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퍼킨스는 개혁주의나 장로교의 현대 신자들이 아는 구원의 서정을 정리한 청교도 위인입니다. 로마서8장28~30을 황금사슬이라고 하는데 이런 표현과 정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분이 퍼킨스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설교에는 개혁주의 예정론이 나타나는 성향이 있습니다. 현대의 유명한 청교도 연구자인 조엘 비키 목사님이 요약한 윌리엄 퍼킨스의 예정론적인 설교에 대해 구분선 아래에서 읽고 유익을 얻도럭 하겠습니다.
예정론적인 설교
퍼킨스는 설교를 선택된 백성을 향해 펼치시는 "하나님의 강한 팔", 또는 구원을 싣고 신자들의 마음속으로 달려오는 전차로 보았다. 그에 따르면, 설교는 곧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분의 능력으로 예언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사람들이 은혜의 상태로 부름을 받으며, 그 안에 머물게 된다. 본질상, 퍼킨스는 설교자들 자신에게 하나님의 도구로서 회중에게 선택과 언약을 해설할 책임이 있음을 깨닫도록 돕는 데 목표를 두었다. 설교자들이 성경적으로 균형 잡힌 설교를 전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었다. 말씀의 설교는 사람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며, 설교가 없이는 구원도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설교의 위치를 높이 평가했기에, 퍼킨스는 설교를 공예배의 절정에 두어야 한다고 주저 없이 주장했다.
설교는 한 인간이 수행할 수 있는 가장 숭엄한 과업이다. 설교가 설교자와 청중 모두에게 진지한 관심사가 되는 이유는, 영원의 문제들이 이 일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참된 설교자는 자신의 설교를 세심하게 준비하는 일도, 그 설교를 단순하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전하는 일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선택된 자들이 누구인지 아시는 분은 하나님뿐이므로, 퍼킨스는 설교를 듣는 자는 누구든 복음의 은혜 안으로 들어올 가능성이 있다고 여긴다. 그러므로 그는 모든 죄인을 향해,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베푸시는 구원을 받아들일 것을 강권한다. 퍼킨스에 따르면, 이 복음의 약속은 모든 이에게 "귀중한 보석“처럼 값없이 제시되어야 한다. 이와 동시에, 그는 선택을 이해하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고 설명한다. "하나는 하나님이 특별히 자신에게 속한 자들을 아시는 방식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좀 더 일반적인 것으로, 우리는 이를 통해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모든 자들을 선택된 백성으로 간주하는 한편 은밀한 판단은 하나님께 맡기게 된다. 그러므로 바울은 에베소나 빌립보 교회의 신자들을 모두 선택된 백성으로 여기면서 편지를 썼던 것이다. 이처럼 우리 말씀의 사역자들도 자신의 회중을 선택된 하나님의 백성으로 여기고서 설교해야 한다."
따라서 한 설교자가 자신의 회중 가운데 선택된 이들과 유기된 이들을 분간할 필요성은 실질적으로 해소된다. 다만 설교자들은 성령님의 도우심에 의존하면서, 구원의 은혜를 나타내는 표지들을 뚜렷이 제시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죄인들이 자신의 영원한 운명에 관한 하나님의 심판을 마음으로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퍼킨스는 설교를 두고 "우리가 그리스도를 소유할“ 방편이자 ”우리 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는" 방편, "모든 신자의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자리 잡게 하는“ 방편으로 불렀다. 선택된 이들은 그저 설교를 통해 부름을 받은 뒤 그대로 방치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설교는 신자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는 일에서 지속적인 '동력'이 되었다.
퍼킨스에 따르면, 구원의 황금 사슬(효력 있는 부르심과 칭의, 성화와 영화)이 선택된 자들에게 적용되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에 관한 설교를 통해서였다. 따라서 그는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선택하신 자신의 백성에게 베푸시는 주권적인 은혜뿐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의 역사와 개인의 체험 가운데 행하시는 구원의 언약적인 행동에도 관심을 두었다. 이는 하나님의 이 언약적인 행동을 통해 선택이 실제로 성취되기 때문이다. 퍼킨스는 이렇게 인격적인 구속의 과정이 우리의 체험 속으로 침투하는 방식에 깊은 관심을 쏟았다. 곧 하나님이 제안하시며 행하시는 일들에 선택된 이들이 어떻게 응답하고, 그분의 뜻은 선택된 자들의 마음속에서 어떻게 실현되는지에 관한 물음들이 그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조엘 비키, 『설교에 관하여』, pp.234~236.
