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짧은 연가
장석도
서해바다 평안함을 주는 모래언덕엔 그믐달 억새에 눈이 쌓인 체 펼쳐져 있었다.
이곳이 바다가 내려 보이는 작은 어촌 마을 일미였다.
석구가 인천에 작은 어촌괭이부리를 뒤로 하고 스물 넷 나이로 배낭 하나를 매고 충청도 태안땅 일미촌 후미진 곳에서 하루를 묵고자 선술집 골목으로 발길을 옮겼다. 허름한 선술집 안에는 물텀벙이 국물에 소주를 마시는 중년의 신사가 선술집 앞에 서성거리자 이방인 석구를 알아보고는
“젊은이, 어디 가나? 이리 와 나하고 말동무 하세”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어 석구는 시장기를 느끼고 있던 차에 머리를 들이밀고 자리를
잡았다.
“어디서 오는 길인가?”
“이 지역 사람은 아닌 듯 싶은데...”
“예, 일전에 이곳 안흥 일미촌에 살었던 여자 친구를 찾아 왔습니다.”
“누구길래...? 이 추운 겨울을 마다하고 여길 오는가?”
“허~ 허~ 허~”
중년에 신사는 마치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듯 흥미롭게 묻고 있었고, 석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세찬 바람이 선술집 미닫이 문을 흔들어 마치 또 다른 손님이 찾아오는 듯 눈길을 주건만 주방에 있는 주인아주머니는 그러려니 하며 생선찌게를 만들고 있었다.
아무 대꾸 없이 침묵이 지나가고 아주머니가 내놓은 찌게 안주에 석구와 중년신사는 그때서야 서로 눈을 마주하자 중년신사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가끔 고향이라고 해서 이곳을 찾는다네.. 소실적 물가에서 놀다 먼저 떠난 친구들 하며 살아생전 부모님 생각이 나면 이렇게 소주잔으로 기분을 달래곤 하지...
자신을 소개한 중년신사는 반듯한 모습에서 친구 정식이 아버지를 연상했다.
정식이 아버지도 정년퇴임하신 공무원이였는데 머리에 바른 기름머리와 하앟 와이셔츠며 검정색 양복 차림이 비슷했다.
석구는 자신이 어제 군에서 제대한 사람이고 군 입대 전에 잠시 스쳤던 만남이 전부였던 미자를 만나기 위해 이 겨울 내려 왔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러자 중년의 신사는 자신이 김남중이라고 하며 나이는 58세라고 했다.
석구와의 나이 차이가 삼십여년 차이고 보면 아버지뻘 되지만 말하는 것은 서울살이 해서일까 세대를 공감하는 노신사처럼 보였다.
석구는 군복무를 마치고 찾아온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이야기속에 미자의 앳된 얼굴이 소주잔에 비치자 눈물이 소리 없이 볼을 타고 내려왔다.
“저 형님이라고 부를까요? 아니면 뭐라고 불러 드려야 할지요...”
“이보게 젊은이.. 객지 벗 10년이면 친구라는데 오늘 우리 친구 한번 해 봄세”
석구는 자신도 모르는 미자의 그리움 속에 한잔 술을 벌컥 마셨다.
술은 속절없이 목줄을 넘어 가고 술국에 화기까지 오르며 자신의 취기를 “끄윽”하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밖은 철렁거리는 파도가 뚝방에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고 가끔은 인기척에 개 짖는 소리가 동구 밖에서 간간이 들려 왔다.
석구는 입대 전에 인천 연안부두 작은 선박 수리소에서 수리공으로 일을 했고 그 곳에서 배운 기술로 충청도 안흥땅 작은 어촌으로 자신의 기술 하나 믿고 내려온 첫날 버스 종점 다방을 들렀다.
주인도 없는 다방에는 장작난로위에 주전자의 뚜껑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주인을 찾고 있었지만 텅 빈 다방은 손님이 발길을 끊은 지 오래되었다.
다방 한구석에 앉아 주인을 기다림도 잊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나무계단을 밟고 들어서는 발자국소리에 문쪽을 바라보니 갓 여고를 졸업한 듯 한 소녀 얼굴에 아가씨가 쟁반 보자기를 들고 들어왔다.
“아가씨! 이 다방 주인입니까?”
“내가 다방을 지켜줬으니 커피한잔 주시죠..” 대뜸 석구는 어린 다방 아가씨에 대해 친밀감을 드러내 보이자 다방 아가씨는 어린 나이에 다방 일을 오래 한 듯 한 말투로
“직접 한잔 타서 드세요. 시간이 되시면 저도 한 잔 타주시고요”
석구는 뜻밖의 대답에 당황도 잠시 그 말투가 싫지는 않았다.
태연하게 일어나 주방으로 간 석구는 다 끓은 물로 두 잔의 커피를 손수 타서 가져 나왔다.
“손님이 이렇게 없어요?”
“아니요. 요즘 낚시철이 아니라서요. 돈이 씨가 말라서 그렇죠. 여기도 한때 고깃배 들어오면 손님이 많았어요”
하며 은근히 장사를 잘한다는 느낌을 주려고 몸을 의자 뒤로 약간 제끼며 말을 했다.
“초행길인가 보죠? 아시는 분이라도 있으세요? 여기는 주민집이 몇 채 없어 다들 알아보죠.”
석구는 자신이 이방인이라도 된 듯 이 곳 작은 어촌 구석에서도 자신이 혼자라는 사실을 알고는 이처럼 말을 받아 주는 다방 아가씨가 좋았다.
하얀 치아며 도톰한 볼 살이며 촉촉하게만 느껴지는 손이며 ...석구는 이 곳 안흥 작은 어촌에서 첫 사람하고의 인연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미자 또한 안흥 땅에 인연이 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일미촌에 삶의 거처를 옮긴 것은 그의 아버지가 서울 북창동 중국 요리집에 야채며 생선을 납품하던 식료품 자재업을 하다가 사업을 확장하려고 여기 저기 사채를 얻어 쓴 것이 화근이 되었고 결국은 악덕 사채업자 빚 독촉에 가족이 흐터지게 된 것이다.
미자 나이 중학교 3년 때였다. 어리다면 어린 나이였던 미자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빠와 엄마를 위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린 미자의 어깨는 책임감에 억눌렀다. 미자의 가출로 일미촌에 와서 다방 차심부름을 하는 종업원이 되어 석구를 만난 것이었다.
미자의 거처는 다방 안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봉급을 받는 생활인지라 오늘처럼 낯선 사람이 와도 영업시간이 따로 정한 것이 아닌 지라 소주 한잔을 주고 받을 수 있었다.
한잔 술을 주고 받던 석구는 자신에게도
“저.. 내일 일할 자리가 있는 지 찾아 봐야 할 것 같아서 오늘은 그만하죠.”
얼굴이 빨갛게 달아 올라 취기가 있었지만 마음은 낯선 곳에서의 첫날이라 냉랭했다.
“내일 일은 내일 가서 생각하시고요. 밤도 깊었어요. 마을에 민박집도 지금은 없고
낚시 손님이 있는 주말만 민박집이 영업을 하고요.”
미자는 석구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 찬 모습이 마치 자신이 이 곳 일미촌에 처음 발을 들였을때 자신의 처지와 다를 바가 아닌 것 같아 도움을 주려고 했다. 석구는 자신을 위해서 하는 말이라고는 들리지 않고 어떻게 하든지 동네에서 하루를 묵으면서 이른 아침 일할 만한 곳을 찾아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미자는 “편할 대로 하세요”
“쉴 곳이 없으면 다시 오세요. 빈방이 있어요. 같이 쓰던 주인 언니가 며칠 쉰다고 해서요.”
석구는 취기가 오른 몸을 세우며 다방문을 열어주는 미자를 뒤로 하고 나무계단을 내려오면서 힐끔 뒤를 돌아보며 희미하게 보이는 미자를 보고 고맙다는 목 인사를 건넸다.
