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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감상(죽지사 내용 요약)
‘상쾌한 가을날 와서 의젓하게 공부하라’ 써 붙이매
철부지들 가르침을 구하나 나는 먼저 수업료를 구하네.
경전 잡고도 이름자 쓸 줄 모르며
저녁에 넷 아침에 셋 와서 듣고 떠나거나 머문다오.
來學端宜趁爽秋,
童蒙求我我先求.
執經不用通名字,
暮四朝三聽去留.
봄을 맞은 향회(香會)에 축하연이 열리고
콩 나눠주며 맛보게 하니 좋은 인연 맺겠구나.
경문 읽을 계절로 겨울을 고르니
단마제(鍛磨齋)의 제단도 설 쇠기 전에 기념되리.
香會逢春設戱筵,
分嘗豆子結良緣.
唪經時節拈冬季,
鍛磨齋壇記歲前.
사방각지를 배와 수레로 다니면서 유람하는 것을 어찌 반평생에 그치겠는가. 글 솜씨와 무예로 도성에 거하며 호방하고 거리낌 없이 살아 간 지 이미 10년이 넘었다. 세상사 변하는 것이 꿈과 같으니 손가락을 튕길 정도로 짧은 시간에 이미 예전 모습이 아니게 된다. 시간은 아쉬워해도 다시 오지 않으매 흥이 일어나는 마음을 제한해서 무엇 하리. 풍속도 변하고 사람도 가니 어찌 발꿈치 들고 상전벽해가 변하는 것만 바라보는가. 이곳을 떠나도 정을 두고 가매 옛 사람의 자취가 되어 남겠구나.
꽃 핀 아침ㆍ달 밝은 밤과 같은 제재는 근심걱정을 없애줄 따름이지만 길거리에 떠도는 이야기는 전부 시로 지을 수 있는 재료이다. 이런 것을 말해도 죄가 되지 않으며 이해관계에 대한 글과도 전혀 무관하다.
듣는 사람을 활짝 웃게 하는 것은 본래가 전부 해학적인 말에 속한다. 능숙하고 서투르고를 떠나서 포복절도하는 데에 일조하고자 할 따름이다. 달 밝은 밤ㆍ꽃 피는 아침에 불과한 제재는 덧붙이고 보완해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징계의 뜻을 담지 않는다. 길거리에 떠도는 이야기를 끌어다가 근거로 삼으면 전부 익살맞고 낄낄대게 하는 노래가 된다. 이런 시가를 천박하고 비루하다 말하지만, 읽는 사람들은 활짝 웃게 되며 雅俗을 함께 감상할 수 있으니, 넓디넓은 大雅之堂 가운데 한 가닥의 웃을 거리라고 말할 수 있겠다
자질구레한 물건들로 가득한 경성 길
야시장이 닫히니 새벽시장[小市] 열리네.
차관의 문 앞에서 골동품을 모으매
융복사(隆福寺)에 보내온 것도 환영이라오.
零星貨物滿天街,
黑市才收小市開.
茶館門前收古董,
又邀隆福寺中來.
새벽시장[小市] 동서로 아득히 늘어섰고
백성들의 사고파는 소리가 벌처럼 요란하네.
온갖 고물들 중에는 진품과 가짜가 섞여있고
아홉 시가 되니 노점 거둘 준비를 하는구나.
小市東西遙對峙,
平民買賣鬧如蜂.
萬般故物雜眞贋
準備收攤九點鍾.
밑창을 바꾼 조례용과 신과 헤진 모자
종이 풀 먹인 가죽옷과 낡은 비단 마름질한 것.
돌아와서 활짝 웃으며 동료들에게 뽐내기를
새벽시장[小市]에서 싸게 사왔다고 하네.
換底朝靴破帽胎,
紙粘皮袄舊綢裁.
歸來嬉笑誇同輩,
小市便宜買得來.
전하는 말로는 영락한 명문세가에서 물품을 쌀이나 땔감 등의 자원과 교환해야 했으나 사람들 눈에 보이는 것을 수치로 여겼기에, 날이 밝기 전에 낡은 기물과 잡동사니를 들고 나와 외진 곳으로 팔러 다니던 것이 시장으로 형성되었고, 이 때문에 당시의 새벽시장이 외진 곳에 자리 잡은 경우가 많다고 한다.
새벽시장은 ‘小市’라고도 부르는데 淸代 북경에서 중고품이나 고물과같이 낡은 상품이 판매되는 시장이었다. 이와 같은 중고품의 매매거래는 일반적으로 자정 이후에서 날이 밝기 전까지의 시간대에 이루어진다. 그래서 ‘鬼市’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재래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은 쇠퇴하거나 세력을 잃은 권문세족과 귀족, 혹은 거상관료 집에서 나온 것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귀족으로서의 체면을 잃지 않기 위해 집안에서 값어치가 나가는 중고품을 새벽시장에 가지고 나와 팔러 다니면서 백주 길거리에서 아는 사람과 마주칠 가능성을 피한다.
각지에서 수집하니 물건 유독 특이하고
문 앞 와서 싸게 사가려 한다.
계집종들이 자질구레한 것들을 주워 와서
길가에서 타고아(打鼓兒)를 소리 높여 부른다.
隨處搜羅貨獨奇,
到門交易想便宜.
小鬟拾得零星物,
高叫街頭打鼓兒.
白雲觀은 소란스럽기 그지없는데
달리는 말이 언제부터 비단 안장을 감았나.
듣자하니 신선 자주 왕래한다 하는데
누가 죽은 혼 살려내는 단약을 얻었는고?
白雲觀裏鬧無端,
走馬何曾縛錦鞍.
見說游仙來往熟,
有誰拾得返魂丹?
東廟ㆍ西廟의 물건은 진품인데다 온전하여
하루에 백만 전도 쓸 수 있다오.
몇몇 귀인들 한가하게 이곳으로 이르는데
옷에는 아직도 어로의 향기 배어 있네.
東西兩廟貨眞全,
一日能消百萬錢.
多少貴人閑至此,
衣香猶帶御爐煙.
오월 맞은 西城의 城隍廟에는
넘쳐나는 비단이 거리 가득 쌓인다오.
