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삼 연재소설-꿈
⌜어제의 미몽迷夢이 오늘을 묶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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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실 창가에 서서 하늘을 올려봤다. 비끝이 아닌데도 솜뭉치 같은 구름덩이들이 끊임없이 이동하고 있었다. 그 사이로 간간이 모습을 드러낸 태양이 꼭 갓난애 얼굴처럼 해말갛게 빛을 뿌렸다.
나는 눈부신 햇살을 바라보며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하는 성경의 <창세기> 머리를 떠올렸다.
피로가 쌓여 몸이 마치 물에서 방금 건져낸 이불처럼 무거웠다. 나는 연구실을 빠져나와 곧장 한증막으로 갔다. 학교에서 지척에 있는데도 오늘따라 꽤 먼 거리로 느꼈다. 흐느적거리는 내 모습을 누군가 지켜보는 이가 있다면 틀림없이 몸이 많이 아픈 사람으로 생각할 것 같았다.
피곤한 이유가 오늘 강의가 유독 많았거나 어제 과음을 했거나 특별히 스트레스를 받은 탓도 아니었다. 강의는 오전 오후 각각 한 강좌뿐이었고 이 정도의 수업으로 지칠 만큼 체력이 약한 것도 아니었다. 어제는 술도 마시지 않았다.
이튿날 강의가 있으면 그 전날에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오늘도 강의를 끝내고 곧장 연구실로 돌아왔다. 나를 기다리는 사람도 없었다. 강의실에서도 학생들과의 갈등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눈에 거슬린 학생이 있기는 했으나 그쯤 무시해 버렸다. 일일이 지적하다 보면 강의의 흐름이 끊어져 신경이 날카로워지기 마련이다.
오늘 피로한 그 이유를 굳이 캔다면 아무래도 불면 때문일 것 같았다. 불면은 늘 있는 일이었고 나 혼자만 겪은 것도 아니었다. 중년의 나이라면 흔히 겪는 일이라 그리 심각하게 생각할 일도 아니었다.
나는 에스키모들의 이글루처럼 생긴 한증막으로 들어갔다. 십여 명이 섰거나 앉아서 땀을 짜내고 있었다. 타올을 머리에 둘러쓰거나 등을 덮고 앉아서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이 꼭 명상에 잠긴 것처럼 보였다. 나도 어깨에 타올을 두르고 앉았다.
살인적인 열기가 몸을 휘감아 숨이 턱턱 막혔다. 전신에 땀이 끈적하게 흘러내렸다. 콧등에서 떨어진 찝찔한 땀방울이 입 속으로 끊임없이 파고들었다. 몸을 흥건하게 적시고 있는 땀방울이 나를 피로에 빠뜨린 원소라고 생각해 손바닥으로 계속 닦아냈다. 손바닥에 묻은 땀이 끈적끈적했다.
나는 열기를 견딜 수가 없어 찬물로 몸부터 식혔다. 비로소 화마에서 빠져나온 것 같은 안도감이 들었다. 한증을 즐기는 사람들이 혹시 사후에 끌려갈 연옥을 미리 경험하여 내성을 기르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휴게실에 남녀가 뒤섞여 널브러져 있었다. 이들 남녀가 모두 나체로 누워 있다면 어떤 풍경일까 생각하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정말 그런 상황이 현실화 된다면 한증막이 매일 사람들로 붐빌 것이고 펭귄이나 물개들의 서식지 풍경일 것 같아서 또 웃음이 나왔다.
나도 빈자리를 찾아 몸을 눕혔다. 눈에 풀칠을 하려고 했으나 쉬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타올로 얼굴을 덮었지만 답답하기만 할 뿐 잠은 내려앉지 않았다.
비로소 어젯밤으로 돌아갔다. 그저께 저녁에 동료교수 김철기와 함께 소주를 마셨다. 딱히 할 얘기가 있어서 만난 건 아니었다. 똑 같이 이튿날 강의가 없는 날이라 마음이 한가로웠다.
술이 병에서 반쯤 내려앉았을 때 김철기가 갑자기 한숨을 내쉬며 입을 달싹거렸다. 할 얘기가 있으면서도 선뜻 내놓기가 망설여지는 눈치였다.
나는 그의 입 안에서 맴돌고 있을 문장을 끄집어 낼 뜻으로 그에게 첨잔을 했다. 그가 잠시 입을 쩝쩝거리며 하루 수면시간을 물었다.
수면시간? 일정하지는 않지만 평균 여섯 시간은 자는 편야. 과음한 날 밤은 조금 더 잘 때도 있고. 그 시간 동안 숙면한다는 말이지? 그렇다면 건강한 거야. 글쎄...? 김 교수는 잠을 잘 못 자나? 자기는 자는데 거의 가수면 상태야. 그러다 보니 아침에 일어나도 개운치가 않아. 두통도 있고. 걱정거리가 있거나 생각할 일이 많으면 가끔 그럴 때가 있어. 나도 그러니까. 가끔 있는 일이 아니라서 그러는 거야. 걱정거리 있는 것도 아닌데 말야. 병적 불면증만 아니면 그리 걱정할 필요 없어. 누구에게나 있는 현상이라잖아.
그에게는 말을 안 했지만 실은 내가 불면으로 자주 밤을 새웠다. 그때마다 불면의 원인을 추정하려고 했으나 번번이 허사였다. 김철기의 경우처럼 딱 꼬집을 만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