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희, 대환희, 결의, 젊어지는 모습, 제존의 칭찬, 희열, 감로.기쁨의 눈물, 감사, 상락아정, 유희, 유쾌, 오락 쾌락, 자체현조, 경지명합, 즉신성불, 육근청정(800 ~ 1200배 안.이.비.설.신.의의 육근 청정), 순수, 정직, 영산일회 엄연미산, 감사, 선업도 미래까지도 비추어 보심이 흐림이 없는 법화경 제목실천의 현증, 극무상, 무상보취 불구자득, 지용보살, 무량무변의 공덕력 현증으로 세계광선유포 실현※※
"대저 법화경(法華經)이라고 하는 것은 일체중생(一切衆生) 개성불도(皆成佛道)의 요법(要法)이니라. 그러므로 대각세존(大覺世尊)은 설시(說時) 미지고(未至故)라고 설(說)하시어 설(說)해야 할 시절(時節)을 기다리시었다. 예(例)컨대 두견새가 봄을 그냥 보내고 닭이 새벽을 기다렸다가 우는 것과 같으니라. 이는 즉(卽) 시(時)를 기다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열반경(涅槃經)에 가로되, 이지시고(以知時故) 명대법사(名大法師)라고 설(說)하셨느니라, 지금 말법(末法)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칠자(七字)를 홍통(弘通)하여 이생득익(利生得益)이 있는 시(時)이니라. 그러므로 이 제목(題目)에는 여사(餘事)를 섞으면 벽사(僻事)가 된다. 이 묘법(妙法)의 대만다라(大曼茶羅)를 몸에 가지고 마음에 염(念)하며 입으로 봉창(奉唱)해야 할 때이니라." 어강문서(御講聞書) 59세 미노부
"지금 말법(末法)에 들어가면 여경(餘經)도 법화경(法華經)도 소용(所用)없으며, 오직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이렇게 말하는 것도 사사(私私)로운 재량(裁量)이 아니라, 석가(釋迦) 다보(多寶) 시방(十方)의 제불(諸佛) 지용천계(地涌千界)의 재량(裁量)이로다. 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에 여사(餘事)를 섞으면 대단한 벽사(僻事)이니라. 해가 뜨고나면 등(燈)불이 소용(所用)없고, 비가 내리면 이슬이 무슨 소용(所用)이 있겠느뇨, 영아(嬰兒)에게 젖 이외(以外)의 것을 먹일 수가 있겠느뇨, 양약(良藥)에 또 약(藥)을 더하는 일은 없느니라."
우에노전답서(上野殿答書) 57세 미노부
"이 경(經)의 신심(信心)이라 함은 조금도 사견(私見) 없이 경문(經文)과 여(如)히, 사람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법화일부(法華一部)에 배반(背反)하는 일이 없으면 부처가 되는 것이니라. 부처가 된다고 함은 별(別)다른 일은 아니로다.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타사(他事)없이 불러 나아간다면 천연(天然)히 삼십이상팔십종호(三十二相八十種好)를 갖추게 되느니라. 여아등무이(如我等無異)라 해서 석존(釋尊)과 같은 부처로 손쉽게 되느니라."
니이케어서(新池御書) 1443쪽 59세 미노부
"이렇게도 존귀(尊貴)한 교주석존(敎主釋尊)을 일시(一時) 이시(二時)도 아니고 하루 이틀도 아니며, 일겁(一劫)동안 합장(合掌)을 하고 두 눈을 부처의 존안(尊顔)에다 대고 머리를 숙이고 타사(他事)를 버리고 머리에 붙은 불을 끄려고 하듯이 목이 마를 때 물을 생각하고, 배고플 때 음식을 생각하듯, 간단(間斷)없이 공양(供養)하여 받드는 공덕(功德)보다도 희론(戱論)으로 한 마디 계모(繼母)가 의붓아들을 칭찬하듯 마음에는 없을지라도 말대(末代)의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칭찬하고 공양(供養)하는 공덕(功德)은 저 삼업상응(三業相應)한 신심(信心)으로 일겁(一劫) 동안 생신(生身)의 부처를 공양(供養)하여 받드는 것 보다도 백천만억배(百千萬億倍) 더하다고 설(說)하셨느니라. 이것을 묘락대사(妙樂大師)는 복과십호(福過十號)라고 쓰셨느니라. 십호(十號)라고 함은 부처의 열가지 명호(名號)인데 십호(十號)를 공양(供養)함보다도 말대(末代)의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공양(供養)하는 공덕(功德)이 뛰어났다고 쓰셨느니라. 묘락대사(妙樂大師)가 법화경(法華經)이 일체경(一切經)보다 훌륭하다는 것을 이십(二十)을 모아 말씀하신 그 중(中)의 하나이니라. 이상(已上)·위의 두 법문(法門)은 불설(佛說)이기는 하지만 이해(理解)할 수 없는 일이로다. 어찌하여 부처를 공양(供養)하여 받드는 것보다 범부(凡夫)를 공양(供養)하는 것이 뛰어나리오. 그러나 이것을 망어(妄語)라고 말하려 하면 석가여래(釋迦如來)의 금언(金言)을 의심하고 다보불(多寶佛)의 증명(證明)을 경멸(輕蔑)하여 시방제불(十方諸佛)의 설상(舌相)을 파(破)하는 것이 되리라. 만약 그렇다면 현신(現身)으로 아비지옥(阿鼻地獄)에 떨어지리라. 암석(巖石)에 올라가서 사나운 말을 달리게 함과 같으니 마음이 평온하지 않으니라. 또한 믿는다면 묘각(妙覺)의 부처로도 될 것이니 어떻게 해야만 이번에 법화경(法華經)에 신심(信心)을 가질 것이뇨. 신(信)이 없이 이 경(經)을 행(行)하는 것은 손없이 보산(寶山)에 들어가고 발없이 천리(千里)길을 가려고 함과 같으니라. 다만 가까운 현증(現證)을 인용(引用)해서 먼 신(信)을 취(取)할지어다."
호렌초(法蓮抄) 1044~1045쪽 54세 미노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나무(南無)란 범어(梵語)이며 여기서는 귀명(歸命)이라 하느니라. 인법(人法)이 있으니 인(人)이란 석존(釋尊)을 받들어 귀명(歸命)하고 법(法)이란 법화경(法華經)을 받들어 귀명(歸命)함이라. 또 귀(歸)라 함은 적문불변진여(迹門不變眞如)의 이(理)에 귀의(歸依)함이며 명(命)이란 본문수연진여(本門隨緣眞如)의 지(智)에 의거(依據)함이라. 귀명(歸命)이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석(釋)에 가로되, 수연불변(隨緣不變)·일념적조(一念寂照)라고, 또 귀(歸)란 우리들의 색법(色法)이고 명(命)이란 우리들의 심법(心法)이며 색심불이(色心不二)임을 일극(一極)이라고 하느니라. 석(釋)에 가로되 일극(一極)에 귀(歸)하게 하는 고(故)로 불승(佛乘)이라 한다라고. 또 가로되,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나무(南無)란 범어(梵語)이고·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는 한어(漢語)이며, 범한(梵漢) 공시(共時)에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하느니라. 또 가로되 범어(梵語)로는 살달마(薩達磨)·분다리가(芬陀梨伽)·소다람(蘇多覽)이라 하며, 여기서는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라 하느니라, 살(薩)은 묘(妙)이고 달마(達磨)는 호(法)이며 분다리가(芬陀梨伽)는 렌게(蓮華)이고 소다람(蘇多覽)은 쿄(經)이니라. 구자(九字)는 구존(九尊)의 불체(佛體)이며, 구계즉불계(九界卽佛界)의 표시(表示)이니라. 묘(妙)란 법성(法性)이고 호(法)란 무명(無明)이며 무명(無明) 법성(法性)이 일체(一體)임을 묘호(妙法)라 하느니라. 렌게(蓮華)란 인과(因果)의 이법(二法)이고, 이것 또한 인과일체(因果一體)이니라. 쿄(經)란 일체중생(一切衆生)의 언어(言語) 음성(音聲)을 쿄(經)라고 하느니라. 석(釋)에 가로되, 성불사(聲佛事)를 함을 이름하여 쿄(經)라 한다고, 혹(或)은 삼세상항(三世常恒)임을 쿄(經)라고 하느니라. 법계(法界)는 묘호(妙法)이고 법계(法界)는 렌게(蓮華)이며 법계(法界)는 쿄(經)니라. 렌게(蓮華)란 팔엽구존(八葉九尊)의 불체(佛體)이니라, 차근차근히 이를 생각할지어다, 이상(已上)."
어의구전(御義口傳) 57세 미노부
"물어 가로되, 수량품(壽量品) 문저(文底)의 대사(大事)라고 하는 비법(秘法)은 어떠한가. 답(答)하여 가로되, 유밀(唯密)의 정법(正法)이니 비장(秘藏)하고 비장(秘藏)할지어다. 일대응불(一代應佛)의 경지(境地)에 머무르는 쪽은 이상(理上)의 법상(法相)이므로 일부(一部) 공(共)히 이(理)의 일념삼천(一念三千)이며, 적상(迹上)의 본문수량(本門壽量)이라고 득의(得意)시키는 것을 탈익(脫益)의 문상(文上)이라고 하느니라. 문저(文底)란 구원실성(久遠實成)의 명자(名字)의 묘법(妙法)을 여행(餘行)에 걸치지 않고, 직달(直達)의 정관(正觀) 사행(事行)의 일념삼천(一念三千)의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이것이니라. 권실(權實)은 이(理) 금일본적리(今日本迹理)이며 본적(本迹)은 사(事) 구원본적사(久遠本迹事)이니라, 또한 권실(權實)은 약지약교(約智約敎) 일대응불본적(一代應佛本迹) 본적(本迹)은 약신약위(約身約位) 명자신(名字身) 구원본적(久遠本迹) 또 가로되, 수탈재현(雖脫在現) 구등본종(具騰本種)이라고 했느니라. 석존(釋尊) 구원명자즉(久遠名字卽)의 위(位)의 자신(自身)의 수행(修行)을 말법(末法) 금시(今時) 니치렌(日蓮)의 명자즉(名字卽)의 몸에 옮겼노라. 이(理)는 조작(造作)이 아니니라, 고(故)로 천진(天眞)이라 하고, 증지원명(證智圓明)인 고(故)로 독랑(獨朗)이라 하는 행의(行儀) 본문입행(本門立行)의 혈맥(血脈) 이것을 기술(記述)하니, 비장(秘藏)하고 비장(秘藏)할지어다.
또 일문자(日文字)의 구전(口傳) 산탕(産湯)의 구결(口決) 이개(二箇)는 양대사(兩大師)의 현지(玄旨)에 상당(相當)함, 본존(本尊) 칠개(七箇)의 구전(口傳)은 칠면(七面)의 결(決)에 이것을 표시(表示)하고, 교화홍경(敎化弘經)의 칠개(七箇)의 전(傳)은 홍통자(弘通者)의 대요(大要)이니라. 또 이 혈맥(血脈) 및 본존(本尊)의 대사(大事)는 니치렌(日蓮) 적적(嫡嫡) 좌주전법(座主傳法)의 서(書) 탑중상승(塔中相承)의 품승유수일인(稟承唯授一人)의 혈맥(血脈)이니라, 단단히 명심하여 비장(秘藏)하고 비장(秘藏)할지어다 전(傳)할지어다, 법화본문종(法華本門宗) 혈맥상승(血脈相承)을 끝냄." 본인묘초(本因妙抄) 877쪽 53세 미노부
"대저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의 혈맥(血脈)이라 함은 소위(所謂)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 이것이니라. 그 까닭은 석가(釋迦) 다보(多寶)의 이불(二佛)이 보탑(寶塔) 안에서 상행보살(上行菩薩)에게 양여(讓與)하신 이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는 과거원원겁(過去遠遠劫)으로부터 이래(已來) 촌시(寸時)도 떨어지지 않은 혈맥(血脈)이니라. 묘(妙)는 사(死)요 법(法)은 생(生)이라, 이 생사(生死)의 이법(二法)이 십계(十界)의 당체(當體)이며, 또 이를 당체연화(當體蓮華)라고도 하느니라. 천태(天台) 가로되 「마땅히 알지어다, 의정(依正)의 인과(因果)는 모두 이는 연화(蓮華)의 법(法)이니라」고 운운(云云). 이 석(釋)에 의정(依正)이라고 말함은 생사(生死)이며 생사(生死)가 있으면 인과(因果) 또한 연화(蓮華)의 법(法)이라고 함은 분명하니라. 전교대사(傳敎大師) 가로되 「생사(生死)의 이법(二法)은 일심(一心)의 묘용(妙用)이요, 유무(有無)의 이도(二道)는 본각(本覺)의 진덕(眞德)」이라는 문(文). 천지(天地)·음양(陰陽)·일월(日月)·오성(五星)·지옥(地獄)·내지(乃至) 불과(佛果) 생사(生死)의 이법(二法)이 아님이 없느니라. 이와 같이 생사(生死)도 오직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생사(生死)로다. 천태(天台)의 지관(止觀)에 가로되 「기(起)는 법성(法性)의 기(起)요·멸(滅)은 법성(法性)의 멸(滅)」이라 운운(云云). 석가(釋迦) 다보(多寶)의 이불(二佛)도 생사(生死)의 이법(二法)이니라. 그러하므로 구원실성(久遠實成)의 석존(釋尊)과 개성불도(皆成佛道)의 법화경(法華經)과 우리들 중생(衆生)의 셋은 전(全)혀 차별(差別)이 없다고 깨달아서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바를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의 혈맥(血脈)이라고 하느니라. 이 일은 다만 니치렌(日蓮)의 제자(弟子) 단나(檀那) 등(等)의 간요(肝要)이며, 법화경(法華經)을 가진다고 함은 이것이로다." 생사일대사혈맥초(生死一大事血脈抄) 1336~1337쪽 51세 사도
"제이십일(第二十一) 자아게지사(自我偈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자(自)란 구계(九界)이며 아(我)란 불신(佛身)이고, 게(偈)란 도리법리(道理法理)이며 본유(本有)라고 도리(道理)를 밝힌 게송(偈頌)이니 깊이 이것을 사색(思索)할지니라. 도리(道理)의 실체(實體)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운운(云云).
제이십이(第二十二) 자아게시종지사(自我偈始終之事)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자(自)란 시(始)이고 속성취불신(速成就佛身)의 신(身)은 종(終)이며, 시종(始終) 자신(自身)이고 중간(中間)의 문자(文字)는 수용(受用)이니라. 따라서 자아게(自我偈)는 자수용신(自受用身)이니 법계(法界)를 자신(自身)이라고 열고 법계자수용신(法界自受用身)이므로 자아게(自我偈)가 아니라 함은 없다. 원하는 대로 받아 쓰는 몸 자수용신(自受用身)이란 일념삼천(一念三千)이니라. 전교(傳敎) 가로되 「일념삼천즉(一念三千卽) 자수용신(自受用身) 자수용신(自受用身)이란 존형(尊形)을 초출(超出)한 부처라고 출존형불(出尊形佛)이란 무작(無作)의 삼신(三身)이라고 하는 것이니라」 운운(云云).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가 이것이니라 운운(云云)."
어의구전(御義口傳) 57세 미노부
"부처가 법화경(法華經)을 설(說)하신지 연수(年數)가 이천이백여년(二千二百餘年)이니라. 인간(人間)은 수명(壽命)이 짧은 고(故)로 부처를 친견(親見)한 사람도 없어졌느니라. 천상(天上)은 일수(日數)도 길고 수명(壽命)도 길어서 온전히 부처를 예배(禮拜)하고 법화경(法華經)을 청문(聽聞)한 천인(天人)이 한(限)없이 많으시니라. 인간(人間)의 오십년(五十年)은 사왕천(四王天)의 일일일야(一日一夜)이니라. 이 일일일야(一日一夜)를 시초(始初)로 하여 삼십일(三十日)은 일월(一月) 십이월(十二月)을 일년(一年)으로 해서 오백세(五百歲)라. 그러므로 인간(人間)의 이천이백여년(二千二百餘年)은 사왕천(四王天)의 사십사일(四十四日)이니라. 그러니 일월(日月)과 더불어 비사문천왕(毘沙門天王)은 부처가 돌아가신 후 사십사일(四十四日)이니 아직 두달도 안됐으며, 제석(帝釋) 범천(梵天) 등(等)은 부처가 돌아가신지가 일월일시(一月一時)도 되지 않았다. 이 잠깐 사이에·어찌 부처님 앞에서 한 서언(誓言)과 아울러 자신성불(自身成佛)의 경(經)의 은혜(恩惠)를 잊어버리고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버리시리요 하고 생각하니 마음 든든한 일이로다. 그러므로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가 기원(祈願)하는 기도(祈禱)는 울림이 소리에 응(應)하는 것과 같고·그림자가 체(體)를 따르는 것과 같으며 맑은 물에 달이 비치는 것과 같고 방제(方諸)가 물을 끄는 것과 같으며 자석(磁石)이 철(鐵)을 끌어당기는 것과 같고 호박(琥珀)이 먼지를 취(取)하는 것 같으며, 밝은 거울이 물색(物色)을 비추는 것과 같으니라. 세간(世間)의 법(法)에는 자신(自身)이 생각하지 않는 일일지라도 부모(父母) 주군(主君) 사장(師匠) 처자(妻子) 어리석지 않은 친우(親友) 등(等)이 말하는 일은 수치(羞恥)를 아는 자(者)는 뜻에는 맞지 않더라도 명리(名利)마저도 버리고 목숨을 버리는 일도 있느니라. 그러니 어찌 하물며 자신(自身)의 마음에서 우러난 일은 부모(父母) 주군(主君) 사장(師匠) 등(等)이 제지(制止)를 가(加)할지라도 행(行)하는 경우가 있느니라." 기도초(祈禱抄) 51세 사도
"불의(佛意)란 묘법(妙法)의 오자(五字)이며 이것은 따로 없느니라. 불(佛)의 의(意)란 법화경(法華經)이며 이것을 수량품(壽量品)에서는 시호양약(是好良藥)이라고 하여 삼세(三世)의 제불(諸佛)이 좋아하는 양약(良藥)이라고 설(說)해졌으며, 삼라삼천(森羅三千)의 제법(諸法)은 의(意)의 일자(一字) 이상은 없느니라, 이 부처의 의(意)를 믿음을 신심(信心)이라고 한다. 따라서 심(心)은 유분별(有分別)이며 다같이 묘법(妙法)의 전체(全體)이니라 운운(云云)." 어의구전(御義口傳) 57세 미노부
"법화경(法華經)과 동공(同共)하여 믿는 자(者)는 묘경(妙經)의 체(體)요, 부동공(不同共)의 염불자(念佛者) 등(等)은 이미 불성(佛性) 법신여래(法身如來)에 배반(背反)하는 고(故)로 묘경(妙經)의 체(體)가 아니로다. 결국(結局) 묘법연화(妙法蓮華)의 당체(當體)라 함은 법화경(法華經)을 믿는 니치렌(日蓮)의 제자(弟子) 단나(檀那) 등의 부모소생(父母所生)의 육신(肉身) 바로 이것이니라. 정직(正直)히 방편(方便)을 버리고 오직 법화경(法華經)을 믿고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는 사람은 번뇌(煩惱)·업(業)·고(苦)의 삼도(三道)가 법신(法身)·반야(般若)·해탈(解脫)의 삼덕(三德)으로 전(轉)하여 삼관(三觀)·삼제(三諦)·즉(卽) 일심(一心)에 나타나서 그 사람이 소주(所住)하는 곳은 상적광토(常寂光土)이니라, 능거(能居)·소거(所居)·신토(身土)·색심(色心)·구체구용(俱體俱用)·무작삼신(無作三身)의 본문수량(本門壽量)의 당체연화(當體蓮華)의 부처란 니치렌(日蓮)의 제자(弟子) 단나(檀那) 등(等)의 중(中)의 일이니라. 이것이 즉(卽) 법화(法華)의 당체(當體)·자재신력(自在神力)이 나타내는 바의 공능(功能)이니, 결코 이를 의심(疑心)하지 말지어다. 이를 의심(疑心)하지 말지니라." 당체의초(當體義抄) 52세 사도
"법화경(法華經)의 제목(題目)은 과거(過去)에 십만억(十萬億)의 생신(生身)의 부처를 만나 뵈옵고 공덕(功德)을 성취(成就)한 사람이 처음으로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의 이름을 듣고 비로소 신(信)을 하느니라. 제불(諸佛)의 명호(名號)는 외도(外道)·제천(諸天)·이승(二乘)·보살(菩薩)의 명호(名號)에 비하면 와력(瓦礫)과 여의보주(如意寶珠)와 같지만 법화경(法華經)의 제목(題目)에 상대(相對)하면 또 와력(瓦礫)과 여의보주(如意寶珠)와 같다. 당세(當世)의 학자(學者)는 법화경(法華經)의 제목(題目)과 제불(諸佛)의 명호(名號)를 공덕(功德)이 동일(同一)하다고 생각하며 또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와력(瓦礫)과 여의보주(如意寶珠)를 같다고 생각하고 하나라고 생각하는 것과 같으니라."
제목미타명호승렬사(題目彌陀名號勝劣事) 43세 카마쿠라
"세상이 말(末)이 되면 사람의 지혜(智慧)는 얕고 불교(佛敎)는 깊어지느니라. 예(例)컨대 경병(輕病)은 범약(凡藥)·중병(重病)에는 선약(仙藥)을 주고·약(弱)한 사람에게는 강(强)한 자기 편이 있어 돕는 것은 이것이니라. 물어 가로되, 천태(天台) 전교(傳敎)가 홍통(弘通)하시지 않은 정법(正法)이 있느뇨. 답(答)하여 가로되, 있느니라. 추구(追求)하여 가로되, 어떤 것이뇨. 답(答)하여 가로되, 셋이 있느니라. 말법(末法)을 위해 부처가 남겨 주셨으며, 가섭(迦葉) 아난(阿難) 등(等) 마명(馬鳴) 용수(龍樹) 등(等) 천태(天台) 전교(傳敎) 등(等)이 홍통(弘通)하시지 않았던 정법(正法)이니라. 추구(追求)하여 가로되, 그 형모(形貌)는 어떠하오. 답(答)하여 가로되, 일(一)에는 일본(日本)·내지(乃至) 일염부제(一閻浮提)·일동(一同)으로 본문(本門)의 교주석존(敎主釋尊)을 본존(本尊)으로 할지어다. 소위(所謂) 보탑(寶塔) 안의 석가(釋迦) 다보(多寶) 그 외(外)의 제불(諸佛) 및 상행(上行) 등(等)의 사보살(四菩薩)은 협사(脇士)가 되느니라. 이(二)에는 본문(本門)의 계단(戒壇), 삼(三)에는 일본(日本) 내지(乃至) 한토(漢土) 월지(月氏) 일염부제(一閻浮提)에 사람마다 유지무지(有智無智)를 가리지 않고 일동(一同)으로 타사(他事)를 버리고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를지니라. 이 일은 아직 홍통(弘通)하지 않았느니라. 일염부제(一閻浮提) 안에 불멸후(佛滅後), 이천이백이십오년간(二千二百二十五年間) 한 사람도 부르지 아니하였으며, 니치렌(日蓮) 한 사람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등(等)이라고 소리도 아끼지 아니하고, 부르느니라. 예(例)컨대 바람에 따라서 파도의 대소(大小)가 있고, 장작에 의하여 불의 고하(高下)가 있으며, 못에 따라서 연화(蓮華)의 대소(大小)가 있고 비의 대소(大小)는 용(龍)에 의함이라, 뿌리가 깊으면 가지는 무성하고, 수원(水源)이 멀면 흐름이 길다 함은 이것이니라. 주대(周代)의 칠백년(七百年)은 문왕(文王)의 예효(禮孝)에 의하며, 진세(秦世)가 곧 망(亡)한 것은 시황(始皇)의 좌도(左道)에 의했음이라. 니치렌(日蓮)의 자비(慈悲)가 광대(曠大)하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만년외(萬年外)·미래(未來)까지도 유포(流布)하리라. 일본국(日本國)의 일체중생(一切衆生)의 맹목(盲目)을 여는 공덕(功德)이 있으며, 무간지옥(無間地獄)의 길을 막았느니라. 이 공덕(功德)은 전교(傳敎) 천태(天台)보다도 초과(超過)하고 용수(龍樹) 가섭(迦葉)보다도 뛰어났느니라. 극락백년(極樂百年)의 수행(修行)은 예토(穢土)의 일일(一日)의 공덕(功德)에 미치지 못하고, 정상이천년(正像二千年)의 홍통(弘通)은 말법(末法)의 일시(一時)만 못하니라. 이는 오로지 니치렌(日蓮)의 지혜(智慧)가 뛰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때가 그렇게 시킬 뿐이로다. 봄은 꽃이 피고 가을은 과실(菓實)을 맺고,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추운데, 때가 그렇게 만드는 것이 아니겠느뇨."
