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15일
그야말로 안 좋은 모습을 다 보여줬던 2019시즌을 뒤로 하고 롯데 자이언츠는 야심 찬 각오로 2020시즌을 맞이했다. 2019시즌 막판 공석이었던 단장 자리에 과거 시카고 컵스의 아시아 지역 스카우트를 역임했던 성민규 전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을 앉혔고, 한국시리즈가 끝나자마자 준우승팀 키움 히어로즈의 수석코치이자 베테랑 코치였던 허문회 코치를 신임 감독으로 선임했다. 보이지 않는 내부 투자까지 합쳐 롯데는 ‘프로세스’를 만들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다했다.
2시즌 동안 롯데의 고질적 문제였던 포수난을 해결하기 위해 한화 이글스에서 지성준(개명 후 지시완)을 데려왔고, ‘집토끼’ 전준우와 ‘산토끼’ 안치홍을 모두 잡으며 코어 전력 보강에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비록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인해 시즌 시작이 미뤄지긴 했지만 NC 다이노스, 삼성 라이온즈와의 개막 전 연습경기에서 5승 1패를 거두면서 팬들의 기대를 더 키웠다. 이제 시즌만 시작하면 지난해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볼 것만 같았다.
우여곡절 끝에 평소보다 약 한 달 정도 늦은 5월 5일 시즌이 시작됐다. 롯데는 개막 시리즈였던 KT 위즈와의 3연전을 모두 승리하더니 다음 상대였던 SK 와이번스를 상대로도 (우천 취소 포함) 2연승을 거두며 개막 첫 주의 모든 경기를 승리로 장식했다. 제1차 롯데 왕조(5월 5일~5월 10일)가 개국하는 순간이었다. 새 외국인 타자 딕슨 마차도는 ‘수비형’이라는 평가를 뒤집고 첫 주에만 3개의 홈런을 때려냈고, 역시 신규 영입한 투수 댄 스트레일리는 첫 2경기에서 모두 호투를 펼치며 새로운 에이스로 등극했다. 롯데는 무려 2,227일 만에 단독 선두로 올랐다.
그로부터 40일이 지난 6월 19일, 롯데는 19승 19패로 딱 5할 승률을 맞춘 채로 6위 자리에 올랐다. 물론 3할대 승률에 머물렀던 2019년과 비교하면 이보다도 좋을 수는 없겠지만, 누구보다도 뜨거운 겨울을 보냈던 것을 생각하면 다소 아쉬운 성적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날부터 개막전 상대 KT와 다시 수원에서 3연전을 펼친다는 것이었다. 롯데는 이미 KT 상대로 6연승을 질주하고 있었고, 만약 이 시리즈에서 2승만 거둔다면 세 시리즈 만에 상대 전적 5할을 확정할 수 있는 기회였다. 시즌 초반 난맥상에서 겨우 벗어났지만 KT는 여전히 8위에 머물러있었기 때문에 쉬운 상대로 여겨졌다.
다만 유일하게 걸리는 점이 있다면 19일 KT의 선발이 배제성이었다는 것이다. 롯데 출신으로 2017년 트레이드를 통해 KT로 넘어간 배제성은 전년도 롯데를 상대로 4승 무패 평균자책점 0.95라는 극강의 성적을 거뒀다. 특히 데뷔 첫 승, 데뷔 첫 완봉승, 데뷔 첫 10승을 모두 롯데전에서 기록할 만큼 친정팀을 상대로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반면 배제성의 맞상대이자 KT 출신이었던 박세웅은 2018년 KT전 4경기에서 평균자책점 13.17을 기록했고, 전년도에도 1경기에 등판해 3.2이닝 8피안타 4실점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친정 사랑’이 무엇인지를 증명했다.
롯데는 불안함을 가지고 경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롯데 타자들이 평소에는 공략도 하지 못하던 배제성을 시작부터 두들겼다. 1회 초 선두타자 손아섭이 가운데 펜스 상단을 때리는 2루타로 포문을 열었고, 2번 정훈이 좌전 안타로 득점권 찬스를 이어가자 3번 전준우가 중견수 쪽 담장을 넘기는 스리런 홈런을 뽑아냈다. 이어 다음 타자 이대호까지 왼쪽 펜스를 넘기면서 백투백 홈런을 달성했다.
그동안 당했던 것을 분풀이라도 하듯 롯데는 마차도의 안타와 김준태의 볼넷으로 다시 1, 2루라는 밥상을 차렸고, 8번 한동희가 좌월 3점 홈런을 폭발시키면서 이 밥상을 맛있게 받아먹었다. 롯데는 배제성을 상대로 전년도에 뽑아낸 점수(3점)의 두 배가 넘는 숫자를 단 0.2이닝 만에 얻어냈다. 롯데는 3회 초에도 2루수 천성호의 실책 덕분에 추가점을 올리면서 배제성을 3이닝 만에 마운드에서 내려보냈다. 경기 초반이지만 8점의 리드, 그것도 ‘로나쌩(롯데만 나오면 쌩큐) 클럽’ VIP 회원을 상대로 거둔 대량 득점이었기에 이미 승리는 따놓은 당상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롯데는 잊고 있었다. 박세웅이 KT 상대로 그리 강하지 않았다는 것을. 3회 말 KT는 멜 로하스 주니어의 솔로 홈런으로 첫 득점을 올렸다. 여기서 그쳤다면 좋았겠지만 KT는 야금야금 8점의 열세를 만회하기 시작했다. 4회 말 2사 1, 2루에서는 배정대와 김민혁의 연속 안타가 터지며 2점을 더 추가했다. 박세웅은 5회 말 무사 1, 2루에서 병살타를 유도하며 아웃카운트 두 개를 잡아놓고도 5년 전 맞트레이드 상대였던 장성우에게 중전 안타를 내주며 4점 차까지 쫓기게 만들었다. 결국 박세웅은 5이닝을 겨우 채우고 경기를 마쳤다.