어깨에 맨 옷 보따리는 전쟁에서 패전병에게 나눠 준 배낭처럼 귀찮은 것이 되어 버렸다. 이내 석구는
‘이것만이라도 다방에 맡기고 나올걸 그랬나..’
석구의 발걸음이 추적거리며 어둠속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밋밋한 바다 내음이 생선 말리는 냄새처럼 코끝을 자극하였고 철썩거리는 밤바다에는 난생 처음으로 보는 은하수가 자신을 향해 쏟아져 내려오는 듯하자 고개를 숙였다.
자신을 어디론가 끌고 가는 것은 가까이 들리는 바다소리와 발에 밟히는 모래소리였다.
바다가 보이는 모래언덕위에서 걸음은 멈추고 석구는 힘이 빠져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자는 듯 하늘을 향해 누워 혼잣말로
“그래, 저별처럼 반짝거리며 살고 싶다~~” 하고 외쳤다.
5월의 아카시아 잎이 돋고 라일락 향기가 석구의 꿈에 나래를 달아 컴컴한 하늘에 흐르는 별들의 강처럼 흘러 버리고 있었다.
사각 사각거리는 모래소리에 놀라 몸을 세워 주위를 보니 달빛에 비치는 것은 다름 아닌 방금 전 다방에서 만난 미자였다.
“어떻게 된 거예요? 여기서 주무시려고요?”
석구는 한편으로는 자신에게 말을 서슴없이 걸어주는 낯선 여자에 대해 호기심이 생기고 미자가 자신을 걱정해 주는 것에 무척이나 고마웠다.
“네~ 오늘은 여기서 이렇게 밤을 새워 보려구요...” 하며 미자의 손을 잡아 자신의 옆에 앉혔다.
“저기 보세요! 여긴 눈부신 밤 별들이 참 많아요”
미자는 흥미 없다는 듯 대꾸 없이 석구의 옷가방을 열어 작은 담요를 석구의 어깨위에 올려 주었다.
“감기 들어요. 아직 5월이라 바다 바람이 차요. 7월은 돼야 훈픙이 좀 부는데...”
석구는 이런 미자에 대해 왜 자신을 찾아서 나왔는지 궁금하지도 새삼스럽지도 않은 듯 엉뚱하게 밤하늘을 올려다 보며
“그래 별들아, 우리 같이 있자. 내일 아침이 오면 서로 헤어지자고...”
술기운으로 취기를 이겨보려는 듯 혼자서 중얼거렸다.
미자는 시간이 지나면 몸을 가누기 힘든 밤 추위가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밀물이 들어서 일까 바람은 더 세차게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얼굴을 때리며 사라진다.
안흥어촌 주위가 어둠으로 바뀐 지 오래지만 둘은 오늘을 기다린 사람들처럼 어깨를 붙였다.
미자는 자신이 처음 안흥에 와 숱한 시간을 이 곳 모래언덕위에서 시간을 보내며 언젠 가는 세상에 빚진 자들을 대신해서 다 갚아 줄 의인이 되겠다는 맘으로 석구를 감싸 안았다.
석구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마치 거대한 바위에 몸을 맡긴 듯 숨이 차오르자, 슬쩍 머리를 들어서는
“하늘에는 꿈을 담은
별들이 반짝이고
숨을 죽인 어둠은
그들의 잔치를 환영하고
다가오며 낯선 나는
저 꿈이 그리워 운다..”
라는 알아듣지 못할 말로 중얼 거리자 듣고 있던 미자는 미지의 세상으로 들어 선 낯선 이 젊은이가 외로움과 그리움을 토해내는 오고 갈데 없는 이방인에게
“바람이 차가운 것은
님을 위한 환영이고요.
밤이 이처럼 어두운 것은
내일의 아침을
준비하자는 표징이라
저기 반짝이는 별은
먼 훗날에 이 땅위로
내려올 희망이고요”
미자의 토닥거리는 목소리는 쉰 듯 하면서도 차분하고 여성스러운 천상에 소리였다.
석구는 잠시나마 훈풍이 불어와 신문지로 몸을 덮어 바람을 막고 누우면 따스한 몸의 열기로 주위의 한기를 막을 수는 있겠다는 생각으로 주섬주섬 신문지를 주워들어 펴고 자리를 잡았다. 미자는 이방인처럼 자신을 떠돌아 다니는 석구에게 잠시 후면 동이 트일 터니 잠시지만 자신이 일하는 다방으로 가서 쉬자고 했다. 아니 억지로 팔을 잡아 일으켜 다방을 향해 이끌고 갔다. 미안한 마음에 석구는 다방문을 들어서자 검은색 골덴 바지에 묻힌 모래를 털어내고 다방의자에 몸을 기대자 자신도 모르게 천정에 달린 형광등 불빛이 흔들리며 깊은 잠에 빠졌다.
미자는 주방에서 따스한 우유를 잔에 받쳐 내오고 탁자에 엎드려 자고 있는 석구에게 다가서 몸을 편하게 옆으로 눕히고는 주방 옆 자신의 방에서 담요를 가져와 덮어 주었다.
한참이 지나 석구가 눈을 뜨자 미자는 주방에서 물을 끓이며 아침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듯 분주했다.
석구는 이층 다방에서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 다가서서 어제 일을 생각이라도 하듯 바다쪽을 보았다.
하얀 모래 언덕 위에 다 쓰러져가는 창고들이며 모래톱에 걸린 난파선이 한가롭게 누워있고 출항을 하려는 어선에서 검은 연기가 통통 원을 그리며 올라왔다. 이때 주방에서 일하던 미자는
“지금이 새우잡이 철이예요. 오젓 아시죠?”
바다를 보고 자란 석구는 이처럼 한가롭고 소박한 곳은 처음이라서 시간이 멈춰 서있는 듯한 착각에 그만 대답을 할 때를 놓치고는
“네.. 네..”
아침 해가 유난히도 빛을 쏟아 내자 석구는 눈을 비비며 자신에게 마치 하늘로부터 받는 축복의 세레모니처럼 느껴져 자신의 손가락으로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 올리며 손빗질을 연실하자 미자는
“세수하시고 아침 드세요”
아침상에는 서해 바다에서 잡아 온 왕새우찜이 올라왔다.
새우껍질은 홍빛이고, 풋풋한 고추며 계란말이와 북어국은 전 날의 술기운을 풀어주었다. 시장기가 사라지자 미자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까무잡잡하면서 매끄러워 보이는 피부하며 마른 듯하면서도 적당히 살이 오른 몸매며,
얼굴에 짧은 생머리 그리고 촉촉한 손가락을 보았다.
밥상을 물리고 다방 홀에서 건장한 노년의 할아버지 손님이 들어 왔다.
“아가야.. 나 커피 한잔 주라” 하신다.
미자는 손님이상으로 할아버지에게 아침 인사겸 식사는 하셨는지 묻는다. 그리고는
“오늘도 바다 나가세요?”
“그래야 되는데 같이 나갈 사람이 있어야지?”
“일촌 김씨가 마누라 심부름 다녀온다고 읍네 나갔다가 친구들 만나 밤새 놀다 왔다구 하니... 배 사람들이 고기 잡아먹고 살면서 고기 안잡으면 뭐 먹고 살려고 그러는지.. 쯧쯧쯧~”
바다생활에 잔뼈가 굵은 할아버지는 작년 칠순 잔치를 했어도 팔힘이 젊은이와 겨루어 약하지 않은 건강한 힘을 가지셨다.
할아버지는 멍텅구리 배 한 척과 자망선을 갖고 있는 일촌에서는 제법 선주로써 후덕한 인상과 배를 타려는 동네 선원들에게는 인기가 있는 분이셨다.
가끔은 배를 타야 할 선원들이 덕배처럼 술로 하루를 공치게 할 때는 어쩔 수 없이 바다 나가는 것을 포기하고 미자네 다방으로 와서 차 한잔으로 시름을 놓기도 했다.