마을 아낙들 대부분이 더위 먹도록 다니는 것은
새로 입을 옷가지 사오기 위함이라.
西城五月城隍廟,
濫濺紗羅滿地堆.
鄕裏婆娘多中暑,
爲穿新買估衣回.
치마ㆍ적삼ㆍ두루마기ㆍ마고자가 줄지어 늘어섰고
무명 휘장을 높이 세우니 여름에도 서늘하다.
급한 일이 닥쳐 돌아갈 길 멀 때는
옷을 사겠다고 다투어 물어올까 두렵다네.
裙衫袍褂列成行,
布帳高支夏月凉.
急事臨身多繞路,
怕聽爭問買衣裳.
오가는 사람 모두 절하고 우러러보매
그믐과 보름이 되면 향불이 몇 배로 늘어나네.
경성에 關帝의 화상이 수 만개이니
설마 前門에서만 점 궤를 물었겠는가?
來往人皆動拜瞻,
香逢朔望倍多添.
京中幾萬關夫子,
難道前門許問簽.
琉璃廠은 正陽門 밖 서쪽에 있다. 東三門과 西門이 세워졌고 안쪽으로 길이 길게 났으며 가운데에 가운데 석교가 있고, 다리 서북쪽에 관아가 있다. 동북쪽 누대 위에 瞻雲閣이 있는데 琉璃廠의 정문이다. 내부에는 관청ㆍ공장ㆍ사당이 있는데다 부지가 드넓고 수풀이 빽빽하며 짙푸른 녹음이 가득하다. …… 새해 첫 날부터 16일까지 온갖 상품이 구름처럼 몰려들고, 전등 달린 병풍과 유리, 수많은 전등이 울타리에 걸린다. 희귀한 그림과 서적들이 가게마다 연결된다. 책이 들보에 가득하고 진귀한 완구들이 거리를 메운다.
높이 들린 처마와 기와가 푸른 유리를 덮고
琉璃廠의 동서에는 문기둥을 세웠도다.
새로 나온 서화보를 알아보는데
내용은 전부 옛 사람 쓴 것을 빌렸구나.
飛甍瓦蓋碧琉璃,
廠設門楹東復西.
認取新番書畵譜,
卷中都借舊人題.
화방과 서방은 시장에 줄지어 섰고
유람객들 여기에 이르러 눈이 어지럽구나.
골동품의 진위를 가려내기가 가장 어려운데,
商代의 솥과 周代의 술그릇이라고 멋대로 품평하네.
畵舫書林列市齊,
遊人到此眼都迷.
最難古董分眞假,
商鼎周尊任品題.
지금 북경의 琉璃廠은 明代 관리가 유리기와를 굽던 곳으로 터가 여전히 남아있다. 元代에는 海王村이라고 했는데, 淸初에는 아직 번성하지 않다가 乾隆 연간에 와서야 비로소 시장을 이루었다. 골동품ㆍ서적ㆍ글씨와 그림ㆍ비첩ㆍ南紙를 파는 점포가 모두 이곳에 모여 있었으며 다른 물건은 거의 없었다. 위로 공경대부에서 아래로 선비들까지 이곳에 와서 교제하며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게다가鄕試ㆍ會試가 열릴 때면 합격자 명단이 붙기 하루 전에 여기서 紅錄을 파는데, 응시자 중에서 먼저 보고자 하는 자는 빨리 와야 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늘어나고 혼잡하다. 廠甸은 正陽門 밖 2리 남짓한 곳에 있는데, 옛날에는 海王村이라 불렀으며, 오늘날 工部의 琉璃廠에 해당된다. 거리의 길이가 2리 정도 되는데 가게와 상점이 즐비해있으며 남쪽 북쪽 모두 그렇다. 판매하는 주요 품목으로 골동품ㆍ글씨와 그림ㆍ종이류ㆍ서첩 등이 있어서 문인들이 감상하러 오는 곳이다.
새로 열린 창전(廠甸)에선 새봄을 맞이하여
장난감 도서 온갖 물건을 늘어놓았도다.
좋은 옷 입고 살진 말 탄 멋스러운 귀공자들
오고가는 많은 사람이 책 읽는 서생이구나.
新開廠甸値新春,
玩好圖書百貨陳.
裘馬翩翩貴公子,
往來多是讀書人.
琉璃廠거리에 廠甸 새로 열리니
진기하고 특이한 보물들이 곳곳에 진열됐네.
여인들 어깨가 부딪히고 수레가 길을 막으니
모두들 코끼리만 보고 일찍 돌아간다 말하네.
琉璃廠甸又新開,
異寶奇珍到處排.
婦女摩肩車塞路,
都言看象早回來.
중춘에는 복사꽃과 자두꽃, 해당화(西府海棠花를 최상으로 치고 그다음이 貼梗海棠花, 그 다음이 垂絲海棠花, 가장 나쁜 것이 木瓜花 임. 이것들은 잎으로 구분하는데 木瓜花는 잎이 먼저 나고 海棠花는 꽃이 먼저 남), 丁香花(白丁香 등)를 피운다. 늦봄에는 모란(재배법, 접붙이는 방법, 물주는 방법, 치료하는 방법 등은 전부 博州와 雒下(지금의陝西省 雒南縣)와 같음), 작약, 孿枝(남쪽 지방 사람이 줄기를 씹어보면 살구 맛이 난다고 하여 살구류로 받아들였고 이 품종이 남쪽 지방에이름) 등이 나온다. 여름이 되면 석류꽃을 비롯한 모든 화초에서 꽃이다채롭게 피어나는데, 접시꽃ㆍ양귀비ㆍ봉선화 등이 그러하다. …… 가을꽃 중에 가을을 견디는 것으로 紅白蓼(강가에서 피는 꽃으로 이 지방에서는 몇 장이나 자람), 가을을 견디지 못하는 것으로 무궁화(아침에는 싱싱하나 저녁에 시듦)와 금잔화(오후가 되어야 겨우 피고 저녁이 될 때 면 이미 집)가 있다. 겨울을 견디지만 서리는 견딜 수 없는 것으로 가을 해당화(일명 ‘애 끊김’이라 하고 혹은 그리워하는 여인이 눈물이 굳어서 된 것이라고 함)가 있다. …… 국화를 심는 일은 봄부터 여름까지 가는데 고되기가 농사보다 더하다. 국화는 병에 잘 쓰이며 ……농부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반년 동안 일하면 일 년 내내 먹고살 수있다.
