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가장 중요한데 생각을 가르치는 학교는 없다. 생각에 대해서 생각해 본 사람도 없다.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고 말했지만 그의 관심사는 존재다. 그에게 생각은 주어가 아니라 동사다. 어떤 주제를 생각할 뿐 생각 그 자체를 생각하지 않는다. 이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한 사람이 1 만년 인류의 역사에 단 한 명도 없었다면 황당하다.
문득 아이디어가 떠올랐다면 뇌 안에서 도무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한번 쯤 검토해 볼만도 한데 말이다. 아이디어는 뇌가 패턴을 읽고 반응한 것이다. 문제는 의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재현하지 못한다. 촉이 좋으면 반응이 좋다. 반응하면 정신이 번쩍 들고 몸이 뜨거워지고 기분이 상쾌해진다. 밑바닥에서부터 가득 차오르는 충일감을 느낀다. 마약과 같은 쾌감을 느낀다. 그 쾌감을 왜 포기하는가 말이다. 여행을 하면 즐거워지듯이, 낯선 사람을 만나면 흥분하듯이 패턴을 읽고 뇌가 반응하면 인간은 쾌감을 느낀다. 거기서 세상을 바꾸는 열정이 나온다.
구조론은 생각의 과학이다. 어떻게 생각을 하는가? 질, 입자, 힘, 운동, 량 순서대로 풀면 된다. 공식에 대입하면 된다. 좌표를 그려놓고 빈 칸을 채우면 된다. 쥐어짜면 된다. 프리즘은 빛을 쥐어짜서 일곱가지 무지개 색깔을 얻어낸다. 생각이 어려운 것은 아니다. 생쥐의 미로실험과 같다. 왼쪽에서 막히면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시피 하다. 이거 아니면 저건데 1차원 선 위에서 마주보고 교착된 두 마리 개미처럼 꼼짝 못한다. 2차원 평면을 모를 뿐 아니라 더욱 3차원 입체를 모른다. 핸들을 쥐려면 매개변수를 추가하여 4차원까지 올라가야 하는데 말이다.
대개 생각하지 않고 그냥 머리에 힘 주고 앉아있다. 그래봤자 두통이 올 뿐이다. 눈 감고 앉아서 명상을 한다는 사람이 있지만 그래봤자 잠이 쏟아질 뿐이다. 천재적인 생각을 해낸 사람도 많지만 활발한 상호작용 중에 우연히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이다. 의식적으로 모형을 쥐어짠 것이 아니라 좌충우돌 하는 중에 우연히 쥐어짜는 결과가 된 것이다.
수학문제를 풀듯이 의식적으로 아이디어를 생산해야 진짜다. 공식의 빈 칸을 채우는 것이다. 질, 입자, 힘, 운동, 량을 배우고 거기서 계와 코어와 방향과 순서와 그 변화를 알아야 한다.
사유는 패턴을 찾는 데서 시작된다. 같은 것이 반복되는 것이 패턴이다. 뇌가 반응하므로 패턴을 찾을 수 있다. 아기도 반짝이는 것을 보면 손을 내밀어 잡으려고 한다. 부바키키 실험으로 증명되었다. 볼록한 부바와 날카로운 키키를 종이에 그려놓고 어느게 부바이고 어느게 키키인지를 물었더니 한 살 먹은 꼬마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그냥 알더라는 것. 강아지도 눈치로 많은 것을 알아낸다. 사람이 강아지의 신호를 포착하지 못할 뿐 같은 강아지끼리는 많은 의사소통을 한다.
패턴은 자식이 아버지를 닮는 것이다. 도장을 찍는다면 찍는 것은 부모요 찍힌 것은 자식이다. 말이 지나갔다면 발굽이 도장이다. 찍힌 것을 보고 찍은 것을 안다. 활이 화살을 쏜다. 활이 찍고 화살이 찍힌다. 우주 안의 모든 존재가 이 하나의 구조를 카피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따지고 보면 자연의 모든 존재가 패턴이다. 인간의 뇌는 패턴에 반응한다.
우를 보면 좌를 알고, 앞을 보면 뒤를 알고, 왼쪽을 보면 오른쪽을 안다. 밸런스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균형감각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하나의 패턴에 붙잡혀서 패턴 속의 또다른 패턴으로 갈아타지 못하는 것이다. 차원을 높여가지 못한다. 점을 보고 점을 찾고, 선을 보고 선을 찾고, 면을 보고 면을 찾는다. 점에서 선으로, 면으로, 입체로, 무게로 도약하지 못한다. 사유의 맹점이 존재한다. 어떤 사유는 잘 하는데 어떤 사유는 못한다. 음치가 음을 모르고 길치가 길을 모르듯이 꽉 막혀 버린다.