첫댓글 윌리엄 퍼킨스(William Perkins)
윌리엄 퍼킨스(William Perkins, 1558년 ~ 1602년)는 영국의 영향력있는 성직자이며 캠브리지 신학자였다. 1577년에 크라이스츠 칼리지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입학하여 그곳에서 B.A. 와 M.A. 학위를 받았다. 엘리자베스 통치기간에 영국 교회안에서 청교도 운동의 유명한 지도자가운데 한명이었다. 장 칼뱅과 테오도르 드 베즈의 타락전 선택설의 지지자였다. 다섯 솔라의 변호자였다.
이하 위키 백과 링크 참조
https://ko.wikipedia.org/wiki/%EC%9C%8C%EB%A6%AC%EC%97%84_%ED%8D%BC%ED%82%A8%EC%8A%A4
다섯 솔라
"다섯 솔라(Five Solas)"는 서방 기독교 종교 개혁 때 처음으로 대두된 개신교의 다섯 가지 표어이며, 라틴어로 솔라(Sola)는 "오직"이라는 뜻이다. 로마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에 반대한 개신교의 기본적인 믿음 체계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따라서 로마 가톨릭교회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개신교는 대체로 이 개념을 따른다.
이하 위키 백과 링크 참조
https://ko.wikipedia.org/wiki/%EB%8B%A4%EC%84%AF_%EC%86%94%EB%9D%BC
타락 전 선택설
작정의 논리적 순서(logical order of God's decrees) 혹은 선택설이란 주로 존 칼빈의 신학에 논의되는 것으로 하나님이 선택과 유기의 시점을 어디에 두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전통적으로 2가지가 있다. 타락전 선택설(Supralapsarianism)란 하나님의 선택(election) 과 유기(reprobation)의 작정(decree)이 타락의 작정보다 더 앞선다고 보는 주장이다. 타락후 선택설(infralapsarianism)란 하나님의 선택(election) 과 유기(reprobation)의 작정(decree)이 타락의 작정 뒤라고 보는 주장이다. 리차드 백스터는 이 두 주장에 대한 논쟁이 지나치게 격했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프란시스쿠스 유니우스와 윌리엄 트위세, 프란시스 튜레틴, 에드워드 레이등은 두 의견의 차이는 별로 중요치 않다고 주장했다.
이하 위키 백과 링크 참조
https://ko.wikipedia.org/wiki/%EC%8B%A0%EC%9D%98_%EC%9E%91%EC%A0%95%EC%9D%98_%EB%85%BC%EB%A6%AC%EC%A0%81_%EC%88%9C%EC%84%9C
타락 전 선택설의 주창자로 칼빈이 이미 나오는데, 칼빈은 그런 말 안 했고 베자 이후로 그랬다는 말을 하는 분들은 지나친 해석을 하는 분들 같습니다.
@장코뱅 5 솔라와 TULIP를 믿는 것이 개혁주의이겠지요.
@장코뱅 도르트 신조보다 웨민이 나중에 나온 것을 모르고... 그걸 모르고... 장로교 예정론이 타락 후 예정이라고 용감이상한 이야기를 하는 분이 가끔 있습니다. 웨민은 타락 전 예정(선택)을 주장합니다.
퍼킨스의 스승, 로렌스 차더톤
로렌스 차더톤(Laurence Chaderton; 1536년 - 1640년)은 영국의 청교도이며, 임마누엘 칼리지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초대 학장이었다.
킹 제임스 성경 번역에 참가하였다.
생애
1564년에 크라이스츠 칼리지에 입학하였다. 그곳에서 개혁주의 신앙을 받아들여서 그의 아버지로부터 받은 가톨릭 교육을 떠났다. 윌리암 퍼킨스의 개인 교사로 그와 평생 동료로 함께 하였다. 퍼킨스와 차더톤은 리처드 그린햄, 리처드 로저스와 만나서 케임브리지 대학교를 청교도의 요람으로 만들었다.
출처: 한국어 위키 백과
유명한 위인도 다 스승이 있습니다. 이단 교주들은 자신들의 스승을 밝히지 않는 경향이 많은 것 같습니다.
