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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일
놀라운 구경 거리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고전 4:9)
내가 보았던 가장 특별하고 멋진 장소 중 하나는 바로 옐로스톤 국립 공원이다. 미국 의회와 율리시스 S. 그랜트 대통령은 1872년 3월 1일에 이곳을 국립 공원으로 지정했다. “전 세계 지열 활동의 절반을 옐로스톤에서 볼 수 있고” 간헐 온천의 3분의 2도 거기 있다. 그곳에 가면 “자연의 웅장함, 대지의 느낌, 생생한 기운을 모두 사진에 남기고 싶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간헐 온천을 뜻하는 영어 ‘가이저(geyser)’는 ‘솟구치다’라는 뜻의 아이슬란드어 ‘게이사’에서 유래했다. 말 그대로 증기와 함께 끓는 물을 대기에 내뿜는 온천이다. 옐로스톤에서 가장 유명한 간헐천은 ‘올드페이스풀’이다. 1870년에 헨리 D. 워시번이 이름 지었고 44~125분 간격으로 분출한다. “한번에 끓는 물 18~34톤을 내뿜으며 그 높이는 56m에 달한다.” 매일 수많은 관광객이 기대감을 안고 찾아와 이 모습을 구경하며 그 누구도 실망하지 않는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라고 성경은 말한다(고전 4:9). 관광객이 들뜬 마음으로 올드페이스풀을 찾듯 사람들은 우리에게 어느 정도 기대감을 품고 있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답게 행동할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하며 우리도 그들을 실망시켜서는 안 된다.
현란한 말솜씨는 잠시 동안 군중의 마음을 사로잡고 감동시킬 수 있지만 우리의 언어가 꾸준한 영향력과 변화시키는 힘을 발휘하려면 삶의 모본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자연스럽게 무의식적으로 드러내는 거룩한 삶의 감화력이야말로 기독교의 가장 설득력 있는 설교이다. 논쟁은 제아무리 완전무결해도 반감을 일으키지만 경건한 모본에는 완강히 반대할 수 없는 힘이 있다”(행적, 510).
그대가 세상에서 유일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교회는 과연 어떠한 모습일지 곰곰이 생각해 보자. 그리고 성령께서 필요한 변화를 일으키시도록 하자.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한국연합회 세계선교본부
세계 곳곳에서 사역하고 있는 선교사 가정들을 위해
3월 2일
희망의 근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벧후 1:16)
1937년 3월 2일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처음 상영된 영화 <잃어버린 지평선>은 프랭크 카프라 감독의 걸작으로 여러 세대의 사랑을 받았다. 1933년에 출간한 제임스 힐튼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며 연료가 떨어진 비행기가 눈 덮인 히말라야에 추락하며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살아남은 일부 승객은 티베트인에 의해 잔해 더미에서 구출된다. 티베트인은 천국과도 같은 샹그릴라 계곡으로 그들을 인도한다. 외부 세계와 단절된 샹그릴라 거주민은 사랑과 지혜를 기르고 조화와 기쁨으로 가득 찬, 완벽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다.
상상 속의 샹그릴라는 인간 존재의 기본적인 두 가지 가치를 조명한다. 첫째는 덧없는 소유보다 개인의 가치와 인간관계가 훨씬 소중하다는 것이다. 마르틴 부버가 이야기했듯 경험의 세계는 ‘나’와 ‘그것’에 바탕을 두고 있지만 관계의 세계에서 기초는 ‘나’와 ‘그대’이다. 따라서 나와 사물이라는 물질 중심적 관계를 바로잡으려면 나와 너가 강조되어야 한다. 결국 인생의 참된 의미는 하나님과 타인과 맺는 관계 속에서 얻을 수 있다(마 22:36~40).
영화에서 강조하는 두 번째 가치는 더 나은 세상을 갈망하는 진솔한 마음가짐이다. 에밀 부르너는 “폐에 산소가 필요하듯 삶이 의미를 얻으려면 희망이 필요하다. 산소가 없으면 질식하여 죽듯 희망이 없으면 인류는 호흡 곤란으로 가슴팍이 조여 오고 절망이 엄습하고 존재는 감각과 목적을 잃고 지적, 영적 마비에 빠진다.”라고 말했다.
<잃어버린 지평선>에 등장하는 샹그릴라와 달리 우리의 영원한 소망은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다(벧후 1:16). 우리의 소망은 눈물, 고통, 죽음이 없는 완벽한 세상에 관한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에 근거한다(계 21:1~5). 그분의 약속은 우리 삶에 의미와 목적을 불어넣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사랑하는 이들이 다시 일어나 누릴 영원한 삶을 보증한다. 이 얼마나 눈부신 희망인가!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정의권/스즈키 에리코 선교사 부부(일본)
구지가와 삼육초등학교를 통한 교육 전도와 학생 모집을 위해
3월 3일
하나님의 이끄심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보이시고 주의 길을 내게 가르치소서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교훈하소서 주는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종일 주를 기다리나이다”(시 25:4~5)
하나님은 우리의 예상과 상상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우리를 이끄시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직감이나 사탄의 속임수가 아닌 하나님의 음성을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세 가지 방식으로 우리에게 자기의 뜻을 보이시고, 우리를 지도하시고, 우리가 남을 이끌 수 있게 해 주신다.”라고 엘렌 화잇은 설명한다. 첫째는 그분의 말씀인 성경이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성경을 먼저 펼쳐야 한다. 둘째는 그분의 섭리이다. 하나님과 거룩한 관계를 유지한다면 우리는 그분의 섭리를 분별할 수 있다. 세 번째는 “성령의 호소이다. 성령의 호소는 마음에 감화를 주고 품성으로 드러난다”(5증언, 512).
대공황이 한창이던 시절에 대총회장 C. H. 왓슨과 부재무 W. H. 윌리엄스는 계획에 없던 은행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1934년 3월 3일 목요일 자정에 윌리엄스는 워싱턴 DC에서 뉴욕행 기차에 올라탔다. 이튿날 아침인 3월 4일 금요일, 그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서로 다른 두 은행에 찾아가 재림교회 해외 선교지 거의 모든 곳에 3개월치 자금을 미리 송금한 뒤 같은 날 오후에 메릴랜드주 터코마파크로 돌아왔다.
이튿날 안식일 아침이었다. 전국의 은행이 모두 문을 닫았다는 뉴스가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날이 저문 뒤 대총회 재무 J. L. 쇼는 재정 위기를 해결하고자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윌리엄스는 금요일에 자신이 한 일을 이야기했고 모두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대총회 직원의 급여 문제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그러자 윌리엄스는 그동안 자금을 정기적으로 떼어서 은행 금고에 1,000달러씩 봉투에 넣어 보관해 두고 있었다고 보고했다. 3개월치 급여를 충당할 수 있는 금액이었다.
성경에 영감을 불어넣은 성령께서는 성경과 어긋나는 말씀을 하시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든 의문이 생기면 성경을 가장 먼저 찾으라”(5증언, 512). 성경의 거룩한 감화에 힘입어 우리의 양심은 그분의 부르심에 더욱 예민하게 반응할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박노영/이미진 선교사 부부(대만)
한글반 학생들이 성경 공부로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도록
3월 4일
질그릇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 4:7)
영감으로 기록된 글의 독창성에 의문을 품는 사람이 많다. 과연 참선지자가 영감 받지 않은 글을 인용할 수 있을까? 만일 그랬다면 영감의 글 속에서 그 부분은 섬처럼 분류되어야 하는가? 게다가 만약 선지자가 원문의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면 그는 표절한 것일까?
출처를 밝히지 않고 다른 사람의 글을 인용하는 것은 지난 수백 년간 일상적인 관행이었다. 고전적인 사례로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있다. 랠프 W. 에머슨에 따르면 “셰익스피어는 자신이 발견한 글은 무엇이든 인용하는 재주가 있었고 그렇게 다방면의 수많은 원작자에게 빚을 졌다.” 그러나 현대에 접어들어 저작권법이 한층 강화되었다. 1909년 3월 4일 미국에서 발령하여 같은 해 7월 1일부터 효력을 발휘한 저작권법은 문학, 예술, 음악, 극작품 등의 권리를 보장한 첫 번째 연방 법안이다. 따라서 선지자를 비롯한 고전 작가에게 오늘날의 기준으로 저작권을 논하는 것은 부당하다.
성경을 꼼꼼하게 연구하면 영감 받지 않은 여러 인용구를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바울은 크레타의 에피메니데스의 글(행 17:28; 딛 1:12), 킬리키아의 시인 아라토스의 글(행 17:28), 철학자 메난드로스(고전 15:33)의 글을 인용했다. 유다 역시 위경 가운데 하나인 에녹서를 인용했다(유 1:14~15). 욥기에는 영감 받지 못한 이들이 욥을 고발하는 내용을 그대로 소개한다. 또 성경에는 사탄의 거짓말까지 등장한다(창 3:1~5; 마 4:3~11). 따라서 선지자의 영감이 언제나 절대적으로 독창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성령의 거룩한 도움을 받아 작성되었고 성령은 진리로 소통하고 편향된 내용 없이 사실만을 전달하셨다.