보은초(報恩抄) 55세 미노부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란 일체중생(一切衆生)의 불성(佛性)이며 불성(佛性)이란 법성(法性)이고 법성(法性)이란 보리(菩提)이니라. 소위(所謂) 석가(釋迦) 다보(多寶) 시방(十方)의 제불(諸佛) 상행(上行) 무변행(無邊行) 등(等) 보현(普賢) 문수(文殊) 사리불(舍利弗) 목련(目連) 등(等), 대범천왕(大梵天王) 석제환인(釋提桓因) 일월(日月) 명성(明星) 북두(北斗) 칠성(七星) 이십팔수(二十八宿) 무량(無量)의 제성(諸星) 천중(天衆) 지류(地類) 용신(龍神) 팔부(八部) 인천(人天) 대회(大會) 염마법왕(閻魔法王) 상(上)은 비상(非想)의 구름 위로부터 하(下)는 나락(那落)의 불길 바닥까지 모든 일체중생(一切衆生)이 갖추고 있는 바의 불성(佛性)을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라고 이름하느니라. 그러므로 한 번 이 수제(首題)를 봉창(奉唱)하면 일체중생(一切衆生)의 불성(佛性)이 모두 불리어서 여기에 모일 때 자신(自身)의 법성(法性)의 법보응(法報應)의 삼신(三身)이 함께 이끌려서 현출(顯出)하는 것을 성불(成佛)이라고 하느니라. 예(例)컨대 새장 속에 있는 새가 울 때, 하늘을 나는 많은 새가 동시(同時)에 모이는데 이를 보고 새장 속의 새도 나가려고 함과 같으니라."
성우문답초(聖愚問答抄) 44세 가마쿠라
"악중(惡中)의 대악(大惡)은 나의 몸에 그 고(苦)를 받을 뿐더러 자(子)와 손(孫)과 말(末)의 칠대(七代)까지도 미치는 것이외다. 선(善)의 중(中)의 대선(大善)도 또한 이와 같아서, 목련존자(目連尊者)가 법화경(法華經)을 신봉(信奉)하신 대선(大善)은, 자신(自身)이 부처가 될뿐 아니라 부모(父母)도 부처가 되시었다. 상칠대(上七代)·하칠대(下七代)·상무량생(上無量生) 하무량생(下無量生)의 부모(父母)들도 의외(意外)로 부처가 되시었다, 내지(乃至) 자식(子息)·부부(夫婦)·종자(從者)·단나(檀那)·무량(無量)의 중생(衆生)이 삼악도(三惡道)를 벗어날 뿐 아니라 모두 초주(初住)·묘각(妙覺)의 부처가 되시었다. 그러므로 법화경(法華經)의 제삼(第三)에 가로되 「바라건대 이 공덕(功德)으로써 널리 일체(一切)에게 미치게 하여 우리들과 중생(衆生)과 모두 같이 불도(佛道)를 성취(成就)하겠노라」 운운(云云)."
우란분어서(盂蘭盆御書) 56세 미노부
"그런데 법화경(法華經)이라고 하는 경(經)은 신심(身心)의 제병(諸病)의 양약(良藥)이로다. 그러므로 경(經)에 가로되 「이 경(經)은 즉 바로 염부제(閻浮提)의 사람의 병(病)의 양약(良藥)이니라, 만약 사람이 병(病)이 있는데 이 경(經)을 들을 수 있으면 병즉소멸(病卽消滅)하여 불로불사(不老不死)하리라」 등(等) 운운(云云). 또 가로되 「현세(現世)는 안온(安穩)하며 후생(後生)에는 선처(善處)되리라」등(等) 운운(云云). 또 가로되 「제여(諸餘)의 원적(怨敵)은 모두 다 최멸(摧滅)하리라」 등(等) 운운(云云)." 오타사에몬노조답서(太田左衛門尉答書) 57세 미노부
"소승경(小乘經)이라고 하는 경(經)은 세간(世間)의 소선(小船)과 같아, 불과 사람을 이인(二人)·삼인(三人) 등은 태울 수 있지만, 백천인(百千人)은 태울 수가 없다. 설령 이인(二人)·삼인(三人) 등은 태운다 하여도 차안(此岸)에 머물 뿐이며 피안(彼岸)에는 가기 어렵다. 또한 작은 것은 넣지만 큰 것은 넣기 어렵다. 대승(大乘)이라고 함은 대선(大船)인데, 사람도 십(十)·이십인(二十人)도 타는데다가·큰 물건도 싣고 가마쿠라(鎌倉)로부터 쓰쿠시(筑紫) 미치(陸奧)의 지방(地方)에까지도 가느니라.
실경(實經)이라고 함은 또한 그 대선(大船)인 대승경(大乘經)과는 전혀 비교도 되지 않느니라. 대량(大量)의 진보(珍寶)도 싣고, 백천인(百千人)이 타고·고려(高麗) 같은 나라에 까지도 건너가니 일승(一乘) 법화경(法華經)이라고 하는 경(經)도 또한 이와 같도다." 오토님어소식(乙님御消息) 54세 미노부
"법사품(法師品)에 가로되 「약왕(藥王)이여, 많은 사람이 있어서 재가출가(在家出家)가 보살도(菩薩道)를 행(行)함에 만약 이 법화경(法華經)을 견문(見聞)하고 독송(讀誦)하며 서지(書持)하고 공양(供養)함을 득(得)할 수 없다면 마땅히 알지어다, 이 사람은 아직 잘 보살도(菩薩道)를 행(行)하지 않음이라. 만약 이 경전(經典)을 들음을 득(得)할 수 있으면 바로 잘 보살도(菩薩道)를 행(行)함이니라」고 운운(云云). 관심(觀心)만으로써 성불(成佛)한다면 어찌하여 견문독송(見聞讀誦)이라고 말하겠느뇨. 이 경(經)은 오로지 문(聞)으로써 본(本)으로 삼는다. 대체 이 경(經)은 악인(惡人) 여인(女人) 이승(二乘) 천제(闡提)를 가리지 않는 고(故)로 개성불도(皆成佛道)라고도 하며 또한 평등대혜(平等大慧)라고도 한다. 선악불이(善惡不二) 사정일여(邪正一如)라고 들음으로써 그대로 내증성불(內證成佛)하는 고(故)로 즉신성불(卽身成佛)이라 하며 일생(一生)에 증득(證得)하는 고(故)로 일생묘각(一生妙覺)이라고 함이라. 의(義)를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부르면 오직 부처와 부처가 기뻐하시니 아즉환희제불역연운운(我卽歡喜諸佛亦然云云). 백천(百千)을 합(合)친 약(藥)도 입으로 마시지 않는다면 병(病)은 낫지 않으며 곳간에 보배를 가지고도 열 줄을 몰라서 굶주리고, 품에 약(藥)을 가지고도 복용(服用)할 줄을 몰라서 죽는 것과 같도다. 여의보주(如意寶珠)라는 옥(玉)은 오백제자품(五百弟子品)의 설(說)인데 이 경(經)의 덕(德)도 또한 이와 같다. 관심(觀心)과 아울러서 읽으면 말할 나위도 없고 관념(觀念)을 하지 않더라도 처음에 말했듯이 소위제법여시상여(所謂諸法如是相如) 운운(云云)이라 읽을 때는 여(如)는 공(空)의 의(義)이므로 나의 몸의 선업(先業)에 받은 바의 상성체역(相性體力)·그 구족(具足)하는 바의 팔십팔사(八十八使)의 견혹(見惑)·팔십일품(八十一品)의 사혹(思惑)·그 공(空)은 보신여래(報身如來)이니라. 소위제법여시상(所謂諸法如是相) 운운(云云)이라고 읽으면 이는 가(假)의 의(義)이므로 나의 이 몸이 선업(先業)에 의(依)해 받은 상성체역(相性體力) 운운(云云), 그 구족(具足)한 진사(塵沙)의 혹(惑)은 모두 즉신(卽身) 응신여래(應身如來)이니라. 소위제법여시(所謂諸法如是)라고 읽을 때는 이는 중도(中道)의 의(義)에 따라 업(業)에 의(依)해 받는 바의 상성(相性) 등(等) 운운(云云). 그에 따른 무명(無明)은 모두 물러가고 즉신(卽身) 법신(法身)의 여래(如來)로 마음을 연다. 이 십여시(十如是) 삼전(三轉)으로 읽는 일 삼신즉일신(三身卽一身) 일신즉삼신(一身卽三身)의 의(義)이고 三으로 나뉘어지지만 一이며 一로 정(定)하여졌지만 三이니라."
일념삼천법문 (一念三千法門) 37세 카마쿠라
"종종(種種)의 물품(物品)을 보내신 후지(厚志) 받았소이다. 유아(幼兒)를 위해서 수호어본존(守護御本尊)을 수여(授與)해드리겠소. 이 수호(守護) 어본존(御本尊)은 법화경(法華經) 중(中)의 간심(肝心)이며 일체경(一切經)의 안목(眼目)입니다. 예(例)를 들면 천(天)에는 일월(日月) 지(地)에는 대왕(大王) 사람에게는 마음 보물(寶物) 중(中)에는 여의보주(如意寶珠)의 옥(玉) 집에는 기둥과 같은 것이외다.
이 만다라(曼陀羅)를 몸에 지니면 왕(王)을 무사(武士)가 수호(守護)하듯이 자식(子息)을 부모(父母)가 사랑하듯이 물고기가 물을 의지하듯이 초목(草木)이 비를 원(願)하듯이 새가 나무를 의지하듯이 일체(一切)의 불신(佛神) 등(等)이 모여 지키고 주야(晝夜)로 그림자와 같이 지켜 주시는 법(法)입니다. 깊이 깊이 믿을지니라, 죄송하나이다, 공공근언(恐恐謹言)." 묘신니부인답서(妙心尼夫人答書) 54세 미노부
"부처가 귀자모신(鬼子母神) 십나찰녀(十羅刹女)가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수호(守護)하겠다고 맹세함을 칭찬하여 그대들이 법화(法華)의 수제(首題)를 갖는 사람을 수호(守護)하겠다고 맹세하는 그 공덕(功德)은 삼세요달(三世了達)의 부처의 지혜(智慧)도 역시 미치기 어렵다고 설(說)하셨느니라. 불지(佛智)가 미치지 않는 일이 무엇이 있으리요마는 법화(法華)의 제명(題名)을 수지(受持)하는 공덕(功德)만은 이를 모른다고 말했느니라. 법화일부(法華一部)의 공덕(功德)은 오직 묘법(妙法) 등(等)의 오자(五字)속에 들어 있느니라. 일부팔권(一部八卷)·문문(文文)마다 이십팔품(二十八品)이 생기(生起)는 다를지라도 수제(首題)의 오자(五字)는 동등(同等)하니라."
성우문답초(聖愚問答抄) 44세 가마쿠라
"조금도 두려워 하는 마음을 갖지 마시라. 과거원원겁(過去遠遠劫)부터 법화경(法華經)을 믿었으나 부처가 되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었소. 조수(潮水)의 썰물과 밀물, 월출(月出)과 월입(月入)·여름과 가을과 겨울과 봄과의 경계(境界)에는 반드시 상위(相違)하는 일이 있으니, 범부(凡夫)가 부처로 되는데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반드시 삼장사마(三障四魔)라고 하는 장해(障害)가 나타나는데, 현자(賢者)는 기뻐하고 우자(愚者)는 물러남이 이 것이니라. 중략..부처가 된다는 것은 이 수미산(須彌山)에 바늘을 세우고, 저쪽 수미산(須彌山)으로부터 실을 보내서 그 실이 곧 건너와서 바늘 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도 어려우며, 하물며 대역풍(大逆風)이 불어 닥친다고 하면 더욱더 어려운 일이외다. 경(經)에 가로되 「억억만겁(億億萬劫)으로부터 불가의(不可議)에 이르는 때에 즉 이 법화경(法華經)을 들을 수 있고, 억억만겁(億億萬劫)으로부터 불가의(不可議)에 이르러 제불세존(諸佛釋尊)은 어쩌다 이 경(經)을 설(說)하심이라·그러므로 행자(行者)는 불멸후(佛滅後)에 있어서, 이와 같은 경(經)을 듣고 의혹(疑惑)을 일으키지 말지어다」 등(等) 운운(云云). 이 경문(經文)은 법화경(法華經) 이십팔품(二十八品) 중(中)에 특히 귀(貴)하니라 서품(序品)에서 법사품(法師品)에 이르기까지 등각 이하(等覺已下)의 인천(人天) 사중(四衆) 팔부(八部) 그 수(數)는 많으나 부처는 오직 석가여래(釋迦如來) 일불(一佛)이니 중(重)하면서 경(輕)한 면(面)도 있으니, 보탑품(寶塔品)에서 촉루품(囑累品)에 이르기까지의 십이품(十二品)은 특히 중(重)한 중(中)에서도 중(重)하도다. 그 까닭은 석가불(釋迦佛)의 어전(御前)에 다보(多寶)의 보탑(寶塔)이 용현(湧現)하여 달 앞에 해가 돋은것과 같고, 또한 시방(十方)의 제불(諸佛)은 수하(樹下)에 계시는데 시방세계(十方世界)의 초목(草木) 위에 불을 켠 것과 같다."
효에사칸전답서(兵衛志殿答書) 54세 미노부
"이금당(已今當)의 경문(經文)을 깊게 지키고·일경(一經)의 간심(肝心)인 제목(題目)을 나도 부르고 남에게도 권(勸)하니, 삼 밭 속의 쑥 먹줄친 나무가 자체(自體)는 곧지 않더라도, 자연(自然)히 곧아지는것과 같다. 경(經)과 여(如)히 부르므로 구부러진 마음이 없으니, 마땅히 알지니라, 부처의 마음이 우리들의 몸에 들어오시지 않으면 부르기 어려우니라, 또 타인(他人)이 넓히시는 불법(佛法)은 모두 스승에게서 배워 전(傳)한 것이라." 묘미쓰상인어소식(妙密上人御消息) 55세 미노부
"묘(妙)의 문자(文字)는 꽃이 열매가 되듯이 반월(半月)이 만월(滿月)이 되듯이 변(變)해서 부처가 되시는 문자(文字)이니라.
그러므로 경(經)에 가로되 「능(能)히 이 경(經)을 수지(受持)함은 즉 불신(佛身)을 수지(受持)함이라」고. 천태대사(天台大師)가 가로되 「일일문문(一一文文) 이는 진불(眞佛)이니라」 등(等) 운운(云云). 묘(妙)의 문자(文字)는 삼십이상(三十二相)·팔십종호(八十種好)·원비(圓備)하신 석가여래(釋迦如來)이심을 우리들의 눈이 무능(無能)하여서 문자(文字)라고 뵈옵는 것이외다. 비유하면 연꽃의 열매가 연못 속에서 생겨남과 같소이다. 그 연밥이 있다는 것을 나이가 많은 사람은 눈이 어두워서 보지 못하는 것이며, 밤에는 그림자가 있어도 어두워서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렇지만 이 묘(妙)의 글자는 부처님이십니다. 또한 이 묘(妙)의 문자(文字)는 달이고 해이며, 별이고 거울이며 옷이고 식(食)이며 꽃이고 대지(大地)이며 대해(大海)이니라. 일체(一切)의 공덕(功德)을 합(合)쳐서 묘(妙)의 문자(文字)가 되셨으며 또는 여의보주(如意寶珠)의 옥(玉)이니라. 이와 같이 아실지어다."
묘신니부인답서(妙心尼夫人答書) 59세 미노부
"대저 이 법화경(法華經)을 펴서 배견(拜見)하노라면 「여래(如來)는 즉 그를 위해 의복(衣服)으로써 이를 덮어 주시고 또한 타방(他方) 현재(現在)의 제불(諸佛)이 호념(護念)하는 바가 되리라」 등(等) 운운(云云). 경문(經文)의 뜻은 동서남북(東西南北) 팔방(八方) 및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의 외(外) 사백만억나유타(四百萬億那由佗)의 국토(國土)에 시방(十方)의 제불(諸佛)이 잇따라와서 충만(充滿)하시었다. 하늘에는 별과 같이 땅에는 도마(稻麻)와 같이 열(列)지어 계시며,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수호(守護)하시는 것을 비유하면 대왕(大王)의 태자(太子)를 모든 신하(臣下)가 수호(守護)하는것과 같다. 단(但) 사천왕(四天王)의 동류(同類)가 수호(守護)하여 주시는 것도 황송한 일인데, 일체(一切)의 사천왕(四天王) 일체(一切)의 성수(星宿) 일체(一切)의 일월(日月) 제석(帝釋) 범천(梵天) 등(等)이 수호(守護)하시니 만족(滿足)해야 할 일이니라. 게다가 일체(一切)의 이승(二乘) 일체(一切)의 보살(菩薩) 도솔내원(兜卒內院)의 미륵보살(彌勒菩薩) 가라타산(伽羅陀山)의 지장(地藏) 보타락산(補陀落山)의 관세음(觀世音) 청량산(淸凉山)의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菩薩) 등(等) 각각(各各) 권속(眷屬)을 구족(具足)하여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수호(守護)해 주심으로써 만족(滿足)해야 할 것인데 또한 황송하게도 석가(釋迦) 다보(多寶) 시방(十方)의 제불(諸佛)이 친(親)히 자진(自進)해서 내림(來臨)하시어 주야(晝夜) 십이시(十二時)동안 수호(守護)해 주심에 대한 황송함은 말로 다하지 못하노라."
우에노전모친답서(上野殿母親答書) 59세 미노부
"통틀어 나의 제자(弟子)들은 나와 같이 정리(正理)를 수행(修行)하시라, 지자(智者) 학장(學匠)의 몸이 되었어도 지옥(地獄)에 떨어지면 무슨 보람이 있을손가, 결국(結局) 시시염념(時時念念)에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할지어다."
십팔원만초(十八圓滿抄) 59세 미노부
"우리들은 부처임에 의심(疑心)이 없노라고 생각하면 무슨 한탄이 있겠느뇨, 황비(皇妃)가 된다 한들·무엇하리요·천(天)에 태어난다 할지라도·소용없느니라, 용녀(龍女)의 뒤를 잇고 마하파사파제비구니(摩訶波舍波提比丘尼)와 한줄에 나란히 서리라, 아아, 기쁘고 기쁘도다,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시라"
도키니부인답서(富木尼夫人答書) 55세 미노부
"법화경(法華經) 행자(行者)는 비천(卑賤)하지만 수호(守護)하는 천(天)은 강(强)하니라. 예(例)를 들자면, 수라(修羅)가 일월(日月)을 삼키면 머리가 칠분(七分)으로 깨어지고 개는 사자(師子)를 보고 짖으면 창자가 썩으니, 지금 내가 보건대 일본국(日本國)이 이와 같도다. 또한 이를 공양(供養)하는 사람들은 법화경(法華經) 공양(供養)의 공덕(功德)이 있으리라. 전교대사(傳敎大師)가 석(釋)하여 가로되 「칭찬(稱讚)하는 자(者)는 복(福)을 안명(安明) 같이 쌓고, 비방(誹謗)하는 자(者)는 죄(罪)를 무간(無間)으로 열리라」 등(等) 운운(云云). 패반(稗飯)을 벽지불(辟支佛)에게 공양(供養)한 사람은 보명여래(寶明如來)가 되었고 흙떡을 부처에게 공양(供養)했기 때문에 후(後)에 염부제(閻浮提)의 왕(王)이 되었느니라. 설령 공덕(功德)을 쌓았다 해도, 진실(眞實)하지 않은 것을 공양(供養)하면 대악(大惡)으로는 되지만 선(善)으로 되지 않으며, 설령 마음이 어리석고 조그마한 것이라도 진실(眞實)한 사람에게 공양(供養)하면 공덕(功德)이 크니라. 하물며 깊은 뜻이 있어서 진실(眞實)한 법(法)을 공양(供養)하는 사람들에 있어서랴." 중생신심어서(衆生身心御書) 50대 중후반 미노부
"우리들 중생(衆生)·무시광겁이래(無始曠劫已來)·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여의보주(如意寶珠)를 편시(片時)도 떨어지지 아니하였으나·무명(無明)이라는 술에 꾀임당하여, 의리(衣裏)에 꿰매 두었음을 알지 못하고서 소분(少分)을 얻고 족(足)하다고 생각했도다.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만 봉창(奉唱)한다면 속(速)히 부처가 될 수 있었을 중생(衆生)들이, 오계(五戒)·십선(十善) 등(等)의 약간의 계(戒)를 가지고 혹은 천(天)에 태어나서 대범천(大梵天)·제석(帝釋)의 몸이 되어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혹시(或時)는 사람으로 태어나서 여러 국왕(國王)·대신(大臣)·공경(公卿)·전상인(殿上人) 등(等)의 몸이 되어 이만한 즐거움이 없다고 생각하고, 적은 것을 얻고서 족(足)하다고 생각하여 기뻐했노라. 이를 부처는 꿈 속의 영화(榮華)요, 환상(幻像)의 낙(樂)이니라. 오직 법화경(法華經)을 수지(受持)해 받들어 속(速)히 부처가 될지어다라고 설(說)하셨느니라."
주사친어서(主師親御書) 34세 카마쿠라
"적광(寂光)의 도읍(都邑)이 아니고서는 어느 곳이나 모두 고(苦)이니라, 본각(本覺)의 거처(居處)를 떠나서 무슨 일인들 즐거움이 되리요. 원(願)컨대 「현세안온(現世安穩)·후생선처(後生善處)」의 묘법(妙法)을 수지(受持)하는 것만이 오로지 금생(今生)의 명문(名聞)·후세(後世)의 농인(弄引)이 되리라. 모름지기 마음을 하나로 하여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나도 부르고 타인(他人)에게도 권(勸)하는 일만이 금생(今生) 인계(人界)의 추억이 되느니라."
지묘법화문답초(持妙法華問答抄) 42세 카마쿠라
"지금의 글월에 자금이후(自今以後)는 평소의 사사(邪師)를 버리고 오로지 정사(正師)로서 의지(依持)하겠다는 말씀은 의아스럽게 생각 되나이다. 우리들의 본사(本師)인 석가여래(釋迦如來)가 법화경(法華經)을 설(說)하기 위해 출세(出世)하셨을 때는 타방(他方)의 부처·보살(菩薩)들이 내림(來臨) 영향(影響)하여 석존(釋尊)의 행화(行化)를 도우셨다. 그래서 석가(釋迦)·다보(多寶) 시방(十方)의 제불(諸佛) 등(等)이 사자(使者)로서 와서 화(化)를 일역(日域)에다 시현(示現)하셨으리라. 경(經)에 가로되 「아어여국견화인(我於餘國遣化人)·위기집청법중(爲其集聽法衆)·역견화수순불역(亦遣化隨順不逆)」이 경문(經文)에 비구(比丘)라고 함은 귀하(貴下)의 일이로다, 그 까닭은 문법신수(聞法信受)·수순불역(隨順不逆)·안전(眼前)의 일이니 어찌하여 이를 의심(疑心)할 수 있겠느뇨, 설령 또 재재제불토(在在諸佛土)·상여사구생(常與師俱生)의 사람일지라도 삼주(三周)의 성문(聲聞)과 같이 하종(下種) 후(後)에 퇴대취소(退大取小)하여 오도(五道)·육도(六道)에 침륜(沈輪)하고 계셨는데 성불(成佛)의 기(期)가 내지(來至)하여 순차(順次)로 득도(得度)시키기 때문이로다. 염불(念佛)·진언(眞言) 등(等)의 사법(邪法)·사사(邪師)를 버리고 니치렌(日蓮)의 제자(弟子)가 되신 것은 희유(稀有)한 일이니라.
