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을 걸은 지 언 20여년, 그 길에 아침 해와 저녁달과 이슬과 꽃이 있었고, 아픔과 눈물이 있었다.
언젠가 내가 죽는 날, 한 줌 유골을 저 산에 뿌리리라. 그 다음날, 소슬바람 불면, 새들이 찾아와 목청 껏 울고, 노정의 흰구름도 머무리라.
저 크고 너그러운 덕목 앞에 서면 오늘도 나는 생의 고뇌苦惱를 잊은 채, 세상에서 가장 편한 사람이 된다.
그러나 산은 자신을 넘어서려는 인간에게 절대 관대하지 않다. 내려가라! 내려가라! 한다. 자신의 말을 거역할 땐 극심한 고통을 준다. 산이 높을수록 노골적인 노여움은 더욱 심해져, 때론 인간의 목숨을 저버린다. 이처럼 산은 야누스의 두 얼굴을 갖고 있다. 그것은 山이 하늘(天)을 잇는 지상 최고의 존엄성을 지닌 지존이기 때문일 터.
이곳 의상능선은 북한산 봉우리 중 걸어서 갈 수 있는 가장 험준하면서도 최고의 백미로 꼽히는 코스다. 초보 산행자들은 산행 중 사지가 아파서 중도에 포기를 하거나, 완주하면 두고두고 잊지 못할 산행으로 각인 된다.
사는 게 가팔라 힘에 부칠 때면, 나는 삶만큼 가파른 이 능선에 올라 내 육신을 토해내며, 속을 씻었다.
그리곤 흐트러진 내면의 끈을 다시 조여 맸다.
코가 닿을 듯 벌떡 선 비탈 능선에 거칠어지는 숨을 가다듬어야 할 때 쯤, 토끼바위가 나타난다. 산은 탁 트인 일망무제의 풍경과 줄기줄기 푸른 바람을 선물로 건넨다.
어느 여성 산객이 의상봉을 향해 꽃잎 밟듯 오른다. 저무는 세월이건만 매혹적인 여인이었다.
의상봉 못 미친 곳에 한 그루의 소나무가 목마른 바위를 절박하게 움켜 쥐고 있다. 무릇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生과 命의 본질은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제 이해의 끈이 닿는다.
이곳이 의상봉義湘峰이다. 의상능선의 출발점이 된다. 남쪽의 용출봉~용혈봉~증취봉~나월봉~상원봉~나한봉을 거쳐 문수봉까지 이어진다. 신라 고승 의상義湘이 이 능선에 수도하며 머물렀다 하여, 그 이름이 유래한다.
의상능선에서 바라본 용출봉龍出峰이다. 생사를 초월한 성자 나한羅漢이 어느 날 갑자기 성스러운 나월羅月로 변한 뒤, 꿈틀거리는 용(龍穴)이 되어, 승천한 용출봉龍出峰이다. 비룡飛龍을 필두로 의상능선이 험준한 산세로 솟구친다.
어느 해 늦가을, 하얀 구름같은 백운대에 올랐다가 웅혼한 기세의 의상능선에 넋을 잃고 도취되었다. 그날 절묘하게 펼쳐지는 능선 위로 일찍이 듣도 보도 못한 풍광이 아득했다.
이윽고 용출봉龍出峰이다. 의상능선의 두 번째 봉우리다. 무시무시한 용龍이 발톱을 세워 불을 뿜으며 승천昇天한 자리다.
용출봉龍出峰에서 돌아본 의상봉이다. 신라 의상義湘이 집대성한 화엄사상은 ‘하나가 일체요, 일체가 곧 하나’여서 우주 만물이 서로 통하여 무한한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 화엄사상은 경북 청송 주왕산 대전사 빗돌에도 음각되어 있다.
용출봉에서 가야 할 의상능선을 바라보니 험준한 암릉이 굽이친다. 맨앞 봉우리가 용혈봉龍穴峰이며 그 뒤가 증취봉, 나월봉이다. 용혈봉은 성좌 나월羅月이 승천을 꿈꾸다가, 어느 날 용龍으로 변한 봉우리다.
용혈봉을 항하며 한 굽이 내려서자 ‘자명해인대紫明海印臺’라는 음각된 직벽을 만난다. 자명은 산자수명山紫水明, 해인은 화엄경의 해인삼매海印三昧에서 따온 말로, 아름다운 경치를 관조하며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곳 이라는 뜻이다. 저멀리 응봉능선 너머 일대가 은평구이다.
용혈봉으로 향하는 길목에 만난 물개바위다.
이곳이 성좌 나월羅月이 비상을 꿈꾸다가 꿈틀거리는 용龍으로 변한 용혈봉이다.
