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수필의 표리表裏
-나도향의 <그믐달> 조명
그믐달
나도향羅稻香(1902-1926) 소설가. 백조동인白潮同人
나는 그믐달을 몹시 사랑한다,
그믐달은 요염하여 감히 손을 댈 수도 없고 말을 붙일 수도 없이 깜찍하게 예쁜 계집 같은 달인 동시에 가슴이 저리고 쓰리도록 가련한 달이다.
서산 위에 잠깐 나타났다 숨어 버리는 초승달은 마치 세상을 후려 삼키려는 독부毒婦 아니면 철모르는 처녀와 같은 달이지마는, 그믐달은 세상의 갖은 풍상을 다 겪고, 나중에는 그 무슨 원한을 품고서 애처롭게 쓰러지는 원부怨婦와 같이 애절하고 애절한 맛이 있다.
보름의 둥근 달은 모든 영화와 끝없는 숭배를 받는 여왕과 같은 달이지마는, 그믐달은 애인을 잃고 쫓겨난 공주와 같은 달이다.
초승달이나 보름달은 보는 이가 많지마는 그믐달은 보는 이가 적어 그만큼 외로운 달이다. 객창한등客窓寒燈에 정든 임 그리워 잠 못 들어 하는 분이나, 못 견디게 쓰린 가슴을 움켜잡은 무슨 한恨 있는 사람이 아니면 그 달을 보아 주는 이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는 고요한 꿈나라에서 평화롭게 잠든 세상을 저주하며 홀로이 머리를 풀어뜨리고 우는 청상靑孀과 같은 달이다.
내 눈에는 초승달빛은 따뜻한 황금빛에 날카로운 쇳소리가 나는 듯하고, 보름달은 쳐다보면 하얀 얼굴이 언제든지 웃는 듯하지마는, 그믐달은 공중에서 번득이는 날카로운 비수와 같이 푸른빛이 있어 보인다.
내가 한恨 있는 사람이 되어서 그러한지는 모르되, 내가 그 달을 많이 보고 또 보기를 원하지만, 그 달은 한 있는 사람만 보아 주는 것이 아니라 늦게 돌아가는 술주정꾼과 노름하다 오줌 누러 나온 사람도 보고, 어떤 때는 도둑놈도 본다,
어떻든지, 그믐달은 가장 정情 있는 사람이 보는 중에 또는 가장 한 있는 사람이 보아 주고, 또 가장 무정한 사람이 보는 동시에 가장 무서운 사람들이 많이 보아 준다.
내가 만일 여자로 태어 날 수 있다 하면 그믐달 같은 여자로 태어나고 싶다.
- 1925년 ⟪조선문단⟫에 발표.
문학이 현실을 외면할 수 있는가? 작가가 자기가 처한 현실을 외면하고도 진정한 문학작품을 창작할 수 있는가?
어떤 이는 문학이 현실에 관여하는 것은 순수성을 잃은 것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이는 순수란 말을 오해誤解한 사람들 아니면 문학의 파급효과를 두려워하는 무리들의 편견이다. 순수성은 현실 밖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 속에서 당면한 현안을 대하는 태도에 따라 순수성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다. 부당한 압력을 행하거나 진실을 왜곡하려는 세력들에 추종하느냐, 외면하느냐, 저항하느냐를 놓고 볼 때, 추종하는 쪽은 배신이요, 외면하는 쪽은 방기요, 저항하는 쪽은 순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사는 터전을 빼앗고, 우리가 먹을 곡식을 강탈하고, 우리의 몸과 마음을 강압하는 세력들을 추종하는 것은 편협한 이기利己에 기인한 것이요, 외면하는 것은 비겁한 안일安逸에 기인한 것이며, 저항하는 것은 인간본연의 순수성에 기인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작가가 처한 현실적 상황에 따라 문학의 순수성의 의미는 달라져야 한다.
문학은 언어예술이다. 예술 작품은 형상화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언어예술인 문학의 형상화는 이미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추상적으로 직설한 글은 언어예술이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하위 개념의 언어를 활용하여 감각에 호소해야 한다.
나는 그믐달을 몹시 사랑한다,
한 문장이 한 단락인 허두이다.
그믐달은 요염하여 감히 손을 댈 수도 없고 말을 붙일 수도 없이 깜찍하게 예쁜 계집 같은 달인 동시에 가슴이 저리고 쓰리도록 가련한 달이다.
서산 위에 잠깐 나타났다 숨어 버리는 초승달은 마치 세상을 후려 삼키려는 독부毒婦 아니면 철모르는 처녀와 같은 달이지마는, 그믐달은 세상의 갖은 풍상을 다 겪고, 나중에는 그 무슨 원한을 품고서 애처롭게 쓰러지는 원부怨婦와 같이 애절하고 애절한 맛이 있다.
보름의 둥근 달은 모든 영화와 끝없는 숭배를 받는 여왕과 같은 달이지마는, 그믐달은 애인을 잃고 쫓겨난 공주와 같은 달이다.
화자가 그믐달을 사랑하는 이유의 하나로서 그믐달에서 받은 느낌이다.
요염하고 예쁘면서 가슴 저리도록 가련한 달, 초승달이 주는 독부, 철모르는 처녀와 같은 느낌과 그믐달이 주는 원부와 같이 애절한 맛이 주는 대조, 보름달이 주는 숭배를 받는 여왕과 그믐달이 주는 애인을 잃고 쫓겨난 공주와의 대조, 화자는 이러한 대조를 통하여 그믐달이 주는 애절한 느낌을 강조하고 있다.
