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창동에서의 하루
"인간과문학" 을 통해 내가 세상에 평론가라는 이름표를 달았다. 이후 스스로 생긱해보아도 나의 문학이라는 족적은 놀랍도록 달라졌다.
"시" 등단 이후 지지부진했던 방향성이 뚜렷해졌으니,
어제는 "인간과문학" 송년 행사가 서울 시청 옆 코리아나 호텔 7층에서 있었다.
그 큰 행사 홀을 가득 메운 문학의 열기는 대단한 것이었다.
주최측에서 "트레블로지 명동 시티 호텔"을 잡아줘 대한민국 심장부에서 외로운 독방의 하루를 보내야했다.
행사 끝나고 그 많던 사람들 다 흝어지고 홀로 긴 서울의 밤을 보낸다는 것은 힘들었다.
북창동의 뒷 골목을 기어들어 김치찌개에 서울 사람들이 즐겨 마신다는 "장수막걸리" 한병을 시켜 마시는데 그것도 고독처럼 틀어막는 거대도시 서울에서는 낭만이고 사치일지 모른다.
골목으로 빨려들어가듯 산발한 조명을 따라 30년 전통의 김치찌개에 목숨 걸었다는 식당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
하기사 울 어머니 열 아홉에 시집 와 40년 넘게 줄창 끓여대고도 살아 생전 느리보지 못하고 죽어서야 자식들 어머니 손맛 그리워하는 느긋한 맛을 지그들이 차마 내것냐 싶지만,
주위의 산만한 분위기와 어울리지 못하고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중국인들의 무리와 중간중간 패에 몰린 바둑돌처럼 납짝 엎드린 동남아 특유의 왜소함이 나와 닮았다.
저들도 자기들의 모국에서는 단단하고 대단한 족속의 피를 가진 자부심으로는 둘째 가라면 서러울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북창동의 깊은 어둠속에서는 그 무엇하나 '나'라고 내세울 것이 없는 그저 먹거리 앞에 앉아 객기를 메우는 사람에 불과할 뿐이다.
이런 저런 생각은 끝없이 아득한 과거로 이어지지만, 다 부질 없는 것이어서 술병을 비우고 일어나야만 내가 나를 바로 세우는 길임을 알고 있다.
또 몇 년 후 서울에서 오늘같은 날이 오면 나는 전생의 오랜 인연으로 조등처럼 걸린 붉은 간판을 찾아들어가 추억의 꾸러미를 풀기 시작할 것이다.
사람들을 그토록 뜨거워질 수 있게한 "인간과문학"과 인연된 얼굴들에 선명한 안면인식의 미세한 근육의 변화까지를 대조해봐야겠다.
일어나 부랴부랴 씻고는 어둠이 걷힌 북창동의 아침을 보고 싶었다. 간밤의 취기는 깊어 먹자 골목들은 고요했다.
그러지만 먼저 귀가한 한량의 여유처럼 아침부터 손님을 맞이하는 식당 두어 곳이 눈에 띄었다.
기왕에 왔으니 해장까지 생각이 돌아 육개장에 장수막걸리 한병을 시켜 비웠다. 차갑게 흘러드는 막걸리가 목울대를 적신다.
술! 어떤 핑계를 대어서라도 사람을 질기게 따라붙는 저것도 나에게는 문학보다 더 질긴 인연이었으니 막걸리가 전생에서는 사람이었을지 모른다.
그 선한 연을 내칠 수 없어 끝내 더한 인연이 되지 못한 지난 세월 속 연인처럼 막걸리 한병을 온 몸으로 품어주었다.
마음이 술과 동했으니 어이하겠는가. 죽어도 살아도 같이 순천까지 동행해야지. 순천으로 내려가는데 술이 나를 유혹하려 마법을 거는지 세상이 모두 달달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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