곡해와 오해를 피하려면 적어도 영감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기본적인 내용은 알아 두어야 한다. 우리는 불완전한 그릇보다 그 속에 담긴 틀림없는 메시지에 집중해야 한다. “보화가 질그릇에 담겼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하늘에서 말미암았다. 불완전한 인간의 언어로 전달되더라도 그 증언은 하나님의 말씀이다”(쟁투, 6). 성경은 그저 하나님의 말씀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정효수/김윤주 선교사 부부(튀르키예)
이란에 있는 사역자들과 교우들의 안전을 위해
3월 5일
사랑하는 자녀들아
“내 아들아 네 아비의 명령을 지키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고 그것을 항상 네 마음에 새기며 네 목에 매라”(잠 6:20~21)
친구는 얼마든지 많을 수 있지만 부모는 둘밖에 없다. 따지지 않고 자기편을 들어 주는 친구처럼 부모도 그렇게 해 주기를 바라는 십 대들이 있다. 그러나 친구를 뛰어넘어 부모에게는 자녀를 교육하고 삶을 위해 준비시킬 신성한 사명이 있다. “부모를 공경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그 누구도 제대로 공경하지 못할 것”이라고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말했다.
1862년 3월 5일, 위스콘신주 로디에서 엘렌 화잇은 미시간주 배틀크리크의 자녀들에게 따뜻한 편지를 보냈다. 화잇은 일상에서 긍정적인 습관을 기르라고 조언했다. “정리하는 습관을 들였으면 좋겠구나. 모든 물건을 제자리에 두어라. 시간을 내어 방을 정리 정돈해라.” 또 시간을 현명하게 사용하라고 조언했다. “가만히 있는 손과 마음에는 사탄이 틈타기 때문이다.” 그는 감동적인 영적 호소로 짧은 편지를 마무리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찾아라. …부모로서 우리는 가장 깊은 관심으로 너희를 살피지만 너희의 죄를 우리가 대신 회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는 너희를 천국으로 데려갈 수도 없다. 하나님만이 사랑과 무한한 자비로 너희를 구원하시며 구주 예수께서 너희를 사랑의 품으로 초청하신다. 그분을 믿고 사랑하며 기쁘게 순종하면 그분께서 구원을 거저 주실 것이다”(An Appeal to the Youth, 76~77).
자녀의 회심을 위해 기도하는 부모가 많다. 부모가 세상을 떠난 후에야 비통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녀들이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중에라도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이 훨씬 낫다. 그러나 조금만 일찍 결단을 내렸다면 부모의 마음에 기쁨이 샘솟았을 것이다.
자신의 삶을 돌아보라. 여러분에게도 다음과 같은 영감의 조언이 절실히 필요할지 모른다. “아들아, 아비의 훈계를 지키고 어미의 가르침을 저버리지 마라”(잠 6:20, 공동). 어쩌면 여러분은 다시 한번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내려놓고 익히 아는 옳은 길로 그분께서 이끌어 주시기를 구해야 할지도 모른다. 만약 그렇다면 오늘이 그 결단을 내리기에 가장 좋은 날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지성배/김영란 선교사 부부(파키스탄)
의료 선교를 준비하는 간호대학 설립을 위해
3월 6일
실천하지 않는 죄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약 4:17)
아일랜드 정치인 에드먼드 버크는 “악마가 이기기 위해 필요한 것은 한 가지이다. 바로 선한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독일의 반나치 신학자이자 루터교 목사였던 마르틴 니묄러(1892~1984)도 같은 생각이었다. 처음에는 그도 히틀러를 지지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아리안주의, 반유대주의, 교회에 대한 간섭을 거침없이 비판하기 시작했다. 1937~45년에 강제 수용소에 수감된 그는 간신히 처형을 면했고 1984년 3월 6일, 92세 나이로 잠들었다.
권력과 명예를 위해 특정 집단을 몰아세우며 나치에 부역하는 비겁한 독일 지식인을 향해 니묄러는 유명한 시를 남겼다. 루터교 목사로 일하면서 해당 시를 여러 번 고쳐 썼지만 가장 잘 알려진 글은 다음과 같다.
그들이 사회주의자를 잡아갈 때 나는 잠잠했다. 나는 사회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노동조합원을 잡아갈 때 나는 잠잠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유대인을 잡아갈 때 나는 잠잠했다. 나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이 나를 잡아갈 때가 되자 나를 위해 목소리를 낼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라고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다(눅 12:48). 이 구절을 설명하면서 엘렌 화잇은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능력에 못 미치게 일하면 각자에게 책임이 뒤따른다. 주님은 각 사역에 필요한 역량을 정확하게 재어 보신다. 사용되지 않은 역량은 계발한 역량만큼 큰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재능을 적절히 발휘했다면 이루었을 일에 대해 하나님은 책임을 물으신다. 우리는 했어야 하는데도 능력껏 해내지 않았기에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못한 일로 평가받는다”(실물, 362~363).
모두의 비위를 맞추려고 중요한 문제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보이면 모두에게 눈총을 받고 주위에는 아무도 남지 않을 것이다. 악에 맞서야 할 때 침묵하고 선을 위해 행동하지 않는 것도 실천하지 않는 죄에 해당한다. 과장이나 축소 없이 옳은 말을 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도록 주님께서 지혜 주시기를 바란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손만식/어은숙 선교사 부부(필리핀)
개척 교회 9곳이 잘 성장하고 정착하도록
3월 7일
최초의 일요일 법령
“그가 장차 지극히 높으신 이를 말로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고치고자 할 것이며 성도들은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단 7:25)
성경은 제칠일 안식일 준수를 가르치는데(출 20:8~11; 히 4:4~11) 왜 수많은 그리스도인은 일요일을 지킬까? 가장 흔한 답변은 예수께서 그날에 부활하셨기에 새로운 예배일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럴싸한 이야기이지만 신약 성경에 그렇게 언급되어 있지도 않고 역사적 증거도 부족하다. 일요일 준수는 신약 성경 이후의 역사에서나 찾을 수 있다.
다니엘서는 “진리를 땅에 던지며”(단 8:12) “때와 법을 고치고자”(단 7:25) 하는 무서운 세력에 대해 예언한다. 이 땅에 계실 때 그리스도는 다가올 그 사건을 두고 “선지자 다니엘이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라고 표현하셨다(마 24:15). 사도 시대 이후 이 예언은 분명하게 성취됐다. 교회는 일요일 예배를 비롯한 다양한 이방 신앙과 의식을 받아들였다.
321년 3월 7일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공표한 최초의 일요일 휴업령은 일요일을 기독교의 예배일로 둔갑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 법령에 따르면 “존경스런 태양의 날에는 도시의 관료와 시민 모두 쉬고 가게를 닫아야 한다. 그러나 시골의 농사꾼은 일을 계속해도 된다. 그날이 파종이나 포도 심기에 가장 적합한 날일 수 있으므로 적절한 작업 시기를 소홀히 했다가 하늘이 내린 풍요를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이 법령은 곧 교회법에 영향을 끼쳐 교회는 일요일 준수를 요구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을 이단자로 취급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예수님의 일요일 부활이나 일요일 휴업령이 수많은 사람의 주장처럼 일요일을 새로운 주님의 날로 바꾸어 놓을 수는 없다. 제칠일 안식일은 천지 창조 주간 마지막에 하나님이 제정하셨을 때(창 2:2~3)와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십계명의 일부로 선언하셨을 때(출 20:8~11)와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여전하다. 이날을 거룩하게 지키자.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대륙선교회
2023년 장기·단기 학생 선교사 모집을 위해
3월 8일
영원히 충성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
2013년 11월, 아내와 함께 일본 도쿄 시부야역 앞에 있는 충견 하치의 동상을 보았다. 영화 <하치 이야기>의 장면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이야기는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도쿄 대학 건축학과 교수인 우에노 히데사부로는 하치를 애완동물로 데려왔다. 그때부터 하치는 즐겁게 시부야역까지 우에노 교수를 마중 나갔다.
그러다가 1925년 5월, 우에노 교수가 뇌출혈로 죽고 말았다. 하지만 그 뒤로도 9년간 하치는 정확한 시간에 우에노 교수를 마중 나갔다. 괴롭히는 인간도 있었지만 하치는 포기하지 않았다. 1935년 3월 8일까지 하치는 조건 없는 충성심의 훈훈한 모본을 보이고 나서 죽었다.
