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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의 서부 대장정을 향하여 |
우리 가족이 미국에 온 것은 2002년 12월이었지만 6개월이 넘도록 세 살 짜리 꼬마 경태가 있고, 큰 딸 은우가 학교에 간다는 이유로 장거리 여행을 못했던 우리는 드디어 8월 방학을 하고 나서야 미국 서부를 종단하기로 했다. 약 4주에 걸쳐 서해안을 따라 샌프란시스코, 시애틀을 거쳐 캐나다 벤쿠버까지 올라가 우리부 후배를 만나, 빅토리아 섬에 갔다가 동쪽으로 이동하여 록키산맥과 옐로우스톤, 솔트레이크 시티, 요세미티, 킹스캐년을 돌아올 계획이었다. 물론 지도 몇 장 뿐 구체적인 예약을 않고 큰 틀의 구상만 가지고 먹고 입을 것만 잔뜩 차에 싣고 숙소 등은 현지에서 부딪쳐 해결해 나가기로 했다. 우선 샌프란시스코까지는 문화부 직원가족과 하기로 하고 8월 3일 아침 샌디에고를 떠나 북쪽을 향하여 장도에 올랐다.
첫날은 L.A 위쪽에 있는 산타바바라에 가서 캘리포니아 지역을 먼저 점령한 스페인사람들이 건설한 푸에블로(타운), 미션(성당), 프레지오(요새)를 보고 나서 포도주 양조장에 갔다. 넓은 포도밭에 Visitor Center가 있고 포도주를 5불을 내고 시음하거나, 구입하면 무료로 시음할 수 있었다. 다시 솔뱅(Solvang)이라는 덴마크 풍의 마을에 갔다. 먼저 갔다 온 사람들이 볼만하다고 해서 기대를 했었는데, 말이 끄는 마차대신 자전거를 타고 시내를 관광하는 정도가 특이했다. San Luis Obispo로 가서 숙소를 정하고 쉬었다.
둘째 날은 늦은 아침을 먹고, Morro Rock에 갔다가, 가까이 있는 자연사박물관에 갔다. 이 지역의 자연사, 특히 해양과 관련한 동물, 식물, 자연현상을 관찰할 수 있었고, 시뮬레이션도 할 수 있어 자연학습에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후에는 언론재벌이었던 Hearst라는 사람이 수십 년간 지었다는 Hearst Castle에 갔다. 이집트, 그리스, 중국, 인도 등 세계 각지에서 좋다는 식물과 동물과 건축재료를 가져다가 화려하게 지은 엄청 크고 호화스러운 성인데, 바깥 분위기는 한국의 외도와 비슷한 느낌이고, 안은 그저 유럽의 궁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나와 몬트레이의 환상적인 17마일의 드라이브 코스를 갔는데 시간이 없어 주요 포인트만 돌고 숙소를 찾았는데 마땅한 곳이 없어 한참을 헤매었다.
셋째 날, Monterey를 다시 드라이브하고, 분노의 포도, 에덴의 동쪽을 쓴 존 스타인벡의 작품무대라는 까나리 로우(Cannery Row)에 들렀다가, 그의 고향인 Salinas에 가기로 했다. 국립 스타인벡 센터(National Steinbeck Center)는 작가의 세계와 작품에 대하여 잘 구성하여 놓았고, 은우는 문제지를 받아 감상하면서 다 풀면 상품을 준다고 해서 나도 도와주었지만, 다 못풀었는 데도 외국인이라고 연필을 상품으로 주었다. 특이한 점은 스타인 벡이 타던 말 수레, 침대 등을 만지고 타볼 수도 있어 경태는 신이나 했다. 늦게 샌프란시스코에 가서 숙소를 정했다.