@노베 그렇군요. 공감합니다.
퍼킨스는 칼빈주의 이중예정론 지지자였다. 테오도르 드 베즈의 사상을 영국에 소개한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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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뱅주의 이중예정론(영어: Predestination in Calvinism)은 하나님이 세계를 통치하는 것에 대한 질문을 다루는 칼빈주의의 교리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서는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가장 지혜롭고 거룩한 자신의 뜻의 계획에 의해 모든 일어날 일을 자유롭고 불변적이게 정하셨다." 두 번째로 사용된 "예정"은 구원과 관련되는데, 은혜로 어떤 사람들을 영원한 구원으로 선택하였고 반면에 자신들의 죄때문에 그리고 원죄로 인해 영원한 심판을 받도록 하나님이 내버려두셨다는 것이다. 전자에 대해서는 무조건적인 선택이라고 부르고 후자에 대해서는 유기라고 부른다. 칼빈주의에서는 전자들은 하나님에 의해서 믿음으로 중생하도록 유효적인 소명으로 예정받았다고 한다.
이하 위키 백과 링크 참조
https://ko.wikipedia.org/wiki/%EC%B9%BC%EB%B1%85%EC%A3%BC%EC%9D%98_%EC%9D%B4%EC%A4%91%EC%98%88%EC%A0%95%EB%A1%A0
퍼킨스와 베자는 뭔가 유사한 분위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링크 글 잘 읽었습니다. 베자와 청교도의 연결 고리가 되었던 점을 높이 사야 할 것 같습니다.
퍼킨스의 경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주기도문에 대한 그의 이해를 살펴보아야 한다. 율은 퍼킨스가 주기도문에 대해 강해한 내용을 통해 퍼킨스가 가진 경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중요한 통찰력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이는 당연한 논리적 결론이다. 경건에 있어서 핵심적인 행위가 기도이고, 실제로 퍼킨스가 주기도문 강해 앞부분, 즉 주기도문 강해 전체내용을 정리한 표와 주기도문의 구체적 기도제목들에 대한 설명 사이에,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에 대한 설명에서 기도에 대한 자신이 가진 견해를 상세하게 제시하고 있다. 퍼킨스는 주기도문에 대한 설명이 담겨져 있는 자신의 또 다른 책인 「산상설교 강해」에서 주기도문은 모든 피조물들이 드려야 할 가장 탁월한 기도의 형태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퍼킨스의 경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도에 대한 그의 이해와 “가장 탁월한 기도의 형태”인 주기도문에 대한 퍼킨스의 설명을 연구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곽인섭, 『기도에 대한 윌리엄 퍼킨스의 이해―「주기도문 해설」을 중심으로 ―』, pp.97~98.
십계명이 주기도문으로 요약되고 주기도문이 우리 기도의 모범이 되고 큰 흐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예정론을 장로교만의 교리로, 비판적으로만 보지 말고,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존중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롬9:18-21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 하리니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네, 좋은 댓글에 공감합니다.
설교를 공예배의 절정에 두어야 하며, 한 인간이 수행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하고 엄숙한 과업이라고 이해한 퍼킨스의 말에 공감합니다.
설교자를 통해서 복음이 값없이 모든 자들에게 제시될 때, 선택을 이해하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고 했군요. 특별한 것과 일반적인 것.
특별한 것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속한 자들을 아시는 방식이 있고, 일반적인 것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자들을 선택된 백성으로 간주하고 은밀한 판단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라고요. 따라서 설교자들이 회중을 선택된 하나님의 백성으로 여기고 설교해야 한다는 것과, 선택된 이들과 유기된 자들을 분간할 필요 없이 성령님의 도우심에 의존하면서 구원의 은혜를 나타내는 표지들을 뚜렷이 제시해야 한다는 말씀이 상당히 합리적으로 느껴집니다.
이외에도 설교에 관한 유익한 말씀을 많이 남겼네요.
글을 정확히 잘 읽으셨어요. 구원파는 타인의 구원 여부를 나쁜 머리를 굴려 알고자 나대지만, 퍼킨스와 개혁주의는 하나님의 구원 주권을 인정하며 신중하고 겸손합니다.
@장코뱅 두 분 댓글에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