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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유와 비유의 시 >
강정수
I. 서 론
<시에 대한 공격>
시란 사람의 마음을 연약하게 만들어 사회에 해독을 끼치게 된다는 Puritan적 입장과 플라톤의 공화국론에서의 시인의 무용론 및 추방론 등, 시를 배격하는 이론들.
<시의 옹호>
Arstotle의 시와 철학, 그리고 역사의 비교에 ('Probable should'를 주장, Probable Impossibility가 Impossible Probability보다 낫다) Sidney는 도덕관을 첨가 시는 역사와 철학보다 우수하다 주장.
철학이란 쉽게 이해할 수 없으며 적용할 수 없는 이상적인 것과 일반적인 것을 다루고 있고 역사는 실제 일어난 사실을 쓰고 있으며 악한 자가 성하고 덕 있는 자가 망한 것도 사실 그대로 기술해야 한다.
시란 이 두 가지 기능을 다 가진 것으로 바람직한 것을 가르쳐 사람을 선하게 만든다. 세상의 모든 학문의 목적은 도덕적 행위 이므로 시가 우수하다. Sidney는 시의 목적을 'to teach and delight'라고 말하며 Rome의 Horatius의 당의정론(Sugar Pill Theory)에 근거를 두고 교훈과 즐거움이 시의 목적인데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약과 같은 교훈을 즐거움 속에 포함시켜 독자들에게 전달해야 한다 고 교육적 효용을 강조 했다.
<윤석산 교수; 제주대학 국문학과 교수, 한국 문학 도서관 대표의 ‘새로운 시인을 기다리며’, ‘현대 시학’ 참조>
시인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표현으로 심리적 균형을 취하기 위해 쓴다
사르트르(J. P. Sartre)는 자아를
<홀로 있는 나(en-soi)>와 <타인과 관계를 맺은 나(pour-soi)>로 나누어
나의 가치는 <타인과의 관계를 맺은 나>에서 발생하고 가장 좋은 방법은 글쓰기라고 주장
시공을 초월하여 보다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나의 독자들은 현실의 이해관계를 초월, 영원히 나와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인간이 갖춰야 할 능력- <정보 수용(受容)>과 <자아의 표현(表現)>
정보-<듣기>와 <읽기>, 자아의 표현-<말하기>와 <쓰기>
이 중, 시 쓰기가 가장 고도의 능력에 속한다.
시를 잘 쓰는 사람은 언어생활 전반을 잘 할 수 있고 <인문>·<사회>·<예능> 분야에 고루 능하다. 과거를 통해서 우리나라나 중국에서 시문(詩文)에 능한 사람들을 관리로 뽑아 썼다.
인간은 시적 상상력과 직관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더 이상 진전할 수 없다.
시인은 자기가 상상한 것을 언어로 구체화하고, 과학자는 숫자나 공식으로, 사회과학자는 제도와 행위로 구체화하는 사람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시를 쓰기 위한 준비>
필기 도구와 원고 관리
종래의 문인들은 만년필이나 볼펜으로 글을 썼지만 현대는 노트북이 좋다.
컴퓨터 ‘내 문서’ 폴더에 <시>라는 하위 폴더를 만들고 저장할 때는 작품 제목으로 파일명을 붙이고, 초고부터 차례대로 번호를 붙여 저장한 다음, 그 작품이 완성되면 나머지 파일을 지우고, 연말에는 다시 연도별로 폴더를 만들어 관리해야 후일 ‘작품 연보(年譜)’를 만들기가 쉽다.
개작을 할 때는 컴퓨터 화면보다 프린트해서 고치는 게 좋다.
개작을 위해 출력한 것들은 초고부터 차례대로 노트나 오래된 잡지에 붙여두면 작품이 어떻게 변모하는가를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고칠 때는 제법 그럴 듯했지만 며칠 후 다시 읽어보면 전에 쓴 것이 더 어울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원고가 완성되어 문예지에 보낼 때는 가급적 그 책의 활자 크기와 형식에 맞춰 편집한 다음 2부를 뽑아 하나는 시작 노트에 붙여 두고, 잡지사에는 다른 하나와 파일을 보낸다.
그리고 공모(公募) 작품일 경우 조금 큰 활자체(명조나 신명조)로 응모하는 것이 좋다.
심사위원들이 읽는 데만 신경을 쓰기 때문이다.
산문 쓰는 방식도 함께 알아보면
산문을 쓸 때는 반드시 <개요 쓰기 기능>을 이용하여 먼저 스타일을 정하고 ‘서론’이니 ‘본론’이니 하는 큰 제목들은 큰 활자로, 그 다음 것들은 보다 작은 활자로, 본문은 좀 더 작은 글자로 정하고, 한 문장의 길이와 한 페이지의 행수를 정한 다음 쓰면 그 원고를 책으로 펴낼 때 어떤 모양이 될지 예측할 수 있어 아주 편리하다.
또 한 단락씩 완성하려 하지 말고, 처음에는 ‘1.서론’, ‘2.본론’처럼 단어식 큰 항목을 쓰고, 각 항목에 해당하는 내용은 빠르게 개조식(個條式)으로 써넣어 가다가 서론을 쓰다가 결론에서 할 이야기가 떠오르면 그 쪽으로 이동해 써넣고, 중복되는 이야기는 어느 한 쪽을 삭제하고, 제 자리에 박히지 않은 이야기는 다른 쪽으로 옮겨가며 전체 개요를 완성한 다음 문장을 정리하는 방식으로 쓰는 게 좋다.
심리적 준비
글 쓰기의 준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심리적 준비이다.
시는 천부적 재능을 가진 사람이 영감(靈感)을 받았을 때만 쓸 수 있다는 생각을 먼저 몰아낸다. 이런 주장은 이미 시인이 된 사람들이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지어낸 말에 불과하다. 물론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단번에 완벽한 작품을 쓰는 사람도 있다.