어떠한 경우에도 나와 같이 제종(諸宗)의 방법(謗法)을 책(責)하고 그들로 하여금 사사귀정(捨邪歸正)케 하시어 순차(順次)로 삼불(三佛)이 자리를 나란히 하시는 상적광토(常寂光土)에 참예(參詣)하여 석가(釋迦) 다보(多寶)의 어보전(御寶前)에 있어서 우리들 무시(無始)로부터 이래(已來) 사제(師弟)의 계약(契約)이 있었음인가·없었음인가·또한 석존(釋尊)의 사자(使者)로서 와서 화(化)하신 것일까·그렇다고 말씀을 들음으로써 자기 마음에도 알게 되리라. 어떻게라도 노력(努力)하시고 노력(努力)하실지어다.
왠지 모르게 귀하(貴下)에게 지난 이월(二月)경부터 중요(重要)한 법문(法門)을 가르쳐 드렸으며, 결국(結局)은 묘월(卯月) 팔일(八日)·야반(夜半)·인(寅)의 시(時)에 묘법(妙法)의 본원계(本圓戒)를 가지고 수직(受職) 관정(灌頂)해 드린 것이니라. 이 수직(受職)을 받은 사람이 어찌하여 현재(現在)일지라도 묘각(妙覺)의 부처를 이루지 못하리요. 만약(萬若) 금생(今生)의 묘각(妙覺)이라면 후생(後生)은 어찌 등각(等覺) 등(等)의 인분(因分)이 되겠느뇨. 실(實)로 무시광겁(無始曠劫)의 계약(契約)·상여사구생(常與師俱生)의 이치(理致)라면 니치렌(日蓮)이 금번(今番) 성불(成佛)할 것인데 귀하(貴下)는 어찌 서로 떨어져 악취(惡趣)에 타재(墮在)하시겠느뇨. 여래(如來)의 기문(記文)은 불의(佛意)에 의해 볼 때 세출세(世出世)에 있어서 결코 망어(妄語)가 없지요, 그런데 법화경(法華經)에는 「나의 멸도후(滅度後)에 있어 응당(應當) 이 경(經)을 수지(受持)할지어다, 이사람은 불도(佛道)에 있어 결정(決定)하여 의심(疑心)이 있을 수 없으리라」 혹(或)은 「속위질득(速爲疾得)·무상불도(無上佛道)」 등(等) 운운(云云). 이 기문(記文)이 허무(虛無)하여서 우리들의 성불(成佛)이 금번(今番) 허언(虛言)이 된다면 제불(諸佛)의 혀도 잘리고 다보(多寶)의 탑(塔)도 깨져 떨어지고 이불병좌(二佛並座)는 무간지옥(無間地獄)의 열철(熱鐵)의 마루로 되고 방(方)·실(實)·적(寂)의 삼토(三土)는 지(地)·아(餓)·축(畜)의 삼도(三道)로 변(變)할 것이로다. 어찌하여 그러한 일이 있겠느뇨, 아, 믿음직스럽고 믿음직스럽도다. 이와 같이 생각을 계속하노라면 우리들은 유인(流人)이지만 신심(身心)이 함께 즐거우니라.
중요(重要)한 법문(法門)을 주야(晝夜)로 연구(硏究)하고 성불(成佛)의 이치(理致)를 시시(時時)·각각(刻刻)으로 맛보는데, 이와 같이 지나 간다면 세월(歲月)을 보내더라도 멀지 않으며 지나는 시각(時刻)도 잠깐이리라, 예(例)컨대 석가(釋迦)·다보(多寶)의 이불(二佛)·탑중(塔中)에 병좌(並座)하여 법화(法華)의 묘리(妙理)를 서로 수긍하실 때·오십소겁(五十小劫)·부처의 신력(神力)으로써 제대중(諸大衆)으로 하여금 반일(半日)과 같다고 생각케 한다고 한 것과 같으니라, 겁초(劫初)로부터 이래(以來) 부모(父母)·주군(主君) 등(等)의 감죄(勘罪)를 받고 원국(遠國)의 섬으로 유죄(流罪) 당(當)하는 사람으로서 우리들과 같이 기쁨이 몸에 넘치는 자(者)는 아마 없으리라. 그러하니 우리들이 거주(居住)하고 일승(一乘)을 수행(修行)하는 곳은 어느 곳일지라도 상적광(常寂光)의 도읍(都邑)으로 될 것이로다. 우리들의 제자(弟子) 단나(檀那)로 되는 사람은 한 걸음을 옮기지 않아도 천축(天竺)의 영산(靈山)을 보고 본유(本有)의 적광토(寂光土)로 주야(晝夜)로 왕복(往復)할 것이니 기쁨은 말할 수 없도다, 말할 수 없도다."
사이렌보답서(最蓮房答書) 51세 사도
"법화절복(法華折伏)·파권문리(破權門理)의 금언(金言)이므로 마침내 권교(權敎) 권문(權門)의 무리를 한 사람도 남김없이 절복(折伏)하여 법왕(法王)의 부하(部下)로 삼고, 천하만민(天下萬民)·제승일불승(諸乘一佛乘)으로 되어 묘법(妙法)만이 유독(唯獨) 번창(繁昌)할 때, 만민일동(萬民一同)으로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면 부는 바람이 가지를 흔들지 않고, 비는 흙덩이를 부수지 않으며, 대(代)는 희농(羲農)의 세상으로 되어 금생(今生)에는 불상(不祥)의 재난(災難)을 없애고 장생(長生)의 술(術)을 터득하여, 인법(人法) 공(共)히 불로불사(不老不死)의 이(理)가 나타날 때를 각자(各者)는 보시라. 현세안온(現世安穩)의 증문(證文)은 의심(疑心)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니라."
여설수행초(如說修行抄) 52세 사도
"슬프다, 우리들 비방정법(誹謗正法)의 나라에 태어나서 대고(大苦)를 만나는 일이여. 설령 방신(謗身)은 면(免)한다고 해도 방가방국(謗家謗國)의 죄과(罪過)는 어찌하랴. 방가(謗家)의 죄과(罪過)를 면(免)하려고 생각하면, 부모(父母)·형제(兄弟)들에게 이 일을 말씀하시라. 혹은 미움받게 되든가, 혹은 믿게 되시리라. 방국(謗國)의 죄과(罪過)를 면(免)하려고 생각하면, 국주(國主)를 간효(諫曉)하여 드리고 사죄(死罪)나 유죄(流罪)에 처(處)해져야 하리라. 아불애신명(我佛愛身命)·단석무상도(但惜無上道)라고 설(說)해지고 신경법중(身輕法重) 사신홍법(死身弘法)이라고 석(釋)해진 것은 이것이니라. 과거원원겁(過去遠遠劫)부터 지금까지 부처가 되지 못한 것은, 이러한 일을 두려워해서 말하여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미래(未來)도 역시 또 이와 같이 되리라."
아키모토어서(秋元御書) 59세 미노부
나는 일본(日本)의 기둥이 되겠노라, 나는 일본(日本)의 안목(眼目)이 되겠노라, 나는 일본(日本)의 대선(大船)이 되겠노라, 이렇게 맹서(盟誓)한 원(願)은 깨뜨리지 않겠노라.
개목초(開目抄) 51세 사도
우리의 석존(釋尊)은 법화경(法華經)을 설(說)해 나타내신 이래(已來) 십나찰녀(十羅刹女)라고 호칭(號稱)하였다. 십나찰(十羅刹)과 천조태신(天照太神)과 석존(釋尊)과 니치렌(日蓮)은 일체(一體)의 이명(異名)이며 본지수적(本地垂迹)의 이익(利益) 광대(廣大)하니라. 일신(日神)과 월신(月神)을 합(合)쳐서 문자(文字)를 훈독(訓讀)하면 십(十)이니라, 십나찰(十羅刹)이라고 함은 제신(諸神)을 일체(一體)로 묶어 합(合)친 심의(深義)이니라. 니치렌(日蓮)의 니치(日)는 즉일신(卽日神)·낮이며, 렌(蓮)은 즉월신(卽月神)·밤이니라, 달은 물을 연(緣)으로 하고 연(蓮)은 물에서 생(生)하기 때문이니라, 또 제쇼(是生)란 일(日)의 하(下)의 인(人)을 생(生)한다고 썼느니라.
니치렌(日蓮) 은 천상(天上)·천하(天下)의 일체중생(一切衆生)의 주군(主君)이고 부모(父母)이고 사장(師匠)이니라. 지금 구원하종(久遠下種)의 수량품(壽量品)에 가로되 「금차삼계개시아유(今此三界皆是我有) 주군(主君)의 의(義)이니라 기중중생실시오자(其中衆生悉是吾子) 부모(父母)의 의(義)이니라 이금차처다제환난(而今此處多諸患難) 국토초목(國土草木) 유아일인능위구호(唯我一人能爲救護) 사장(師匠)의 의(義)이니라」고 했느니라. 삼세상항(三世常恒)으로 니치렌(日蓮)은 금차삼계(今此三界)의 주(主)이니라. 니치렌(日蓮)은 대은이희유사(大恩以希有事)·연민교화이익(憐愍敎化利益)·아등무량억겁수능보자(我等無量億劫誰能報者)일 것이니라.
산탕상승사(産湯相承事) 53세 미노부
"부처가 된다고 함은 별다른 일은 아니로다. 남묘호렌게쿄라고 타사없이 불러 나아간다면 천연(天然)히 삼십이상팔십종호(三十二相八十種好)를 갖추게 되느니라. 여아등무이(如我等無二)라 해서 석존과 같은 부처로 손쉽게 되느니라."
니이케어서(新池御書) 59세 미노부
"지금 니치렌(日蓮)의 제자(弟子) 단나(檀那) 또한 이와 같다. 말법(末法)에 들어와서 법화경(法華經)을 수지(受持)하는 남녀(男女)의 모습 이외(以外)에 보탑(寶塔)은 없느니라. 만약 그렇다면 귀천상하(貴賤上下)를 가리지 않고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자(者)는 자신(自身)이 보탑(寶塔)이고 자신(自身)이 또한 다보여래(多寶如來)이니라.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 이외(以外)에 보탑(寶塔)은 없으며, 법화경(法華經)의 제목(題目)이 보탑(寶塔)이고 보탑(寶塔)이 또한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지금 아부쓰상인(阿佛上人) 의 일신(一身)은 지수화풍공(地水火風空)의 오대(五大)이며, 이 오대(五大)는 제목(題目)의 오자(五字)이니라. 그러므로 아부쓰보(阿佛房)가 바로 보탑(寶塔)이고 보탑(寶塔)이 바로 아부쓰보(阿佛房)이며 이것 이외(以外)의 재각(才覺)은 무익(無益)하니라. 문(聞)·신(信)·계(戒)·정(定)·진(進)·사(捨)·참(慚)의 칠보(七寶)로써 장식한 보탑(寶塔)이니라. 다보여래(多寶如來)의 보탑(寶塔)을 공양(供養)하신다고 생각하지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자신(自身)을 공양(供養)하시는 것이며 자신(自身)이 또한 삼신즉일(三身卽一)의 본각(本覺)의 여래(如來)이니라. 이렇게 믿으시고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 봉창(奉唱)하시라. 이곳이 바로 보탑(寶塔)의 주처(住處)이니라. 경(經)에 가로되 「법화경(法華經)을 설(說)하는 일이 있는 곳에는 나의 이 보탑(寶塔)이 그 앞에 용현(涌現)함」이란 이것이니라. 너무나 존귀(尊貴)하시므로 보탑(寶塔)을 써서 나타내어 드리느니라, 자식이 아니면 물려 주지 말것이며 신심(信心) 강성(强盛)한 자(者)가 아니면 보이지 말지어다. 출세(出世)의 본회(本懷)란 이것이니라."
아부쓰보어서(阿佛房御書) 51세 사도
"나의 마음이 본래(本來)의 부처라고 아는 것을 즉(卽) 대환희(大歡喜)라고 이름한다,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환희중(歡喜中)의 대환희(大歡喜)이니라."
어의구전(御義口傳) 57세 미노부
"지금 니치렌(日蓮)이 부르는 바의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말법(末法) 일만년(一萬年)의 중생(衆生)까지 성불(成佛)시키는 것이니 어찌 금자이만족(今者已滿足)이 아닐 손가." 어의구전(御義口傳) 57세 미노부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의 본의(本意)는 무상(無上)이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무상중(無上中)의 극무상(極無上)이니라. 이 묘법(妙法)을 가리켜 무상보취(無上寶聚)라고 설(說)하셨느니라, 보취(寶聚)란 삼세(三世)의 제불(諸佛)의 만행만선(萬行萬善)의 제바라밀(諸波羅蜜)의 보(寶)를 모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이 무상보취(無上寶聚)를 신로(辛勞)도 없고 행공(行功)도 없이 일언(一言)으로 수취(受取)하는 신심(信心)이며, 불구자득(不求自得)이란 이것이니라, 자(自)의 자(字)는 십계(十界)이며, 십계(十界) 각각(各各)이 득(得)하느니라, 제법실상(諸法實相) 이것이니라, 그러한 까닭으로 이 문(文)은 묘각(妙覺)의 석존(釋尊)은 우리들 중생(衆生)의 골육(骨肉)이니 깊이 깊이 이것을 생각할지어다 운운(云云)."
어의구전(御義口傳) 57세 미노부
"법화경(法華經)의 본문(本門)의 간심(肝心)인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는 삼세제불(三世諸佛)의 만행만선(萬行萬善)의 공덕(功德)을 모아서 오자(五字)로 하였으니, 이 오자(五字) 내(內)에 어찌 만계(萬戒)의 공덕(功德)을 포함하지 않았겠느뇨. 그러나 이 구족(具足)의 묘계(妙戒)는 한번 가진 후(後)·행자(行者)가 파(破)하려고 해도 파(破)해지지 않으니, 이를 금강보기계(金剛寶器戒)라고 말한다는 등으로 주장을 하여라. 삼세(三世)의 제불(諸佛)은 이 계(戒)를 갖고 법신(法身)·보신(報身)·응신(應身) 등(等) 어느 것이나 무시무종(無始無終)의 부처가 되셨느니라, 이것을 「제교(諸敎) 중(中)에 있어서 이를 숨기고 전(傳)하지 않음」이라고 천태대사(天台大師)는 쓰셨느니라, 지금 말법당세(末法當世)의 유지(有智)·무지(無智)·재가(在家)·출가(出家)·상하(上下)·만인(萬人)이 이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를 갖고 설(說)과 여(如)히 수행(修行)함에 어찌 불과(佛果)를 득(得)하지 못하겠느뇨."
교행증어서(敎行證御書) 54세 미노부
"정업(定業)조차 깊이 깊이 참회(懺悔)하면 반드시 소멸하니 황차 부정업(不定業)에 있어서랴."
가연정업서(可延定業書) 58세 미노부
"오직 남묘호렌게쿄라고만 봉창하면 멸하지 않는 죄가 있겠는가, 오지 않는 복이 있겠는가, 진실이고 심심(甚深)하니 이를 신수(信受)할지어다."
성우문답초(聖愚問答抄) 44세 가마쿠라
"그러므로 경문(經文)에는 「부처의 지혜(智慧)로써 다소(多少)를 주량(籌量)한다 해도 그 변(邊)을 알지 못함」이라고 설(說)하여져 부처의 지혜(智慧)조차 이 사람의 공덕(功德)을 아시지 못함이라. 부처의 지혜(智慧)의 진귀(珍貴)함은 이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에 칠일(七日)·혹은 이칠일(二七日)이나·내리는 비의 수(數)까지도 아실 수가 있으나, 다만 법화경(法華經)의 일자(一字)를 부르는 사람의 공덕(功德)만은 알지 못하신다고 쓰여있다."
월수어서(月水御書) 43세 카마쿠라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사자후(師子吼)와 같으니, 어떠한 병(病)인들 장해(障害)를 할 손가, 귀자모신(鬼子母神)·십나찰녀(十羅刹女)는 법화경(法華經)의 제목(題目)을 수지(受持)한 자를 수호(守護)하리라고 쓰였느니라. 행(幸)은 애염(愛染)과 같고 복(福)은 비사문(毘沙門)과 같이 되리라 , 어떠한 곳에서 놀고 장난쳐도 탈이 없을 것이며, 유행(遊行)하여 두려움이 없음은 마치 사자왕(師子王)과 같으리라."
교오전답서(經王殿答書) 52세 사도
"법화경은 사람의 모습을 비출 뿐만 아니라 마음도 비추느니라. 마음을 비출 뿐만 아니라 선업도 미래까지도 비추어 보심이 흐림이 없노라."
신국왕어서(神國王御書) 54세 미노부
"한 번 묘호렌게쿄라고 봉창하면, 일체의 불·일체의 법·일체의 보살·일체의 성문(聲聞) 일체의 범왕(梵王) 제석(帝釋) 염마(閻魔) 법왕(法王) 일월(日月) 중성(衆星) 천신(天神) 지신(地神) 내지(乃至) 지옥(地獄) 아귀(餓鬼) 축생(畜生) 수라(修羅) 인천(人天) 일체중생의 심중의 불성을 오직 한 마디로 불러 나타내시는 공덕은 무량무변하니라. 나의 기심의 묘호렌게쿄를 본존으로 숭앙하고, 나의 기심 중의 불성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고 불리어서 나타나심을 부처라고 하느니라. 비유컨대 새장 속의 새가 울면 하늘을 나는 새가 모이면 새장 속의 새도 나가려고 함과 같으니라. 입으로 묘법을 봉창하면 나의 몸의 불성도 불리어서 반드시 나타나시고, 범왕 제석의 불성은 불리어서 우리들을 지키시고, 불보살의 불성은 불리어서 기뻐하심이라."
법화초심성불초(法華初心成佛抄) 56세 미노부
"三十三의 액(厄)은 전환되어 三十三의 행(幸)으로 되시리라. 칠난즉멸(七難卽滅) 칠복즉생(七福卽生)이란 이것이니라. 나이는 젊어지고 복은 쌓일 것이외다."
시조깅고전부인답서(四條金吾殿夫人答書) 54세 미노부
"어찌 기원(祈願)의 성취(成就)가 늦으리요. 대지(大地)를 가리켜서 빗나갈지라도 허공(虛空)을 동여매는 자(者)는 있을지라도·조수(潮水)의 간만(干滿)이 없는 일은 있을지라도, 해는 서(西)쪽에서 돋을지라도,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의 기원(祈願)이 성취(成就)되지 않는 일은 있을 수 없느니라.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모든 보살(菩薩)·인천(人天)·팔부(八部) 등(等)·이성(二聖)·이천(二天)·십나찰(十羅刹) 등(等)이 천(千)에 하나라도 와서 수호(守護)하시지 않는 일이 있다면 위로는 석가제불(釋迦諸佛)을 업신여기고 아래로는 구계(九界)를 속이는 죄가 되리라. 행자(行者)는 확실히 부실(不實)할지라도 지혜(智慧)는 어리석을지라도 몸은 부정(不淨)할지라도, 계덕(戒德)은 갖추지 않았을지라도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른다면 반드시 수호(守護)하시리라. 주머니가 더럽다고 하여 금(金)을 버리지 말지니라. 이란(伊蘭)을 미워하면 전단(栴檀)은 있을 수 없느니라. 계곡(溪谷)의 연못을 부정(不淨)하다고 싫어 한다면 연(蓮)꽃은 취(取)하지 못할 것이며 행자(行者)를 퇴박 하신다면 서원(誓願)을 깨뜨리심이라. 정상(正像)이 이미 지나 버렸으니 지계(持戒)는 시중(市中)의 호랑이와 같고 지자(智者)는 인각(麟角)보다도 희귀(稀貴)하리라. 달이 뜨기 전(前)에는 등(燈)불을 의지할 것이며 보주(寶珠)가 없는 곳에는 금은(金銀)도 보배(寶貝)로다. 백오(白烏)의 은(恩)을 흑오(黑烏)에게 갚고 성승(聖僧)의 은(恩)을 범승(凡僧)에게 갚을지니라. 속히 속히 이생(利生)을 주십사 하고 강성(强盛)히 기원(祈願)한다면 어찌 기원(祈願)이 성취(成就)되지 않으리요.
물어 가로되, 위에 써놓으신 도리(道理)·문증(文證)을 배견(拜見)하니 진실로 일월(日月)이 천(天)에 계시고 대지(大地)에 초목(草木)이 생장(生長)한다면, 주야(晝夜)가 국토(國土)에 있고, 대지(大地)가 뒤집히지 않으며 대해(大海)의 조수(潮水)의 간만(干滿)이 있다면, 법화경(法華經)을 믿는 사람의 현세(現世)의 기원(祈願)과 후생선처(後生善處)는 의심할 바 없느니라."
기도초(祈禱抄) 51세 사도
"연꽃은 청정(淸淨)하지만 진흙탕에서 피어났고, 전단(栴檀)은 향기(香氣)로운 것인데 대지(大地)에서 생(生)겼느니라. 벚꽃은 아취(雅趣)가 있지만 나무에서 피어났고, 양귀비(楊貴妃)는 용모가 아름다운데 하녀(下女)의 배에서 태어났느니라, 달은 산(山)에서 떠올라서 산(山)을 비추고, 화(禍)는 입에서 나와서 몸을 망(亡)치며·복(福)은 마음에서 나와서 나를 빛나게 하느니라.
지금 정월(正月)의 시초(始初)에 법화경(法華經)을 공양(供養)드리려고 생각하신 진심(眞心)은·마치 나무에서 꽃이 피고·못에서 연화(蓮華)의 봉우리가 나타나며·설산(雪山)의 전단(栴檀)이 피고·달이 처음으로 뜬 것과 같으니라. 지금 일본국(日本國)은 법화경(法華經)을 적대(敵對)하여 재난(災難)을 천리(千里) 밖에서 초래(招來)하였소. 이로써 생각하건대 이제 또 법화경(法華經)을 믿는 사람은·행복(幸福)을 만리(萬里) 밖에서 모이게 하리로다. 그림자는 체(體)에서 생기는 것이니·법화경(法華經)을 적대(敵對)하는 사람의 나라는 체(體)에 그림자가 따르듯이·재난(災難)이 덮치느니라. 법화경(法華經)을 믿는 사람은·전단(栴檀)에 향기(香氣)를 갖추고 있는 것과 같도다."
십자어서(十字御書) 미노부
"부친(父親) 기도(祈禱)의 일은 잘 알았으니 불전(佛前)에서 기념(祈念)하겠소이다. 기도(祈禱)에 있어서는 현기현응(顯祈顯應)·현기명응(顯祈冥應)·명기명응(冥祈冥應)·명기현응(冥祈顯應)의 기도(祈禱)가 있기는 하나, 다만 간요(肝要)는 이 경(經)의 신심(信心)을 하신다면 현당(現當)의 소원만족(所願滿足)이 있으리라. 법화경(法華經) 제(第)三에 가로되 「마(魔)와 마민(魔民)이 있다고 해도 모두 불법(佛法)을 수호(守護)함」 제칠(第七)에 가로되 「병(病)이 즉(卽) 소멸(消滅)하여 불로불사(不老不死)하리라」라는 금언(金言)을 의심(疑心)하지 말지어다. 묘이치니부인(妙一尼夫人)께서 당산(當山)에 참예(參詣)한 것은 송구스럽소. 두루마리 일권(一卷)을 진정(進呈)하니 피견(披見)하시라,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도묘젠몬어서(道妙禪門御書) 55세
"구원실성(久遠實成)의 석존(釋尊)과 개성불도(皆成佛道)의 법화경(法華經)과 우리들 중생(衆生)의 셋은 전(全)혀 차별(差別)이 없다고 깨달아서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바를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의 혈맥(血脈)이라고 하느니라. 이 일은 다만 니치렌(日蓮)의 제자(弟子) 단나(檀那) 등(等)의 간요(肝要)이며, 법화경(法華經)을 가진다고 함은 이것이로다. 결국(結局) 임종(臨終)이 지금(只今)이라고 알아서 신심(信心)을 다하여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는 사람을 「시인명종위천불수수(是人命終爲千佛授手)·영불공포(令不恐怖) 불타악취(不墮惡趣)」라고 설(說)하셨느니라. 기쁘도다, 일불(一佛) 이불(二佛)도 아니고 백불(百佛) 이백불(二百佛)도 아닌 천불(千佛)까지도 마중을 나오시어 손을 잡으실 것이니·환희(歡喜)의 감루(感淚)를 금(禁)할 길이 없도다. 방법불신(謗法不信)의 자(者)는 「즉단일체세간불종(卽斷一切世間佛種)」이라고 하여 성불(成佛)할 종자(種子)를 단절(斷絶)하는 고(故)로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의 혈맥(血脈)이 없는 것이니라.
