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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욱散文集]
소풍간 어린 형이 돌아오는 말구렁 고개
[1]
*
우리 어릴 때의 설레던 행사는 생일, 운동회, 소풍. 그리고 명절과 제삿날.
다음은 혼례, 모심기, 두레, 김장, 나락 베어 추수하던 날 등 동네 전체의 공동행사다. 떠들썩하게 많이 모이거나 푸짐한 음식이 공통점이다.
돼지 멱따는 소리가 건너 마을까지 퍼지고 돼지 오줌통 축구놀이가 시작된다.
그 중에서도 전날 밤 잠 못 이루던 것이 소풍. 그때는 ‘소풍(逍風)간다’를 ‘원족(遠足)간다’고 했다. 원족은 말 그대로 멀리 걸어간다는 뜻인데, 시골에서야 동네며 학교 자체가 자연 속의 한 자락으로 들어가는 원족 그 자체였다.
그래도 공부 걷어 치고 친구들과 낯선 곳으로 떠나는데다가, 과자며 사탕을 장마루 장에서 사다주시고, 때로는 찢어진 고무신도 새로 사주셨던, 여덟 살의 풍요(豊饒)는 푸른 심장이 설레기 충분했다.
‘원족’ 그러니까 지금의 소풍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게 있다.
걷다 걷다 지친 것, 동생 태익이 주려고 비닐봉지 주-스 한 개를 사들고 십리를 걸어오며
고걸 먹을까 말까 갈등하던 그날 일이다.
그날, 금강(錦江)의 물결이 거센 곳이라서 지명이 탄천(灘川)인 면사무소 소재지를 지나, 모래가 곱다고 이름 붙여진 분강(粉江)으로 소풍을 갔다. 분강 역시 백마강(白馬江)처럼 금강의 한 부분을 지칭한다.
마침 대전에서 모처럼 아버님이 내려와 계시는 날이었는데, 그 당시 너무 귀한 제과점의 양과자를 조그마한 한 상자 가지고 오셨다. 사르르 녹는 맛도 맛이려니와 희한하게도 예쁜 모양이라니. 양갱, 찹쌀 떡 세 개를 골라 싸 주시면서, 점심 때 꼭 선생님 드셔 보시라고 드리라는 당부를 듣고 소풍을 떠났다.
모두들 줄지어 재잘 재잘 들뜬 표정으로 걸어간다.
너무 장난이 심해서 바가지 도시락이 떨어져 박살이 난다. 그 시절 어떤 동무들은 바가지에 밥을 담고 한쪽에 무장아찌와 고추장 종지를 박아 삼베보자기로 싼 것을 도시락으로 가져오기도 했다. 점심시간이 되면 삼베 보자기 친구들한테는 내 양은 도시락을 펴기가 어쩐지 미안하고 멋쩍고 그랬다.
삼베 보자기 사이로 밥과 고추장이 빠져나와 엉망인 것을 보고 서로들 울상이다. 그래도 선생님과 다른 벗들이 ‘야 내꺼 같이 먹자’하고 달래니 금세 또 씩씩해져서 삼베보자기를 챙기자마자 또 장난질이다.
장마루 사는 김 옥희도 껑쭝한 키로 장 정희와 뭘 그렇게 조잘대면서 깔깔대는지 모르겠다. 김 옥희는 우리 또래보다 학교를 서너 해 늦게 다니는 탓에 우리 키는 그 애 어깨밖에 닿지 못한다.
장 정희는 팔자걸음으로 살래 살래 몸을 꼬면서 뛰는 모양이 여간 애교스럽지 않다. 운동장에서 고무줄놀이 할 때 보면 참 귀엽기도 한데, 그때나 지금이나 개구쟁이들 맘에 든다는 표현은 똑같아서 툭하면 칼로 그 애 고무줄놀이를 끊고 도망간다. 팥으로 만든 오자미며 차돌을 잘 갈아 만든 공기 돌도 빼앗기기 일쑤였는데 그 애가 훌쩍거리면 멋쩍게 돌려주곤 했다.
삼베보자기 도시락 김 익수가 특히 그랬다. 남산리에 사는데 우리보다 한살 위인데다 체격도 체력도 좋아 우린 꼼짝 못했다. 우리 동네 안영리 개구쟁이 대표 윤 선병이도 슬금 죽어지낼 정도니까.
반장인 윤 원중은 대열 옆에서 따라온다. 책 제일 많이 읽는 나하고, 공부 제일 잘하는 윤 원중하고는 선생님 칭찬을 자주 듣는 편이다.
