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me 나의 사랑하는 자
Date 2011. 1. 9
Text Hsh 3,1-3
(1)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과자를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그들을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가 된 그 여자를 사랑하라 하시기로 (2)내가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나를 위하여 그를 사고 (3)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많은 날 동안 나와 함께 지내고 음행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따르지 말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 하였노라
1. 지금 가축 전염병인 구제역과 조류독감이 전국으로 확산되어 관계 당국 추산 피해액이 9천억 원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팔 고기가 없어 개점휴업 상태인 정육점이 점점 늘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질병으로 인해 죽는 가축도 많지만, 세계 곳곳에서 새, 벌, 고래, 생선, 박쥐 등 야생동물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이변이 계속 일어나고 있어 불안하게 하고 있습니다. 새해를 30분 앞둔 지난 12월 31일 밤 11시 30분에 미국 알칸소주 한 동네에 하늘을 날던 찌르레기 5천여마리가 그냥 비처럼 죽은 채 떨어졌다고 합니다. 해당 나라의 전문가들이 사체들을 수거하여 조사했지만 아직 뚜렷한 원인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자연계뿐 아니라 인간계도, ‘외면적 물질적 성취’와 ‘내면적 인간적 파탄’이 기묘하고도 불안하게 공존하고 있다는 한 사회학자의 분석처럼, 이 혼란을 조절할 수 있는 적절한 대처 방안을 내놓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혼란스럽습니다. 그동안 절대 성역이었던 종교계, 기독교계마저 조종간이 부러진 채로 항해하는 배처럼 혼란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하여간 세상이 심상찮게 돌아가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여러분, 불안하십니까? 사실은 세상은 원래 불안한 곳인데 사람들은 몰라서 태연하게 살았던 것뿐입니다. 사실은 불안한 세상 속에서 평안하게 살 수 있는 길이 있는데 사람들은 그 길을 몰라서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당장 눈앞에 닥친 위기도 모르고 마냥 태평한 것도 문제고, 바로 앞에 피난처를 두고서도 그것을 몰라 불안에 떨고 있는 것도 문제입니다. 거짓된 정보에 속아 불안해하거나 태평하지도 마시고, 현실을 직시하되 참된 안식처를 거처로 삼아 불안한 사회 속에서도 안전한 피난처에서 평안하게 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안전한 피난처, 꼭 그 피난처에서 거해야 합니다. 그 피난처는 어디일까요? 그렇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피난처입니다. 세상 눈으로 볼 때 아무리 안전하고 태평한 것 같아도 거기에 속지 말고 피난처이신 주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세상이 다 뒤집어지고 깨어지고 부숴지는 것 같더라도 두려워 떨지만 말고 피난처이신 주님 손을 잡고 동행해야 합니다. 동행하면서 그 분 안에서 평안을 누리며 웃고, 그 분의 원하시는 모습대로 서지 못함으로 안타까워 슬퍼해야 합니다. 아름답고 행복한 그 분과의 동행으로 2011년이 대박인 한 해가 되십시오. 아멘.
2. 웃음의 이유도 눈물의 이유도 오직 그 분 때문이어야 하는 예수 그리스도, 온 성도들에게 ‘나의 사랑하는 자’이신 그 분은 어떤 분입니까?
내가 그 분을 알기 전, 먼저 나를 아셨고, 내가 그 분을 만나기 전부터 나를 사랑하신 분입니다. 오늘 읽은 1절 말씀 표현대로 하면 하나님이 아닌 다른 헛된 미신들에게 가서 하나님인 양 섬기고, 그러느라고 몸도 마음도 다 현재진행형으로 더럽히고 있는 음녀 같은 인생들임에도 불구하고 그 죄인인 인생을 향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1절에서 현재진행형 죄인인 인간의 모습을 ‘건포도 과자를 즐길지라도’라고 표현했습니다. 인생들이 주님 밖에서 즐기는 세상의 맛을 건포도의 달고 쫄깃한 맛으로 비유했습니다. 그만큼 좋아 보이고 맛있어 보인다는 뜻이지요. 하지만 그 맛에 취해 있다가 인생은 2절의 표현처럼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 정도의 가치로 뚝 떨어지고 말았음을 일러줍니다.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은 당시 보통 노비의 가격이었습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은 30에 팔았다는 것도 결국 예수님의 가치를 노비 한 명 정도로 생각했다는 얘기가 됩니다.
