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단백람(黑今 丹 白 藍)의 전설
천연수로 굽는 금단 소금의 유래
*주의 - 한 자 중 흑금을 합해 금자임. 컴엔 없는 한자네요.
약 천 사백년 전. 백제 위덕왕(威德王)때의 일이다.
전북 고창 신원면 금단마을엔 어느덧 한낮의 이글거리던 해가 수평선 저 너머로 기울어지면서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내는 노을 속에서 한 무리의 주민들이 조개를 줍고 있었다.
이곳은 예로부터 간만의 차가 심해 해가 질 썰물 때가 되면 눈에 가물거릴 정도의 먼 곳까지 벌이 드러나는 장관을 연출하는데 이 마을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은 이런 장관을 구경하는 것보다는 생활고의 해결책으로 모두 갯벌에 나와 조개를 줍는 게 일상이었다.
“어메. 저게 머시기랑가?”
조개를 줍던 한 아낙이 허리를 펴며 이마에 솟은 땀을 잠시 훔치다가 수평선을 바라보다가 이상한 물체를 발견하고는 한 말이었다.
이에 옆에서 조개를 줍던 몇이 아낙의 손끈을 따라 시선을 돌리자니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이상한 물체가 떠 있었고 배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배 같은디??”
“배 라고라고라?”
“워째 배가 저로코롬 생겼당가이?”
사람들은 서로 한 마디씩 하며 호기심이 반발해 이상한 물체 쪽으로 다가들 갔다. 물체는 분명히 배였고 그것도 돌로 만들어진 배였다. 더 이상한 것은 배 안에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고 돌배가 물 위에 떠 있는 것부터 사람이 다가가면 멀어지고 뒤로 물러나면 가까워 지는 이상한 일이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
“으메. 참으로 이상하고만 이!”
사람들은 신기한 광경에 눈과 발을 돌리지도 못하고 있는 동안 돌배가 들어왔다는 소문이 금새 인근으로 퍼져 나갔다.
아울러 이 소문은 삼인골(三仁谷)까지 들어갔고 이 삼인골은 현재 고창군 삼인리로 당시에는 첩첩산중에 모든 사람들이 꺼려하는 그런 마을이었다.
이 삼인골에는 흉악무도한 도적 떼의 소굴이었고 인근의 주민들의 곳간을 착취해 살아가고 있었기에 마을 이름만 대면 울던 아이도 울음을 그치는 그런 곳이었다.
그런데 이 삼인골 뒷산에 천연석굴로 된 비곡에 금단선사란 도승이 살고 있었고 이 도승은
지식이나 도술이 워낙 비범한데다 불심이 깊어 도적들과 마을 사람들의 중간에서 계도를 하고 있었기에 모두에게 존경을 받고 있었다.
자연 돌배가 들어왔다는 이야기가 금단선사에게도 들려왔고 금단선사도 이상한 일이라며 몇 개의 산을 넘어 돌배가 있는 갯벌을 찾았다.
한데 이상한 일이 또 벌어졌다. 사람들이 다가가면 멀어지고 물러나면 다가오던 돌배가 금단선사가 다가가자 멀어지는 게 아니라 금단선사 쪽으로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
금단선사가 배 위로 오르자 사람은 없고 배 안에는 단좌한 돌부처 하나가 있을 뿐이었다.
“아미타불 나무관세음보살……”
금단선사는 부처상 앞에서 염불을 외우다가 자신도 모르게 혼몽하여 부처님을 대면하게 되었다.
-금단은 듣거라. 네가 살고 있는 삼인골에 훌륭한 절터가 있은 즉 내 서역국(현재의 인도)에서 부처님을 모셔왔으니 하루 속히 사찰을 건립하도록 하여라. -
말과 함께 부처님을 따라 삼인골로 들었고 부처님이 손가락으로 한 지점을 가리키는 홀연히 떠나갔다.
금단선사가 혼몽에서 깨어나 보니 돌배 안이었고 좌대한 부처상만이 자신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이에 금단선사는 부처상을 모시고 삼인리로 돌아와 부랴부랴 법당과 대웅전을 기공, 건립하니 이곳이 바로 현재의 선운사 참당(懺堂)이 바로 그 자리다. 하나 천여 년의 세월의 풍상에서 선운사는 수 번 개조, 증축하는 과정에서 그 돌부처와 대웅전의 국화문 한 짝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선운사를 건립한 얼마 후 금단선사는 인근의 고전리라는 마을의 한 부호의 초대를 받아 산을 내려갔다. 이 부호는 심신이 두텁고 인심이 박절하지 않아 전부터 금단선사와 친교가 깊었었다. 하룻밤 부호와 불심을 논하며 융숭한 대접을 받고 다음 날 점심을 들고 삼인리로 돌아가고 있었다. 마침 계절은 한 여름 유월이었고 찌는 대양 아래 갈증을 느낀 금단선사는 인근의 옹달샘이라도 찾으려 두리번거리다 마침 길 옆 갯바닥에 고여 있는 웅덩이를 발견하고 물을 마시려 하니 웅덩이 인근이 서리가 깔린 듯 하얗지 않은가?