이런 할아버지의 마음을 알고는
“할아버지 내일은 고기 많이 잡으실거예요. 먼 바다에 바람도 잔다고 하던데...”
할아버지를 안심시키자
“그러게나 오늘은 일찌감치 공치련다.”
미자가 차를 내오자 진한 커피향이 다방안을 가득 채우고 창가를 내려 보던 석구가 머리를 돌려 할아버지와 얼굴이 마주치자 할아버지는 낯선 이방인에 대해 서슴없이 말을 걸었다.
“처음 본 듯한데 어느 집 자제인가?” 물었다.
석구는 묻지도 않는 대답을 했다.
“어제 늦게 왔어요. 여기서 잠도 자고 일 할 곳을 찾아 보려구요”
할아버지는 석구의 말에
“일 할 곳을 찾아서 여기 젊은이들은 도시로 나가고 나 같은 늙은이만 남아 있는데... 젊은이는 어떤 일을 하고 싶은 게지?”
“예, 저는 배 수리하는 일을 좀 해보았습니다. 고깃배를 타 보려구요..”
석구의 이 말에 귀가 번뜩이며 할아버지의 마음은 금방이라도 같이 있고 싶은 내색을 보였다.
“어허~ 그럼 나하고 일할 생각은 없나?”
“난 여기 살아. 여기가 좋아서 이렇게 살고 있지.. 조용한 곳이라 사람소리며 바닷소리며 내가듣고 싶은 소리는 다 있어. 암, 삶은 나그네 길처럼 가다 보면 그것이 내 인생길이지. 잠시 있게나. 집에 물건을 두고 와서 다녀옴세. 잠시면 돼..”
하고는 다방 문을 나선 할아버지 뒷모습을 보며 석구는 왠지 자신도 할아버지처럼 바다사내가 된 것 같아 오랜만에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인사를 건냈다.
“잘 다녀오세요. 어르신~~”
미자의 얼굴도 살짝 미소가 퍼지며 석구 옆에 자리를 밀어 앉으면서
“바다가 좋아요? 여긴 눈만 뜨면 바다가 보이고 문을 열면 바다냄새와 파도 소리가 일상이랍니다. 이것을 잊지 않으려면 사랑해야 하는데...”
석구는 미자의 이런 충고에 대해
“진정한 사랑은 처음이랍니다. 늘 새로운 시작이고 늘 처음과 같은 마음으로 보는 것이지요.”
이처럼 미자는 가끔은 자신에 대한 확신을 내비치는 석구가 싫지는 않았다.
석구가 바다를 찾아 온 것이 직장을 찾아왔다고는 하지만 그는 일년 전 대학을 다녔던 학생의 신분이었다. 석구 부친은 사업의 실패로 얻은 지병이 3년간 이어지면서 급기야 지난 겨울 세찬 바람이 부는 엄동설한에 숨을 거두었다. 석구 자신이 부친에 대한 존경심은 남달라서 부친이 돌아가시고 삼일 낮밤을 밤새워 울자 어르신들도 그의 애절한 울음소리에 같이 울었다.
석구네 할아버지는 강원도 두메산골 서당에서 한학을 가르치던 훈장이었고 일제저항기때 국민 학교가 정식 학교로 등록 되면서 사실상 서당은 문을 닫았고, 석구의 할아버지는 동네 어귀에서 석구의 아버지 형제들과 일본자제들과의 싸움에서 끝까지 싸우라며 점심을 싸주면서 어린애들의 싸움을 부추켰다.
일본 순사의 자식들이 집밖으로 나오면 기다렸던 석구의 아버지 3형제는 일제히 달려들어 패줬던 것을 빌미로 일본 경찰에 쫒겨서 시골마을을 떠나게 되었다. 석구 할아버지는 만주로 들어가면서 그래도 고이 잠들어 있는 아들 삼형제 중에 둘째인 석구 아버지의 별칭인 “ 바우야~~ 바우야~~” 부르면서 먼동이 트자 재를 넘어 만주 땅으로 갔다는 것이다.
석구네 할아버지가 만주로 피신가고 석구 아버지는 해방 후에 부친을 찾아 보려고는 했지만 해방 직후 한국동란이 발발하자 징집되어 안산지구 전투에서 밀고 내려오는 인민군과 중공국과의 교전에서 그만 오른쪽 다리에 총상을 입고 말았다.
불구가 되어 고향집에 돌아온 석구의 아버지는 농사일은 접고 인천으로 올라와 처자식을 위해 처음으로 해보는 일이 남의 배를 타는 일이었다.
석구의 부친이 바다에 나가 그물을 당기는 것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 일은 어린 자식들을 배고프게 할 수 없는 서구 아버지의 자식 사랑으로 뱃사람이 된 것이었다.
이런 석구는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희생과 사랑을 조금이라도 느껴 보고 싶었던 것이
여기 안흥까지 오게 된 것이다.
선주 할아버지가 돌아온 때쯤은 점심때가 되어서였다. 할아버지의 손에는 말린 조기가 손에 들려 있었고 미자를 불렀다.
“아가야~ 이걸로 점심에 조기탕라도 먹자”
하시며 조기를 내놓으셨다.
“오늘 점심은 여기서 해결하련다”
미자는 조기를 받아 주방으로 가고 할아버지는 석구를 향해
“여긴 바람이 많아. 그렇게 옷을 입고 있어서는 안 될텐데....”
하시며 걱정을 해주자,
석구는 “네, 어르신, 초행 길이라서요. 여긴 바람이 차고 많이 부네요....”
모래 언덕너머 바다에서 부는 바람은 하얀 포말을 만들어 굴러와 뱃전을 치는 소리가 제법 컸다.
“어르신! 이곳이 고향이세요? 민가도 몇 채 없는데..”
“젊은이~ 고향은 따로 있는게 아니여. 자신이 마음먹고 발 쭉 뻗고 머리를 두면 고향이지.. 그래 배는 타 본거야?”
“아니요 고깃배는 아니고요. 인천에서 선박 수리공으로 잠시 일을 했어요. 동네형이 배 공장을 하고 저는 동네 형 따라만 다녔어요..”
“그런가? 그럼 되겠는데..”
“네?”
“뱃일이 힘들어..위험도 하구. 사람들은 뱃사람이라고 하지.. 왜 뱃놈이라고도 하구”
“우린 고기를 잡지만 고기를 많이 잡아 달라고 하지는 않어”
“여기서 살면서 돈 욕심은 없어...”
석구는 자신이 큰 돈을 구할 생각으로 여기에 내려온 것으로 오해하시고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신다고 생각되어
“어르신 저도 돈 없이 살고 싶어서 여기에 온 것입니다. 내일이라도 배를 태워 주시면 일을 배워 보겠습니다.”
할아버지는 이 말을 듣고는 바다를 벗 삼아 평생을 해온 일이지만, 바다일로 고기 잡아 먹으려다 고기밥 된 가족들이며 동네 친구들 모습이 스쳐지나 가는 듯
철부지와 같은 단순한 젊은이에게 노인은 숨을 죽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침묵을 깬 것은 미자의 목소리
“할아버지 식사 준비 다 됐어요..”
“이쪽으로 오셔요~”
미자가 숙식하는 방에는 어느새 밥상에 놓은 조기탕의 매콤한 냄새가 온방 가득하고
소주 한병도 올려져 있었다.
노인은 칠순이라지만 식사도 무척이나 잘하는 젊은이처럼 강한 체력을 지니셨다.
석구는 노인에게 소주잔을 올리자 단숨에 마시고는 석구에게로 건넨다.
“술은 좀 하는가?” 하고 물었다.
석구는 어제 밤 늦게 까지 소주를 마셔 속이 불편하여 대답을 주춤하자...
“허~허~허~”
“젊은이 이 정도는 해야지”
하시며 소주잔을 치우고는 밥사발에 소주 반병을 따라 주었다.
얼떨결에 받은 밥사발은 어느새 석구의 목줄을 넘어가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밥사발에 소주를 들이키는 석구의 모습을 보며,
“됐어!”
