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안리
조선시대 때, 마장(馬場)의 안쪽에 있는 마을이라 장안 또는 장내(場內)라 하였다. 현재 장안으로 쓰고 있다.
505번국도와 25번국도가 만나는 꼭지점 북쪽에 남향으로 너른 논과 마을이 있고 보습산이 꽃으로 피어난 지형이다. 보습산 중 가장 서쪽의 산을 옥녀봉이라 하며 서쪽 골짜기에 있는 신선바위에 선녀들이 내려와서 덕행을 쌓았다하여 승지골(聖地)이라 부른다. 또 승지골 서쪽에는 예비군 종합교육장과 군부대 사격장이 설치되어 있다. 간혹 총소리가 들린다. 보습산 동쪽 서원계곡과의 경계지점에 아무리 가문 해에도 물이 마르지 않고 항상 물빛이 검푸르다 하여 거무샘이 있다. 이곳에 이무기가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보습산은 남쪽에서 보면 5개의 산의 골짜기가 세로로 긴 선을 그어 쟁기모양을 띄며 5개의 산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이 모양이 동학깃발의 상징이 되었다.
장안리는 1,2리로 나뉘어져 있으며 대분분 벼농사에 종사하고 있다. 장안삼거리 입구에 60년대까지 장이 섰을 정도로 생기있는 마을이었다. 지금도 장안면사무소가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옆 마을에 산업단지가 입주되면서 속리초등학교에 20여명의 아이들이 전학을 온다는 소식이 반갑다. 뒷산 산지당골에는 호랑이가 살았다는 소나무숲에서 산신제를 지냈으나 현재는 마을 주민의 노령화로 진행되고 있지 않다. 경로잔치와 겨우네 마을회관에서 식사를 함께 한다.
장안노인정
문화유적
○동학 대도소터와 취회지
1893년 1월 옥녀봉 아래에 설치하였던 동학 본부였던 대도소(大都所)가 있었던 터다. 건물의 규모는 정확하지 않으나 1894년 10월 14일자에 기록된 도순무영(都巡撫營)의 우선봉(右先鋒) 이두황(李斗璜)의 기록에 의하면 “동리가 즐비하고 새로 지은 큰 집이 주산 아래 있는데 최법헌이 거처하던 곳이라(洞樣?比而新造一座大屋于主山之下比崔法軒之處所云)” 표현된 것으로 보아 매우 크게 지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대도소가 있었던 장내리 29번지 동쪽이 1893년 3월 10일부터 4월 2일까지 수만의 동학교도들이 모여 길이와 너비가 각각 1백여 걸음이나 되고 높이가 어른의 허리쯤 되는 돌담을 쌓고 모두 그 안에서 농성하며 주문(呪文)을 외우고 “척왜・양창의(斥倭 洋倡義)”, “보국안민”과 “서정쇄신”을 주장한 동학교도 취회지(東學敎徒 聚會址)로 모인 당시 모인 교도의 숫자에 대하여는 “동학란기록”에는 2만여명 “일본외교문서”에는 2만 3천명, “광서조중일교섭사료”에는 2만 7천여명으로 김윤식의 “속음청사”에는 앞에는 2만 7천여명으로 기록하고 뒷면에는 7만여명으로 기록되어 있어 상이하다. 현재는 모두 농경지로 변하였고 대도소 자리에서 기와파편이 발견되고 취회지에는 당시 돌담을 쌓았던 것으로 보이는 돌의 흔적을 볼 수 있다.
해월 최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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