넷째 날은 애들한테 학문에 대한 꿈을 심어주자는 의미로 유명하다는 버클리와 스탠포드 대학을 가기로 했다. 먼저, 오클랜드박물관에 갔는데, 오클랜드 박물관은 종합 박물관으로서 캘리포니아 역사, 자연사, 미술관 등 3개관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버클리대 캠퍼스에서 점심을 먹고, 교정을 둘러본 뒤 산호세의 스탠포드 대학으로 갔다. 교내를 돌며 사진도 찍고, 은우에게 좋은 학교라고 설명해주기도 했지만 별로 관심이 없었다. 나중에 이 학교로 유학오라고 했더니, 이보다 더 좋은 하버드대를 가겠다면서 싫다고 했다. 돌아오면서 무엇을 느꼈느냐고 물었더니 별 생각이 없었고, 무슨 학교였는지도 잘 몰랐다. 이건 부모의 욕심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우리는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를 거쳐 북쪽으로 가는 중에 경태가 차안에서 돌아다니는 것을 본 여자 운전자가 손으로 신호를 하길래, 무언가 했더니 카시트에 앉히지 않으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휴대폰을 꺼내들어 얼른 앉히고 미안하다고 했다. 불길한 징조였다. 금문교를 지나 101번 도로를 따라 북으로 쉬지 않고 달렸다. 1시가 넘어 유레카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북쪽 Crescent City로 향하는데 300마일 이상을 운전하니 너무 피곤하여 집사람과 운전을 교대했다. 그러자 경태가 아빠보고 "비(비켜), 비", 하면서 아빠를 밀쳐내 뒷자리로 가도 계속 울면서 나보고 앞 운전석으로 가라고 했다. 할 수 없이 15분만에 다시 운전을 내가 하게 되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면, 경태가 무언가 예감이 있었던 것 같다. 엄마가 운전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다시 한참을 운전하다 4시 반경 교대하고 경태가 울지 못하게 은우보고 경태와 놀아주라고 하고, 나는 맨 뒷 좌석에서 누워 쉬고 있었다. 원래는 길에 차를 대놓고 쉬어야 했지만, 금요일까지 시애틀에 가야한다는 생각에 집사람보고 운전을 하라고 했다. 집사람은 별로 운전을 하고 싶어하지는 않았는데 내가 너무 피곤해하니 어쩔 수 없이 운전을 하게 되었다. 역시 경태는 또다시 아빠보고 앞으로 가라고 울고불고 했는데 무시하고 은우에게 보라고 했다. 은우는 경태의 관심을 끌기 위해 여러 가지 말과 행동을 해야 했고, 제 엄마와도 말을 많이 했다. 엄마는 운전을 하면서 경태의 태도에 신경이 쓰였고, 특히 안전벨트를 풀고 나오려고 해서 못하게 하다가 하도 울어 은우가 경태의 안전벨트를 풀어주었다. 시간은 흘러 5시가 되어 가고, 이 여행의 종지부를 찍어야 하는 운명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2. 교통사고로 끝난 대장정의 꿈 |
샌프란시스코까지는 잘 여행하였고, 다음날까지 시애틀에 있는 친구 집에 가야한다는 생각에 서두르고 있었다. 집사람이 40여분 운전을 했을까, 잠시 은우와 집사람이 나누는 대화가 들리더니, 갑자기 차가 덜컹거리며 "어, 어" 하는 비명과 함께 우당탕 퉁탕, 꽝! 우리 모두는 나동그라졌다. 맨 뒷좌석에 누워있던 나는 "뭐야? 뭐야?" 하면서 일어났지만 이미 상황은 최악으로 끝나 있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차는 내리막 커브에서 통제가 안되면서 브레이크를 밟아도 멈추지 않자, 마주 오는 차량과의 충돌을 피해 언덕을 들이받고는 옆으로 쓰러져 밀려나갔다. 에어백이 터지고, 차안의 물건들이 나뒹굴어 엉망인데 차안은 에어백 가스로 가득 차 잘 보이지도 않았다. 처음엔 불이 난 줄 알고, 차안에 가져가고 있는 2박스의 부탄가스 생각에 섬뜩한 생각이 들었다. 차가 쓰러지면서 머리가 땅으로 처박힌 나는 큰 부상이 없어서 몸을 틀어 일어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경태는 의자 밑으로 떨어져 울어대고, 은우는 그 와중에도 "난 괜찮아, 경태야 괜찮니?" 하면서 동생을 먼저 걱정을 하고, 아내는 신음을 하면서 "경태야 괜찮아" 하면서 " 은우야 너는?" 하고 물었다.
차가 멈춘 후, 은우가 경태를 감싸 안았지만, 경태는 여전히 울고 있었고, 내가 앞으로 움직여 나가면서 차 문을 열려고 해도 열리지가 않았다. 우선 경태를 일으키고, 집사람의 안전벨트를 풀어 간신히 일으키고 문을 다시 열려고 시도했다. 이때 가던 차량들이 멈춰 서서 우리를 구조하려고 도와주었는데, 그들의 도움을 받아 겨우 앞문을 열 수 있었다. 화재가 나면 끝장이라는 생각에 어서 차를 빠져 나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우선, 차안에 짐이 많아 문이 열려도 나오기가 쉽지 않았다. 먼저 경태를 들어올려 내보내고 밖에서 사람들이 받았다. 다음으로 은우를 내보내고, 그 다음엔 집사람을 안아 내보내는데 누구 피인지 손에 묻어 났다. 마지막으로 내가 겨우 빠져 나왔는데, 밖에선 여럿이 우리를 도와주려고 했다. 4-5대가 멈춰 서서는 헌신적으로 도와준 덕분에 바로 진정되었다. 그 중 한 사람은 핸드폰으로 911에 신고를 해주고 앰뷸런스가 필요하다고 했다. 다른 한 가족은 남자가 간호사였는데, 응급약품을 가지고 와서는 우리를 일일이 체크하면서 뼈가 다치지 않았나 확인하고, 피가 흐르는 곳을 지혈시키고 붕대로 감싸주었다. 또 산길이고 저녁이라 싸늘해지자 추워 보이는 우리에게 커다란 타월을 뒤집어 씌워주고, 한 여자는 자기 스웨터를 벗어 집사람에게 입혀주었다.