“바다 사나이로 말이야..”
허허허 웃으시며 좋아하셨다.
석구는 술에 취해 미자의 자취방에서 고이 잠이 들었다.
잠시 후 따스한 방안 공기며 포근한 이불에 감싸인 자신을 알아챈 석구는 화들짝 놀라며 일어나 주위를 보자 미자는 보이지 않고 자신이 미자의 방에서 긴 단잠을 자고 있었다는 사실에 미안한 마음으로 방문을 열자, 미자는 다방 탁자위에 엎드린 채 담요 한 장을 어깨위에 올려놓고 잠이 든 것이었다.
석구는 곤하게 잠든 미자를 깨울 수 없어 그래도 미자 방에서 잠을 자는 것이 미안하다 생각되어 헛기침을 하자, 인기척에 미자는 살포시 눈을 뜨며
“잘 잤어요? 더 주무세요. 전 여기가 더 편한데...” 미자는 벽시계를 보며
“새벽이 됐어요. 일어날 시간이고요. 석구씨는 좀 더 주무세요. 때 맞쳐 깨워 드릴께요.”
석구는 등을 미는 미자의 강요에 다시 미자 방으로 들어와서는 처음 낯선 아가씨의 방에 놓여진 화장품이며 잡지책이며 시화를 보았다.
‘미자는 어떻게 사는 걸까? 무엇보다도 이런 곳에서 혼자 생활 할 수 있다는 것은 뭘까? 도시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들이 일어나는데...’ 하며 자신이 마치 도시 사냥꾼처럼 느껴지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하는 이런 저런 생각으로 몸을 뒤척이는데 아침은 오고 있었다.
미자는 석구에 대해서 어느 하나도 묻지 않았다.
석구도 미자에 대해선 아는 것이 없었다.
이들은 한 사람의 이방인과 이방인의 방문을 맞이해 주는 만남인 것 밖에는 없었지만 서로 젊고 정이 많은 남녀였다는 것에 서로를 아끼고 싶었던 것이였다.
이른 아침 선주 할아버지는 말린 홍어새끼를 손에 들고 오시며
“일어 났어?”
미자의 방문 앞에 서서 미자에게 물었다.
미자는 할아버지의 갑작스런 말에
“네, 새벽녘에 일어나서 좀 더 자라고 했는데... 잠시 기다리세요.”
하며 방문을 열고 들어가 석구의 어깨를 살며시 흔들며
“아침이에요.”
석구는 화창한 봄 기운이 미자의 방 창문을 통해 자신의 얼굴에 와닿자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웃었다.
“언제 들어오셨어요?”
짧은 아침 인사를 건네고 바다에 나갈 옷을 주섬주섬 입었다.
할아버지는 어느새 준비한 두툼한 속바지를 건네며
“작업복으로 가져왔으니 얼른 입어 보게..”
하시며, 미자를 보고 살짝 미소 지으며
“아가야~ 나 오늘 계란 하나 띄워 쌍화차 한잔 다오 ”
미자는 석구를 챙겨주시는 할아버지가 고마웠다.
“언제 출항 하세요?”
“음, 아침 물때가 일러서 서둘러야 겠어. 주꾸미 통발도 건져야 할 거구”
석구는 미자의 아침 인사겸 건네주는 도시락을 받으면서 고맙다는 인사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침 기운이 차갑게는 느껴졌지만, 바다 내음이 밋밋한 해초의 신선함으로 전해줬다.
방파제에 매달린 작은 배 한척이 보이자 미자는 석구의 뒤에서 자신의 목에 감고 있었던 파란색 털실로 짠 목도리를 풀어 석구의 목에 감아 주었다.
목에 따스한 온기가 전해지자 석구는 자신이 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여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느낌에 행복했다. 저 멀리 방파제 위에 서서 바라보는 미자의 모습이 천사와 같이 가물거렸고, 할아버지의 배는 검은 연기를 하늘로 힘차게 쏘아 올리며 굉음과 함께 물살을 가르면서 어장으로 향했다.
할아버지의 배는 어선이라기 보다는 서해 앞바다에서 작은 낚시나 하는 그런 소형인데다 경운기 엔진을 뜯어 부착하여 선실이 따로 없었고, 어창 휴식 공간에는 퀴퀴한 이불과 점심을 해먹을 수 있는 화로와 물통 그리고 약간의 반찬통이 전부였다.
바다는 팽팽하게 잡아 당긴 푸른 이불 처럼 고요하게 펼쳐져 있고 안개까지 끼여 마치 물속에서 당장에 용이라도 솟아 오를 것 같은 긴장감이 들었다.
선주 할아버지는 이쯤은 늘 있는 일이라고 통발 기표를 찾는 듯 몸을 세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석구는 그런 할아버지에게
“주꾸미는 많아요?”
“아니야, 예전 같지 않아. 바다가 병이 들었는지 나오라는 주꾸미는 안나오고 빈 소라만 올라 와...”
가던 배가 멈추고 선 곳은 풍도 인근 바다였다.
이 곳 바다는 가끔 집 채 만한 소용돌이를 쳐 석구가 탄 배를 삼킬 듯 쏴~악 물소리와 함께 회오리를 쳤다. 석구가 어릴 적 동네 앞바다에서 작은 물고기를 검정 고무신에 잡아 오던 마냥 조용한 바다만은 아니였다.
처음으로 육지 땅이 사라진 바다 한가운데에서 자신이 낙엽에 의존하며 물위에 떠 있는 보잘 것 없는 존재라는 것을 느꼈고, 그 두려움은 서서히 자신의 발을 묶어 놓고는 놔 주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석구의 마음을 안정이라도 시켜 보려는 듯 아침에 가져나온 라면을 끓이며 여유롭게 통발을 건질 도구를 챙기고 있었다.
“석구라고 했지.. 배는 처음 타?”하고 묻자
석구는 “친구가 화장으로 일할 때 친구 배를 타고 잠도 같이 자곤 했었지요 ”
어릴 적 한 동네 자란 동근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동근이는 백령도에서 태어나서 인천에 와서는 중학교만 마치고 제법 큰 고깃배에 화장이라는 배에서 선원들 밥을 해주는 선원되었다. 배를 타고는 한 달이나 두 달만에 돌아오면 석구에게 자신의 무용담으로 바다 사나이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에 배로 데리고 가 놀기도 했었다.
동근이는 어린 나이지만 어른 흉내를 제법 내려고 선실에서 선원들이 마시던 대병 소주를 마른 어포로 안주삼아 마셨던 친구였다.
가난이 뭔지 영리하고 똑똑한 동근이였지만, 배를 타고 나간 동근이는 어느 날 배에서 내리는 그물에 발이 걸려 바다에 빠져 숨지고 말았다. 배를 타고 몇 개월 안 된 새내기 시절의 아픔이었다.
오늘따라 동근이가 무척이나 보고 싶어진 것이다.
석구의 배 멀미로 배는 어장에서의 뱃일은 더 이상 할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는 배의 경운기 엔진을 끄고 잠시 석구에게 안정을 취하게 하고 아침 요기 할
라면을 끓이며 한가롭게 바다위에서 휴식을 가졌다.
곤로 불로 끓인 라면 냄새는 배멀리로 석구에겐 괴로움을 주었다.
배 멀미로 정신이 혼미해진 석구에게 할아버지는
“석구, 이리 와서 아침 먹자..”
“배속에 뭐 좀 먹으면 멀미가 가라 앉어..”
배전에 머리를 박고 엎드려 있는 석구에게 할아버지는 석구의 얼굴을 두툼하고도 꺼칠한 손바닥으로 얼굴을 비벼주며 주름이 잔뜩 패인 두 눈 빛으로 석구를 부르는 듯 할아버지의 음성이 들리면서 마치 할아버지가 어릴 적 동무처럼 보이며 석구는 오랜만에 행복감에 젖어 들어갔다.