동상 앞에서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이미 죽은 주인에게 이 개는 왜 끝까지 충성했을까? 왜 인간은 결혼 서약, 우정 심지어는 하나님과의 관계까지 쉽게 포기해 버릴까? 교회에서는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을 찬양하면서도 왜 삶과 행동은 그렇지 못할까?
죄 많은 우리는 남보다 자기를 먼저 생각한다. 하치 이야기는 절제, 충성, 헌신의 훌륭한 표본이다. 우리도 배우자, 가족, 친구에게 충성하고 “그리스도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항상 최우선으로” 삼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인간이 덜 이기적이었다면 그리고 더욱 사려 깊고 충실했다면 세상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여러분이 충실하게 살면 하나님이 명예롭게 여기십니다. ‘잘하였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성령께서 마음에 이르실 것입니다.”라고 아담 클라크는 말한다. 구주께서는 마지막 날에 이렇게 말씀할 것이다.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마 25:34).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류재경/김미현 선교사 부부(북사이프러스)
교인들의 영적 성장과 교회의 자립을 위해
3월 9일
역사는 바뀔 수 있다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리라 하더라”(단 4:32)
2014년 5월, 모스크바에 방문해 크렘린과 레닌의 묘를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1917년의 러시아 혁명, 1922~91년까지 지속된 막강한 소비에트 연방을 상상해 보았다. 1905년에 블라디미르 레닌(1870~1924)은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며 “영혼에 술과 같은 존재”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무신론 프로그램이 “인류를 짓누르는 종교의 멍에”를 성공적으로 대체할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 무신론적 씨앗이 송두리째 뽑히고 크렘린궁 의사당에서 설교가 전해지리라고는 아마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러시아 신문 『이즈베스티야』 1992년 3월 9일 자 전면에는 러시아 연방이 발표한 다음 소식이 실렸다. “소련 인민 대표들이 평소처럼 크렘린 의사당에서 회의를 개최할 계획이다. …일정표에는 <성경이 알려 주는 새로운 길>이라는 활동도 담겨 있다. 3월 14~25일에 개최하는 본 활동은 미국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에서 주관한다.”
6,500명을 수용하는 과거 공산당 의회의 심장에서 전도회는 예정대로 진행됐고 시간을 다 채운 것은 물론 연장되기까지 했다. 강사는 마크 핀리 목사였고 매일 1만~1만 2,000명이 2부로 참석해 1,400여 명이 침례를 받았다. 이것은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재림교회가 러시아에서 벌인 수많은 선교 활동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1992년 6월 18일 자 『애드벤티스트 리뷰』는 재림교회가 러시아에서 이룬 성과를 다뤘다. 윌리엄 G. 존슨의 기사에 따르면 재림교회는 러시아에서 (1) 최초의 개신교 세미나를 개최했고 (2) 최초의 교회 출판사, (3) 최초의 사립 병원, (4) 최초의 종교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 (5) 최초의 종교 TV 방송국을 갖추고 (6) 크렘린에서 최초로 전도회를 개최했다. 어려운 환경에서 첫 주자로 나서 눈부신 성과를 이루어 낸 것이다.
결코 희망을 잃지 말라. 하나님은 “강의 물줄기를 움직이듯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신다”(선지, 631). 러시아뿐 아니라 그 어디서도 그리고 여러분의 인생길에서도 그분께는 불가능이 없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정지훈/신은주 선교사 부부(미얀마)
MPM 직업훈련센터에서 습득한 기술이 선교적으로 활용되도록
3월 10일
자비로운 주 하나님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눅 15:32)
함선 그레이하운드호는 대서양에서 며칠 동안 강한 파도에 시달렸다. 배에는 존 뉴턴이라는 매우 부도덕한 무신론자가 타고 있었는데 퇴폐적인 동료들조차 그의 상스럽고 불경한 말투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어느 날 존은 별 생각 없이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토머스 아 켐피스가 저술한 위대한 기독교의 고전인 『그리스도를 본받아』였다. 이튿날인 1748년 3월 10일, 배의 측면에 커다란 구멍을 낼 정도로 거세게 몰아친 파도에 그는 잠이 깼다. 모두 배가 가라앉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 선원 한 명이 배를 고칠 수 있는 최후의 방법을 제안했다. 결과가 염려되었던 존은 “이 방법이 먹히지 않는다면 주님께서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존은 자신이 내뱉은 말에 깜짝 놀랐다. 평소처럼 욕설, 불경한 말, 하나님께 대드는 말 대신 존경과 섬김의 마음을 담아 주님의 이름을 부른 것이다. 그는 서아프리카에서 노예 무역을 하다가 열병에 시달렸고 마침내 그리스도께 온전한 믿음을 고백했다. 1764년에 존 뉴턴은 성공회 사제로 임명됐고 이후 열렬한 노예 제도 폐지론자가 되었다. 작사가로도 활동하던 그는 약 280편의 찬양을 남겼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찬미 <자비로운 주 하나님>은 존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1절에서 그가 회심하는 장면을 엿볼 수 있다.
자비로운 주 하나님 날 구원했으니
내 잃었던 귀한 생명 이제야 찾았네
존 뉴턴이나 탕자(눅 15:11~32)처럼 극적인 삶을 살지 않았더라도 우리 모두는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죄인이다. 그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롬 3:23).
주님, 주님의 자비로운 은혜가 우리 각 사람에게 닿아 하늘 왕국의 일원이 되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아멘.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고종식/김은아 선교사 부부(아드라 필리핀)
의료 사각지대의 가정을 돌보는 사역을 위해
3월 11일
로미오와 줄리엣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그 질투는 무덤같이 끈질기니, 그 사랑은 불꽃처럼, 강력한 불길처럼 타오르네. 사랑은 바닷물로 끌 수 없고, 강물로도 어림없네”(아 8:6~7, 쉬운)
사랑에는 경이롭고 강력한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사랑은 쉽게 일어나지만 제어하기 힘들다. 인간은 다양한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한다. 그중에는 독특한 것도 있다. 사랑은 적절하게 주고받으면 한없이 불어나지만 누군가 신의를 저버리면 우리의 사랑이 고스란히 증오로 바뀔 때가 많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희극 『로미오와 줄리엣』(1597)은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연인 이야기일 것이다. 이탈리아 치타델라 수도원의 교회에서 로미오 몬태규와 줄리엣 캐플릿이 결혼하는 이야기가 중심 내용인데 약간의 논쟁이 있지만 두 사람의 결혼 날짜는 1302년 3월 11일이라고 전해진다. 이야기는 두 사람이 함께하기 위해 목숨을 버린다는 내용으로 마무리된다. 어째서 셰익스피어가 비극적인 결말로 마무리했는지 모르겠지만 이야기는 진실한 사랑으로 어떠한 역경이든 계속해서 헤쳐 나가는 모습을 보여 준다.
『로미오와 줄리엣』에는 뛰어난 통찰력을 담은 표현들이 나온다. 가령 로미오는 “상처의 아픔을 모르는 자만이 상흔을 비웃는 법이야.”라는 대사로 감성에 호소한다. 육체적인 이끌림을 진정한 사랑의 조건으로 과대평가하는 세태에 대해 “젊은이의 사랑이 마음에 있지 않고 눈에 있구나.”라고 한탄하는 어느 수도사도 등장한다. 또 로미오는 “자기 말하기를 너무 좋아하는” 신사를 언급하면서 말 많은 습관이 얼마나 꼴사나운지도 이야기한다.
그러나 가장 멋진 것은 줄리엣의 대사이다. “내 마음은 바다와 같이 한없고 내 사랑도 바다와 같이 깊어요. 이 끝없는 마음과 사랑을 그대에게 드리면 나는 더 많이 돌려받는답니다.” 이 아름다운 표현에서 우리는 사심 없이 진정한 사랑의 정수를 배운다. 더 많이 사랑할수록 더 많이 사랑받는다. 참된 사랑은 하나님께로 말미암으며 우리는 그 사랑을 다듬어 주변 사람과 나누어야 한다. 사랑에는 결단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죄에 빠진 우리를 사랑하기로 결단을 내리셨다(롬 5:8). 우리 또한 다른 이들에게 사랑을 베풀기 위해 결단을 내려야 한다(마 5:43~48).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오정훈/강유영 선교사 부부(기타 지역)
졸업 후 의료 사역이 잘 진행되도록
3월 12일
안식일 준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출 20:10)
십계명의 넷째 계명에서는 일곱째 날을 하나님의 거룩한 안식일로 구별하고 이날을 지켜야 할 개인적·사회적 범위를 규정한다. 주인은 물론 그 집에 속한 모두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 특별히 종, 가축, 함께 머물고 있는 손님까지 언급해 가면서 주인을 위해 일하는 모두가 안식일에 쉬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원칙은 안식일 준수 재림 신도들이 개최한 주말 총회에서 진지하게 검토됐다. 총회는 1852년 3월 12일 금요일, 뉴욕 볼스턴에 있는 제시 톰슨의 집에서 열렸다. 이날 오후에 총회 참석자들은 『애드벤트 리뷰 앤드 사바스 헤럴드』 발간을 위한 수동 인쇄기 구입을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안식일을 강조하는 정기 간행물이 안식일에 비재림 신자의 인쇄소에서 발행되지 않게 하자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물론 이 타당한 우려가 율법에 대한 집착으로 변질되어 신구약 중간기의 랍비들처럼 안식일 준수 규정을 법제화하는 구실이 될 수도 있다. 성경의 원뜻을 무시하고 멋대로 읽으며 인간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예수님도 경고하셨다(마 15:3~13). 안식일의 참된 의미를 무시하고 안식일 준수의 지대한 영향력을 간과하는 경향이 무엇보다 가장 흔히 나타난다.