경태는 앞으로 턱이 부딪쳐 입안이 터지고 잇몸 사이에서 피가 나와 이가 부러지거나 상한 게 아닌가 걱정이 되었다. 은우는 앞으로 쏠리면서 카시트를 붙잡아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카시트에 옆구리와 등을 심하게 긁혀 피가 흐르고 있었다. 운전을 했던 아내는 차가 쓰러지면서 옆 유리창이 깨져 왼팔이 온통 피투성이가 되었고, 팔꿈치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나는 왼쪽 어깨를 심하게 부딪쳤지만, 큰 이상이 없는 것 같아 괜찮다고 했다. 생각보다 우리의 부상이 심하지 않은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다들 우리를 보고는 기적이라고 했다. 차가 저렇게 부서졌는데, 모두 나와서 서있을 수 있고, 심한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도 없으니......한 할머니는 우리 손을 꼭 잡고, 행운이라며 안타까워했다. 10여분이 지나서 경찰관이 왔고,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먼저 우리의 인적 사항과 당시 상황을 물었다. 차에서 가지고 나온 것은 내 주머니에 넣은 지갑이 유일한 것이었다. 은우는 신발조차 신지 못하고 나왔다. 아내가 통제가 안돼 이렇게 됐다고 설명하고, 스피드 등을 물었는데 모른다고 했다. 내가 약간 보충하여 커브에서 통제를 못하여 발생한 것 같다고 했는데, 그는 우리를 분리하여 진술을 들었다. 잠시 후 앰뷸런스가 와서 은우와 아내, 경태가 탔다. 내게 경찰이 견인차와 갈 것인지, 앰뷸런스와 갈 것인지 물어 앰뷸런스와 가겠다고 했다.
우리는 Crescent City에 있는 Sutters Coast Hospital에 실려갔다. 도착하자마자 치료가 시작되었고, 은우가 무엇보다 가슴 한가운데가 숨쉴 때마다 고통스럽다고 하여 걱정이 되었는데, X-ray 결과 뼈에 이상은 없어 타박상인 듯 싶었다. 아내와 은우는 나란히 누워 치료를 받았는데, 우선 마취를 하고 흡입기로 상처부위를 빨아냈다. 유리조각이 박혀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치료과정에서 이들의 특이한 점은 우선 치료부터 하고 신원확인 등을 했다. 그리고 치료도 웃으면서 은우와는 한국말도 물어보고 농담도 해가면서, 용감한 소녀라고 칭찬도 하면서 전혀 거리감이나 두려움 없이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갔다. 여기서 입원하게 되면 어떻게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모두 뼈에 이상은 없었고, 경태의 치아도 이상이 없어 다행이었다. 치료하는 동안 경찰이 와서 사고신고와 보험사에 연락하도록 해서 간호사에 부탁해서 조치를 하고, 견인차량회사의 명함을 건네 받았다. 의사는 입원할 필요 없이 퇴원했다가 내일 오전에 다시 오라고 했다. 은우는 두 바늘을 꿰매고, 아내는 세 바늘을 꿰매는 치료가 끝날 즈음 우리를 치료했던 의사가 우리에게 어디서 머물 곳이 있는지 물어, 없다고 했더니, 직원에게 호텔을 잡아주고, 택시를 불러주라고 해서, 직원이 우리를 도와주었다. 병원을 나올 때, 은우는 옷이 피가 묻어 간호사가 웃옷을 하나 구해주었는데, 신발도 없다고 하자 어디서 두꺼운 양말을 구해 주며 신으라고 했다.
우리는 병원에서 불러준 택시를 타고 모텔에 오는 데, 어찌할 것인지 앞으로의 일이 막막했다. 모텔 옆의 레스트랑에 가서 이왕 이렇게 된 거 좋은 음식이나 먹자고 해서 시켰지만, 넘어가지가 않았고, 특히 경태는 배고플텐데 한 숟가락도 먹지 않았다. 그리고 "차!" 하면서 머리를 가리키고 "꽝!"하는 소리를 반복했다. 대단히 충격을 받은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혹시나 해서 남은 음식을 싸달라고 했지만, 끝내 먹지 못했다. 모텔은 깨끗하고, 바다가 보이는 좋은 곳이었지만, 우리는 서둘러 잠을 청했다. 마취가 깨면 아플 거라며, 진통제를 사서 먹으라고 했는데, 약국이 3마일은 가야 한다기에 포기하고, 모텔 카운터의 여직원한테 먹는 진통제를 한 알 것을 얻었다. 잠을 청했지만 모두들 잠을 못 이루고 뒤척이고 있었다. 나도 몹시 피곤했지만, 내일부터 어떻게 해야 할 지 걱정이 되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밤새 뒤척인 우리는 아침에 모텔에서 간단히 빵으로 아침을 때우고, 어제 그 택시를 불러 먼저 차량견인회사에 갔다. 차는 형편없이 부서져 있었다. 카메라와 중요한 물건만 몇 개 챙기고, 견인회사 직원이 택시를 이용하지 말고 차를 렌트하여 물건을 찾아가라고 해서 공항주변의 렌트 회사에 택시로 갔더니 주말이라서 밴은 커녕, 승용차도 한대 없다면서 다른 렌트카 회사를 알아봐 주었는데 역시 없어 포기하고 먼저 병원부터 가기로 했다. 다시 택시를 불러달라고 했더니, 렌트카 회사 여직원이 시내로 가는데 병원에 데려다 주겠다고 해서 겨우 10시 반에 병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병원에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는데 어제 우리를 치료해 준 의사가 안에 보여 불렀더니, 문을 열고 병실로 가라고 했다. 잠시 후에 간호사와 의사가 와서 치료를 하는데 잘 되었다며, 다시 붕대를 감고 치료는 끝났지만, 이제부터 어찌하나? 오늘 해결 못하면 내일은 토요일이어서 아무 것도 못할 것 같아 걱정이었다. 어찌되겠지 하며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기다리고 있는데, 이 절망적인 상황에 구원의 손길이 다가오고 있었다.
