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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광주전남시조문학 제15집 <특별기고>
시조, 꽃의 마음을 읽다/ 서연정
시조(時調)는 한국 정형시이다. 향가, 고려가요, 가사 등 우리 민족의 시가(詩歌) 장르가 성쇠(盛衰)하는 중에도 시조는 여전히 그 고유한 율격을 지키고 있다. 미래에도 가장 활발하게 창작 계승되어야 할 우리 시가의 보물이라 하겠다. 김제현 시인은 “시조는 한국인의 성정과 시대정신을 4음보율로 표현하는 3장의 서정시”라고 정의하였다. 시조의 장(章)은 자유시의 행(line)과는 다르게 각각의 의미 단위를 형성한다. 즉, 세 개의 의미 단위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한 작품을 이루어내는 것이다. 글자 수를 일일이 맞추어 쓰지 않지만 모국어의 특성상 대개 시조 한 수는 40자에서 50자 사이에서 완성되어진다.
옛시조는 옛사람의 삶의 양식과 리듬을 표현하였는데, 현대시조는 오늘의 시대정신과 현대인의 삶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까. 특히 꽃에 대한 시조의 관심 지점이 궁금하다. 켈트 문화권에서 꽃은 영혼, 태양, 영적 개화를 상징한다. 다양한 상징성 때문일까, 꽃의 육체가 아름다운 인간의 나신 같아서일까, 우리는 꽃에 속수무책 매료당한다. 그러기에 화가는 누드를 그리고 조각가는 벌거벗은 육체의 당당하고 건강한 아름다움을 새겼다. 겉치레가 없는 절대순수에서 우리는 무한한 감동을 느끼고 삶의 피로를 위로받게 된다. 장황한 말장난을 거부하는 절제의 품격, 시조가 읽은 꽃의 마음 쪽으로 발길을 옮겨 보자.
봄이면 선암사 홍매를 만나러 갈 만하다. 문순태 작가는 자신의 소설 「아버지의 홍매화」에서 심은 지 6백년쯤 되었다는 선암홍매를 말하기를 “백양사 고불백매는 문자 그대로 깨달음이 깊은 노스님을 만나는 기분이라면 선암홍매는 이 풍진 속세의 온갖 풍파를 다 견뎌내고 외롭게 살아온 늙은 기생을 보는 듯했다.”라고 하였다. 사대주의를 여태 못 버린 이름 ‘대명매’가 언짢기는 하지만 전남대학교 교정의 오래된 매화나무도 볼 만하다. 조운 시인의 「고매(古梅)」를 읊지 않고 봄을 어찌 보내랴. 조운 시인은 1900년 전남 영광에서 출생하였으며 1921년 동아일보에 시를 발표하였고 1922년 시조동호회인 ‘추인회(秋蚓會)’를 창립, 회원 30명이 월1회 창작시조를 발표하고 등사판으로 시조집을 간행하기도 하였다. 시인은 1949년 월북하였다. 이런 연유로 오랫동안 그의 작품은 거론 자체가 쉽지 않았었다.
고매(古梅)
梅花 늙은 등걸
성글고 거친 가지
꽃도 드문드문
여기 하나
저기 둘씩
허울 다 털어버리고 남을 것만 남은 듯.
-조운, 시집 『구룡폭포』에서.
오랜 세월 풍상을 겪을 만치는 겪었으니, 가지도 성글고 거친 나무이다. 그렇다고 불만을 품고 있지도 않다. 평정심에 이르렀으니 말수가 많을 리 없다. ‘허울 다 털어’버리고 꼭 필요한 것만을 남겨 가지고 있다. 이 시조가 무소유의 모습을 핍진하게 그리고 있다면 다음 시조는 구도의 경지를 열어가는 정신의 극치를 보여준다. 송선영 시인은 1936년 광주 운암동에서 태어나 195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와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동시 당선하였다. 화려하게 문명(文名)을 떨치며 등단한 송선영 시인은 치열한 역사의식과 현실인식으로 문학적 진정성을 인정받았으며 ‘전남학생시조협회’를 만들어 광주 지역 고등학생들에게 시조를 지도하였다. 그때의 그 제자들이 현재 시조단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며 스승께 영광을 돌리고 있다. 시조 「파안-꽃나무」를 보자.