하지만 롯데 입장에서는 차라리 박세웅이 있을 때가 더 좋았다. 바뀐 투수 오현택은 올라오자마자 6회 말 심우준과 배정대에게 백투백 홈런을 내주면서 경기를 KT의 추격 사정권인 2점 차로 만들었다. 롯데는 급하게 박시영을 투입했지만 볼넷과 안타, 희생플라이로 또다시 1점을 헌납했다. 8점의 리드를 다 날리게 생겼던 롯데는 경기 전까지 2점대 초반 평균자책점을 기록 중이던 필승조 박진형을 6회에 투입했다. 박진형은 올라오자마자 유한준을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한숨을 돌렸다. 그러나 역시 롯데 출신이었던 황재균에게 좌중간을 완전히 가르는 2루타를 얻어맞으며 끝내 8대 8 동점을 허용했다. 믿고 싶지 않은 순간이었다.
한편, 3회까지 8점을 뽑아냈던 롯데는 4회부터 거짓말처럼 방망이가 식었다. 이보근에게 2이닝을 틀어막힌 롯데는 6회부터 올라온 이상화와 조현우가 친정팀을 상대로 3이닝을 버티면서 끝내 정규이닝이 끝날 때까지 다시 리드를 잡지 못했다. 여러모로 (배제성을 제외한) 롯데 출신 선수들에게 호되게 당하고 있었다.
결국 경기는 연장전으로 접어들었다. 롯데는 당연하다는 듯 10회 초를 삼자범퇴로 흘려보냈다. 10회 말 수비에서 모든 이들은 마무리투수 김원중이 등판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허문회 감독의 선택은 9회 올라온 이인복을 계속 던지게 하는 것이었다. 이인복은 선두타자 박경수에게 안타를 맞은 후 희생번트로 1사 2루 상황을 맞이했지만 1번 배정대를 헛스윙 삼진으로 잡아냈다. 이닝 종료까지는 아웃카운트 하나만이 남아있었다.
타석에는 오태곤이 등장했다. 오태곤 역시 배제성과 함께 롯데에서 KT로 넘어온 선수였다. 볼 2개를 골라낸 오태곤은 투수 키를 넘기는 큰 바운드의 땅볼을 때려냈다. 2루수 김동한이 다이빙 캐치로 이를 잡아냈고, 오버런을 하는 2루 주자를 노리기 위해 3루로 재빨리 송구했다. 그런데 박경수를 대신해 주루플레이를 하던 문상철이 지체 없이 홈을 파고들었다. 송구를 받은 3루수 한동희는 곧바로 홈으로 공을 뿌렸고, 홈플레이트에서는 접전이 펼쳐졌다. 모두가 주심을 바라봤고, 주심은 양팔을 가로로 들어 올렸다. 세이프. 8점 차로 앞서던 롯데가 끝내 역전을 허용하며 허무하게 경기를 내주는 순간이었다.
▲ 2020년 6월 19일 롯데-KT전 박스스코어(사진=KBO 연감)
이날 패배로 롯데는 앞선 2경기에서 키움 히어로즈를 상대로 모두 끝내기 패배를 기록한 데 이어 3경기 연속 끝내기 패배라는 불명예를 달성했다. 또한 1회에 7점 이상을 내고도 경기에서 패배한 것은 2013년 두산 베어스(9대 0 → 12대 13)에 이어 역대 두 번째 기록이었다. 여러모로 부끄러운 패배였다. 여기에 장성우, 오태곤, 이상화, 조현우 등 롯데 출신 선수들에게 당하며 경기를 내줬다는 것도 뼈아픈 점이었다.
그리고 이날 경기를 통해 허문회 감독의 투수 기용이 도마 위에 올랐다. 허문회 감독은 앞선 키움과의 2경기를 포함해 3번의 끝내기 패배 경기에서 모두 김원중을 투입하지 않았다. “혹사 없이 야구를 하려니 힘들다”라며 선수 보호 차원이라는 이유를 댔지만 19일 경기에서는 김원중을 제외한 모든 필승조를 투입하면서 이런 말을 무색하게 했다. 허문회 감독이 아끼고 아낀 김원중은 결국 열흘을 쉬고서야 마운드에서 구경할 수 있었다.
양철종 / 칼럼니스트
자료출처 : 야구공작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