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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구조론의 기원
다시 쓰는 국어사전
구조론을 연구하게 된 계기가 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다. 국어사전 찾기 숙제를 하는데 사전이 너무 엉망이다. 일정한 체계가 없다. ‘젖’을 찾아보니 ‘유방’이라고 되어 있고 ‘유방’을 찾아보니 ‘젖’이라고 되어 있다. 수준 이하 돌려막기다. 국어사전을 이렇게 써도 된다면 초딩도 쓰겠다. 그게 어디 출판사 하나만의 잘못이겠는가? 이건 시스템의 문제다. 국가 전체에 문제가 있다. 한국 한 나라만의 잘못이겠는가? 아마 외국 사전을 참고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류문명의 수준이 이것밖에 안 되는 것이다. 이 문명은 결함 있는 문명이다. 그렇다면 인생을 걸어볼 만하다.
고딩 때는 동녘사에서 나온 철학사전을 봤는데 사회주의 용어사전이다. 이건 더 개판이다. 무슨 종교집단도 아니고 어휴. 예컨대 자본주의를 설명하면서.. '때려죽일 부르주아 새끼들과 빌어먹을 제국주의 잡놈들이'.. 이런 식으로 서술한다면 매우 웃기지 않겠는가? 내용이 감정적이고 주관적이다. 불필요한 수식어가 잔뜩 들어 있어서 집중할 수 없다. 독자를 초딩 취급한다. 동독 사전을 옮겼을 텐데 그쪽은 수준이 더 처참하다.
많은 세월이 흘렀다. 이제는 달라졌을까? 달라진 게 없다. 네이버 국어사전을 봤다. 돌덩이를 찾아보니 ‘돌멩이보다 큰 것’이라고 되어 있다. 돌멩이를 찾아보니 ‘돌덩이보다 작은 것’이라고 써놓았다. 장난하냐? 도대체 거기서 크기가 왜 나와? 돌덩이는 돌+덩이다. 돌과 덩이를 각각 설명하면 되잖아. 덩이는 덩어리고 덩어리는 무더기와 대비된다. 덩이는 모체에서 떨어져 나온 것이고 무더기는 반대로 흩어졌다가 모인 것이다. 덩이는 떼다+둥글다는 뜻이다. 둥근 모양으로 떨어져 나온 것이 덩이다. 흙이나 모래는 무더기다. 돌멩이는 돌+맹이다. 멩이는 매, 매질, 맷돌, 곰방매, 몽둥이, 방망이, 망치의 ㅁ과 같다. 돌로 매질하는 게 돌멩이다. 돌팔매라고도 한다. 돌멩이가 돌덩이보다 작은 것이라면 방망이는 방덩이보다 작은 것인가?
돌[명사] 흙 따위가 굳어서 된 광물질의 단단한 덩어리. 바위보다는 작고 모래보다는 큰 것을 이른다.
돌에 대한 설명도 웃긴다. 밥 먹다가 돌 씹으면 모래 씹었다고 해야 하냐? 흙이 굳은 것은 퇴적암이고 마그마가 식은 화성암은 돌이 아닌가? 외국 사전은 다른지 모르지만 이게 작은 문제가 아니다. 돌, 쇠, 나무, 흙은 물질의 성분에 대한 말이지 크기는 상관없다. 크기가 중요하면 자갈은 왜 빼냐?
좋다[형용사]
1. 대상의 성질이나 내용 따위가 보통 이상의 수준이어서 만족할 만하다.
2. 성품이나 인격 따위가 원만하거나 선하다.
3. 말씨나 태도 따위가 상대의 기분을 언짢게 하지 아니할 만큼 부드럽다.