초기 재림교인처럼 오늘날 우리도 한결같은 안식일 준수를 위해 마음을 기울여야 한다. 율법주의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가족과 함께 안식일을 더 훌륭하게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바벨론 포로기 이후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서 단행한 안식일 개혁(느 13:15~22)에서 안식일 준수를 위한 각자의 역할에 힌트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집에서든 다른 곳에서든 우리는 안식일을 시간 속에 주어진 하나님의 거룩하고 복된 성소로 구별해야 한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서병웅/이정민 선교사 부부(미얀마)
건강센터 운영 및 선교사 훈련을 위해
3월 13일
그분의 발자취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벧전 2:21)
찰스 M. 셸던(1857~1946)은 캔자스주 토피카에 위치한 센트럴 회중 교회의 목사였다. 1896년, 그는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는 감동적인 책을 펴냈고 매주 일요일 저녁 교회에서 젊은이들에게 읽어 주었다. 전체 이야기는 주간지 『시카고 애드버케이트』에 총 31편으로 처음 실렸고 이후 책으로 엮어져 베스트셀러로 등극했고 여러 언어로 번역됐다.
1900년 3월 13일이었다. 『토피카 데일리 캐피탈』지의 편집인이자 경영자인 프레더릭 O. 포프노가 셸던 목사에게 일주일 동안 신문 발행의 전권을 위임했다. 셸던은 예수께서 하셨을 법한 방식으로 신문을 발행했고 판매 부수는 1만 5,000부에서 35만 부로 훌쩍 뛰어올랐다. 그의 이야기와 신문 발행이 큰 성공을 거둔 이유는 무엇일까?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에서 주인공 헨리 맥스웰 목사는 베드로전서 2장 21절을 주제로 멋진 설교를 준비하기로 결심한다. 설교를 준비하고 있는데 배고픈 실업자 남성이 문을 두드리며 도움을 청한다. 그러나 맥스웰 목사는 그 불쌍한 사람을 도와주지 않고 그냥 돌려보낸다. 맥스웰이 설교를 마쳤을 때 그 남자가 맥스웰과 교인들 앞에 나타나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른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뜻이냐고 묻는다. 교인들은 고민에 빠진다. 그때부터 맥스웰의 목회 인생은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라는 결정적인 물음을 토대로 진행된다.
이 질문은 단순하고 주관적인 수사적 물음을 넘어선 훨씬 심오하고 폭넓은 현실적인 내용을 다룬다. 우리는 아끼던 우상을 포기하고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해야 한다. 또 이 질문은 다른 여러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우리 집에 예수님이 계신다면 그분은 어떤 학생, 어떤 직원, 어떤 배우자, 어떤 자녀였을까?’ ‘그 상황에서 예수님은 무엇을 하시고, 무엇을 하지 않으셨을까?’와 같은 질문들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께 온전히 헌신하며 그분의 뜻과 길을 따르는 사람임을 잊지 말자.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종훈/조혜정 선교사 부부(네팔)
헤타우다 고아원 확장과 교회 건축을 위해
3월 14일
무대 뒤의 장면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과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계 12:7)
제임스 화잇과 엘렌 화잇이 오하이오주 러베츠그로브에 있는 공립 학교 건물에서 회심자들을 위한 집회를 개최하고 있을 때였다. 1858년 3월 14일 일요일 오후에 그곳에서 장례식이 거행됐다. 제임스 화잇의 영감적인 설교가 끝난 뒤 엘렌이 일어서 그리스도의 재림과 성도들의 거룩한 유산에 관하여 이야기를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시간 동안 계시를 보았다. 엘렌의 계시가 끝날 때까지 온 회중이 흥미롭게 지켜보았고 장례식도 곧 마무리되었다. 운구하기 위해 몇 사람이 빠져나갔지만 다른 이들은 계속 학교에 남았고 화잇이 가장 포괄적이고 중요한 그 계시의 주요 부분에 대해 설명하는 내용을 들었다. 그리스도와 사탄의 우주적 대쟁투의 역사를 다룬 그날의 계시는 『영적 은사(Spiritual Gifts)』 제8권과 『초기문집』 셋째 장에 수록됐다.
선과 악의 싸움을 다루는 수많은 종교 및 기독교 교단과 달리 엘렌 화잇은 이 싸움이 하늘에서 사탄이 하나님의 도덕률에 표현된 그분의 성품을 비난하면서 시작되었다고 강조한다. 에덴에서 아담과 하와를 속인 이후로 사탄은 인간을 끊임없이 유혹해 하나님의 법을 버리고 우상에게로 돌아서서 안식일을 범하게 한다. 바벨론 포로 생활 이후 하나님께서 택한 자들은 우상 숭배를 버렸지만 율법주의에 빠져들었다. 사탄은 구원의 계획을 막을 수 없게 되자 그리스도인이라 주장하는 이들의 마음을 공략해 하나님의 도덕률인 십계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다고 믿도록 했다. 그러나 마지막 때 하나님의 남은 백성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다(계 14:16, 참고 12:17).
“세상은 극장이며 거주자들은 배우”라고 엘렌 화잇은 말했다(8증언, 27). 모든 인간의 마음속은 선과 악의 전쟁터이다(엡 6:10~20). 이 싸움에서는 한시도 낭비할 수 없다. 모든 순간이 영원한 결과로 이어진다. 여러분의 삶이 오늘뿐이라면 어떻게 살 것인가? 매일의 삶이 인생의 축소판임을 기억하라.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한국연합회 세계선교본부
북인도 신학교 설립 후원을 위한 모금 활동을 위해
3월 15일
두 팔로 안고
“옛적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나타나사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하였노라”(렘 31:3)
돌처럼 차가운 길을 외롭게 맨발로 걷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모순 가득한 이 세상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신발을 여러 켤레 구입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신발 한 짝 없는 사람도 500만 명이 넘는다. 이 문제를 돕기 위해 미국에서는 매년 3월 15일을 ‘신발의 날’로 정했다. 세계 곳곳의 헐벗은 이들을 생각하며 자신이 신던 운동화를 기부하는 날이다. 그 신발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생애 첫 신발이 될 수도 있다.
운동화를 기부할 뿐 아니라 유명한 시 <모래 위의 발자국>처럼 그들이 홀로 걷지 않도록 도와야 한다. 이 시는 적어도 세 가지 형태가 존재하지만 가난한 14세 소녀 메리 스티븐슨이 1936년에 쓴 것이 원본이라 여겨지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느 날 밤 꿈속에서 주님과 해변을 거니는 꿈을 꾸었다네. 삶의 수많은 장면이 하늘에 펼쳐졌고 각 장면에는 모래 위의 발자국이 있었지. 어떤 때는 두 사람의 발자국, 어떤 때는 한 사람의 발자국이.
그 장면을 보고 마음이 불편했다네. 삶이 가장 힘든 순간, 괴롭고 슬프고 절망적일 때마다 한 사람의 발자국만 있었기에. 나는 주님께 물었지. “주님을 따르면 언제나 함께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으셨나요? 그런데 제가 가장 힘들 때마다 모래 위에는 한 사람의 발자국뿐이군요. 주님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순간에는 어째서 제 곁에 계시지 않았나요?”
주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지. “얘, 한 사람의 발자국만 보일 때는 내가 너를 업고 걸었던 거란다.”
놀라운 사실이 이 시에 담겨 있다. 하나님께서는 결정적인 순간에 우리와 가장 가까이 계신다. 살면서 가장 힘들 때 그분은 우리를 두 팔로 안고 가신다. 누구도 우리를 그 사랑의 보살핌에서 떼어 놓을 수 없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이면주/김영문 선교사 부부(파키스탄)
1000명선교사 훈련원 건축 완공을 위해
3월 16일
지적 설계론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시 19:1)
2016년 5월, 모스크바에서 이스탄불로 향하는 비행기에 탔을 때였다. 룩소르에서 온 이집트인 의사가 옆자리에 앉았는데 그는 어느 무신론자 독일인 의사가 자기 병원에 찾아왔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하나님의 존재에 의심을 표하는 그를 데리고 이집트 의사는 근처의 멋진 쇼핑몰에 들렀다. 이 건물을 누가 설계하고 지었냐고 독일인 의사가 묻자 그는 “아무도 이 건물을 짓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그럴 리가요? 건물마다 지은 사람이 있기 마련인데.” 독일인이 반문하자 이집트인 의사가 말했다. “훨씬 복잡한 생명체도 저절로 생겨났다면 건물이라고 안 될 거 있나요?”
