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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2
“진정 힘 있는 자는 자신의 성격을 스스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다.” 마키아벨리의 말이다. 현대의 마키아벨리를 자처하는 로버트 그린의 해석이 가미된 말이지만, 내가 해석한 두 사람의 메시지는 동일하다. “성격의 노예가 되지 말고 주인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나는 언제부턴가 대통령 문재인의 착한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체질상 정말 내키지 않는데도 ‘운명’에 의해 차출돼 하는 일이라서 그런가 보다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설명할 수 없는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른바 ‘책임회피형 성격’ 때문에 그러는 건 아닐까? 이에 대해 말씀드려 보겠다.
▲ 문재인 대통령이 10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2022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최중철·신평의 ‘책임회피형’ 대통령론
문재인의 책임회피형 성격을 가장 먼저 지적한 사람은 정신과 의사 최중철이며, 이를 널리 알린 사람은 판사 출신 변호사 신평이다. 신평은 누구인가? 대구·경북에서 진보적인 목소리를 많이 냈던 그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촉구 촛불 집회에 거의 매번 참여했으며, 19대 대선 땐 문재인 캠프에서 공익제보지원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한 친문(親文) 인사 출신이다.
신평은 이른바 ‘추·윤 갈등’ 당시 문재인의 굳은 침묵에 대해 “과연 그는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의도로 지금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일까. 나는 여기에 도저히 해답을 찾지 못하겠다”고 탄식했다. 그러면서 신평은 “정신과 의사 최중철이 여기에 해답을 제시하려고 한다”며 최중철의 성격 분류론(공격적인 장(腸) 중심형, 은둔적인 머리 중심형, 의존적인 마음 중심형)을 소개한다. 이 분류에 따르면 문재인은 ‘의존적인 마음 중심형’이라는데, 그 특징은 다음과 같다고 한다.
“자신과 같은 편이라고 생각되는 이들에게는 한없이 선한 의도를 갖고 대하나, 반대쪽의 이들에게는 무관심하다. 이 성격 자체가 내 편, 네 편을 가르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내 편에만 충성스럽게 대하는 것이고, 내 편에만 의지하여, 그리고 내 편을 통해 안전을 확보하려고 한다. 그리고 이 성격의 가장 큰 특징은 자신이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회피하는 점이다.”(관련 기사 ‘신동아’, 2020년 11월 25일, [신평의 풀피리⑰] 추미애 활극에 침묵 文, 참모형 대통령의 비극)
과연 그런 것인지 좀 구체적으로 따져보기로 하자. 문재인은 매우 소극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정치권에서 쓰는 ‘정무’라는 용어는 주로 갈등의 조정이나 타협을 하는 역할이나 분야를 뜻한다. 대통령비서실 정무비서관의 역할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문재인은 이런 정무 역할을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싫어한다. 문재인이 노무현 정부의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 비서관직을 사임하고 잠시 야인으로 있던 2007년 2월경, 50년 친구인 황호선과 막걸리를 마시면서 나눈 대화 한 토막을 들어보자.
문재인의 정무적 업무에 대한 혐오
문: “요즘 한 가지 고민이 있다.”
황: “뭔데?”
문: “대통령께서 내게 다시 청와대로 들어와 일을 해달라고 하시는데 답을 못했네.”
황: “어떤 일을?”
문: “비서실장직을 맡아달라고 하시네.”
황: “아니, 대통령께서 참여정부 임기 말에 국정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당신이라 판단하여 그렇게 말씀하시고, 당연한 요청일 텐데 왜 망설이는가?”
문: “비서실장직이 문제가 아니라, 비서실장이 겸하고 있는 정무수석비서관 역할 때문이야.”
황: “그래서 비서실장직을 맡기 어렵다고 말씀드렸나?”
문: “응…‘비서실장이 겸하고 있는 정무수석의 역할을 제가 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씀드렸지.”
황: “그래? 대통령께서 뭐라고 답하시든?”
문: “‘정무수석 역할은 나한테 다 맡기고, 니는 정무적 역할 외의 비서실장 본연의 역할만 하믄 된다’라고 말씀하시더라.”
황: “그러면 왜 망설이노?”
문: “그래도 어떻게 대통령께 그 일을 하시게 하겠노…(고민정 외, ‘그래요 문재인’(2017), 160~161쪽.)”
