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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무렵에 들려 오는 부르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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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숨 고르기 스크랩 뭉치면 죽고 섞여야 산다
비아 추천 0 조회 51 10.12.13 00:3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어렸을 때 우리가 다니던 학교에는 가난한 집 아이도 있었고 부자인 아이도 있었다. 부모에게 받은 일제 학용품을 가지고 와서 자랑을 하는 아이도 있었지만, 산동네 판자집에서 사는 아이들도 있었다. 우리들은 모두 친구였다. 중고등학교 때는 더욱 더 그랬다. 버스를 타고 다녀 통학권이 넓어져서 더 다양한 배경을 지닌 이들이 모였다. 공부 못하건 공부 잘하건 우리는 친구였다. 한 때 가졌던 동류의식이 있기에 나이가 들어서 아무리 지위가 오르고 돈이 많아도 어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동정하는 마음이 들게 된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다. 특히 대도시는 소득수준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산다. 강남, 분당, 목동 등 아이들은 자기와 비슷하게 사는 아이들만 보고 산다. 과거에는 부모는 서울에서 살아도 아이들은 여름방학 때 할아버지, 할머니 사시는 시골에 가서 지내기도 했다. 재래식 화장실 때문에 고역을 치르던 도시 아이들도 있었다. 그런 어린 시절이 머리에 남아서 TV에서 어려운 사람들 이야기가 나오면 공감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아이들은  비슷한 처지의 비슷한 아이들만 친구로 만난다. 사람은 높은 곳을 바라보는 만큼 낮은 곳도 바라봐야 밸런스가 맞는다. 하루 종일 고개를 쳐들고 높은 산만 바라본다면 목이 아플 것이다. 삶도 마찬가지다. 나보다 처지가 곤란한 이들을 마주대하게 될 때 내가 가진 것의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부자동네의 아이들은 모두 다 자신들 같이 잘 사는 줄 안다. 텔레비전에서 어려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와도 왜 저렇게 살 수 밖에 없는지 부모가 설명을 해야 온전히 이해한다.

 


내가 어렸을 때 뭐가 되고 싶은지 어른들이 물어보면 아이들은 대통령, 장군, 과학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사실 생각해보면 그것은 진짜 꿈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진짜 꿈은 매일 매일 바라보는 주위 사람들을 보면서 구체화된다. 많이 보고 익숙한 것이 아닌데 그 단계를 하나하나 밟아 올라가 달성하기란 쉽지 않다. 어려운 사람들만 가난한 동네에서 모여 살게 된다면 그 동네에서 자란 아이들에게는 성공한 사람들을 실제로 접할 기회가 거의 없다. 텔레비전을 통해서 성공한 이들의 모습을 접한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성공한 주인공들의 외양과 말하는 것을 보며, 성공한 이들은 저럴 거라고 생각을 한다. 그 실제 단계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텔레비전이 보여주는 성공의 모양새를 갖추는 것이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저렇게 살아야 성공한 것이라는 이미지가 생성된다. 텔레비전에서 보이는 부자들의 모습은 소비를 통해서 표현된다. 그러다 보면 부자가 가지는 물건을 소유할 때 자신이 부자가 된 듯 느낌을 받는다. 그런데 소득이 소비를 보장해주지 못하게 되면 좌절한다. 좌절해서 꿈을 잃는다. 대한민국 국민 중 한사람이 꿈을 잃고, 희망을 잃고, 불안감 속에, 죽지 못해 살게 될 때마다 우리나라는 한 사람 몫의 성장잠재력을 잃는다. 그리고 국가는 정점을 지나서 하향세로 돌아서게 된다. 로마도 그랬고 일본도 그랬고 선진국도 그랬다.