원중이는 붓글씨도 잘 썼는데 습자시간이 끝나면 꼭 원중이 것과 내 것을 양손에 펴들고 보여주시며 평가를 하셨다. 윤 원중 것은 반듯하고 글자 크기도 똑같게 어쩌면 그리 잘 썼냐. 하지만 약간 삐뚤어도 정 태욱의 것은 아주 힘이 넘쳐 잘 쓴 글씨라고 칭찬하며 수업을 마치시고 그랬다.
시골에 자라던 그 시절은 먼 동네 친구 집서 자는 일은 거의 없지만, 나는 원중이네 집에 놀러가서 같이 자고 이튿날 학교로 같이 등교한 일도 많았다. 물론 전화도 없던 시절이니까, 아이들이 집에 가는 길에 우리 집에 들러 ‘태욱이는요 반장네 집에 놀러갔어요.’하고 말해주니까 그거로 된다. 원중이 엄마는 내게 참 잘해 주셨다. 우리보다 더 부유한 부농이었던 걸로 기억이 되는데, ‘응 네가 태욱이구나. 그렇게 책도 많이 읽고 선생님이 자랑하신다면서?’하고 칭찬해주시는 원중이 엄마 앞에서 숫기 없던 내가 절절 매던 일이 새롭다.
내 옆에는 박 영식이 같이 걸어간다.
영식이 역시 싸움쟁이의 대가다. 그러나 내게만큼은 지우개 반쪽, 몽당연필 하나, 딱지나 구슬 한개, 빨간 화약 한판, 이런 어마 어마한 선물도 주곤 한다. 대못이나 쇠구슬은 이건 완전히 최상의 보물이고, 작은 베어링을 심으로 박은 팽이는 숫제 요즘 ‘차떼기’ 이상의 가치다.
영식이가 내 짝이 되어 우리 집에 한 번 같이 자고부터 그런 보물을 수시로 내게 주었고, 덤으로 내게 덤비는 애들도 없어졌다.
[2]
*
이렇게 어울려 진고개를 넘어 탄천을 지나, 이십리 떨어진 목적지의 산기슭에 닿았다.
잠시 쉬고 점심시간이다. 바가지 도시락 깨진 친구는, 동무들이며 선생님들이 이 것 저 것 한 수저 한 젓가락씩 담아주어 제일 진수성찬이다.
난 걱정이다. 룩색(그 때는 ‘니꾸사꾸’라고 불렀다.)에 담겨있는 생과자 때문이다.
선생님께 어떻게 드리나. 한상자도 아니고 몇 개 만인 게 어쩐지 어린 마음에 부끄럽다. 더구나 둘러앉은 동무들이 샘내거나 수근대지는 않을까. 어휴 이걸 어쩌나. 밥을 먹으며 선생님들 모여 계신 데를 흘긋 바라본다. 모두 유쾌하게 웃으시며 식사하시고 막걸리도 드신다.
작달막한 키의 구수한 아저씨 스타일 박 학송 선생님. 키가 훤칠하니 크신 그러나 잘 삐지는 남 광선 선생님. 착하지만 깡다구가 있으신 강 창선 선생님. 무섭지만 구수한 윤 선병 교감선생님. 그 옆으로는 최 애자, 박 경애 선생님도 예쁜 볼을 오물오물 하신다. 아- 저 선생님도 있는데 창피하게 어떻게 가서 이거 드세요 하지?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걱정 돼서 큰일이다. 안 드리면 집에 가서 야단맞는데.
그러다보니 점심시간이 그만 끝나고 만다.
그리고는 보물찾기다.
난 가방을 들고 산 속으로 쑥 들어가 바위 뒤에 앉았다.
‘에라 모르겠다.’
보물찾기도 뒷전이고 종이에 싼 생과자를 꺼내 낼름 먹었다. 정말 맛있구나. 선생님께 드리지는 못하겠고, 가져갈 수는 없으니 먹어버리는 거야.
한 개를 또 먹는다. 점심을 잔뜩 먹은 데다 바위 뒤에 앉아서 꿀꺼덕하고 증거를 없애기 위해 먹으니 목이 켁 켁 멘다.
아차 저 쪽에서 친구들이 어른거린다. 이쪽으로 오기 전에 재빨리 한 개를 또 먹어 치운다. 아니 숫제 삼킨다. 그렇게 세 개를 연이어 먹으니 배가 터질 것 같다.
사이다 남은 것을 꿀꺽 마신다. 부글 부글 사이다까지 뱃속에 들어가니 일어서기도 힘들다.
