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면적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 작은 나라, 네덜란드. 17세기 세계를 호령하는 최강의 상업무역대국으로 군림했지만, 14세기 그들의 모습은 청어잡이를 주된 생계 수단으로 한 전통어업국에 불과했다. 하지만 네덜란드인들은 새로운 청어 관리법과 선박제조기술 개발 등 창의적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한 패러다임 전환을 통해 유럽 해상무역의 중심에 자리를 잡는 놀라운 역사를 만들어냈다. 이뿐인가. 그 후 이어지는 유럽 열강들과의 경쟁에서는 전례 없는 모험정신으로 대변되는 새로운 경제조직, ‘주식회사’와 ‘은행’을 만들어 세계 경제의 흐름을 주도했다. 작지만 강한 나라, 네덜란드의 선진 비결은 바로 ‘창의성’과 ‘모험정신’에서 출발하지 않았을까.
네덜란드 특유의 창의성과 모험정신
이러한 네덜란드의 강점은 여러 도시에 위치한 박물관에 그대로 녹아 있다. 네덜란드 박물관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거대하거나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사람을 끌어당기는 흥미로운 전시 구성과 실용적인 디자인 감각이 돋보인다는 점이다. 이번에 만나볼 ‘코르퍼스(Corpus)’도 네덜란드 특유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과학관 중 하나다.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에서 행정 도시 헤이그로 향하는 고속도로 중간 즈음에 인체 모형을 한 독특한 건물이 눈에 띈다. 35m, 8층 높이의 이 건물이 바로 ‘코르퍼스(Corpus)’ 과학관이다. ‘코르퍼스’는 라틴어로 ‘신체’를 의미하는데, 과학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인체 여행’을 단일 주제로 삼고 있다. 코르퍼스 과학관은 2008년 설립됐는데, 특이한 점은 당시 네덜란드의 여왕 베아트릭스가 지원했다는 사실이다. 현재는 과학, 의학 관련 기업을 비롯해 네덜란드 내 여러 기업들의 든든한 후원을 받고 있는 과학관이기도 하다.
네덜란드의 ‘코르퍼스(Corpus)’ 과학관은 인체 모형을 한 독특한 외관을 갖고 있다. 전시관 관람은 ‘인체의 다리에서 머리까지 이동하면서 인체를 탐험한다’는 개념으로 진행된다. ⓒ 장미경
초소형 크기로 변신해 몸 속 탐험
과학관 관람은 인체 모형의 건물 내부로 들어가 다리에서부터 머리 끝까지 올라가면서 각기 확대된 내부 장기들의 기능과 역할 등을 배운다는 개념으로 진행된다. 그 어디에서도 경험하지 못했던 전시 개념이 도입되어 있어, 흥미롭고 신기하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이제 인체 여행을 시작해보자. 코르퍼스의 입구 1층에는 매표소와 오디오 투어 부스가 있다. 모든 관람객들은 먼저 오디오 투어 부스에서 8개 국어로 서비스되는 오디오 헤드셋을 전달받는데, 각자 헤드셋을 끼고 설명을 듣기 때문인지 관람객들의 개별 집중도가 상당히 높다는 느낌을 받았다. 관람 동선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 시작된다. 전시관 내부에 도착하면 인체 내부를 확대해 표현한 방들이 나타난다.
사람의 입 안을 묘사한 전시실로 들어가면, 푹신푹신하면서도 돌기가 있는 혓바닥과 치아가 생생하게 전시되어 있다. ⓒ Corpus
가장 먼저 접하게 되는 주제는 ‘무릎’이다. 방 안에 들어서면 헤드셋에서 다리의 관절과 근육, 세포조직에 대해 흥미롭게 설명하는 멘트가 자동으로 재생되고, 이와 함께 관련 영상이 모니터에 펼쳐진다. 이 때 무릎 관절이 사람만한 크기로 표현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사방의 모든 벽들에는 근육과 뼈 등이 확대된 형태로 장기와 조직을 재현하고 있다. 관람객이 초소형 크기로 변신해 인체 내부를 탐험하는 것이다.
동선을 따라 다음 방으로 가면, 날카로운 물건에 찔릴 경우 상처를 입은 조직에서 왜 피가 나는지, 피부가 어떻게 원래대로 재생되는지의 과정을 직접 볼 수 있다. 이 때 상처가 나는 장면은 일반 모형을 움직여서 구현하지만, 상처가 아무는 장면은 그 모형 위에 영상을 비추어 마치 실제로 새살이 돋은 것처럼 표현하고 있다. 이 덕분에 일반적인 모니터에서 볼 때보다 훨씬 생생하고 실감나게 느껴진다.
3D로 감상하는 태아 탄생
다시 동선을 따라 이동해보자. 신비로운 세상으로 안내하려는 듯 바로 앞에서 검은 문이 열린다. 3D 영화로 감상하는 ‘자궁과 태아 탄생’ 방이다. 이 곳에서는 정자와 난자의 만남에서 출발해 태아가 자궁에서 자라나는 모습까지의 전 과정을 대화면 3D로 즐길 수 있다. 대량의 정자들이 레이스를 벌이는 첫 장면에서부터 성우의 재미있는 설명이 곁들여져 모든 정보가 귀에 쏙쏙 들어온다. 시각과 청각을 자극하는 유쾌한 설명이 관람객을 집중시키고 많은 정보량을 기억할 수 있게 해주는 듯하다.