총(總)하여 니치렌(日蓮)의 제자(弟子) 단나(檀那) 등(等)은 자타피차(自他彼此)라는 마음없이 수어(水魚)라고 생각을 해서 이체동심(異體同心)이 되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바를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의 혈맥(血脈)이라고 하느니라, 더구나 지금 니치렌(日蓮)이 홍통(弘通)하는 바의 구극(究極)은 이것이니라. 만약 그렇다면 광선유포(廣宣流布)의 대원(大願)도 이루어질 것이니라. .. 기필(期必)코 기필(期必)코 강성(强盛)한 대신력(大信力)을 다하여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임종정념(臨終正念)이라고 기념(祈念)하시라.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의 혈맥(血脈)은 이 외(外)에 절대(絶對)로 구(求)하지 말지니라,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생사즉열반(生死卽涅槃)이란 이것이로다. 신심(信心)의 혈맥(血脈)이 없이는 법화경(法華經)을 가질지라도 무익(無益)하니라."
생사일대사혈맥초(生死一大事血脈抄) 51세 사도
"또한 니치렌(日蓮)을 공양(供養)하고 또 니치렌(日蓮)의 제자단나(弟子檀那)가 되심은 그 공덕(功德)을 부처의 지혜(智慧)로써도 다 헤아리지 못하느니라. 경(經)에 가로되 「부처의 지혜로써 주량(籌量)할지라도 다소(多少)의 그의 변(邊)을 알지 못함이라」고 하였느니라. 지용(地涌)의 보살(菩薩)의 선구(先驅)는 니치렌(日蓮) 일인(一人)이로다. 지용(地涌)의 보살(菩薩)의 수(數)에도 들어가리라. 만약 니치렌(日蓮)이 지용(地涌)의 보살(菩薩)의 수(數)에 든다면 어찌 니치렌(日蓮)의 제자단나(弟子檀那)·지용(地涌)의 유류(流類)가 아니리오. 경(經)에 가로되 「능(能)히 은밀하게 한 사람을 위하여 법화경(法華經)의 내지 일구(一句)를 설(說)한다면 마땅히 알지어다. 이 사람은 곧 여래(如來)의 사자(使者)요, 여래(如來)가 보낸 바로서 여래(如來)의 사(事)를 행(行)함이니라」고, 어찌 다른 사람의 일을 설(說)하셨겠느뇨. 그러므로 너무나 남이 나를 칭찬할 때는 어떻게라도 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느니라. 이는 칭찬하는 바의 말에서 일어나느니라. 말법(末法)에 태어나서 법화경(法華經)을 홍통(弘通)하는 행자(行者)는 삼류(三類)의 적인(敵人)이 있어 유죄(流罪)와 사죄(死罪)에 이르리라. 그러할지라도 참고 견디어 홍통(弘通)하는 자(者)를 옷을 가지고 석가불(釋迦佛)이 덮어 주실 것이로다. 제천(諸天)은 공양(供養)을 할 것이로다. 어깨에 올려 놓고 등에 업을 것이로다, 대선근(大善根)의 자(者)로다, 일체중생(一切衆生)을 위(爲)해서는 대도사(大導師)일지니라고. 석가불(釋迦佛) 다보불(多寶佛)·시방(十方)의 제불(諸佛)·보살(菩薩)·천신(天神)·칠대(七代)·지신오대(地神五代)의 신(神)들·귀자모신(鬼子母神)·십나찰녀(十羅刹女)·사대천왕(四大天王)·범천(梵天)·제석(帝釋)·염마법왕(閻魔法王)·수신(水神)·풍신(風神)·산신(山神)·해신(海神)·대일여래(大日如來)·보현(普賢)·문수(文殊)·일월(日月) 등(等)의 제존(諸尊)들에게 칭찬받음으로써 무량(無量)의 대난(大難)마저도 참고 견디었느니라. 칭찬을 받게 되면 자신(自身)이 손상(損傷)되는 것도 돌아보지 아니하며 비방(誹謗)을 당할 때는 또한 자신(自身)이 파멸(破滅)됨도 알지 못하고 행동(行動)하는 것은 범부(凡夫)의 예상사(例常事)니라.
어떻게 하여서라도 이번에 신심(信心)을 다하여 법화경(法華經) 행자(行者)로서 일관(一貫)하고 끝까지 니치렌(日蓮)의 일문(一門)이 되어 나아가시라. 니치렌(日蓮)과 동의(同意)란다면 지용(地涌)의 보살(菩薩)이 아니겠느뇨. 지용(地涌)의 보살(菩薩)로 정(定)해진다면 석존(釋尊)의 구원(久遠)의 제자(弟子)라 함을 어찌 의심하리오. 경(經)에 가로되 「나는 구원(久遠) 이래(已來) 이들 중(衆)을 교화(敎化)하였다」라고 함은 이것이니라. 말법(末法)에 와서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를 홍통(弘通)하는 자(者)는 남녀(男女)를 가리지 말지니라. 모두 지용(地涌)의 보살(菩薩)의 출현(出現)이 아니고서는 부르기 어려운 제목(題目)이니라. 처음엔 니치렌(日蓮) 한 사람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불렀으나 이인(二人)·삼인(三人)·백인(百人) 이렇게 차례로 불러서 전(傳)하느니라. 미래(未來)도 또 그러하리라, 이 어찌 지용(地涌)의 의(義)가 아니리오. 더구나 광선유포(廣宣流布)의 때는 일본일동(日本一同)으로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게 될 것은 대지(大地)를 과녁으로 하는 것과 같으리라. 어떠한 일이 있을지라도 법화경(法華經)에다 이름을 세우고 몸을 맡기시라. 석가불(釋迦佛) 다보불(多寶佛)·시방(十方)의 제불(諸佛)·보살(菩薩)·허공(虛空)에서 이불(二佛)이 서로 수긍(首肯)하여 정(定)하신 것은 다른 일이 아니라, 오로지 말법(末法)의 영법구주(令法久住) 때문이니라. 이미 다보불(多寶佛)은 반좌(半座)를 나누어서 석가여래(釋迦如來)께 드릴 때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기(旗)를 꽂아 나타내시고, 석가(釋迦)·다보(多寶)의 이불(二佛)이 대장(大將)으로서 정(定)하신 일이 어찌 헛되리오. 이는 오로지 우리들 중생(衆生)을 성불(成佛)시키고자 하는 담합(談合)이시니라.
니치렌(日蓮)은 그 자리에는 없었지만 경문(經文)을 보건대, 조금도 흐림이 없도다. 또 그 자리에도 있었겠지만 범부(凡夫)이므로 과거(過去)를 알지 못하노라. 현재(現在)는 뚜렷하게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이니 또한 미래(未來)는 결정(決定)코 당예도량(當詣道場)이 되리라. 과거(過去)도 이로써 미루어 생각하건대 허공회(虛空會)에도 있었으리라. 삼세각별(三世各別)은 있을 수 없느니라. 이와 같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노라니 유배(流配)의 몸이지만 희열(喜悅)은 한량(限量)없도다. 기뻐도 눈물이오, 괴로워도 눈물이라, 눈물은 선악(善惡)에 통(通)하는 것이니 저 천인(千人)의 아라한(阿羅漢)들이·부처님의 일이 생각이 나서 눈물을 흘렸고, 눈물을 흘리면서 문수사리보살(文殊師利菩薩)은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이라고 부르시니, 천인(千人)의 아라한(阿羅漢) 중(中)의 아난존자(阿難尊者)는 울면서 여시아문(如是我聞)이라고 대답하시었다. 나머지 구백구십인(九百九十人)은 눈물을 벼루의 물로 하여 또 여시아문(如是我聞) 위에도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이라고 써 두었느니라. 지금 니치렌(日蓮)도 그와 같도다. 이와 같은 몸이 된 것도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 칠자(七字)를 홍통(弘通)하기 때문이로다. 석가불(釋迦佛)·다보불(多寶佛)이 미래(未來)의 일본국(日本國)의 일체중생(一切衆生)을 위(爲)하여 남겨 놓으신 바의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라고 이와 같이 나도 들었기 때문이니라. 현재(現在)의 대난(大難)을 생각하는데도 눈물이오, 미래(未來)의 성불(成佛)을 생각하여 기뻐함에도 눈물을 막을 길이 없느니라. 새와 벌레는 울어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데 니치렌(日蓮)은 울지 않지만 눈물이 마르지 않느니라. 이 눈물은 세간(世間)의 일이 아니라, 다만 오로지 법화경(法華經) 때문이로다. 만약 그렇다면 감로(甘露)의 눈물이라고도 해야 하리라. 열반경(涅槃經)에는 부모(父母)·형제(兄弟)·처자(妻子)·권속(眷屬)과 이별하여 흘리는 눈물은 사대해(四大海)의 물 보다 많을지라도 불법(佛法)을 위하여는 한 방울도 흘리지 않는다고 쓰여 있느니라.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가 되는 것은 과거(過去)의 숙습(宿習)이니라. 같은 초목(草木)이라도 부처로 만들어지는 것은 숙연(宿緣)이며 부처라도 권불(權佛)이 되는 것은 또한 숙업(宿業)이니라."
제법실상초(諸法實相抄) 52세 사도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무작삼신(無作三身)의 의문(依文)이니라, 이 문(文)에 있어서 중중(重重)의 상전(相傳)이 있다. 신통지력(神通之力)이란 아등중생(我等衆生)이 작작발발(作作發發)하게 행동(行動)하는 바를 신통(神通)이라고 한다, 옥졸(獄卒)이 죄인(罪人)을 가책(苛責)하는 소리도 모두가 신통지력(神通之力)이니라, 생주이멸(生住異滅)의 삼라삼천(森羅三千)의 당체(當體) 모두가 신통지력(神通之力)의 체(體)이니라. 지금(至今)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의 의(意)는 즉신성불(卽身成佛)이라고 개각(開覺)하는 것을 여래비밀신통지력(如來秘密神通之力)이라고 하는 것이라, 성불(成佛)하는 이외(以外)에 신통(神通)과 비밀(秘密)이란 없느니라, 이 무작(無作)의 삼신(三身)을 일자(一字)를 가지고 얻었으니, 소위(所謂) 신(信)의 일자(一字)이니라, 따라서 경(經)에 가로되 「아등당신수불어(我等當信受佛語)」라고 신수(信受)의 이자(二字)에다 유의(留意)해야 하느니라."
어의구전(御義口傳) 57세 미노부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이 품(品)의 구극(究極)은 구원실성(久遠實成)이며 구원(久遠)이란 작용(作用)하지 않고 꾸며 갖추지 않고 본래 있는 그대로라는 의(義)이니라. 무작(無作)의 삼신(三身)이므로 처음으로 생긴 것이 아니니 이는 작용(作用)하지 않음이니라, 삼십이상(三十二相) 팔십종호(八十種好)를 구족(具足)하지 않았으니 이는 꾸며 갖추지 않은 것이고 본유상주(本有常住)의 부처이므로 본래(本來) 그대로이며 이것을 구원(久遠)이라고 하느니라. 구원(久遠)이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며 실로 열렸노라 실성무작(實成無作)이라고 열렸느니라 운운(云云)."
어의구전(御義口傳) 57세 미노부
"제일(第一) 수기지사(授記之事) 문구(文句)의 칠(七)에 가로되, 수(授)란 이는 여(與)의 의(義)이니라고. 어의구전(御義口傳)에 가로되, 기(記)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며 수(授)란 일본국(日本國)의 일체중생(一切衆生)이니라. 불신(不信)의 자(者)에게는 수여(授與)하지 않느니라, 또 이것을 받지 않느니라.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의 기(記)를 받느니라, 또 가로되, 수기(授記)란 법계(法界)의 수기(授記)이고 지옥(地獄)의 수기(授記)는 악인(惡人)이므로 악업(惡業)의 수기(授記)를 죄인(罪人)에게 수여(授與)하는 것이며 나머지는 이것에 준(準)해서 알아야 하느니라. 생(生)의 기(記)가 있으면 반드시 사망(死亡)하는 것이며 사(死)의 기(記)가 있으면 또 생(生)하느니라, 삼세상항(三世常恒)의 수기(授記)이니라. 결국(結局) 중근(中根)의 사대성문(四大聲聞)이란 우리들의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사상(四相)이니라. 가섭(迦葉)은 생(生)의 상(相)·가전연(迦旃延)은 노(老)의 상(相)·목련(目連)은 병(病)의 상(相)·수보리(須菩提)는 사(死)의 상(相)이니라, 법화(法華)에 이르러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사상(四相)을 사대성문(四大聲聞)으로 나타냈는데 이것은 즉(卽) 팔상작불(八相作佛)이니라, 제법실상(諸法實相)의 행위(行爲)이니라고 기(記)를 수여(授與)하는 것이며 묘법(妙法)의 수기(授記)인 고(故)로 법계(法界)의 수기(授記)이니라. 연화(蓮華)의 수기(授記)인 고(故)로 법계(法界)가 청정(淸淨)이니라, 경(經)의 수기(授記)인 고(故)로 중생(衆生)의 언어음성(言語音聲)은 삼세상항(三世常恒)의 수기(授記)이니라. 오직 일언(一言)으로 수기(授記)해야 할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운운(云云)."
어의구전(御義口傳) 57세 미노부
"수지인(受持人) 대백우거(大白牛車) 범부즉극(凡夫卽極)
승차(乘此) 보승(寶乘)하여 직지도량(直至道場)함이라 제목(題目) 극과(極果)의 처야(處也)
이 문(文)은 자신(自身)의 불승(佛乘)을 깨닫고 자신(自身)의 궁전(宮殿)에 들어감이라,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함은 자신(自身)의 궁전(宮殿)에 들어가는 것이니라. 신해품(信解品) 일념삼천(一念三千) 무상(無上)의 보주(寶珠) 불구자득(不求自得)했느니라. 제목(題目) 마음대로 얻었노라 이 문(文)은 무시색심본시이성묘경묘지(無始色心本是理性妙境妙智)이므로 기심(己心) 이외에 실상(實相)을 구(求)하지 말지어다,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불구자득(不求自得)이니라."
어의구전(御義口傳) 57세 미노부
"행주좌와(行住坐臥)에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를지어다"
법화초심성불초(法華初心成佛抄) 56세 미노부
"행의(行儀)는 본존(本尊)의 어전(御前)에서 반드시 좌립행(坐立行) 할지어다. 도량(道場)을 나와서는 행주좌와(行住坐臥)를 가리지 말지어다. 일상(日常)의 소행(所行)은 제목(題目)을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할지어다. 감당(堪當)할 수 있는 사람은 일게(一偈)·일구(一句)라도 봉독(奉讀)할지어다."
창법화제목초(唱法華題目抄) 39세 카마쿠라
"이루어지고 이루어지지 않음은 신심(信心)에 의(依)함이니, 결코 니치렌(日蓮)의 잘못이 아니로다. 물이 맑으면 달이 비치고, 바람이 불면 나무가 흔들리는 것과 같이 모두의 마음은 물과 같고, 신(信)이 약(弱)함은 탁(濁)함과 같으며, 신심(信心)이 순수(純粹)함은 맑은것과 같다. 나무는 도리(道理)와 같고, 바람이 흔드는 것은 경문(經文)을 읽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시라, 공공(恐恐)."
니치곤니부인답서(日嚴尼夫人答書) 59세 미노부
"기원(祈願)이 이루어지지 않음은 활은 강(强)한데 활줄이 약(弱)하고 대도검(大刀劍)일지라도 쓰는 사람이 겁장이인 것과 같은 것이외다. 결코 법화경(法華經)의 잘못이 아니로다."
왕사성사(王舍城事) 54세 미노부
"석존의 인행과덕(因行果德)의 이법(二法)은 묘호렌게쿄의 오자에 구족하였다. 우리들이 이 오자를 수지하면 자연히 그의 인과(因果)의 공덕을 물려주시느니라."
관심의 본존초(觀心本尊抄) 52세 사도
"일념(一念)에 억겁(億劫)의 신로(辛勞)를 다하면 본래(本來) 무작(無作)의 삼신(三身)이 염념(念念)에 일어나느니라, 소위(所謂)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정진행(精進行)이니라."
어의구전(御義口傳) 57세 미노부
"주군(主君)을 위해서도 불법(佛法)을 위해서도, 세간(世間)에 있어서의 마음씨도 정말 좋았었다 하고, 가마쿠라(鎌倉)의 사람들의 입으로 칭송받게 하시라. 명심(銘心)하시라, 명심(銘心)하시라. 곳간의 재(財)보다도 몸의 재(財)가 뛰어나고, 몸의 재(財)보다 마음의 재(財)가 제일(第一)이로다. 이 글월을 보시고부터는 마음의 재(財)를 쌓도록 하시라."
스슌천황어서(崇峻天皇御書) 56세 미노부
"다보탑(多寶塔) 중(中)에서 이불(二佛)이 병좌(竝坐)했을 때·상행보살(上行菩薩)에게 물려 주신 제목(題目)의 오자(五字)를 니치렌(日蓮)이 대강 넓혀서 말하느니라. 이는 즉 상행보살(上行菩薩)의 사자(使者)일까, 귀하(貴下)도 또한 니치렌(日蓮)을 따르며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로서 제인(諸人)에게 이야기하고 계시니 이 어찌 유통(流通)이 아니겠느뇨. 법화경(法華經)의 신심(信心)을 관철(貫徹)하시라·부시를 치는데·중단해 버리면 불을 얻지 못하느니라. 강성(强盛)한 대신력(大信力)을 내어서 법화종(法華宗)의 시조깅고(四條金吾)·시조깅고(四條金吾)라고 가마쿠라(鎌倉) 중(中)의 상하만인(上下萬人) 내지(乃至) 일본국(日本國)의 일체중생(一切衆生)의 입으로 칭송(稱頌)받으시라. 나쁜 이름조차도 떨치는데 하물며 좋은 이름에 있어서랴, 어찌 하물며 법화경(法華經)으로 인(因)한 이름에 있어서랴. 부인(夫人)에게도 이것을 잘 이야기하여, 일월(日月)·양안(兩眼)·양(兩)쪽 날개같이 갖추시라. 일월(日月)이 있으면 명도(冥途)가 있을소냐. 양안(兩眼)이 있으면 삼불(三佛)의 안모(顔貌)를 배견(拜見)함은 의심이 없다. 양쪽 날개가 있으면 적광(寂光)의 보찰(寶刹)로 날아가는 것은·수유찰나(須臾刹那)이리라. 자세(仔細)히는 다시 또 말씀드리겠소, 공황근언(恐惶謹言)." 시조깅고전답서(四條金吾殿答書) 51세 사도
"결국 묘법연화의 당체(當體)라 함은 법화경을 믿는 니치렌의 제자 단나 등의 부모소생(父母所生)의 육신 바로 이것이니라. 정직히 방편을 버리고 오직 법화경을 믿고 남묘호렌게쿄라고 부르는 사람은 번뇌(煩惱)·업(業)·고(苦)의 삼도(三道)가 법신(法身)·반야(般若)·해탈(解脫)의 삼덕(三德)으로 전(轉)하여 삼관(三觀) · 삼제(三諦) · 즉(卽) 일심(一心)에 나타나서 그 사람이 소주(所住)하는 곳은 상적광토(常寂光土)이니라." 당체의초(當體義抄) 52세 사도
"팔만사천의 법장은 자신일인의 일기문서로다. 이 팔만법장을 나의 心中에 내포하여 갖고, 품어 가졌노라. 나의 身中의 마음을 가지고 부처와 법과 정토를 내 몸 밖에서 생각하고 원하며 구함을 미혹이라 하고 이 마음이 선악의 緣을 만나 선악의 法을 만들어 내느니라. 華嚴經에 가로되, 마음은 솜씨 좋은 畵師(화사)가 종종의 오음을 만들듯이 일천세간중에 法으로서 만들지 않음이 없도다."
삼세제불총감문교상폐립(三世諸佛總勘文敎相廢立) 58세 미노부
"제목(題目)의 오자(五字)는 체(體)와 같고 소리와 같은 것이니라, 제목(題目)을 봉창(奉唱)하는 소리는 시방세계(十方世界)에 닿지 않는 곳이 없느니라. 우리들의 작은 소리라 할지라도 제목(題目)이라는 대음(大音)에 넣어서 봉창(奉唱)하므로 일대삼천계(一大三千界)에 도달(到達)하지 않는 곳이 없다. 비유(譬喩)컨대 소음(小音)이라도 조개껍질에 넣어서 불면 멀리 울리는 것과 같고, 손의 소리는 작지만 북을 치면 멀리 울리는 것과 같다. 일념삼천(一念三千)의 대사(大事)인 법문(法門)이 이것이니라." 어강문서
"더욱더 강성(强盛)하게 대신력(大信力)을 내시라. 자기 운명(運命)이 다하고 나서, 제천(諸天)의 수호(守護)가 없다고 하여 원망(怨望)하는 일이 없을지어다. .. 아무리 니치렌(日蓮)이 기원(祈願)을 한다 해도 불신(不信)한다면, 젖은 부싯깃을 대고 부시를 치는 것과 같이 될 것이니, 더욱 면려(勉勵)하여 강성(强盛)하게 신력(信力)을 다 내도록 하시라. 지난 번의 존명(存命)은 불가사의(不可思議)하다고 생각하시라, 어떠한 병법(兵法)보다도 법화경(法華經)의 병법(兵法)을 쓰실지어다. 「제여원적(諸餘怨敵)·개실최멸(皆悉摧滅)」의 금언(金言)은 헛되지 않으리라. 병법(兵法) 검형(劍形)의 대사(大事)도 이 묘법(妙法)으로부터 나왔느니라, 깊이 신심(信心)을 취(取)하시라, 결코 겁이 많아서는 불가능(不可能)하니라. 공공근언(恐恐謹言)." 시조깅고전답서
"삼천대천세계에 칠일간 내리는 비의 수는 다 셀 수 있으며 시방세계의 대지의 먼지는 아는 사람도 있겠지만 법화경의 一字를 공양하는 공덕은 알기 어렵다고 부처는 설하셨나이다." 구보니부인답서
"이 양약을 갖는 여인들을 이 四人의 대보살이 전후좌우에 붙어서서 이 여인이 일어서면 이 대보살도 일어서시고 내지 이 여인이 길을 갈 때는 이 보살도 갈길을 가시도다. 비유하면 그림자와 몸, 물과 물고기, 소리와 울림, 달과 빛과 같으니라. 이 사대보살이 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하는 여인에게서 떨어진다면, 석가다보ㆍ 시방분신의 제불의 감죄를 이 보살의 몸에 받게 되시느니라. 제바보다도 죄가 깊고, 구가리보다도 대망어의 자가 된다고 생각하시라. 아아, 기쁘도다. 南無妙法蓮華經 南無妙法蓮華經" 묘법만다라공양사
"일체중생 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는 이외에 유락은 없느니라.
經에 가로되 중생소유락 운운 이 글월 어찌 자수법락이 아니겠느뇨.(중략)
유락이란 우리들의 색심 의정 함께 일념삼천 자수용신의 부처가 아니겠느뇨
법화경을 받드는 이외에 유락은 없으며 현세안온 후생선처란 이것이니라."