아래 비스듬히 난 길가 풍경이 어떠한가?
울긋불긋 만발한 꽃들의 아름다운 보금자리라네.
어쩐지 향기 찾는 이들 끊이지 않는다 했더니
서춘폐(瑞春廠) 안에 좋은 꽃이 많구나.
下斜街里景如何?
萬紫千紅錦秀窠
怪道尋香人不絶,
瑞春廠內好花多.
작약꽃 봄을 맞아 빛깔 배로 고와지고
미인의 머리 위에서 어여쁨을 다투는구나.
豊臺에서 자란 한 조각 푸릇푸릇한 잎사귀
십자로 가에서 가지런히 들리네.
芍藥當春色倍嬌,
佳人頭上鬪妖嬈
豊臺一片靑靑葉,
十字街頭整擔挑.
揚州의 작약꽃은 豊臺 것만 못하니,
흰색 붉은 색이 곳곳에 심겨졌다네.
아침 되면 동료 데리고 문을 나서며
꽃 파는 멜대 갖고 길에 오르네.
揚州芍藥遜豊臺,
白白紅紅遍地栽.
及早出門携伴去,
賣花擔子上街來.
도성에서는 음력 12월에 모란⋅매화⋅복사꽃 등 봄철에 피어나는 갖가지 꽃이 팔리는데 전부 온실에 쌓아두고 불을 켜서 기온을 덥힌다. 이른바 唐花라는 것으로 堂花라고도 한다.)
도성의 풍속은 겨울이 되면 땅굴에서 꽃을 키우는데 이 방법은 漢나라 때부터 있었다. 漢代 고관대작의 정원에서는 겨울이면 파나 부추를 심어 먹었고 집안을 가득 덮었다. 밤낮으로 따뜻하게 불을 떼서 온기를 만들고 갖가지 채소가 전부 자랐다. …… 지금 성내에서 10월에 모란을 들일 때도 이 방법을 사용한다. 漢代에는 단지 집안을 덮었다고 말한 정도에 불과하나, 지금은 전부 구덩이를 파서 담아두는 방법을 사용하는데 겨울이 되어 흙의 기운이 따뜻해지기 때문에 여기서 자라난 꽃나무들은 흙기운과 불기운을 서로 반반씩 빌린 셈이다.
또한 燕京歲時記 에서는 ‘唐花’ 條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꽃을 파는 자들이 불기운으로 키워낸 꽃을 唐花라고 부른다. 새해가되면 서로 선물로 주면서 대접한다. 모란은 고운 자태를 드러내고 금귤은 노랗게 익어 드리워지니 모든 자리에 향기가 가득하며 부드럽고도산뜻한 냄새가 코를 간질인다. 봄날 세달 치의 화사함이 한 방에 다 있어서 堂花라고도 한다.
큰길가에 밝은 달뜨면 작은 수레들 돌아오고,
사람들이 등 시장에서 야채 시장에서 옮겨오네.
으뜸은 唐花인데 유독 아름답고도 눈부시게
따뜻한 지하실에서 봄날인 양 피어났구나.
大街明月小車回,
燈市人從菜市來.
最是唐花偏爛漫,
却烘地窖借春開.
시인은 작품 아래에 “겨울에 불을 피우고 따뜻한 기운으로 봄꽃을 틔워서 매번 좋은 값을 얻는데, 이른바 唐花라는 것이다.”라는 주석을 달아서 자신이 주목한 唐花에 대한 부연 설명을 하였다. 꽃 자체의 특징보다도 唐花의 재배법을 강조해서 서술한 것이다.이처럼 계절을 가리지 않고 생화를 피워내는 풍조가 왕성하게 일어난 데에는 淸代 통치자들의 호화로운 생활과 수요가 크게 한 몫 하였다. 舊都文物略 의 “淸代 궁중에서는 생화를 진열해놓고 오후가 되면 새로 교체하는 것이 관례가 되었다.”274)라는 구절이나, 帝京景物略 의 “10월 중순이면 모란은 이미 궁궐에 진상된다. 설날에는 참죽나무 잎과 오이를 바친다. 한 번꽃을 사는데 거의 오천 전을 쓰고, 잎과 오이를 사는 데는 거의 오백 전을쓰게 된다.”라는 구절에서 볼 수 있듯이 황궁과 왕족의 저택 등에서 싱싱한 꽃과 나무를 필요로 했던 것이다.
豊臺는 사계절 내내 오색찬란하게 피어난 꽃들이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향기를 뿜어내던 곳이었다. 북경죽지사의 작가들 또한 명물 꽃시장을 그냥지나쳤을 리 없었다. 북경 시정풍속 독본으로서 죽지사의 면모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시장에 우유 파는 사람도 있는데 기름처럼 굳은 것을 ‘酪’이라 한다.어떤 것은 씨앗으로 장식되어 있어 ‘여덟 보석[八寶]’이라고 불리며,붉은 색ㆍ흰색ㆍ자주색ㆍ녹색 등으로 다채롭고도 화려하다. 탕이 되도록 녹이면 하얗게 물러지고 물을 넣으면 눈가루처럼 끓어오르니 이것이 소위 ‘우유차[奶茶]’이다. 우유를 뜨겁게 가열한 다음 얇은 조각으로 말아서 …… 갖가지 과일을 섞어 넣고 양 끝을 두 겹으로 접은 다음 잘게 썰면 ‘우유말이[奶卷]’가 된다. 그밖에 바둑돌과 같은 틀로 모양을 만들어 굳히면 ‘전병[餠]’이 되고, 잘게 가루로 만들어 만두소로쓸 수도 있는데, 사실 전부 ‘酥酪’인 셈이다. 279)
한가로이 길가에서 한 사발 들이켰는데
신선차를 실컷 마셨더니 메마른 목 촉촉해졌도다.
기름처럼 미끄러지듯 넘어가는 것을 느끼며
오장육부로 차갑게 스며드니 가을인 양 상쾌하여라.
閑向街頭啖一甌
瓊漿滿飮潤枯喉.
覺來下咽如脂滑,
寒沁心脾爽似秋.