대부분의 명작들은 설익은 시상에서 출발하여 오랜 동안 다듬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시인이냐 아니냐는 등단(登壇) 여부와 몇 권의 시집을 발행했는가가 아니라 자기 마음에 들 때까지 고치는가 여부라는 점이다. 작품은 글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걸 완성하려는 시인의 정신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보다 많은 지식과 경험을 쌓은 다음에야 쓸 수 있다는 생각이다. 시가 요구하는 것은 지식이나 경험이 아니라 진지한 정서와 풍부한 상상력이다. 문학사에서 거론되는 작품의 대부분이 20대 전후 젊은이들이 쓴 작품이라는 점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최남선(崔南善)의 「해(海)에게서 소년에게」는 16세에, 김소월(金素月)의 「진달래꽃」은 18세, 주요한(朱耀翰)의 「불노리」는 19살에 쓴 작품이다. 그리고 정지용(鄭芝溶), 이상(李箱), 서정주(徐廷株), 청록파(靑鹿派)의 대표작들 모두가 25세 이전에 쓴 것들이다. 좋은 작품을 쓰자면 그것이 완성될 때까지 정신적 긴장을 유지해야하는 데, 젊을수록 긴장을 유지하는 시간이 길기 때문이다.
또 떠오르는 것이 있어야 쓸 수 있다는 생각도 몰아내야 한다. 그러나, 어떤 주제를 정하고 쓰기 시작하면 언어가 언어를 자극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게 된다.
마지막으로 버려야 할 것은 미문(美文)이나 명문(名文)이 따로 있다는 생각이다. 미는 내용과 형식의 조화에서, 진지함은 그런 조화를 찾아내려는 노력을 느끼는 감정이다..
좋은 시를 쓰기 위한 독서 방법
작품에 대한 창작 의욕과 모작(模作)하는 과정에 그 장르의 문학적 관습(literary convention)을 터득하고, 쓰고 다듬는 안목이 생기기 때문에 독서는 중요하다.
독서의 유형은
<이해의 독서>- 국어 시간에 주제 파악,, 낱말 뜻, 작품을 분석하는 방식의 독서
<감상의 독서>- 그 작품의 줄거리나 표현의 재미를 맛보며 읽는 방법
<비판의 독서>- 그 작품의, 테마와 등장인물의 관계, 상황과 작주 인물의 행동, 앞뒤 단락의 인과적 연결, 등장인물의 성격과 상황을 표현하는 데 적절한 어휘들인가, 말하려는 의미만이 아니라 뉘앙스까지 전달되고 있는가 등을 따지며 읽는 방식을 말한다. 실제로 글을 쓰지 않으면 이 방법은 <이해의 독서>가 되고 만다. 그리고 일정한 분석 능력을 갖추어야만 가능한 방법이며, 독서의 재미가 반감된다는 게 단점이다. 일일이 따져가며 읽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창조의 독서>- 비판의 독서 연장선에서 현재 읽고 있는 내용을 제재로 삼아 머릿속에서 또 다른 작품을 쓰며 읽는 방식을 말한다. 가령, ‘그녀는 바다를 바라보며 서있다’라는 문장을 읽는다고 합시다. 그 문장이 지시하는 의미만 떠올리지 말고, 해풍에 휘날리는 그녀 머릿결은 어떤 색깔일까 생각해보고, 그녀는 아마 간밤에 애인을 만났을지도 모른다고 상상하고, 그들이 만난 카페의 조명을 받아 반짝이는 글라스와 ‘있잖아, 나 내일 여행 떠나’라던 그녀의 목소리를 떠올리면서 자기 나름대로 또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방법을 말한다. 이런 방식으로 읽으면 그 작품을 끝까지 읽기 어렵다는 게 약점이지만, 작품을 쓰는 데에는 좋은 방법이다. 작품을 써야하는데 마땅한 소재가 떠오르지 않으면 책꽂이에서 아무 책이나 뽑아 읽으면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것들을 골라 써 본다.
읽을거리를 고르는 방식
문학사 책을 넘기면서 시대별로 거론되는 시인들의 작품 목록을 뽑아 차례대로 읽으면서 시대와 시인에 따라 작품들이 어떻게 변모했는가를 알아 본 후 우리와 경쟁할 이 시대에 주목받는 시인들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읽어야 한다. 되도록 많은 사람의 작품을 읽으면서 두세 종류의 문예지와 그 해에 뽑힌 신춘문예 당선자들의 작품 모음집이나 문학상 수상 작품집들을 구해 읽는다.
< 환유적으로 말하기>
근대 이전까지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환유적(換喩的) 어법>으로 쓰여진 시가 주류 독자들도 이해하기 쉬워 선호하니 시의 전통적인 어법은 환유적 어법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사전적 의미:환유(換喩)ː〖언어〗 어떤 낱말 대신에 그것을 연상하는 다른 낱말을 쓰는 비유. '해'가 한 해의 뜻을 나타내는 것 따위이다.)
환유의 기능과 유형
야콥슨은
(R. Jakobson:'Language in Literature'-신문수 역, 문학속의 언어학, 문학과 지성사. 1989년)
이야기가 이어질 때 연접(延接)된 방향으로 옮기는 방법- <환유(metonymy)어법>
어느 한 모티프를 골라 선택적(選擇的)으로 옮기는 방법- <비유(me- taphor) 어법>으로 분류하고 환유적 어법은 산문의 어법이며, 비유적 어법은 시의 어법이라고 주장 한다
. 현대시론은 대부분 그에 따라 비유적 어법만이 시의 어법이라고 보고 있다. 근대 이전까지 쓰여진 작품들은 오히려 환유적 어법으로 쓰인 것들이 주류를 이룬다. 시경(詩經) 전체 305편 중 환유에 해당하는 ‘부(賦)’로 쓰여진 작품은 161편이고, 비유에 해당하는 ‘비(比)’로 쓰여진 작품은 21편에 불과하다
. 그리고 현대에도 주요한(朱耀翰)의 「불놀이」, 김소월(金素月)의 「진달래꽃」, 한용운(韓龍雲)의 「님의 침묵」, 정지용(鄭芝溶)의 「향수」, 김영랑(金永郞)의 「모란이 피기까지」, 조지훈(趙芝薰)의 「승무」, 박목월(朴木月)의 「나그네」를 비롯한 대부분의 작품들은 환유 어법을 택하고 있다.