파안(破顔)- 꽃나무
나무가 길 없는 길, 단벌 넝마로 수행했네
살여울 세한 건너, 덴가슴도 꾹 꾹 눌러
마침내
눈 시린 만개(滿開)
변방 십리허 저 암향(暗香)
-송선영, 시집 『쓸쓸한 절창』에서.
‘매경한고발청향(梅經寒苦發淸香)’을 시조로 그려 보여주는 듯하다. 추위의 괴로움을 이겨내고서 맑은 향기를 풍기는 매화! 꿈을 향해 가는 길에 고난을 만나게 되었을 때 무릎을 절로 꿇게 될까봐, 많은 사람들이 이 글귀를 걸어놓고 자기를 담금질하고 수행에 정진한다. 왜 아니겠는가. 그런데 여기쯤에서 엉뚱하게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로 생각이 건너간다.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知松栢之後凋)’,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비로소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안다는 말……. 이처럼 예술은 느닷없는 곳으로 의식을 흘러가게 하는 힘이 있다. <세한도>의 구구절절은 아니 읽고 나무와 나무 사이 집 한 채가 놓인 풍경만을 바라보자니, 적막이 하염없다. 뭐랄까, 정처가 없어서 외로운데, 외로우니 구속이 없어 참으로 자유롭다고 할 것인가.
매화를 그린 시조라면 정소파 시인의 195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품 「설매사」도 유명하다. 정소파 시인은 1912년 광주 사동 출생으로 1930년대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였다. 1946년 호남신문사 주최 단가회(短歌會)에 3회 천료하였다. 1957년 개천절에 열린 전국 시조, 한시 백일장 본선에서 시제 ‘독임란사유감(讀壬亂史有感)’으로 장원을 차지하였는데, 국립국악원 아악부에서 삼현육각으로 수상을 축하해주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남아 있다. 시인은 2013년 별세 전까지 펜을 놓지 않고 작품을 창작하는 대단한 열정을 보여주었다. 2012년에는 1912년생 동갑 문인인 백석, 설정식, 김용호, 이호우와 함께 ‘2012년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에 선정되었다. 2001년 문학제가 시작된 이후 당시까지 80여 명이 넘는 조명 문인 중에서 생존 작가가 선정된 것은 정소파 시인이 처음이었다. 시인은 ‘호남시조문학회’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오랫동안 하였다.
설매사(雪梅詞)
어느녘 못다 버린
그리움 있길래로…
강파른 등걸마다
손짓하며 짓는 웃음
못 듣는 소리 속으로
마음 짐작 하느니라.
바위 돌 틈사구니
뿌린 곧게 못 벋어도 ―
매운 듯 붉은 마음
눈을 이고 피는 꽃잎
향맑은 내음새 풍김
그를 반겨 사느니라.
꽃샘바람 앞에
남 먼저 피는 자랑!
벌 나비 허튼 수작
꺼리는 높은 뜻을…
우러러 천년을 두고
따름직도 하더니라.
-정소파, 시집 『달여울의 소리무늬』에서.
몇 편 매화를 소재로 한 시조를 보면, 시인들이 매화와 자기를 동일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동일성 추구 의욕이 크다 보면 자칫 자기만 알아듣는 장광설을 늘어놓아 난해함 속으로 빠질 수도 있는데 그렇지가 않다. 눈앞에 그려지는 선명한 그림, 코에 스미는 듯한 향기, 함부로 다가서기 어려운 결기까지 느껴진다. 대상에 대한 넘치는 정서에서 군더더기를 없애 절제의 미학을 얻으면 시조는 오히려 감각적이다. 역설적이게도. 강력한 서정성을 가지되 질척거리지 않으며 시적 대상에 대한 밀도를 최대치까지 끌어올리되 과도하게 경직되어 있지도 않다. 명징한 이미지, 매화의 고갱이가 남겨진다.