3. 잊을 수 없는 구원의 손길 |
어찌 돌아갈 것인가 하고 망연자실해 있는 우리에게 우리를 치료해 주었던 Dr. Jim이 다가와 어떻게 차를 빌렸느냐고 물어 못했다고 사실대로 말했더니, 잠시 난감한 표정으로 기다려보라고 하고는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에 자기 부인이 와서 도와줄 테니, 그 동안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라며, 간호사에게 안내해 주도록 했다. 구내식당에서도 먹을 맘이 안나 과자와 음료수를 사서 애들을 주고 기다렸다. 한참 후에 Dr. Jim이 부인을 소개해 주면서 도와줄 거라고 했다. Lynn(Jim의 부인)과 인사를 하고, Lynn과 견인회사에 가서 짐부터 찾아 정리하기로 했는데, 내가 승용차로는 부족하다고 했더니, Jim도 차를 가지고 따라 가겠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병원을 나섰는데, 한번 놀란 경태는 차를 타지 않으려고 울고불고 야단이었다. 어린애가 얼마나 충격이 컸으면 그럴까 하면서도 강제로 태우고 나니 마음이 아팠다.
우리가 Budget이라는 견인회사에 도착하자, 잠시 후 Jim도 왔다. Jim과 사무실 직원을 찾았지만 없었다. 차는 에어백이 터져 있었고, 바퀴는 두 개가 펑크나 있었고, 앞 유리창은 박살이 났으며, 왼쪽 옆은 넘어져 밀리면서 완전히 부서져 있었다. 우선 짐부터 챙기기로 했다. 부서진 차를 보자 마음이 착잡했는데, 경태는 우리 차를 보자, "카" 하면서 좋아했다. 차바퀴를 돌아가면서 만지고 하는 것을 보면서, 잠시 서글픈 생각에 잠기기도 했지만 그럴 여유도 없었다. 곧 우리는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먼저, 중요한 물건부터 챙겨 차에 옮겨 실었다. 아이스박스엔 호박 하나 만 덜렁 남아 있었다. 운전석 앞엔 깨지지 않은 달걀을 누군가 올려놓았다. 물 박스, 음료수, 아이스박스, 포도주, 옷 가방들, 신발들, 음식봉지들, 차안의 액세서리와 책들, 이불, 쿠션, 라면, 과자 등 구석구석 챙겨 넣은 짐들을 정리했다. 짐을 정리하면서, 사고현장을 수습하는 장면을 T.V에서 많이 봤지만, 내가 그러고 있을 줄이야. 나보다 Jim이 더 열심히 짐을 챙겨 차에 옮겨 실었다. 그 동안에 관리인이 와서 Claim 번호를 알려주고, 차에 타려는 순간 경태가 또다시 우리 차를 부르짖으며, Lynn의 차를 안타려고 몸부림을 치는데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그 동안 미국 와서 정들었던 Van이었는데, 머나먼 이 곳에 와서 사고를 내서 버리고 가야 하다니 마음이 착잡했다. 겨우 마음을 진정하고, 차를 타고 우리는 공항으로 향하고, Jim은 집으로 갔다. 공항에서 문제가 생겼다. 공항에 직원이 없어 4시쯤 샌프란시스코 행 비행기를 예약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Lynn이 예약을 원하며, 집으로 전화를 달라는 메모를 남기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해보니, 별장 같은 집으로 앞에 정원과 분수, 뒤에는 강물이 흐르고 목조 2층 건물이었는데 둘이 살고 있었고, 거실에는 자식과 손자손녀의 사진들이 즐비했다. 우선 비행기 시간 전에 가져갈 짐을 정리하여 싸기 시작했는데 Jim이 큰 가방과 박스 여러 개를 주었다. 그래서 우선 먹을 것 등 가져가기 곤란한 것은 놓고 가고, 급하지 않은 것은 박스에 담아 놓으면 우편으로 보내준다고 했다. 그래서 싼 짐이 가방 6개와 박스 3개였다. 잠시 후에 Lynn이 Crescent City 공항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오늘은 비행기표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겠느냐고 묻길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Jim이 여기서 하루를 자고 내일 유레카 공항으로 가서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를 타고, 거기서 샌디에고행으로 갈아타라고 했다. 대안이 없는 우리는 염치도 없이 고맙다고만 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짐을 차분히 정리하고 그 동안 Jim은 경태와 은우와 정원에서 놀아 주었으며, Lynn은 저녁을 준비했다.