시는 ‘객관적 상관물(objective correlatives)’을 선택하여 그를 그려야 한다며, 비유적 어법을 주장한 엘리엇(T. S. Eliot)의 대표작 「황무지(The Wast Land)」도 환유를 채택.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잘 잊게 해주는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球根)으로 약간의 목숨을 대어주었다.
슈타른버거호(湖) 너머로 소나기와 함께 갑자기 여름이 왔지요.
우리는 주랑(柱廊)에 머물렀다가
햇빛이 나자 호프가르텐 공원에 가서
커피를 들며 한 시간 동안 얘기했어요.
저는 러시아인이 아닙니다. 출생은 리투아니아지만
진짜 독일인입니다.
어려서 사톤 태공의 집에 머물렀을 때 썰매를 태워줬는데 겁이 났어요.
그는 말했죠. 마리 마리 꼭 잡아.
그리곤 쏜살같이 내려갔지요.
산에 오면 자유로운 느낌이 드는군요.
밤에는 대개 책을 읽고 겨울엔 남쪽에 갑니다.
―T. S. Eliot;1888-1965. Harvard졸업. 1927년 영국 귀화, 1948년 노벨문학상
「The Waste Land.1922. : 사자(死者)의 매장(埋葬)」 에서 인용한 부분은 이 작품의 첫머리입니다.
시는, <4월에 대한 화자의 생각→겨울에 대한 기억→화자가 슈타른버그에 머물렀던 여름에 생긴 일→자신에 대한 소개→사톤 태공 집에 있었을 때 일→자신의 생활>로 이어집니다.
봄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다가 문득 생각 난 겨울의 일로 옮겨가고, 그 이야기가 끝나자 여름의 이야기로 옮기는 연접적(延接的), 계기적(契機的)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
하지만 모든 산문은 어김없이 환유 어법을 택하고 있다. 따라서 환유적 어법은 시와 산문에 두루 쓰이는 어법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야콥슨이 시의 어법으로 분류한 비유적 어법도 신문기사에서 '거인, 드디어 환호하다’라든지 ‘무릎을 꿇었다’는 식의 비유적 어법을 쓴다. 따라서 시의 어법이라고 하는 비유 역시 산문에도 쓰인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시적 환유(poetic metonymic)>와 <산문적 환유(prosodic metonymic)>, 그리고 <시적 비유(poetic metaphor)>와 <산문적 비유(prosodic metaphor)>부터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시에서 쓰이는 환유나 산문에서 쓰이는 환유 모두가 연접된 방향으로 의미를 이동시킨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이다.
차이가 있다면 시적 환유는 <빈틈>을 크게 설정하고, 함축적이고 정서적인 언어를 사용하면서 화자의 판단을 내세워 결론을 내리지 않은 채 <느슨한 연결 고리- 열린 언술(言述)>을 취하고,
산문적 환유는 되도록 빈틈을 좁히고, 지시적이고 논리적인 언어를 동원 인과관계를 따지면서 결론을 내리는 <치밀한 연결 고리- 닫힌 언술> 형식을 취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앞에서 인용한 엘리엇의 작품만 해도 그렇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추억과 욕정을 뒤섞고/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의 경우 논리적인 인과 관계를 맺지 않아 빈틈이 클 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언어로 4월의 모습을 그리고, 어떤 결론을 내리지 않은 채 겨울의 이야기로 옮겨가고 있다.
빈틈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면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학교에 왔다’라는 문장을 생각해 보면 일어나자마자 식사를 한 건 아니고. 이불을 개고, 화장실을 가고, 세수를 하고, 거실을 가로질러 주방의 식탁 앞에 앉고, 가스 렌지 위해서는 부글부글 찌개가 끓고…. 아주 무수한 이야기들을 생략하고 있다.
그러므로 산문적 비유의 빈틈은 화자도 독자도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고도 메울 수 있는 크기이고, 시적 환유의 빈틈은 시인이 의식적으로 설정하고, 독자가 독서를 중단한 채 상상력을 발휘해야만 메울 수 있는 크기라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그런데, 시에서 환유적 어법을 택할 경우 빈틈의 설정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여 시인은 빈틈을 이용 불필요한 이야기를 생략하고 함축적인 이야기로 바꾸며, 독자들은 이 빈틈을 메우기 위해 상상력을 발휘 시인의 정서와 사고 과정을 헤아리게 만든다.
이와 같은 시적 환유의 유형은 어느 한 모티프를 기점으로 삼아 같은 방향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동일 방향 환유>와 각기 다른 방향으로 전개하는 <다른 방향 환유>로 나눌 수 있다.
다음 작품은 동일 방향 환유를 택한 예에 해당한다.
원주고교 이학년 겨울, 라라를 처음 만났다. 눈 덮인 치악산을 한참 바라다보았다.
7년이 지난 2월달 아침, 나의 천장(天井)에서 겨울바람이 달려가고 대한극장 이층 나열 14에서 라라를 다시 만났다.
다음 날, 서울역에서 나의 내부(內部)를 달려가는 겨울바람을 전송하고 돌아와 고려가요어석연구(高麗歌謠語釋硏究)를 읽었다.
형언할 수 없는 꿈을 꾸게 만드는 바람 소리에 깨어난 아침, 차녀를 낳았다는 누님의 해산 소식을 들었다.
라라, 그 보잘 것 없는 계집이 돌리는 겨울 풍차 소리에 나의 아침은 무너져 내렸다. 라라여, 본능의 바람이여, 아름다움이여.