우유차 가게는 오직 경성에만 있고
얼음 같은 유즙은 치아에 스며드네.
‘喀拉’라 부르는 음료는 빛깔이 검은데
일 문 돈에 차 한 잔 살 수 있다네.
奶茶有鋪獨京華,
乳酪如冰浸齒牙.
名喚喀拉顔色黑,
一文錢買一杯茶.
오장육부에 가득 스며들어 갈증과 걱정을 녹여주니
챙챙 거리는 소리 들리면 시장으로 뛰어든다.
이렇게 조리한 매실액을 수숫대로 빨아 마시면
태화진미가 표주박 안에 있다오.
心脾俱沁渴煩消,
戛玉聲聞入市挑.
如此調梅還飮蔗,
太和眞味到簟瓢.
「燕臺竹枝詞ㆍ冰湯」제16수
새로 뭉친 찹쌀을 잘라보니 하얗고
涼糕를 만들어내니 입안 더위 가시기에 알맞소.
삼복 날씨에 무더위를 가늠할 수 없을 때
밤중에 구리잔을 치며 오매탕을 파는구나.
新摶江米截如肪,
制出涼糕適口涼
炎伏更無虞暑熱,
夜敲銅盞賣梅湯.
잘 빚은 餛飩 그 맛이 여느 때보다 뛰어나고
소에 섞인 봄 부추를 씹으니 향내 전해지네.
맑은 국물로 입을 축이니 싱겁다는 불평도 멈추고
목구멍으로 넘기니 맛의 진가를 비로소 알겠구나.
包得餛飩味勝常,
餡融春韭嚼來香.
湯淸潤吻休嫌淡,
咽後方知滋味長.
玉銘齋는 넓어지고
餛飩의 국물은 옛날처럼 맑구나.
醋魚292)는 본래 이곳의 별미였고
요즘은 별실의 칸을 나누지 않았네.
玉銘齋中也充闊,
餛飩湯似舊時淸.
醋魚本是專門菜,
雅座於今非席棚.
餑餑에 과일 소 넣으려면 곱게 갈아야 하고
생선 중에서는 참조기가 제일 귀하도다.
향기 달콤하고 입에 넣으면 꿀처럼 달다는
포도와 哈密瓜을 찾는다오.
果餡餑餑要澄沙,
鮮魚最貴是黃花.
甘香入口甛如蜜,
索勒葡萄哈密瓜.
「都門竹枝詞」(張子秋) 제70수
절임과일 넣은 찹쌀떡 튀기는 소리에 귀가 따갑고
음식 굽는 화로에 떡을 구우니 艾窩窩297)가 된다.
쇠스랑꼬치에 놓인 떡을 막 샀는데
‘硬面餑餑’라는 과자를 판다는 소리도 들려오네.
凉果炸糕聒耳多,
吊爐燒餠艾窩窩.
叉子火燒剛買得,
又聽硬面叫餑餑.
만주족의 과자는 본디 모양이 다양한데
이전 기술 이어받아 발전하니 말로 다 할 수 없구나.
오직 棹張만을 옛 방식대로 만드는데
유명무실해진 의식처럼 남아 있다오.
滿洲糕點樣原繁,
蝩事增華不可言.
惟有棹張遺舊制,
幾同告朔餼羊存.
갓 지은 비단 도포 넉넉하고도 편안하다 외치고
살랑살랑 움직이는 명주 부채는 희고 둥그렇다오.
허리춤의 골동품 꺼내 다투어 노점 열고
가장 선명한 비취를 옮겨오네.
新制紗袍號莽安,
搖來絹扇白團團.
腰間古董爭開店,
第一鮮明翡翠搬.
「都門竹枝詞ㆍ服用」(佚名) 제10수
금실 박힌 염낭이 좁은 허리띠에 매달렸지만
비단 도포 위 부채 주머니가 제일 곱구나.
연통으로 삼은 죽순대는 얼룩무늬 졌고
안경테는 대모로 상감하였구나.
金線荷包窄帶懸,
紗袍扇絡最鮮姸.
煙筒毛竹湘妃竹,
眼鏡鑲來玳瑁邊.
사람들 서로 만나 아편 병을 주고받는데
손에는 반드시 풀씨 염주를 잡았구나.
부채에 鴉片鬼가 없으면
이 부채는 결함이 있어 엉터리라 하네.
人人相見遞煙壺,
手內須拈草子珠.
扇上若無鴉片鬼,
此公缺典定糊涂
「草珠一串ㆍ時尙」제47수
삼복의 찌는 더위에 열기도 많아
여름철 산의 구름 조각마저 사를 듯하다.
남에게 해 끼치는 도둑들 부채를 빼앗아 와서
저마다 파초선처럼 들고 손 위에서 흔드네.
三伏炎蒸暑氣饒,
如山朵朵火雲燒.
虧他行者偸來扇,
個個芭蕉掌上搖.
오색 찬란 몽롱하여 눈이 멀듯 한데
온 천하의 상품을 자유자재로 늘어놨도다.
머리 들면 하늘 아래 맑고 흐림이 분명한데
길이 좁아 사람들 모두 바싹 붙어 잇달아 간다.
五色迷離眼欲盲,
萬方貨物列縱橫.
擧頭天下分晴晦,
路窄人皆接踵行.
과피모 유행하자 여섯 겹 잇댄 것 집어 들고
호박 껍질 모양을 아름답다 올려다보네.
유행을 헤아려 이득 보기를 꾀하니
제일 먼저 정수리 부분을 뾰족하게 만드는구나.
小帽新興六摺拈,
瓜棱式樣美觀瞻.
料應時尙鑽營計,
第一頭顱總要尖.
검은 머리와 검은 얼굴 새까맣고 기괴한데
검은 비단 두루마기로 반쯤 덮였네.
털로 테를 두른 검은색 중절모를 쓰니
과연 하나의 검은 원숭이 상이로다.
黑頭黑臉黑離奇,
黑緞皮袍半掩披.
戴上絨邊黑氈帽,
果然像個黑猴兒.
흰 매실꽃 붉은 복사꽃을 촉촉한 덩굴장식으로 대신하고
사시사철 귀밑머리에 꽂으니 고운 자태 즐길 만하다.