결국 그로부터 2주 후 문재인은 비서실장에 임명됐지만, “비서실장으로서 국정 현안을 처리하는 와중에서도 정무적 업무만은 한사코 사양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 본격적으로 정치판에 뛰어들어 대통령까지 됐으니 이젠 달라지지 않았을까? 많은 게 달라지긴 했겠지만, 갈등 상황을 다루는 정무적 역할을 싫어하고 거부하는 성격은 그대로인 것 같다. 이 성격을 이해하면 그간 문 정권에서 일어났던 도무지 이해할 수 없던 일의 비밀이 전부는 아닐망정 상당 부분 풀린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게 있다. 문재인이 모든 갈등 상황을 다 싫어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적폐청산의 경우처럼 자신이 쉽게 선악 이분법으로 대처할 수 있는 일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밀어붙이지만, 사안이 조금만 복잡해지면 한사코 피하려고 든다. 이른바 ‘의도적 눈감기(willful blindness)’가 작동하는 것이다. 그로 인한 혼란과 갈등의 증폭이 극에 이른 게 바로 ‘조국 사태’였다. 때로 언론은 문재인에게 대단한 전략과 전술이 있는 것처럼 해석하곤 했지만,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문재인의 책임회피형 성격이 모든 걸 설명해 줄 수 있다. 이제 그런 주요 사례 몇 가지를 감상해 보기로 하자.
노무현 정권의 검찰개혁이 실패한 이유
▲ 2003년 6월 17일 당시 강금실 법무장관(오른쪽)이 청와대에서 열린 사회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송광수 검찰총장(가운데) , 문재인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과 함께 회의장에 들어서고 있다. [동아DB]
첫째, 노무현 정권의 검찰개혁이 실패한 사건이다. 실패엔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당시 민정수석이던 문재인의 책임회피형 성격이 일조했다. 당시 ‘한겨레’의 검찰 전문 기자였던 김의겸은 2017년 6월에 출간된 최강욱의 대담집 ‘권력과 검찰: 괴물의 탄생과 진화’에서 “청와대의 문재인, 당의 천정배, 법무부의 강금실 세 사람이 똘똘 뭉치고 합심해도 될까 말까인데, 다 따로 놀았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강금실 장관도 ‘왜 나를 보호해 주지 못했느냐’라면서 문재인 수석한테 굉장히 서운해했어요. 1년 정도 장관 하다가 김승규로 교체됐잖아요. 그래서 ‘이제 뭔가 해볼 만한데 나를 보호해 주지 못했다’는 서운한 감정이 있었다고 해요. 세 사람이 다 모래알처럼 따로 놀았다는 점이 실패 요인 가운데 하나라고 봅니다.”
당시 강금실의 심경은 어떠했을까? 대한민국 검찰 인사를 책임지면서 사법연수원 10기수 선배인 검찰총장을 지휘해야 했으니 그 부담이 엄청나게 컸으리라는 점은 쉽게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강금실은 최근 그때의 심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무 무서웠다. 나는 팀을 꾸리지도 않고, 혼자서 법무부에 갔다. 거의 죽으러 가는 상황이었다. 사생활이 끝났다는 생각, 감당하기 어려운 걸 선택했다는 느낌이었다. 밖에서 보듯 룰루랄라 하면서 간 게 아니다. 낙마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앞서 황산성·손숙 등 여성 장관들이 있었지만 언론이 가만히 놔두지 않아 큰 활약을 못 하고 물러났다.”(관련 기사 ‘조선일보’, 2021년 5월 22일, 강금실 “친문의 문자폭탄은 폭력, 강자의 행동으로 볼 수 없어”)
강금실이 역량을 발휘할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한 채 노 정권의 검찰개혁이 실패로 돌아가고 만 것에 대한 가장 큰 책임은 문재인에게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당·정·청이 따로 놀면 그 책임은 사실상 사령탑 노릇을 하고 있는 청와대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이하랴. 민정수석이긴 하지만 당·정·청의 조화와 협력을 이루려면 정무적 역할이 필요한데, 정무적 역할이라고 하면 그건 못 한다며 펄펄 뛰는 문재인이 아니던가.