하여간 주님의 제자들이 사랑하는 자, 그 분은 타락하여 노비 정도의 가치로 하락된 인생들, 저 죽는지 모르고 계속해서 세상의 건포도 맛에 취하여 못 볼꼴을 보이고 있는 인생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주목하여 다시 거두어 들여 사랑해주시는 분이십니다. 죄와 그 죄로 말미암아 생긴 모든 불행으로부터 온전히 구하여 주시는 분입니다. 어떻게? 그 무섭고 많은 죄 값을 대신 치러주심으로 그리하셨습니다. 정말요? 그럼요. 십자가에서 모진 고통과 괴로움을 당하신 것이 바로 그 죄 값을 치러주시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그분의 살점 한 점 한 점이 떨어져 나갈 때 우리의 죄 덩어리들이 떨어져 나갔고 그분의 피가 채찍에 묻어날 때마다 우리의 심령에 묻어 있던 죄악의 때가 씻기어졌습니다. 그분의 양손과 발에 못이 박힐 때, 끈질기게 붙어 떨어지지 않던 마귀의 대갈통이 부서져내렸습니다. 이분이 바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요, 우리가 또한 사랑하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먼저 그 사랑의 대속 안에 나 자신도 포함되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내 죄도 그 희생, 보혈의 공로로 다 깨끗하게 처리되었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분께 자신의 영혼과 육신과 삶을 온전히 맡겨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염치는 없지만 주님의 그 십자가 사랑을 믿고 받아들입니다. 이제 주님 안에서 새 삶을 살게 하시옵소서.”라고 기도하시어서 주님의 사랑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네, 구세주의 사랑 이야기, 영광스런 천국 떠난 사랑, 나와 같은 죄인 구하려, 주님의 그 사랑은 정말 놀랍네 놀랍네 놀랍네, 오 주님의 그 사랑은 정말 놀랍네 나를 위한 것일세”
3. 우리의 사랑하는 자, 예수님은 한 번 사랑을 주신 것으로 끝내시는 분이 아니라 늘 우리와 함께 사랑과 사랑의 기쁨을 누리고 싶어 하시는 분입니다.
먼저, 그분은 우리의 음성 듣기를 원하신다고 했습니다. 대화를 나누기 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말하지 않아도 내 속의 비밀을 아시고 원하는 것을 다 아십니다. 하지만 말을 주고받는 것 자체를 즐거워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목소리를 주님께 들려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못 알아들어서가 아니라 미주알고주알 고하는 성도의 음성을 듣고 싶어 하시기 때문에 소리 내어 하는 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시77,1 시116,1 애3,56)
또한 성도의 노래도 듣고 싶어 하십니다. 분위기 있는 곳에서 달콤한 음성으로 멋지게 하면 더 좋겠지만 그런 것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다 하더라도 진심을 담아 그대를 위해 불러주는 노래를 마다할 연인이 있겠습니까? “작은 빛 환히 밝히면 내게로 그대 온 후에 나 그대 위해 살기에 모든 것 기쁨이지요. 이 밤도 그대 생각에 온 밤을 지새운 것은 오로지 그대 위하여 밤새워 기도한다오. 나의 그대여 이 밤도 촛불 밝혀두고 이 축복 이 행복 우리 사랑 영원하라고 내 기도 내 노래 내 사랑 받아주오 내 기도 내 노래 내 사랑 받아주오”(장철웅; 촛불위에 흐르는 연가) 뭐 별시리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겠죠. 하지만 분명히 알아두십시오. 우리가 사랑하고 또 우리를 사랑하시는 저분, 예수님은 엄청시리 좋아하십니다. 사랑이란 자꾸 표현하고 나누고 주고받을 때에 아름다워지는 것 아닙니까? 표현을 하든 않든 부모가 자식 사랑하고 자식이 부모 사랑하는 것 어디 가겠습니까? 변치 않죠. 하지만 표현할 때, 특히 그대만을 위한 사랑의 노래를 들려줄 때, 그 사랑의 기쁨은 배가 된다는 얘기입니다.
