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이다.
나를 많이 좋아하던 한 녀석이 내가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는 수줍게 건네준 카세트 테잎이 있었다.
바로 ABBA Great Hit 앨범.
앞뒤 9곡씩 꽉꽉 채워져있던 테잎을 늘어지게 들었던,
지금은 절판되고 없는(물론 ABBA GOLD Great Hit 앨범으로 확장되어 재출시),
그 테잎을 통해 나는 아바를 알게 되었다.
출구 없는 터널을 계속 달리는 것처럼 답답하고 우울하기만 했던 내 고등학교 삶의 한줄기 빛과도 같았던 아바의 음악.
언제 듣던 어떤 기분에서 듣건 '촤라라라'로 시작되는 전주에서 부터 무조건 흥이 나는 "Dancing Queen'
바람이 산들산들 할때, 해 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듣기에 너무나도 잘 어울리던 'Andante Andante'
헤어짐이란 감정을 겪어보지 못했던 그 시절 어린 나에게도 쓸쓸함과 공허함의 감성이 느껴지던 "One of Us"
모든 감성을 아우르는, 정말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다 좋아할 만한 "Thank you for the Music"
그렇게 나의 감성은 ABBA와 함께 자라났고 힘들고 어려웠던 그 시절을 슬기롭게 버텨낼 수 있었다.
그리고 십년이 흐른 20대 후반 2004년
말로만 듣던 뮤지컬 맘마미아를 국내버전으로 볼 수 있었다.
그 당시에는 흔하지 않아서 접해보지 못했던 뮤지컬이라는 문화 장르가 낯설기도 하고 또 그 만큼 설레기도 했었는데
스토리가 있는 음악의 힘은 역시 굉장했다.
비록 예전 내 귀에 익숙했던 영어가 아니라 우리나라 말이라서 조금은 어색하기도 했었지만
도나역의 박해미와 깡마른 친구 타냐역의 전수경씨의 호연으로 공연 내내 귀와 눈이 즐거웠던 것으로 기억이 남는다.
그리고 2008년 뮤지컬 맘마미아가 영화화 되었을 때
다시 나의 감성은 고등학교 시절로 되돌아갔다.
한국어 버전이 아닌 영어 버전으로 듣는 아바의 노래는 더 커진 감동으로 나에게 다가왔고
콜린 퍼스, 피어스 부르스넌, 스텔란 스타스가드 라는 세명의 멋진 남성들이 나와 내 애창곡들을 불러주니
얼마나 황홀한 일인가...
맘마미아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노래는 'Our Last Summer'이다.
이 노래는 세명의 아빠들이 함께 부르는 노래인데
젊었던 시절 그들의 추억을 되새기는 장면에서 흘러나온다.
아바의 노래가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아마도 노래가사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멜로디도 물론 훌륭하지만 가사가 참 진실되고 솔직하며 꾸밈이 없다. 소소하지만 현실적인 일상을 이야기 하고 노래한다.
그리스의 풍광과 어우러진 음악은 아바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의 큰 호응을 얻어 흥행에도 크게 성공했다.
나 또한 두세번 극장에 갔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십년이 지난 올해 2018년
맘마미아2로 2008년 배우들을 고스란히 그대로 캐스팅해서 돌아온다.
물론 도나역의 메릴스트립은 빠졌지만...
이제 다들 육십줄 에 다다른 할아버지 배우들은 여전히 근사했고
이번 영화에 새롭게 등장해 내 눈을 사로잡은 배우가 있었으니 바로....페르난도 역의 '앤디 가르시아'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한방 날려주는 등장씬...
그리고 울려퍼지는 노래 ' Fernando'
스포가 될 것 같아 이야기는 더 하지 못하겠지만
1994년 겨울 '남자가 사랑할 때'라는 영화를 보고 반했었던 그 앤디 가르시아가 나와 내 어린 기억을 또 되새겨 주었다.
모든 영화나 음악이 그렇듯이 그것을 보고 듣을 때 느끼는 감정은 사람마다 다르다.
내게 아바와 맘마미아는 내 고등학교 시절을 소환하는 타임머신이다.
늘어난 테잎을 냉동실에 넣어가며 듣고 듣고 또 듣던, 이어폰 한쪽을 친구에게 꽂아주며 함께 늦은 밤 야간 자율학습 시간을 보내던 그 시절로...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옛 추억을 찾는 건
그 시절로 되돌아 갈수 없기에 더욱 그리운 것일까? 아니면 그 시절이 지금보다 더 좋았기 때문일까?
돌이켜 보면 작은 것 하나에도 행복하고 즐거워 했던 순수했던 그 시절의 내 마음이
이제는 더이상 순수하지 않고 채워지지 않을 만큼
빛이 바래고 커져 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