저녁이 되자, Jim은 간단히 식사를 먼저 하고, 병원으로 갔다. 그는 외과의사였는데, 응급실 야간 담당의사였기 때문이다. 아마 이도 자원했을 것 같다. 그러니까 오늘 그는 낮에 집에서 쉬어야 하는데 우리를 위하여 조금도 못 쉬고 다시 병원에 간 것이었다. 그는 참 선한 인상이었고 자상함을 가지고 있었다. 가면서, 약과 치료에 필요한 것을 내일 아침 가져와 치료해 주겠다고 했다. 저녁을 빵과 케이크, 고기 등으로 먹고 있는데, 웬 건장한 청년 둘이 커다란 연어 한 마리를 들고 와 부엌에서 잘라 냉장고에 넣어 주고 갔는데, 그 들은 우리 사고현장을 보았다고 하면서 조심하라고 했다. 저녁을 먹으면서 은우가 얼마나 영어로 잘 떠들고 애교를 떠는지 Lynn이 반해서 좋아했고, 사운드 오브 뮤직의 "도레미" 송을 부르기도 했다. 사고 없이 이러한 시간을 가졌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저녁을 먹고, 은우는 흔들의자에 앉아 혼자 비디오 "라이언 킹"을 보았는데, 꼭 이 집주인의 딸 같았다. 경태는 바구니에 가득한 장난감과 차에 푹 빠져 이 것 저 것 가지고 놀고, 들고 다니기 바빴다. 모든 것을 가지고 놀게 하면서 꼭 갖고 싶은 건 가져도 좋다고 했다. 우리는 그 동안 밀린 빨래를 하기로 했다. 세탁기에 집어넣고 2층에서 쉬고 있는데, Lynn이 건조된 빨래를 개서 정리해 놓았고, 두꺼운 빨래는 내일 아침에 정리하라고 했다. 피곤한 우리는 2층에서 잠을 잤는데, 창 밖의 경치가 환상적이었다. 무슨 친척집에 온 것 같았다. 사고가 안나고 이런 집에 와서 쉬다 가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하면서 잠이 들었다. 아내는 통증이 심한지 두 시경에 깨어 진통제를 먹고 나서야 잠이 들었다.
다음날 상큼한 아침, 우리는 일찍 일어났지만, 무언가 실감이 나지 않았다. Lynn이 준비한 빵과 커피와 고기 등으로 아침을 먹고, 경태는 햇반과 김을 주어도 잘 먹지 않았다. 아마도 충격에서 못 벗어난 듯싶었다. 다시 짐을 정리하면서 냄새 때문에 김치를 버리기로 했는데, Lynn이 김치를 좋아한다고 해서 주었다. 그리고 라면도 좋아한다고 하면서 여기서는 사기가 어렵다고 해서 가지고 있는 라면을 다 내려놓았다. 잠시 후 Jim이 병원에서 왔는데, 가져온 약과 거즈 등으로 은우와 집사람을 치료해 주었고 Lynn이 옆에서 도와주었다. 그녀도 간호사 출신이었다. 그리고 거즈, 가위, 핀셋, 약품 등 우리가 병원에 안 가더라도 집에서 치료할 수 있도록 세트로 준비해 주었다. 그러면서 나한테 치료방법도 간단히 가르쳐 주었다.
Jim이 아침을 먹고는 우리와 공항 갈 시간 전까지 국립공원에 가서 산책을 하자고 했다. 차로 한 30마일을 가니 Stout State Park이 나왔는데 엄청 큰 Redwood가 빽빽했다. 산길을 따라 삼림욕을 하면서 걷는데, 그가 경태를 안고, 무등 태우고 하면서 나무와 경치 등을 우리에게 설명해 주었다. 꼭 경태의 할아버지 같은 모습이었다. 경태도 잘 따르고. 강가에 가서 납작한 돌을 주워 물수제비뜨기를 하며 놀았고, 그 와중에 경태는 물에 푹 빠져 신나게 놀았다. 은우는 Jim이 가르쳐 준대로 돌을 던져 두 번 이상 튀면, 엄청 칭찬을 해주고, 못해도 "Almost done"하면서 격려를 해 주었다. Jim이 직접 돌을 주워 주면서 여러 번 하게 해주었다. 나는 사진과 비디오를 찍으면서 소중한 기억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집으로 돌아오자, Lynn은 점심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공항에 갈 시간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점심은 우리를 위해 라면을 끊여 놓았다. 경태가 라면을 쪽 빨아먹는 모습을 보고 너무 신기해했다. 점심을 먹는 동안 Jim은 차에 카시트를 설치하고 짐을 싣고 있었다. 식사가 끝나고 AIG보험증서를 병원에 제출하는 것도 집에서 복사해서 내일 Jim이 병원에 제출키로 하고, 우리는 약국에 들러 바로 공항으로 가기로 했다. 그리고 약은 처방전을 받았지만 사지 못했기 때문에 그가 가져온 약을 먹고, 공항 갈 때 추가로 필요한 약을 살 수 있도록 약국에 전화를 해 주었다. 나중에 Lynn이 약국에 들렀을 때, 내가 따라가 계산하려고 하자, 차안에서 기다리라면서 "It's my pleasure." 했다. 염치없음이 계속되었다. 50마일을 달려 알카다 공항에 가는 도중에 Jim의 가족사에 관한 이야기, 주변 경치에 대한 이야기 등을 들었고, 울던 경태는 잠이 들었다. 공항에서 표를 사고, 짐을 부치고 보안검색을 하는 동안에도 Lynn은 혹시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까 우리를 지켜보았다. 보안 검색은 심지어 경태의 신발과 발바닥까지 조사를 했다. 헤어지면서 우리는 하나씩 포옹을 하고 비행기를 타러갔다.
