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들어온 BMW 120d를 시승하기 전날, 지난해 7월 독일 출장에서 만났던 118i 5도어 수동 모델에 대한 기억이 아련히 떠올랐다. 이를 악물고 시속 200km를 넘나들면서 아우토반을 달리고, 뉘르부르크링크 노르트슐라이퍼 서킷의 170개나 되는 코너를 5~6번씩 공략하면서 이틀 동안 주유소를 5번 들렀다.
속도무제한 고속도로(일정구간)와 녹색지옥이라 불리는 서킷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자연스럽게 차의 움직임 패턴과 동력계의 특성에 대해 느낄 수 있었다. 118i의 직렬 4기통 2.0L 엔진은 최고출력(143마력)이 그다지 높은 편이 아니지만, 엔진이 매끄럽고 빠르게 반응했고 초반 가속에서도 둔감하지 않은 움직임을 보였다.
물론 출력이 낮아 고속에서의 가속이 미적지근하지만, 단단한 하체가 주는 굳건한 믿음이 거친 코너를 야성적으로 달려들게 만들었다. 노르트슐라이퍼에서 DSC를 끄고 몰았을 때는 뒷바퀴굴림 특성대로 코너에서 여지없이 뒤가 흐르면서 차체가 미끄러져 코스를 벗어나는 경우도 있었지만, 자연스럽게 드리프트가 연출되는 짜릿한 재미도 맛보았다.
당시 출력이 좀 더 높고 타이어 그립이 좋았더라면(118i는 렌터카로 품질이 낮은 타이어가 끼워져 있었다) 더욱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없지 않았지만, 소형 뒷바퀴굴림 차의 재미를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잘 달릴 수밖에 없는 하드웨어
그런데 독일에서의 아쉬움이 국내에서 해소되었다. BMW코리아가 들여온 120d는 디젤 엔진으로 최고출력이 177마력이고 최대토크도 35.7kg·m나 된다. 더욱이 시승차는 M 퍼포먼스 패키지가 들어간 모델로 서스펜션을 더욱 스포티하게 조율하고 타이어도 18인치(118i는 16인치)나 되는 광폭타이어를 끼웠다. 브레이크도 6피스톤 캘리퍼 브레이크 시스템이 끼워진다. 엔진룸에도 카본을 붙인 스트럿 바가 차체를 꽉 붙들고 있다.
외관에서도 확연한 차별화를 꾀했다. 우선 키드니 그릴을 매트 블랙으로 칠해 거친 느낌을 더했고, 노즈부터 리어 엔드까지 은색 스트라이프를 둘렀다. 앞 범퍼 밑에는 카본으로 스플리터를 달았고, 구멍을 뚫은 사이드 스커트와 스포일러도 붙였다. 사이드 미러도 카본으로 감쌌다. 일반 버전과 비교했을 때 훨씬 스포티하면서 강렬한 이미지를 만든다. 리어 루프라인을 좀 더 예각으로 날렵하게 뽑아냈으면 더욱 멋스러웠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 경우 뒷자리 승차는 포기해야 할 것이다.
실내도 재미있는 시스템이 들어 있다. 멀티 펑션(Multi-Function) 스포츠 스티어링 휠에는 작은 액정과 함께 양 옆으로 여러 개의 전구가 박혀 있다. 400m 드래그 레이스 기록을 잴 수 있고 현재의 G포스 등도 표시된다. 또 양옆의 전구들은 적절한 변속 타이밍을 알려 준다. 다이내믹한 주행을 유도하면서 안전하고 재미있게 달릴 수 있는 옵션이다.
실내 구성은 엔트리 모델인 만큼 치장을 줄여 단순하다. 센터페시아는 버튼이 몇 개 없고, i드라이브도 들어가 있지 않다. 뒷자리는 당연히 드나들기가 힘들고 무릎공간이 좁다. 누군가를 앉혀야 한다면, 군소리를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아야 할 것이다.