「라라에 관하여」 전문
―오탁번(吳鐸藩)(충북 제천 출생, 고대 영문과졸,1967 중앙일보 신춘문예 '순백이 빛나는 이 아침에'로 등단. 시집"너무 많은 가운데 하나".1985, 벙어리 장갑, 2002. 등)
이 작품은 고등학교 2학년 때 ‘라라’를 만난 이야기에서부터 오늘 아침에 그에 대해 생각한 것까지 순차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각 모티프들은 어떤 사실만 이야기할 뿐, 화자의 판단을 유보하면서 느슨한 연결 고리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와 같이 동일 방향 환유를 채택하면 이야기의 방향이 한 쪽으로 진행되어 화자의 의도가 분명해지고 전달력이 강화되지만 산문을 시처럼 쓴 것으로 보이기 쉽고, 전체 짜임이 평면화 된다는 게 단점이다. 위 작품에서 부분적이긴 하지만 <라라에 대한 그리움=바람>으로 바꾼 것도 이런 평면성을 극복하기 위해서이다.
다음은 여러 방향 환유를 채택한 예이다.
<1>
장미나무 밑에 강아지가 입에 거품을 물고 죽어 있습니다.
(쥐약을 먹은 모양이다)
이미 물체로 변해버린 그 시체 위에 쏟아지는 여전한 햇살
<2>
남의 눈에 띄지 않고 살아간다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더구나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3>
생후 일주일밖에 안 된 딸의 조그마한 발에다 뺨을 부비면서
아버지는 이 발이 앞으로 밟고 살아갈 세계를 생각했다.(후략)
<4>
이 세상에 가장 신선한 감촉(感觸)이 있다면
그것은 맨발로 풀밭을 거니는 감촉일 것입니다.
<6>
나는 필사의 도망자
숲 속에서 공연히 나뭇가지를 흔드는 바람처럼 보이지 않는 손길이 나의 뒤를 쫓는다.(후략)
<7>
우리에겐 묘한 버릇이 있습니다.
열광하는 군중들 함성 속에서는 오히려 고독을 느끼고
월면(月面) 위에 서 있는 우주인(宇宙人)은
무수한 인류의 시선을 느낀다.
-김윤성(金潤成)( 1925년 서울 출생, 1946년 白脈동인지 창간호에 '들국화', '밤의 노래'로 등단. 시집"바다가 보이는 산길,1958. 외 다수.)
「끝나버린 술래잡기」에서 이 작품은 모두 42개의 단장(斷章)으로 이루어져 있다
(단장의 형식: 한 도막에 하나의 의미를 담는 형식, 그러나 각 도막은 의미를 완결시키지 않고, 화제를 던지고 그에 대한 판단은 독자가 내리도록 하며, 통일된 형식을 취하지 않아도 됩니다. 시에서 가장 자유로운 형식은 이 단장이라고 할 수 있다.)
원작(原作)에는 없는 번호를 설명의 편의를 위해 붙였다. 그런데, <1>에서 <4>까지만 해도 앞에서 인용한 작품과 달리 <강아지의 죽음→남의 눈에 띄지 않고 살아가기→어린 딸의 발→맨발로 풀밭을 걷는 감촉> 등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따라서 다른 방향 환유에 해당된다. 이런 환유를 택하면 어떤 모티프를 선택하고 그로 인해 떠오르는 모든 이야기들을 다 말할 수 있다.
반면에 이들끼리 어울려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초점이 잡히지 않아 토막 낸 산문을 모아놓은 것 같은 이야기가 되고 만다.
환유의 유형에는 이 두 기본형 이외도 전체 이야기가 그 무엇을 은유하되, 연접된 방향으로 전개하는 <복합 환유(複合換喩)>가 있다. 앞에서 인용한 엘리엇의 작품은 세계 1차대전으로 인해 황폐해진 유럽 사회의 정신적 풍토를 황무지로 비유하면서 전개 방식은 환유를 택하고 있다.
이와 같이 복합 환유를 택하면 환유와 은유의 장점을 모두 이용할 수 있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면서 작품을 입체화할 수 있다. 하지만 비유한 부분이 너무 많거나, 비유의 원관념을 발견하기 어려울 때는 두 어법의 단점이 고스란히 나타난다. 그러므로 테마를 은유화하고 그를 위해 선택한 비유물을 중심으로 환유적으로 그리는 방식이 좋다.
복합환유 역시 같은 방향으로 전개하는 유형과 여러 방향으로 전개하는 유형이 있다. 그러므로 환유의 유형은 모두 <동일 방향 단일 환유>, <다른 방향 단일 환유>, <동일 방향 복합환유>, <다른 방향 복합환유>로 나눌 수 있다.
이와 같은 시적 환유의 기능은, 첫째로 산문으로 풀어써도 다 담을 수 없는 이야기를 짧은 시 속에 담을 수 있다. 시적 환유는 어떤 결론을 내리지 않는 <느슨한 연결 고리-열린 언술(言述)>의 형식을 취하고, 그들의 인과관계는 독자 스스로 만들기 때문에 어떤 이야기든 다 담을 수 있다.
둘째로, 아무리 빈틈을 넓게 설정해도 이야기의 방향을 감지하고, 독자가 그 빈틈을 메워 완성하는 방식이라서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다 헤아리지 못해도 전혀 전달되지 않는 경우가 없다.
셋째로, 독자가 시인이 말한 것 이상의 의미를 만들어낸다. 앞에서 인용한 김윤성(金潤成)의 작품만 해도 그렇다.
<1>을 읽을 때는 무엇을 말하려는지 얼른 판단이 안 서 ‘모든 것은 죽는다’든지, ‘죽은 강아지가 불쌍하다’든지, ‘한 생명이 끝나도 세상은 여전하다’라는 식의 의미를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2>로 넘어가면 ‘남의 눈에 띄지 않고 살아간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라고 말한 의도를 헤아리기 위해 다시 여러 가지로 해석하고, <1>과 연결시키면서 ‘나도 언젠가는 죽을 것이다’라든지, ‘살아 있는 동안에 바르게 살아야지’ 라는 식의 의미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1>을 읽을 때보다 더 많은 사고와 상상력을 발휘하게 된다.