모든 시계는 장인의 손에서 탄생했다는 논리를 창조론자들은 오래전부터 사용해 왔다. 미국의 기독교 잡지 『더 배너』 1998년 3월 16일 자에서 윌리엄 A. 뎀스키는 ‘지적 설계라는 신인이 등장했다’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실었다. 지적 설계론의 기초를 거의 처음으로 다룬 기사였다. 그는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 ‘특정화된 복잡성’으로 분류되는 특정 생명체의 생물학적 정보 특성은 “너무나 복잡해서 자연 선택의 산물로 볼 수 없다.”고 진술했다. 지적 설계론 옹호자 모두가 우주의 인격적인 창조자를 믿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들은 지적 설계자의 존재는 인정한다.
지적 설계론은 유용한 논증이지만 모든 문제를 풀지는 못한다. 어떤 비평가들은 시계 논리를 인정하면서도 시계 장인에게도 아버지가 있다고 반론을 편다. ‘하나님의 아버지는 누구냐?’는 것이다. 결국 우리에게는 두 가지 논리적인 선택지만 남는다. 우주를 창조하고 유지하는, 스스로 존재하는 인격적 하나님이 있든지, 물질 자체가 자존적인 하나님의 특성을 지니고 있든지 둘 중 하나인데 둘 다 믿음이 필요하다.
하나님은 인간의 이성으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무한하고 능하시고 영광스럽고 거룩하시다.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상관없이 그분은 존재하신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은 믿음에 관한 문제이며 그렇게 믿고 사는 사람은 영광스런 미래를 소망할 수 있다. 하나님이 없다면 희망도 없고, 희망이 없다면 미래도 없다. 우리는 하나님에 의해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 창조되었다. 오직 그분 안에서만 삶은 참된 의미를 얻는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김광성/이은정 선교사 부부(대만)
새롭게 개척된 가오슝의 삼민 교회가 온전한 교회로 세워지도록
3월 17일
그리스도를 온전히 사랑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빌 1:21)
1893년 3월 17일,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엘렌 화잇은 P. W. B. 웨슬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웨슬은 남아프리카의 사업가였고 믿음이 흔들리고 있었다. 편지에서 화잇은 이렇게 호소했다. “자신이 안전한 길에 있는지 세밀히 살펴보십시오. 길, 진리, 생명이신 그분의 생애를 간절한 마음으로 탐구하고 그분의 말씀대로 살면 선한 능력을 발휘하게 될 것입니다.”
같은 편지에서 화잇은 재림교회의 기별 전체가 어떻게 그리스도 중심으로 움직이고 퍼져 나가는지를 인상 깊게 진술했다. “그리스도, 그분의 성품과 활동이야말로 모든 진리의 중심이자 울타리입니다. 그분은 교리라는 보석들을 연결하는 사슬입니다. 그분 안에서 우리는 온전한 진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편지 63, 1893. 3. 17.).
또 다른 곳에서 화잇은 이렇게 말했다. “무엇보다도 주 예수 그리스도가 죄를 용서하는 구주이심을 소개하여 영혼을 녹이고 누그러뜨려야 합니다. 청중에게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요 1:29)을 소개하지 않는 설교나 성경 공부는 하지 마십시오. 참된 교리는 모두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삼고 있으며 모든 교훈은 그분의 말씀에서 힘을 얻습니다”(6증언, 53~54).
말할 것도 없이 엘렌 화잇은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사랑했고 다른 이들도 그렇게 되기를 바랐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자신에게 어떤 분인지 체험적으로 알기 전에는 어떤 설교도 하지 말라”(목사, 155). “모든 것에서 그리스도를 처음이자 마지막이자 최고로 삼으라. 끊임없이 그분을 바라보라. 그러면 그분을 향한 사랑은 시련 속에서 더욱 깊어지고 강해질 것이다. 그분을 향한 사랑이 커질수록 타인을 향한 사랑도 더 깊고 강해질 것이다.”(7증언, 46)라고 말했다.
그리스도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단순히 지적인 수준의 관계인가? 그렇다면 그리스도를 생생하게 경험하고 그분의 참된 교리를 체득해야 한다. 참된 교리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드러내고 진실한 관계는 그분을 향한 헌신을 보여 준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이승진/맹선옥 선교사 부부(일본)
선교지에서의 삶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기회가 되도록
3월 18일
설교의 왕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고전 9:16)
재림교회를 포함해 현대 기독교 설교가 위기에 빠졌다는 말들이 있다. 깊은 회심으로 이끌지 못하는 말잔치가 무성하다. 어쩌면 우리는 ‘설교의 왕’으로 알려진 찰스 스퍼전(1834~92)과 같은 위대한 설교자에게 진짜 설교가 무엇인지를 다시 배워야 할지도 모르겠다. 1861년 3월 18일에 스퍼전은 런던에 새로 지은 교회당인 메트로폴리탄 태버너클로 교인들과 함께 이주했고 거기서 30년 넘게 설교했다.
‘문제는 설교다’라는 제목의 강의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설교에는 실제적인 가르침이 담겨 있어야 하고 그 교리는 굳건하고 튼실하고 풍성해야 합니다. 강단은 그저 말을 늘어놓는 곳이 아닙니다. 매우 중요한 가르침을 전해야 하며 헛된 말을 지껄여서는 안 됩니다. 설교의 주제는 거의 무궁무진하므로 해묵은 속 빈 설교는 용납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대사가 되어 설교하는 사람은 결코 설교의 소재가 부족하다고 불평할 수 없습니다. 메시지는 차고 넘칩니다. 강단에서 복음을 남김없이 전해야 합니다. 지난날 성도들에게 전해졌던 온전한 믿음을 우리도 전해야 합니다. 예수 안에 있는 진리를 유익하게 선포하여 사람들이 그 즐거운 소리를 단지 귀로 들을 뿐 아니라 마음으로 깨닫게 해야 합니다.”
같은 강의에서 스퍼전은 이렇게 덧붙였다. “저의 소원을 한마디로 말하겠습니다. 형제들이여, 늘 언제나 그리스도를 전하십시오. 그분의 인격, 그분의 임무, 그분의 활동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주제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세상의 구주에 대해, 그분께 가는 방법에 대해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철학이나 형이상학이 아니라 단순한 복음을 전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인간은 타락했으며, 거듭남, 속죄를 통한 용서, 믿음으로 얻는 구원이 그들에게 필요하다는 메시지야말로 우리가 싸움에서 사용해야 할 무기입니다.”
관찰과 경험이 결합된 스퍼전의 충고는 다른 설교자를 비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할 때마다 숙지해야 할 사항이라는 점에서 유익하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황자연/데니 홍 선교사 부부(케냐)
병원 재정이 안정되어 직원들 급여를 제대로 줄 수 있도록
3월 19일
현대판 만나
“그의 양식은 공급되고 그의 물은 끊어지지 아니하리라”(사 33:16)
하나님이 성경 시대에만 기적을 행하셨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오늘날에도 기적은 여전히 일어난다. 2014년, 앙골라 남바의 재림교회 선교센터에서 나는 기적을 직접 목격했다.
그때로부터 75년 전의 일이다. 그 넓은 대지에 재림교인이 100명 남짓 살고 있었는데 지독한 건기가 닥쳐와 작물이 자라지 않고 양식도 떨어졌다. 1939년 3월 19일에 선교부장의 아내는 지역의 가정들을 모아 특별 집회를 개최했다. 상황을 설명한 뒤 그는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먹이신 하나님이 도와주실 것이라고 말했다. 기도 후에 그의 15살짜리 딸아이가 밖으로 나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얀 음식을 손에 한가득 쥐고 먹으면서 들어왔다. 사람들이 궁금해하자 아이는 밖에서 유럽인 6명을 만났는데 하나님이 기도 응답으로 만나를 보내셨다는 설명을 그들에게 들었다고 했다.
만나는 다음 추수 때까지 풍성하게 내렸다. 작물이 안정적으로 자란 뒤에도 계속해서 조금씩 만나가 내렸다. 재림교회 선교센터를 앙골라 혁명군이 점령했을 때는 만나가 내리지 않았다. 앙골라 정부가 재림교회 선교센터를 교회에 되돌려 주자 곧 만나가 다시 내렸다. 내가 방문한 2014년에도 수요일, 금요일 아침마다 교회 뒤쪽에 작은 조각들이 내렸는데 입에 넣으면 상쾌하고 달달한 맛을 내며 녹았다.