수학은 집합론으로 시작된다. 집합을 만드는 것이 패턴이다. 활이 화살을 쏘든, 사랍이 언어를 쏘든, 대포가 포환을 쏘든, 말이 발자국을 찍든, 나무가 잎을 찍어내든, 태양이 행성을 돌리든 원리는 같다. 반복하여 찍어낸다. 자연은 산을 찍어내고 들을 찍어낸다. 세상은 온통 찍어낸다. 우주 안의 모든 존재는 그렇게 탄생한다. 예외는 절대로 없다.
찍는 것과 찍히는 것은 서로 마주보고 대칭을 이룬다. 대칭에서 패턴을 찾는다. 칼이 있으면 도마가 있다. 둘은 마주본다. 요리는 대량생산된다. 엄마와 아빠가 마주보면 여러 자녀가 찍혀 나온다. 활몸과 시위가 마주보면 많은 화살이 날아온다. 좌우의 대칭이 있으면 반드시 상하의 또다른 대칭이 숨어 있다. 화살과 과녁의 대칭이 있으면 그 위에 활과 화살의 대칭, 궁수와 활의 대칭, 아군과 적군의 대칭이 더 큰 단위의 대칭으로 숨어 있다. 다섯 개의 층위로 이루어진 대칭이 세트로 간다.
하나의 패턴을 보고 대칭을 추적하여 고구마 캐듯이 줄줄이 비엔나로 따라오니 세상 모든 친구를 다 만나게 된다. 그런데 보통은 머리 속에서 이러한 추적을 못한다. 인간이 생각을 못하는 이유는 원래 못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머리 속에 질, 입자, 힘, 운동, 량을 층위별로 늘어놓고 짜맞추는 사람이 없다.
세상의 모든 것은 방향이 있고 그 방향은 마이너스다.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가는 생각은 잘 하지만 그 반대는 불가능하다. 입체에서 평면을 찾고, 평면에서 선을 찾고, 선에서 점을 찾을 수 있는데 반대로 선에서 평면을 못 찾는다. 더욱 입체를 찾지 못한다. 더욱 매개변수를 추가하여 사차원까지 못 간다. 모든 사유의 출발점이 되는 계를 찾으려면 거기서 한 층을 더 올라가야 한다. 가장 높은 층위에서 사유를 시작하는 것이 연역인데 인간은 연역을 못한다. 중간부터는 하는데 첫 단추를 꿰지 못한다.
생각은 머리 속에 원심분리기를 하나 장만하는 것이다. 탈수기를 돌리기만 하면 아이디어가 쏟아진다. 칼과 도마를 갖추는 것이다. 칼로 도마를 내려치기만 생선의 머리와 몸통과 꼬리가 분리되어 생깔별로 종류별로 날짜별로 분류가 화려하다. 아이디어는 대량생산이 된다. 그런데 못한다. 맨 위에서 시작해야 하는데 중간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사유를 선에서 시작하면 점에서 끝나고, 면에서 시작하면 선을 거쳐 점에서 끝나고, 입체에서 사유를 시작해도 면과 선을 거쳐 점으로 끝난다. 사유의 깊이가 얕은 것이다.
가장 높은 단계에서 사유를 시작해야 한다. 중간에서 시작하면 망한다. 맨먼저 에너지의 입력부를 확인하고 다음 코어가 되는 핸들을 찾아야 한다. 어느 분야든지 반드시 에너지가 들어오는 경로가 있다. 경로를 찾으면 전체를 장악하는 한 점을 찾아야 한다. 핸들은 그곳에 있다. 정치라면 표가 들어오는 경로가, 경제라면 이윤이 들어오는 경로가, 문화라면 유행이 시작되는 경로가 있다. 그 시작점에 대한 감각을 키워야 한다. 말로 설명하면 늦고 몸이 반응해야 한다.
인간은 사건의 원점에서 시작하여 닫힌계 전체를 장악하고 쥐어짜는 체계적인 사유를 못한다. 그거 원래 안 된다. 그러나 그것을 못한다는 사실을 알면 할 수도 있다. 뒤집으면 된다. 암산을 못하면 필산을 하면 된다. 인간이 차원을 높여가는 방향으로 사유하지 못하므로 종이에 그려놓고 빈 칸을 채우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