장인에게 부족한 것은 향기 거둘 일손인데
그나마 도성 빼고는 아무 데도 없다네.
梅白桃紅借草濡,
四時揷鬢艶堪娛.
人工只欠回香手,
除却京師到處無
노란 국화는 가지가지를 야생 쑥에 접붙였고
꽃장인은 새로 벼린 칼을 대려 한다.
사람이 도화원 가는 길을 알 수 없고
그저 夾竹桃 많이 심어 채울 뿐이라.
黃菊枝枝接野蒿,
花兒匠又試新刀.
人生不識仙源路,
只合多栽夾竹桃.
잣나무 잎과 참깨를 한밤 중 향으로 사르고
조롱박 붙인 다음 阡張을 바치네.
먹지로 잘라 만든 나비를 날리고
아이들은 짤랑짤랑 울리는 꽃장식을 꽂았구나.
柏葉芝麻燒夜香,
葫蘆貼罷供阡張.
烏金紙剪飛蝴蝶,
嚷嚷嬰孩揷鬧妝
동서양의 온갖 물품이 쌓여있고
공차는 사람들 더욱 즐거워 웃는구나.
靑雲閣 편액은 눈부심이 대단하고
顔眞卿 서체의 시 구절 메운 덩굴도334) 보이네.
萬種華洋貨物儲,
打球人更樂軒渠.
靑雲閣額輝煌甚,
又見詩蓀顔體書.
수레가 시끌벅적한 길을 지나가도
비스듬히 앉아 책을 보며 아무 말 없구나.
안경을 쓰고 와서 근시안인척 하니
명사를 흉내 내는 어르신네일세.
車從熱鬧道中行,
斜坐觀書不出聲.
眼鏡戴來裝近視,
學他名士老先生.
「都門竹枝詞」(楊米人) 제37수
모난 신 신어보이니 때맞춰 새로 산 것인데
길가에서 흔들흔들 몇 번이고 자세를 잡네.
안경을 쓰고 와서 근시안인척 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서생임을 알게 하도다.
方鞋穿著趁時新,
搖擺街頭作態頻.
眼鏡戴來裝近視,
敎人知是讀書人.
근시인 사람마다 쓰고 있는 안경
가게에서 도수를 정확하게 맞춰주네.
덤으로 주는 돋보기는 가볍고도 훌륭하니
다투어 사는 이들 전부 젊은이로다.
近視人人戴眼鏡,
鋪中深淺制分明.
更饒養目輕猶巧,
爭買皆由屬後生.
맑은 거울에 상반신을 박아 넣고
문 앞 높이 걸어두니 누구나 볼 수 있구나.
사진관마다 모두 성능 좋은 물건을 갖고 있어
화류계의 미녀와 고관대작을 찍는다네.
明鏡中嵌半身像,
門前高掛任人觀.
各家都有當行物,
花界名流大老官.
요약하면 S시에는 일찍이 사진관이 있었는데 이곳은 내가 지날 때마다 언제나 감상하던 곳이다. …… 또 벽에 걸려 있는 액자 속 사진에는 曾大人, 李大人, 左中堂, 鮑軍門이 있었다. 문중에서 맘씨 좋은 어른한 분이 이 사진을 빌려서 그것으로 나를 가르치신 적이 있는데, 이 분들 모두 당시의 대관으로서 '장발'의 난을 평정한 공신이며 내가 그들을 잘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나도 그 때 배우고 싶었지만 그러면 또 어서 '장발'의 난이 일어나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S시 사람들은 사진 찍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는데, 왜냐하면 정신이 함께 찍혀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운세가 좋은 시기에는 특히 찍어서는 안된다. 사진관에서는 한 명 또는 몇몇 권세가들의 사진을 골라서 확대하여 문에 걸어두는데, 북경에서 특히 그러하며 근래 들어 유행하는 것 같다. 내가 S시에 본 曾大人 사진 같은 것들은 전부 6~8치를 넘지 않았고 걸린 것도 오랫동안 曾大人과 같은 사람들의 사진이었으니, 사진이 때마다 바뀌고 해마다 달라지는 북경과는 달랐다. 그러나 혁명 이후에, 정확하지는 않지만 치워진 것으로 알고 있다. 최근 10년 동안 북경의 일에 대해 약간 아는 바가 있으니, [사진으로 걸려있는] 그 사람이 틀림없는 권세가라면 그 사진은 확대되고, 그 사람이 ‘벼슬에서 물러나면’ 그 사진은 보이지 않게 된다. 번갯불보다야 오래 간다. 만일 대낮에 촛불을 켜고 북경 시내에서 저 권세가들처럼 ‘축소되었다, 확대되었다, 걸렸다, 내려졌다’를 하지 않는 사진을 한 장 찾는다면, 비루한 내소견으로 봤을 때 梅蘭芳군 한 사람 뿐이다.
요즘 양약 덕분에 생활이 좋아지니
도성에 새로 연 약국이 수백 집이라오.
물건만 좋으면 전부 성공한다고 말하지 말지니
많은 이윤 내려다 비싼 만큼 외상 늘어나네.
近來洋藥好生涯,
都下新開數百家.
莫道貨眞皆茂盛,
欲圖多利貴多賒.
털 깃발 내건 곳은 봄 술을 팔지만
오랜 점포의 떡과 전병도 뛰어나다오.
북치고 피리 불매 문 앞이 사흘 동안 요란하고
가게 종업원350)들이 새로 문 연 가게로 이르네.
氈簾垂處買春醅,
老鋪糕元又餠魁.
鼓吹當門三日鬧,
走堂人到店新開.
새롭게 장사를 시작하니 기쁘고도 엄숙한데
붉은 현수막 걸고 ‘金’자를 붙였네.
겹겹이 쌓인 물건은 남들이 보내준 것 아니요
절반 이상 빚을 내 가져왔지만 장관이로구나.
新開生意喜威嚴,
紅帳懸來金字粘.
層疊本非人送贈,
半多借債壯觀瞻.