시조깅고전답서(四條金吾殿答書)
"「이 경(經)은 수지(受持)하기 어려우며 만약 잠시라도 수지(受持)하는 자(者)는, 나는 곧 환희(歡喜)하며, 제불(諸佛)도 역시 그러하니라. 이와 같은 사람은 제불(諸佛)이 칭찬하는 바」라고 운운(云云). 니치렌(日蓮)이 찬탄(讃歎)하는 것은 대수로운 일이 아니며 제불소탄(諸佛所歎)이라고 쓰였으니 참으로 믿음직스럽고·믿음직스럽구나라고·신심(信心)을 깊게 가지시라·신심(信心)을 깊게 가지시라,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공공근언(恐恐謹言)."
시조깅고전답서
"法華經을 믿는 사람은 겨울과 같도다.
겨울은 반드시 봄이 되느니라.
아직도 옛날부터 듣지 못하고 보지 못했노라.
겨울이 가을로 되돌아간 것을, 아직도 듣지 못했도다.
법화경을 믿는 사람이 범부가 되었음을 [경문에는 若有聞法者無一不成佛 약유문법자무일불성불]이라고 설해져있느니라." 묘이찌니부인어소식
"훌륭한 스승이란 이렇다 할 세간의 과오가 없고 조금도 아첨함이 없으며 小欲知足(소욕지족)으로서 자비있는 僧이 경문에 있는대로 法華經을 읽고 수지하여 남도 귄유해서 수지케 하는 僧을 부처는 일체의 僧 중에 제일 훌륭한 법사라고 칭찬했느니라.
훌륭한 檀那(단나)란 귀인에게도 치우치지 않고 賤人(천인)도 미워하지 않으며 上에도 기울지 않고 下도 천시하지 않으며 일체 사람의 말을 쓰지 않고 일체경 중에서 법화경을 수지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 중에서 훌륭한 사람이라고 부처는 설하셨느니라.
훌륭한 법이란 이 법화경을 最爲第一(체위제일)의 법이라고 설 했느니라."
법화초심성불초
"이 經의 문자는 모두 다 생신묘각의 부처님이신데 우리들은 육안이므로 문자라고 보느니라. 예컨데 아귀는 항하를 불이라고 보며, 사람은 물로 보고 천인은 감로라고 보니, 물은 하나이지만 果報에 따라서 따로 따로이니라. (중략) 오직 결단코 결단코 이념 없이 一心으로 영산정토를 기하실지어다. 마음의 스승으로 될 지언정 마음을 스승으로 삼지 말라." 소야입도전답서
"공덕이란 육근청정의 과보이니라 결국 니치렌 등의 동류 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하는 자는 육근청정이니라 그러므로 妙法蓮華經의 法의 스승으로 되어 큰 덕이 있느니라
功이란 幸이라는 것이며 또한 악을 멸함을 功이라 하고 善을 행함을 德이라고 하느니라. 공덕이란 즉신성불이고 육근청정이니라." 어의구전(御義口傳) 57세 미노부
"묘각(妙覺)의 산(山)에 달려 올라가 사방(四方)을 쫙 바라보니 아아, 유쾌하도다, 법계(法界)는 적광토(寂光土)로서 유리(瑠璃)를 가지고 땅으로 하고 금의 밧줄로써 팔(八)의 길에 경계(境界)를 했으며, 천(天)으로 부터 사종(四種)의 꽃이 내리고 허공(虛空)에서 음악(音樂)이 들리며, 제불보살(諸佛菩薩)은 상락아정(常樂我淨)의 바람에 산들거리고 오락(娛樂) 쾌락(快樂)하시느니라. 우리들도 그 수(數)에 들어가서 유희(遊戱)하고 즐기게 될 것은 벌써 다가왔도다. 신심(信心)이 약(弱)해서는 이와 같이 가장 좋은 곳에는 갈 수 없다. 갈 수 없느니라." 마쓰노전답서
"지금 일본국(日本國)은 법화경(法華經)을 적대(敵對)하여 재난(災難)을 천리(千里) 밖에서 초래(招來)하였소. 이로써 생각하건대 이제 또 법화경(法華經)을 믿는 사람은 행복(幸福)을 만리(萬里) 밖에서 모이게 하리로다. 그림자는 체(體)에서 생기는 것이니 법화경(法華經)을 적대(敵對)하는 사람의 나라는 체(體)에 그림자가 따르듯이 재난(災難)이 덮치느니라. 법화경(法華經)을 믿는 사람은 전단에 향기(香氣)를 갖추고 있는 것과 같도다. 또 말씀드리리라." 십자어서
"題目(제목)을 부르는 사람은 여래(如來)의 사자(使者)로다. 始 中 終(시중종) 버리지 않고 대난(大難)를 이겨 나가는 사람은 如來(여래)의 使者(사자)이니라." 시조깅고전답서
"일념무명(一念無明)의 미심(迷心)은 닦지 않은 거울이며, 이를 닦으면 반드시 법성진여(法性眞如)의 명경(明鏡)이 되느니라. 깊이 신심을 일으켜 일야조모(日夜朝暮)로 또한 게으름 없이 닦을지어다. 어떻게 닦는가 하면 오직 남묘호렌게쿄라고 봉창함을 이를 닦는다고 하느니라."
일생성불초
"지금 니치렌 등의 동류 남묘호렌게쿄라고 봉창하는 자는 여여래공숙(與如來共宿)의 자이니라, 부대사(傅大士)의 석(釋)에 가로되「조조(朝朝) 부처와 함께 일어나며 석석(夕夕) 부처와 함께 눕고 시시(時時)로 성도(成道)하며 시시(時時)로 현본(顯本)함이라」라고"
어의구전(御義口傳) 57세 미노부
"지금 니치렌 등의 동류가 남묘호렌게쿄라고 봉창함은 대풍이 부는 것과 같으니라."
어의구전(御義口傳) 57세 미노부
"信心은 달이 차는 것 같고 潮水(조수)가 차는 것과 같도다. 어찌하여 병도 사라지고 수명이 연장되지 않을소냐 하고 강성히 믿으시어, 몸을 소중히 하고 마음 속으로 아무일도 恨歎(한탄)하지 말지어다."
도키니부인답서(富木尼夫人答書) 55세 미노부
"법화의 제목은 사자(獅子)가 짖는 것과 같고 여경(餘經)은 여수(餘獸)의 소리와 같으며, 제경중(諸經中) 왕인 고로 왕이라고 하느니라."
어의구전(御義口傳) 57세 미노부
"묘음(妙音)이란 지금 니치렌 등의 동류가 남묘호렌게쿄라고 봉창하는 것은 말법당금(末法當今)의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음성(音聲)이니라."
어의구전(御義口傳) 57세 미노부
"제목만을 부르는 복을 헤아릴 수 없다고 설했느니라. 일부(一部) 팔권 이십팔품을 수지(受持) 독송(讀誦)하고, 수희(隨喜) 호지(護持) 등 함은 광(廣)이니라. 방편품(方便品) 수량품(壽量品) 등을 수지(受持)하고 내지(乃至) 호지(護持)함은 약(略)이니라. 다만 일사구게(一四句偈) 내지(乃至) 제목만을 부르고 부르는 자를 호지(護持)함은 요(要)이니라. 광(廣) 약(略) 요(要) 중에는 제목은 요(要)의 내(內)이니라." 법화경제목초
"인신(人身)은 받기 어려우니 손톱 위의 흙이요. 인신(人身)은 갖기 어려우니 풀잎 위의 이슬이로다. 120까지 살아서 이름을 더럽히고 죽느니 보다는 살아서 1일 이라도 이름을 떨치는 일이야말로 중요하니라. (중략) 명심하고 명심하시라. 곳간의 재보(財寶)보다 몸의 재보가 뛰어나고 몸의 재보 보다도 마음의 재보가 제일이로다. 이 글월을 보시고 마음의 재보를 쌓도록 하시라."
스슌천황어서
"大事에는 小瑞가 없다. 大惡이 일어나면 大善이 온다. 이미 大謗法이 나라에 있으니 大正法이 반드시 넓혀지리라. 여러분은 무엇을 한탄하시리오. 가섭존자가 아닐지라도 춤을 추어라. 사리불이 아니더라도 일어서서 춤을 추어라. 상행보살이 大地에서 나오실 때에는 춤추며 나오셨느니라."
대악대선어서
"말법에 들어와서 이제 니치렌이 부르는 바의 제목은 전대와는 달리 자행화타에 걸쳐 남묘호렌게쿄이며, 명체종용교(名體宗用敎)의 오중현(五重玄)의 오자(五字)이니라. 계단(戒壇)이란 왕법(王法)이 불법(佛法)에 명(冥)하고, 불법(佛法)이 왕법(王法)과 합(合)하여 왕신일동(王臣一同)으로 본문(本門)의 삼비밀(三秘密)의 법(法)을 수지(受持)하고 유덕왕(有德王) 각덕비구(覺德比丘)의 그 옛날을 말법탁악(末法濁惡)의 미래(未來)에 옮겨 놓을 때 칙선(勅宣)과 교서(敎書)를 하사(下賜)받아 영산정토(靈山淨土)와 흡사한 최승지(最勝地)를 찾아서 계단(戒壇)을 건립(建立)해야 할 것인가, 때를 기다려야 할 것이며, 사(事)의 계법(戒法)이라 함은 이것이니라. 삼국(三國) 및 일염부제(一閻浮提)의 사람 참회멸죄(懺悔滅罪)의 계법(戒法)일 뿐만 아니라 대범천왕(大梵天王) 제석(帝釋) 등(等)도 내려와서 밟으셔야 할 계단(戒壇)이니라."
삼대비법품승사
"부처가 되는 길은 어찌 경지의 이법이 아니겠느뇨. 그러므로 경(境)이라 함은 만법의 체를 말하고 지(智)라고 함은 자체현조의 모습을 말함이니라. 그런데 경의 연(淵 못)이 가이 없고 깊을 때는 지혜의 물의 흐름이 지장 없으며 이 경지가 합하면 즉신성불하느니라."
소야전답서
"백마는 니치렌이니라. 백조는 우리들의 일문이니라. 백마가 우는 것은 우리들의 남묘호렌게의 소리이니라. 이 소리를 들으시는 범천(梵天) 제석(帝釋) 일월(日月) 사천(四天) 등이 어찌하여 색(色)을 더하고 빛을 왕성하게 하시지 않겠느뇨. 어찌하여 우리들을 수호하지 않겠느뇨 하고 굳게 굳게 생각할지어다."
소야전답서
"성인이 부르시는 제목의 공덕과 우리들이 부르는 제목의 공덕과는 어느 정도의 차이가 있나이까 라고 운운. 조금도 승렬(勝劣)은 있을 수 없소이다."
마쓰노전답서
"법화경일부의 간심(肝心)은 남묘호렌게쿄의 제목이외다. 조석으로 부르시면 틀림없이 법화경일부를 진독(眞讀)하시는 것으로 되며, 두번 부르면 이부 내지 백 번은 백부 천 번은 천부 이렇게 불퇴(不退)로 부르신다면 불퇴로 법화경을 읽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묘호니부인답서
"기원이 이루어지지 않음은 활은 강한데 활줄이 약하고 대도검(大刀劍)일지라도 쓰는 사람이 겁장이인 것과 같은 것이외다. 결코 법화경의 잘못이 아니로다."
왕사성사
"당신들은 소중한 니치렌의 편이니라. 그러나 노심(勞心)하여 애써서 기원했는데 지금껏 증험이 없음은 이 중에 마음이 변한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나이다."
벤전어소식
"석가(釋迦)·다보(多寶)·시방(十方)의 제불(諸佛)·지용천계(地涌千界)의 이생(利生)은 이번에 다 볼것이라. 아, 진실로·그러한 일이 있었으면 하오.
설산동자(雪山童子)가 한대로 본받고 불경보살(不輕菩薩)의 입장이 되리라, 헛되이 역병(疫病)에 걸리게 되든가, 노사(老死)에 의해 죽게 되리니, 아아, 한심하고 한심하도다, 바라건대 법화경(法華經) 때문에 국주(國主)에게 적시(敵視)당하여 이번에 생사(生死)를 벗어나고 싶다. 천조태신(天照太神)·정팔번(正八幡)·일월(日月)·제석(帝釋)·범천(梵天) 등(等)의 불전(佛前)에서의 서원(誓願)을 이번에 시험(試驗)해 보고싶소. 제사(諸師)는 차치(且置)하옵고, 각각(各各)의 신상(身上)의 일은 여기에서 기원드리리라.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 법화경(法華經)을 십이시(十二時) 동안 행(行)하는 것이 되리라. 명심(銘心)하고 명심(銘心)하여 사관(仕官)을 법화경(法華經)이라고 생각하시라, 「일체세간(一切世間)의 치생산업(治生産業)은 모두 실상(實相)과 서로 위배(違背)하지 않음」이란 이것이니라, 부디 부디 글월의 뜻을 헤아리시라, 공공근언(恐恐謹言)."
단월모답서(檀越某答書)
"현인은 八風(팔풍)이라 해서 팔종의 바람에 침해당하지 않음을 賢人(현인)이라 하느니라. 利ㆍ衰ㆍ毁ㆍ譽ㆍ稱ㆍ譏ㆍ苦 ㆍ樂(이.쇠.훼.예.칭.기.고.낙) 이니라. 대강의 뜻은 이가 있어도 기뻐하지 않고 쇠퇴함을 한탄하지 않는 것 등의 일이니라. 이 팔풍에 침해당하지 않는 사람을 반드시 天은 수호하실 것이로다. 그러한데 비리로 주군을 원망한다면 아무리 기원한다 할지라도 天은 수호하는 일이 없느니라." 시조깅고전답서
"백분(白粉)의 힘은 칠(漆)을 변하게 해서 눈과 같이 희게 하며·수미산(須彌山)에 접근하는 중색(衆色)은 모두 금색(金色)이니라. 법화경의 명호(名號)를 갖는 사람은 일생 내지 과거원원겁(過去遠遠劫)의 흑업(黑業)의 칠(漆)이 변(變)하여 백업(白業)의 대선(大善)으로 되며, 말할것없이 무시(無始)의 선근(善根)은 모두 변하여 금색으로 되느니라."
묘호니부인답서
"기필코 강성한 대신력(大信力)을 다하여 남묘호렌게쿄 임종정념(臨終正念)이라고 기념하시라."
생사일대사혈맥초
"석존의 인행과덕(因行果德)의 이법(二法)은 묘호렌게쿄의 오자에 구족하였다. 우리들이 이 오자를 수지하면 자연히 그의 인과(因果)의 공덕을 물려주시느니라."
관심의 본존초
"이 만다라(曼陀羅)는 문자는 오자 칠자이지만 삼세의 제불(諸佛)의 스승이며, 일체의 여인의 성불의 인문(印文)이니라. 명도(冥途)에는 등(燈)불이 되고 사출(死出)의 산(山)에서는 양마(良馬)가 되며, 하늘에서는 일월과 같고 땅에서는 수미산(須彌山)과 같으며, 생사해(生死海)의 배이고 성불득도(成佛得道)의 도사(導師)이니라."
아부쓰보어서
"니치렌은 태어났을 때부터 지금껏 일일 편시(片時)도·마음 편한 일은 없었다. 이 법화경의 제목을 홍통하려고 생각할 뿐이니라."
우에노전답서
"어떻게 하든 법화경(法華經)을 굳이 설(說)해 듣게 할지어다. 믿는 사람은 부처가 될 것이며 비방(誹謗)하는 자(者)는 독고(毒鼓)의 연(緣)으로 되어 부처가 되는 것이니라. 뭐라고 해도 부처의 종자(種子)는 법화경(法華經) 이외에는 없느니라. 권교(權敎)로써 부처가 되는 연유(緣由)만 있다면 무엇 때문에 부처는 굳이 법화경(法華經)을 설(說)하여 비방하는 자(者)도 믿는 자(者)도 이익(利益)이 있다고 설(說)하고 아불애신명(我不愛身命)이라고 말씀하셨겠느뇨. 깊이 깊이 이러한 점을 도심(道心)이 있으신 분은 알아야 하느니라."
법화초심성불초(法華初心成佛抄) 56세 미노부
"니치렌의 혼을 먹물에 물들여 넣어서 썼으니 믿으실지어다. 부처의 어의(御意)는 법화경이며 니치렌의 혼은 바로 남묘호렌게쿄이니라."
교오전답서
"굶주려서 먹을 것을 바라고 목말라서 물을 그리듯이 그리워서 사람을 보고 싶어하듯이 병에 약을 의지하듯이 용모가 좋은 사람 연지 분을 바르듯이 법화경에 신심을 다하시라. 그렇지 아니하면 후회가 있으리라."
우에노전답서
"법화경이야 말로 人天의 복전(福田)이므로 주로 人天을 교화 시키는 고로 부처를 天人師라 호칭하며 이 經(어본존)을 믿는 자는 기신(己身)의 부처를 볼 뿐만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의 부처를 봄이 淨頗梨(정파리)에 향하면 색상을 보는 것과 색상으리라. 經에 가로되 정파리에 남김 없이 모든 색상을 보는 것과 같으니라." 연성초
"오직 신심에 달렸느니라. 검이라도 부진한 사람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다. 법화경의 검은 신심이 강성한 사람만이 소용되는 것이며, 범에 날개가 돋힌 격이니라."
교오전답서
"참으로 자신(自身)이 가난하여 보시(布施)할 보물(寶物)이 없으면, 자기 신명(身命)을 버려서 불법(佛法)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신명(身命)을 버려서 불법(佛法)을 배울지어다.
아무리 해도 이 몸은 헛되이 산야(山野)의 흙이 되리니, 아까워한들 무엇하리오, 아까워한들 끝내 아낄 수 없으며, 사람이 오래 산다 해도 백년(百年)은 넘지 못하니 그 간(間)의 일은 다만 한잠의 꿈과 같다. 받기 어려운 인신(人身)을 얻어 간혹 출가(出家)한 자(者)도 불법(佛法)을 배우고 방법(謗法)의 자(者)를 책(責)하지 않고 헛되이 유희잡담(遊戱雜談)만을 하며 지내는 자(者)는 법사(法師)의 가죽을 쓴 축생(畜生)이니라. 법사(法師)의 이름을 빌어서 세상(世上)을 살고 몸을 보양(保養)한다 해도 법사(法師)로 되는 의(義)는 하나도 없고 법사(法師)라고 하는 이름을 훔친 도인(盜人)이니라, 부끄러워 할지어다, 두려워 할지어다. (중략) 그런데 재가(在家)의 몸은 다만 여념(餘念) 없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시고 승(僧)도 공양(供養)하시는 것이 간심(肝心)이외다. 그것도 경문(經文)대로라면 수력연설(隨力演說)도 있어야 할 것이로다. 세상(世上)살이가 힘겨울 때도 금생(今生)의 괴로움조차 슬프니 하물며 내세(來世)의 고(苦)에 있어서랴고 생각해서라도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시라. 기쁠 때도 금생(今生)의 기쁨은 꿈속의 꿈이며 영산정토(靈山淨土)의 기쁨이야말로 진실(眞實)한 기쁨이라고 생각하시어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부르고 퇴전(退轉)없이 수행(修行)하여 최후(最後) 임종(臨終)의 때를 기다려 보시라."
마쓰노전답서(松野殿答書)
"아직 광선유포(廣宣流布)가 되지 않은 동안은, 신명(身命)을 버리고 수력홍통(隨力弘通)을 해야 할 것." 닛코유계치문(日興遺誡置文)
"세상(世上)의 얕은 일에는 신명(身命)을 버리면서도 대사(大事)인 불법(佛法)등(等)에는 버리기가 어려운 고(故)로 부처가 되는 사람도 없느니라." 사도어서(佐渡御書)
"니치렌(日蓮) 가로되, 一이란 묘(妙)이며 심(心)이란 호(法)이며 욕(欲)이란 렌(蓮)이며 견(見)이란 게(華)이며 불(佛)이란 쿄(經)이니라, 이 오자(五字)를 홍통(弘通)하려면 부자석신명(不自惜身命)이것이니라, 일심(一心)으로 부처를 보는 마음을 하나로 하여 부처를 보는 일심(一心)을 보면 부처이니라. 무작(無作)의 삼신(三身)의 불과(佛果)를 성취(成就)함에 있어서는 아마도 천태(天台) 전교(傳敎)보다도 월등(越等)하고 용수(龍樹)·가섭(迦葉)보다도 뛰어났도다, 명심(銘心)하고 명심(銘心)하여 마음의 스승이 될지언정 마음을 스승으로 삼지 말지어다 라고 부처는 기술(記述)하시었다. 법화경(法華經)을 위하여 몸을 버리고 목숨도 아끼지 말라고 강성(强盛)히 말한 것은 이 까닭이니라,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기조보어서(義淨房御書)
"제하(諸河)의 물이 대해(大海)에 들어가서 짠맛으로 됨은, 제교(諸敎)의 기류(機類)가 법화경(法華經)에 들어가 불도(佛道)를 이룸에 비유함이라. 조수(潮水)는 한계(限界)를 넘지 않는다 함은 묘법(妙法)을 갖는 사람은 차라리 신명(身命)을 잃는다 해도 불퇴전(不退轉)을 얻음에 비유하고, 여러 보장(寶藏)이 있다 함은 제불보살(諸佛菩薩)의 만행만선(萬行萬善)·제바라밀(諸波羅蜜)의 공덕(功德)이 묘법(妙法)에 포함(包含)됨을 비유함이라."
동일함미어서(同一鹹味御書)
"나와 더불어 나의 제자(弟子)는 제난(諸難)이 있을지라도 의심(疑心)이 없으면 자연(自然)히 불계(佛界)에 이르리라. 천(天)의 가호(加護)가 없음을 의심(疑心)하지 말 것이며 현세(現世)가 안온(安穩)하지 않음을 한탄(恨歎)하지 말지어다. 나의 제자(弟子)에게 조석(朝夕)으로 가르쳐 왔건만 의심(疑心)을 일으켜서 모두 버렸으리라. 어리석은 자(者)의 버릇이란 약속(約束)한 일을 필요한 때에는 잊어버리느니라. 처자(妻子)를 가엾게 여기는 고(故)로 현신(現身)으로 헤어짐을 한탄(恨歎)하리라. 다생광겁(多生曠劫) 동안 친근(親近)했던 처자(妻子)와는 마음먹고 헤어졌느뇨, 불도(佛道)로 인(因)해 헤어졌느뇨, 언제나 같은 이별(離別)이로다. 자신(自身)이 법화경(法華經)의 신심(信心)을 깨뜨리지 않고 영산(靈山)에 가서 도리어 인도(引導)할지니라."
개목초(開目抄)
"청정(淸淨)하지만 진흙탕에서 피어났고, 전단(栴檀)은 향기(香氣)로운 것인데 대지(大地)에서 생(生)겼느니라. 벚꽃은 아취(雅趣)가 있지만 나무에서 피어났고, 양귀비(楊貴妃)는 용모가 아름다운데 하녀(下女)의 배에서 태어났느니라, 달은 산(山)에서 떠올라서 산(山)을 비추고, 화(禍)는 입에서 나와서 몸을 망(亡)치며·복(福)은 마음에서 나와서 나를 빛나게 하느니라.
지금 정월(正月)의 시초(始初)에 법화경(法華經)을 공양(供養)드리려고 생각하신 진심(眞心)은·마치 나무에서 꽃이 피고·못에서 연화(蓮華)의 봉우리가 나타나며·설산(雪山)의 전단(栴檀)이 피고·달이 처음으로 뜬 것과 같으니라. 지금 일본국(日本國)은 법화경(法華經)을 적대(敵對)하여 재난(災難)을 천리(千里) 밖에서 초래(招來)하였소. 이로써 생각하건대 이제 또 법화경(法華經)을 믿는 사람은·행복(幸福)을 만리(萬里) 밖에서 모이게 하리로다. 그림자는 체(體)에서 생기는 것이니·법화경(法華經)을 적대(敵對)하는 사람의 나라는 체(體)에 그림자가 따르듯이·재난(災難)이 덮치느니라. 법화경(法華經)을 믿는 사람은·전단(栴檀)에 향기(香氣)를 갖추고 있는 것과 같도다."
십자어서(十字御書)
"니치렌(日蓮)이 불법(佛法)을 시험하건대, 도리(道理)와 증문(證文)보다 더한 것은 없고, 또 도리(道理) 증문(證文)보다도 현증(現證) 이상(以上)은 없느니라."
