. 오른 소매에 큼지막하게 자리 잡고 있는 갈색의 토끼 눈알. 와이셔츠 구멍에 비해 턱 없이 큰 토끼 눈알이 또랑또랑하게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뒤돌아 쳐다 본 엄마는 싱크대 앞에 쪼그리고 앉아 조물조물 주먹밥을 만들고 있었다. 먹지 않은 주먹밥이 목에 걸린 듯 했다. 필통을 뒤져 커터칼을 찾아내 와이셔츠 구멍을 살살 늘렸다. 토끼 눈알의 영롱한 단추가 구멍에 꼭 맞았다.
“ 우리 아라, 교복 다 입은겨? 어여 밥 갖고 학교 댕겨 와야지.”
유난히 교복이 몸에 꼭 맞았다.
** 2014.9.27.13:30 주최:목포시 주관:갈매기 문학회 제1회 청소년문학상 백일장대회 최우수상 수상작품
첫댓글 단추를 통한 생활의 일부분을 그려내는 솜씨가 훌륭합니다.
또래 친구들의 말투와 행동이 사실적이라서 돚의 공감을 얻게 하는 것으로 보아 수필이나 소설쪽에 많은 소질이 있어 보입니다.
앞으로도 좋은 책 많이 읽으시고 좋은 글 많이 쓰시기를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