제르손 피레스 지 아라우조는 만나 샘플 몇 개를 채취해 브라질 캄피나스 주립대학 질량분광분석연구소에 보냈다. 분석 결과 “이 물질의 주성분은 올리고당이며 미량의 질소, 산소 화합물, 인간이 섭취하기에 적합한 금속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밝혀졌다.
하나님은 결코 자기 자녀를 버리지 않으신다. 엘렌 화잇이 말했듯 “우리 하늘 아버지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천 가지의 길을 우리를 위해 마련해 놓으셨다. 하나님을 최고로 받드는 원칙을 지키면 난관이 사라지고 탄탄대로가 펼쳐진다”(치료, 481). 하나님의 보살핌을 믿으라.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이효신/이은화 선교사 부부(아드라 캄보디아)
방글라데시 내 413개 교회의 영적 부흥과 이슬람 선교 역량 증대
3월 20일
나의 선교 구역은 온 세상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마 13:38)
하나님 나라의 복음 전파가 지리적, 민족적, 사회적 장벽에 구애받아서는 안 된다. 감리교 공동 창시자인 존 웨슬리(1703~91)는 성공회 사제이자 신학자였고 순회 부흥 설교자였다. 그러나 옥스퍼드 링컨 대학교의 연구원이던 그에게는 할당된 교구가 없었다. 자신의 교구도 없고 다른 교구의 사제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던 그는 들판에서 수많은 군중을 향해 설교했다.
1739년 3월 20일, 제임스 허비에게 쓴 편지에서 존 웨슬리는 이렇게 선언했다. “나에게 주어진 교구가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네. …온 세상이 나의 교구라고 생각하겠네. 즉 내가 어디에 있든 내 말을 기꺼이 듣고자 하는 이들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이 합당하고 옳으며 마땅한 의무라고 생각하겠다는 말이지.” 웨슬리는 평생 40만km를 혼자서 말을 타고 다니며 4만 번이 넘게 설교했다고 전해진다. 설교는 대부분 야외에서 했다.
1777년 8월 6일, 알렉산더 매더에게 보낸 짧은 편지에서 웨슬리는 감리교의 미래에 대한 우려를 표현했다. 그는 감리교 설교자 중에 영감적이지 않고 “하나님과 살아 있는 관계를 맺지 못하며” “물렁하고 무기력하고 부끄러움과 수고와 고난을 겁내는” 이가 많다고 지적했다. 편지의 끝부분이 특히 눈길을 끈다. “죄 이외에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 이외에는 그 무엇도 갈망하지 않는 사람 100명을 보내 주게. 성직자든 평신도든 상관없네. 이런 사람만이 지옥의 문을 뒤흔들고 이 땅 위에 하늘 왕국을 세울 걸세.”
재림교인으로서 우리는 세 천사의 메시지를 온 세상에 전해야 한다(계 14:6~12). 영적인 열성과 열망이 부족한 사람은 우리의 사역을 심각한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다. 재림교인 모두가 “죄 이외에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 이외에는 그 무엇도 갈망하지 않으며” 온 세상을 자신의 선교지로 삼는다면 재림 운동이 얼마나 강력해지겠는가? 남에게는 더 많은 것을 기대하면서 정작 자신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인간의 성향이다. 남들이 앞장설 때까지 기다리지 말라. 헌신은 그대와 나에게서 지금 바로 시작되어야 한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남형우/배현경 선교사 부부(일본)
85만 재일 한국인 선교를 위한 선교협회 조직을 위해
3월 21일
봄날의 실망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마 24:42)
생전에 그리스도의 재림을 보리라 기대한 그리스도인이 수백 년 동안 많이 있었다. 굵직한 사건들 때문에 그 기대감이 한층 고조되기도 했다. 1798년 2월, 프랑스군이 교황 비오 6세를 투옥한 사건은 성경 예언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일으켰다.
윌리엄 밀러(1782~1849)는 1816년부터 2년간 집중적으로 성경을 공부한 뒤 “1843년쯤에” 그리스도가 재림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밀러는 다니엘서 8장 14절의 상징적인 2,300주야가 아닥사스다왕의 예루살렘 성벽 중건령과 함께 기원전 457년에 시작했으며 서기 1843년에 마칠 것임을 알게 됐다(스 7장; 단 9:25). 1842년 말에 그의 친구 몇은 예언 기간이 마치는 시기를 더 정확히 규명해 보라고 요청했다. 결국 1843년 초 『사인스 오브 더 타임스』지에 밀러가 기술한 장문의 기사가 실렸다. 밀러는 “유대력에 따르면 1843년 3월 21일에서 1844년 3월 21일 사이에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신다.”라고 말했다. 밀러주의자 전부는 아니어도 대부분이 동조했다.
밀러는 구체적인 날짜가 아니라 기간만 밝혔지만 1844년 3월 21일에 수많은 밀러주의자가 이른바 ‘봄날의 대실망’에 빠지고 말았다. 그들은 이전의 영적 열성과 기대를 잃어버렸다. 마태복음 25장의 열 처녀 비유처럼 그들은 ‘다 졸며 잤다’(5절). 이 영적 무기력은 1844년 8월 중반 뉴햄프셔주 엑서터에서 밀러주의자 장막 집회가 열리기 전까지 계속됐다. 장막 집회에서 새뮤얼 S. 스노우는 2,300주야가 1844년 10월 22일에 끝난다고 주장했다. 스노우의 메시지는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6절)는 열 처녀 비유의 밤중 소리로 여겨졌다. 스노우의 견해는 밀러주의 운동에 전례 없이 열정적인 기대감을 불어넣었다.
2,300주야는 재림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하늘 사역에 생길 중대한 전환에 관한 예언임을 밀러주의자들은 끝내 깨닫지 못했다(단 7:9~14). 우리는 “깨어 있으라”고 경고받았다. “주께서 어느 날에 오실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마 24:42, 바른). 재림 기별의 핵심은 ‘언제 오시느냐’가 아니라 ‘누가 오시느냐’이며 그 주인공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박교린/이미화 선교사 부부(아랍 에미리트)
걸프 필드 산하 7개국 목회자 가족의 비자와 교회 등록이 법적으로 이루어지도록
3월 22일
현대의 어린이 설교자
“예수께 말하되…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마 21:16)
수 세기에 걸쳐 하나님은 어린이를 자신의 특별한 기별꾼으로 사용하셨다. 예수님이 당당하게 예루살렘과 성전에 들어가실 때 아이들은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외쳤다(마 21:15~16). 19세기 스웨덴에서는 어린이 설교자들이 수천 명 앞에서 재림 기별을 힘차게 전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이 아이들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에 힘입어 “어른 같은 기백과 품위를 담아 말했다.” 지금도 전 세계에서 수많은 어린이가 재림의 복된 소망을 전하고 있다.
브라질 펠로타스의 비재림교인 가정에서 자란 안드레사 P. 바라가나(1993~2008)는 가족과 함께 성경을 배운 뒤 9살에 침례를 받았다. 얼마 후에는 소그룹을 만들었고 이를 토대로 20개 그룹이 생겨났다. 안드레사의 소그룹은 불우 어린이를 위한 수공예 작업, 매주 성경 연구 라디오 프로그램, 양로원 방문, 기도회, 설교 등을 포함한 주간 선교 활동의 센터로 자리 잡았다.
안타깝게도 2008년 3월 22일 토요일 오전 7시 25분, 이웃 마을에 설교하러 가다가 끔찍한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안드레사의 전도 활동은 막을 내렸다. 하지만 그녀의 모본에 감동받아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어린이가 많다.
“자녀들이 비신자를 위해 활동하도록 부모들은 모본을 보이며 가르쳐야 한다. 아이들은 노인과 고통당하는 이들을 불쌍히 여기며 가난하고 괴로워하는 이들을 돕도록 교육받아야 한다. 부지런히 선교 활동에 참여하도록 가르치고, 타인의 유익과 그리스도의 사업을 위해 어릴 때부터 자제력과 희생정신을 익혀서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게 해야 한다.
부모들은 예수 안에 있는 진리를 있는 그대로 자녀에게 가르쳐야 한다. 어린이들은 단순하기 때문에 자신이 배운 대로 친구들에게 똑같이 행동한다”(가정, 487).
모든 어린이가 주님의 선교사가 된다면 얼마나 복된 일이겠는가.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최봉길/최경미 선교사 부부(에티오피아)
효과적인 예멘 난민 선교를 위한 길을 보여 주시도록
3월 23월
경이로운 나무들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창 2:9)
창세기의 천지 창조 이야기에는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위해 지으신 에덴동산이 나온다. 거기에는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창 2:9) 나무가 많았다. 에덴동산에 있던 나무의 종류가 몇 가지나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죄로 물든 지금의 세상에도 다양한 나무가 있다.