할아버지는 또한 ‘참 많이 힘들어 하는구나..’ 하는 표정으로 석구의 볼을 비벼주며
“정신을 차려야 한다. 살아있다는 것은 정신이야!”
석구의 배 멀미는 완전히 혼절시킬 정도로 첫 바다 사람을 만들어 주려는 듯 호된 신고식으로 치러줬다.
할아버지는 석구를 어창에 담요를 깔고 눕혀 놓고 차가운 바다 바람을 막아 멀미를 진정 시키면서 속이 어느 정도 진정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갖고 있던 담요를 덮어 주었다.
덮혀진 담요에서는 석유냄새며 소금에 절인 냄새로 어릴적 친구 동근이네 배 선실에서 처음 맡았던 냄새와 같았다.
심해지는 배멀리로 정신이 혼미해지자 아롱거리는 동근이가 석구를 보며 웃어주자, 석구는 자신의 손을 허공에 저으며 연실 친구 동근이를 찾았다.
“동근아~”
갑판위에서 통발을 손질하던 할아버지는 석구의 헛소리를 듣고는 어창으로 들어와 석구의 머리에 손을 얹자 마자 차가운 기운을 감지하고는 자신이 입고 있었던 작업복을 벗어 덮혀진 담요 위에 얹혀 주었다.
바다는 잠시 안개가 걷히는 듯 하면서 비와 눈이 섞여 내리는 진눈개비로 바뀌었고, 통발에 올려오는 주꾸미를 빼내던 할아버지의 손은 추위에 손이 얼어서 더는 작업을 할 수 없게 되자 서둘러 통발을 접고는 잠시 진눈개비를 피하려고 어창으로 들어 왔다.
석구는 어창이 열리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할아버지는 밖에서 내린 비로 얼어 버린 바지와 상의를 벗고 계시는 것을 보았다.
“할아버지, 죄송해요..”
할아버지는 “아니여~ 홍역 없이 살아갈 수 있겠어? 바다에 나오면 거쳐야 할 홍역과도 같은 거지..”
“정신차리게.. 이것 씹어 봐!”
하며 마린 홍어 날개 부분을 찢어서 주었다.
석구는 이런 할아버지의 고마움에 조금이라도 일어나 보려고 한 입에 넣어 보았지만 이내 속이 꼬여지는 고통이 찾아 왔다.
할아버지의 체온은 어창을 훈훈하게 만들었다. 그리고는 할아버지의 칠순 나이가 있듯이 비바람과 추위에 몸과 마음이 긴장을 해서 일까 이내 깊은 잠이 들고 말았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어창 덮개사이로 비추었던 빛이 사라지고 주위는 어둠 속 고요한 밤바다만이 남았다.
석구는 잠이 든 할아버지를 대신해 자신이 할 일은 없을까 싶어 몸을 추수리며 어창 덮개를 열었다.
밤하늘에 별들만이 자신을 내려보고 있었고 사방을 둘러 보아도 불빛하나 들어오지 않는 밤바다였다.
놀란 석구는 급히 어창으로 들어와 잠든 할아버지를 흔들었다.
“할아버지 밤이 왔어요. 배가 어디론가 내려가고 있어요”
칠순의 노인은 감각적으로 몸을 세우며 갑판위로 올라서 주변을 보고는 아무런 말도 없이 배 뒤에 있는 경운기 발동을 돌렸다.
시동은 걸리지 않고 그렇다고 당장 어둠속에서 엔진을 뜯어 볼 수도 없는 사정이 되었다.
할아버지는 태연하게
“석구야! 이 배는 육지하고 멀리 떨어져 나왔구나” 하시며
“가끔 바다는 힘 겨루기를 해보자고 하지...”
“오늘이 그 날이 된 것 같구나” 하신다.
석구는 무슨 말인지 모르자
“네, 우리 배가 어디로 가는 걸까요?” 묻자
“크고 넓은 바다로 가는구나”
석구는 은근히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주변이 무서울 정도로 어둠속에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공포가 밀려 왔다.
조용한 시간 속에서도 물이 바위에 부딪치며 들리는 방향을 바라보자 희미한 달빛에 비치는 검은 바위가 물위에서 솟았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는 것을 보고는 할아버지는 잽싸게 자신의 몸 허리에 밧줄을 묶고 있었다.
석구는 놀라서
“할아버지 어쩌시려구요?"
“저기 바위에 이 배를 묶어야 겠어..”
“제가 하겠어요..”
“아니야 이런 일은 뱃사람만이 하는 거여..”
“할아버지...”
“저 바위골만 빠져 나가면 다시는 살아 못 와...”
할아버지는 이 곳이 일명 범아가리라는 곳임을 직감하신 것이다.
물이 썰 때 이것을 거쳐 나가면 다시는 찾아오지 못하는 큰 바다의 출입구인 것이다.
할아버지는 컴컴한 바다 물속으로 몸을 던졌다.
‘풍덩’ 석구는 할아버지를 막고 설 사이도 없었다.
물이 썰 때 내는 소리와 함께 할아버지는 물로 뛰어 들어 검은 바위가 있는 범아가리를 향해 힘차게 손을 내밀며 나갔다.
높은 파도가 할아버지를 삼켰다 토해 놨다를 반복하자 석구는 목청껏 꺼져가는 희미한 모습의 할아버지 뒷모습을 놓치지 않으려 외쳤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부친이 돌아가시고 처음으로 목청껏 울어대는 소리였으며, 석구의 외치는 소리는 밤바다의 파도 소리에 묻혀 버렸다.
석구의 외침 때문일까 할아버지는 사력을 다해서 범아가리 바위에 올랐다.
간신히 바위에 올라온 할아버지는 석구를 향해 손을 들어 보이고 이내 자신의 몸을 감고 있던 밧줄을 풀어 바위에 걸었다.
석구는
“할아버지~ 이젠 제가 갈께요...”
바로 그때 어둠 속에 보이는 하얀 포말은 수천의 백마가 밀려오듯이 달려들어 검은 바위를 넘어서고 있었다.
잠시 후 범아가리에서는 할아버지의 모습이 다시는 보이지 않았다.
석구는 검은 바위 어딘가 있을 것 같은 할아버지를 향해 할아버지가 묶어둔 밧줄을 힘차게당겨 보았으나 밀려 내려가는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기엔 힘이 부족했다.
뱃전에 묶인 밧줄에 머리를 쳐 박고 손은 바닷물에 담기고 이때 목에 감긴 목도리가 풀려서 떠내려가자 이를 건질 힘도 없이 한마디의 외침이 흘러 나왔다.
‘미자~~’
선착장위에서 자신을 위해 목도리를 감싸 주던 미자의 얼굴이 바닷물 위로 석구와 마주하고 있었다.
한편 미자는 오후 내내 날씨가 비바람과 진눈개비로 어수선해지자 일이 손에 안 잡혀 안절부절하였다. 하루일과가 저물어 가는 해질녘에는 밖에서 나는 발동기소리가 들리기만을 기다렸지만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에 그동안 손을 놓았던 수틀을 꺼내어 자신의 시 한수를 넣었다.
천둥 소리/ 여린 가슴/ 풀린 눈물/ 흐르네
바윗돌 속/ 새겨 놓은/ 인연들이/ 지나간다.
보이고 싶어/ 두려워/ 말없이/ 침묵만 이네
미자의 시처럼 죽을 고생하며 살아보려는 석구도 미자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차디찬 밤바다에 몸을 적시며 그렇게 하루 밤을 넘기고 있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러갔을까? 밤하늘에 별들은 영롱한 황금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쉴 새 없이 빠져 나갔던 바닷물도 잠시 숨을 고른 듯 뱃전에 닿는 물소리만 들려왔다. 석구의 눈에 비친 한 점의 불빛은 자신이 돌아가야 할 곳을 알려주는 희망의 등대처럼 석구의 몸을 일으키고 악몽에 시달린 밤을 여명은 밀어 내고 있었다. 어둠에서 깨어 나오는 새벽빛을 받아 희미하게나마 배가 어젯밤 할아버지가 걸어 놓은 바위에 밧줄이 걸려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소리 없는 눈물이 양 볼을 타고 흘러 내렸다.