동요 부르기, 간단한 놀이 즐기기, 모임끼리 장기자랑 등 등 이어지면서 배는 겨우 꺼졌다.
선생님두요! 선생님두요! 어느 선생님? 박 경애 선생님요! 박 경애 선생님요!
아이들 신청으로 처녀 선생님도 노래 부르신다. 종아리가 보이는 치마가 펼쳐질 때마다 황홀하다. 봉긋한 앞 저고리 모습만 보아도 살구꽃에 벌이 잉 잉 거리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듯하다.
지금은 태숙이 차지가 된 엄마 젖을 가끔은 만져보지만 엄마한테서는 안 느껴지는데. 에이 씨. 혼자 쑥스럽다.
재청이요, 재청이요라는 병아리 등살에 떠밀려 한곡 더 이어지고, 교장선생님 말씀 끝으로 해산이다.
‘소풍 다녀오면 맛있는 음식은 조금 남겨 할아버지 할머니랑 드리고, 형 눈 빠지게 기다리는 동생도 주는 거야’라고, 엄마한테 누누이 듣던 얘기를 기억하고 짐을 챙긴다.
따져봤다. 비과는 녹여먹는 거니까 남은 다섯 개는 할머니 할아버지 드려야지. 사과 한개는 엄마꺼. 달걀은 연하니까 어린 아기 태숙이꺼. 헤 헤. 됐다. 휴- 하고 동무들과 어울려 집을 향해 출발했다.
소풍지에서 집까지는, 올 때와는 달리 끼리 끼리 어울려 돌아가는 자유행동이다.
한참을 걸어 탄천에 닿는다.
면사무소가 있고, 지서가 있고, 의원과 약국이 있다. 공주 대전으로 올라가거나, 부여 규암으로 내려가는, 앞으로 배가 툭 튀어나온 버스가 임시 서는 정류장도 있다. 면에 하나뿐인 탄천 중학교도 있다. 탄천 중학교가 일제시대의 보통학교 때 아버지가 다닌 곳이다. 그러니 규모가 꽤 큰 구멍가게들도 몇 개 있고 잡화며 과자도 종류가 많았다.
지나가던 친구들이 우-하고 구멍가게에 들어간다.
소풍가는 날 이라고 지전을 주는 집도 간혹 있으니까 군것질거리는 사려는 거다.
나머지는 대개 온갖 과자들과, 과자 사는 모양과, 맛있게 먹는 모습을 신기하고 부러워하는 구경꾼이다. 가게 주인아저씨는 눈을 크게 뜨고 이 개구쟁이들에 의해 없어질 물건이 없도록 긴장해서 쳐다본다.
아! 그런데 맛있게 생긴 주스가 보였다. 삼각 주스 팩이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것이 보인다.
저번에 학교 앞에 깜둥이 아저씨네 집에서 한번 먹어본 주스다.
요즘 삼각 김밥보다 약간 큰 크기다. 비닐 팩으로 삼각형 모양인데, 오렌지 주스 음료가 들어있다. 뭐 오렌지 맛 분말가루에 오렌지색 색소를 사카린 물에 탄 정도였지만, 입에 넣고 살짝 깨물어 잇자국을 내면 그 가는 구멍으로 찍하고 솟아나는 주스 맛이라니.
그걸 보니 갑자기 목도 마르고 하나 사먹고 싶다.
그런데 문득 아우 태익이가 생각난다. 형 따라 학교는 내년이나 간다. 집에서 막내 자리는 태숙이 여동생한테 빼앗겼다. 그저 형 학교 다녀와서 자기 데리고 개구쟁이들 어울리는데 데려가기만 바란다. 그리고 시골 군것질이 무엇 있나. 형 소풍간다고 남겨올 고 사탕 한 개 목 늘어지게 기다릴텐데.
아. 그렇구나. 룩색에 챙겨 넣은 남은 것들을 생각하니 태익이 것이 없구나.
할아버지 할머니 드릴 누가 다섯 알, 엄마 것 사과 한 개, 태숙이 아기 것 달걀 한 개, 아 태익이 것이 정말 없네. 큰일 날 뻔 했다야. 목이 마르긴 하지만 참을만 해. 그래 저 삼각 비닐 팩 주스 하나만 사가자.
[3]
*
비닐 팩 주스 하나 사 넣으니 짧은 해가 서산에 한 뼘쯤 남게 걸린다.