 


영국의 동물행태학자인 데스먼드 모리스는 인간을 사냥하는 영장류라고 표현한다. 그에 따르면 원숭이, 오랑우탄, 고릴라 같은 영장류는 대부분 전형적인 초식동물이다. 무리를 이루어 살기는 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습성이지 특별한 목적을 지니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사자나 하이에나 같은 육식동물은 집단을 이루는 목적이 분명하다. 바로 사냥이다. 그냥 무리지어 살면서 모두 공평하게 나무 열매를 먹고 살던 시설에는 진정한 의미의 협동이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인간이 나무에서 내려와서 사냥을 하면서 진정한 의미의 협동이 필요했다. 데스먼드 모리스에 따르면 바로 그 단계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가 등장하게 되었다고 한다. 강자와 다수의 평범한 존재들이 함께 사냥을 할 때 성공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인류의 선조 중 역사상 가장 힘센 이도 혼자서 맘모스를 잡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 수십 명의 힘이 한 사람의 힘보다 강하다.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에 따르면 사람들이 축구에 열광하는 이유는 우리 안에 남아있는 사냥본능 때문이라고 한다. 선수들은 몰이꾼이고 축구공은 먹잇감이고 골대는 함정에 해당이 된다. 11명의 선수들이 먹잇감을 몰아서 함정에 해당되는 골대에 집어넣는 것이다. 사람들이 축구에서 골이 들어갈 때 보이는 열광적 반응은 사냥이 성공했을 때의 환희에 해당된다. 그런데 축구를 비롯한 모든 구기 종목에서는 제일 앞에서 뛰는 골을 넣는 공격수도 중요하지만, 미드필더와 수비수가 그보다 더 중요하다. 11명의 선수 중 한명이 퇴장을 당해서 한명이 줄어서 10명이 되어도 엄청난 위기다. 하물며 두 명이 퇴장을 당해 아홉 명이 되면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세 명이 퇴장을 당한다면 그 경기는 이미 끝난 것이다. 사회도 마찬가지고 회사도 마찬가지다.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끼리만 만나고 모여 살게 될 때 그들은 자신이 호나우도나 루니가 된 것만 같다. 그들은 자신들의 리그에 속하지 않는 이들을 귀찮은 존재로만 여기게 된다. 하지만 사냥은 혼자 할 수 없다. 축구도 혼자 할 수 없다. 올해 호나우도가 빠져나가면서 맨유가 공격력의 약화로 크게 고전할 것이라는 예상이 컸다. 하지만 실제로 맨유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수비진의 붕괴다. 박지성 선수가 측면 수비수로 뛰어야 할 지경이 되었다. 대한민국이 저성장의 늪에 빠진다면 그 이유는 상위 1%의 인재가 없어서가 아니다. 축구로 따지면 미드필더와 수비수에 해당되는 보통사람들의 희망과 꿈이 붕괴되는 것이 저성장을 가져온다.

 


상류층은 자신들의 부와 지위를 지키기 위해서 몰려 산다. 하지만 그러한 행위가 결국은 대한민국이라는 집단을 약하게 한다. 대한민국이라는 집단이 약해지면 상류층의 부와 권력도  붕괴된다. 대한민국이 점점 살기 힘든 나라가 되는 이유 중 하나가 사적분배구조가 자취를 감추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회적 분배라고 하면 나라가 세금을 걷어서 공적으로 분배하는 것만 생각한다. 하지만 국가를 통한 재화의 분배는 그 한계가 있다. 국가가 극빈층이 기대어 살 수 있는 버팀목으로 역할을 하는 것 만해도 벅찬 경우가 많다. 하물며 국가가 재화를 분배해서 신분을 상승시켜주기는 쉽지 않다. 고등학교 때 웃는 경관이라는 스웨덴 추리소설을 읽고 큰 충격을 받았었다. 당시에 배운 대로 하면 스웨덴에는 못사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어야 했다. 그런데 그 소설 속의 스웨덴 도시빈민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공적분배의 한계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국가는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생명이다. 국가는 말로는 가난한 이를 위해서 가진 자들의 부와 힘을 제한한다고 한다. 하지만 국가가 가진 자들의 부와 힘을 빼앗는 이유는 그것을 국가의 몫으로 챙기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에 대한 명분을 만들기 위해서 국가는 그 일부를 국민에게 나누어준다. 자본주의 국가건 사회주의 국가건 독재국가건 민주국가건 왕국이건 국가의 방향은 오로지 하나다. 국가는 국가를 위해서 존재한다. 사실은 부자건 가난한 이건 힘을 합쳐서 국가를 견제해야 한다. 그러나 국가는 국민의 사이를 가르면서 최대의 이득을 꾀하려고 한다. 나라의 재정과 규모는 커질 대로 커지는데 국민들은 점점 힘들어지는 것이 복지국가의 실상이다.