삼삼장기우사(三三藏祈雨事)
"지금 니치렌(日蓮)이 일대성교(一代聖敎)의 명경(明鏡)을 가지고 일본국(日本國)을 비추어 보건대·이 거울에 비치는 사람들은 국적(國敵)·불적(佛敵)임은 의심(疑心)없도다. 일대성교(一代聖敎) 중(中)에 법화경(法華經)은 명경(明鏡) 중(中)의 신경(神鏡)이니라. 동경(銅鏡) 등(等)은 사람의 모습을 비추지만·아직 마음은 비추지 못하느니라. 법화경(法華經)은 사람의 모습을 비출 뿐만 아니라·마음도 비추느니라. 마음을 비출 뿐만 아니라·선업(先業)도 미래(未來)까지도 비추어 보심이 흐림이 없노라."
신왕국어서 1521쪽 54세작, 미노부
"또한 믿는다면 묘각(妙覺)의 부처로도 될 것이니 어떻게 해야만 이번에 법화경(法華經)에 신심(信心)을 가질 것이뇨. 신(信)이 없이 이 경(經)을 행(行)하는 것은 손없이 보산(寶山)에 들어가고 발없이 천리(千里)길을 가려고 함과 같으니라. 다만 가까운 현증(現證)을 인용(引用)해서 먼 신(信)을 취(取)할지어다."
호렌초(法蓮抄)
"법화경을 經과 같이 수지하는 사람은 범왕보다도 우수하며 제석보다도 뛰어났느니라.
수라를 따르게 하면 수미산 마저도 짊어질 수 있으며 용(龍)을 굴복시켜 부린다면 대해(大海)마저도 몽땅 퍼낼수 있느니라. (중략)
나의 제자들은 시험삼아 법화경과 같이 신명을 아끼지 않고 수행하여 이번에 佛法을 시험할지어다. 南無妙法蓮華經 南無妙法蓮華經"
선시초
"이에 니치렌(日蓮)이 어떠한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일인지 용수(龍樹) 천친등(天親等)·천태(天台) 묘락등(妙樂等)조차도 나타내시지 않았던 대만다라(大曼茶羅)를 말법(末法) 이백여년경(二百餘年頃)에 비로소 법화홍통(法華弘通)의 기치(旗幟)로서 나타내 드리느니라. 이것은 결코 니치렌(日蓮)의 자작(自作)이 아니로다, 다보탑중(多寶塔中)의 대모니세존(大牟尼世尊)·분신(分身)의 제불(諸佛)을 판목(版木)으로 한 본존(本尊)이니라. 그러므로 수제(首題)의 오자(五字)는 중앙(中央)에 걸리고 사대천왕(四大天王)은 보탑(寶塔)의 사방(四方)에 좌정(坐定)하고 석가(釋迦)·다보(多寶)·본화(本化)의 사보살(四菩薩)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보현(普賢)·문수등(文殊等)·사리불(舍利弗)·목련등(目連等)이 무릎을 꿇고·일천(日天)·월천(月天)·제육천(第六天)의 마왕(魔王)·용왕(龍王)·아수라(阿修羅)·그 외(外)에 부동(不動)·애염(愛染)은 남북(南北)의 이방(二方)에 진(陣)을 치고·악역(惡逆)의 달다(達多)·우치(愚癡)의 용녀(龍女)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삼천세계(三千世界)의 사람의 수명(壽命)을 빼앗는 악귀(惡鬼)인 귀자모신(鬼子母神)·십나찰녀(十羅刹女) 등(等)·뿐만 아니라, 일본국(日本國)의 수호신(守護神)인 천조태신(天照太神)·팔번대보살(八幡大菩薩)·천신칠대(天神七代)·지신오대(地神五代)의 신(神)들·통틀어 대소(大小)의 신기등(神祇等)·체(體)의 신(神)이 줄지어 있으니 여타(餘他)의 용(用)의 신(神)이야 어찌 빠질소냐, 보탑품(寶塔品)에 가로되 「여러 대중(大衆)을 접(接)하여 모두 허공(虛空)에 있음」 운운(云云). 이들의 불(佛) 보살(菩薩)·대성(大聖) 등(等)·통틀어 서품(序品) 열좌(列座)의 이계팔번(二界八番)의 잡중등(雜衆等)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이 어본존(御本尊) 속에 주(住)하시어 묘법(妙法) 오자(五字)의 광명(光明)에 비추어져서 본유(本有)의 존형(尊形)으로 되니 이를 본존(本尊)이라고 하느니라.
경(經)에 가로되 「제법실상(諸法實相)」 이것이니라. 묘락(妙樂)가로되 「실상(實相)은 반드시 제법(諸法)·제법(諸法)은 반드시 십여(十如) 내지(乃至) 십계(十界)는 반드시 신토(身土)」 운운(云云). 또 가로되 「실상(實相)의 심리(深理) 본유(本有)의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 등(等)이라고 운운(云云). 전교대사(傳敎大師)가 가로되 「일념삼천(一念三千) 즉(卽) 자수용신(自受用身)·자수용신(自受用身)이란 출존형(出尊形)의 불(佛)」 문(文). 그런 고(故)로 미증유(未曾有)의 대만다라(大曼茶羅)라고 삼가 이름하였느니라. 불멸후(佛滅後)·이천이백이십여년(二千二百二十餘年)에는 이 어본존(御本尊)은 아직 출현(出現)하시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니라. (중략)
이러한 어본존(御本尊)을 공양(供養)해 드리시는 여인(女人)은 현재(現在)에는 행운(幸運)을 초래(招來)하고 후생(後生)에는 이 어본존(御本尊)이 좌우(左右) 전후(前後)에 다가서서 어둠에 등불과 같고 험난(險難)한 곳에서 강력(强力)한 종복(從僕)을 얻은 것과 같이 저쪽으로 돌고, 이쪽으로 다가와서 니치뇨부인(日女夫人)을 둘러싸고 지켜 주시리라. 결단코 명심하여 유녀(遊女)가 나의 집에 접근하는 것을 꺼리듯이 방법자(謗法者)를 방지(防止)하시라, 악지식(惡知識)을 버리고 선우(善友)에게 친근(親近)하라 함은 이것이니라. (중략)
이 어본존(御本尊)을 결코 타처(他處)에서 구(求)하지 말지어다. 다만 우리들 중생(衆生)이 법화경(法華經)을 수지(受持)하고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봉창(奉唱)하는 흉중(胸中)의 육단(肉團)에 계시느니라. 이것을 구식심왕진여(九識心王眞如)의 도(都)라고 하느니라. 십계구족(十界具足)이라 함은 십계(十界)가 일계(一界)도 빠짐없이 일계(一界)에 있음이라, 이에 의(依)해서 만다라(曼陀羅)라고 하며 만다라(曼陀羅)라고 함은 천축(天竺)의 이름으로서 여기서는 윤원구족(輪圓具足)이라고도 공덕취(功德聚)라고도 이름하느니라. 이 어본존(御本尊)도 다만 신심(信心)의 이자(二字)에 들어 있으니 이신득입(以信得入)이란 이것이니라. (중략)
니치렌(日蓮)의 제자단나등(弟子檀那等)·정직사방편(正直捨方便)·불수여경일게(不受余經一偈)라고 무이(無二)로 믿음으로써·이 어본존(御本尊)의 보탑(寶塔) 안에 들어 갈 수 있느니라·미덥고 미덥도다. 어떻게든 후생(後生)을 깊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시라, 결단코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만 봉창(奉唱)하여 부처가 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니라, 신심(信心)의 후박(厚薄)에 달려 있으며, 불법(佛法)의 근본(根本)은 신(信)으로써 근원(根源)으로 하느니라."
니치뇨부인답서(日女夫人答書)
"묻되, 차상(次上)에 인용(引用)하는 바의 문증(文證)·현증(現證)이 수승(殊勝)한데 어찌 신력(神力)의 일문(一文)에 집착(執着)하느뇨. 답(答)하되 이 일문(一文)은 심의(深意)가 있는 고(故)로 특히 훌륭하니라. 묻되, 그 심의(深意)는 어떠하오. 답(答)하노라, 이 문(文)은 석존(釋尊)이 본권속(本眷屬)인 지용(地涌)의 보살(菩薩)에게 결요(結要)의 오자(五字)의 당체(當體)를 부촉(付囑)한다고 설(說)하신 문(文)이기 때문이니라. 구원실성(久遠實成)의 석가여래(釋迦如來)는 나의 옛날의 소원(所願)과 같이 지금(只今)은 이미 만족(滿足)하였다. 일체중생(一切衆生)을 화도(化導)하여 모두 불도(佛道)에 들어가게 하였노라고 하여 소원(所願)은 이미 만족(滿足)했고, 여래(如來)의 멸후(滅後)·후오백세중(後五百歲中)·광선유포(廣宣流布)의 부촉(付囑)을 설(說)하기 위(爲)해서 지용(地涌)의 보살(菩薩)을 불러내어 본문(本門)의 당체연화(當體蓮華)를 요(要)를 가지고 부촉(付囑)하신 문(文)이므로 석존출세(釋尊出世)의 본회(本懷)·도량소득(道場所得)의 비법(秘法)·말법(末法)의 우리들이 현당이세(現當二世)를 성취(成就)하는 당체연화(當體蓮華)의 성증(誠證)은 이 문(文)이로다. 고(故)로 말법금시(末法今時)에 있어서 여래(如來)의 사자이외(使者以外)에는 당체연화(當體蓮華)의 증문(證文)을 알고 내놓을 사람은 도시(都是) 있을 수 없느니라. 참으로 비문(秘文)이로다, 참으로 대사(大事)로다, 참으로 존귀(尊貴)하니라.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당체의초(當體義抄)
"더욱더 면려(勉勵)하시라. 게을리 해서는 안 되느니라. 모든 사람이 이 경(經)을 믿기 시작할 때는 신심(信心)이 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중간쯤에는 신심(信心)도 약(弱)하고 승(僧)도 공경(恭敬)하지 않고 공양(供養)도 하지 않으며, 자만(自慢)하여 악견(惡見)을 하니 이는 두려워할지어다, 두려워할지어다. 처음부터 끝까지 더욱더 신심(信心)을 해 나가시라. 그렇지 않으면 후회(後悔)하게 되리라. 비유(譬喩)컨대 가마쿠라(鎌倉)에서 교토(京都)까지는 십이일(十二日)의 도정(道程)이니라, 그런데 십일일(十一日)남짓 걸어가서 이제 일일(一日)을 남겨두고 걸음을 멈춘다면 어떻게 수도(首都)의 달을 바라볼 수 있겠느뇨. 어떻게 하든 이 경(經)의 뜻을 아는 승(僧)에게 가까이 하여 더욱더 법(法)의 도리(道理)를 청문(聽聞)해서 신심(信心)의 걸음을 옮길지어다."
니이케어서(新池御書)
"오직 모름지기 그대 부처가 되고자 생각한다면 만(慢)의 당번(幢幡)을 쓰러뜨리고 분노(忿怒)의 지팡이를 버리고 오로지 일승(一乘)에 귀의(歸依)할지어다. 명문명리(名聞名利)는 금생(今生)의 장식(裝飾)이고 아만편집(我慢偏執)은 후생(後生)의 족가(足枷)이니라, 아아, 부끄러워하고 또 부끄러워할지어다, 두려워하고 두려워할지어다."
지묘법화문답초(持妙法華問答抄)
"이제 법화경(法華經)에 내지(來至)하여 실법(實法)을 수여(授與)하고 법화경(法華經) 본문(本門)의 약개근현원(略開近顯遠)에 내지(來至)하여, 화엄(華嚴)부터의 대보살(大菩薩)·이승(二乘)·대범천(大梵天)·제석(帝釋)·일월(日月)·사천(四天)·용왕(龍王) 등(等)은 위(位)가 묘각(妙覺)과 이웃하고, 또 묘각(妙覺)의 위(位)에 들어가느니라. 만약(萬若) 그렇다면 이제 우리들이 하늘을 향(向)하여 이를 본다면 생신(生身)의 묘각(妙覺)의 부처는 본위(本位)에 있으면서 중생(衆生)을 이익(利益)함이 이것이니라."
법화취요초(法華取要抄)
"다만 오로지 석가여래(釋迦如來)의 혼(魂)이 나의 몸에 대신하여 들어오신 것이리라. 내가 생각해도 기쁨은 몸에 넘치도다. 법화경(法華經)의 일념삼천(一念三千)이라 하는 대사(大事)의 법문(法門)은 이것이니라. 경(經)에 가로되 소위제법(所謂諸法) 여시상(如是相)이라 함은 무슨 일이뇨. 십여시(十如是)의 처음에 상여시(相如是)가 제일(第一)의 대사(大事)이므로 부처는 세상(世上)에 나오셨느니라. 지인(智人)은 기(起)를 알고 사(蛇)는 스스로가 사(蛇)를 안다고 함은 이것이니라. 중류(衆流)가 모여 대해(大海)가 되었고 미진(微塵)이 모여 수미산(須彌山)이 됐느니라. 니치렌(日蓮)이 법화경(法華經)을 믿기 시작(始作)한 것은 일본국(日本國)에는 일제(一渧)·일미진(一微塵)과 같음이라. 법화경(法華經)을 이인(二人)·삼인(三人)·십인(十人)·백천만억인(百千萬億人)이 불러 전(傳)해 간다면 묘각(妙覺)의 수미산(須彌山)으로도 되고 대열반(大涅槃)의 대해(大海)로도 될 것이로다. 부처가 되는 길은 이것 이외에 또 구(求)하는 일 없을지니라."
선시초(撰時抄)
"법화경(法華經)에 이르러 사미삼교(四味三敎)의 방편(方便)인 권교(權敎)·소승(小乘)·종종(種種)의 초화(草華)를 버리고 유일(唯一)한 묘법연화(妙法蓮華)를 설(說)하여 三의 화초(華草)를 열어 하나의 묘법연화(妙法蓮華)를 나타낼 때 사미(四味)·삼교(三敎)의 권인(權人)에게 초주(初住)의 연화(蓮華)를 수여(授與)하고부터 비로소 개근현원(開近顯遠)의 연화(蓮華)에 이르러 이주(二住)·삼주(三住) 내지(乃至) 십주(十住)·등각(等覺)·묘각(妙覺)의 극과(極果)의 연화(蓮華)를 득(得)하니라. (중략)
묻되, 차상(次上)에 인용(引用)하는 바의 문증(文證)·현증(現證)이 수승(殊勝)한데 어찌 신력(神力)의 일문(一文)에 집착(執着)하느뇨. 답(答)하되 이 일문(一文)은 심의(深意)가 있는 고(故)로 특히 훌륭하니라. 묻되, 그 심의(深意)는 어떠하오. 답(答)하노라, 이 문(文)은 석존(釋尊)이 본권속(本眷屬)인 지용(地涌)의 보살(菩薩)에게 결요(結要)의 오자(五字)의 당체(當體)를 부촉(付囑)한다고 설(說)하신 문(文)이기 때문이니라. 구원실성(久遠實成)의 석가여래(釋迦如來)는 나의 옛날의 소원(所願)과 같이 지금(只今)은 이미 만족(滿足)하였다. 일체중생(一切衆生)을 화도(化導)하여 모두 불도(佛道)에 들어가게 하였노라고 하여 소원(所願)은 이미 만족(滿足)했고, 여래(如來)의 멸후(滅後)·후오백세중(後五百歲中)·광선유포(廣宣流布)의 부촉(付囑)을 설(說)하기 위(爲)해서 지용(地涌)의 보살(菩薩)을 불러내어 본문(本門)의 당체연화(當體蓮華)를 요(要)를 가지고 부촉(付囑)하신 문(文)이므로 석존출세(釋尊出世)의 본회(本懷)·도량소득(道場所得)의 비법(秘法)·말법(末法)의 우리들이 현당이세(現當二世)를 성취(成就)하는 당체연화(當體蓮華)의 성증(誠證)은 이 문(文)이로다. 고(故)로 말법금시(末法今時)에 있어서 여래(如來)의 사자이외(使者以外)에는 당체연화(當體蓮華)의 증문(證文)을 알고 내놓을 사람은 도시(都是) 있을 수 없느니라. 참으로 비문(秘文)이로다, 참으로 대사(大事)로다, 참으로 존귀(尊貴)하니라.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당체의초(當體義抄)
"의심(疑心)하여 가로되, 그대가 말하는 것과 같다면, 이 나라는 법화경(法華經) 행자(行者)를 적시(敵視)하는 고(故)로 선신(善神)이 이 나라를 치벌(治罰)한다는 등(等)이라면 제인(諸人)의 역병(疫病)일텐데 어찌 그대의 제자(弟子)들 또한 병(病)들어 죽느뇨. 답(答)하여 가로되, 그대의 불심(不審)은 무엇보다도 일리가 있도다. 그러나 한쪽을 알고 한쪽을 모르느니라. 선(善)과 악(惡)은 무시(無始)로부터 좌우(左右)의 법(法)이니라. 권교(權敎) 및 제종(諸宗)의 본의(本意)는 선악(善惡)은 등각(等覺)에 한(限)함이라, 만약 그렇다면 등각(等覺)까지는 함께 죄과(罪過)가 있으리라. 법화종(法華宗)의 본의(本意)는 일념삼천(一念三千)·성악성선(性惡性善)·묘각(妙覺)의 위(位)에 역시 갖추어졌느니라. 원품(元品)의 법성(法性)은 범천(梵天)·제석(帝釋) 등(等)으로 나타나고, 원품(元品)의 무명(無明)은 제육천(第六天)의 마왕(魔王)으로 나타났으니, 선신(善神)은 악인(惡人)을 적시(敵視)하고, 악귀(惡鬼)는 선인(善人)을 적시(敵視)한다. 말법(末法)에 들어오면 자연(自然)히 악귀(惡鬼)는 국중(國中)에 충만(充滿)하여, 와석초목(瓦石草木)이 즐비하게 무성(茂盛)함과 같으며 선귀(善鬼)는 천하(天下)에 적으니 성현(聖賢)이 귀하기 때문이니라. 이 역병(疫病)은 염불자(念佛者)·진언사(眞言師)·선종(禪宗)·율승(律僧) 등(等)보다도 니치렌(日蓮)의 편이야말로 많이 병(病)들어 죽어야 하리라.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그들보다도 적게 병(病)들고 적게 죽는 것은 불가사의(不可思議)하게 생각하노라. 사람이 적은 때문인지 또는 신심(信心)이 강성(强盛)해서인지."
치병대소권실위목(治病大小權實違目)
"법화경(法華經)에서는 이승(二乘) 칠역(七逆)의 자(者)를 허용(許容)하는데다가·박지(博地)의 범부(凡夫)가 일생중(一生中)에 불위(佛位)에 들어가 묘각(妙覺)에 이르러서 인과(因果)의 공덕(功德)을 구족(具足)하느니라."
십법계명인과초(十法界明因果抄)
"악중(惡中)의 대악(大惡)은 나의 몸에 그 고(苦)를 받을 뿐더러 자(子)와 손(孫)과 말(末)의 칠대(七代)까지도 미치는 것이외다. 선(善)의 중(中)의 대선(大善)도 또한 이와 같아서, 목련존자(目連尊者)가 법화경(法華經)을 신봉(信奉)하신 대선(大善)은, 자신(自身)이 부처가 될뿐 아니라 부모(父母)도 부처가 되시었다. 상칠대(上七代)·하칠대(下七代)·상무량생(上無量生) 하무량생(下無量生)의 부모(父母)들도 의외(意外)로 부처가 되시었다, 내지(乃至) 자식(子息)·부부(夫婦)·종자(從者)·단나(檀那)·무량(無量)의 중생(衆生)이 삼악도(三惡道)를 벗어날 뿐 아니라 모두 초주(初住)·묘각(妙覺)의 부처가 되시었다. 그러므로 법화경(法華經)의 제삼(第三)에 가로되 「바라건대 이 공덕(功德)으로써 널리 일체(一切)에게 미치게 하여 우리들과 중생(衆生)과 모두 같이 불도(佛道)를 성취(成就)하겠노라」 운운(云云)."
우란분어서(盂蘭盆御書)
"석존(釋尊)의 인행과덕(因行果德)의 이법(二法)은 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오자(五字)에 구족(具足)하였다. 우리들이 이 오자(五字)를 수지(受持)하면 자연(自然)히 그의 인과(因果)의 공덕(功德)을 물려주시느니라. 사대성문(四大聲聞)의 영해(領解)에 가로되 「무상보취(無上寶聚)·불구자득(不求自得)」 운운(云云). 우리들의 기심(己心)의 성문계(聲聞界)니라. 「나와 여(如)히 동등(同等)케 하여 다름이 없노라. 나의 옛날의 소원(所願)과 같이 지금은 이미 만족(滿足)하였으니, 일체중생(一切衆生)을 화(化)하여 모두 불도(佛道)에 들어가게 하노라」 묘각(妙覺)의 석존(釋尊)은 우리들의 혈육(血肉)이니라. 인과(因果)의 공덕(功德)은 골수(骨髓)가 아니겠느뇨. 보탑품(寶塔品)에 가로되 「대저 능(能)히 이 경법(經法)을 호지(護持)하는 자(者)는 즉 이는 나와 그리고 다보(多寶)를 공양(供養)함이니라, 내지(乃至) 또 모든 여기에 오신 화불(化佛)의 모든 세계(世界)를 장엄(莊嚴)하고 광식(光飾)하시는 자(者)를 공양(供養)함이니라. 석가(釋迦)·다보(多寶)·시방(十方)의 제불(諸佛)은 우리들의 불계(佛界)이니라. 그의 뒤를 계소(繼紹)하여 그 공덕(功德)을 수득(受得)함이니 수유(須臾)도 이를 들으면 즉(卽)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구경(究竟)할 수 있음」이란 이것이로다."
관심의 본존초(觀心本尊抄)
"대체 이 경(經)은 악인(惡人)·여인(女人)·이승(二乘)·천제(闡提)를 가리지 않는 고(故)로 개성불도(皆成佛道)라고도 하며 또한 평등대혜(平等大慧)라고도 한다. 선악불이(善惡不二)·사정일여(邪正一如)라고 들음으로써 그대로 내증성불(內證成佛)하는 고(故)로 즉신성불(卽身成佛)이라 하며 일생(一生)에 증득(證得)하는 고(故)로 일생묘각(一生妙覺)이라고 함이라. 의(義)를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부르면 오직 부처와 부처가 기뻐하시니 아즉환희제불역연운운(我卽歡喜諸佛亦然云云). 백천(百千)을 합(合)친 약(藥)도 입으로 마시지 않는다면 병(病)은 낫지 않으며 곳간에 보배를 가지고도 열 줄을 몰라서 굶주리고, 품에 약(藥)을 가지고도 복용(服用)할 줄을 몰라서 죽는 것과 같도다. 여의보주(如意寶珠)라는 옥(玉)은 오백제자품(五百弟子品)의 설(說)인데 이 경(經)의 덕(德)도 또한 이와 같다. 관심(觀心)과 아울러서 읽으면 말할 나위도 없고 관념(觀念)을 하지 않더라도 처음에 말했듯이 소위제법여시상여(所謂諸法如是相如) 운운(云云)이라 읽을 때는 여(如)는 공(空)의 의(義)이므로 나의 몸의 선업(先業)에 받은 바의 상성체역(相性體力)·그 구족(具足)하는 바의 팔십팔사(八十八使)의 견혹(見惑)·팔십일품(八十一品)의 사혹(思惑)·그 공(空)은 보신여래(報身如來)이니라. 소위제법여시상(所謂諸法如是相) 운운(云云)이라고 읽으면 이는 가(假)의 의(義)이므로 나의 이 몸이 선업(先業)에 의(依)해 받은 상성체역(相性體力) 운운(云云), 그 구족(具足)한 진사(塵沙)의 혹(惑)은 모두 즉신(卽身) 응신여래(應身如來)이니라. 소위제법여시(所謂諸法如是)라고 읽을 때는 이는 중도(中道)의 의(義)에 따라 업(業)에 의(依)해 받는 바의 상성(相性) 등(等) 운운(云云). 그에 따른 무명(無明)은 모두 물러가고 즉신(卽身) 법신(法身)의 여래(如來)로 마음을 연다. 이 십여시(十如是)·삼전(三轉)으로 읽는 일·삼신즉일신(三身卽一身)·일신즉삼신(一身卽三身)의 의(義)이고 三으로 나뉘어지지만 一이며 一로 정(定)하여졌지만 三이니라."