친구들이 우르르 구멍가게를 나서서 국도를 따라 삼거리 쪽으로 향해 꾸준히 걸어간다.
분강에서 탄천까지는 이십분쯤 걷고 다시 공주 가는 국도를 따라 이십분쯤 걸으니까, 주욱 반듯이 가면 이인을 거쳐 공주로 향하는 길이고 오른쪽으로는 안영리로 꺽어지는 분기점 삼거리에 닿는다. 해가 서쪽으로 고개를 숙이는 산 밑, 표도 팔고 담배도 파는 집하고 초가집이 세 채가 붉은 노을을 등에 이고 나란히 붙어 있다. 벌써 여물을 쑤기 시작하는지 구수한 냄새가 코에 스민다. 그만큼 출출해진 거다.
오른쪽으로 꺾어 진고개를 오르기 시작한다. 완만한 오르막 경사의 오리 쯤 되는 고개다.
가운데 쯤 민가가 한집 있다. 여기도 담배를 팔기도 하고 막걸리를 한 되씩 받아가는 집이다.
이쯤 오니까 목이 마르다. 태익이 주려고 산 비닐 팩 주스를 만지작거린다. 하지만 형을 기다릴 유난히 동그란 눈을 생각하니 만지작거린 손이 얼른 떼진다. 다른 때 같았으면 홀짝 마실 텐데. 후 훗. 동생얼굴이 빨리 오라고 귀엽게 웃는다.
진고개 오르막이 끝나고 내리막이 서서히 이어지더니 우리 학교가 있는 덕지리 쪽과 우리 동네로 갈라지는 길이 나온다. 대부분 동무들이 그쪽으로 헤어지고 안영리 쪽 동무들만 왼쪽으로 곧게 난 길을 따라 말구렁으로 이어지는 길을 또 오르기 시작한다.
발이 무겁고 지친다. 목이 마르다. 아 주스가 마시고 싶다.
에라 모르겠다. 주스의 모 서리를 입에 넣고 꼭 깨물려고 한다. 탁 깨물어 잇자국만 나면 그 자국으로 달콤한 주스물이 물총처럼 찍 뿜어져 나오겠지. 아이 참. 그런데 할아버지 엄마 모습이 왜 떠 오르는거야.
“형은 동생을 예뻐하고 항상 지켜줘야 되는 거다. 알았지.”
그 말씀을 떠올리니 갑자기 눈물이 나려고 한다. 일년에 가을운동회하고 봄 가을 소풍 때 세 번은 형 때문에 덩달아 즐거운 동생 모습이 얼마니 귀여운지 몰라. 나를 혼내고 입에서 뗀다.
말구렁 내리막길이다.
저 건너편 언덕에서 멀리 이 고개를 보고 있노라면, 아버님이 때로 대전에서 내려오셨지. 엄마가 태숙이를 업고 내려오셨지. 그때 마다 콩닥 콩닥 새가슴은 뛰었지. 아빠나 엄마를 마주하는 순간 숫기 없어 미적거렸지만 엄마 아빠 냄새는 너무 행복하고 든든한 향기였지.
땅거미가 제법 짙어지고 짙은 산 그림자가 발밑에 쌓이기 시작하며 은근히 무서워지기 시작한다.
아버지는 참 무서움도 없으셨나 봐.
이 길을 조석으로 넘어 학교에 다니셨다지. 때로 학교일을 늦게까지 하거나, 선생님과 공부를 조금이라도 더 하려고 밤 깊은 시간이면 이 고개 달빛은 그렇게 밝을 수 없다셨지.
어느 날인가는 깊은 밤 하교 길에 갑자기 미친 이가 튀어나왔다고 하셨지. 그냥 튀어 나오는 게 아니라 부엌칼을 달빛 아래 휘저으며 히 히 히 괴성을 지르며 저 놈 잡으라고 느닷없이 튀어나온 괴한. 간이 다 떨어져 얼어붙은 그 어린 발걸음을 떼 내 도망치느라 식은 땀 솟으셨다지.
그 얘기에 겁이 덜컥 났다.
산중턱 군데 군데의 하얀 벚꽃이 어쩐지 귀신 치마폭처럼 느껴졌다.
마구 뛰어 내려갔다.
휴우-. 말구렁을 다 내려오니 오른쪽으로 마을이 보여 가쁜 숨을 놓았다. 옛날 옛적 탑이 많은 웃동네라서 탑상골이라고 불린다. 초가 지붕들 위로 어둠에 섞인 은은한 하양과 파란빛의 연기가 떠있다. ‘음메-’하고 느릿하게 우는 소 울음 뒤로 한 아저씨가 한 키는 더 높은 풀 지게를 지고 지나가신다. 퇴비 만드시느라고 꼴을 늦게까지 베셨나보다.
