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구석기시대의 장성
(1) 구석기시대 개관
1) 구석기
구석기시대는 지구상에 인간이 처음 등장한 약 300만 또는 250만년전부터 1만년전까지의 동안이지만 실제적으로는 사람이 불과 도구를 사용하는 60만년 전후부터로 볼 수 있다. 선사시대에는 돌을 이용해 도구를 만들던 시기인데, 도구의 제작방법에 따라 시기를 구분한다. 구석기시대에는 깬석기(打製石器)를 사용하였으며, 구석기와 신석기의 과도적인 시기인 중석기시대에는 잔석기(細石器)를, 신석기시대에는 간석기(磨製石器)를 사용하였다. 구석기시대는 지질학상으로 홍적세에 해당되며, 그 기간 동안에 몇 번의 빙하현상이 있었기 때문에 빙하시대라고도 한다. 이 홍적세 기간중 빙하기에는 해수면이 가라앉고 간빙기에는 해수면이 올라감에 따라 해수면은 크게 변화하였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빙하기 때마다 해수면이 내려가서 구석기시대에는 중국대륙, 한국, 일본이 육지로 연결되어 있었으며 오늘날의 지형은 대개 1만년전부터 시작된 충적세에 이루어졌다.
구석기유적은 우리나라 전 지역에 걸쳐 분포하고 있으나 그 대부분이 대동강, 한강, 금강의 상류지역과 석회암이 잘 발달된 평양부근 및 충북지방에서 집중적으로 발견되고 있다. 구석기시대인들은 동굴과 강가에서 생활하였는데, 동굴유적은 주로 석회암 동굴지대에서 나타난다. 이는 추위를 자연스럽게 막을 수 있고, 짐승들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동굴의 입구는 평지보다 높은 곳에 위치해 있으며 대체로 동향이나 남향이며, 물에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
전남지방의 구석기시대 유물은 1962년 순천의 바닷가 언덕에서 주먹도끼, 긁개 등의 구석기가 발견되었다는 보고가 있었으나 자세한 것은 알 수가 없었다. 이후 주암댐 수몰지구에서 승주 우산리 곡천유적에서 구석기와 중석기의 발견과 더불어 개시되었다. 이후 곡성 옥과, 화순 사수리 대전, 순천 송광 금평과 죽산리, 월평 등 주로 섬진강과 보성강유역에서 발견 보고되었다. 영산강유역에서는 광주 상무지구의 치평동, 첨단지구인 산월동, 광주 철도이설 구간인 매월동, 화순 도산리 등지 이외에 나주시 공산, 왕곡지역을 중심으로 최근 많은 수의 유적이 확인되었고, 이들 유적에서 많은 타제석기가 발견되고 있다. 또 보성강유역에 대한 세밀한 지표조사를 통해 20여군데의 유적을 새로 발견하였고 찍개, 다면석기, 긁개, 주먹도끼 등의 다양한 형태의 타제석기를 발견하였다. 이것들의 연대는 후기 구석기시대에서 중기구석기시대 사이에 들어간다고 본다. 특히 순천 황전 죽내리에서는 4개의 구석기 문화층이 발견되었다. 제1․4 문화층에서는 많은 석기들이 출토되었고, 그 종류와 제작 기술면에서 큰 차이를 보여주고 있어 시대별 석기 양상과 변화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제1문화층은 석기 제작에 직접떼기와 계단식 잔손질이 사용된 것으로 주로 석영맥암과 응회암을 이용해 중간크기의 주먹도끼, 큰 격지들, 돌날격지, 계단식으로 잔손질된 마주날 긁개 등이 특징유물이며, 대체적으로 중기구석기의 석기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제4문화층은 직접떼기 기법이 많이 쓰이지만 좀돌날석기에 간접떼기 수법이 새로 나타나고, 석기 재료에 유문암이 새로이 사용되고 있다. 이 유적에서 발견된 석기들이 석기 제작에서 나타난 석기들이 많으나 완성된 석기가 적어 석기제작터로 추정되고 있다.