 


따라서 어떤 점에서 공적분배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적분배다. 올해 달러강세와 과감한 투자로 인해 삼성전자와 LG 전자가 최고의 한해를 보냈다. 그래서 직원들에게 두둑한 성과급을 풀 것이라고들 한다. 과거에는 대기업 직원이 두둑한 성과급을 받았다면 그 돈 중 상당부분은 부모 형제 친구를 만나면서 사적으로 분배가 되었다. 아무리 주위에서 형제들에게 돈을 꿔주면 안 된다고 해도 형제 중 누가 어려우면 돈을 꿔주었다. 먼 친척이 집안 사정이 어렵다고 하면 보험설계사인 친척에게 보험이라도 하나 들어 주었다. 부자에게도 친한 가난한 친구가 있었다. 가난한 친구가 부자에게 신세를 지기도 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처럼 성공과 투자에 대한 정보도 공유되었다. 하지만 비슷한 상황의 아이들끼리 어울려 성장하게 되면서 이러한 사적인 분배가 급격히 줄어들게 되었다. 더군다나 낭만적인 사랑은 찾아보기 힘들고 결혼도 집안과 재산이 맞아야지 하는 세상으로 바뀌면서 사적분배는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내가 힘들 때 나보다 많이 가진 이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어도 주위에 도움을 청할 이가 없는 것이다. 내가 힘들 때 주위를 돌아보면 다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뿐이다. 따라서 세상이 점점 더 차가워지고 마음이 느끼는 양극화는 통계에 나타나는 양극화보다 더욱 심각하다.

 


그런데 이러한 빈곤의 세습화가 과연 부자들에게는 이득이 되는 걸까? 그렇지 않다. 빈곤의 세습화는 인구를 감소시키고, 사회안전망을 해치고 삶의 만족도를 떨어뜨리고, 급격한 환경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떨어뜨려서 결국 부자들도 그 피해를 보게 된다.

 


양극화가 진행될수록 저출산은 더욱 진행될 것이다. 결혼을 하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못하는 남녀가 늘어난다.  막상 결혼을 해도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생활이 안 되는 가정이 늘어난다. 기업은 경쟁력확보를 위해서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직장을 언제 그만둘지 걱정하게 되면 아이를 더 낳기가 두렵다. 결혼한 여성이 살아남기 위해서 아르바이트와 비정규직으로 일을 하는 한 인구증가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내수시장은 줄어들고 공장을 지어도 일할 사람이 없다. 옆나라 일본을 봐도 내수가 받혀주지 않으니 도요타 자동차도 적자가 나고 JAL도 경영난을 겪는다. 기업도 살아남기 어렵게 된다. 기업이 살아남기 힘들게 되면 부자들도 힘들어진다.

 


부의 양극화는 사회를 불안하게 만든다. 국가는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사회에 최소한도의  안전을 제공해야 한다. 사회를 안정되게 하기 위해서 최소한도 비용을 투자한다. 아프면 병원에 갈 수 있게 하고, 돈이 없어도 밥을 굶지는 않게끔 극빈자들을 보조한다. 하지만 국가는 그 이상을 투자하지는 않는다. 정부는 가급적 정부를 위해서 재원을 사용하려할 뿐이다. 하지만 그러한 최소생계이외에도 인간에게는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러시아작가 두진쩨프의 소설제목 같이 사람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 꿈과 희망을 포기해야 할 정도로 궁지에 몰리게 되면 사람들이 독하게 된다. 양심을 따질 여유가 없다. 궁지에 몰린 이들은 돈이 된다면 뭐든지 못할 것이 없다는 분위기에 사로잡힌다. 그 분위기가 점점 사회전반으로 번져간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누구나 뇌물도 받고 담합도 하게 된다. 쓰레기가 썩어서 악취가 나면 부자건 가난한 이건 악취를 피할 수 없다. 비가 내리면 누구나 옷이 젖는다. 사회가 불안하게 되면 그 피해는 부자라고 피해가지 않는다. 분노와 원망이 세상을 휘젓고 다닌다. 부가 집중되면 스트레스도 따라온다. 세상이 양극화될수록 구릉지대가 줄어들고 깎아지른 낭떠러지만 늘어난다. 과거에는 실패해도 구르다가 어딘가 걸려서 멈출 것이라는 기대가 부자들에게 있었다. 지금은 한발 잘 못 디디면 백척간두로 떨어질 것 같은 팽팽한 긴장감이 휘감는다. 부와 행복의 상관관계가 깨어진다.