샌프란시스코에 와서 불과 이틀 전에 이 곳에서 즐겁게 관광을 했었는데, 샌디에고행 비행기를 갈아타기 위해 2시간 반 동안 기다리며 여러 생각에 잠겼었다. 한 바탕 꿈을 꾸고 난 듯한 기분이었다. 밤 10시에 샌디에고에 도착하여 짐을 찾고,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오니 11시가 다되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았는데, 상처와 부서진 짐들과 빈 주차공간이 그 동안의 일들을 말해 주고 있었다. 비록 사고로 중단된 여행이었지만, 이번 사고를 통해서 우리는 가족애를 확인할 수 있었고, 대자연을 보면서 느꼈을 경외심보다도 따듯한 한 미국인 가정을 알게 된 것이 어쩌면 우리 인생에서 더 소중한 마음의 자산이 될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죽을 수도 있었던 상황에서, 크게 다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고, 고립무원의 상황에서 우리를 살펴 준 Jim & Lynn의 도움에 정말 감사하며, 그 들을 알게 된 것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상실해 가고 있는 인간에 대한 애정을 다시 느끼게 해 주었다. 다음날 아침 우리는 Lynn에게 전화를 해서 잘 도착했고, 고맙다고 인사했다. 그녀도 무사히 도착한 것을 기뻐하며 빨리 회복하기를 바란다고 했다. 우리는 계속 연락하며 좋은 친구처럼 지내기로 했고, 가능하면 한국에 방문해 달라고 했더니, 그러고 싶다고 했다. 그 후 은우와 Lynn은 마치 오랜 친구인 듯 서로 메일을 주고받고 있다.
4. 그 후의 이야기들 |
샌디에고로 돌아온 이후 나만 바빠졌다. 현주와 은우가 환자 신세고, 경태는 정신적 쇼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머리를 가리키며 여전히 "꽝"하는 소리를 낸다. 그러니 가사 일을 전담해야 하고, 경태도 돌보아야 하며, 사고처리도 해야 하니 정신이 없다. 화려한 여행을 꿈꾸며 기다려 왔던 8월을 이렇게 허무하게 보내게 되었다. Crescent City에서 돌아올 때, Jim이 집에서 치료할 수 있도록 거즈, 연고, 반창고, 패드, 탈지면, 의료가위, 핀셋, 가위 등 모든 것을 준비해 주었다. 그래서 그 것으로 치료를 해왔고, 올 때 약국에서 구해준 약을 먹었는데 문제가 생겼다. 약을 다 먹도록 완치가 안되고, Xeroform이라는 거즈가 떨어진 것이다. 그래서 Jim이 준 처방전을 가지고 약국에 가서 약을 샀는데, 의료보험이 안돼 무척 비쌌다. 그런데 문제는 Xeroform은 병원에서 쓴는 것으로 약국에는 없다는 것이었다. 여러 상가를 돌아도 구할 수가 없었다. 은우가 이런 사정을 메일로 Lynn에게 썼다. 수소문 끝에 의료기상사 같은 곳을 찾아 겨우 구했는데, 다음 날 Lynn에게서 Xeroform과 사진 몇 장을 택배로 받았다. 한 달이 지나서 병원에서 청구서가 날라 왔다. 앰뷸런스 비용이 250만원(1인당 750달러)이 넘었고, 병원비용도 300만원이 청구되었다. 어찌할 줄 몰라 보험사에 전화했지만 알아들을 수가 없어, 메일로 Lynn에게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했더니, Jim에게 물어 일단 보험사에서 받을 때까지 개인과 보험사에 동시 청구된다고 하면서 내지 말고 기다려보라고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계속 Lynn과 메일을 주고받으며 지내다가, 11월 Thanksgiving Day에 초대를 받아 가기로 했는데, 장소는 Jim의 모친이 사는 Santa Cruz에서 만나기로 했다. 선물로는 김치와 라면, 한국 기념품 몇 개, 한국 안내 책자와 내가 입던 개량한복을 가지고 가기로 했다. 샌디에고에서 산타크루즈까지는 약 500마일로 8-10시간이 소요될 것 같았다. 그래서 밤 12시에 떠나 아침에 도착하여 쉬기로 했는데, 준비하다 보니 새벽 1시에 떠나게 되었다. 밤새 운전을 하여 아침 11시에 산타 크루즈에 도착하여 산언덕에 있는 Jim의 부모 집에 갔다. 집을 찾아 들어가 차를 주차하는데, Jim이 집안을 정리하다가 우리를 발견하고는 놀라는 표정으로 반갑게 맞아 주었다. 잠시 후에 Lynn이 나와서 우리는 오랜만에 해후를 하면서 서로서로 Big Hug를 하였다. Lynn은 우리를 가족과 손님에게 소개하여 우리는 Jim의 아들들과 딸, Jim의 형제와 그 가족 등 미리 와있던 초대받은 사람들과 인사를 했다. 인사가 끝나자, Lynn이 집안을 돌며 안내해 주었다. 2층으로 된 목조건물이었는데 무척 넓고, 정원과 분수도 있고, 집안 곳곳에 삶의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지금은 Jim의 어머니 혼자 살고 있고 27년 전에 Redwood를 가져다가 지었다고 했다. 경태는 신이나 뛰어다니고, 또래 애가 하나 있었는데 같이 분수대 앞에서 차를 가지고 놀다 빠뜨리고 꺼내고 하면서 옷을 다 적셨다. 말린다고 될 아이도 아니고, Jim이 데리고 다니며 같이 놀아 주었다. 나보고는 밤새 운전하느라 피곤할테니 파티가 시작될 때까지 방에서 쉬라고 했다. 그래서 못이기는 척하고 들어가 침대에 누워있었다. 은우는 Sarah와 Margo가 비슷한 또래여서 같이 어울려 놀았다. 은우와 경태를 위해 Jim가족은 장난감과 인형을 사왔다. 너구리 인형을 받은 은우는 좋아서 종일 안고 다녔다. 경태는 장난감 차를 여러 개 받아 신이 났다.