용혈봉龍穴峰에서 돌아본 용출봉과 의상봉
험한 암릉을 오르락 내리락 하니 드디어 증취봉甑炊峰에 이른다. 의상능선의 한가운데 험준한 등줄기를 이루는 용출봉, 용혈봉, 증취봉은 의상능선의 ‘백미’로 꼽힐 정도로 아름다운 암릉미를 자랑하는 삼연봉이다.
이날은 시계가 매우 좋았다. 증취봉에서 북녁을 보니, 경기도 파주 너머 북한 계성의 송학산이 우련하다.
증취봉에서 급경사를 내려서자, 성량지 알림판이 있다. 성량지는 성곽에 딸린 초소 건물이자 병사들의 숙소가 있던 터다. 북한산성에는 성량지가 143개소 있었다고 한다.
다시 걸음을 재촉하여 저멀리 비스듬이 솟구친 나월봉羅月峰으로 향한다. 생사를 초월한 성자 나한羅漢이 어느 날 갑자기 성스러운 나월羅月로 변한 봉우리다.
나월봉을 오르며 뒤돌아 보니 의상봉. 용출봉, 용혈봉, 증취봉의 솟구친 암봉들이 산자수려하다.
나월봉에서 바라보는 북한산 풍광은 자고로 최고의 '백미'다. 우윳빛과 회색빛의 거대한 암봉으로 치솟은 능선들이 석룡石龍으로 깨어난 듯 신화처럼, 전설처럼 웅장한 성채를 드러낸다. 어느 해 늦가을, 절묘하게 펼쳐지던 능선 위로 일찍이 듣도 보도 못한 아득했던 그날의 풍광이 오버랩 된다.
나월봉 서쪽으로 펼쳐지는 비봉능선이다. 앞쪽부터 승가대 사모바위 비봉 향로봉 족두리봉이 유려한 능선미를 이루고, 저멀리 아련한 한강이 서울을 휘돌아 흐른다.
나월봉은 현재 출입이 금지된 봉우리다. 나는 월담을 한 것이다. 이럴 땐 나도 간이 큰 편인데, 그곳 봉우리엔 나 보다 더 큰 간을 가진 이가 이미 자리를 펴고 있었다. 깡마른 체구의 사나이가 한 뼘 남짓한 아슬아슬한 봉우리에 걸터 앉아, 컵라면으로 식사를 하고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위태로웠다. 공연히 염려되어 '괜찮아요' 했더니, 허! 허! 웃는다. 정말이지 간이 큰 사람이었다. 아래를 내려보니 천길 벼랑에 현기증이 일었다. 그곳에서 간 큰 양반의 사진 한 장 남겨 드리고, 나한봉으로 향한다.
까다로운 오르막이 덮쳐오는 암릉을 조심스레 오르자 나한봉 정상이다. 이곳이 북한산성 치성(雉城, 성벽에서 돌출시켜 쌓은 성벽)이다. 산성길 따라 흐르는 역사의 흔적과 백학이 비상하는 도심 도심의 눈부신 풍경은 현대와 과거가 공존하는 시간을 보여 준다.
나한봉을 뒤로하고 상원봉으로 향한다.
상원봉에 서서 지나온 의상능선을 굽어본다. 능선의 유려한 허리를 딛고 서 있는 각각의 봉우리는 역린의 비늘인 양 날카롭고 수려하다.
저 절박한 벼랑 끝에 메뚜기처럼 서 있는 저 산객도 간 큰 사람이었다. 문수봉 가는 길은 크고 작은 돌들이 울퉁불퉁 난폭하게 쌓여 있다. 벼랑 밑이니 경사도 가파르다.
드디어 문수봉 정상에 발을 딛는다. 이곳이 의상능선 여정의 종착지다.
문수봉에 오르면 종로구와 중구, 은평구 일대가 바로 눈앞이고, 한수 이북 강북과 강남을 사이에 두고 한강의 젖줄이 서울 도심부를 휘돌아 흐른다. 이곳이 진정한 서울 조망의 으뜸인 봉우리라 할 만하다.
문수봉에 서니 보현봉이 눈앞이다. 저 보현봉은 북한산 사자능선 상에 우뚝 솟아 있다. 아래쪽 기와로 덮힌 지붕은 문수봉이 품고 있는 문수사文殊寺다.
문수봉을 뒤로 하고 대남문에 이른다. 북한산 16성문 중 여덟 번째 문이다. 이곳에서 종로구 구기동으로 하산길에 든다.
하산길에 문수사 석굴암자에 들려 푸른 물빛 도는 석간수 한 병을 담아 배낭에 넣는다.
이윽고 구기동 산성탐방지원센터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광화문까지 걸음을 다시 잇는다. 뒷굽에 연기가 나는 줄도 모르채 목적지에 이르니 23km의 여정길. 얼굴과 옷엔 하얀 결정체들이 얼룩처럼 번져 있었다. 소금가루였다. 감사합니다.
북한산의 백미 의상능선 길에서, 2022.08월 석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