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VOxLAeKUWk4
멜 깁슨 - 윌리엄 월리스
소피 마르소 - 이자벨 공주
앵거스 맥페이든 - 로버트
캐서린 매코맥 - 머론
패트릭 맥구언 - 에드워드 1세
제임스 코스모 - 캠벨
브렌던 글리슨 - 해미시
토미 플래너건 - 모리슨
브라이언 콕스 - 아길 월리스
숀 롤러 (Sean Lawlor) - 맬컴 월리스
숀 맥긴리 (Sean McGinley) - 매클랜노
스티븐 빌링턴 (Stephen Billington) - 필립
데이비드 오하라 - 스티븐
피터 멀런 - 베터란
이언 배넌 - 로버트 브루스 시니어
-------------------------------------------------------------------------------------------------
스코틀랜드의 성웅이라 불리는 스코틀랜드의 독립영웅이자 수호자였던 기사. '스코틀랜드의 수호자'(Guardian of Scotland)라는 명칭은 실제 스코틀랜드 국가원수의 칭호였다.
윌리엄 월레스는 에어주의 지주인 말콤 월레스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나이를 먹은 후에는 페이즐리 수도원에 들어가서 그 곳에서 교육을 받았다. 페이즐리 수도원은 현재에도 존재하는데, 지하에 설치된 정교한 하수도에서 중세 스코틀랜드의 각종 유물이 발굴된 바 있다.
이후 윌리엄 월레스는 3가지 언어를 구사할 줄 아는 교양인으로 성장했다. 이후에는 글래스고 대성당에 가서 로버트 위샤르트 주교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다. 윌리엄 월레스는 글래스고 대성당에 머무르면서 조국 스코틀랜드가 처한 어려운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당시의 경험이 월레스가 훗날 스코틀랜드의 투사로 거듭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여겨진다.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1세가 정당한 왕위 계승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잉글랜드의 우월한 국력을 바탕으로 무력으로 스코틀랜드의 지배권을 차지하려들자 스코틀랜드의 귀족들이 반발하였다. 결국 1296년에 이르러 에드워드 1세가 대대적인 스코틀랜드 침공을 개시하였다. 민담에 의하면 이때 에드워드 1세의 침략으로 자신을 제외한 가족들이 몰살당했다.
잉글랜드 병사와 시비가 붙어 그들을 죽이는 바람에 래너크의 치안 대장인 윌리엄 헤셀릭이 체포령을 내리고 아내인 메리언을 살해하자 1297년에 그를 죽여 복수했다. 윌리엄 월레스의 행적은 기록의 부재로 인해 대부분이 구전으로 전해지고 있지만, 그의 행적 중 역사적으로 가장 신뢰할 만한 첫 번째 행적이 바로 래너크에서 봉기를 일으켜 헤셀릭을 살해한 것이다.
그 후 사람들을 점점 모으면서 잉글랜드와 전쟁을 벌였다. 아이샤이어에서는 윌리엄 옴스비를 패주시켰고, 앤드류 더 모레이와 합류해 스털링 다리에서 잉글랜드군을 격파해 휴 크래싱햄을 죽이고 가죽을 벗겼다.[3] 스털링의 승리로 월레스는 기사 작위를 받고 영웅으로 추앙받았다. 이후 스코틀랜드의 여러 도시를 점령하고 잉글랜드의 요크 성을 점령하면서 요크 성의 성주인 에드워드 1세의 조카를 죽이고 그의 목을 베어 에드워드 1세에게 보냈다.
이에 분노한 에드워드 1세가 직접 군대를 이끌고 와서 스코틀랜드를 공격하자 1298년 4월 1일에 폴커크에서 맞서 싸웠지만 회전에서의 전술적 능력이 떨어지는 점이 지적받던 월레스는 잉글랜드군의 장궁병 앞에 별다른 전술 없이 쉴트롬 진형으로 짠 창병부대를 포진했다가 패하고 말았다. 그는 스코틀랜드를 빠져나가 프랑스, 로마 교황청 등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성과는 없었다. 이후 월레스는 프랑스에서 스코틀랜드인 근위병으로 근무하여 잉글랜드군과의 두 번의 전투에 참가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1303년에 종자 거스리(Guthrie)가 프랑스에 파견되어 월레스의 귀환을 권유, 월레스는 그 해 스코틀랜드로 귀환한다. 그러나 그들은 엘코 숲 근처의 윌리엄 크로포드 농장을 되찾기 위해 갔다가 부하의 배신으로 함정에 빠져 잉글랜드군에게 쫓기게 되었다. 월레스는 배신한 부하를 죽이고 1305년까지 숨어다녔지만 결국 글래스고 근방의 로브로이스턴에서 에드워드 밑에 있던 스코틀랜드인 기사 존 드 멘티스(John de Menteith)에게 붙잡혔고, 잉글랜드군에 넘겨졌다. 존 드 맨티스는 나중에 에드워드 1세와 잉글랜드를 배신하고 로버트 1세의 신하가 된다.