과거 도성의 시장에서는 광고술에도 상당히 주의를 기울였는데, 대단히 유치하였다. 예컨대 ‘검은 원숭이나리의 모자가게’라는 상점에는 커다란 검은 원숭이 형상 하나가 웅크리고 있었고, ‘雷萬春의 사슴뿔 아교’집에는 문 위에 커다란 녹각이 걸려 있었다. 부채 가게의 처마 끝에는 큰 부채 하나가 걸려 있었으니, 전부 사람들의 주의를 끌기에 충분했다.
사슴뿔을 새긴 간판 대대로 내려오고
오소(烏須) 묘약은 과연 신통하도다.
늙은 홀아비와 관리들 仁壽堂에 찾아와서
돈으로 잠깐의 젊음을 산다네.
鹿角招牌系世傳,
烏須妙藥果通仙.
老鰥老宦尋仁壽,
暫把黃金買少年.
대째 전해지는 개 가죽 고약
조상님의 초상 담긴 간판도 높이 섰도다.
여름이고 겨울이고 다리 위에서 항상 제공되며
자손들이 장사의 수고로움 마다 않는다네.
回回三代狗皮膏,
祖像招牌樹得高.
冬夏橋頭長供奉,
子孫買賣不辭勞.
「續都門竹枝詞」제61수
담장 전체에 명성 자자하다 붙이고
시대의 전문의라 또렷이도 썼구나.
친지들에게 편액을 보내오라 요청하고
황제의 주치의라 적힌 조서도 걸어놓네.
滿牆貼報博聲名,
世代專門寫得淸.
慫恿親朋送匾額,
封條也掛御醫生.
상점에서 문에 걸어 표식으로 삼고 사람들을 끌어들일 때 사용하는 팻말을 市招라고 하며, 속칭 招牌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글자만 쓰는데 만주어ㆍ몽고어ㆍ회족어ㆍ장족어를 섞어 쓰며, 글자와 그림을 함께 사용한 경우도 있다. 또한 글자와 그림 모두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상품을 문 밖에 걸어두거나 상품 모형으로 대체하기도 하는데, 사람들 중에 글자를 모르는 이가 많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술집에서는 술병을 걸었고, 석탄을 파는 가게에서는 석탄을 내걸었으며, 국수집에서는 종이 국수를 걸어두었고, 생선 판매점에서는 나무 생선을 걸어 두었으니, 속칭 ‘幌子’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廣和樓 근처를 여러 번 오갔는데
가게 주인은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는가?
언제나 이곳을 지나쳐야 하는데
내걸린 간판에는 ‘査씨네’ 글자가 선명하구나.
廣和樓畔幾來遊,
掌櫃人還認面否?
只合常常依過此,
分明懸匾是査樓.
「燕臺口號一百首」제62수
幌子 중에 높은 것 낮은 것 점포에 펼쳐놓고
부들꾸러미[蒲包] 두세 개를 간판으로 삼네.
다시금 화장지 걸이 찾으며 문 앞에 서니
화장실이라 적힌 작은 팻말 큰 길에 걸려구나.
幌子高低店鋪排,
蒲包三兩作招牌.
更尋紙架當門立,
小匾茅房掛大街.
물건 사라 기이하게 외치는 소리 하늘에 닿고
길 가의 여인숙을 마음대로 돌아다니네.
“수염 빗과 온갖 장물을 매달고 갑니다.
동전 열 개면 아무 거나 살 수 있어요.”
叫賣出奇聲彻霄
街頭客店任逍遙.
胡梳墜什捎家走,
十個銅元撿樣挑.
주렴 막 걷혔는데 戱臺에서 나오지 않고
한 목소리로 갈채 보내니 천둥처럼 울린다.
戱樓 위에서 날아다니매 눈이 어지럽고
오늘 저녁 먹을 밥을 예약한다네.
簾子才掀未出臺,
齊聲喝采震如雷.
樓頭飛上迷離眼,
訂下今宵晩飯來.
「都門竹枝詞ㆍ觀劇」(佚名) 제70수
비싼 자릿값과 관람료를 마다 않음은
사람의 본래 목적이 다른 데 있음이라.
예법에 따라 한 잔을 주거니 받거니 비우더니
연달아 소리 내서 대접하겠다고 말하네.
席錢戱價不嫌多,
分子原來只爲他.
循例一杯空爾爾,
連聲猶說費張羅.
小旦이 술병 잡고 직접 다가오는 곳
양쪽에 칸막이로 구분된 관리들의 자리라오.
해 저물고 공연도 끝났으니 어디로 돌아갈꼬?
즐거움 거하는 곳에 온 천하도 거하는구나.
小旦親來爲執壺,
兩邊官座碧紗廚.
日斜戱散歸何處?
宴樂居同六合居.
의붓아버지가 남쪽 음식을 즐겨 먹으며
우리 집사람들도 와서 맛 좀 보라 청하네.
매번 음식 나올 때마다 칭찬 일색이니
그곳이 예와 같은 慶雲堂임을 아노라.
干爹愛吃南邊菜,
請到兒家仔細嘗.
每味上來誇不絶,
那知依舊慶雲堂.
손잡고 찾아옴은 穀雨 전에 딴 찻잎이 좋아서인데
쓴 물로 끓여내니 맛이 너무 다르구나.
무엇으로 술 마신 뒤 갈증을 해소할까
병을 치켜든 사람이 杏仁茶을 파는구나.
攜來絶好雨前茶,
苦水烹煎味迥差.
何物最能消酒渴,
提壺人賣杏仁茶.
小飯이 天橋 일대에 많으니
춥고 배고픈 사람들 베틀의 북처럼 오고 간다.
그 중에 낙타 고기가 적지 않은데
먹을 수 있는 낙타혹이 있으려나?
小飯天橋一帶多,
苦寒果腹往來梭.
此中不乏駱駝肉,
可有駝峰吃得么?