“…!”
자세히 관찰해 보니 그건 소금이었다. 이에 금단선사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손으로 물을 떠 살짝 입술에 적셔 보았다. 그런데 물이 짜지 않았다. 바닷물이 스며든 것이 아니었다.
“허어. 참 이상한 조화로다. 어찌 담수가 말라 소금이 된단 말인가?”
또 한 번 골몰하던 금단선사는 다시 한 번 물맛을 보고는 왔던 길을 되돌아 다시 부호 집으로 향했다. 좀 전에 간 선사가 돌아오자 부호는 무슨 일이냐며 물었고 선사는 부호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하며 함께 그 웅덩이로 가 보았다.
“이 마을에서 소금 굴을 만들어 소금을 굽는 게 어떻겠소이까?”
물맛을 보고 고개를 젓는 부호에게 선사가 말했다.
“선사님 말씀대로 소금을 구어 마을이 융택해 진다면 제가 뭘 마다하겠습니까? 선사님 원하는 대로 힘껏 돕겠습니다,”
하여 금단선사는 웅덩이를 넓고 깊게 파서 물이 고이게 하고 그 옆에 소금 굴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구경 나온 사람들의 얼굴엔 비웃음이 고였고 일하던 인부들 또한 서로들 조잘거렸다.
“참 나 천연수로 어찌 소금을 맨든당가요?”
“워낙 고명한 도사님인께 도술이라도 부릴란지 어찌 알것소 잉?”
암튼 소금 굴이 완성되자 금단선사는 인근 주민들을 불러 모아 소금을 굽게 했다. 얼마 후 백설 같은 소금이 구워졌고 소금 맛을 본 사람들은 누구 하나 경탄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이렇게 담백하고 맛 좋은 소금이 있으리라고는 믿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마침내 도사님의 신묘함을 이구동성으로 칭찬하게에 바빴다.
금단선사는 삼인리로 돌아오자 즉시 도적의 우두머리들을 불렀다.
“내 너희들을 악행을 무력으로라도 막아보려 했으나 그리되면 너희와 다를 바 없는 법. 또한 너희들이 받은 핍박을 감안해 계도해 보려 했으나 너희들은 작당하여 살생과 약탈을 멈추지 않으니 어찌 인간이라 하겠느냐?”
“……”
인간의 도리를 말하는 데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았다.
“내가 오늘 너희들을 부른 건 너희들을 꾸짖자고 하는 게 아니다. 내 우연히 고전리에 소금 굴 을 만들었는바 너희는 즉시 산을 내려가 소금 굽는 일을 업으로 삼고 살아가라고 부른 것이다. 소금은 예로부터 소금(小金)이라 하여 귀하게 여기고 있음으로 그동안 어진 백성들을 착취해 온 죄를 귀한 물건을 생산해 고루 베풂으로 그 업을 씻으라.”
“……”
“소금을 구우려면 으레 벌을 갈고 바닷물을 끌어들여야 하지만 내가 만든 소금 굴은 천연수로 굽기 때문에 다른 소금을 굽는 것보다 힘이 들지 않고 맛이 좋으니 여타 소금에 비해 몇 배 소득이 있을 것이다.”
도적의 우두머리들은 동화 같은 선사의 말을 반신반의 하다가 소금 굴을 관찰하고는 선사의 노고와 관심에 감읍하고는 무리들을 이끌고 고전리로 내려와 소금을 구우니 선사의 말처럼 얼마 지나지 않아 인근 마을보다 풍족한 소금 굴 마을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러자 금단선사의 고마움과 덕을 숭앙하여 선운사에 고급품질의 소금으로 세를 바쳤다.
이 관습은 천여 년 동안 내려왔으나 이조 말에 와서 자신들의 소금 굴이 선운사와는 하등의 연관이 없다 하여 세를 중지했다.
현재도 이 마을에서는 소금을 굽고 있고 이 소금의 맛은 일품으로 정평이 나 있다. 지금도 이곳 금단 사람들은 이웃 동네 사람들에게
“자네들은 도적의 자손들이야”
라는 농담을 간간히 듣고 있다 한다.
06년 6월 4일 아침이슬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