이와 같이 구석기시대 유적지는 보성강과 영산강에서 강변에 형성된 구릉에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구석기인들의 생활터전이 물과 가까운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구석기인들은 강이나 하천의 야트막한 구릉에 자리하고 있지만 두 하천이 합치는 곳이나 곡류되는 지점의 주변에 그들의 터전을 잡았다. 또는 물가에서 어느 정도 떨어져 조망하기 좋으며 햇볕이 오래동안 드는 곳에는 대부분 석기들이 발견되고 있다. 강의 상류와 중하류 어디서나 유적들이 발견되고 있는데, 이는 구석기인들이 산골짜기에서 평야지대까지 모두 살림터로 개척하였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또 우리 고장의 각지에서 구석기시대 유적이 발견되는 것은 이 지역에 광범위하게 후기구석기인들이 살았음을 시사해 준다. 지금까지의 발굴로 약 10만년전부터 1만년전사이에 해당하는 중기~후기구석기시대의 석기 종류와 제작 기법, 석재의 종류 등이 밝혀지고 있다.
(2) 장성에서 발견된 구석기 유물
장성에서 최근 구석기 유물이 3곳에서 발견되었다. 북이면 달성리 밀등과 사가리 조산, 그리고 북하면 중평리 강선에서 조사되었다. 이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북이면 달성리 밀등의 구석기 유적은 달성제 부근 즉 달성마을과 용산마을 사이 894번 지방도로 양쪽에 있다. 이곳은 2~300여m 높이의 산으로 둘러싸인 넓은 분지로서 북이천의 상류 지역이다. 분지안의 나즈막한 구릉의 밭에서 유문암과 석영으로 만들어진 뗀석기들이 발견되었다. 유물은 좀돌날몸돌, 밀개, 부리날석기 등 후기구석기 늦은 시기의 특징 유물이 나오고 있다. 유물의 분포 범위가 매우 넓어 달성마을 부근부터 3 지점에서 뗀석기가 수습되었다.
북이면 사가리 조산의 구석기 유적은 조산마을 못 미쳐 장성에서 정읍으로 가는 1번 국도 좌측의 낮은 구릉(해발 약 110m)에 위치한다. 이 곳은 조산마을 남쪽의 시냇물이 개천으로 흘러드는 합수지점에 해당한다. 지세는 산으로 둘러싸인 넓은 분지(사방 약 1km)로 밀등유적과 입지가 비슷하다. 밀등유적에서 직선거리로 약 2km 떨어져 있으며 사용된 석재도 밀등유적과 같아 비슷한 시기로 추정된다. 유물이 나오는 퇴적층은 갈색의 찰흙층이고, 둘레에 토양쐐기도 관찰된다. 수습된 유물은 유문암제 격지와 긁개 등이다.
북하면 중평리 강선의 구석기 유적은 남, 서, 북 삼면이 4~500m 높이의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동쪽의 터진 마을 안의 완만한 구릉(해발높이 약 300m)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응회암제 뗀석기와 유문암제 돌날몸돌과 격지 등이 수습되었다.
이 세 유적으로 본 장성지역의 구석기시대의 특징은 입지가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의 완만한 언덕이다. 문화층인 갈색 찰흙층이 밭 경작으로 파괴되면서 유물이 드러났고, 발견된 유물들 중 좀돌날몸돌, 밀개, 부리날석기 같은 종류가 있으며, 사용된 석재가 산성용암류인 점에서 후기구석기 늦은 시기(15,000년전 무렵)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전남지역 구석기유적의 조사 성과를 참고하면 이 보다 더 이른 시기의 문화층이 장성군에서 찾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유문암제 돌날몸돌과 격지 등이 발견된 중평리 강선유적은 해발높이가 300m로 후기구석기시대에 매우 높은 곳까지 삶의 터전을 넓혔음을 보여준다. 밀등, 조산, 강선유적은 모두 장성군의 북쪽 산악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이보다 남쪽인 개천 중․하류와 추암천, 평림천, 황룡강유역의 얕은 언덕에서 구석기시대의 유적이 발견될 가능성은 매우 높다. 북일면 월계리 송촌 마을의 구릉에서 찾은 몇 점의 석영제 석기는 이 같은 예측을 뒷받침한다. 한편 장성읍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길게 분포하는 석회암지대에 대한 동굴조사를 하여 두 곳을 찾았으나 문화층은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장차 구석기유물이 포함된 동굴유적이 발견될 가능성은 크다고 여겨진다.
(장성군청 홈페이지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