<3>으로 넘어오면 이런 기회는 더욱 늘어난다. <1>이나 <2>를 읽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 모티프를 해석해야 하고, 그렇게 해석한 것과 앞에서 확정시킨 의미를 연결하다가 어긋나면 다시 해석하여 연결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N개의 모티프로 이뤄진 작품을 읽을 때 최대로 N개의 상상력과 그 빈틈을 연결하기 위한 N-1개의 상상력, 각 단위를 읽을 때마다 새로 파악한 의미와 이미 해석한 의미를 연결하는 데 필요한 N개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그 작품이 지시하는 이상의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다. 반면에 서사적 속성이 남고, 평면 화 되며, 구조적 긴밀성과 시적 긴장이 떨어지기 쉽다는 약점을 지니고 있다.
<서정적 줄거리 만들기>
이와 같이 환유적 어법이 여러 가지 장점을 지니는 것은 시인이나 자신의 대리자(agent)를 등장시켜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직접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시를 쓰려면 먼저 그런 이야기를 할 화자와 그가 등장할 배경, 말하는 태도를 미리 결정해야 한다.
화자의 설정; 화자는 작품을 이루는 모든 요소들이 그를 중심으로 조직되기 때문에 화제에 어울리는 인물로 설정했느냐 여부가 곧 그 작품의 성패를 결정한다.
화자의 유형; 시인 자신이 작품 속에 직접 등장하는 <자전적 화자(自傳的話者)>와
화제에 따라 시인이 꾸며낸 <허구적(虛構的) 화자>로 나눌 수 있다.
하지만 완전한 자전적 화자도 허구적 화자도 존재하지 않는다. 시인 자신의 생각이나 정서를 이야기하려고 할 때는 자전적 화자를 택하고, 비현실적인 상상이나 현실적으로 논의하기 어려운 화제를 이야기하려 할 때는 허구적 화자를 채택하는 것이 좋다.
배경의 설정; 시간과 공간은 존재를 구성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일 뿐만 아니라, 등장 인물의 성격(character)을 만들어내고, 이야기의 전개 방향을 암시하는 기능을 지니고 있다.
배경의 유형은
<중성적 배경(natural setting)>; 등장하는 무대 구실만하는 배경
<기능적 배경(functional setting)>;인물의 심리상태를 은유하거나 어떤 행위를 조장하고 억제하는 배경
시를 쓸 때는 반드시 기능적 배경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풍경을 통해서도 말해야 한다. 다음 작품은 화자 자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작중 풍경만을 그리고 있다.
그는 강 왼쪽에 있다. 하늘은 푸르고 햇살은 눈부시고 나는 강 오른쪽에 있다. 햇살은 푸르고 하늘은 눈부시고 그의 오른발이 강물 속에 있다.
눈부신
햇살이 건너오고
나의 왼발이 강물 속에 있다. 왼발을 보며 그가 웃는다. 물결은 떨리는 그의 웃음을 밀어오고. 나의 왼발은 떨리는 그의 시선을 비끼며 마구 달아난다. 빠알갛게 물드는 나의 왼발이 떨리어 온다. 오른발을 향하여 내가 웃는다.
그냥
그렇게
강물은 흘러간다. 나의 왼발과 그의 오른발은 흘러간다. 오른발을 느끼며 내가 운다. 하늘은 푸르고 햇살은 눈부시고 왼발을 느끼며 그가 운다.
-현희(玄姬), 「강 왼쪽 강 오른 쪽」에서
우리는 날씨가 너무 좋은 날이면 인생이 덧없이 흘러간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이 시인도 그런 생각을 강물을 통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의 배경이 된 그 강가에는 있음직한 모든 것들을 삭제하고, 눈부시게 푸르른 ‘햇살’과 ‘하늘’만 그리고, ‘강물’이 흘러간다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날씨에 비해 자신이 너무 쓸쓸하다는 것을 암시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와 같이 일상적인 화제의 배경은 테마를 부각시키는 데 필요한 것들만 고르고, 그를 통해 화자의 심정을 은유할 수 있도록 조직해야 합니다.
배경을 이루는 시간과 공간의 원형적 의미 요약
ⅰ)하루의 주기
○ 빛의 시간 - 이성이 지배하는 시간, 남성적 성격, 노동,
○ 어둠의 시간 - 감성이 지배하는 시간, 여성적 성격, 휴식
○ 경계의 시간 - 이성과 감성이 교차되는 시간, 중간적 성격, 준비
ⅱ)계절
○ 봄 : 감성의 계절, 여성적 성격, 순진, 화사, 희망-청년기
○여름 : 이성의 계절, 남성적 성격, 정열, 낭만, 노동-장년기
○가을 : 감성의 계절, 여성적 성격, 성숙, 고뇌, 우울-노년기
○겨울 : 이성의 계절, 남성적 성격, 정지, 좌절, 엄숙, 절망-죽음
ⅲ)공간
○열린 공간 : 남성적 성격,
○닫힌 공간 : 여성적 성격
○경계의 공간 : 양성적 성격
프라이(N. Frye)의 설명에 의하면, 인류가 살아오는 동안에 자연 현상에 대해 은유적으로 해석해온 것이 축적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어둠의 시간을 여성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낮 동안의 활동을 중지하고 자기 생활을 되돌아보는 과정에서 ‘비극적 리비도(tragic libido)’가 활동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화제에 따라 화자를 선택한 다음에는 시간과 공간을 설정하되, 실제로 작품을 쓸 때 다 표현하지 않더라도 화자의 성 신분 연령 심리 상태에 따라 계절과 하루 가운데 어느 때로 할 것인가, 그리고 어떤 공간에 내세울 것인가, 그 공간 안에는 어떤 것들을 등장시킬 것인가를 면밀히 설계한 다음 쓰기 시작해야 합니다.