사람들이 다 모이자, 1시부터 파티를 시작하였고, 모두 가슴에 Name tag를 달았다. 사실 파티에 정장을 하는 분위기면 우리도 한복을 입기로 하고 가져왔는데, 복장은 비교적 캐주얼하게 입고 있어 우리도 편하게 있다가 밥을 먹고 나서 한복을 입기로 했다. 모두 모이라고 해서 거실에 둥글게 둘러서자 한 50명은 넘어 보였다. 죽 둘러서서 오늘의 호스트인 Jim의 어머니 Mildred가 사회를 보고 Jim이 도와주었다. 호스트가 뭐라고 하자 오른쪽으로 죽 돌아가면서 자기 소개와 무엇에 대해 감사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했다. 호스트의 왼쪽 옆에 있어서 거의 끝 무렵에 우리도 소개하고 초대해주어서 감사하다고 했다. 은우도 샌디에고에 살고 있고, 무엇보다 Jim과 Lynn을 다시 만나 기쁘고 감사하다고 했다. 나도 한국에서 왔고 지난 여름 휴가 때 여행 중 사고를 당해 Jim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고, 여러 가지 도움을 받았으며,, 그 후 연락을 하고 지내다가 오늘 초대해주어서 여기에 왔는데, 정말 감사하고 다음 Thanksgiving Day에는 한국에서 만났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겨우 마치자, Lynn이 잘 했다고 했다. 잠시 후에 몇 사람이 Thanksgiving에 대한 유래와 에피소드, 감사기도문 같은 것을 읽었는데 이들은 사전에 호스트에게 이야기한 것 같았다. 끝으로 애들이 노래하고, 한 가족이 합창을 하기도 했다. 노래가 끝나자 마지막으로 기도를 하고 식사를 시작하였다.
식사는 뷔페로 차려놓고, 돌아가면서 가져다가 먹으며 이야기하는데, 우리가 김치를 가져왔는데 뷔페음식 옆에 놓아두면 어떻겠냐고 했더니 좋다고 해서 샐러드 옆에 놓아두었더니 여러 사람이 맛보고 가져가는 걸보고 김치도 이제 세계적인 식품이 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칠면조 요리가 있어 가져와 먹어보았는데 닭고기와 비슷하고 더 퍽퍽한 느낌이었다. 애들은 잘 먹고, 나는 연어 등 생선을 주로 가져다 먹었다. 한 두 시간 지나자 메뉴가 과일, 커피, 음료수, 케잌, 아이스크림 등으로 바뀌었다. 대충 식사가 끝나자, 우리는 방에 들어가 한복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경태가 먼저 나가 사람들이 보고 탄성을 질렀다. 잠시 후 우리는 함께 나와 한국에서는 Thanksgiving Day에 이 옷을 입는다고 설명해주고, 은우가 영어노래를 하나 하고, 우리 가족 모두 아리랑을 합창했다. 노래가 끝나자 박수가 터지고......근데 잠시 후에 호스트인 Mildred가 보지 못했다고 다시 불러 달라고 해서 우리는 또 아리랑을 불러야 했다. 그리고 나서 한복을 입은 은우와 경태가 귀엽다고 서로 사진을 찍자고 해서 여러 차례 함께 사진을 찍어 주었다. 이렇게 해서 파티는 거의 끝났다. 우리가 와서 올해는 좀 색다른 파티가 되었다고 했는데 사실은 Jim의 둘째 아들이 약혼녀를 데려와서 소개했고, 그 부모도 와 있어서 그들이 오늘의 주인공이 되어야 했는데 우리 은우가 주인공이 되어 버린 것 같았다. 잠시 후에 우리가 가져온 선물을 주었다. 먼저 Jim에게 내가 딱 2번 입었던 개량한복을 주고 입어보라고 했더니 방에 들어가 입고 나왔는데 좀 작아 떠름하기는 했지만, 그는 무척 편하고 촉감이 좋다며 다른 외국사람한테 만져보라고 하면서 어린애처럼 좋아했다. 내가 이런 옷은 주로 명상을 하거나 할 때 좋다고 했더니 머리가 혼돈스러울 때 입겠다고 하면서 병원에도 입고 가겠다고 했다. 너무 좋아해서 우리가 오히려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Lynn에게는 한국에서 가져온 'Explore Korea'라는 영문 한국소개 책자를 주었는데 너무 좋아하며 공부해서 한국에 꼭 오겠다고 했다. Jim의 어머니에게는 조그만 하회탈을 주었고, 예비신부 Cindy에게는 조그만 한국의 신랑신부 인형을 주면서, 이 것을 지니고 있으면 잘 산다고 했더니 역시 좋아했다. 작은 것에 너무 좋아하고, 특히 Jim은 몇 번이나 고맙다며 잡 입겠다고 했다. 다섯 시쯤 되자 우리는 음식을 다시 한번 가져다가 먹고 Ranch(별장)에 간다고 했다.