예술은 살아 있는 생물체이다. 흥망성쇠를 경험한다. 그런데 천년 세월을 숨쉬고 있는 시가라면, 이를 가진 자는 귀한 보배를 지님이요 그 민족은 행운을 타고난 민족 아니겠는가. 세계에서 자국민의 고유 시가 장르를 가진 나라가 몇 곳이나 되는가. 시조의 율격은 우리 민족의 호흡, 우리 민족의 걸음걸이에서 발현된 우리 민족의 언어 춤사위라고 하겠다.
한국시조시인협회 소속 시인은 2013년 1월 현재, 1,133명이다. 협회에 가입하지 않은 시인들을 포함해서 현대시조를 창작하는 시인은 2천 명을 상회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한국시조시인협회에 가입한 시인은 광주와 전남 지역의 시인은 60명 정도- 2017년 1월 현재는, 그 상황이 달라졌을 것이다-. 예향 광주의 위상이 왜소하다. 그렇지만 자긍심마저 위축될 필요는 없다. 옛 시가문학의 명성은 접어두고라도 우리 지역은 걸출한 시조시인을 배출하였다. 조운, 조종현, 조남령, 정소파 시인이 있었고, 송선영 시인이 건재하며, 무엇보다 지역에서 시조를 평생 업으로 아는 많은 시인들이 있으니 말이다. 그뿐인가, 열정적으로 현재 시조단을 이끌고 있는 김제현, 윤금초, 김영재, 이지엽 시인도 이 지역이 낳은 뛰어난 시인들이다.
매화의 고귀한 생애를 만끽하였으니, 이제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 보자. 영취산에 진달래가 만발하면 이후에는 핏빛 철쭉의 때가 오리라. 전원범 시인의 「지리산 철쭉」을 암송하면 우리 역사의 아픈 가슴앓이, 지리산앓이가 시작된다. 1944년 전북 고창 출생인 전원범 시인은 198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조가 당선하고 같은해에 《시문학》에 시를 천료하였는데, 그 이전인 1972년 전남일보 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하였다. 전원범 시인은 배우고자 하는 이가 초등학생이라면 초등학생 수준에 맞게 대학생이라면 대학생 수준에 맞게 창작 강의를 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다엽, 금초, 은목, 명금’ 등의 문학동인회를 지도하였는데, 그 문하에서 다양한 장르에서 좋은 작품을 쓰는 작가가 많이 나왔다.
지리산 철쭉
해가
바뀔 때마다 타오르는
저 불빛.
몇 번이나 번지는가
임리(淋漓)한 핏물.
산허리
감아 도는
아픔의
불길이여.
-전원범, 시집 『허공의 길을 걸어서 그대에게 간다』에서.
마을과 떨어진 산에 철쭉이 있다면 살구꽃은 나지막한 돌담과 조브장한 골목에 감싸인 집의 마당 귀퉁이를 떠오르게 한다. 시골 또는 고향의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꽃인 것이다. 그러한 분위기를 고스란히 살려낸 「분이네 살구나무」는 경상도 태생 정완영 시인의 가편인데 가난을 어루만지는 꽃으로 그려져 있다. 그런데 필자에게서 살구꽃은 목에 걸린 씨앗을 남기는 꽃으로 형상화되었다. 필자는 2010년 폐암으로 투병하시는 어머니와 함께 학동 전대병원 뜰에서 살구꽃이 피는 것을 보았다.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봄일 줄을 차마 몰랐다. 그날, 명찰을 단 꽃나무를 바라보던 어머니의 시선은, 삶에 짓눌려 살아온 젊은 여성의 쓰라린 압화 이미지였다. 촉촉한 개인의 감수성이 객관화 일반화되어 보편성을 획득하기를 바라며 쓴 「살구꽃」은 어머니를 여의고 해가 갈수록 더욱 특별한 작품으로 필자에게 남아 있다. 그래서인지, 봄이 자서전을 적는다면 살구꽃으로 한 페이지를 적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빛깔과 음영이 다른 살구꽃의 그 페이지에는 홀로 자식을 키우는 이 시대 어린 엄마의 안타까운 청춘이 오버랩되기도 한다.