“안녕하세요?”
“응. 그려. 우택이네 큰놈이구먼. 원족 갔다 오능겨? 왜 이리 늦었댜.”
“예. 살펴 가셔요.”
“그려. 그려. 집이 가거등 할아부지한티 안부 전해드려 잉? 증인상씨가 그러더라구.”
“예에-.”
[4]
*
이제 마지막 남은 고개를 오른다.
1킬로 쯤 남았다. 뛰어 왔더니 목이 탄다. 도저히 물이 마시고 싶어 못 견디겠다. 다시 비닐 팩의 한쪽 뿔을 입에 넣어본다.
나도 몰래 송곳니를 살짝 눌렀다.
햐아. 쌔애-하고 바늘구멍으로 치솟아 나오는 그 달콤한 물.
‘아 태익이건데. 이게 뭐람.’
순간 아차하고 손을 뗐지만 팽팽하던 비닐 팩은 이미 물이 빠져 엉성한 모양으로 찌그러졌다. 출렁거린다.
구멍 난 곳을 엄지 검지로 꼭 쥐고 마지막 고개를 힘껏 올라, 학교 배급 분유를 입에 털어 넣으며 아버지를 엄마를 기다리며 저 건너 말구렁을 바라보던 등성이를 휙 넘어 내리막으로 들어섰다. 이젠 고개는 다 넘었다.
내리막 중턱에서 바라보니 멀리 왼쪽으로 안골이 보인다.
오른쪽에 외딴 집이 한 채다. 막걸리 파는 집이다. 기둥에 붙어있는 말이 궁금하다. ‘외상은 상담을 要함.’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다. 외상? 상담? 要함? 이게 무슨 말일까?
타박 타박 다 내려가니 정말이지 너무 배고프고 목마르고 다리 아프다. 잠시 앉아 쉬고 싶지만 어둠이 제법 짙어져 길만 하얗게 보이니 무섭다. 집은 코앞이다. 그냥 계속 걸어간다.
‘에이. 딱 한번만 빨아 먹어야지.’
입에 넣고 비닐 팩을 살짝 힘주어 누른다. 또 쌔액하고 맛있는 줄기가 입안을 쏘지만 동구 밖에서 기다릴 얼굴이 떠올라 더 이상 누르질 못하겠다.
고만 빼야지 하면서 손은 말하는데, 입은 더 있어, 더 있어 하면서 얼른 얼른 한 모금씩 빤다.
비닐 팩은 이미 쭈글 쭈글 해졌다.
그 쭈글거리는 팩의 촉감에 동생에겐 더욱 미안해지고, 생과자까지 먹어치운 두려움으로 내가 너무 밉다. 괜시리 울고 싶어진다.
새말을 지난다.
흐린 불빛이 처마 밑에 내걸린 집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저녁상 냄새가 동네 어귀까지 마중 나와 있다. 저녁을 드신 형중이 아저씨가 감나무 아래 멍석을 펴 놓으시고, ‘풍년초’를 꾹꾹 눌러 담으신 장죽을 빨 때마다 빨간 불빛이 어둠 속에 선연하게 산다. 이제 이 실개천 따라 백 미터만 산모퉁이 돌면 첫 집이 우리 집이다. 개가 컹 컹 짖는다.
구멍 난 곳을 꼭 쥐고 냅다 집으로 뛴다. 좁은 길은 훨씬 어두워졌다. 저쪽에서 누가 어른거린다.
어둠 속에서 통 통 통 뛰는 내 발자국 소리만 듣고도 동생이 반가워서 소리쳐 부른다.
“형! 형이야?”
“그래 나 기다렸어?”
“응. 왜 이제 오는 거야.”
“자 이거.”
그 쭈글 쭈글해진 팩을 입에 물고 연신 벙긋 벙긋한다. 태숙아 큰 오빠 왔다고 소리치며 집에 뛰어 들어가는 동생 때문에 왠지 콧등이 다시 시큰하다.
속으로 다짐한다. 태익아 미안해. 다음엔 절대 빵구 안낼께.
몇 걸음 뒤에 엄마가 기다리고 서있다.
“이제 오냐 힘들지?”
“응 엄마 배고파.”
나를 껴안아주는 엄마 냄새. 히 히. 아 행복해.
울고 싶던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륵- 엄마 치마폭 위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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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