초승달이나 보름달은 보는 이가 많지마는 그믐달은 보는 이가 적어 그만큼 외로운 달이다. 객창한등客窓寒燈에 정든 임 그리워 잠 못 들어 하는 분이나, 못 견디게 쓰린 가슴을 움켜잡은 무슨 한恨 있는 사람이 아니면 그 달을 보아 주는 이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는 고요한 꿈나라에서 평화롭게 잠든 세상을 저주하며 홀로이 머리를 풀어뜨리고 우는 청상靑孀과 같은 달이다.
여기에서도 보른달을 사랑하는 이유로서 보는 이가 적어 외로운 달임을 강조하고 있다. 왜냐하면 정인情人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밤잠을 설치는 이, 한을 품은 이, 청상과부가 주로 보기 때문이다.
내 눈에는 초승달빛은 따뜻한 황금빛에 날카로운 쇳소리가 나는 듯하고, 보름달은 쳐다보면 하얀 얼굴이 언제든지 웃는 듯하지마는, 그믐달은 공중에서 번득이는 날카로운 비수와 같이 푸른빛이 있어 보인다.
그믐달이 주는 느낌을 반전 심화시켰다. 둘째 단락의 가련함은 얼핏 보아 나약한 느낌을 주는 데서 비롯한 것이다. 그래서 애절한 느낌을 준다. 셋째 단락의 외로움은 세상이 모두 잠든 새벽에 뜨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로 한을 품은 사람들이 본다. 넷째 단락에 와서는 자세히 본 그믐달의 외향에 초점을 맞춘다. 둘째 단락의 원부, 셋째 단락의 한이 넷째 단락의 비수로 반전 심화된 것이다.
가련함은 나약함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힘이 없는 이, 곧 원부나 추방당한 공주의 심저心底 에 쌓여가는 것은 한恨이요, 이것이 쌓이고 쌓이면 날카로운 비수로 푸른빛을 뿜는다. 섬뜩한 강함이 된다.
내가 한恨 있는 사람이 되어서 그러한지는 모르되, 내가 그 달을 많이 보고 또 보기를 원하지만, 그 달은 한 있는 사람만 보아 주는 것이 아니라 늦게 돌아가는 술주정꾼과 노름하다 오줌 누러 나온 사람도 보고, 어떤 때는 도둑놈도 본다,
화자 자신이 한 있는 사람임을 고백함으로써, 허두에 제시한 그믐달을 몹시 사랑하는 까닭을 뒷받침하고 있다. 뒤에 나오는 늦게 돌아가는 술주정꾼과 노름꾼, 도둑놈의 어두운 이미지를 한 있는 사람의 이미지와 결부시키려는 듯하나 의미상으로는 간격이 있다.
어떻든지, 그믐달은 가장 정情 있는 사람이 보는 중에 또는 가장 한 있는 사람이 보아 주고, 또 가장 무정한 사람이 보는 동시에 가장 무서운 사람들이 많이 보아 준다.
허두에서 본문에 이르는 내용을 마무리하고 있다. 유정한 사람뿐만 아니라 무정한 사람도 본다는 대조는 한을 품은 사람과 한을 안겨 준 사람, 곧 피해자와 가해자의 암시로 볼 수도 있다. 그 뒤의 '무서운 사람'은 앞 단락의 '도둑놈'의 이미지를 초월한다. 남의 것을 훔치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뛰어넘어 남에게 육체적, 정신적인 해를 가하는 사람이라는 의미, 곧 압박을 가하는 자, 고통을 주는 자에까지 이미지를 확대할 수 있다.
내가 만일 여자로 태어 날 수 있다 하면 그믐달 같은 여자로 태어나고 싶다.
가정법을 사용한 결미의 마지막 문장이다. 보편적으로 자기가 사랑하는 대상은 동경의 대장이지 자기가 그 대상이 되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달은 여성적이다. 그래서 남성인 화자는 원부, 왕궁에서 추방당한 공주, 청상과부는 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의 한은 공유한다는 의미이다.
<그믐달>은 문장이 쉽고 순활하다. 읽으면 곧바로 감각에 와 닿는다. 그리고 긴 문장이 있기는 하나, 그것도 난삽하게 혀 있지 않다. 문장 길이에 변화를 주어 편안한 호흡을 유도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내용이 전통적 한恨의 정서에 닿아 있다. 그래서 오래된 한옥韓屋 뒷골방에 앉아 있는 듯 편안하다. 그러나 선명한 문장, 순활한 호흡, 전해오는 정서가 우리 민족의 체질에 부합된다는 것이지 <그믐달>이 주는 메시지가 편안하다는 것은 아니다.
이 글은 표면적으로는 그믐달에서 받은 느낌, 곧 이미지 위주의 수필, 곧 서정적인 수필이다. 그믐달이 주는 느낌은 새벽에 잠시 날카로운 칼날처럼 떴다가 스러지는 주각달인 데서 기인한다. 그래서 가련하면서도 한을 품은 여인의 이미지를 지닌다. 한은 마땅히 있어야 할 대상을 부를 수도, 가까이 할 수도, 만날 수도 없는 상실감의 산물이다. <그믐달>은 부재不在를 인식하는 데서 그치지 아니하고 부재를 절감切感하고 있다.
같은 대상도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느냐, 어떤 성정의 사람이냐에 따라 달리 보일 수 있다. 부재가 가져다준 치명적인 아픔, 이는 개인적인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시대나 사회적 상황이 가져다준 아픔일 수도 있다. 그 아픔이 가슴 안에 비수가 되어 언젠가 분출될 기회를 엿보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문학이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 문학은 인생을 반영하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견상 서정적인 작품의 형상화 이면에는 현실이 암시되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현대문학에 음풍농월吟風弄月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올바른 비평의 태도라 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