가야할 손님이 가고 나서 머물 사람은 40분 정도 걸리는 Ranch로 갔다. 길을 잠 몰라 Jim이 우리 차에 타고, 은우가 Lynn의 차에 타고 갔다. 생각보다는 꽤 먼 거리였고, 사설도로로 진입하니 문이 있었고 한 1마일은 가니까 Ranch가 나았다. 우선 센터의 Ranch에 들러 오래된 물건부터 첨단의 것들까지 다양하게 있었다. 평소에는 사람이 살지 않고 주로 Guest House로 쓴다고 했다. 개도 세 마리나 있고, 야생 오리, 말, 과수원 등도 있어 관리인이 없이 어떻게 해나가나 싶었다. 숙소 Ranch를 배정했는데 우리는 메인 Ranch에서 가장 가까운 곳을 주고, 먼 곳은 Jim의 아들들이 갔다. 우리 Ranch에 둘째 아들이 와서 벽난로에 장작불을 붙여놓고, 맥주 한 병을 건네주고는 갔다. 신부의 부모와 Jim부부는 Main Ranch에서 머물렀다. 나는 피곤하기도 하고, 자고 있는 경태를 돌보느라고 우리 Ranch에서 머물렀고, 모두들 Main Ranch에 모여 먹고 함께 놀았다. 은우가 Ginger Game을 돌아가면서 하면서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 Main Ranch로 데리고 갔더니 Jim이 보살펴 주었다. 아침 내내 숲속을 돌며 예전에 벌목에 쓰던 차량, 연장 등을 설명해주며, 그 중 하나는 1920년대 발동기가 있었는데 지금도 작동이 된다고 했다. 아침을 먹고 우리는 증기기관차를 보러 갔다. 아마도 레드우드 벌목사업이 활발할 때, 수송을 했던 역을 이제는 관광지로 개발하여 옛날 학교, 대장간, 염색공장 등이 있고, 레드우드 사이로 산책로를 만들어 놓았으며, 거기에는 2000년된 Redwood의 단면을 짤라 나이테에 연도를 표시하여 전시해 놓기도 했다. 잠시 기다려 증기기관차가 도착하자, 경태가 평소 '추추푸푸'하며 기차를 좋아했는데 실제보고는 너무 좋아했다. 시간이 없어서 기차를 타지는 못하고 돌아오는데 경태가 못내 아쉬워 되돌아보며 안 오려고 해서 애를 먹었다. 다시 Ranch로 돌아와 불을 피우고 저녁을 먹고 나서 함께 놀았다. 자고 나니 토요일이었다. Jim도 오늘 떠난다고 하면서 우리가 원하면 더 머물라고 했지만, 우리도 내려가면서 관광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점심때쯤 떠나기로 했다. 오전에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주변을 Jim과 돌며 놀았고, Jim이 우리 먹으라고 사과를 따주었다. 경태는 저하고 눈높이를 맞춰 놀아주는 Jim에게 '아찌, 컴' 하면서 따라다녔고, Jim이 아찌가 뭐냐고 해서 Uncle이라고 말해 주었다. 드디어 우리의 두 번째 만남도 헤어져야 하는 시간이 왔다. 우리는 서로 안고는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못내 아쉬운 마음으로 Ranch를 떠나 샌디에고로 돌아왔다.
Thanksgiving Day에 재회를 한 후에도 Jim과 Lynn은 우리에게 끊임없는 관심을 보여주었다. 메일을 주고받으면서, Lynn이 우리에게 작은 선물을 보냈다고 했다. 며칠 후 우리는 Rainbow Maker라는 수정같이 생긴 것을 받았는데, 우리가 여름에 Jim의 집에 머물 때 거실에 무지개가 떠다니는데, 무엇인가 했더니 Jim이 설명을 해주는데 창가에 달아놓은 보석에 햇빛이 통과하면 무지개가 생기고, 바람에 보석이 움직이면 무지개도 움직여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해 주었다. 한국 집에 달아 놓으면 언제나 그들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것이 끝이 아니었다. 미국을 떠나기 전날 마지막으로 우편함을 확인하는데, 소포가 와 있다고 해서 Office에서 받아보니 Lynn이 보낸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카드에는 우리가 준 한국 차를 마시며, 우리 생각도 하고, 우리가 준 한국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한국을 방문할 꿈을 키우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지난 Thanksgiving 파티에서 우리의 한복이 너무 인상적이었다며, 그 때 찍은 사진도 보내 주었다. 선물은 무엇일까? 카드에 크리스마스 날 아침에 열어보라고 해서 그렇게 하기로 하고 다시 선물박스를 포장했다. 서울에 도착해서 풀어보며 우리는 Surprise하겠지 하면서 귀국 길에 올랐다. 천사 같은 사람들. 지금도 우리는 메일로 연락을 하며, 내년 봄에 한국을 방문하기로 했다. 천사 같은 사람들. 내년 봄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