김의겸이 지적한 또 하나의 이유가 의미심장하다. “검찰개혁을 하려면 국민적인 열망이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손을 대려고 하면 ‘왜 손대, 지금 검찰 잘하고 있는데’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바람에 동력을 상실해 버렸어요.” 문 정권 인사들은 이때의 경험 덕분에 ‘국민적 열망’이 중요하다는 건 깨달은 것 같은데, 하나는 알고 둘은 몰랐던 것 같다. 중요한 건 ‘국민적 열망’인데 ‘반쪽의 국민적 열망’으로만 밀어붙이려고 했으니 말이다.
지금은 검찰개혁 강경파로 변신한 김의겸이 2017년까지만 하더라도 점진적 온건론자였다는 것도 많은 걸 시사해 준다. 그는 검찰개혁을 “전폭적·전면적으로 하기보다는 권한을 점차적으로 조정하면서 진행할 수 있는 방법”이 좋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경찰도 15만인데 권한이 집중되면 검찰 못지않은 권력을 가지게 되잖아요. 그것도 지방경찰별로 끊어서 한다든지, 지방경찰화를 먼저 해놓고 검찰이 가진 수사권 가운데 일부는 넘겨주는 방향으로 가야 할 것 같아요. 분할해서 1단계 2단계 3단계 등 단계별로 넘겨줄 수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해요. 개혁이라는 게 한꺼번에 할 수도 있지만 이게 문화와도 연관되는 문제잖아요.”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을 수 없는 탁견이다. 그러나 이런 탁견은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문 정권은 집권 후 처음 2년간 검찰개혁엔 신경을 거의 안 쓰거나 오히려 역행하는 일을 많이 했다. 그래놓고선 ‘조국 사태’ 이후 전세 역전을 위해 갑자기 검찰개혁을 꺼내 들면서 정파적 선전·선동에 주력했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두 개로 쪼개진 나라’를 만들고 말았다!
이상돈 비상대책위원장 사건은 누구 책임인가?둘째, 이상돈 비상대책위원장 사건이다. 2014년 4·16 세월호 참사의 충격에도 불구하고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6·4 지방선거와 7·30 재보선에서 좋은 성적을 얻지 못했다. 아니, 패배라고 볼 만한 결과였다.
이렇듯 큰 어려움에 처해 있던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의 원내대표 박영선은 당의 쇄신을 위해 9월 10일 같은 MBC 출신인 김성수, 최명길 의원과 함께 새누리당 비대위원 출신인 중앙대 명예교수 이상돈을 만났다. 박영선은 이상돈에게 새정치민주연합의 비대위원장을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이상돈은 깜짝 놀랐지만 실세인 문재인과 당 공동대표 김한길도 동의한 일이라고 해서 다음 날 박영선과 함께 문재인을 만났다. 꽤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눈 그 자리에서 문재인은 이상돈에게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바로 그날 이상돈을 서울대 교수 안경환과 함께 공동 비대위원장으로 영입하려 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54명은 “이 교수의 비대위원장 영입을 반대한다”며 성명서를 냈다. 특히 친노(親盧) 강경파가 거세게 반발했다. 다음 날 새정연 의원 정청래는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를 단독이든 공동이든 위원장으로 영입한다면 박영선 퇴진 투쟁을 불사하겠다”며 “이 교수 영입은 우리 당의 기본 가치와 자존심을 짓밟는 행위”라고 주장했다. 심지어 그는 “새정치민주연합의 근본적 부분에 대한 9·11 테러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도 했다.
자, 상황이 이렇게 됐으면 문재인이 나서야 할 때가 아닌가. 그러나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굳게 침묵했다. 문재인이 사전에 이상돈을 만났다는 언론보도가 나오자, 문재인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는지 아니면 더 이상의 내분을 막기 위해서였는지, 박영선은 아무 말 없이 9월 13일 이상돈 영입 추진을 철회하기로 했다. 그리고 10월 2일 원내대표를 사퇴했다. 착한 성품인 것 같다. 아니 속이 없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는 7년 후 더불어민주당의 서울시장 보궐선거 경선 레이스에서 친문 당원들의 표심을 잡아보겠다고 “대한민국은 문재인 보유국”이라고 외쳐댔으니 말이다.
