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람 호퍼 박사의 정신분열증 치료 사례 (3)
상비 선사2015. 5. 28. 22:33
1999년 5월 6일, 아내와 함께 쇼핑을 하고 있는데, 한 남자가 다가와 나를 아는 듯 인사를 하였다. 여러 해 전에 나를 만났고, 자기가 16년 동안 술을 마시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좋아 보였고 말쑥하게 차려입고 우리처럼 식료품을 쇼핑하고 있었다.그는 여전히 자기 생각에 효과가 대단하다고 믿게된 나이아신을 하루 3g씩 먹고 있다고하고 우리는 나이아신을 가장 잘 복용하는 법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오늘 아침 그의 파일을 뒤져보니, 내가 그를 처음 정신과 중환자실에서 본 것이 1976년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그는 살아오는 동안 늘 감정기복(mood swings)으로 고생해왔다. 진단명은 만성 정신분열증이었다. 1970년에 암피타민(amphetamines)을 과다 복용한 후 정신병원에 수용되었다. 그 후로도 많은 병원을 전전하였다. 환각(환청, 환시), 편집증적생각, 감정기복이 있었고, 가끔 과도흥분상태가 되기도 하였다. 그는 매우 우울하였다. 여러 차례 싸움을 벌이기도 하였는데,나는 그가 자살충동이나 살인충동이 있다고 판단하였다. 1977년에 다른 서비스를 받았는데 비타민은 전혀 제공되지 않았다. 조울증 진단도 받았다. 과음도 하였고, 마약도 하였다. 그를 만난 후 매 식후 나이아신 1g, 비타민C 1을 처방하였다.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것인이 1981년 8월5일 이었다. 17년 동안 술을 자제하고 엄격하게 처방을 따랐다. 그가 나이아신과 비타민C에 보인 반응은 여러 해 동안 이 비타민들을 지속적으로 복용하면 만성환자들에게 어떤 결과가 생기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1999년 12월3일, 뉴욕타임즈의 수잔 사흐는 토론토 Globe and Mail에 뉴욕 브룩클린에 사는 기돈 부쉬(Gidone Busch)의 죽음을 보도하였다. 대법원이 청문회를 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아마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하지 않을 것이다. 21살의 총명한 의과대 학생이 제대로 치료되지 못하고 정신분열증적 행동으로 죽음에 이르게 되었을까? 그의 병력은 사흐 기자가 쓴 것대로라면 전형적인 지적으로 똑똑한 정신분열환자의 병력이다. 치과의사 출신인 아버지는 그를, " 의심의 여지 없이 그 아이는 정신질환이 있었습니다"라고 말하였다. " 그러나, 결코 폭력적이지는 않았어요." 이 청년은 정신병원에 세 차례 수용되었고, 편집증적 정신분열증 진단을 받았다. 담당 정신과 의사들이 소환되어 이 환자의 질병에 대해, 그들이 사용한 진정제와 치료 실패 경험과 치료효과가 높은 분자교정적 치료법을 제공하지 않은 이유를 진술하게 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정신과 의사들이 이런 질문을 해 보아야 할 시점이 아닐까? 외과의사들이 치료실패에 대해 병리학자들의 질문에 답해야 한다. 정신과에도 비슷한 시스템을 갖추어야 하지 않을까? 정신과의사들이 가장 인기있는 치료법이 아니라, 가장 좋은 치료법을 사용해야 하지 않을까?
1999년 8월24일Miriam Shuchman 박사가 Globe and Mail지에서 의료계는 항공산업에서 배울 필요가 있다는 언급을 하였다. 항공산업에서 규모가 증가하고 복잡해졌음에도 사망자의 수는 현저히 줄어 들었다. 중대 추락사고가 날 때마다 원인을 밝히고 유사사건을 예방하기 위한 조사가 뒤따랐다. 이것은 중요한 생각이다. 정신분열환자가 살인을 하거나 자신이 죽게 되면 유사한 강도 높은 조사를 통해 원인과 나은 치료법을 찾아야 한다. 50년 전 레지던트와 직원들을 위한 한 임상모임에서, 정신과 교수였던 나는 같은 제안을 한 적이 있었다. 우리는 일부 환자들이 퇴원 후 곧 바로 다시 입원하는 사실을 토론하였다. 나는 실패한 이유가, 환자를 다루기 힘들어서 지, 잘못된 치료법을 사용한 때문인지, 사회심리적 요인 때문인지 밝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렇게 하면 치료법에 대해 더 알게 되고, 재입원 숫자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하였다.정신과에서 개방형문 정책이 자리 잡을 시점이었다. 차가운 분위기 속에, 찬성도 반대도 없는 가운데 회의는 진행되었다.
-김일용(자연의학 칼럼니스트,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