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파조 영린(永麟)
제2파의 파조는 시조공(安子美)의 둘째 아드님으로 휘는 영린(永麟)이시고 공은 신기별장(神騎別將)으로 계셨으며, 별장공(別將公)으로도 부르고 밀직부사(密直副使)로 추봉되셨는데, 묘소는 실전(失傳)되어 지금 순흥의 순흥안씨추원단에 모시고 있다.
《기봉성휘(箕封姓彙)》에 따르면 “공은 고려조 고종때 사람으로 송나라 순우(淳祐) 2년에 서해도(추동등안렴사)가 되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별장공의 후손은 5세에 이르러 크게 번성하는 바, 순흥부원군에 봉군되신 문의공(文懿公) 휘 문개(文凱)이시다. 6세에 와서 양정공 천선(千善)께서는 세 아들이 모두 번성하여 분파한다. 둘째아들 천봉께서는 의랑공파조, 셋째아들 천보께서는 소의공파로 분파되고, 다시 8세에 이르러 안원군파(處)와 충정공파로 나뉘어진다.
(2) 2파의 계파
① 안원군파(安原君派)
파조는 8세 처(處)로서 5세인 문의공(文懿公 諱 文凱)의 3증손이며, 원기(原起)의 아드님이다. 자는 택인(澤仁), 호는 청백재(淸白齋)이다. 벼슬은 한성소윤, 자헌대부 이조판서를 지냈으며, 안원군(安原君)에 봉해지셨고, 세종때 청백록(淸白錄)에 올랐다.
② 충정공파(忠靖公派)
파조는 8세 준(俊)으로 5세인 문의공(文懿公 諱 文凱)의 증손이며, 손주(孫柱)의 차남으로, 호는 노포(蘆浦), 시호가 충정(忠靖)이다. 고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하여 경상, 충청, 전라 3도의 체찰사를 역임하였으며 판봉상시사를 겸했다. 공은 고려의 기운이 기울자 정몽주, 우현보, 이색, 김진양 등과 나라를 일으기 세우려다가, 정몽주는 피살되고 공은 경남 의령으로 유배되었다. 이성계가 등극하자 공의 충절을 가상히 여겨 공의 소원대로 유배지를 경북 예천으로 옮겨 노포리에서 여생을 마치셨다.
③ 의랑공파(議郎公派)
파조는 7세 천봉(天鳳)으로 5세인 문의공(文懿公 諱 文凱)의 손자이시며, 양정공(良定公) 천선(千善)의 차남으로 벼슬은 예부의랑을 지내셨다.
④ 소의공파(昭懿公派)
파조는 7세 천보(天保)이시고, 5세인 문의공(文懿公 諱 文凱)의 손자이시며, 양정공(良定公) 천선(千善)의 3남이시다. 고려 충숙왕 8년(1339)에 출생하셨으며 자는 정지(定之), 시호가 소의(昭懿)이시다. 공민왕 14년(1365) 별장이 되고 전객부령 등, 여러 벼슬을 거쳐 공조전서에 오르고 고려가 망하자 16년간 독서와 거문고로 세월을 보냈으며 태종 8년(1408)부름을 받아 검교한성윤, 검교참찬, 검교찬성을 지내셨다. 세종이 즉위하자 1418년 8월 15일 좌의정에 올랐으나 바로 치사하고, 광록대부 돈녕부영사를 지내다가 세종 7년(1425) 2월 16일 87세로 돌아가셨다. 소의공은 세종대왕의 왕후인 소헌왕후의 외조부이시기도 하다.
배위는 정경부인 영주전씨이고 슬하에 판중추부사 수산(壽山)과 소헌왕후(세종왕후)의 어머님인 삼한국대부인(三韓國大夫人)을 두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