학술지인 『지속 가능한 녹지』 2017년 3월 23일 자에서는 ‘전 세계 나무의 수종과 국가별 분포에 관한 최초의 세계적 데이터베이스’라는 제목으로 온라인 자료를 소개했다. 연구에 따르면 지구상의 나무는 7만 종이 넘는다. 가장 다양한 수종을 보유한 나라는 브라질(21,728종), 콜롬비아(18,739종), 인도네시아(5,142종)이다.
캘리포니아에 가면 가장 거대하고 키 큰 나무를 볼 수 있다. 가장 거대한 나무는 세쿼이아 국립 공원의 ‘제너럴 셔먼 세쿼이아’로 높이가 83.8m이고 둘레는 31m이다. 가장 키 큰 나무는 레드우드 국립 공원의 ‘히페리온 삼나무’로 높이가 115.7m에 달한다.
가장 인상적인 나무는 브라질 나탈 지역 인근에 있는 세계 최대의 캐슈 나무이다. 일반 캐슈 나무 70개를 합친 크기와 맞먹고 매년 6만 개나 되는 캐슈너트를 맺는다. 거대한 몸통을 중심으로 수많은 가지가 땅에 닿아 뿌리내리고 있다.
브라질너트 나무는 아마존 열대 우림에서 가장 키가 크다. 열매의 바깥 껍질은 나무처럼 단단하고 열매 속에는 긴 삼각형 형태의 씨앗(브라질너트)이 8~24개 들어 있다.
이들 나무를 비롯한 수많은 열매와 견과가 우리에게 영양분을 공급한다. 생명나무는 그보다 훨씬 달콤하고 영양가 있는 열매를 맺는다. 또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는다(계 22:2).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영원한 생명과 구원의 기회를 얻고 생명나무를 얻을 수 있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정남웅/심은정 선교사 부부(대만)
선교사 자녀들의 신앙과 성장을 위해
3월 24일
비극적인 결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 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때를 기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마 2:16)
독일 신문 『베스터밸더 차이퉁』 2016년 4월 2일 자에 안드레아스 루비츠의 부모와 형제의 특별한 편지가 소개됐다. 1년여 전 발생한 항공기 추락 사고로 안드레아스를 잃은 뒤 지역 사회의 도움을 받은 유가족이 감사를 표한 것이다. 일부 독자는 편지를 읽고 나서 편지 내용이 아니라 편지에서 빠진 내용이 있다며 날을 세웠다. 편지에는 안드레아스만 언급했고 사고로 똑같이 목숨을 잃은 나머지 149명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었기 때문이다.
2015년 3월 24일 오전 10시 1분에 저먼윙스 항공 9525편이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출발해 독일 뒤셀도르프로 향하고 있었다. 프랑스령 알프스 위를 지날 무렵 파트릭 존덴하이머 기장은 화장실에 가려고 조종실 자리를 비웠고, 부기장 안드레아스 루비츠는 기장이 나간 사이 조종실 문을 걸어 잠그고 암호를 못 쓰게 만들었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10분간 급강하해 산에 충돌했다. 저먼윙스 9525편의 승객은 현장에서 전원 사망했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루비츠는 심각한 우울증을 앓았고 자살 성향을 보였다고 한다.
이 사고 이후 수많은 항공사에서는 안전을 위해 조종실에 승무원이 최소 2명 남아 있도록 규정을 만들었다. 무책임한 행동이 비극적인 결과를 낳는다는 교훈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나무 한 그루로 성냥 100만 개를 만들 수 있고 성냥 한 개비로 나무 100만 그루를 태워 버릴 수 있다.”는 격언이 있다. 마태복음 2장 16절에서는 헤롯의 정신 나간 명령 때문에 베들레헴과 그 일대의 수많은 아이가 죽임을 당했다고 전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 수밖에 없다. 사소한 행동이나 부주의한 말 한마디의 결과가 영원히 따라다닐 수도 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말과 행동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주변에 복된 감화를 끼칠 수 있기를 바란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북한선교부
북한선교대회를 통해 한국 교회 내에서 북한 선교의 열기가 확산되도록
3월 25일
생령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창 2:7)
인간의 본성과 운명에 대한 논의와 혼란은 다양하다. 예를 들어 인간이 죽으면 그 영혼은 낙원이나 지옥 또는 연옥으로 직행한다고 믿는 그리스도인이 많다. 환생이 끝없이 반복된다는 윤회 사상을 지지하는 종교도 있다. 그들에게 죽음은 신체가 다른 신체로 바뀌는 것에 불과하다.
이 주제와 관련해 가장 크게 기여한 재림교인은 장 취르허이다. 1953년 3월 25일, 스위스 제네바 대학 인문학부 심사 위원회에서는 그의 탁월한 박사 학위 논문인 <인간의 본성과 운명-영혼과 육체의 결합 문제에 대한 평론>을 승인했다.
취르허에 따르면 죽음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수많은 오해는 영혼과 신체의 결합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그리스 철학자들(주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기인한다. 창세기 2장 7절에 따르면 인간의 존재는 “생령” 즉 ‘산 영혼’이며, 몸이 신체적으로 사망한 뒤에 남아 있는 불멸의 영혼 따위는 없다. 영혼 그 자체도 죽기 때문에(겔 18:20) 영혼의 타고난 불멸성이란 없는 것이다. 취르허는 “죽음은 잠과 같은 무의식 상태”이며 “부활로 그 잠에서 깨어난다.”고 설명했다. 또 “인간에게는 타고난 불멸성이 없다. 단지 그의 영혼이 그리스도를 믿고 그의 모습을 따를 때 얻는 영생이 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성경의 교리는 제각각 따로 놀지 않고 서로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영혼의 조건적 불멸은 또 하나의 이론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재림 및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한 재림교회의 이해를 떠받치고 있다. 이 교리는 죄와 죄인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환경에서 하나님의 충성스런 자녀가 그분과 영원히 함께 사는 영광스러운 영생의 문을 밝혀 준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기노혁/윤재나 선교사 부부(튀르키예)
새롭게 준비된 선교센터를 통한 효과적인 리더 훈련을 위해
3월 26일
굶주린 소녀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마 25:40)
선한 의도는 필수적이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1993년 3월, 아프리카 수단을 찾아간 케빈 카터는 “사진 보도 역사상 가장 논쟁적인 사진 하나”를 찍었다. 사진의 원제목은 ‘굶주린 소녀’였다가 나중에 ‘독수리와 어린 소녀’로 바뀌었다. 카터는 아요드라는 마을 근처에서 기아에 허덕이는 어린 소녀 하나가 유엔 급식 센터로 가다가 땅바닥에 몸을 구푸린 채 쉬고 있고 그 옆으로 독수리가 다가오는 모습을 발견했다. 독수리가 충분히 가까이 접근해 좋은 구도가 잡힐 때까지 카터는 20분을 기다렸고 사진 몇 장을 찍은 뒤 새를 쫓아낸 다음 현장을 떠났다.
그 사진은 『뉴욕 타임스』에 팔렸고 1993년 3월 26일에 처음으로 공개됐다. 이 충격적인 사진으로 카터는 퓰리처상을 받았지만 그 소녀를 돕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센 비난을 받았다. 직업인의 관점에서 그는 정당했다. 사진 기자는 “감염의 우려 때문에 기아의 희생자들을 만지지 않도록” 교육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리적 관점에서 그는 어린 소녀의 고통에 무관심해서는 안 되었다. 그 아이가 이미 도움을 받고 있었다 해도 말이다. 여론의 비난과 양심적인 괴로움으로 그는 깊은 우울증에 빠졌고 2007년 7월 4일, 나이 서른셋에 자살하고 말았다.