'좋다'를 찾아보자. 좋다는 말은 경상도 사투리 ‘파이다’에 대응된다. 파이다는 팽개쳐 버린다는 말이다. 패는 동작과 관련이 있다. 좋은 것은 자기 쪽으로 당긴다. 좋다는 둏다에서 온 말이다. '다오.' 하고 요구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 주다와 관계가 있다. 좋다는 버리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좋다의 반대는 싫다, 밉다, 나쁘다가 있다. 싫다는 거부하는 것이고, 밉다는 밀어내는 것이고, 나쁘다는 아니오의 '니'에 기쁘다, 예쁘다 할 때의 '쁘'가 붙은 말이다. 쁘는 덥다, 맵다, 떫다, 춥다, 얇다, 두껍다 할 때와 같이 ㅂ이 강조되어 붙은 것이다. 슬프다의 '프'도 같다. 공통으로 몸에 붙는다. 춥다면 추위가 몸에 붙은 것이다. 혹은 객체에 붙은 속성을 가리킨다. 국어사전은 이런 것을 계통 분류하여 체계적으로 기술해야 한다.
좋다는 good, fine, nice다. good은 가득, fine는 빼낸다, nice는 셈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가득good하면 좋고, 앓던 이를 빼내fine면 좋고, 복잡하게 셈하지 않으면 좋다. 안셈nice이다. 여기에는 모두 특정한 액션이 숨어 있다. 모든 말은 궁극적으로 에너지의 방향성을 지시한다. 모든 어휘는 궁극적으로는 의성어에 뿌리를 둔다.
바람이 붕붕 불면 풍風이다. 불이 활활 타면 화火다. 불이 타면서 타닥타닥 소리가 나는 게 탄다는 말이다. 탄 것이 탄炭이다. tan은 선탠을 해서 탄 것이다. 받침 ㄴ은 세계적으로 발음의 변화 없이 통하는 경우가 많다. ㄴ 혹은 ㅇ 받침만 발음할 수 있는 나라가 많기 때문이다.
사랑[명사]
1.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2. 어떤 사물이나 대상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거나 즐기는 마음. 또는 그런 일.
3. 남을 이해하고 돕는 마음. 또는 그런 일.
한심하다. 아끼는 건 뭐고 귀중한 건 또 뭐야? 하나마나 한 말이다. 미움은 밀어내고 사랑은 끌어당긴다. 사랑은 자기 쪽으로 가져오려는, 자신과 하나가 되려는, 자신과 동일시되는, 자신과 연결하려는 마음이다. 국어사전은 객관적인 서술이라야 한다. 객관적인 것은 동작이다. 아끼는지, 귀중히 여기는지, 소중히 여기는지, 그것을 즐기는지 알 게 뭐야? 사람 마음속을 알 수 없다. 사랑이든 증오든 에너지의 방향이다. 자석은 밀어내거나 혹은 당긴다. 밀어내면 미움이고 당기면 사랑이다.
모든 존재는 주변과 연결되어 있다. 족보가 있다. 계통이 있다. 주소가 있다. 국어사전은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명사는 발생의 계통을 따라 설명하고 동사는 에너지의 방향을 중심으로 설명해야 한다.
명사도 궁극적으로 동사로 연결된다. 동사는 결국 의성어로 연결된다. 밀다라고 하면 에너지의 압박이고 입술을 물어서 압박을 느끼면 M 발음이 나온다. 영어든 우리말이든 힘과 관련된 말은 M으로 시작되는 어휘가 많다.
모든 어휘의 뿌리는 자연에서 나는 소리나 혹은 입에서 나는 소리다. 혹은 입술과 턱으로 가리키는 동작이다. 동사로 시작하며 여러 단계를 거치며 교착되고 굴절되어 어휘가 진화한다.
틈, 뜸, 참, 짬, 토막, 도마, 두메, 도미, 돔, 덤, 뗌, 드문, 땜, 때움, 띄움, 띄엄, 땀(바느질), 점占, 점點은 모두 같은 TM을 굴절시켜 만든 말이다. 띄엄띄엄, 드문드문, 짬짬이, 틈틈이를 더하면 같은 뿌리에서 파생된 어휘가 스물세 개나 된다. term, time과 같다. 시간과 공간의 간격을 나타낸다. 간격은 덩어리에서 뗀 것을 모은 것이다. T는 떼고 M은 모은다. 붙은 물체를 떼면 T 소리가 나고 입술을 모으면 M 소리가 난다.