런던으로 압송된 월레스는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홀에서 재판을 받은 후 살인 및 반역죄로 사형을 선고받아, 런던에서 교수형을 받고 옷이 벗겨진 채 말에 끌려다니며 조리돌림당하다 스미스필드 마켓에서 사지가 찢겨졌다. 사후 그의 머리는 창에 꽂혀 런던 다리에 효수되었고 장기는 불태워졌으며 찢겨진 사지는 4개의 지역에 나뉘어서 전시되었다. 오해의 여지가 있을 수 있어 조금 보태자면, 윌리엄 월레스가 받은 형벌은 교수척장분지형이라는 형벌로, 교수형을 시키기는 하나 그것으로 편안하게 숨을 끊어주지 않는다. 이 형벌 자체가 죄인을 최대한 오래 살려두고 고통을 맛보게 하는 것이라 괴로워하며 발버둥치는 것을 적당히 놔두다 줄을 끊어 다시 숨을 쉬게 해주지만 그 대신 배를 갈라 장기를 꺼내고 생식기와 살점을 도려내 죄인의 눈으로 자신의 신체가 잘려나가는 것을 보게 한다. 그리고 팔 다리를 잘라낸 뒤 마지막으로 목을 자르는데, 이때까지 숨이 붙어있을 수 있기에 상당히 끔찍하고 악독한 형벌이라고 할 수 있다. 여담으로 이때 월레스의 동생 존과 그의 동료 사이먼 프레이저도 체포되어 참수당한 다음 머리가 월레스와 같이 효수되었다.
14세기에 편집된 스코틀랜드의 연대기 Gesta Annalia II에서는 백작이나 호족들만큼 신분이 높지는 않지만 a,상당한 교양을 갖춘 기사 가문 출신이며, 독립전쟁 초기부터 b.도처에서 잉글랜드인들에게 승리하고 c.스코틀랜드의 고위 귀족들을 그들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velint nolint) 강제로 지배함으로써 사실상 혼자서 항전을 주도하다가 폴커크에서 그를 질투한 코민 백작에게 d.배신을 당해서 패배하고 수호자직에서 물러난 것으로 묘사된다.
반면에 동시대 잉글랜드의 연대기들에는 천한 신분의 a.가난하고 무식한 무법자이며 전쟁 초기에는 보잘것없었으나 b.마치 까마귀가 백조가 된 것처럼 거짓된 명성을 통해 c.공공의(communis) 선출로 스코틀랜드인들의 챔피언이 되었다가 폴커크에서 동포들을 d.배신하고 도망친 것으로 묘사된다. 로버트 브루스가 잉글랜드 편에서 싸웠다든가 코민 백작이 폴커크 전투에서 월레스를 배신했다는 이야기는 없으며, 온갖 죄목을 갖다 붙인 월레스의 재판 기록에도 그가 반란에 가담하지 않은 스코틀랜드 귀족들을 협박해서 강제로 끌고 다녔다는 내용은 없다.
이렇듯 상반되는 기록이 많은데, 월레스와 원한 관계에 있었던 잉글랜드인들의 기록은 당연히 완전히 믿을 수 없고, 반대의 이유로 스코틀랜드의 기록도 완전히 믿을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더글러스, 위샤트, 머레이, 스튜어트 등 다른 반란군 지도자들의 행적에 대해서는 잉글랜드측 기록이 더 상세한 편.
현대 연구자들은 월레스가 생전부터 민중의 인기와 지지를 한몸에 받은 천재적인 게릴라 지휘관임에는 동의하나 군사령관으로서의 전술적, 전략적 능력과 제대로 된 군사학에 대한 훈련이 부족했음을 들어 그의 업적은 중세 영웅 서사시와 근현대 민족주의의 영향을 받아 과대평가돼있다고 보는 편이다.[4] 월레스를 영웅화한 정치인들도 이제는 학계와 함께 독립전쟁에서 용맹히 싸웠을뿐더러 체계화된 군사학을 배워 월레스 옆에서 바로 그 단점을 메꿔주었던 모레이 백작에 대한 재평가에 적극 나서고 있어서, 모레이 백작의 업적을 알리는 기사들이 나거나 월레스가 모레이 백작과 함께 서 있는 동상이 추가되기도 했다.
-----------------------------------------------------------------------------------------------------
제목인 브레이브 하트(Braveheart)는 주인공 월레스가 아니라 그를 배신한 로버트 더 브루스(로버트 1세)의 별명이다. 단 이것이 윌리엄 월레스의 별명으로서 차용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작중에서 로버트 더 브루스는 아버지 때문에 월레스를 한번 배신하긴 했지만 끝내 윌리엄 월레스의 용기에 감화되고 월레스 사후 그의 뜻을 이어 군대를 이끌고 스코틀랜드의 자유를 쟁취하였기 때문에 제목이 브레이브 하트인 것이 문제는 아니다.
영화 말미에서 로버트 더 브루스( 아웃로 킹 주인공)와 스코틀랜드인들은 월레스의 용기와 뜻을 이은 것으로 묘사되기 때문이다.
작중에서도 로버트 더 브루스는 아버지에게 "I don't want to lose heart!'라고 외친다. 또 꼭 별명으로서 누군가를 지목하기 보다는 작중 여러 스코틀랜드인들의 의분(義憤)을 상징할 수도 있다.
--------------------------------------
프랑스 공주 이사벨라(필리프 4세의 3녀)가 월레스와 사랑하는 사이라서 몰래 그의 아기를 낳아 잉글랜드 왕으로 키웠다는 것도 사실과 전혀 맞지 않는데, 일단 윌리엄 월레스가 처형될 당시 이사벨라의 나이는 고작 10살이었으며 월레스가 죽은 지 4년 후에야 잉글랜드로 시집 갔다.
다만 역사 속 이사벨라는 반란귀족 로저 모티머를 정부로 두고, 그와 손을 잡고 에드워드 2세를 페위시킨 후 죽였다. 월레스 역시 반란 귀족이라 할 수 있으니, 이사벨라가 월레스를 사랑했다는 설정은 역사에서의 이사벨라와 로저 모티머의 관계에서 따온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