거리와 어조 설정; 다음 화자의 태도인 화자의 <심리적 거리(psychi-cal distance)>와 <어조(tone)>를 결정해야 한다. 그 유형으로는 <지나치게 가까운 거리-비교적 가까운 거리-조절된 거리-비교적 먼 거리-지나치게 먼 거리>로 나눌 수 있다.
ⅰ) 화자의 태도와 거리: 남성화자는 <비교적 먼 거리>에서 여성화자는 <비교적 가까운 거리>로 설정해야 한다.
ⅱ) 어조와 문체: 남성화자는 기능적이고 소박한 어휘로 자유분방하거나 장중한 어조로, 여성화자는 섬세한 어휘로 정제되어 있으면서도 가변적인 어조로 이야기해야 한다.
프로이트나 융 같은 분석심리학자들의 주장과, 그들의 견해가 너무 남성중심이라며 비판한 길리건(C. Gilligan)의 주장에 의하면, 남성은 대상과 자신의 관계에서 독립하여 <시비(是非)의 윤리(ethic of right or wrong)>에 의해 행동하고, 여성은 관계를 중시하면서 <아낌의 윤리(ethic of care>에 의해 행동한다고 한다.
둘째로, 고려해야 할 것은 화자가 시적 대상과 청자를 어떻게 인식하며, 누가 우위(優位)이고, 담화의 장(場)에 청자와 함께 있느냐 여부입니다. 이 문제는 다음 작품을 읽고 확인해보기로 할까요?
저 재를 넘어가는 저녁 해의 엷은 광선들이 섭섭해 합니다.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켜지 마세요.
그리고 나의 명상의 새 새끼들이
지금도 저 푸른 하늘에서 날고 있지 않습니까?
이윽고 하늘이 능금처럼 붉어질 때,
그 새새끼들은 어둠과 함께 돌아온답니다.
언덕에서는 우리의 어린 양들이 녹색 침대에 누워서
남은 햇볕을 즐기느라고 돌아오지 않고
조용한 호수 위에는 이제야 저녁 안개가 자욱이 내려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늙은 산의 고요히 명상하는 얼굴이 멀어가지 않고
머언 숲에서는 밤이 끌고 오는 그 검은 치맛자락이
발길에 스치는 발자국 소리도 들려오지 않습니다.
-신석정(辛夕汀), 「아직은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에서
이 작품의 지향성은 청자 지향 형 이다. 그리고 화자는 사춘기로 접어드는 소년이고, 청자는 어머니이고, 화제의 내용은 어머니에게 아직 해가 지지 않았으니 촛불을 켜지 말아달라는 부탁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 화자의 발언은 몇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첫째로는 자연물을 인격체로 본다는 점이며, 첫머리의 촛불을 켜지 말라는 부탁만 해도 아직 어둡지 않으니 켜지 말라는 게 아니라 지는 해가 ‘섭섭해’할 것이라고 배려하고 있습니다. 또 그냥 저녁 해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저 재를 넘어가는 엷은 광선들’이라고 섬세하게 수식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화자가 청자보다 하위일 때는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서 애원·청원·부탁의 어조로 말합니다. 그리고 직접 말하기 어려운 화제일 때는 반어법이나 역설을 구사합니다. 이와 반대로 상위일 때에는 비교적 먼 거리를 취하면서 명령·금지·야유·비판의 어조와 직접 어법을 구사하고, 평어체를 택합니다.
II. 환유적으로 시쓰기
어느 날 해안도로에 있는 카페에 갔다. 커피를 시켜놓고 창 밖으로 펼쳐지는 바다 풍경을 보면서 피로를 풀고 있는데 옆자리에 앉은 커플 가운데 한 사람이 ‘자기 말 속에는 또 다른 말이 있는 것 같아’라고 한다.
순간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어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해서 ‘말 속’에 말이 있다면 ‘말 밖’에도 말이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안’과 ‘밖’이 있다면 말은 입체적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공간이라면 사람도 살고, 도시도 있고, 빌딩도 있고, 구멍가게도 있고, 그 구멍가게 안에는 사탕항아리도 있을 테고, 그 아래에는 지하실도 있을 수 있고, 밤마다 고양이가 계단에 올라와 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러다가 ‘언어는 이데올로기’라든지, ‘존재에 이르는 통로’라는 말들 그리고 ‘이데올로기는 폭력을 낳는다’는 말들이 떠올랐다. 다시 언어가 존재라면 화살로도 만들 수 있고, 고래로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종업원에게 종이를 달라고 해 다음과 같이 메모하기 시작했다.
①글을 쓰다가 피곤해서 해안도로 드라이브를 하고 카페에서 차를 마심
②옆자리의 젊은 커플이 ‘당신 말 속에는 또 다른 말이 있다’고 말함.
③순간 말 속에 말이 있다면 언어는 입체적 공간이고 사물이며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음.
④그리고 또 언어는 이데올로기라는 생각이 떠올랐음 - 이 세상의 모든 분쟁은 언어로부터 시작됨…
이런 식으로 시의 줄거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집에 와서 어떻게 쓸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3인칭 지향형으로 쓰기로 했다. 언어 그 자체의 속성을 드러내고 싶어서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화제 지향형은 자기감정을 자제하며 객관적으로 말하기에 적합한 유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줄거리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 가운데에서 제일 먼저 제외한 것은 ①번이었다. 이 모티프는 과정을 나타내는 <동적(動的) 모티프>로서, 이들을 그냥 놔둘 때는 서사적 산문이 되기 때문이다.
‘동적 모티프’란 용어는 러시아 형식주의자인 토마쉐프스키(B. Tomaševski)가 쓴 것으로서, 그는 이야기를 이루는 최소 단위인 모티프의 유형을 이야기를 전개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단위로서 탄생이나 죽음 같은 것을 <고정(固定) 모티프>, ‘뛰었다’든지 ‘결혼했다’와 같이 정황(情況)의 변화를 알리는 <동적(動的) 모티프>,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갈 때 날씨가 화창했다든지 음악을 들으며 갔다는 식으로 생략해도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 <자유(自由) 모티프>, ‘그녀는 아름답다’와 같이 묘사하는 단위를 <정적(靜的) 모티프>로 나눈다.
