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서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여러 경전들이 있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해석하는 설일체유부의 관점과 대승중관 유식의 관점이 각기 다르듯이
명리도 시대에 따라 그 관법이 바뀌어 왔습니다.
즉 중요하게 보는 관점들이 있었습니다.
당나라 이전에는
춘추전국시대 낙록자의 삼명소식부, 곽박의 옥조신응진경이라는
현재 사주팔자의 틀을 형성했던 책들이 있었고 이것이 모태가 됩니다.
이때는 납음오행등
현장에서 활용되던 각종 신살류등을 책으로 처음 기술하던 시기입니다.
당나라 시대에 와서 이것이 이허중이라는 사람에 의해 이허중명서라는 책으로 정리가 됩니다.
다만 이허중명서의 관점은 현재 일간과 일주(생일)를 중심으로는 보는 것과 달리
연주(생년)를 중심으로 사주를 보게 됩니다. 이때 일주는 연주를 보조하는 개념이었습니다.
이허중 이전에는 사주라는 틀도 제대로 형성되지 못했고
그저 신살류위주의 관점뿐이었지만
이허중이후에 사주라고 하는 여덟글자의 배치와
그 안에서 "나"를 상징하는 글자와 그 외부의 관계를 설정하는 개념으로 확장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현재까지 그 영향력을 지대하게 미쳤던
사주명리의 고전중에 핵심고전인 "연해자평(1634년) "이라는 책의
중심이 되는 이론을 서자평(1253년)이라는 사람이 집대성하게 됩니다.
서자평이 연해자평을 직접 편찬하지는 않았으나 서자평은 이허중의 이론 및
그 이전의 이론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게 됩니다.
그의 이론을 후대 사람들이 책으로 엮은것이 바로 연해자평입니다.
불교의 아함경이라 이해하시면 됩니다.
당나라때의 연해자평에서는
신살류를 분류하고 적극활용하였습니다.
다만 청운스님의 말씀처럼 신살(살풀이)만을 취하지는 않았습니다.
연해자평은 그 이론이 굉장히 다채롭고 현재에도 상당부분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원나라 말기 명나라 초기에는 "유기(백온)"라는 사람에 의해
명리의 또 다른 핵심고전인 "적천수"가 등장하게 됩니다.
연해자평이 신살류를 적극 활용했던 것과 달리
적천수에서 유기는 신살류와 격국등의 이론들을 배제하고
오행의 생극제화를 중심으로 한 이론을 펼칩니다.
불교와 비교했을때 적천수는 아비달마 구사론정도의 지위라 할 수 있습니다.
매우 체계적으로 명리의 원리를 오행의 생극제화의 틀로써 해석한 것입니다.
즉 원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신살류를 "영향요계"라 하여 배척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적천수의 한계는 너무 "원리와 이론"에 치중한 나머지
그 활용도가 높았던 신살류를 배격했던 것입니다.
유기의 이러한 관점은 청나라때 임철초의 "적천수천미"로 증주가 됩니다.
임철초는 적천수천미에서 신살등의 활용에 대해 엄청난 비판을 합니다.
이러한 이론들은 그 후에 명리정종, 성학대성, 삼명통회, 궁통보감, 명리약언, 자평진전, 적천수천미, 적천수징의등
후학들이 첨삭하고 보완하여 여러가지 책들로 편찬됩니다.
이 책중에 중요한 것은 "궁통보감"입니다. 난강망이라는 이름의 이 궁통보감은
사주에 "조후"라는 개념을 넣는데 이것은 말 그대로 사주를
봄여름가을겨울의 계절적 환경으로 가늠하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현재 활용되고 있는 "용신"의 개념이 확립된 것은
1710년경에 편찬된 "자평진전"에 와서 입니다.
이렇듯 신살은 그 원리의 모호성과 이론의 정합성이 부족하기에
명나라때의 정통명리학자들로부터 비판받고 배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들 모두의 한계는 진리가 아니라
모두 규명되지 않는 이론들(그럴듯 하지만 항상 맞을 수 없다)일 뿐입니다.
따라서 그 어떤것을 활용해도 그나물에 그 밥입니다.
프로이드의 심리학이나 명리학이나 진리의 차원이 아닌
이론의 차원의 것들이기에 신살이건 정통명리이론이건 과학이건 심리학이건
좋은 마음가짐으로 신도들의 상담에 적합하다면 그 어떤것을 사용해도 무방하다는 생각입니다.
첫댓글 아 정말 고맙습니다. 스님은 우리 기수의 축복입니다 ㅎㅎㅎ
뭐 명리도 인간을 이해 하는데 참 유용한 부분이 있는것 같습니다. "살"의 본질이 뭐지? 뭐 이런 생각과 불교와 연관해서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 업과 연관 되는가 싶기도 하고 전생의 내 마음 같기도 하고 ^^
올해 누가 저보고 "귀문관살"이 있다고 해서 이젓 저것 읽어 보다 질문 드렸습니다. 고맙습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