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사천시에서는 강화만녕재대제 차 주인 10월 20일(목)부터 23일(일)까지 4일간 사천시청광장 일원에서 고려 현종의 넋을 기리고 역사성을 부각코자 제1회 고려현종대왕축제 행사를 개최한다고 한다.
과거 와룡문화제란 이름으로 개최해오다 코로나로 작년까지 순연되었다.
기간 중 제례는 20일 오후5시 30분부터 시작하여 30분간 봉행된다고 하는데 평일이라 참사가 어려워 개성왕씨 후손으로서 안타깝다. 여건이 되면 참사할 계획이다.
사천시의 행사 전단과 인터넷 자료를 참고하여 현종의 일대기를 꾸며본다.
조선판 세종이신 고려제8대 왕 현종(왕순)은 성종11년, 서기992년 음력 7월 1일 탄신하여 현종22년, 1031년 음력 5월 25일 붕어하셨다.
1009년 음2월 3일부터 1031년까지 23년 재위한 왕으로서 태조의 8번째 아들 안종(추존) 왕욱(王郁; 태조5비 신성황후 김씨 소생)과 경종의 4비 헌정왕후 황보씨 슬하 소생이시다.
고려제5대왕 경종이 승하하자 그의 부인인 헌정왕후는 궐 밖에서 생활하던 중 숙부인 경주원군(왕욱)과 사랑에 빠져 임신을
하게 되고 이 사실이 당시 헌정왕후의 친오빠인 제6대왕 성종의 귀에까지 들어가 경주원군은 지금의 사천시 사남면 능화 마을로 유배를 가게된다.
헌정왕후는 아이를 낳고 충격으로 얼마 후 생을 마감하게 되니 그 아이가 바로 기구한 운명을 타고 태어난 왕순이다.
왕순은 보모에게 맡겨져 키워졌고 아버지를 찾는 조카를 보고 성종은 안타까운 마음에 사천 정동면 대산마을
배방사(옛 지명; 노곡사)로 2살된 조카를 보내 거주하게 하였고 경주원군은 매일 10킬로미터의 거리를 걸어 아들을 만나러 다녔다한다.
996년 귀양 온 지 4년 만에 경주원군이 병사하자 이듬해인 997년 6살 되던 해 왕순은 개경으로 돌아왔다.
12세에 대량원군에 책봉 되었다가 이모 천추태후와 김치양에 의해 강제로 숭교사로 보내져 승려가 되었고 이후
서울 은평구 진관외동 삼각산 신혈사(후일 폐사되었고 지금의 진관사 자리이다.)에서 수도 생활중 대량원군을 살해코자 하는 모의가 있었으나 진관조사의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하였고 강조의 정변으로 18세에 왕위에 등극하게 되었다.
2, 3차 거란 침략이 있었으나 강감찬의 귀주대첩으로 물리쳤고 백성의 마음을 달래고자 대장경 6천여권을 조판케 하였다.
현종의 장자는 제9대왕 덕종(왕흠), 차자는 제10대왕 정종(靖宗)(왕형), 3자는 고려 시대 찬란한 문화 황금기를 이룩한 제11대왕
문종(왕휘), 4자는 평양공(왕기)이다.
한편 제4대왕 광종에 의해 사사된 효은태자(왕원)의 장자 왕림과 직계 선조이신 차자 온결공 왕유 선조는 50여년간 민가에 숨어
지내다 현종 즉위 후 비로소 작위를 받고 노비와 토지를 하사받았다.
3년 후인 1012년 3월 온결공은 별세하였고 공부상서 관직을 추증받았다.
현종은 고려 왕조의 기틀을 다지는데 크게 기여한 군주로 평가받고 있다.
제8대 현종 이후 제34대 공양왕까지 모두 현종의 혈통을 이어받았다.
상세한 현종대왕축제 내용은 사천문화재단(전화 055-835-6136)으로 문의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