힘을 다해 밧줄을 당기자 배가 바위를 향해 움직였다. 점점 다가오는 흑바위가 싫었다. 바위에 올라 가 밧줄을 걸어 놓고 사라진 할아버지를 찾아 보려고 하였으나, 물때는 이미 석구의 의지를 시샘하듯 물이 들어오고 있었다.
이 물을 타지 않으면 언젠가는 다시 썰물이 된다는 것에 석구는 밧줄을 풀 수 밖에 없었다. 범아가리를 뒤로 하고 들어오는 물살에 배를 밀어 놓고는 한참을 밀려 나오자 배 주변에는 어느새 윤곽이 잡히고 석구는 본능적으로 발동기쪽에 가서 손잡이를 잡았다.
힘차게 돌리자 물기에 젖은 발동기는 픽픽하는 소리만 내고는 곧 꺼져 버렸다. 답답한 마음에 석구는 젖은 발동기 플러그를 마른 헝겁에 닦고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발동기 손잡이를 다시 돌렸다. 그때 검은 연기가 하늘로 솟구치며 펑 올랐다. 괜한 심통이 난 석구는 지난 밤 파도에 휩쓸린 할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라 미친 듯이 자신의 머리를 쥐어 잡고는 몸부림을 쳤다.
배는 밀물에 떠밀려 오듯이 어느새 낯익은 주꾸미 부표가 보였다. 저 멀리 포구에는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점점 가까워지는 포구를 보면서 석구 자신이 밧줄을 메고 물에 들어 가지 못한 것이 한스럽고 부끄러워졌다. 어느새 배는 안흥 바닷가 일미 모래턱에 올라서자 검은 얼굴에 뚱뚱한 몸을 가진 청년이 달려 와서는
“어이쿠, 내가 갔어야 하는데..”
하며 석구를 붙들고 우는 것이다. 처음 보는 덕배였다. 그리고는
“할아버지는 어디 계신거요?”
몰골이 영락없이 죽다 살아 온 석구 모습에 덕배는 흐트러진 어구며 사라진 밧줄들이 어젯밤에 변고가 있었음을 짐작 하고는
“변고가 생긴 거요?” 재차 물었다.
“어젯밤에 풍랑 주의보가 떨어졌는데, 어디에 있었던 거요?”
석구는 고개를 숙이고는 그만 주저 앉고 말았다. 이렇게 살아 온 자신이 미웠고 슬퍼서 포구 모래 언덕에 뒹글며 오열했다.
주변에 모였던 동네 사람들은 삼일 후면 시신은 앞바다에 떠오를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는 장례준비로 마을 회관으로 발길을 돌렸다. 남은 사람은 미자와 석구 둘 뿐이였다.
미자는 살아 돌아온 석구의 얼굴에 흐른 눈물을 자신의 팔로 훔쳐 주고는
“바다사람들은 바다가 고향입니다. 바다에 나서 바다로 돌아가는 것을 운명처럼 알아요.”하며 자책하는 석구에게 위로 하면서 미자는 생환의 기쁨을 나누고자 석구를 가슴 가득 안아주었다.
따스한 온기가 두 남녀의 전신을 타고 내려오고 햇살이 따스하게 감싸주자 석구는 미자의 입술을 찾아 헤맸다.
잠시나마 조용했던 포구에 일미촌 사람들이 다시 모여 들었다. 덕배가 앞장을 서서는 할아버지를 찾겠다고 나선 것이다. 범아가리로 간다는 말에 할아버지와 오랫동안 바다생활을 한 선희 할아버지와 선착장에서 건어물 장사를 하는 순태 아저씨도 함께 배에 올랐다.
석구는 자신도 가겠다고 일어서자 미자는 망설였다.
“잠깐 만요. 할아버지를 찾아 나서는 것 같은데.. 오늘 못 찾으면 내일도 바다에 나가야 할 것이니 기다려보세요”
하며 석구의 팔을 붙잡아 끌었다.
석구는 미자의 팔을 미련 없이 뿌리쳤다.
죽음에서 자신을 위해 목숨을 던진 할아버지이기에 찾아서 돌아오겠다며 배에 올랐다.
덕배는 석구에게
“자넨 오늘은 쉬게.. 범아가리쪽은 우리가 잘 아네..”
석구를 위로하는 말임에도 석구는 자신만이 살아 돌아온 것이 뱃사람의 의리를 저버린 것 같아 고집을 세웠다.
“같이 가게 해주세요. 제가 현장에 있었으니 도움이 될 것입니다”
간청을 하자, 말 없던 선희 할아버지께서는 석구의 마음을 알아주듯이 동의를 해주었다.
“그러게나, 마음에 짐을 벗어 버릴 기회도 될거야. 자네가 원하면 감세..”
석구는 지난 어두운 밤에 하얀 포말이 검은 바위를 덮쳤던 무서운 바다가 아니라, 죽어서라도 같이 하려는 마음을 품자 마치 바다가 자신을 안아 주는 듯 어머니의 품처럼 느껴졌다.
배는 한 낮을 달려 나가서 검은 바위가 보이는 범아가리 입구에 들어섰다.
석구는 피가 솟구치듯 자신의 외침이 터져 나왔다.
“야~ 할아버지~”
푸른 바다위에 검은 바위는 쌍바위였다.7, 앞에서 보면 하나처럼 보이지만 뒤쪽에 넓적하고 제법 높은 바위가 하나 더 있었다. 배가 서서히 바위쪽을 접근해서 바위 주변을 돌았다. 간간히 파도가 바위를 치며 부서지지만 평화스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배는 바위 뒤쪽을 돌아서 바위쪽에 붙이고는 선희 할아버지가 먼저 내렸다. 그리고는 밧줄로 배를 묶고 범아가리 흑바위로 오르자 바위틈엔 제법 사람들이 잠시 쉬어 간 듯한 물통이며 빵 봉지가 끼어 있었다.
선희 할아버지는 이 바위에서 5일간 머물던 경험이 있다고 하신다. 한여름에 소라를 잡으러 나왔다가 배가 파손되어 꼼짝없이 해산물을 뜯어 먹으며 버티었다고 하자, 순태 아저씨는 범아가리안에 들어가면 산다는 말이 전설이라며 할아버지가 이 바위에 올라왔다면 살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말에 석구는 온 세상이 희뿌연 안개처럼 눈앞이 흔들리며 따개비에 손이 긁혀 피가 나오는 것도 잊고는 바위를 붙잡고 올라섰다.
바위는 생각보다 수면 위에서 높아 보였다. 바로 그때 선희 할아버지의 흥분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쿠 여보게... 살아 있었네..”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자, 두 노인이 서로를 안고 있는 것이 믿지 못 할 일이었다.
“할아버지~”
석구의 외침에
“조심하게, 넘어지면 다친다.”
분명 어젯밤 파도에 쓸려간 줄 알았던 할아버지가 살아계신 것이다.
덕배는 할아버지를 업고는 춤이라도 출 판이다. 석구는 할아버지의 생존하고 있는 모습이 꿈만 같아서 흥분하여 물었다.
“어젯밤에 파도가 이 바위를 넘어가고 할아버지가 안보여서... 잘못된 줄 알았어요..”
할아버지는 여유 있는 웃음을 보이며
“그러게 저 멀리 보니 산만한 파도가 오더구먼. 바위틈을 찾아서 몸을 숨기고 있었는데 이놈의 파도가 계속해서 밀려오니 나올 수 있었겠나?”
하시면서 “이젠 이렇게 만났으니 괜찮어. 허! 허! 자네 벌써 뱃사람 다 됐어.”
하신다. 그러면서 할아버지는 자신의 작업복 주머니에서 석구의 목도리를 꺼내주시며
“이것 자네 것 맞지?”