하지만 완전히 동적 모티프를 배제하면 화자가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가를 짐작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가능한 축소하고, 자유 모티프와 정적 모티프를 이야기할 때 포함시키는 것이 좋다. 흔히 시를 평할 때 ‘서사성이 강하다’든지 ‘산문적’이라는 소리를 듣는 작품들은 이들을 그냥 놔두었기 때문이다.
이런 것들을 다 뺀 다음 줄거리에 따라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쭉 쓰다가 보니까 주제가 잘 드러나지 않았고 어떤 곳은 너무 장황하여 설명으로 흐르는 곳이 생겼다.
그래서 주제에 해당하는 ‘말 속에는 말이 있다’와 ‘말 밖에도 말이 있다’라는 구절을 적당히 바꾸면서 각 연마다 배치했다. 그리고 줄줄이 이어지는 곳을 잘라 연(聯)을 바꾸면서 자른 빈틈에서 독자들이 상상하도록 만들어 작품으로 완성했다.
말 속에는 말이 있고
말 밖에는 말이 있다.
말과 말 사이에는 빌딩이 있고
빌딩과 빌딩 사이에는 구멍가게가 있고
구멍가게 한 가운데에는 꿈을 담은 사탕 항아리가 있고
그 뒤 쪽 지하실 계단 아래에는 빨간 장화를 신은 고양이가 있고
그 고양이는 밤마다 층계 위에 올라와 밤새도록 운다.
말과 말 사이에는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리는 숲이 있고
발랑발랑 뒤집히는 물푸레나무 이파리들 뒤엔 명털 뽀얀 소녀들이 있고
깔깔대는 그 소녀들 웃음은 화살이 되어
산등성이를 달리는 사슴 정갱이를 꺼꾸러뜨린다.
그러나
지상의 말과 말 사이에는 또 다른 말이 있고
또 다른 말 내부에는 눈부신 이데올로기가 있고
이데올로기는 도시 상공에서 펄럭이는 깃발이 되고
펄럭이는 깃발은 저를 위해 다른 말들을 공격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간혹 전쟁터에서 혼자 죽는다.
말과 말 사이에는
쓸쓸히 비가 내리는 바다가 있고
비 내리는 바다에는 죽은 고래 한 마리가 있고
그 고래는 밤마다 제 짝을 찾아 울며 지구 저쪽으로 떠나고
그래서 지상의 우리 사랑은 언제나 슬프다.
-윤석산, 「지상의 말과 말 사이에는」
환유적으로 시 쓰기 순서
① 화제가 떠오르면 자유연상(自由聯想)을 하면서 시상을 풍부하게 만든다.
② 시상을 검토하면서 지향성을 결정한다.
③ 시적 인물과 배경, 어조 등을 결정한다.
④ 줄거리를 검토하면서 고정모티프와 동적 모티프를 제거하거나 자유모티프와 정적 모티프에 포함시키면서 이야기를 만든다.
⑤ 주제에 해당하는 모티프를 군데군데 배치하여 주제를 강화하고, 모티프 단위로 연을 구성하면서 작품을 완성한다.
시의 제재로 택한 화제에 과거의 이야기를 오버랩(overlap)하거나 몽타주(montage)하는 방법을 싸서 동적 모티프를 약화 시킨다..
다시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쓸쓸해서 하루 종일 방황하고 아래와 같은 시적 줄거리를 만들었다고 하자..
① 그녀가 떠난다고 해서 항구로 갔다.
② 하루 종일 밀려오는 파도 소리와 갈매기의 울음을 들으며 방황했지만 여전히 쓸쓸했다.
③ 해 지고, 어두워져 집으로 돌아오는 길 포장마치에서 소주를 마셨지만, 여전히 쓸쓸했다.
만일 이 이야기를 차례대로 쓴다면 틀림없이 ‘산문적’이라든지 ‘서사적’이라는 평을 들을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모티프인 포장마차에서 술 마시는 장면에 그녀가 떠나는 장면을 비롯하여 바다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겹쳐 놔야 한다.
차가운 소주잔 아래 항구로 가는 사내가 보인다.
파도는 밀려오고, 갈매기는 울고
차가운 소주잔 아래 바바리코트 깃을 여미며 돌아서는 여인이 보인다.
여객선은 부우부우 고동을 울리며 항구를 빠져나가고
차가운 소주잔 아래 늦가을 저녁 혼자 술 마시는 사내가 보인다.
술잔 밑으로 저녁 해가 지고, 포장마차 비닐 포장이 펄럭이고…
이런 식으로 겹쳐 놓거나 비유하면 지나간 일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III. 비유적으로 시 쓰기
비유적 어법으로 시 쓰기는 환유적 어법으로 쓰는 것보다 한두 가지 어려움이 더 추가된다. 비유적 어법은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바와 일치하면서도 다른 비유물을 찾아야 하고, 그 비유물을 그려 보여주는 방식으로 자기 이야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시로 접어들면서 이 어법을 택하지 않은 작품들은 낡은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각 장르의 어법이 환유적으로 이야기하기(telling)에서 비유적으로 보여주기(showing) 방식으로 바뀐 데 원인이 있다. 그러므로 시를 여기(餘技)로 쓰는 사람이 아니면 반드시 터특 해야 할 방법이다.
그런데 현대 독자들은 보여주는 것에만 만족하지 않고, 새로우면서도 사실감이 드는 비유를 원한다.. 유사한 것을 보조관념으로 선택하면 곧바로 원관념으로 연결되어 진부하게 느껴지고, 현실과 동떨어질 것을 선택하면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참신성(斬新性)>과 <사실감(事實感)>이라는 또 다른 어려움이 추가된다.
생활하는 과정에서 떠오르는 비유 가운데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지만 어쩐지 그런 것처럼 느껴지는 것들이 있으면 그걸 비유물로 채택하면 된다. <어쩐지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어야 한다.