박영선도 착했지만, 이상돈도 착했다. 이상돈은 ‘시대를 걷다: 이상돈 회고록’(2021)에서 이 사건에 대해 이렇게 담담하게 말했으니 말이다. “돌이켜 보면, 박 의원이 문재인 의원의 말을 너무 믿은 것이 잘못이었다. 문재인 의원은 처음에는 동의했다가 주변과 지지 세력이 반대하니까 물러나고 만 것인데, 그나마 내가 그 부분을 커버해 주어서 파동이 더 이상 커지지 않았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사건은 누구 책임인가?
▲ 2016년 1월 27일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민주당 중앙위원회 회의에 참석해 나란히 서 있다. [동아DB]
셋째,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 사건이다. 20대 총선을 넉 달 앞둔 2016년 벽두에 당시 민주당 대표 문재인은 김종인의 집에 다짜고짜 쳐들어갔다. “난 당신 볼일 없으니 가시오!”라고 뿌리치는 김종인을 무시한 채 거실 소파에 눌러앉아 “우리 당 비대위원장이 돼달라”며 읍소했다. 새벽 1시가 넘도록 끈질기게 버텼다고 한다.
김종인의 고집도 대단하지만, 문재인의 고집이 한 수 위였던 것 같다. 오랜 기다림 끝에 문재인이 결국 김종인을 영입하는 데 성공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내 문제가 터졌다. 민주당이 ‘비례 2번 준다’는 약속을 뒤집고 ‘10번대’를 제안하자 김종인이 당무를 거부하고 칩거한 것이다. 김종인의 부인 김미경의 증언을 들어보자.
“선거 보름 앞둔 때였다. 문 대통령이 급하니까 집에 다시 왔다. 또 그 거실 소파에 앉아 읍소하더라. 남편은 화가 나 말을 안 하니까 나만 쳐다보며 ‘사모님 제가 약속한 것, 거의 다 들어드렸지 않습니까’ 하더라. 실은 약속 안 지킨 게 얼마나 많은데. 그래서 내가 문 대통령에게 약속 위반 사례를 30분 넘게 줄줄이 얘기했다. 그러자 얼굴이 벌게지면서 ‘이제 와 어떡합니까?’ 하더라. ‘2번 주기로 했으면 그렇게 하세요’라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김종인에 2번이 웬말이냐’며 남편을 맹공했던 조국 욕을 좀 했다. 그러자 그날 밤 조국이 갑자기 ‘김종인에 2번 주는 건 괜찮다’고 SNS에 쓰더라. 내 참….”(관련 기사 ‘중앙일보’, 2021년 4월 15일, 선거 이기자 입 싹 씻은 문재인, 선거 이기자 바로 오만해진 국민의힘)
민주당 인사들이 ‘셀프 공천’이라는 모욕적인 표현까지 만들어 김종인을 비난하거나 조롱했을 때, 문재인은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이젠 독자들이 답을 잘 알고 있을 게다. 김종인은 ‘영원한 권력은 없다: 대통령들의 지략가 김종인 회고록’(2020)에서 “내가 모멸감을 느끼는 부분은 우선 이것이다”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밤늦게 우리 집까지 찾아와 ‘위기에 빠진 당을 구해 달라’ 부탁했던 사람, 선거 승리만을 위해 민주당에 가지는 않겠다고 하니까 ‘비례대표를 하시면서 당을 계속 맡아달라’고 이야기했던 사람이 그런 일이 발생하자 전후 사정을 설명하지 않고 나 몰라라 입을 닫은 채 은근히 그 사태를 즐기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그것이 나를 더욱 슬프고 분노하게 만들었다. 애초에 정치인의 말을 온전히 믿지 않았지만, 들어오고 나갈 때의 태도가 다르다더니, 인간적인 배신감마저 느꼈다. 이런 건 정치 도의를 떠난 기본적인 인성의 문제다.”
이젠 흘러간 역사가 됐지만, 민주당은 김종인 덕분에 20대 총선에서 원내 제1당에 오르는 대박을 쳤다. 그런데 총선 끝나자마자 “문 대통령이 입을 싹 씻더라”고 김종인은 회고했다.