할아버지는 미자가 건넨 목도리를 꺼내주시며, 석구는
“네에, 할아버지 살아 계신 걸로도 넘 좋은데...”
말끝을 흐리면서도 미자의 목도리를 받고는 미자의 온기가 스며나오는 듯 행복함에 젖었다.
살아 돌아오는 기쁨이야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지만 할아버지와의 인연을 간직한 선희 할아버지, 순태 아저씨 그리고 덕배... 이들이 함께한 뱃사람들의 의리가 만선되어 돌아오는 기쁨보다 더 즐겁고 행복한 귀선이었다.
이들이 할아버지를 찾겠다고 나선 것은 마을회관으로 돌아온 사람들 중에는 이미 파도에 떠내려 갔다는 사람도 있어 장례절차를 의논하려는 자리였지만, 범아가리를 가보았던 선희 할아버지는 다른 사람들처럼 그렇게 사지만은 아니다 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여기에 순태 아저씨도 같은 생각으로 함께 해 준 것이고 덕배는 자신을 아들처럼 보살펴주시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살아생전 한번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서둘러 회관을 나와 범아가리로 갔었던 것이다.
할아버지가 살아 돌아온다는 소식은 읍내까지 소문이 퍼져, 순식간에 방파제에는 온 동네 사람들과 읍내 사람들로 가득 찼고 노인들 몇 분은 농악을 불어 대고 꽹과리로 흥을 돋았다.
농악소리에 미자도 다방 창문에서 바라보니 할아버지가 배에 내리시며 많은 분들에 둘러 싸여 웃는 모습이 보였다. 미자는 조용히 그리고 말없이 자신의 손에 들린 묵주알을 돌리고 있었다.
이런 일이 생기고 나서 덕배와 석구는 할아버지의 배를 타고 주꾸미 통발을 거둬들이고 내리는 작업을 하며 한 주일을 보냈다.
여느 때와 같이 석구는 미자의 다방에 주인 방을 정리하고 숙식하며 기거를 하고 있었다. 이런 석구의 다방 숙식을 동네 어른들도 인정하는 분위기였기에 자연스런 동거 생활이 이어졌다.
미자는 다방일이 끝나면 석구에 대한 사랑과 자연이 주는 신선함을 자신의 시로 표현하기를 즐기며 하루를 지내고 있었다.
미자의 습작된 글은 가끔 다방구석에 붙혀 놓아 나그네들의 쉼표로써 읽히고 있었는데, 며칠 전 이곳으로 낚시를 온 서울 신문사 기자들이 일박 하며 출항을 준비하던 중에 잠시 다방을 들러서 다방 한쪽 벽면에 붙혀진 미자의 시를 보고 물었다.
“어느 분의 글이죠?”
수줍은 미자가 대답을 하지 않자, 기자 양반은 미자를 보며
“글 쓴 사람을 만나고 싶습니다.” 하며
“혹, 저 시 쓴 분을 아시면 제게 연락 해주세요.” 명암을 건넸다.
그 날 저녁 바다에서 돌아 온 석구는 소라 잡은 이야기를 미자에게 했다.
“소라는 군집생활을 하던데요. 큰 몸을 가진 엄마 소라나 아빠 소라가 있어 근처를 잘
살펴 보면 그 보다 작은 새끼 소라들이 여기 저기 살더라구요.”
미자는 석구의 이런 이야기에 자신도 신기하듯이 맞장구를 치고는
“저 오늘 낚시 왔던...”
석구는 미자의 이 말 한마디에 귀를 세웠다.
“네.... 서울에서 온 기자들이라는 분이요?” 라고 되묻자, 미자는 다방 입구쪽 계산대 뒤에 붙혀 논 자신의 글을 보면서 말했다.
“저 글을 누가 썼는지 아시면 연락 달라고...”
석구는 이 말에 너무도 빠른 말이 나왔다.
“미자씨 잖아요.
당장 전화 하세요. 좋은 소식 아닐까요?”
미자는 망설이며 머뭇거리자 석구는 미자의 손에 든 명암을 살짝 빼앗고는
“제가 쓴 걸로 하고, 무슨 일인지 알아봐 줄께요”
그러자 미자도 그럼 좋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석구는 명함을 살펴보고는 중앙일간지 문예부장 직함을 보고는 호기심이 더 생겼다.
망설임도 없이 전화를 걸었다.
서울 신문사 쪽에서는 무엇이 바쁜지 사무실내 소음이 들렸다.
“예? 어디라고요? 잘 안들려요 크게 말씀하세요?”
석구는 목청껏 전화통에 대고 소리를 지르다시피 물었다.
“서울 신문사 문예부장님 맞나요?” 그때서야
“예, 어디세요?”
이 때다 싶었던 석구는 목소리 젊잖게 가다듬고는 재차 물었다.
“일전에 안흥 일미촌에 배타고 낚시 나가시던... 맞나요?”
“예. 아! 다방에 글을 쓰신 분이군요? 반갑습니다. 문예부장입니다. 선생님 글을 이번
우리 신문사 문예창작시 부문에 응모해 주십사 부탁드리고 싶었습니다.”
석구는 이 말에 마치 자신이 춘추 문예 창작시가 당선이라도 된 듯이 기뻤다.
“언제까지입니까? 어디로 보낼까요? 시를 쓴 사람은 제가 아니라 그 때 보셨던 다방 아가씨입니다.”
“네?누구요? 다방 아가씨요?”
“네, 김미자라고 합니다.”
문예부장은 자신의 명함 주소로 5편의 시를 신문사로 보내달라고 하였다.
석구와 미자는 신문사 문예부장에게 보낼 시를 고르면서 그 동안 틈틈이 써 둔 미자의 시를 읽고 또 읽었다. 석구는 미자의 순수하고도 서정적인 시상을 보면서 자신에게는 거친 바닷바람이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이 미자의 시처럼 편안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새벽이 돼서야 미자는 5편의 시를 꼭 쥐고 서울 올라갈 준비를 마치자
석구는 일미촌에 한 대 있는 순태 아저씨네 경운기를 빌려 미자를 읍내까지 같이 갔다.
미자는 읍내에서 서울로 가는 첫 버스에 올라서며 석구에게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버스는 정류장을 끼고 돌아서 서울로 향해 갔다.
미자를 서울로 떠나 보낸 석구는 아침햇살 볕이 뽀송하니 하루가 새롭게 스며드는 듯 자신에게 어찌 보면 반복되는 삶이건만 그래도 미자가 옆에 있어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텅 빈 다방 안에 들어온 석구는 미자가 쓴 시를 무심코 보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잎새는/ 이별의 아쉬움에/ 파르르 떨며/ 힘겹게 자신을/ 안고 서서
바탕은 초록이건만/ 빛이 바랜 황갈색으로/ 붉은 띠로 바꿔가며/ 힘없이 쳐진/ 가지 사이로 바람님 찾아 들어/ 구석진 모퉁이/ 내려오라 유혹한다.
석구는 자신에게 있어 잠시 들린 나그네의 모습에서 언젠가는 이 곳을 벗어나겠지 하는 이별의 이야기를 쓴 것 같다는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미자를 만나서 쓸쓸함을 잊을 수 있어 행복함에 미소를 지었다.
석구는 그동안 느끼지 못한 미자에 그리움을 안고 속사람미자를 떠올렸다.
미자는 내게 말벗이고, 미자는 내게 협력자이고, 미자는 내게 조언자이며, 나를 너같이 너를 나같이 소중히 생각하는 참 좋은 벗님으로서 나와 늘 함께 할 것이라며 자신을 다듬고 있었다.
한편, 안흥 시외버스터미널을 출발한 시외버스는 서울 마장동에 도착한 시간이 점심때가 다 되어서였다. 고층 빌딩사이로 샐러리맨들은 식사를 마치고 일터로 서둘러 가고 있었다.
미자는 시장끼를 느끼면서도 원고를 신문사 부장에게 전달하는 것이 급하여 공중전화 부스로 찾아 들어 갔다.