살구꽃
젖먹이 버려두고 객지로만 십 수 년
구새 먹은 가슴에 분홍 연기 자욱하여
한마디 한마디에서 살구꽃이 핍니다
장미목 장미과 벚나무속 살구나무
세세한 일가붙이 밝혀 적은 명찰 앞에
휠체어 잠시 멈추고 눈이 부신 엄마와 딸
빌어를 묵어도 부모 사랑이 최곤디
목에 걸린 살구씨 겨우 뱉어내고는
살구꽃 죄 없이 고운 숭어리만 봅니다
겨우내 북풍으로 마전한 그리움을
병동에 활짝 펼친 검은 고목 한 그루
천 개의 눈과 손으로 욕지기 다스립니다
-서연정, 시집 『동행』에서.
필자의 오랜 벗인 이(李) 모 시인은 강원도 철원이 고향이다. 윗녘에서만 살다가 남편을 따라 남도에 처음 내려왔을 때, 한겨울 들판에 파란 풀들이 살아 있는 모습이 매우 놀라웠다고 말하였다. 필자는 그녀의 말을 곱새겨 듣게 되었고 오랜 시간이 흘러도 감동이 옅어지지 않았다. 겨울에도 남도 흙은 숨결이 따스해서 파릇한 풀이 살아 있는 게 당연한 일인데 그 당연함을 새롭게 보는 그녀의 말이, 무덤덤한 필자의 감각을 소용돌이치듯 환기시켰던 것이다. 이제, 지극히 하찮지만 신비로운 풀들이 겨울을 견디고 꽃을 매달기까지 무엇을 염원하는지 염창권 시인의 「풀꽃」에 귀를 기울여 본다. 시인은 1960년 전남 보성 출생으로 199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조가, 199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된 시인이다. 지상에 가장 많은, 힘없는 사람들과 또는 그들의 대리자가 풀꽃이기에, 목울대 뜨겁게 가파른 풀꽃의 생을 아낌없이 응원하고 싶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푸쉬킨의 시를 기억하면서, “한 점 불꽃”은 희망의 다른 이름일 거라고 생각한다. 계절의 가장 처음에 나서 계절의 가장 늦게까지 남는 꽃, 절대 끊어지지 않는 연속과 순환의 고리를 이어 섭리라는 사슬을 만드는 꽃, 별도의 호명을 필요로 하지 않음에도 그 뭉뚱거려짐마저 허공에 웃음으로 날려버리는 꽃, 바로 사람이라는 풀꽃이 아니던가.
풀꽃
비어 있는 병을 위하여 · 5
치밀어 오르는 그리움을 삼키며
메마른 지층을 기어오른 풀씨 하나
긴 목을 뽑아 올린다
한 점 불꽃을 향해…….
-염창권, 시집 『햇살의 길』에서.
시조의 관심 속으로 들어온 꽃으로 매화, 철쭉, 살구꽃, 풀꽃의 이미지를 만나 보았다. 부처 가 제자들에게 연꽃을 들어보일 때 빙그레 웃은 가섭처럼, 시인은 나무가 꽃을 꺼내 보여주는 마음을 알아듣는다. 시인과 나무 사이에 옮아가는 마음과 마음의 길이 길지도 짧지도 두껍지도 얇지도 않음을 알겠다. 꽃 아닌 시절을 엄청나게 견딘 연후에야 꽃을 잠깐 보이는 나무처럼, 좋은 시조를 만들기 위하여 시인은 각고면려(刻苦勉勵)의 시간을 바친다. 시시각각 세속의 일이나 인간관계에 조속하게 반응할 여유를 누리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홀로 떨어져 있는 듯 불안하다. 무엇에 이끌리기에 우리는 LTE의 속도가 아니면 자꾸만 불안해하고 조급해하는가. 자연의 시간과 인간이 조립한 시간의 흐름은 어느 지점에서 조화로울 수 있는가. 두 시간간의 불균형과 부조화에서 오는 괴리감이 끝내 괴물처럼 우리의 삶을 잡아먹는 건 아닐까. 눈에도 보이지 않고 손에도 잡히지 않는 이러한 불안한 시대의 정황에 붙들려 있다고 느껴진다면, 겨울을 견딘 나무들의 잎눈이 열리고 꽃잎이 터지는 순간을 돌아보자. 그러고 드디어 눈동자가 맑아지거든 그리운 사람을 만나볼 일이다.
(끝)
*이 글은 <한울문학> 2017년 5월호에 재발표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