“총선 뒤 1주일이 넘도록 연락 한 번 안 하더라. 보다 못해 ‘저녁 먹자’고 불렀다. 대뜸 ‘당대표 출마하실 겁니까?’ 묻더라. 어이가 없어서 ‘여보쇼! 내가 대표하려고 민주당 오겠다 했소?’라고 쏘아붙였다.”(관련 기사 ‘중앙일보’ 2021년 4월 15일자)
이 만남을 두고서도 양측에서 서로 다른 말이 나왔다. 만찬 이후 문재인 측은 “현실적으로 당대표 추대가 불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을 전달했고, 김 위원장도 ‘당권에 관심이 없다’고 답했다”는 이야기를 언론에 전했다. 이에 대해 김종인은 “말을 만들어서 한다”며 “문재인 대표와 대화할 때는 녹음기를 켜놔야 한다”고 했다. 이에 대해 “문재인 대표의 두루뭉술 화법을 꼬집은 것이었다”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文, 착하기만 하고 전권 위임을 못 한다”넷째, 권한도 주지 않고 책임도 묻지 않는 인사 스타일이다. 문재인 정권은 전형적인 ‘청와대 정부’다. 정치학자 박상훈은 ‘청와대 정부: ‘민주 정부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다’(2018)에서 청와대 정부를 “대통령이 임의 조직인 청와대에 권력을 집중시켜 정부를 운영하는 자의적 통치 체제”로 정의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정부가 청와대로 협소해지고, 열렬 지지자들의 여론만 크게 들리게 되면, 시민은 분열되며 정치는 적극적 지지자와 반대자로 양분되는 결과를 피할 수 없다. 문 대통령이 민주적 원리에 맞는 책임 정부가 아니라 청와대 정부를 만든 것이 가져온 폐해는 생각보다 크게 나타날 것이다.”
그런 폐해 중 대표적인 것이 인사 문제다. 문 정권의 대표적 실정이 부동산 가격 폭등이라는 점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 아닌가. 그런데 문 정권은 2020년 12월 4일 4개 부처 장관을 교체할 때 부동산 문제를 다룬 국토교통부 장관 김현미에 대해 “경질이 아니다”라며 “새로운 정책 수요가 있어 변화된 환경에 맞춰 현장감 있는 정책을 펴기 위한 변화”라고 강조했다. 언제는 문책성 경질이 있었던가? 문책을 하고 싶어도 하려야 할 수 없는 구조라는 게 중요하다.
문재인의 인사 스타일은 노무현 정부의 인사를 담당했던 전 대통령비서실 인사수석 정찬용이 보기에도 답답하고 한심한 수준이다. 그는 2021년 6월 29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부동산 투기와 거짓 해명 논란 끝에 경질된 전 반부패비서관 김기표에 대한 말을 꺼내자 “아…”라는 긴 탄식과 함께 “답답하다. 저도 정말 답답해요”라는 반응을 보였다.
정찬용은 처음엔 “내가 비판하면 듣는 분(문재인)도 불편하실 것”이라며 김기표를 비롯해 부실 검증 논란의 중심에 선 인사수석 김외숙 관련 언급을 한사코 마다했다. 그러다 “청와대에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자 “그럼 상황이 이렇게 됐는데 인사수석이 책임지지 않으면 문재인 대통령이 책임지란 말이냐”며 김외숙을 직접 겨냥한 말을 이어갔다.
정찬용은 “문 대통령은 김외숙 수석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다. 30년 인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문 대통령이 너무 선한 분이다. 사나이다웠던 노 전 대통령은 그냥 ‘정 수석이 알아서 하라’고 하면 내가 엎어먹건 돌려먹건 상관하지 않았다. 전권을 위임하니 자신감을 가지고 했는데, 문 대통령은 착하기만 하고 전권 위임을 못 한다.”
민주당 대표 송영길은 지난 7월 5일 관훈클럽 초청토론회에서 ‘김기표 사건’과 관련해 “인사수석실·민정수석실을 전반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며 “이너서클(내부 핵심)이니 그냥 봐주고 넘어가는 것이 되면 안 된다”는 센 발언을 했지만, 문제는 더욱 근원적인 곳에 있었다.