몸부림치는 작은 야성
120d 쿠페 M 퍼포먼스 패키지는 실내외가 잘 달릴 수 있도록 조율된 차다. 당연힌 밟아줘야 하지 않겠나. 겨우내 스노보드로 단련시킨 대퇴부 근육을 강하게 수축시켜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어라, 이건 뭐지?’ 35.7kg·m의 토크가 응축된 뒷바퀴가 스핀을 일으키며 화려한 번아웃을 만드는 것까지는 원하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스타트가 늦었다. ‘DSC를 꺼 볼까?’ 그래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차! 디젤 엔진이었지.’ 디젤 엔진의 특성상 터보압이 차지 않아 스타트 반응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뭔가 아쉬워 왼발로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출발했다. 뒤가 오른쪽으로 살짝 미끄러지면서 ‘끼익’ 소리를 내고 튀어 나갔다.
스타트에서는 약간 반응성이 늦었지만 그 뒤로는 가속감이 꽤 경쾌하다. 시속 190km까지는 거침없이 속도를 올리고 그 뒤로 속도계의 반응이 주춤거리기 시작한다. 그래도 시속 200km를 넘나드는 것은 거리낌 없이 자연스럽다.
고속에서도 안정감을 잃지 않는 것은 단단한 섀시에 더해진 M 퍼포먼스 서스펜션 덕분이다. 노면의 미세한 고저차에 의한 휠 충격이 스티어링 휠과 시트로 전해진다. 특히 노면 상태가 좋지 않은 곳에서는 휠을 꽉 쥐지 않으면 노면의 홈을 타고 차체가 흐를 정도로 반응성이 좋다. BMW Z4의 주행 특성과 비슷한 정도로 느껴졌다.
실내 소음은 평범한 수준. 3시리즈보다는 노면 소음과 고속에서의 풍절음이 더 크지만 귀를 괴롭히는 정도는 아니다. 디젤 엔진음과 진동은 거의 없다.
코너에서는 놀라운 타이어 그립력을 느꼈다. 속도를 높여도 좀처럼 밖으로 흐르는 일이 없었다. DSC를 끄고 차체를 던질 요량으로 힘차게 스티어링 휠을 돌려도 아스팔트에 붙어버린 245/35 R18(뒷바퀴) 사이즈의 브리지스톤 타이어가 좀처럼 슬립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래서 야성적인 움직임을 만들기 위해 사이드 브레이크를 당겨 뒤를 흘리는 야만적인 방법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물론 타이어 그립력이 좋아 더욱 스포티한 주행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7개월 만에 다시 만난 1시리즈가 여간 반가운 날이 아니었다. 특히 출력이 높고 M 퍼포먼스 패키지까지 들어간 모델이어서 더욱 재미있는 시승이었다. 작고 가벼우면서 뒷바퀴를 굴리는 차는 지극히 매력적이다. 120d 쿠페는 또 하나의 매력이 있다. 바로 연비다. 120d 쿠페는 공인연비가 15.9km/L이다. 하루 종일 차에 스트레스를 주었는데도 연비가 10km/L 정도 나왔다. 고속도로의 크루징 상태에서는 순간연비가 23.5km/L까지 찍힌 것도 볼 수 있었다. 스타일리시 쿠페를 타면서 연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120d 쿠페는 매력적인 모델이지만, 1시리즈의 가치적 효용성을 대변하는 모델은 아니다. 5도어 해치백이었다면 국내 시장에서 더욱 높은 판매량을 올릴 수 있다. 그런데 왜 들여오지 않는 거냐고? 3시리즈(1월 판매 97대)의 판매는 누가 책임진단 말인가? 이미 메르세데스 벤츠 C클래스(131대), 아우디 A4(176대)와의 판매 경쟁에서 크게 밀리고 있다. 물론 BMW코리아에서는 1시리즈 5도어, 3도어 모델도 들여오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3시리즈와의 판매 간섭이 일 것이 분명하니 눈물을 머금고 참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