마음이 담긴 선물도 사랑을 키우는 좋은 촉매제입니다. 제가 좀 더 젊었을 때, 어떤 어르신한테 배웠습니다. 어디 갔다 올 때는 빈손으로 집에 가지 말고, 꼭 과자 한 봉지라도 사들고 가라고. 그래서 저는 만족할 만큼은 못해주지만 웬만하면 그렇게 하려고 애씁니다. 특히 나이를 먹어가니까 보이지 않는 것보다 구체적으로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요. 의무감이 아니라 진심이 담긴 것일 때, 선물은 100% 행복감을 상승시켜 줍니다.
성경의 훌륭한 신앙인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차이는 여기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아벨,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세, 여호수아, 사무엘, 다윗, 이들은 모두 믿음의 제물을 준비하여 드리는 ‘제단 쌓기’를 즐거워하던 사람들입니다. 우리들도 모두가 하는 말 아닙니까? 어떤 물건 그 자체보다 정성이 듬뿍 담긴 것을 더 중시한다고.
제 집사람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묻습니다. “나 사랑해?” “얼만큼?” “구체적으로 표현해봐” 그런데, 우리 주님도 그렇구나 하는 것을 깨닫습니다. 주님은 성도와 계속해서 사랑의 교제를 가지면서 성도를 당신의 사랑으로 행복하게 해주고 싶어 하십니다. 그것으로 우리 주님도 또한 행복해 하시기도 하시고요. 이것이 서로를 행복하게 하는 아름다운 동행입니다. 금년 365일 하루하루가 말(기도)로, 노래(찬양)로, 선물(예물)로 주님과의 사랑의 기쁨을 풍성하게 하는 날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4. 마지막으로 3절에 보면 나의 사랑하는 그분은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많은 날 동안 나와 함께 지내고 음행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따르지 말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 하였노라”라고 말씀하시는 분임을 알려줍니다. 많은 날 동안, 즉 오래도록 같이 살자는 것입니다. 이제는 딴 맘 먹지 말고 서로에게 충성하자는 얘기입니다. 우리의 사랑하는 님은 우리의 장래와 미래까지 책임지고 싶어 하시는 분입니다. 지금 2011년의 1월 초순을 살고 있는데 우리의 사랑하는 그분은 이미 3월, 6월, 12월까지 다 가장 좋은 길을 준비해 놓았으니, 눈앞의 일들에 흔들리지 말고 나를 든든히 믿고 의지하여 담대하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지금 세계 최고로 꼽히는 CEO로 애플사의 스티브 잡스를 꼽습니다. 그는 최초의 PC라고 할 수 있는 애플컴퓨터의 창립멤버였습니다만 중간에 회사에서 쫓겨났습니다. 하지만 그는 낙담하지 않았습니다. 고생하던 그는 ‘픽사’라는 애니메이션 영화사를 차려서 ‘토이스토리’로 대박을 터뜨립니다. 그 사이 애플컴퓨터사는 마이크로소프트사에 밀려 완전히 망하게 되었는데, 1997년 다시 애플사의 최고경영자로 컨택되었습니다. 지금 다 알다시피 그는 아이폰, 아이맵 등을 개발하여 퇴출되었던 애플사를 세계에서 가장 가치가 높은 IT회사로 탈바꿈시켰습니다. 시련은 끝이 아니었습니다. 췌장암에 걸려 지금도 CEO로서의 자격이 있네 없네 하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만 그는 그 모든 시련에 지지 않았습니다. 그의 부하직원에게는 연봉으로 5,900만 달러(약 700억 원)를 주면서 자신은 지금까지의 연봉이 단 1달러만 받는다고 하니 놀랠 일입니다.
여러분, 어지러운 세상의 뉴스에 낙담하지 마세요. 괜히 호기를 부리지도 마세요. 우리의 사랑하는 분, 우리의 장래까지 행복하게 해줄 마스터플랜을 가지고 계신 그 분을 피난처로 삼고 그와 아름다운 동행만 하십시오. 멋진 한 해를 살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