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고 아름다워서 불행했던 조조의 손녀..삼국지의 동향공주
이에 귀비 곽씨의 언사가 날로 방자해져 황후마마께
조석문안도 들르지 않고, 심지어는 황후마마 소생이
되시는 태자전하께도 예를 갖추시지 아니하고 태자께서
귀애해 마지않는 누이 동향공주께도 그 방자함
이 이를 데 없으니 태자와 공주는 어머니의 위에 계시는
분이 자식의 위치에 있는 이를 자애하시 않으시니 우리도
어머니의 항렬에 계시는 이를 경애치 않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귀비 곽씨가 이를 분히 여겨 황상께 울며 '견후 소생의 아이들이 저를
무시했습니다.'며 공주를 모함해 황상께서
공주를 초달(楚撻:종아리를 때림)까지 하시니, 황후께서 대로하시어...
-"낙신부" 中
이 이야기를 보면, 못 된 새어머니가 전처소생의 아이들을 괴롭히는
내용의 전형적인 백설 공주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계모에게 푹 빠져 아이들을 괴롭히는 아버지..
백설공주처럼, 착하고 아름다웠던 탓에 못된 계모에게 시달림을
받아야 했던 예쁜 공주님.
바로 동양 최고의 고전,'삼국지' 속에 있었습니다.
어머니를 그대로 빼닮아 청초하고 아름다웠던
동향공주[東鄕公主,?~228].아버지는 위(魏)나라,고 조문제(高祖文帝)
이고, 어머니는 문소(文昭)황후,오빠는 위나라의 열조명제(烈祖明帝).
그리고 할아버지는..조조(曹操)
공주의 어머니는 하북(河北)최고의 미녀라 불렸던 문소 황후 진(甄)씨입니다.
204년 하북의 원가를 멸망시킨 '삼국지'의 조조 -위나라의 태조무제 는,
원래 하북의 원소의 둘째아들 원희의 아내로 삼기위해 데려온 양녀였던
그녀를 자기 큰아들에게 줍니다.
그녀는 초승달도 부끄러워서 얼굴을 가린다는 미인이었다 하죠..
그녀의 미모에 혹해버린 무제의 큰아들 비(丕)는 그녀를 아예
정실부인으로 삼아 버립니다.
그리고 10년 동안 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게 행복했던 그녀..
그러나 10년 후 황태자가 된 남편에게 곽씨라는 첩이 들어옵니다.
진황후가 수선화 같은 청초하고 도도한 아름다움을 가졌다면
이 곽씨 부인은 화려한 모란꽃 같은 아름다움을 가진 여자.
진황후가 꾸미지 않아도 아름답고 순수한 여인이라면
이 곽씨 부인은 꾸미지 않으면 추하고 꾸미면 꾸밀수록 아름다운 그런 여자.
아무리 아름다워도 여자도 사람일진대 언젠가는 늙는 법..아내에게 싫증을 느끼던 문황제는 새 첩에게 푹 빠져 아내를 멀리하기 시작하더니
결국 221년 황제로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내를 폐위하여
사사하고, 이 곽씨라는 첩을 귀비로 삼더니 황후로 올려 버립니다.
원래 이 문황제는 아내가 자기 친동생들과 불륜의 관계에 있다고
항상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던 의처증 환자였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자기 자신은 평범한 외모인데 비해 두 동생들인
임성왕과 동아왕은 출중한 외모에 무예 백반으로 능통하고 특히 동아왕
의 경우 후세에 이백, 두보와 견줄 정도로 대단한 문학적 재능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게다가 태어난 아이들은 모두 아름다웠지만 그것은
어머니를 닮았기 때문이었죠.
사실 여왕(女王)이 별명일 만큼 드센 여자였던 곽씨는 미모라기보다는
관능으로 문황제를 사로잡았다고 해야 했습니다. 게다가 어머니를
빼 닮은 문소황후 소생의 남매를 그녀가 곱게 볼 리가 없었습니다.
황태자 예(叡)는 비범한 인물이라 그녀가 마음대로 다룰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그녀가 희생 제물로 삼은 것은 몸도 성품도 유약하고 어머니를
빼닮은 청초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어서 그녀의 질투 대상이 되었던
동향공주..(동향공주는 정확한 생년이 밝혀지지 않았지만 210년 안팎
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므로 당시 공주는 열세 살 정도가 간신히 된
어린 소녀였겠죠)그녀는 일단 황태자에게 평원왕(平原王)이라는 작위를
더해 준다는 명목으로 황태자를 도성에서 내쫓습니다. 그 후 어머니를 잃은
감옥 같은 궁궐에서..어머니를 죽인 아버지의 밑에서 그저 오빠만을
의지하며 외롭게 나날을 보내고 있던 공주를 괴롭히기 시작합니다.
아버지 문황제는 당연히 어미를 빼 닮은 공주가 귀엽게 보일리가 없었던
데다가, 계모 곽씨는 일부러 공주를 자기 친딸처럼 키우겠다며 황제
앞에서 아양을 떨어 공주의 처소를 자기 처소 옆으로 옮긴 뒤 계획적으로
잔인하게 공주를 괴롭힙니다. 있지도 않은 잘못을 뒤집어 씌워 아버지에게
불려가 종아리를 맞게 하는 것은 아예 일도 아니게 되었죠..
결국 공주는 병석에 눕게 됩니다.
얼마 후 공주는 일가인 하후씨(夏侯氏)일족의 친척오빠에게 시집을 갔는데
(일설에는 조상 혹은 그 일족인 하후위라고 합니다)워낙 약했던
몸이 계모에게 핍박을 당해서 거동도 못하는 처지가 되어 버리고 맙니다.
