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파프리카에게Ⅱ
내겐 파프리카 색 같은
빨강색 치마도 있고
노랑색, 초록색 치마도 있다.
어른이 되고 거의 평생을 라운드 면 티에
밴딩 치마나 허리를 끈으로 묶는 랩치마를 즐겨 입었고
롱치마 위에 아주 얇은 꽃무늬 스카프도
인도 여자처럼, 치마 히잡처럼 꽤 오래 두르고 다녔다.
딱 떨어지는 정장은 한 개도 없다.
취향이 그 사람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즐겨 입은 옷의 스타일은 정체성의 일부이지는 않을까
저절로 취향이 만들어졌다.
자잘한 꽃무늬를 좋아하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심플한 여성스러움이 좋은 것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그냥 좋은 것이다.
출퇴근하지 않는 삶을 살면서
매일매일 입던 옷을 거의 입지 않았다.
때로 당근에 내다 팔았지만
면 티들은 죄다 이삼천원짜리 저렴이들이라 못 팔고
치마는 내가 뜯어고친 게 많고
내 눈에 이뻐서 그냥 가지고 있고 싶어서 못 팔았다.
그래도 몇 개는 팔았고 팔렸다.
어둑하고 습습한 옷장에서
옷들끼리 몸을 포개고 뒤섞이며 서로의 온기를 나워 가진 채
나처럼 폭폭하게 늙어가고 있다.
파프리카로 시작해서 오늘도 결론은 늙음!
2022.08. 캔버스에 아크릴. 16*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