天橋 시장에는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복잡하게 섞여 거하여 속칭 ‘雜巴地’라고도 불린다. 온갖 행업 형태 중에서 있어야 할 것은 다 있는데가장 유명한 것이 오락 상업[娛樂業]이다. 戱園子ㆍ雜耍場ㆍ書茶館ㆍ落子館ㆍ坤書館ㆍ拉洋片ㆍ摔跤場ㆍ耍中幡ㆍ耍大刀ㆍ呑鐵球ㆍ呑寶劍ㆍ呑火球ㆍ盤扛子ㆍ說相聲ㆍ變戱法 등이 있으며 연예 장소도 전부 합쳐200여 곳이 넘는다. …… 天橋은 다량의 빈곤한 예인들을 끌어들이고그들은 기예를 팔러 들어온다. 淸 정부가 시장에서 [공연 연출을 위한무대] 장막 설치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희극 예인들은 ‘노점 공연[地攤戱]’을 펼칠 수밖에 없다. 淸나라가 망한 뒤 일부 소상인들 -경제적으로 능력 있는 예인을 포함하여-이 연달아 무대 장막을 세우고 극을 상연하였는데, ‘공연용 장막[戱柵]’이 우후죽순과 같이 발전하기 시작한다.天橋에서 상업 활동을 하며 기예를 파는 자들 중 대부분이 곤궁한사람들이고, 天橋를 돌아다니며 물건을 사는 사람들 또한 대부분이 가난한 자들이니 실제적으로 天橋은 빈민들의 상업과 오락의 중심지라할 수 있겠다. 그곳에는 목기 시장ㆍ고물 시장ㆍ헌 옷 시장ㆍ차 파는 장막[茶柵]ㆍ공연용 장막[戱柵]ㆍ거리 곡예장ㆍ새 시장ㆍ신발 시장ㆍ戱園 등이 있었고 거리에 펼쳐진 노점을 어디서나 볼 수 있었다.그래서 민간에서는 天橋를 ‘雜八地’라고 불렀다.
새소리 흉내 내매 낮고도 높게 울리니
도성에서는 百鳥張이라 부른다오.
버들 그늘에서 얼큰히 취한 뒤의 소리가 으뜸이니
한 번 소리 내면 부드러운 꾀꼬리 울음 된다네.
學來禽語韻低昻,
都下傳呼百鳥張.
最是柳陰酣醉後,
一聲宛轉聽鶯簧.
피리의 머리 부분이나 검의 손잡이 부분에 고풍스러움이 묻어나기 때문에 진짜인지 가짜인지 쉽게 변별할 수 없는 것도 있다. 내가 일찍이 ‘물건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수많은 訟事가 사라졌을 것이다.’라고 말한 것도 이를 두고 한 말이다. 외지인이 북경에 오면, 길에서 [구매할 때] 유리한 조건을 차지하기 어렵다. 거짓말에 능한 자가 돈이 있어 보이는 사람에게 다가가서 금은 옥기나 자잘한 물건들을 자랑하고, 그를 속여 주운 것이라고 말하는데 만약 눈에 좋아 보인다면 이 즉시 그 자의 상술에 빠지게 된다. 燕京歲時記 에서는 물건이 말을 할 수 있으면 스스로 진짜인지 가짜인지진위의 정체성을 밝혀 줄 테니 사람들 사이에 시비를 가리는 논쟁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하였는데, 가짜가 넘쳐나는 淸代 북경시장의 세태를 간략하면서도 재치 있기 서술했다. 北平風俗類征 에서는 북경시장의 거짓된 상술에 주된 희생타가 되는 외지인에 관한 기록이 담겨 있다. 북경죽지사에서도 갖가지 수단을 동원하여 구매자의 눈을 속이고 위조품을 팔고자 하는 상인들의 몸부림을 생생하게 그려내었다.
불어나는 상품더미들의 근본을 알 수 없으니
주먹질한들 어찌 진위를 가리겠는가.
모두들 괜한 시비 붙을까봐 수수방관하고
누가 됐든 촌놈은 걸핏하면 남에게 속는구나.
滾來堆子本無因,
打架何從認假眞.
怕事旁觀都袖手,
任他泥腿慣訛人.
담장에 가득한 서화는 전부 명인 작품이라 한다.
사실은 전부 겉만 그럴싸한 물건들이니
진위에 대해 너무 깊이 물을 필요 없다오.
唐宋元明件件陳,
滿墻字畵盡名人.
由來俱是搗持貨,
不必深迫問假眞.
저울ㆍ가위ㆍ칼ㆍ송곳 등 온갖 것을 제련하는데
때리고 갈아 나온 대장간의 물건 훌륭하도다.
사람들이 어느 곳에서 진짜와 가짜를 분간할 꼬
이곳저곳에서 ‘습자장(鑷子張)’이라 내걸었구나.
錘剪刀錐百煉鋼,
打磨廠內貨精良.
敎人何處分眞假,
處處招牌鑷子張.
온갖 계책을 써서 가짜와 진짜를 뒤섞고
각양각색의 기교를 부려 신선함을 다툰다.
뼈대라고 불리는 것이 넘어지기 일쑤고
길가에서 어수룩한 이 속이는 것도 익숙하다오.
費盡心機混假眞,
百般奇巧鬪鮮新.
名爲骨操時時摔,
慣向街頭騙傻人.
북경 崇文門 밖과 宣武門 밖에 매일 새벽 첫닭이 울 무렵, 노점 상인들이 갑자기 들어서고 각각의 小市를 …… 黑市라고도 하는데, 등불과 초를 키지 않고 어둠 속에서 거래하기 때문이다. 물건이 구매자의 취향에 맞으면 마음대로 값을 부를 수 있는데, 상품 중에 진품은 적고 모조품이 많으며, 질 좋은 것은 적고 질 나쁜 것이 많으니, 비록 거래한다고는 말하지만 사실상 가짜를 만들고 속이는 것일 따름이다. 조그만 이익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종종 이곳에 왔다가 조금만 부주의하면 대체로 모조품을 사게 되는데, 손실에 대해서 배상받을 수 없다. 게다가 수백 전으로 모피 옷을 얻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수십 금으로 낡아 빠진 옷을 얻은 사람도 있고, 도둑놈들이 그 옷을 훔쳐다가 밤에 내다팔기도 하니,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모두가 그 물건을 세밀하게 살피지 않는다. 이후에 이를 금하는 관청이 생기면서 비로소 근절되었다.
닭 우는 소리 잠깐 들리더니 새벽시장 들어서고
어둠 속에서 거래하여 눈이 컴컴하구나.
표 꽂은 사람 떠나며 싸게 사기를 원하더니
웃으며 돌아와 보매 모조품 값으로 낮춰졌네.
乍聽雞鳴小市齊,
暗中交易眼昏迷.