“저 김미자예요. 서울 올라왔어요..”
부장은 미자의 음성을 알아듣고는 인근 다방에서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바로 가겠다고 했다.
미자는 인근 다방들이 여러 곳이 눈에 띄었으나 그 중에 섬 다방을 찾아 들어 갔다. 다방 문을 열고 들어서자 입술에 분홍색 연지가 발라진 중년의 다방주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미자를 맞아 주었다.
“이쪽에 앉으세요”하며 푹신한 의자를 내밀었다.
시간 반이 지나서야 다방문이 열리며 중년은 잠바를 손에 들고 미자쪽을 넘겨 보고는 미자에게 다가와 말을 건냈다.
“김미자씨 인가요?” 미자는 중년의 남자를 바라보며
“부장님이세요?”
“네, 너무 오래 기다리셨습니다.”중년의 부장은 진실한 사람처럼 보였다.
“올라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마감시간이 여유가 있으면 먼 걸음을 안 해도 되는데 오늘이 마감일이라서 먼 걸음 하게 되어 죄송합니다”
정중한 말로 미자를 위로 했다.
다방 주인은 커피를 주문 받아 가져왔고 대화는 계속 되었다.
“제 원고는 여기 있어요” 하며 노란 봉투를 내밀자 부장은 봉투 속에 시를 꺼내 보며
“시 창작 동인회 소속인가요?” 하고 물었다. 미자는
“아니예요” 그러자 다시 다른 한편의 시를 읽은 부장은
“시문학을 전공하셨습니까?” 라고 묻자
미자는 시창작을 배운적이 없다고 했다.
“그럼, 어느 분으로부터 지도 받은 적이 있습니까?”
미자는 어릴 적 서울 살 때 주일학교 백일장에서 받은 상장이 전부였다. 그리고는 일미촌에 살면서 계절에 따라 바뀌는 자연의 모습을 이야기 하듯 적는 것이 전부였다.
부장은 미자가 바쁘게 시간을 내 준 것이 미안해서인지 얼른 미자의 시를 노란 봉투에 넣고는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좋은 결과가 기대됩니다. 아주 좋은 시적 표현입니다”
이 말을 들은 미자는 직접 서울 상경 한 것이 잘했다는 생각에서 들었다. 또한 부장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부장님! 당선이 안돼도 고마워요. 제 시를 인정해 주는 한 분이 계신 것만으로도 만족해요”
부장도 마감시간이 되었다며 의자에 걸쳐 놓았던 잠바를 집어 들고는 다방문을 앞서 나갔다. 밖은 화창한 봄 날씨 때문일까 뒤따라 나오던 미자는 갑자기 현기증에 길 위에 주저앉았다. 부장은 미자에게
“내려 가셔야지요?” 라고 말을 건네고 보니 미자가 길 위에 쓰러져 있었다.
몸을 돌려 미자의 몸을 세우고는
“정신 차리세요, 미자씨.. 미자씨”
미자는 온몸에 열이 나고 머리엔 식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가고 있었다.
놀란 부장은 도로변으로 정신없이 뛰어가 택시를 세워 미자를 인근 종합병원 응급실로
갔다.
병원에 도착한 미자는 의식 없이 응급실로 실려 들어가고 부장은 응급실 밖에 서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바로 그때 병원 안내 방송은 다급하게도 비상근무를 알리는 방송이 나오자 몇몇의 의사들이 응급실로 뛰어 들어가고 있었다.
초조해진 부장은 연신 줄담배로 마음을 추스르고 있을 때, 응급실에서 의사들이 나오며 서로 나누는 말이 들렸다.
“김과장, 젊은 여자한테 딱딱한 덩어리는 처음이야” 수술을 마친 듯한 표정이었다.
“응어리 정도가 아니야. 완전히 굳었어.”
의사들은 걸음을 재촉하며 응급실 복도를 돌아 나가고, 미자는 응급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부장은 간호원실로 갔다.
“방금 응급실에서 나온 환자분 어떤 수술하신 겁니까?”
다급하게 물었다. 간호원은 챠트판을 들쳐보며 일어섰다.
“환자분은 목 밑에 임파선 암이 겨드랑이 밑 신경절을 침범해서 손을 써 볼 수 없는 상태입니다.”
이 말에 부장은 자신의 딸처럼 미자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부장은 미자를 직접 살펴 본 과장에게 매달렸다.
“살려주세요. 이대로 죽으면 억울합니다. 불쌍해요”
애타게 매달리는 부장의 손을 서서히 잡아내려 놓은 진료과장은 부장에게 물었다.
“환자분 직업은 무엇입니까?” 부장은 대답했다.
“네. 시인입니다.”
진료 과장은 부장의 손을 잡으며 최선을 다했다며 고개를 돌렸다.
“이 환자분은 특이하게도 전이가 너무 빨리 진행되는 체질이것 같습니다.”
한편 석구는 미자가 없는 다방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미자가 쓰던 방에 남긴 시를 보다가 우연히 약봉지를 보고는 놀랬다. 흔히 먹는 소화제였으나 종류가 다양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도 늘 밝은 미자에게 아무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내일부터는 덕배와 할아버지 그리고 석구 자신이 앞바다에 몰려오는 새우 잡이 나갈 생각에 들떠 있었다.
새우 잡이 배는 일명 멍텅구리 배로 자기 힘으로는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다. 당분간은 석구도 서울에서 돌아오는 미자를 볼 수 없을 것이라는 미련을 갖고 미자의 흔적을 찾다가 늦게 잠이 들었다.
미자는 잠이 깼다. 일미촌에서 서울까지 걸어 올라온 듯한 무거운 몸이였다. 환한 허공이 보였다. 그것은 병실 흰 벽이었다. 옆 침대에는 언제부터 들어 왔는지 모를 낯선 환자가 시체처럼 누워 있었다.
병실 문이 열렸다. 회진시간이었다. 의사들이 떼를 지어 들어와 미자 침대를 둘러싸고 일제히 미자를 내려다보았다. 머리가 희끗한 진료과장이 나지막하게 물었다.
“어때요? 잘 잤어요?” 미자는 꼼짝하지 않았다.
“정신이 좀 들지요?” 다시 진료과장이 물었다.
미자는 간신히 눈을 떴다. 미자의 팔뚝에 주사를 놓았다. 환자의 고통이 서서히 가라 앉고 있었다. 오랜만에 편안한 무통의 시간을 즐기며 미자의 눈길도 이내 슬며시 감겼다.
의사는 인턴들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굉장한 속도야. 폐와 췌장으로 급기야 골수까지 침투되고 있어 조직이 군데군데 뭉치고...”
그러자 듣고 있던 인턴 중 한명은
“셀라인을 계속 투여 한다면 어떨까요?”듣고 있던 담당의사는
“어떤 약물로도 붕괴된 조직을 되살릴 순 없어”
“그럼 고통은 언제부터?”
“이미 시작 된거야. 아프다고 하면 즉각 진통제 넣어줘”
미자는 꿈을 꾸고 있었다. 단발머리 학창시절 소풍을 가서 숨어버린 친구들을 찾던 술래잡기 놀이와 운동장에서 고무줄놀이를 할 때 줄을 끊고 달아나던 남자 아이를 좇아가 때려주었던 모습이 보여 졌다. 또한 아버지, 어머니에게 자신이 살집이라며 꽃 대궐 같은 큰 집을 구경시켜 주었고 그 옆에서는 석구가 미자에게 웃으며 안아주는 꿈이였다.
옆 침대 환자가 신음을 하자, 환자의 남편이 안절부절 못하고 서성댔다.
미자는 환자의 신음소리가 들릴 때마다 석구가 와 줄 것 같아 문 쪽을 바라보며 기다렸다.
미자의 호흡기가 억압하면서 숨쉬기가 거북해졌다.
이튿날 아침 미자는 숨을 거두었다.
-출처 :다음카페 <문학산>(2004년)
------------------------------------------
장석도 : 동구문학회원, 동구송림6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