이 때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누구나 그렇게 느끼는 것>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과 <다른 사람들이 널리 쓰는 비유>는 제외해야 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사랑하는 그녀는 장미꽃 같다’ 같은 것이다. 이와 같은 비유는 독자들의 마음속에 이미 들어 있는 것이라서 시인의 비유와 독자의 인식이 대결 과정을 벌이지 않고 곧바로 연결되어 진부한 작품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실과 거리가 멀지만 어쩐지 그렇게 느껴지는 것들이 떠오르면 그것이 왜 이런 상황에 떠올랐는가를 검토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의식이나 무의식 속에 담겨 있는 상징일 경우에는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그 상징물이 지닌 의미 속에 포함시키면서, 그 모습을 반복적으로 묘사하여 작품을 완성시키면 된다.
유치환의 「깃발」도 이런 방식으로 완성했을 것이다. 깃발의 펄럭이는 소리가 어쩐지 아우성처럼 들렸을 테고, 왜 아우성으로 들릴까 생각하다가 깃발은 무수한 이념의 상징이라는 걸 깨닫고 썼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만 쓰면 아무리 뛰어난 시인도 ‘시인 폐업계(閉業屆)’를 내야 한다. 폐업계를 내지 않으려면 어쩐지 그렇게 느껴지지만 설명하기 어려운 것들은 치환 은유적 방법을 택해야 한다. 치환은유는 상징과 달리 시인의 의식 속에 어떤 사물의 형태로 떠오르는 게 아니라 관념 상태로 떠오른 것을 지적(知的)인 노력을 가하여 그 무엇으로 바꾸는 어법이다.
문제는 원관념과 보조관념을 일치시키기이다. 이들을 연결시키지 못할 경우에는 비록 새롭더라도 의미를 전달할 수 없는 기호로 떨어지고 말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적당한 위치에서 멈추고 연결시키는 작업에 치중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유의할 것은 자기 생각을 다 담으려 들지 말라는 거다. 어차피 비유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비유물에 대한 그림으로 보여주는 방식이므로 다 담을 수 없다. 그리고, 꼭 담아야 하는데, 비유물에 그런 의미를 담을 수 없을 때는 그 비유물이 존재하는 시간과 공간과 상황을 조절하는 방식으로 보충하고, 독자들이 제대로 연결시킬지 의문스러울 때는 원관념을 드러내는 현시형(顯示形)을 택하고, 충분히 이해될 수 있으면 잠재형을 택하는 것이 좋다.
너무 독창적이어서 그 어떤 사물이나 풍경으로도 자기 생각을 표현하기 어려운 것은 아예 어떤 의미를 전달하려고 하지 말고 모티프들을 인과관계를 단절시킨 채 병치하여 독자들이 스스로 의미를 만들도록 내맡기는 방법을 택하는 것이 좋다.
이제 작품을 쓸 차례가 되었다. 얼른 생각나지 않으면 <관념→관념>으로 바꾸고, 의미차(意味差)가 나도록 만들어 독자 스스로 생각해보도록 유도하는 방법으로 쓰는 건 어떨까?
‘언어’를 화제로 골라 보자. 시인이 평생 씨름하며 살 대상이 언어니까. 그래, ‘언어’하면 의사소통의 도구! 그럼 의사소통이 우리의 관계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또 사고의 도구이자 결과. 언어가 없으면 사고할 수도 없고, 사고의 결과는 언어로 남으니까. 그렇다면 언어는 하나의 존재(存在)라 할 수 있다.
또 언어는 우리의 관계를 변형시키기도 한다. ‘사랑 한다’고 말하는 순간 사랑하는 사람으로 행동해야 하고, ‘미워’라고 말하는 순간 그 사람은 아득히 내 마음에서 멀어져가니까. 그렇다면 언어는 존재의 차원을 넘어서 관계를 만들고 끊는 에너지고 실재라 할 수 있다..
언어는 실재라는 데까지 생각을 이끌고 오니까 아주 재미난 생각이 떠오른다. ‘사랑하는 그 사람’이라는 말에서 그녀의 투명한 피부와 오늘 아침 머리를 감을 때 쓴 샴푸 냄새가 떠오른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 공허한 것도 영혼이 담긴 말들을 하지 않고 그냥 자기 욕망을 전달하기 위한 도구로만 사용하기 때문이고, 삶이 공허하니까 우리 영혼도 공허해지고, 그래서 다시 삶이 공허해진다는…. 이 이야기를 작품으로 써 보자.
현대인들은 말의 껍데기만 가지고 산다.
가령 <너>라는 말만 해도 그렇다. 사람들은 흔히 너를 <홀로 있는 너>니 <관계 속의 너>니 하고 나누지만, 그런 <너>에게는 네 마알간 피부, 네 부드러운 머리칼, 네가 아침마다 사용했을 샴푸 냄새, 그걸 헹구어내던 수도꼭지에서 똑똑 떨어지던 물방울의 투명한 울림 같은 것들은 모두 증발되고 <너>라는 말만 남아 있을 뿐이다.
*
내가
꼭두새벽
홀로 일어나
뜨락 느티나무를
우두커니 바라보는 것은
간밤 <너>와 잔 게 아니라
너라는 <말>과 잤기 때문이다.
―윤석산, 「말의 오두막집에서 1과 2」
‘현대인들은 말의 껍데기만 가지고 산다’라는 표현이 너무 설명적이다. 이 부분이 마음에 걸리지만 먼저 원관념을 드러내놓지 않으면 뒷부분에서도 계속 설명하려고 할 것 같아서 아예 확 털어 놔버리고 그 다음부터 대상만 내세웠다.
활자의 배치를 삼각형 꼴로 만든 건 사랑하기 때문에 같이 잔 게 아니라 사랑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같이 잘 수밖에 없는 허무가 점점 늘어나는 걸 표현하기 위해서 이렇게 배치해 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