우리말에도 많은 굴절어가 숨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말이 원래는 중국어와 같은 단음절어였기 때문에 굴절시킬 수밖에 없다. 가, 해, 서, 와, 뭐, 줘, 놔 하는 식으로 하나의 어휘는 하나의 발음이었다. 한 음절을 굴절시켜서 단어를 생산하다가 교착어가 도입되고 뒤에 접미어가 붙기 시작한 것이다. 앞에 접두어가 붙은 경우도 있다. 엄마, 아빠는 모母, 부父 앞에 '아'가 붙어 아모, 아부가 된 것이다. 지금은 철아, 희야 하고 '아'가 뒤에 붙지만, 원래는 앞에 붙었다. 중국 요서 지역에서 기장 농사를 짓던 우리 민족의 조상이 돌궐족을 만나 단음절어를 버리고 교착어 문법을 발전시켰음을 생각하면 납득할 수 있다.
자연은 진화한다. 언어도 진화한다. 그러면서 주변과 관계를 맺는다. 명사는 발생의 계통이 있고 동사는 에너지의 방향성이 있다. 비슷한 말은 발음을 살짝 틀어서 만든다. 언어는 계통과 관계와 방향성으로 설명해야 한다. 그것이 자연의 진실이기 때문이다.
지식의 기초는 사전이다. 처음 국어사전을 손에 쥐었을 때 아기가 걸음마를 뗀 것과 같다. 국어사전에서 체계를 배워서 지식의 걸음마를 떼려고 했다. 그런데 체계가 없었다. 도무지 기본이 되어 있지 않았다. 주먹구구다. 모르는 사람이 1분 정도 생각하고 대충 써놓은 것이다. 사과는 사과나무의 열매, 배는 배나무의 열매, 감은 감나무의 열매다. 쉽잖아. 하루에 1천 단어 쓰겠다. 인류는 이런 데서 기본이 안 되어 있기 때문에 누구도 승복하지 않는 문화가 만들어져서 21세기에 괴력난신이 난무하고 주술과 음모론과 종교집단과 환빠가 준동한다. 근거 없이 우기는 놈이 이기는 게임이 되어버렸다. 어찌 고통스럽지 않겠는가?
기본이 되어야 한다
인류는 도무지 기본이 안 되어 있다. 체계가 없다. 메커니즘이 없다. 분류가 안 되어 있다. 빌드업 과정이 없다. 인포메이션이 없다. 목차가 없다. 등장인물 소개가 없다. 중간부터 갑자기 난입한다. 뜬금없고 생뚱맞다. 체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모른다. 많은 것을 눈치로 배워야 한다. 그렇다. 이런 생각은 아스퍼거의 특징이다. 사회적 기술이 떨어지는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뭔가 이상하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은 초등학교 1학년 때다. 교과서를 신뢰할 수 없다. 거북이가 토끼를 이긴다는 둥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써놨다. 예컨대 이런 거다. 염소 두 마리를 끈으로 연결해 놓는다. 양쪽에서 풀을 주는데 염소는 서로 자기 쪽으로 당기려고 한다. 끈이 짧아서 닿지 않는다. 실패한 염소들이 합의해서 이번에는 사이좋게 먹는다. 그런데 말이다. 당연히 힘센 염소가 이기지 않나? 교과서의 의도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협력의 중요성을 가르치려는 것이다. 그러나 말이다. 초딩이라고 깔보는 것이 아닌가? 진지하지 않다. 초딩 교과서라면 초딩이 납득하게 써놔야 한다. 애초에 풀을 조금 더 가까이에 주면 되잖아. 끈을 길게 하든가. 묶지 말든가. 염소가 서로 싸우지 않게 풀어주라고 가르치는 게 더 도덕적이지 않은가? 어쨌든 교과서의 그 페이지는 내 기억에 각인되었다.
이걸로 우겨볼 생각은 없다. 어른들도 다 뜻이 있어서 이런 것을 교과서에 실었겠지. 애들 수준에 맞춰준 거겠지. 중요한 것은 내가 뭔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정부 당국의 잘못을 찾으려고 눈에 불을 켰다는 점이다. 걸리기만 해봐라. 이런 심사가 되었다.
