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성지 중에서 보기 드물게 해발 500m의 높은 지대에 위치하고 있는 이 성지는 경기도와 충청북도 경계선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 성거산 성지 주변은 박해 때 신앙의 선조들과 순교자들이 피신하여 신앙생활을 영위했던 삶의 터전인 교우촌 7개가 산재되어 있다. 1860년대부터 1920년 사이에 세워진 교우촌을 보면 서덕골(서들골), 먹방이, 소학골, 사리목, 매일골, 석천리, 도촌 등이 있었으며, 이 교우촌 중 목천 서덕골 교우촌은 뮈텔 주교가 배티 삼박골 교우촌까지 사목 방문을 할 때 거쳐 가는 경로였다. 또한 서덕골 교우촌은 한국의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 신부의 백부 최영렬이 이주해 살던 곳으로, 1839년 기해박해 이후 최양업 신부의 둘째 아우인 최선정 안드레아가 맡겨져 성장한 곳이며 최양업 신부도 종종 드나들었던 곳이다.
특히 소학골 교우촌은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칼레(Calais, 姜) 신부와 페롱(Feron, 權) 신부가 박해를 피해 머물다 중국으로 탈출한 곳이고, 박해가 끝난 뒤에도 뮈텔(Mutel, 閔德孝) 주교, 두세(Doucet, 丁) 신부, 베르모렐(Vermorel, 張) 신부가 거처하거나 순방하던 곳이다. 칼레 신부와 페롱 신부는 병인 박해 때 동료 선교사들이 곳곳에서 체포되자 전교 여행을 중단하고 한실(현 경북 문경군 마성면 성내리) 교우촌에서 숨어 지냈다. 그러다가 포졸들에게 쫒기면서 연풍을 지나 괴산과 진천을 거쳐 배티 삼박골 교우촌에 머무르다가 마지막으로 소학골에 와서 페롱 신부와 함께 잠시 은신하다가 조선을 떠난 유서 깊은 교우촌이다.
또한 병인박해 때 10명의 순교자가 탄생한 곳입니다. 그 중 5명은 공주 감영에서 참수형을 당했고, 5명은 서울 포도청에서 참수형을 당했다. 공주 감영에서 참수된 최천여 베드로, 최종여 라자로, 배문호 베드로, 고 요셉, 채 서방 며느리는 성거산 성지 제1줄무덤에 안치되어있다.
대전교구>성거산 성지 - 가톨릭정보 - 가톨릭굿뉴스 (catholi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