일념삼천법문(一念三千法門)
"일념삼천(一念三千)도 신(信)의 일자(一字)에서 일어나며 삼세(三世)의 제불(諸佛)의 성도(成道)도 신(信)의 일자(一字)에서 일어나느니라. 이 신(信)의 자(字)는 원품(元品)의 무명(無明)을 자르는 이검(利劍)이로다, 그 까닭은 신(信)은 무의왈신(無疑曰信)이라 해서 의혹(疑惑)을 단파(斷破)하는 이검(利劍)이고, 해(解)란 지혜(智慧)의 이명(異名)이며 신(信)은 가치(價値)와 같고 해(解)는 보배와 같다, 삼세(三世)의 제불(諸佛)의 지혜(智慧)를 사는 것은 신(信)의 일자(一字)이며 지혜(智慧)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이니라. 신(信)은 지혜(智慧)의 인(因)으로서 명자즉(名字卽)이면, 신(信) 외(外)에 해(解)가 없고 해(解) 외(外)에 신(信)이 없으며 신(信)의 일자(一字)를 가지고 묘각(妙覺)의 종자(種子)로 정(定)했느니라. 지금 니치렌(日蓮) 등(等)의 동류(同類)는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신수영납(信受領納)하는 고(故)로 무상보취(無上寶聚) 불구자득(不求自得)의 대보주(大寶珠)를 얻는 것이며 신(信)은 지혜(智慧)의 종자(種子)이고 불신(不信)은 타옥(墮獄)의 인(因)이니라."
어의구전(御義口傳) 57세 미노부
"설사(說使) 등각(等覺)의 보살(菩薩)이라 해도 원품(元品)의 무명(無明)이라고 하는 대악귀(大惡鬼)가 몸에 들어가서 법화경(法華經)이라고 하는 묘각(妙覺)의 공덕(功德)을 장해(障害)함이니 어찌 하물며 그 이하(已下)의 사람들에 있어서랴."
형제초(兄弟抄)
"모든 대지미진(大地微塵)과 같은 제보살(諸菩薩)은 등각(等覺)의 위(位)까지·올라가서 원품(元品)의 무명(無明)만을 가지고 있었으나·석가여래(釋迦如來)를 만나 뵈옵고 원품(元品)의 대석(大石)을 파(破)하려고 생각하였는데 교주석존(敎主釋尊)·사십여년간(四十餘年間)은 「인분가설과분불가설(因分可說果分不可說)」이라 하여 묘각(妙覺)의 공덕(功德)을 설(說)하여 나타내시지 않았느니라. 그러므로 묘각(妙覺)의 위(位)에 오르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으니 본의(本意) 아닌 일이로다. 그런데 영산(靈山) 팔년간(八年間)에 「유일불승명위과분(唯一佛乘名爲果分)」이라고 설(說)해 나타내시니·모든 보살(菩薩)이 모두 묘각(妙覺)의 위(位)에 올라 석가여래(釋迦如來)와 오달(悟達)이 동등(同等)하여·수미산정(須彌山頂)에 올라가서 사방(四方)을 보는 것과 같고 장야(長夜)에 일륜(日輪)이 뜬 것과 같이 밝아지셨으니 부처의 분부(吩咐)가 없더라도 법화경(法華經)을 홍통(弘通)하지 않으리오. 또한 행자(行者)를 대신(代身)하지 않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으시리라. 그래서 「아불애신명(我不愛身命) 단석무상도(但惜無上道)·불석신명(不惜身命) 당광설차경(當廣說此經)」 등(等)이라고 서언(誓言)하셨느니라."
기도초(祈禱抄)
"처음의 삼여시(三如是)는 본각(本覺)의 여래(如來)이니라. 끝의 칠여시(七如是)와 일체(一體)로서 무이무별(無二無別)이므로 본말구경등(本末究竟等)이라 하느니라. 본(本)이라 함은 불성(佛性)·말(末)이라 함은 미현(未顯)의 부처·구계(九界)의 이름이니라, 구경등(究竟等)이라고 함은 묘각구경(妙覺究竟)의 여래(如來)와 이즉(理卽)의 범부(凡夫)인 우리들과 차별(差別)이 없음을 구경등(究竟等)이라고도 평등대혜(平等大慧)의 법화경(法華經)이라고도 하느니라. 처음의 삼여시(三如是)는 본각(本覺)의 여래(如來)이며 본각(本覺)의 여래(如來)를 깨달아 내놓으신 묘각(妙覺)의 부처이므로 우리들은 묘각(妙覺)의 부모(父母)이며 부처는 우리들의 소생(所生)의 자(子)이니라."
일념삼천법문(一念三千法門)
"여아석소원(如我昔所願)은 본인묘(本因妙), 여아등무이(如我等無異)는 본과묘(本果妙)이니라, 묘각(妙覺)의 석존(釋尊)은 우리들의 혈육(血肉)이고 인과(因果)의 공덕(功德)은 골수(骨髓)가 아닐소냐. 석(釋)에는 거인권신(擧因勸信)이라고 거인(擧因)은 즉본과(卽本果)이니라. 지금 니치렌(日蓮)이 부르는 바의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는 말법(末法) 일만년(一萬年)의 중생(衆生)까지 성불(成佛)시키는 것이니 어찌 금자이만족(今者已滿足)이 아닐 손가. 이(已)란 건장오년(建長五年) 사월(四月) 이십팔일(二十八日)에 처음으로 부르기 시작한 바의 제목(題目)을 가리켜 이(已)라 이해할지니라. 묘법(妙法)의 대양약(大良藥)을 가지고 일체중생(一切衆生)의 무명(無明)의 대병(大病)을 치료(治療)하는 것은 의심(疑心)이 없느니라, 이것에 생각이 미칠 때가 바로 만족(滿足)이며 만족(滿足)이란 성불(成佛)을 말하는 것이니라. 석(釋)에 가로되 「원(圓)은 원융원만(圓融圓滿)에 이름 부치고, 돈(頓)은 돈극돈족(頓極頓足)에 이름 부친다」라고, 이것을 생각할지니라 운운(云云)."
어의구전(御義口傳) 57세 미노부
"나의 머리는 부모(父母)의 머리·나의 발은 부모(父母)의 발·나의 십지(十指)는 부모(父母)의 십지(十指)·나의 입은 부모(父母)의 입이니라, 비유하면 종자(種子)와 열매, 몸과 그림자와 같다. 교주석존(敎主釋尊)의 성도(成道)는 정반(淨飯)·마야(摩耶)의 득도(得道)·길점사자(吉占師子)·청제녀(靑提女)·목건존자(目犍尊者)는 동시(同時)의 성불(成佛)이니라. 이와 같이 관(觀)할 때·무시(無始)의 업장(業障)이 홀연(忽然)히 사라지고 심성(心性)의 묘련(妙蓮)이 홀연(忽然)히 열리시었다, 그런 뒤에 충분히 불사(佛事)를 마치고 사고(事故) 없이 돌아가셨음 운운(云云)"
망지경사(忘持經事)
"부모(父母)에게 효양(孝養)할 뜻이 있는 사람들은 법화경(法華經)을 보내시라. 교주석존(敎主釋尊)이 부모(父母)의 효양(孝養)에는 법화경(法華經)을 보내시었소. 니치렌(日蓮)은 어머니가 생존(生存)하고 계실 때에 말씀하신 일을 너무나 위배(違背)해 왔었기 때문에, 지금 돌아가시고 나니, 대단히 후회(後悔)스럽게 생각되기에, 일대성교(一代聖敎)를 생각하여 어머니에게 효양(孝養)을 하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어머니를 추선(追善)해 드리는 사람들을 내 자신(自身)의 일과 같이 생각하여 왔으므로 너무나도 기쁘게 생각되어져서 대략 적어서 말씀드립니다. 정녕 과거(過去)의 성령(聖靈)도 당장에 육도(六道)의 구예(垢穢)를 떠나서 영산정토(靈山淨土)에 가시리라."
교부사에몬노조부인답서((刑部左衛門尉夫人答書)
"원(願)하건대 이 공덕(功德)을 가지고 부모(父母)와 사장(師匠)과 일체중생(一切衆生)에게 회향(回向)해 드리고자 기청(祈請)하느니라."
본존문답초(本尊問答抄)
"어떠한 남자(男子)를 지아비로 삼으실지라도, 법화경(法華經)의 적(敵)이라면 따르지 말지어다. 더욱더 강성(强盛)한 신심(信心)을 가지시라. 얼음은 물에서 나왔지만 물보다도 차갑고, 청(靑)은 남(藍)에서 나왔지만·거듭하면 남(藍)보다도 색(色)이 짙어진다. 같은 법화경(法華經)이라고 해도·신심(信心)을 거듭하면·타인(他人)보다도 색(色)도 더하고 이생(利生)도 있을 것이니라."
오토님어소식(乙님御消息)
"악(惡)의 인(因)에 십사(十四)가 있으니·일(一)에는 교만(憍慢)·이(二)에는 해태(懈怠)·삼(三)에는 계아(計我)·사(四)에는 천식(淺識)·오(五)에는 착욕(著欲)·육(六)에는 불해(不解)·칠(七)에는 불신(不信)·팔(八)에는 빈축(顰蹙)·구(九)에는 의혹(疑惑)·십(十)에는 비방(誹謗)·십일(十一)은 경선(輕善)·십이(十二)는 증선(憎善)·십삼(十三)은 질선(嫉善)·십사(十四)는 한선(恨善)이니라」 이 십사비방(十四誹謗)은 재가(在家) 출가(出家)에 걸치는지라 두렵도다 두렵도다, 과거(過去)에 불경보살(不輕菩薩)은 일체중생(一切衆生)에게 불성(佛性)이 있으니 법화경(法華經)을 수지(受持)하면 반드시 성불(成佛)하리라. 그를 가벼이 하면 부처를 가벼이 하는 것으로 된다고 하여 예배(禮拜)의 행(行)을 세우셨느니라. 법화경(法華經)을 갖지 않은 사람마저도 만약 갖게 된다면, 불성(佛性)이 있다 하여 그와 같이 예배(禮拜)하시었다. 하물며 수지(受持)한 재가(在家) 출가(出家)의 자(者)에 있어서랴."
마쓰노전답서(松野殿答書)
"니치렌(日蓮)은 명일(明日)·사도지방(佐渡地方)으로 가느니라. 오늘 밤 날씨가 추우니·옥중(獄中)의 상황(狀況)이 염려되어 안스럽기만 하도다. 장하도다, 귀하(貴下)는 법화경(法華經) 일부(一部)를 색심이법(色心二法)에 걸쳐서 행(行)한 몸이고 보면, 부모(父母)·육친(六親)·일체중생(一切衆生)마저도 구제(救濟)하실 몸이니라. 법화경(法華經)을 다른 사람이 읽는 것은 입만으로 말만으로는 읽지만 마음으로는 읽지 아니하고, 마음으로는 읽지만 몸으로 읽지 아니하니, 색심이법(色心二法) 다같이 행(行)하시는 것이야말로 존귀(尊貴)하도다.
천제동자(天諸童子)·이위급사(以爲給使)·도장불가독불능해(刀杖不加毒不能害)라고 설(說)해져 있으므로 별(別)다른 일은 없을 것이니라. 옥(獄)을 나오시면 서둘러 찾아오시라. 만나 보고 만나뵈리라. 공공근언(恐恐謹言)."
토룡어서(土籠御書)
"고산(高山)에 오르는 자(者)는 반드시 내려오며 내가 남을 경시(輕視)하면 도리어 자신(自身)이 남에게 경이(輕易)당하느니라, 형상단엄(形狀端嚴)을 헐뜯으면 추루(醜陋)의 과보(果報)를 얻고 남의 의복음식(衣服飮食)을 빼앗으면 반드시 아귀(餓鬼)가 된다, 지계존귀(持戒尊貴)를 비웃으면 빈천(貧賤)한 집에 태어나고 정법(正法)의 집을 비방(誹謗)하면 사견(邪見)의 집에 태어난다. 선계(善戒)를 비웃으면 국토(國土)의 백성(百姓)으로 되어 왕난(王難)을 만나니 이는 통상(通常)의 인과(因果)의 정(定)해진 법(法)이니라."
사도어서(佐渡御書)
"대저 법화경(法華經)의 대백우거(大白牛車)라고 함은, 나도 남도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가 타야 할 수레입니다. 그 수레는 법화경(法華經)의 비유품(譬喩品)이라고 하는 곳에 자상하게 설(說)하시었소. 그러나 그 경(經)은 나습(羅什)이 생략(省略)했기 때문에 위세(委細)하게는 설(說)해 있지 않으며, 천축(天竺)의 범품(梵品)에는 수레의 장식물(裝飾物)·그 외(外)·문신계정진사참(聞信戒定進捨慚)의 칠보(七寶)까지 위세(委細)히 설(說)해져 있음을 니치렌(日蓮)은 대략(大略) 피견(披見)했나이다. 우선 이 수레라고 함은, 종광(縱廣) 오백유순(五百由旬)의 수레로서 금(金)의 바퀴를 달고 은(銀)의 대들보를 올리고, 금(金)줄을 가지고 팔방(八方)으로 매달아 놓았으며·삼십칠중(三十七重)의 섬돌을 은(銀)으로써 닦아 빛내고, 팔만사천(八萬四千)의 보물(寶物)의 방울을 수레의 사면(四面)에 매달았더라. 삼백육십폭(三百六十幅)의 홍색(紅色)의 비단의 깃발을, 옥(玉)의 장(長)대에 달아 휘날리고, 사만이천(四萬二千)의 난간(欄干)에는 사천왕(四天王)의 번(番)을 붙이고, 또한 수레 안에는 육만구천삼백팔십여체(六萬九千三百八十餘體)의 불(佛)·보살(菩薩)이 보연화(寶蓮華)에 앉으시었다. 제석(帝釋)은 모든 권속(眷屬)을 거느리시고 천이백(千二百)의 음악(音樂)을 연주(演奏)하며, 범왕(梵王)은 천개(天蓋)를 받쳐 들고 지신(地神)은 산하(山河)·대지(大地)를 평등(平等)하게 하시었다. 그러므로 법성(法性)의 공중(空中)에 자재(自在)로 날아가는 수레야말로 대백우거(大白牛車)라고 말하느니라. 나보다 나중에 오실 사람들은 이 수레에 타시고서 영산(靈山)으로 오도록 하시라. 니치렌(日蓮)도 같은 수레를 타고 맞으러 가겠나이다.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日蓮花押
대백우거어소식(大白牛車御消息)
"공양(供養)하신 물품(物品) 여러가지 받았소이다. 그런데 우에노전(上野殿) 사거(死去)의 후(後)에 소식(消息)이 명도(冥途)로부터 있었는지 듣고 싶나이다. 그러나 있으리라고도 생각되지 않으며 만약 꿈이 아니고서는 행여 모습을 볼 수도 없으리라. 환상(幻象)이 아니고서는 어찌 볼 수가 있으리요. 틀림없이 영산정토(靈山淨土)에서 사바(裟婆)의 일을 주야(晝夜)로 듣고 보고 계시리라. 처자등(妻子等)은 육안(肉眼)이므로 볼 수도 들을 수도 없겠지만 마침내는 함께 있게 된다고 생각하시라.
생생세세(生生世世)동안 맺어진 지아비는 대해(大海)의 모래의 수보다도 많이 있었을 것이지만 이번의 맺음이야 말로 참된 맺음의 지아비로다, 그 까닭은 부군(夫君)의 권유(勸誘)에 의(依)해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로 되셨으니 부처라고 배례(拜禮)하실지어다. 살아계셨을 때는 생(生)의 부처·지금은 사(死)의 부처·생사(生死) 다 같이 부처이니라. 즉신성불(卽身成佛)이라고 하는 중요한 법문(法門)은 이것이로다. 법화경(法華經)의 제(第)四에 가로되 「만약(萬若) 능히 수지(受持)하는 일이 있으면 즉(卽) 불신(佛身)을 수지(受持)함이라」 운운(云云).
대저 정토(淨土)라 함도 지옥(地獄)이라 함도 밖에는 없느니라. 오직 우리들의 가슴속에 있느니라·이것을 깨달음을 부처라 하고 이에 미혹(迷惑)함을 범부(凡夫)라 하며 이것을 깨닫게 함은 법화경(法華經)이니라. 만약 그렇다면 법화경(法華經)을 수지(受持)하여 받드는 자는 지옥즉(地獄卽) 적광(寂光)이라고 깨닫게 되옵니다. 설사 무량억세(無量億歲)동안 권교(權敎)를 수행(修行)할지라도 법화경(法華經)에서 떨어진다면 다만 언제나 지옥(地獄)이니라. 이 일은 니치렌(日蓮)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석가불(釋迦佛)·다보불(多寶佛)·시방분신(十方分身)의 제불(諸佛)이 정(定)해 놓으셨느니라. 그러므로 권교(權敎)를 수행(修行)하는 사람은 불에 타는 자(者)가 또 불 속에 들어가고 물에 가라 앉은 자(者)가 더욱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것과 같다. 법화경(法華經)을 수지(受持)하지 않은 사람은 불과 물속에 들어 가는 것과 같으며 법화경(法華經) 비방(誹謗)의 악지식(惡知識)인 호넨(法然)·고보등(弘法等)을 의지(依持)하여 아미타경(阿彌陀經)·대일경등(大日經等)을 믿으시는 것은 불에서 더 불속으로 물에서 더 물의 밑바닥으로 들어 가는 것과 같으니, 어찌하여 고환(苦患)을 면(免)할 수 있으리요. 등활(等活)·흑승(黑繩)·무간지옥(無間地獄)의 화갱(火坑)·홍련(紅蓮)·대홍련(大紅蓮)의 얼음의 밑바닥에 들어가 가라 앉는다는 것은 의심(疑心)없느니라. 법화경제이(法華經第二)에 가로되 「그 사람은 명종(命終)하여 아비옥(阿鼻獄)에 들어가며 이와같이 전전(展轉)하여 무수겁(無數劫)에 이르리라」 운운(云云).
고성령(故聖靈)은 이 고(苦)를 면(免)하시고 이미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인 니치렌(日蓮)의 단나(檀那)이니라. 경(經)에 가로되 「설사 대화(大火)에 들어가도 불도 태울 수 없으며 만약 대수(大水)에 표류(漂流)당할지라도 그 명호(名號)를 부르면 곧 얕은 곳에 이르리라」 또 가로되 「불도 태울 수가 없으며 물도 떠돌게 할 수가 없느니라.」 운운(云云). 아아, 믿음직스럽고 믿음직스럽도다. 요컨대 지옥(地獄)을 밖에서 구(求)하고 옥졸(獄卒)의 철장(鐵杖)과 아방나찰(阿防羅刹)의 가책(呵責)의 소리도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니라. 이 법문(法門)은 중대한 대사(大事)이지만 부인(夫人)에게는 가르쳐 드리리다. 예(例)컨대 용녀(龍女)에 대하여 문수보살(文殊菩薩)이 즉신성불(卽身成佛)의 비법(秘法)을 설(說)하신 것과 같으니라. 이것을 들으신 후(後)에는 더욱더 신심(信心)을 해나가시라, 법화경(法華經)의 법문(法門)을 들음에 따라 더욱더 신심(信心)을 면려함을 참된 도심자(道心者)라고 하느니라. 천태(天台) 가로되 「종람이청(從藍而靑)」운운(云云). 이 석(釋)의 참뜻은 남(藍)은 잎의 때보다도 더 물들이면 더욱더 푸르다. 법화경(法華經)은 남(藍)과 같고 수행(修行)이 깊은 것은 더욱더 푸른 것과 같으니라.
지옥(地獄)이라는 두자(字)를 땅을 판다고 읽느니라. 사람이 죽었을 때 땅을 파지 않는 자(者)가 있겠습니까, 이것을 지옥(地獄)이라고 함이라. 사인(死人)을 태우는 불은 무간(無間)의 화염(火炎)이니라. 처자(妻子), 권속(眷屬)이 사인(死人)의 전후(前後)에 서둘러 따라 감은 옥졸(獄卒)·아방나찰(阿防羅刹)이니라, 처자등(妻子等)이 슬피 우는 것은 옥졸(獄卒)의 소리이니라. 이척오촌(二尺五寸)의 장(杖)은 철장(鐵杖)이며 말은 마두(馬頭) 소는 우두(牛頭)로다. 구멍은 무간대성(無間大城)·팔만사천(八萬四千)의 솥은 팔만사천(八萬四千)의 진로문(塵勞門)·집을 하직함은 사출(死出)의 산(山)·효자(孝子)가 강(江)가에 잠시 멈추어 섰음은 삼도(三途)의 애하(愛河)로다. 달리 구(求)한다는 것은 덧없고 덧없는 일이니라. 이 법화경(法華經)을 수지(受持)하여 받드는 사람은 이를 뒤집어 지옥(地獄)은 적광토(寂光土)·화염(火焰)은 보신여래(報身如來)의 지화(智火)·사인(死人)은 법신여래(法身如來)·화갱(火坑)은 대자비위실(大慈悲爲室)의 응신여래(應身如來), 또 지팡이는 묘법실상(妙法實相)의 지팡이, 삼도(三途)의 애하(愛河)는 생사즉열반(生死卽涅槃)의 대해(大海)·사출(死出)의 산(山)은 번뇌즉보리(煩惱卽菩提)의 중산(重山)이니라. 이와 같이 이해(理解)하시라·즉신성불(卽身成佛)이라고도 개불지견(開佛知見)이라고도 하며 이것을 깨닫고 이것을 여는것을 말하느니라. 제바달다(提婆達多)는 아비옥(阿鼻獄)을 적광극락(寂光極樂)으로 열었고 용녀(龍女)의 즉신성불(卽身成佛)도 이것 이외는 없느니라. 역즉시순(逆卽是順)의 법화경(法華經)이기 때문이며 이는 묘(妙)의 일자(一字)의 공덕(功德)이니라.
용수보살(龍樹菩薩)이 가로되 「비유컨대 대약사(大藥師)가 능(能)히 독(毒)을 바꾸어 약(藥)이 되게 함과 같으니라」 운운(云云). 묘락대사(妙樂大師) 가로되 「어찌 가야(伽倻)를 떠나서 따로 상적(常寂)을 구(求)하리요, 적광(寂光)의 외(外)·따로 사바(裟婆)가 있음이 아니로다」 운운(云云). 또 가로되 「실상(實相)은 반드시 제법(諸法)·제법(諸法)은 반드시 십여(十如)·십여(十如)는 반드시 십계(十界)·십계(十界)는 반드시 신토(身土)이니라」 운운(云云). 법화경(法華經)에 가로되 「제법실상내지(諸法實相乃至)·본말구경등(本末究竟等)」 운운(云云). 수량품(壽量品)에 가로되, 「아실(我實)로 성불이래(成佛已來) 무량무변(無量無邊)이니라」 등(等) 운운(云云). 이 경문(經文)에 아(我)라고 함은 십계(十界)이니라. 십계본유(十界本有)의 부처이므로 정토(淨土)에 주(住)하느니라. 방편품(方便品)에 가로되 「이 법(法)은 법위(法位)에 주(住)하여 세간(世間)의 상상주(相常住)이니라」 운운(云云). 세간(世間)의 관습(慣習)으로서 삼세상항(三世常恒)의 상(相)이므로 한탄(恨歎)할 일도 아니며 놀랄 일이 아니로다. 상(相)의 일자(一字)는 팔상(八相)이며 팔상(八相)도 생사(生死)의 이자(二字)를 벗어 나지 않으니 이와 같이 깨달음을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의 즉신성불(卽身成佛)이라고 하느니라. 고성령(故聖靈)은 이 경(經)의 행자(行者)이므로 즉신성불(卽身成佛)은 의심할 바 없으니 그렇게 한탄하시지 말지어다. 또한 한탄하시는 것이 범부(凡夫)의 도리이니라. 그러나 성인(聖人)에게도 이것은 있느니라, 석가불(釋迦佛)이 입멸(入滅)하셨을 때 깨달은 제대제자(諸大弟子)들의 한탄은 범부(凡夫)의 거동을 명시(明示)하신 것일까요.