중학생 형의 교과서는 달랐다. 뭔가 진지했다. 논리적으로 기술되어 있었다. 딱 맘에 들었다. 이건 이래서 이렇고 저건 저래서 저렇다 하고 전제와 진술이 짝을 이루는 문장이다. 그래. 이거였어. 교과서는 이래야 교과서지. 문장이 짜임새가 있어야지. 과학 느낌이 나야지. 확실히 뭔가 있는 거야. 그게 뭔지는 몰랐지만, 국어사전을 처음 펼쳐봤을 때는 흥분했다. 내가 찾던 것이 당연히 국어사전에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없었다. 체계가 없었다. 목표에 도달하는 경로의 안내가 없었다.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 없는 허탈함이라니.
어렸을 때의 계획대로 시간이 나면 국어사전을 다시 써 볼 참이다. 모든 어휘는 발생에 따라 계통이 있고 족보가 있고 어원이 있다. 학계의 정설은 자의성설로 되어 있다. 조상들이 생각 없이 그냥 마구잡이로 어휘를 만들었다는 주장이다. 그럴 리가 있나? 과학을 똥구멍으로 배웠나? 생물이 진화한다면 물질도 진화하고 어휘도 진화한다. 마구잡이로 만든 어휘가 언중에게 받아들여질 리가 없다. 살아남은 어휘는 특별한 경쟁력이 있는 거다. 입에 착착 달라붙는 어휘가 살아남은 것이며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뇌가 그렇게 반응한 데는 이유가 있다. 뇌 구조와 동조화되는 어휘가 살아남은 것이며 뇌 구조는 자연의 구조를 복제한다.
초딩의 염소 이야기가 대단한 게 아니고 중요한 것은 내가 그것을 기억했다는 거다. 살아남은 어휘는 특별히 기억되고 전달되고 소통된 것이다. 의미를 실어 나르기에 성공했다. 의미의 운반에 적당한 구조다. 의미 메커니즘과 일치했다.
인류가 여전히 쓸만한 인간형 로봇을 만들지 못하는 이유다. 어렸을 때는 당연히 로봇이 청소하고 인간은 명령하는 시대가 올 것으로 생각했다. 왜 이리 더딘가? 로봇은 한 발로 서야 한다. 한 발로 서고 한 발로 걷는 로봇이 진짜다. 두 발은 돕는다. 발로 걷는 것이 아니라 골반으로 걷는다. 무게중심을 이동시켜 걷는다. 발은 둘이지만 골반은 하나다.
인간은 어떻게 물체를 드는가? 이걸 아는 사람이 없다. 그냥 든다고 생각하므로 초보 노동자는 공사장에서 허리가 나간다. 물체를 기울여서 무게중심을 빼앗아 공중에 띄운 상태에서 든다. 이미 공중에 들린 것을 더 높이 끌어올릴 뿐 지구와 결합한 것을 들 수 없다. 물체를 드는 것은 지구와 중력으로 연결된 것을 끊고 새로운 에너지 전달경로를 개설하는 복잡한 문제다.
로봇으로 물체를 들어보자. 처음부터 강하게 힘을 주면 깨진다. 서서히 힘을 가하면 영천 할매돌 현상이 일어난다. 물체가 지구에 딱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다. 혼다의 이족보행 로봇 아시모가 계단에서 자빠지는 문제를 20년째 해결 못 하고 결국 사업을 접은 데는 이유가 있다.
새가 나는 원리다. 참새가 그물에 걸리는 이유는? 새는 점프를 해서 날아오르는데, 새그물이 점프를 방해한다. 그냥 날개를 퍼덕여서 날려고 하면 영천 할매돌 현상이 방해한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라이트 형제가 랭글러 박사를 이긴 이유다. 과학이 경험에 패배했다. 라이트 형제는 연을 많이 날려봤던 것이다.
