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이 타원형이라서 홍티 아닌교." 김석찬(62) 씨는 전어잡이 배에서 만난 어부다. 홍티에서 육칠대째 사는 홍티 토박이다. 홍티 홍은 무지개 홍(虹). 어째서 홍티냐고 묻자 대답이 시원시원하다. 육칠대째 토박이다운 맛이 있다. 전에 있던 세 마을 생김새가 타원형이라서 무지개꼴이라서 홍티라는 얘기다. 세 마을 중 두 마을은 철거되고 윗동네만 남았다고 한다.
홍티에서는 보이는 게 무지개고 부르는 게 무지개다. 마을이름도 무지개고 고개이름도 무지개고 다리이름도 무지개다. 매립되기 전 해안동굴 이름도 무지개고 하다못해 팔십년대 초반 근동에 들어선 공단이름도 무지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무지개가 걸쳐 있어 사람과 사람을 사촌으로 맺어주고 팔촌으로 맺어준다.
"외지인은 거의 없다고 봐야지요." 홍티 사람은 거의가 토박이라는 김권철 어촌계장 말이다. 십 몇 년 전까지는 텃세가 심해서 외지인이 못 들어왔고 지금은 고기잡이로는 하루 벌어 하루 사는 게 버거워서 못 들어온다고 한다. 이 사람도 저 사람도 몇 대째 토박이다 보니 모두가 사촌이고 팔촌이다. 어촌계장과는 사촌 같고 팔촌 같은 김석찬 어부는 이런 말도 덧붙인다. 홍티 남자는 '백 퍼센트' 다대초등학교 동창이라고.
홍티는 을숙도와 다대포 중간짬에 있는 포구다. 그러니까 산에서 난 물과 바다에서 난 물이 만나는 포구다. 산물은 낙동강을 거쳐 홍티에 이르고 바닷물은 다대포를 거쳐 홍티에 이른다. 높은 곳에 있던 물이 낮은 곳에 있던 물과 합치는 포구. 얕은 곳에 있던 물이 깊은 곳에 있던 물과 합치는 포구. 높음과 낮음이 만나서 하나가 되고 얕음과 깊음이 만나서 하나가 되는 포구가 홍티다.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가문 어느 집에선들 좋아하지 않으랴./ 우리가 키 큰 나무와 함께 서서/ 우르르 우르르 비 오는 소리로 흐른다면.// 흐르고 흘러서 저물녘엔/ 저 혼자 깊어지는 강물에 누워/ 죽은 나무뿌리를 적시기도 한다면.// 아아, 아직 처녀인/ 부끄러운 바다에 닿는다면.'
(-강은교 시 '우리가 물이 되어' 중에서)
나는 너를 만나 하나가 되고 우리가 된다. 평평해진다. 너는 나를 만나 하나가 되고 우리가 된다. 평평해진다. 하나가 되고 우리가 되어 평평해진다면 높고 낮음이 무엇이랴. 얕고 깊음이 무엇이랴. 둘러보면 아직도 만나지 못한 네가 있다. 돌아보면 아직도 만나지 못한 내 안의 내가 있다. 나는 언제쯤 평평해질 것인가. 평평해져서 바다에 닿을 것인가.
전어잡이 배가 정박한 곳은 홍티교 다리 밑. 배 두 척을 잇대어서 그물에 걸린 전어를 떼어내고 있다. 작업하는 어부는 대략 열 명. 대개가 부부다. 새벽 3시에 나가 아침 8시에 들어온 배다. 오늘 잡은 전어는 100kg쯤. 잡은 고기는 다대포공판장에 위판하거나 활어차에 넘기고 그물에 걸려 죽은 전어는 집에 가져가거나 나눠준다. 홍티 어촌계 배는 77척. 1t 내외 자망어선이 대부분이다. 자망은 전어나 숭어 같이 떠다니는 고기를 잡는 그물이다.
전어 작업 배에 올라탄다. 인심이 후하다. 전어도 썰어내고 소주도 따라준다. 아주머니 한 분이 뒤늦게 합류하는 어부를 보며 "외삼촌!" 인사를 한다. 하여튼 사촌이고 팔촌이다. 외삼촌 인사를 받은 어부는 후내년이면 여든이 되는 손두하 옹. 홍티 어부 연령대는 오십에서 팔십 가까이. 영감 죽고 홀로 살면서 고깃배 선주가 된 정병선 할머니는 내년에 칠십이다. 나이 칠십 할머니가 직접 배를 타고 직접 그물을 던진다.