어떻게든 추선공양(追善供養)을 마음껏 면려(勉勵)하실지어다. 고덕(古德)의 말에도 심지(心地)를 구식(九識)에 갖고 수행(修行)은 육식(六識)에서 하라고 가르치셨으니·도리(道理)이기도 하지요. 이 문(文)에는 니치렌(日蓮)이 비장(秘藏)한 법문(法門)을 써 놓았으므로 내밀(內密)히 하시라·내밀(內密)히 하시라, 황공하오이다·황공하오이다."
우에노전미망인답서(上野殿未亡人答書) 53세 미노부
"단의(單衣) 한벌 보내 주시어 잘 받았나이다.
기로국(棄老國)에서는 노자(老者)를 버렸고 일본국(日本國)에서는 지금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버리고 있다. 대저 이 나라 개벽이래(開闢以來) 천신칠대(天神七代)·지신오대(地神五代)·인왕백대(人王百代)가 되느니라. 진무(神武)로부터 이후(已後) 구십대(九十代) 긴메이(欽命)때부터 불법(佛法)이 시작(始作)되어 육십대(六十代)·칠백여년(七百餘年)에 이르렀는데, 그 중에 부모(父母)를 살해(殺害)한 자(者)·조적(朝敵)이 된 자(者)·산적(山賊)·해적(海賊)·수(數)를 알 수 없지만 법화경(法華經) 때문에 니치렌(日蓮)처럼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은 사람이 있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노라. 혹(或)은 왕(王)에게는 미움 받았지만 백성(百姓)에게는 미움 받지 않았고, 혹(或)은 승(僧)은 미워해도 속(俗)은 미워하지 않았으며, 남자(男子)는 미워해도 여자(女子)는 미워하지 않았으며, 혹(或)은 우인(愚人)은 미워해도 지인(智人)은 미워하지 않았느니라. 나는 왕(王)보다는 백성(百姓)·남녀(男女)보다는 승니(僧尼)·우인(愚人)보다는 지인(智人)이 미워하고 악인(惡人)보다는 선인(善人)이 미워하니 전대미문(前代未聞)의 몸이며 후대(後代)에도 있을 수 없다고 생각되노라. 고(故)로 생년(生年)三十二로부터 금년(今年)五十四에 이르기까지 이십여년간(二十餘年間)·혹(或)은 사원(寺院)에서 추방(追放) 당(當)하고·혹(或)은 주처(住處)에서 축출(逐出)당하고·혹(或)은 친족(親族)이 괴로움을 받고·혹(或)은 밤에 습격(襲擊)을 당(當)하고·혹(或)은 합전(合戰)을 만나고·혹(或)은 악구(惡口)를 수(數)없이 듣고·혹(或)은 구타(毆打)당하고·혹(或)은 부상(負傷)을 당하고·혹(或)은 제자(弟子)가 살해(殺害) 당(當)하고·혹(或)은 참수(斬首) 당(當)할 뻔도 했고·혹(或)은 유죄(流罪)가 두번에 이르니, 이십여년간(二十餘年間) 한시(時) 반시(半時)도 마음 편한 일이 없노라. 요리토모(賴朝)의 칠년(七年)의 합전(合戰)에도 틈은 있었으리라. 요리요시(賴義)의 십이년(十二年)의 투쟁(鬪爭)도 어찌 이보다야 더 했겠느뇨.
법화경(法華經)의 제사(第四)에 가로되 「여래(如來)의 현재(現在)조차 역시 원질(怨嫉)이 많다」 등(等) 운운(云云). 제오(第五)에 가로되 「일체세간(一切世間)에 원(怨)이 많아 믿기 어렵도다」 등(等) 운운(云云). 천태대사(天台大師)도 아마 일찍이 이 경문(經文)을 읽지 않으셨으니 일체세간(一切世間)이 모두 신수(信受)했기 때문이니라. 전교대사(傳敎大師)도 미치지 못하심이니 황멸도후(況滅度後)의 경문(經文)에 부합(符合)하지 않았기 때문이니라, 니치렌(日蓮)이 일본국(日本國)에 출현(出現)하지 않았더라면 여래(如來)의 금언(金言)도 허언(虛言)이 되고 다보(多寶)의 증명(證明)도 무엇하리요, 시방(十方)의 제불(諸佛)의 말씀도 망어(妄語)가 되리라. 불멸후(佛滅後) 이천이백이십여년(二千二百二十餘年)·월지(月氏)·한토(漢土)·일본(日本)에 일체세간다원난신(一切世間多怨難信)의 사람이 없으니, 니치렌(日蓮)이 없다면 불어(佛語)는 이미 없어졌으리라. 이와 같은 몸이기에 소무(蘇武)와 같이 눈을 먹으며 명(命)을 잇고 이능(李陵)과 같이 도롱이를 입고 세상을 살아간다. 산림(山林)에 들어가 열매가 없을때는 공복(空腹)으로 양삼일(兩三日)을 지나고·녹피(鹿皮)가 찢어지면 알몸으로 삼사개월(三四個月)을 지냈노라. 이러한 사람을 어찌하여 불쌍히 생각하시었을까. 지금까지 만나보지도 못한 사람의 살을 감출 옷을 보내주신 일이야말로, 무엇이라고 생각하기 어렵소이다. 이 홑옷을 입고 불전(佛前)에 나아가 법화경(法華經)을 봉독(奉讀)한다면 경(經)의 문자(文字) 육만구천삼백팔십사자(六萬九千三百八十四字)·하나 하나의 문자(文字)는 모두 금색(金色)의 부처이니라. 옷은 하나이지만 육만구천삼백팔십사불(六萬九千三百八十四佛)에게 일일이 입혀드리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이 옷을 보내주셨으니 부부이인(夫婦二人)에게 이 부처가 찾아가셔서 나의 단나(檀那)라고 하여 수호(守護)하시리라. 금생(今生)에는 기원(祈願)으로 되고 재물(財物)이 되고·임종시(臨終時)에는 달이 되고·해가 되고·길이 되고·교량(橋梁)이 되고·부친(父親)이 되고·모친(母親)이 되고·우마(牛馬)가 되고·가마가 되고·수레가 되고·연화(蓮華)가 되고·산(山)이 되어 두 분을 영산정토(靈山淨土)로 맞이해 드릴 것이니라,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 건치원년을해(建治元年乙亥)八月 日 日蓮花押
이 글은 도시로전(藤四郞殿)의 부인(夫人)과 언제나 함께 보도록 하시라."
단의초(單衣抄) 54세 미노부
"우리들 중생(衆生)·무시광겁이래(無始曠劫已來)·묘호렌게쿄(妙法蓮華經)의 여의보주(如意寶珠)를 편시(片時)도 떨어지지 아니하였으나·무명(無明)이라는 술에 꾀임당하여, 의리(衣裏)에 꿰매 두었음을 알지 못하고서 소분(少分)을 얻고 족(足)하다고 생각했도다.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만 봉창(奉唱)한다면 속(速)히 부처가 될 수 있었을 중생(衆生)들이, 오계(五戒)·십선(十善) 등(等)의 약간의 계(戒)를 가지고 혹은 천(天)에 태어나서 대범천(大梵天)·제석(帝釋)의 몸이 되어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혹시(或時)는 사람으로 태어나서 여러 국왕(國王)·대신(大臣)·공경(公卿)·전상인(殿上人) 등(等)의 몸이 되어 이만한 즐거움이 없다고 생각하고, 적은 것을 얻고서 족(足)하다고 생각하여 기뻐했노라. 이를 부처는 꿈 속의 영화(榮華)요, 환상(幻像)의 낙(樂)이니라. 오직 법화경(法華經)을 수지(受持)해 받들어 속(速)히 부처가 될지어다라고 설(說)하셨느니라."
주사친어서(主師親御書) 34세 카마쿠라
"설사 오역(五逆)·십악(十惡)·무량(無量)의 악(惡)을 지은 사람도 이근(利根)이라면 득도(得道)하는 일이 있으니 제바달다(提婆達多)·앙굴마라(鴦堀摩羅) 등(等)이 이것이니라. 설사 둔근(鈍根)일지라도 죄(罪)가 없으면 득도(得道)하는 일이 있으니 수리반특(須利槃特) 등(等)이 이것이니라. 우리들 중생(衆生)은 근(根)이 둔근(鈍根)이기가 수리반특(須利槃特)보다도 더하고 사물(事物)의 색형(色形)도 판별(判別) 못하기는 양(羊)의 눈과 같다. 탐진치(貪瞋癡)가 매우 두텁고 십악(十惡)은 매일 범(犯)하며 오역(五逆)은 범(犯)하지 않을지라도 오역(五逆)과 비슷한 죄(罪)는 매일 범(犯)하고 있다. 또한 십악(十惡)·오역(五逆)보다 더한 방법(謗法)은 사람마다 있느니라. 이렇다 하는 말로써 법화경(法華經)을 비방(誹謗)하는 사람은 적지만 사람마다 법화경(法華經)을 믿지 않으며, 또 받아들이고 있는것 같지만 염불(念佛) 등(等)과 같이는 신심(信心)이 깊지 못하며 신심(信心)이 깊은 사람도 법화경(法華經)의 적(敵)을 책(責)하지 않느니라. 어떠한 대선(大善)을 만들고 법화경(法華經)을 천만부(千萬部) 읽고 서사(書寫)하며 일념삼천(一念三千)의 관도(觀道)를 득(得)한 사람일지라도 법화경(法華經)의 적(敵)을 책(責)하지 않는다면 득도(得道)하기 어려우니, 비유컨대 조정(朝廷)에 출사(出仕)하는 사람이 십년(十年)·이십년(二十年)의 봉공(奉公)을 하였다 해도 군주(君主)의 적(敵)을 알면서 상주(上奏)도 하지 않고 사적(私的)으로도 미워하지 않는다면 봉공(奉公)은 모두 허사가 되고 오히려 죄(罪)를 받는 것과 같다. 당세(當世)의 사람들은 방법(謗法)의 자(者)라고 알아야 하느니라 "
난죠효에시치로전어서(南條兵衛七郞殿御書) 43세 카마쿠라
"니치렌(日蓮)은 이십칠년간(二十七年間)·홍장원년 (弘長元年) 신유(辛酉) 오월(五月) 십이일(十二日)에는 이즈지방(伊豆地方)에 유죄(流罪)되었고, 문영원년팔년 (文永元年) 갑자(甲子) 十一月 十一日에는 머리에 상처(傷處)를 입었으며, 왼팔이 부러졌느니라. 동문영팔년(同文永八年) 신미(辛未) 九月 十二日에는 사도지방(佐渡地方)에 유배(流配)되었으며, 또한 단두좌(斷頭座)에 앉았느니라. 그 외(外)에 제자(弟子)가 살해(殺害)되고 칼에 맞았으며, 추방(追放)당하고 과료(過料) 등(等) 그 수(數)를 알 수 없느니라. 부처의 대난(大難)에는 미치는지 더한지 그것은 알 수 없으나 용수(龍樹) 천친(天親)·천태(天台)·전교(傳敎)는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지 못하리라. 니치렌(日蓮)이 말법(末法)에 나오지 않았더라면 부처는 대망어(大妄語)의 사람이요·다보(多寶)·시방(十方)의 제불(諸佛)은 대허망(大虛妄)의 증명(證明)이로다. 불멸후이천이백삼십여년간(佛滅後二千二百三十餘年間)·일염부제내(一閻浮提內)에서 부처의 말씀을 도운 사람은·단(但) 니치렌(日蓮) 한 사람이니라. 과거(過去) 현재(現在) 말법(末法)의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경천(輕賤)하는 왕신만민(王臣萬民)이 처음에는 아무 일이 없는 것 같으나 마침내는 망(亡)하지 않음이 없느니라. 니치렌(日蓮)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처음에는 증험(證驗)이 없는 것 같았으나 이제까지 이십칠년(二十七年)동안 법화경(法華經) 수호(守護)의 범석(梵釋)·일월(日月)·사천(四天) 등(等)이 그토록 수호(守護)하지 않는다면 불전(佛前)의 서언(誓言)은 헛되어서 무간대성(無間大城)에 떨어지리라고 두렵게 생각하였기에 지금은 각자(各者)가 힘써 지키리라. 오타(大田)의 지카마사(親昌)·나가사키지로효에노조도키쓰나(長崎次郞兵衛尉時綱)·다이신보(大進房)의 낙마(落馬) 등(等)은 법화경(法華經)의 벌(罰)이 나타남이로다. 벌(罰)에는 총벌(總罰)·별벌(別罰)·현벌(顯罰)·명벌(冥罰)의 네가지가 있느니라. 일본국(日本國)의 대역병(大疫病)과 대기갈(大飢渴)과 자중지난(自中之亂)과 타국(他國)으로부터의 침공(侵攻)은 총벌(總罰)이고, 역병(疫病)은 명벌(冥罰)이며, 오타(大田) 등(等)은 현벌(顯罰)이고 별벌(別罰)이니라. 각자(各者)는 사자왕(師子王)의 마음을 발휘해서 남들이 아무리 위협(威脅)할지라도 겁내지 말지니라. 사자왕(師子王)은 백수(百獸)를 두려워하지 않느니라. 사자(師子)의 새끼도 또한 이와 같다. 그들은 야간(野干)이 짖는 것이고 니치렌(日蓮)의 일문(一門)은 사자(師子)가 짖는 것이로다. 고사이묘사전(故最明寺殿)이 니치렌(日蓮)을 사면(赦免)한 것과 이 어른이 용사(容赦)한 것은 잘못이 없었는데 사람들의 참언(讒言)이라는 것을 알고서 용사(容赦)한 것이니라. 지금은 아무리 남이 말할지라도 듣고 알아보지 않고서는 남의 참언(讒言)은 믿지 않으시리라. 설사 대귀신(大鬼神)이 붙은 사람일지라도 니치렌(日蓮)을 범석(梵釋)·일월(日月)·사천(四天) 등(等)·천조태신(天照太神)·팔번(八幡)이 수호(守護)하시는 고(故)로 벌(罰)하기 어려우리라고 아실지니라. 월월(月月)·일일(日日)·강성(强盛)해지시라, 조금이라도 해이(解弛)한 마음이 있다면 마(魔)가 틈탈 것이니라.
우리들 범부(凡夫)는 어리석어서 경론(經論)에 있는 것과 먼 장래의 일은 두려워 하는 마음이 없느니라. 필정(必定)코 헤이(平)들도 조(城)들도 노(怒)해서 이 일문(一門)을 맹렬히 박해(迫害)할 때가 올 것이니 그 때는 눈을 감고 각오(覺悟)하여라. 당시(當時)의 사람들이 쓰쿠시(筑紫)로보내지려하고 또 가는 사람 또 그곳에서 적(敵)을 맞이 하는 사람을 내 자신(自身)에게 견주어 생각해 보아라. 당시(當時)까지는 이 일문(一門)에 이런 슬픔은 없었다. 그들은 현재(現在)는 그와 같으며 살해(殺害)되면 또 지옥(地獄)에 가리라. 우리들은 현재(現在)는 이 대난(大難)을 당(當)할지라도 후생(後生)은 성불(成佛)하리라. 비유(譬喩)컨대 뜸과 같으니 당시(當時)는 아플지라도 후(後)에는 약(藥)이 될 것이니 아프면서도 아프지 않느니라.
저 아쓰하라(熱原)의 우치(愚痴)한 자(者)들은 말로 격려(激勵)할 것이요, 위협(威脅)하지 말라. 그들에게는 오직 한결같이 결단(決斷)하게 하여라, 좋아지는 것은 불가사의(不可思議)요 나쁘게 되는 것은 필정(必定)이라고 생각하라. 배가 고프다고 하거든 아귀도(餓鬼道)를 가르치고, 춥다고 말하거든 팔한지옥(八寒地獄)을 가르치며, 두렵다고 생각하거든 매를 만난 꿩, 고양이를 만난 쥐를 타인(他人)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이렇게 자세히 쓰는 것은 이와 같이 해마다 다달이 날마다 말해 왔으나, 나고에(名越)의 부인(夫人), 쇼우보(少轉房)·노토보(能登房)·산미보(三位房) 등(等)과 같은 사람이 있느니라. 겁장이이고 법리(法理)를 기억(記憶)하지 못하며, 욕심(慾心)이 많고 의심(疑心)이 많은 자(者)들은 옻칠한데다가 물을 끼얹고 허공(虛空)을 자르는 것과 같은 것이외다.
산미보(三位房)의 일은 매우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일들이 많았으나 많은 분들이 생각하기에는 지혜(智慧)있는 사람을 시기(猜忌)하는 것이 아닌가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은 생각하리라고 여겨져서 말을 하지 않았더니 마음이 비뚤어져서 대난(大難)을 당(當)하였느니라. 매우 엄(嚴)하게 말하였더라면 구제(救濟)될수도 있었을터인데, 너무나 불가사의(不可思議)하므로 말하지 않았느니라. 또 이렇게 말하면 어리석은 사람들은 죽은 사람의 일을 말한다고 하리라. 거울로 삼으라고 하는 말이니라. 또 이 일은 그 사람들도 내적(內的)으로는 겁을 먹고 두려워 하고 있으리라고 생각되나이다.
사람이 떠든다고 해서 병사(兵士) 등(等)으로써 이 일문(一門)을 해치려거든 이리로 써서 보내시라, 공공근언(恐恐謹言)." 성인어난사(聖人御難事) 58세 미노부
"통기(筒器) 일구(一具) 부(付) 삼십(三十) 및 술잔 부(付) 육십(六十) 보내시어 받았소이다. 기(器)라고 함은 그릇이라고 읽지요. 대지(大地)가 오목 하면 물이 고이고 청천(靑天)이 맑으면 달이 밝으며, 달이 나오면 물이 맑고 비가 내리면 초목(草木)이 무성(茂盛)하니라. 그릇은 대지(大地)가 오목한 것과 같고, 물이 고임은 못에 물이 들어가는 것과 같으며, 달의 그림자를 띄움은 법화경(法華經)이 우리의 몸에 들어가신것과 같다. 그릇에 四의 허물이 있으니, 一에는 복(覆)이라 하여 엎어지느니라·또는 뒤집어지고 또는 뚜껑을 덮느니라. 二에는 누(漏)라고 하여 물이 새느니라. 三에는 오(汚)라고 하여 더러워지느니라. 물이 깨끗해도 분(糞)이 들어간 그릇의 물을 쓰는 일은 없더라. 四에는 잡(雜)이니라·밥에 혹은 분(糞) 혹은 돌, 혹은 모래 혹은 흙 같은 것을 섞으면 사람이 먹는 일이 없다. 그릇은 우리들의 신심(身心)을 나타내니 우리들의 마음은 그릇과 같고, 입도 그릇·귀도 그릇이라, 법화경(法華經)이라 하는 부처의 지혜(智慧)의 법수(法水)를 우리들의 마음에 넣으면, 혹은 되돌리고 혹은 듣지 않으려고 좌우(左右)의 손으로 두 귀를 막고 혹은 입으로 부르지 않으려고 뱉어 냈으니, 비유컨대 그릇을 엎는 것과 같다, 혹은 조금 믿는듯 하지만, 또 악연(惡緣)을 만나서 신심(信心)이 엷어지고, 혹은 내버리고, 혹은 믿는 날은 있어도 버리는 달도 있으니, 이는 물이 새는 것과 같다. 혹은 법화경(法華經)을 행(行)하는 사람의 한 마디는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한 마디는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이렇게 말함은 밥에 분(糞)을 섞고 모래와 돌을 넣은 것과 같음이라. 법화경(法華經)의 문(文)에 「단대승경전(但大乘經典)을 수지(受持)할것을 바라되 내지(乃至) 여경(餘經)의 일게(一偈)도 받지 말지어다」 등(等)이라 설(說)함은 이것이니라."
아키모토어서(秋元御書) 59세 미노부
"아사세왕(阿闍世王)은 부처의 원적(怨敵)이었으나, 기바대신(耆婆大臣)의 권(勸)에 의(依)하여 법화경(法華經)을 믿게 되어 천하(天下)를 유지(維持)하시었고, 묘장엄왕(妙莊嚴王)은 두 아들의 권(勸)에 따라서 사견(邪見)을 바꾸셨느니라. 이도 또한 그러하리니 귀하(貴下)의 권(勸)에 따라서 지금은 마음도 부드러워지셨으리라. 이는 오로지 귀하(貴下)의 법화경(法華經)의 신심(信心)이 깊기 때문이니라. 뿌리가 깊으면 가지가 무성(茂盛)하고, 수원(水源)이 멀면 흐름이 길다고 하듯, 일체(一切)의 경(經)은 뿌리가 얕고 흐름이 가까우나, 법화경(法華經)은 뿌리가 깊고 수원(水源)이 멀어, 말대(末代)의 악세(惡世)까지도 다하지 않고 번영(繁榮)하리라고, 천태대사(天台大師)가 말씀하셨느니라. 이 법문(法門)을 따르는 사람은 수없이 있지만, 공사(公私)에 걸치는 대난(大難)이 자주자주 겹치기 때문에 일년(一年)·이년(二年)은 따라 왔으나 후일(後日)에는 모두 혹은 퇴전(退轉)하고 혹은 반기(反旗)를 들고, 혹은 몸은 퇴전(退轉)하지 않았으나 마음이 퇴전(退轉)하고, 혹은 마음은 퇴전(退轉)하지 않았으나 몸은 퇴전(退轉)했느니라.
석가불(釋迦佛)은 정반왕(淨飯王)의 적자(嫡子)·일염부제(一閻浮提)를 지배(支配)하니, 팔만사천이백일십(八萬四千二百一十)의 대왕(大王)이로다. 일염부제(一閻浮提)의 제왕(諸王)·머리를 숙인데다가 국내(國內)의 시종자(侍從者)는 십만억인(十萬億人)이었지만, 열아홉살에 정반왕궁(淨飯王宮)을 나오시어 단특산(檀特山)에 들어간 지 십이년(十二年)·그간에 수행(隨行)한 사람은 오인(五人)이니, 소위(所謂) 구린(拘鄰)과 알비(頞鞞)와 발제(跋提)와 십력가섭(十力迦葉)과 구리태자(拘利太子)이니라. 이 오인(五人)도 육년(六年)이 지나가게 되자 이인(二人)은 가버리고, 나머지의 삼인(三人)도 후(後)의 육년(六年)에 버리고 떠났느니라, 다만 혼자 남으시어서 부처가 되셨느니라. 법화경(法華經)은 또한 이보다도 더하여 사람들이 믿기 어려우니, 난신난해(難信難解)라고 함은 이것이니라. 또한 부처의 재세(在世)보다도 말법(末法)은 대난(大難)이 겹치리라. 이를 견디는 행자(行者)는 나의 공덕(功德)보다 뛰어 나기가 일겁(一劫) 동안이라고 설(說)해져 있소이다."
시조깅고전답서(四條金吾殿答) 57세 미노부
"나의 문가(門家)는 밤에는 잠을 끊고 낮에는 쉴새없이 이를 생각하라, 일생(一生)을 헛되이 보내고 만세(萬歲)에 후회(後悔)하는 일 없을지어다, 공공근언(恐恐謹言)."
도키전어서(富木殿御書) 54석 미노부
"귀하는 니치렌(日蓮)의 공덕(功德)을 도운 사람이니 악인(惡人)에게 파괴(破壞)되지 않느니라. 만약(萬若)에 일이 있다면 전생(前生)에 법화경(法華經)의 행자(行者)를 적시(敵視)한 것이 금생(今生)에 보(報)로 되느니라. 이 일은 어떠한 산중(山中)이나 해상(海上)에서도 면할 수 없느니라. 불경보살(不輕菩薩)의 장목(杖木)의 책망(責望)도 목건존자(木犍尊者)가 죽장(竹杖)에게 살해(殺害)된 것도 이것이니라. 어찌하여 한탄(恨歎)하실 일이겠느뇨."
시조깅고석가불공양사(四條金吾釋迦佛供養事) 1147쪽 55세 미노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