새가 나는 정확한 메커니즘, 인간이 물체를 드는 정확한 메커니즘을 설명한 사람은 없다. 그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본을 무시하고 체계를 우습게 아는 거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되었지만 계속 그러면 안 된다. 왜냐하면 아는 사람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인간이 물체를 들 때 팔로 든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척추로 들고 하체로 든다. 영천 할매돌 현상은 기도를 하면 자세가 꼿꼿해져서 팔심만으로 들려고 하므로 들리지 않는 것이다. 척추로 들고 하체로 드는 것은 무의식이므로 자기 자신도 모른다. 게다가 동작이 경망스럽다. 새가 점프해서 날듯이 인간도 상체를 공중에 띄운다. 상체를 기울여서 구부정한 자세가 되면 할매돌에 대한 예의가 아니잖아. 자세를 바르게 하면 지렛대의 원리가 역으로 작용해서 들리지 않는다.
합기도 고수에게 손목을 잡히면 바로 제압된다. 합기도 기술은 팔이라는 지렛대를 역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손목이 제압되는 순간 지렛대가 거꾸로 작동한다. 영천 할매돌은 기도해서 손목이 제압되어 있다. 손목으로 돌을 슬쩍 밀어서 무게중심을 빼앗아야 하는데 그것은 불손한 동작이다.
공사판에서 무거운 물체를 들 때는 팔을 물체에 고정해서 하나로 만든 다음 하체로 든다. 미리 하체를 구부려놔야 하는데 영천 할매돌 입장에서는 괘씸한 동작이다. 똑바로 선 상태로는 물체를 들 수 없다. 의자에 똑바로 앉은 상태에서 상체를 숙이지 않고 그대로 일어설 수 없다. 이미 공중에 떠 있는 것을 더 높이 띄울 뿐이다.
무엇인가? 작용반작용의 법칙이다. 먼저 물체가 인간에게 작용해야 한다. 물체가 인간을 짓누르면 근육의 조건반사로 들어 올린다. 물체가 100으로 누르면 인간도 백으로 맞선다. 영천 할매돌은 먼저 인간을 누르지 않으므로 인간이 들지 못한다.
새가 나는 것도 같다. 새의 날개는 중력의 작용에 반작용하므로 중력이 먼저 새의 날개에 작용해야 한다. 그러려면 점프해야 한다. 인간은 선제공격할 수 없다. 처음 물체를 들 때는 힘을 어디에 언제 얼마나 가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1. 인간의 몸을 S자로 만든다.
2. 물체의 무게중심을 빼앗아 공중에 띄운다.
3. 물체가 인간에게 작용하는 만큼 반작용으로 들어 올린다.
물체를 드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우리는 이런 기본을 배우지 않았다. 우리가 걷고 뛰고 들고 하는 것은 무의식적으로 하는 것이다. 무의식적인 행동은 동물적인 반작용이다. 경험한 적이 없는 새로운 것과 마주치면 힘을 쓰는 요령을 몰라서 다치게 된다.
공사장에서 거푸집 해체 작업을 할 때다. 나는 가장 안전한 위치에 자리 잡았는데 다른 사람은 반대편에 가서 나보고 위험하니 그쪽으로 가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이었다. 실상 사고는 그쪽에서 났다. 거푸집이 쓰러지는 시작점은 안전하고 종결점은 위험하다. 종결점에는 에너지가 증폭되기 때문이다. 각목이 스리쿠션으로 부딪쳐서 대포알처럼 퉁겨져 날아간다. 등잔 밑이 안전하다.
무지의 지가 필요하다. 우리가 이런 것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야구판의 종속이론이 어떻다거나 혹은 확률은 믿을 수 없다거나 하는 주장처럼 황당한 말이 나오는 이유다. 당당하게 거꾸로 생각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정치판이 요지경인 것도 마찬가지다. 정치는 항상 새로운 것을 실험한다. 규칙을 바꾸는 자가 주도권을 쥐기 때문이다. 당당하게 반대로 가는 정의당들 많다. 초딩 교과서부터 다시 써야 한다. 기본을 가르쳐야 한다. 인과율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 그 인과율 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