뱃일은 비린내 나고 멀미나는 일. 물려받아라 강요도 못하고 물려받겠다 나서지도 않는다. 홍티의 지금 처지다. 하루벌이 뱃일의 지금 처지다.
"저기가 보이지요?"
김권철 어촌계장이 가리킨 곳은 다대포 방향 파도치는 바다. 백합조개가 많이 잡혀 백합등이라 부르는 모래톱 너머 바다다. 파도에 떠밀려온 모래가 쌓이면서 저 바다 수심이 낮아지고 있단다. 수심이 낮아지면서 겨울철 김 작업 나간 배가 모래에 갇히기도 하고 '뒤바지기'라 해서 스크루가 모래에 닿아 뒤집히기도 한단다. 기름값 걱정에 줄어드는 고기 걱정에 배 뒤집히는 걱정에 어촌계장 주름이 홍티 앞바다 모래톱 주름만큼이나 짙다.
"잔잔해서 좋대요. 가족끼리 있기는 최곱니다." 앞바다 모래톱에서 배를 타고 막 건너온 최명율(46) 씨. 세 부부가 동반해 앞바다 모래톱에서 낚시를 하고 나온 참이다. 쿨러는 망둥어에 메가리에 보리멸에 잡은 고기 얻은 고기로 그득하다. 초등학교 3학년 아들 지성이도 낚시꾼 티를 낸다. "내가 잡은 고기도 있어요."
홍티에서 잘 잡히는 어종은 얼마 전까진 꽃게. 웅어라는 고기도 숭어 전어도 잘 잡힌다. 어촌계장은 바다에 대나무를 집어넣어 물고기 소리로 수조기를 잡던 때를 들려주고 늦게 합류한 손 옹은 광어니 숭어니 황어니 이름난 고기는 다 잡아봤다고 들먹인다. 이만한 민어도 수두룩하게 잡았다며 양팔을 쫙 벌린다.
팔을 쫙 벌리니 포구가 다 좁다. 살아오면서 양팔을 벌린 날이 나는 몇 날 며칠이 될까. 나도 모르게 팔을 벌릴 정도로 마음이 벌렁거린 날이 며칠이나 될까. 이렇게 생각해 보면 생각보다 많은 것 같고 저렇게 생각해 보면 생각보다 적은 것 같다. 생각보다 많은 것도 생각보다 적은 것도 내가 받아들이기 나름. 이참에 나도 팔을 쫙 벌려 본다. "이만한 고기요?"
"한 잔 더 하소." 여전히 포구의 배 위. 그물에서 떼어내 갓 썬 전어 맛이 입 안에 돈다. 전어가 입 안에서 돌아다닌다. 술이 길어지고 말이 길어진다. 처음 말을 붙일 때는 투박하고 퉁명하던 뱃사람들이 전어도 자꾸 썰어내고 술도 자꾸자꾸 따라준다. 다음에 술 사 들고 오면 횟감은 무진장으로 내놓겠다며 호언이다. 나와 뱃사람들 사이에 어느새 걸쳐진 무지개. 홍티는 홍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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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동강 모래톱 강 하구께 퇴적층 문학의 단골 소재
낙동강 모래톱(사진). 모래톱은 강이나 바다를 끼고 있는 모래밭을 말한다. 퇴적작용으로 강 하구 여기저기 솟은 삼각주도 모래톱이다. 낙동강 하구에는 을숙도 일웅도 명지도 진우도 대마등 백합등 등의 크고 작은 모래톱이 많다. 얼마 전 멸종위기종인 맹꽁이 집단 서식지가 발견된 곳이 일웅도다.
문학작품에도 모래톱이 자주 나온다. 대표적인 게 요산 김정한의 단편 '모래톱이야기'다. 작가가 소설에서 언급한 대로 '낙동강 하류의 어떤 외진 모래톱' 이야기다. 요산은 부산을 대표하고 한국 리얼리즘 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아 기념문학제가 다음 달 부산 곳곳에서 열린다. 다음은 시에 나타난 모래톱이다.
'돛배를 아십니까. 돛대에 넓은 천을 달고서 바람을 받아 가는 배. 내겐 휘고 오래된 배가 한 척 있습니다. 눈에 담아 두고 가끔 거풍하듯 꺼내어 보는, 언젠가 풍석(風席)배라 이름하던 작은 배. 그래요 정작 선주는 제 아버지입니다. 명지 끝물 일웅도 모래톱까지 데려다 주곤 하던, 지금은 동력선이 된 그 배가 예전엔 돛단배였습니다.'
(문정임 시 '돛배를 찾아서' 중에서
-1994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당선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