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1:6~10 다른 복음은 없나니
인간은 매일 죄를 짓는다. 그러다가 중독되기도 하고 또 은혜를 받으면, 회개를 하기도 한다. 기계와 다르다.
루터는 칭의를 너무 값지게 발견하였다.
그는 무릎으로 로마 성당의 계단을 밟으며 죄를 회개하였고, 매일 고해성사를 하였다. 그래도 해결되지 않자 나중에는 성경을 연구하게 되고 로마서를 통하여 믿음을 발견하였다. 또 어거스틴은 죄중에서 살다가 아이들에게서 읽어라 읽어라 라는 소리가 들려서 성경을 폈는데, 로마서13:13절을 읽고 회심하였다.
롬13: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예수께서는 크게 사함 받는 자가 나를 크게 사랑한다고 하셨는데, 루터나 어거스틴이나 믿음을 발견하는데 시간이 오래걸렸다.
율법주의는 터의 문제이다. 돈으로도 못 가요 하나님 나라 맘 착해도 못 가요 하나님 나라 믿음으로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와 천국을 간다. 그런데 겉보기에 율법주의와 하나님 나라는 비슷하다. 그러나 보이는 게 다 금이 아니다. 그런데 칭의는 인간편에서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 무엇을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믿음.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나. 그런데 그렇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오롯이 이루어 놓으신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야고보서에서 아브라함이 행위로 된다고 말하지만, 아브라함의 행위도 믿음에 근거한 것이다.
무엇에 든든히 서 있는가. 할례인가. 자기 행위인가. 하나님이 이루어 놓으신 일인가. 믿음으로 믿음에 이른다. 바울은 율법으로 흠이 없는 자였다. 때론 이단이 더 행위가 대단하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님을 선물로 주셨다고 말한다. 선물은 받는 것이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독생자를 주셨다는 말은, 선물을 의미한다. 선물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이다. 복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 그러나 율법주의자들은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행15:1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이를 할례당이라고 한다. 할례는 아브라함이 후손의 약속을 받은 후에 받은 일종의 표식인데,
창17:10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할례는 아브라함이 믿음의 자손을 약속 받은 후에 받은 표식 언약이다. 할례는 모양으로 표식으로 낸 언약이다. 예를 들어 결혼반지가 없어도 결혼할 수 있듯이, 할례는 표식이다. 그런데 할례를 하더라도 인간의 죄를 해결 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할례는 세례같이 하나님을 향한 간구일 것이다. 예수께서는 사람 속에서 악한 것이 흘러나와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하였는데, 죄는 사람 속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죄를 나병으로 묘사한다. 그러므로 죄인은 정확하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로만 통째로 구원을 받는다. 예수는 창조주, 구원주로 만물보다 크신 분이다. 그러므로 복음은 모든 것이다. 예를 들어 아무리 값비싼 자동차를 사더라도, 수리점과 전문가가 있어야 차를 계속 굴릴 수 있다. 마찬가지로 모세를 통해서 성막을 완성하셨는데, 그는 율법의 중보자이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인간을 창조하셨는데, 그를 통해서만 사람이 거룩함을 받고 구원을 받는다.
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 사실 메노라 금 등잔대, 물두멍 제단 금 분향단 금 법궤 등 다양하고 어떻게 보면 화려하고 어떻게 보면 더욱 멋있고 거룩한 유대적인 제사요소들이 더 나아보인다. 그러나 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적인 요소들을 보여주는 동시에 하늘에 기물들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예수께서 오셔서 모든 것이 간단하게 되었으므로, 많은 율법과 규율이 있는 쪽이 더 있어 보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유대 제사 요소들에 비하면 예수님의 십자가는 너무 흉측하고 초라하다. 그러나 사실은 그 모든 제사 요소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적인 것들을 보여주는 것으로, 예수께서 그 모든 것의 근거인 것이다.
소탐대실이라는 말처럼, 예수를 잃으면 다 잃는 것이다. 사실 성막이나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모형이다. 모든 율법과 성막과 기물은 이 제사를 기반으로 존재한 것이다. 그러나 날마다 제사를 드리는 가운데 다윗에게 성령이 임하였는데, 성령께서 말씀하시기를,
시40:6~7 주께서 내 귀를 통하여 내게 들려 주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하지 아니하신다 하신지라 그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히브리서를 보면,
히10:8~14 위에 말씀하시기를 주께서는 제사와 예물과 번제와 속죄제는 원하지도 아니하고 기뻐하지도 아니하신다 하셨고 (이는 다 율법을 따라 드리는 것이라)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또한 예레미야를 통해서 옛언약 곧 구약이 아닌 모세 언약이 아닌, 새언약을 예언하셨는데,
렘31:3 옛적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나타나사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하였노라
렘31:31~3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신다는 말은, 예수께서 십자가 지시고 부활하신 후에 보내실 성령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로 신약 곧 새언약을 삼으시고, 제사가 끝났다. 더 이상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다!
히10:18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 복음은 너무 간단하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예수님은 구원의 생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교는 그렇지 않다. 점수내기와 비슷하다.
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9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 2번 저주를 한다.
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인정받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이 신앙생활이다.
할례는 유대인들에게 인정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할례로 구원 받지 못한다. 그것은 겉모양의 표식일 뿐이다. 또한 인간의 경건이나 행위로 구원받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대속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믿는 믿음이다.
존뉴턴은 하나님은 어떻게 나같은 자를 사랑하십니까. 어렸을 때, 친부모를 떠나 양부모에게 키워져, 자주 뚜드려 맞다가, 도망가서 학교에서도 적응하지 못하고, 나중에는 노예무역선에서 일하다가 또 그곳에서 죽음의 위기를 만나 죽을 뻔 하였으나 살았다. 그리고 깨달은 것은 하나님 어떻게 나같은 놈을 사랑하십니까. 은혜는 선물이다. 무조건적이다. 그런데 전적 타락을 대개 경험한다. 아무튼 은혜 받는 데는 자격이 없다. 은혜는 십자가이다. 자격이 있을 수 없다. 선물이기 때문이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독생자를 주셨으니’에서 주셨다는 말이 선물이다. 인간은 아무리 봐도, 여기저기 줄줄 새는 드럼통이다. 여기를 막으면 저기가 새고, 저기를 막으면, 요기가 샌다. 또는 두더지 뿅망치처럼, 여기를 막으면 저기서 튀어나오고, 저기를 막으면 여기가 튀어나오고, 그러므로 죄는 지랄같은 것이다. 구제불능이다. 예수가 아니면 해결될 수 없다. 아무리 루터같이 회개하고 날고 기어도 안된다. 루터는 복음을 발견하기 전에 믿음을 발견하기 전에 하나님을 증오하였다. 그렇다고 회개나 율법이나 양심이나 도덕이 필요없다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행위로 할례로 율법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 이 믿음 위에 굳게 서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복하고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