 


아울러 끼리끼리 몰려다니고 다들 비슷하게만 살면 급격한 변화에 취약하게 된다. 앞서 언급한 동물행태학자인 데즈먼드 모리스는 개미핥기와 같은 동물을 전문가라고 칭한다. 환경이 급격히 바뀌지 않는 한 매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개미핥기는 개미를 먹는 다른 동물이 없기 때문에 경쟁자가 없다. 만약에 개미만 충분히 있다면 아무 걱정이 없다. 느릿느릿 그 기다란 혓바닥으로 개미를 핥아 먹으면 된다. 그러나 개미를 제외한 나머지는 먹을 수 없다. 따라서 개미가 줄어들거나 사라지면 죽을 수밖에 없다. 그에 반해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어떤 때는 환경을 바꾸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지난 100년간 급격한 혼돈을 겪었다. 지독한 계급사회였던 조선사회에서 출세를 위해서는 과거시험을 쳐야 했다. 과거시험의 내용은 실제 당대의 삶과는 거의 연관성이 없는 중국문헌이었다. 결혼은 비슷한 집안끼리 이루어졌다. 양반의 자식이더라도 정실부인이 낳지 않는 이들은 양반계급으로서의 특권을 누리지 못했다. 양반계급은 때로는 동인이다 서인이다 해서 다투기도 했다. 하지만 평민에 대한 인식에는 기본적으로 큰 차이가 없었다. 만약에 조선 초기와 같은 상황이 영원히 지속되었다면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청나라, 일본 같은 달갑지 않은 변수가 생겼다. 순종집단인 양반계급은 그러한 시대의 변화에 적응을 할 수 없었다. 일제치하에서 기존의 사대부 계급의 몰락이 이루어졌다. 6.25 전쟁을 통해서 지주계급의 몰락이 이루어졌다. 신분변동이 심했다. 세상의 변화의 물결에 이리 저리 떠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변화가 격심했기에 가진 것 없는 이들이 재벌이 되고, 장관이 되었다. 전쟁을 비롯한 사회적 위기가 환경을 휘저었다. 그러면서 생겨난 잡종들이 새로운 강자가 되었다. 그런데 일단 강자가 되고 나니 잡종들이 이번에는 스스로 순종이 되려고들 한다. 

 


현재 같이 강자들끼리 모여 살고, 강자들끼리 친구가 되고, 강자들끼리 결혼을 한다면 그들은 지금의 한국사회에 가장 적합한 전문순종으로 진화할 것이다. 개미핥기가 남미의 열대우림에서 최고의 강자이듯 그들은 계층화로 치닫는 한국사회의 강자일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사회가 변화를 맞이하게 되면 대책이 없을 것이다. 변화하는 세상에 맞추어 삶을 개척하는 능력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생물학적 진화 뿐 아니라 사회학적 진화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다양성이다. 서로 섞여 잡종이 될수록 변화를 감당할 수 있다. 잡초가 난초보다 강하고, 똥개가 애완견보다 강하다. 최고의 순종끼리 교배를 해서 만들어져 애완견 훈련을 받은 족보있는 개들은 야생에서 생존하는데 절대 불리하다. 최고의 순종이 되기 위해 교육을 받고 최고의 순종끼리 교배하고자 하는 우리 사회의 계층화 움직임은 사회적 진화에 역행하는 것이다. 그러한 부자들의 행동이 결국은 부자들의 위험을 초래할 것이다. 부자들도 부를 지키기 위해서는 다른 이들이 살아가는 현실에 관심을 두고, 공감을 하고, 고통을 나눠야 한다. 더 이상의 양극화는 부자건 가난한 이건 상관없이 공멸을 가져온다. 국가의 공적분배는 매우 제한된 역할을 할 뿐이다. 섞여야 하고 그것을 통해서 사적분배가 이루어 질 때 부자건 가난한 이건 건강하게 생존할 수 있다. 행복해질 수 있다. 행복은 우리 모두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최명기(정신과전문의/부여다사랑병원장/경희대학교경영대학원 겸임교수/심리학테라피 저자)


출처 : 의사들이 만든 무료 의학 상담 게시판 http://www.medicalize.com/doctors/26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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