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젊은시인상 수상작>
허물 벗다
김덕남
담장 밑 길게 누운 투명한 빈집 한 채
머리에서 꼬리까지 계절을 벗어놓고
내면을 응시하는가
눈빛이 서늘하다
껍질을 벗는다면 오욕도 벗어날까
숨 가쁜 오르막도 헛짚는 내리막도
날마다 똬리를 틀며 사족에 매달리던
별자리 사모하여 배밀이로 넘본 세상
분 냄새 짙게 피운 깜깜한 거울 앞에
난태생 부활을 꿈꾼다
어둠을 벗는다
<제9회 젊은시인상 당선소감>
나를 돌아보는 시간, 그 아득함이여!
모처럼 서울 간 김에 촉촉한 가을비 속의 서울대공원을 돌고 있습니다. 울긋불긋 활옷을 입고 초례청에 들어서는 신부를 맞고 있는 듯 온 산과 숲이 잔치를 벌이고 있 습니다. 40년 만의 가뭄을 해소하는 단비라 물을 빨아들이며 입맛 다시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립니다. 그 순간 핸드폰이 새처럼 울었습니다. <시조시학>의 젊은 시인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고. 오뉴월 땡볕에 폭포수를 맞으며 김덕수의 사물놀이 한바탕을 듣는 기분입니다. 그러나 아~ 이 일을 어찌 할까요! 아직 익지도 않았는데 과실을 따다니요.
시조의 길로 들어서고부터 세상을 다시 보고 있습니다. 음식이나 옷을 살 때도 그것이 내게 오기까지의 수고로움을 생각합니다. 며칠 전 책상을 새로 샀습니다. 이 책상이 내게 오기까지 어느 장인의 손길을 생각하고, 장인의 손길이 닿기 전 울창한 숲에서 저들끼리 새소리 들으며 평화롭게 살았을 적 이야기를 마음으로 눈으로 듣습니다. 잠시 눈을 감다 나의 인연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참으로 소중하고도 감사한 마음이 솟구칩니다. 이렇게 시조는 나를 돌아보게 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갖게 합니다. 시조로하여금 인생 2막을 사는 셈입니다.
이제 다시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부터 신발끈을 더욱 조이겠습니다. 부족 한 글을 선해 주신 심사위원님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나의 시조 그릇이 작다고 불평하지 않고 기꺼이 담겨주는 천지만물, 시조의 길로 문을 열어준 스승님, 같은 길을 가는 도반, 곁을 지켜주는 가족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제9회 젊은시인상 심사기>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린다. 지금의 비는 가뭄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단비다. 겨울을 지나 봄에 농사를 준비하는 농부들에게도 반가움의 대상이다. 비는 문학의 범주에서는 정화의 의미를 갖는다. 우리 삶의 순연한 한 모습을 되돌아보는 삶의 성찰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시조시학> 사무실에서 제9회 시조시학 젊은 시인상에 선고되어 올라온 여섯 분의 작품을 심사위원들은 서로 정독했다. 각기 개성 있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오랜 토의 끝에 김덕남 시인의 작품 「허물 벗다」와 유헌 시인의 작품「폭포 앞에서」를 공동 수상작으로 결정했다.
김덕남 시인은 2010년 ≪부산시조≫ 신인상과 2011년 국제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하여 2013년 『젖꽃판』시집을 상재했다. 시인은 삶의 현실과 서정의 공간에서 감성적언어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이번 수상작 「허물 벗다」는 경험이나 사물적 세계를 객관화시켜 시의 이미지를 펼쳐 간다. 시의 대상은 허름한 빈집이지만,시인은 그것을 다시 내면으로 심화시켜 '율'의 노래로 절절하게 풀어가고 있다. 첫째 수에서 “담장 밑 길게 누운 투명한 빈집 한 채 오래도록 응시하면서 계절을 벗어놓고 이제 상실의 공간으로 변한 '빈집'의 상징성을 다시 "눈빛이 서늘하다" 로 읊는다. 그러한 시의 확장은 “분 냄새 짙게 피운 깜깜한 거울 앞에 빈집의 자아를 투영해 다시 부활를 꿈꾸는 연민의 대상이라는 현재성을 부여하고 있다.
유헌 시인은 2011년 <월간문학> 신인상과 2012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 선으로 등단하였다. 2015년 발간한 시집 『받침 없는 편지」에서는 현실 속의 삶을 되짚어보는 처연한 울림의 정형미학으로 우리에게 치열한 시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수상작 「폭포 앞에서도 삶의 순간을 폭포로 이끌고 낸다. 작품 속 시조의 배열을 통해휴지부 없이 극적 효과로 단아한 폭포의 이미지를 창출한다. 첫째 수 얽히고설키면서 딱딱하게 굳어버린 사유의 순간이 "천길 벼랑으로 뛰어내리는 폭포의 상징성은침체된 내면의 자이를 일깨운다. 그 자이는 물줄기를 따라 가다가 "상처가 덧난 자리"는 골바람에 말리면 문득 강렬한 삶의 의지를 확인하는 "얼마나 떠돌았는지"로 가늠한다. 그리하여 모가 난 생각들이 먼 곳으로 합류하는 머나먼 생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제9회 ≪시조시학≫ 젊은 시인상을 수상하는 김덕남 · 유헌 시인께 축하를 드리 며, 앞으로 치열한 시정신으로 정형미학을 올곧게 세워 나가길 바란다
심사위원: 김제현 · 윤금초 · 이지엽
선고위원: 박현덕 · 양점숙 · 문순자
- 《시조시학》 2015.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