揷標人去貪廉賤,
一笑歸看假貨低.
‘표를 꽂는 것[揷標]’은 물건에 쪽지나 풀을 꽂아서 팔렸다는 표지로 삼는 것을 의미한다. 저자는 ‘어둠 속에서’ 거래가 이루어지는 새벽시장의상황을 강조한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상인은 처음에 진품을 보여주고 고객은 사겠다는 표식을 물건에 꽂는다. 그런데 기분 좋게 돌아와 보니 어느새 모조품으로 물품이 바뀌어버린다. 실제로 위조품을 진짜 처럼 속여 만드는 상인, 나쁜 물건을 좋은 물건으로 속여 파는 상인, 고장 난 것을 온전한 것으로 속여 파는 상인은 어두움이 가시지 않은 새벽시장에서거래를 하였기 때문에 사람을 쉽게 속일 수 있었다. 다른 한 수를 또 보자.
마고자 가장자리에 여의두 무늬를 두르니
옷깃은 더더욱 시류를 쫓아간다.
헌 옷 점포의 솜씨가 교묘하여
옛 것을 새 것처럼 바꿔서 몇 배의 이득을 얻네.
馬褂邊鑲如意頭.
對襟更欲效時流.
估衣鋪內心機巧,
舊面翻新利倍收.
「續都門竹枝詞」제37수
북경 사람들은 새벽시장에서 헌옷을 일상적으로 매매하였는데, 그 헌옷마저도 가짜 상품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상인들은 유행을 민감하게 파악하였고, 만약 여의두 무늬를 두른 옷깃의 마고자가 인기를 얻는다면 어느새 그와 같은 옷깃을 얹은 헌옷을 새것처럼 팔면서 많은 이익을 취했다. 죽지사에 서술된 내용을 통해서 상인들이 교묘한 눈속임으로 물건을 바꿔치기 하는 일이 북경의 새벽시장에서 비일비재했음을 알 수 있다. 이 경우 새벽시장의 또 다른 이름인 ‘鬼市’에는 야시장의 의미가 아니라 ‘속임수를 쓰는[鬼祟’ 공간의 의미에 담겨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한편 북경죽지사에는 위조품의 범위가 ‘물품’을 넘어서서 ‘화폐’로까지 확장되었던 정황도 기록되었다. 그 예로 李靜山의 죽지사 두 수를 제시한다.
전포 보증인 계속하여 돈을 바꿔주며
사람을 곤경에 빠뜨릴 상황 만드는구나.
전표는 무수히 쌓였는데 전포 문 여전히 닫혔으니
나라 법은 피해가도 귀신에게 보응 받으리.
鋪保連環兌換銀,
作成局面慣坑人.
票存累萬仍關閉,
王法寬容暗有神.
작은 탁자 길에 내놓고 돈을 바꿔주는데
같은 일을 반복하며 끝없이 이윤을 남긴다.
전표를 받아들고 의기양양했으나
잘못 산 것임에 집에 돌아와 하늘을 부르짖네.
小卓當街錢換錢,
翻來覆去利無邊.
帶收鋪票充高眼,
錯買歸家亦叫天.
북경의 거지는 ‘頂沙鍋’라고 부르는데 구걸한 음식을 다 먹고 [뚝배기 같은 질그릇을] 머리에 관처럼 이고 다니기 때문이며, 서로 손을 잡고 고생했다 말한다. 엄동설한에 몸에 걸칠 실오라기 하나 없이 시내에서 구걸을 하며 간신히 기와조각과 풀잎으로 하체를 가릴 정도인데도,보는 이마다 전부 이를 드러내고 환히 웃는다. 황제의 인자하심을 널리입어서 매년 시월 초하루에 성내 구역을 나눠 헛간을 설치하고 죽을나눠주는데, 오월이 되어야 마친다. 또한 사람 수대로 솜옷을 한 벌씩나눠주니 어찌 얼어 죽거나 굶주림을 걱정하겠는가? 그러나 받은 사람은 저당 잡히거나 팔아서 술을 마시고 도박할 궁리를 하며, 결국 골짜기에 가득 쌓아두고도 후회하지 않으니 이것이 걸인들의 본성이다.거지는 속칭 ‘老花子’라고 하며 대략 다섯 종류가 있다. 첫째는 ‘왕초[桿上的]’ 유형으로 거지들의 우두머리이며 ‘가게에 파고드는 자[紮鋪的]’라고도 부른다. …… 庚子년 이전에는 점포가 새로 열릴 때마다 반드시 왕초들과 교섭을 해야 했는데, 매년 약간의 보수를 주고 종이 문패[紙牌]를 구해 문 밖에 붙임으로서 걸인들이 떼로 모여 막무가내로 비럭질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요새 사람들은 전부 특이한 것을 좋아하니
새로이 설창을 꾸며내면 사람들 턱이 풀리네.
한 무더기 사람들이 벌떼처럼 모여들어
걸인 주위에 둘러서서 열광적으로 환호하는구나.
近日人情總好奇,
新聞謅出解人頤.
一群人聚如蜂擁,
圍着狂呼一乞兒.
거지 아이들은 하루 종일 춥다고 우는데
도와주려해도 그저 가련하고 먹이는 것도 변변찮네.
동전 세 개면 하룻밤을 날 수 있으니
누추한 여인숙에서 닭과 같이 거하는구나.
乞兒終日向寒啼,
羽翼徒憐養未齊.
三個靑蚨眠一夜,
雞毛小店似雞棲.
돈 달라는 아이들 어지러이 사람을 막아서지만
그 행동을 떠나 용서해줌은 모두 가난하기 때문이라.
가끔씩 지역 관리가 전부 쫓아내기도 하는데
나라의 부끄러움이 전부 이들에게 있다 하네.
討錢童子亂攔人,
略迹原情總爲貧.
難得區官盡驅逐,
都因國耻在斯民.
의관을 단정히 차려입고 앞길에 오르는데
뒤에서 소리 없이 소매치기꾼이 다가오는구나.
부채와 두루주머니를 모두 잘라 가는데
선생은 여전히 어리석음을 사가라고 외치네.
衣冠楚楚上前街,
背後無聲小綹來.
扇子荷包都剪去,
先生猶自賣癡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