다행히 착한 시댁 식구들은 공주를 친딸처럼 대해주었다고 하죠.
그 죄를 받았는지 문황제는 39세의 젊은 나이에 한질에 걸려 세상을 떠났습니다. 파렴치하게도 황태자에게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다죠.
"네 계모가 너와 장희(章姬:동향공주의 이름)를 친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해주니
너는 네 적모를 공경하는 마음으로 계모를 태후로 모시고 공경하라.."
게다가 황제 자신의 사촌형이자 당시 대장군였으며 조조의 수양
아들로 자신에게 의형(義兄)이 되는 조진(曹眞)에게
태자와 공주를 부탁하며 후일을 맡깁니다.
조진은, 바로 공주의 시가의 당주로 ,공주의 시아버지였습니다.
물론 원한이 뼈 속 까지 사무친 황태자가 이 유언을 지킬 리는 없었지만..
화무십일홍이라고 했던가..그 동안 권세를 누릴 대로 누린 곽씨 황후는
몰락하게 됩니다.
황태자는 즉위하자마자 어머니의 복수를 시작합니다.
즉위식 후 태자의 첫 마디는 이것이였다죠.
"아!!짐은 문소황후의 아들이로다!!"
교활한 곽후는, 문황제 앞에서는 태자와 공주에게 무엇이라도 해줄 듯한
자애로운 어머니의 태도를 취했다고 합니다. 문황제는 어미를 일찍
잃은 아들과 딸이 걱정되던 차에 곽후가 태자와 공주에게 끔찍한
태도를 보이자, 태자와 공주를 자식이 없던 곽후의 양자와 양녀로
삼아 버렸습니다.
우리나라도 그 유명한 연산군
이 할머니를 머리로 받아 죽이고 어머니를 모함한 후궁들을 몽둥이로 때려
죽였다죠..이 황태자 조예는 명황제로 즉위하자마자 곽씨에게 탁자를 던져
죽였다고 합니다.
계모에 의해 착한 여동생이 얼마나 핍박을 받았고..아니 그보다,
어머니를 죽인 원수인 데다가 자신을 칠년 동안이나 천하를 떠도는
유랑자로 만든 이 계모를 용서할 수 없었던 거죠.
명제는 계모의 장례식도 어머니의 초라했던 장례식과 똑같이 치르고
계모의 가족들은 모두 관직에서 파직하고 내쫓아 전부 유랑아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리고 계모에게 온갖 핍박을 받던 여동생을 황궁으로 들여 손수 밤낮으로
간호를 했지만..오빠와 남편의 눈물어린 정성에도 불구하고 공주는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은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하지만 어쩌면 공주는 일찍 죽었던 것이 더 행복했던 것일까요..
공주가 죽은 뒤, 남편 조상(曹爽:조진의 아들)은
231년 아버지의 뒤를 이어 대장군이 되는 등(20대의
대장군은 파격적인 것입니다)명황제에게
온갖 총애를 다 받습니다.
그리고 오빠 명황제..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무서운 이유는
그 아버지의 전철을 그대로 밟게 되기 때문이라고 했던가요.
이 꽃 미남 황제는, 아버지의 전철을 그대로 밟습니다.
목숨 다 바쳐 사랑했던 아내, 그리고 의처증, 그리고 질투,
그리고 아내를 죽이고 새로 황후로 앉히는 첩실.
가장 증오했던 아버지의 전철을 밟는 자신이 미치도록 싫었던 명황제는
결국 정신분열을 일으키더니 35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뜨게 됩니다.
명황제는 죽을 때 원로대신 사마의와
함께 조상을 불러 눈물로 후사를 부탁하며 권력을 넘겨주었습니다.
죽은 동생에게 주지 못한 사랑을 매제에게 대신 주었다고 할까요..
별로 큰 인물이 되지 못했던 조상에 대한 명황제의 총애는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조상이 별로 큰 인물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죠.
그래서 그는 위나라를 촉나라의 제갈공명이 일으킨 싸움에서 승리하여 위기에서 구한 원로 대신 사마의에게도 권력을 반으로 나누어 준다면,
조상이 안정적으로 정치를 꾸려나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명황제에 대한 사마의의 충성심은 대단했으니까요.
그러나 조상은 원로 사마의를 내몰고,
황제 유교를 받들었다는 핑계로 새 황제 소제(少帝:조방)를
허수아비로 만든 채, 위나라의 권력을 한
손에 틀어쥐고 10년 동안이나(249년까지)전제정치를 일삼다가,
보다 못한 원로대신 사마의가 정변을 일으킨 사건-
'고평릉 사변'으로 조상 이하,
그 동생 조훈과 조희, 조산, 조칙, 조애는 물론
사촌인 하후 씨 일가까지 모든 일가가 절멸당하고 맙니다...
만일 공주가 그때까지 살아있었으면 30대 중후반의 아직 아름다운 나이였겠죠.
계모에게 시달림만 당하다가 다정한 남편을 만나고, 그리던 오빠가 돌아오자
마자 죽음을 맞아야 했던 공주. 하지만 만일 이때까지 살아있었다면
시댁의 전멸로 공주는 능욕을 당하거나 남편도 자식도 잃고 원수의
아내가 되어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그것보다 다정하고 자신을 사랑해 주었던 남편과 그 일가가
모두 전멸하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아야 했을 겁니다.
물론 오빠의 광기어린 죽음도 보아야 했겠죠.
사랑했던 어머니의 죽음을 지켜본 것만으로도 연약한 공주에게는
큰마음의 상처가 되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