전권 위임을 못하니 책임도 물을 수 없다. 부동산 정책만 하더라도, 그게 어디 김현미 홀로 세웠겠는가? 청와대가 거의 다 주물럭거렸을 텐데, 무슨 수로 김현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었겠는가 말이다. 김외숙이 져야 할 책임에 대해서도 청와대 관계자들은 “이번 사태는 절대 인사 라인의 잘못이 아니다. 특히 김 수석에 대한 경질 가능성은 없다”고 입을 모으면서도 ‘책임 소재’를 묻는 말에는 하나같이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는 게 무엇을 뜻하겠는가.
정무적 역할은 피하는 미시적 책임감
▲ 2019년 10월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9차 고위당정협의회에 참석한 이낙연 국무총리(왼쪽에서 네 번째), 조국 법무장관(왼쪽에서 세 번째),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오른쪽에서 두 번째), 이인영 원내대표(오른쪽에서 첫 번째) 등이 개회 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양회성 동아일보 기자]
그런데 여기서 또 한 가지 주의할 게 있다. 책임회피형 성격을 가진 사람을 곧장 ‘책임감이 없는 사람’으로 오해하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문재인은 책임감이 매우 강한 사람이다. 오히려 너무 강해서 문제일 정도다. 문제는 문재인이 자신의 성격에 맞게끔 책임감을 재정의했다는 것인데, 이는 그가 거시적인 갈등 상황에서의 정무적 역할은 피하면서 정무적 역할과는 무관한 미시적인 책임에만 충실한 것으로 나타난다.
문재인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매우 꼼꼼한 성격이다. 물론 강한 책임감 때문이다. 그는 변호사 시절 소송 기록이 아무리 많아도 그것을 읽어보며 직접 검토하느라 항상 바빴다. 그런 꼼꼼함은 그의 버릇이자 스타일이 됐다. 문재인이 변호사나 대통령의 참모 정도에만 머물렀다면, 그런 꼼꼼함과 치밀함은 큰 장점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역할은 다르다. 큰 그림을 그리면서 사회적 갈등의 큰 줄기에 더 주목해야 하는 자리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문재인은 꼼꼼함과 치밀함에만 묶여 있었다.
앞서 보았듯이, 문재인은 주변의 반대가 많으면 쉽게 자기 뜻을 꺾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주변 인사들 중 누가 문재인의 귀를 장악하고 있느냐가 중요해진다. 조국 법무장관 임명 건만 해도 그렇다. 문 정권의 주요 인사들은 ‘조국 사태’를 ‘윤석열의 쿠데타’라고 떼를 쓰면서 여론조작을 시도해 왔지만, 그건 진실과 거리가 멀었다.
문재인이 인사 청문 요청안을 국회에 제출한 건 8월 14일이었고, 검찰이 압수수색에 들어간 건 고발 접수 1주일 만인 8월 27일이었다. 8월 14일에서 8월 27일까지의 13일간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조국의 비리 의혹에 관한 언론보도가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과거의 비슷한 사례에 비추어 보더라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문재인이 조국 임명 직전에 국무총리 이낙연, 대통령비서실장 노영민, 민주당 대표 이해찬, 원내대표 이인영의 의견을 청취한 것도 바로 그런 여론의 분노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게다. 권경애가 쓴 ‘무법의 시간: 어쩌다 우리가 꿈꿨던 세상이 이 지경이 되었나?’(2021)에 따르면 이낙연은 반대, 노영민은 침묵, 이해찬과 이인영은 임명 강행을 주장했다. 임명 강행의 논거는 검찰과 야당과 언론의 공격에 굴복하지 말라는 민주당 당원들의 마음을 배반해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문재인이 문제인가, 이해찬·이인영 같은 강경파가 문제인가? 전체 판도를 읽지 못하는 이해찬·이인영의 강성 기질과 무능이 딱하긴 하지만, 문재인 역시 자신의 책임회피형 성격에 굴복했다는 점에서 면책되기 어렵다. 성격은 절대 바꿀 수 없는가? 이 글 첫머리에 소개한 로버트 그린의 해법은 “고정된 본성을 극복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하면서 의도적으로 평소와는 다른 접근법이나 스타일을 시도해 보라”는 것이다. 이미 늦었다고 포기할 일이 아니다. 남은 짧은 기간이나마 문재인이 ‘책임회피형’ 대통령과는 거리가 먼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신동아 2021년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