‘자궁과 태아 탄생‘을 주제로 한 전시실에서는 정자와 난자의 만남에서 출발해 태아가 자궁에서 자라나는 모습까지의 전 과정을 대화면 3D로 즐길 수 있다. ⓒ Corpus
이제 인체의 상단부에 올라갈 차례다. 갑자기 영화 관람 전시실의 바닥이 작은 엘리베이터가 되어 위쪽으로 이동하면서 위장이 있는 방으로 연결된다. 이 역시 관람객의 흥미와 집중도를 높이는 좋은 아이디어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4D로 체험하는 심장의 역할
위장의 방에서는 위장으로 들어온 음식물이 위 모형 속에서 소화된 후 십이지장을 통해 소장과 대장으로 이동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커다란 위 모형 가운데에는 창문처럼 모니터가 들어있어 음식물이 소화되는 장면을 볼 수 있고, 음식물이 소장과 대장으로 가는 모습은 모형 속에 불빛을 설치해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옆방으로 이동하면 커다란 심장 모형 속 모니터를 통해 피가 어떻게 우리 몸을 돌게 되는지, 좌심실과 우심실의 역할은 무엇인지를 배우게 된다. 이 방에서는 의자까지 함께 움직이며 체험을 제공하는 4D 영화를 볼 수 있는데, 적혈구가 폐를 통해 산소를 얻고 세포들에게 전달 후 이산화탄소를 받아 심장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여행을 재미있게 알려준다. 이렇게 커다란 모형을 직접 보면서 학습하면, 교과서의 그림을 통해 공부하는 것보다 생생하고 확실하게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감각을 자극한다
다시 바닥이 엘리베이터처럼 위로 올라가고, 이어서 ‘폐의 방’으로 이동한다. 이 곳에서는 폐의 꽈리 모양을 비롯하여 우리가 숨을 쉬는 모습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다. 다음 방으로 이동하니 치아가 보인다. 벌써 얼굴 부분까지 올라왔나보다. ‘입의 방’에서 또 하나의 참신한 아이디어를 발견할 수 있는데, 바닥이 혀의 모양과 촉감을 반영한 형태로 제작되어 있다는 점이다. 푹신푹신하면서도 돌기가 있는 것이 진짜 혀와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커다란 목젖 옆 모니터를 통해 혀가 어떻게 음식물을 식도로 넘기는지, 성대를 통해 소리가 어떻게 나는지도 생생하게 알려준다.
귀 전시실에서는 달팽이관을 통해 어떻게 소리가 뇌로 전달되는지, 반고리관의 역할은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 Corpus
다음으로 ‘코의 방’으로 들어가면 사람 크기만한 2개의 콧구멍이 보인다. 콧구멍 내부 모니터에는 장미꽃들이 만발해 있고, 갑자기 장미 향기가 전시실 가득히 퍼지면서 코의 역할과 작동 원리에 대한 설명이 흘러나온다. 후각까지 동원된 전시관인 셈이다. 다음 동선을 따라 이동하면 달팽이관을 통해 어떻게 소리가 뇌로 전달되는지, 반고리관의 역할은 무엇인지 등의 내용을 알 수 있는 ‘귀의 방’이 있고, 이 곳을 지나면 커다란 눈동자 속에서 각막과 수정체, 홍체 등을 볼 수 있는 ‘눈의 방’에 다다르게 된다.
한편 ‘뇌의 방’에 들어가면 관람객 개개인이 모니터 앞에 앉아 신경세포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등의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또한 천장의 화면을 통해 인간의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짧고 강렬하게 설명해준다.
뇌의 방에 들어가면 관람객 개개인이 모니터 앞에 앉아 신경세포가 어떻게 생겼으며 어떤 역할을 하는지 설명을 들을 수 있다. ⓒ Corpus
약 1시간 동안 진행되는 인체 탐험 투어가 끝난 후, 옆으로 연결된 계단을 통해 다시 위에서 아래로 한 층씩 내려가면 보통의 과학관처럼 관람객이 참여할 수 있는 전시물들과 조그마한 인체 모형들이 있는 전시관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서 관람객들은 인체 탐험 투어에서의 흥미롭고 특별한 기억과 과학 정보를 떠올리며, 다시 한 번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다.
약 1시간 가량의 투어를 마친 후에는 관람객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체험형 전시물과 인체 모형이 있는 일반 전시실을 둘러볼 수 있다. ⓒ 장미경
참신한 아이디어, 강렬한 기억
과학관 관람을 위해서는 날짜와 시간을 지정하는 사전 예약이 필수다. 현장에서 직접 표를 구매할 수도 있지만, 입장 인원이 한정되어 있어 오랜 시간 기다려야 하거나 당일 관람이 불가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코르퍼스(Corpus)’ 과학관은 네덜란드 특유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과학관 중 하나다. ⓒ장미경
과학관 관람을 마친 후에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참신한 아이디어, 강렬한 기억’이었다. 인체 모형을 한 건물에 직접 들어가 투어를 한다는 점이 신선한 아이디어로 다가왔고, 여기에 시각, 청각, 촉각, 후각, 공감각까지 관람객의 모든 감각을 자극한 전시 기획 덕분에 관람객들의 흥미를 높임은 물론, 인체에 대한 과학적 내용까지 강한 기억으로 뇌리에 저장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효과적인 과학교육 전시의 형태로는 최적의 모델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다.
과학관 관계자에 따르면 코르퍼스 과학관은 최근 미국 및 중국과 코르퍼스 과학관의 해외 분점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참신한 아이디어를 다른 과학 분야에도 확대 반영할 수 있다면, 창의적인 전시물과 건물로 조성된 ‘사이언스밸리’를 꿈꾸는 일도 가능하지 않을까.
첫댓글 우리나라에서 열린 인체의 신비전과는 스케일이 다르네요.
한번 가서 경험하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