만약 그리스도께서 죄인인 우리에게 무관심하셨다면 어땠을까? 마태복음 25장 34~46절에서 그리스도는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 상반된 반응을 보이는 두 무리를 언급하셨다. 임금은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35~36절)라면서 오른편의 무리를 칭찬하셨다. 어려움에 빠진 이들에게 우리가 한 것을 예수님은 자신에게 한 것으로 간주하신다.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장하자.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양희원/현아름 선교사 부부(대만)
차오양 대학 선교를 통한 대만의 청년 선교를 위해
3월 27일
재밋거리
“형제 여러분, 선함을 추구하며 가치가 있는 것들에 마음을 쏟기 바랍니다. 참되고, 고상하고, 옳고, 순결하며, 아름답고, 존경할 만한 것들을 생각하십시오”(빌 4:8, 쉬운)
오늘은 세계 연극의 날이다. 이 기념일은 1961년 국제예술협회에서 제안되어 그때부터 3월 27일로 정해졌다. 1962년 이날에 기념 메시지를 전한 장 콕토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역사를 비틀고 신화를 확립하는 역설을 낳는 것이 연극이라고 했다. 훌륭한 극작가란 관객이 “거의 어린이와 같은 믿음”에 빠지도록 “집단 최면”을 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세계 연극의 날은 연극 행위의 문화적 가치와 중요성을 강조하고자 제정됐지만 그리스도인은 오락과 레크리에이션을 또 다른 눈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신앙을 매주 예배당에서 시간을 보내는 근사한 영적 활동 정도로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인에게 신앙이란 끊임없이 그리스도께 헌신하는 것이며 특정 시간이나 장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고전 2:16)을 지녔다면 절대로 그리스도께서 허락하지 않을 불쾌한 장소에 가거나 그리스도를 마음에서 사라지게 할 것들에 자신을 노출시키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참되고, 고상하고, 옳고, 순결하며, 아름답고, 존경할 만한 것들”(빌 4:8)로 마음을 계속 채울 것이다. 악한 것을 눈앞에 두지 않고 거짓말쟁이와 어울리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라 인간이므로 기운 빠지는 일상에서 벗어나 쉼을 얻고 기력을 회복할 특별한 시간이 때때로 필요하다. 예수께서도 제자들에게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막 6:31)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자극적인 세상 오락과 활력을 북돋는 그리스도인의 휴양은 분명히 다르다.
바울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고 조언한다. 오늘 자신의 여가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또 어떻게 하면 삶이 하나님의 이상에 더욱 가까워질 수 있을지 생각해 보자.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이기원/이용숙 선교사 부부(대만)
타이베이와 신베이에서 많은 낙심자를 접촉하고 그들이 새롭게 신앙할 수 있도록
3월 28일
합법적이어도 무익한 경우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고전 6:12)
허용된 것(합법적인 것)과 바람직한 것(유익한 것)은 매우 다르다. 사도 바울은 이 점을 잘 알았기에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겠다고 말했다. 자신의 ‘권리’는 주장하면서 타인의 권리는 무시하는 사람이 많다. 그리스도인은 말하고 행동할 때 단순히 합법적인 것과 실제로 유익한 것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영국의 일간지 『인디펜던트』 2003년 3월 28일 자에서 마일스 킹턴은 “토마토를 과일로 알고 있는 게 지식이라면 토마토를 과일 샐러드에 넣지 않는 것은 지혜”라고 말했다. 물론 우리에게는 토마토를 과일 샐러드에 넣을 권리가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게 하지 않으며 그것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모든 행동에는 문화적 감각과 상식이 필요하다. 성경의 보편적인 기준과 충돌하지 않는 한도에서 우리는 문화적, 윤리적 모범을 따라 행동할 수 있다.
같은 원칙을 언어생활에도 적용해야 한다. 우리는 말로 사람을 세우기도 하고 넘어뜨리기도 한다. 옳은 정보라 해도 무례하게 전달하거나 틀린 것을 강조하기 쉽다. 누군가의 말처럼 “지식이란 해야 할 말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고 지혜란 그것을 언제 말할지를 아는 것이며 존경이란 그것을 어떻게 말할지 아는 것”임을 잊지 말자. 솔로몬은 “입과 혀를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환난에서 보전”(잠 21:23)하며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잠 25:11)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 원칙을 따르지 않는 이들에게 우리는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할까? 예수님은 산상 설교에서 이 점에 대해 잘 알려 주셨다(마 5~7장). 예수님은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고 사랑 어린 태도로 대하여 원수에게까지 애정과 존중을 베풀라고 하셨다(마 5:38~48).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한다고 솔로몬은 진술했다(잠 15:1). 세상은 이런 실천적인 신앙을 경험할 때만 복음의 변화시키는 능력을 믿기 시작한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강병주/김윤숙 선교사 부부(대만)
신주금성 교회의 평신도 리더십을 위해
3월 29일
비밀
“입방아를 찧고 다니는 사람은 비밀을 흘리지만 속이 듬직한 사람은 비밀을 지킨다”(잠 11:13, 공동)
코카콜라 제조법만큼이나 오랫동안 호기심과 추측을 자아낸 비밀도 아마 없을 것이다. 1886년 3월 29일, 미국의 약사 존 펨버턴(1831~88)은 뒷마당에서 예비 실험을 거쳐 콜라나무 열매와 코카 잎으로 최초의 코카콜라를 제조했다. 이미 5월 초부터 이 처방은 애틀랜타에 있는 제이컵의 약국에서 사용됐고 소화제, 두통약, 강장제 등으로 홍보되기도 했다.
오늘날에는 코카콜라 병이나 캔에 내용물이 적혀 있지만 ‘20가지’ 약초 추출물로 알려진 ‘천연 향료’는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표현해 놓았다. 이 제조법은 “세계에서 가장 철저하게 지켜지는 비밀 중 하나이다. 이 비법을 아는 사람은 언제나 두 명뿐이며 두 사람은 추락 사고를 대비해 결코 같은 비행기를 타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한 사람이 죽으면 다른 한 사람은 또 다른 믿을 만한 사람에게 이 제조법을 전해 주어야 한다. 한편으로 이 제조법을 알아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다.
우리가 지켜야 할 비밀은 무엇이고 지키지 말아야 할 비밀은 무엇일까? 산업·무역·군사 전략은 철저하게 지키는 경우가 많은데 대인 관계에 관한 비밀은 어떤가? ‘누군가에게 비밀로 한다는 것은 그에게 거짓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라는 말이 있다. 또 리자이나 브렛은 “비밀스러운 관계는 맺지 말라.”고 덧붙인다. 분명 그리스도인의 삶은 투명하고 숨은 의도가 없어야 한다. 그렇다고 남을 헐뜯고 다녀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심리학자나 상담가는 고객의 비밀을 지켜야 할 법적 의무가 있다. 잠언 11장 13절에서는 “입방아를 찧고 다니는 사람은 비밀을 흘리지만 속이 듬직한 사람은 비밀을 지킨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최종적으로 인간의 모든 비밀을 공개하시겠지만 우리에게는 “사람들이 듣는 데서 꺼내지 말아야 할 고백이 많다. 그 이유는 유한한 인간의 제한된 판단으로는 예상할 수 없는 결과가 생기기 때문이다”(5증언, 645). 남들과 자신에 대해 윤리적인 사람이 되자.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배진성/정해옥 선교사 부부(인도)
7월 시작을 목표로 준비 중인 북인도 신학 대학을 위해
3월 30일
고통의 경감
“거기 신 포도주가 가득히 담긴 그릇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에 매어 예수의 입에 대니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요 19:29~30)
마취 처방 없이 무릎 위까지 다리를 절단한다면 어떻겠는가? 미국 뉴햄프셔주 킨 출신의 유명한 외과 의사 에이머스 트위첼이 네 살배기 유라이어 스미스를 수술할 때 바로 그렇게 했다. 20분에 걸친 수술은 스미스 가족의 부엌 탁자에서 진행했다. 다행히도 세월은 변했고 오늘날 우리는 전신 마취나 국소 마취로 통증 없이 수술을 받는다.
미국인 의사이자 약사인 크로퍼드 W. 롱(1815~78)은 에테르를 마신 사람은 다쳐도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1842년 3월 30일, 롱은 제임스 베너블이라는 환자의 작은 종양 두 개를 떼어 낼 때 에테르를 마취제로 사용했고 베너블은 아무런 통증도 느끼지 않았다. 롱의 수술을 알지 못한 채 1846년 10월 16일에 윌리엄 T. G. 모턴은 보스턴의 매사추세츠 병원에서 에테르 마취제를 활용한 공개 수술을 진행했다. 롱은 1849년이 되어서야 자신의 발견을 발표했고 생전에는 업적을 인정받지 못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기 직전에 “내가 목마르다!”라고 말씀하셨다. 누군가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들어서 그의 입에 갖다 댔다. 시편 69편 21절에서는 “그들이…초를 마시게 하였사오니”라며 이 사건을 예언했다. 엘렌 화잇은 이렇게 설명한다. “십자가에서 고통당하며 죽어 가는 자들에게는 통증에 대한 감각을 마비시키는 마취약이 허용되었다. 마취약이 주어졌지만 예수님은 맛을 본 뒤 그것을 거절하셨다. 그분은 자신의 마음을 흐리게 하는 어떤 것도 받지 않으셨다. 그분의 믿음은 하나님을 굳게 붙잡아야만 했다. 그것이 유일한 힘이었다. 감각이 흐려지면 사탄에게 유리해진다”(소망 746).
통증이란 신체적으로 어딘가 문제가 생겼으니 고쳐야 한다는 경보이다. 그런데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고통을 겪고 싶어 하지 않는다. 영적으로 죄의 문제가 해결되는 과정에서 고통을 숨기려 해서는 안 된다. 죄와 관계된 고통에 대한 유일하고 참된 해결책은 개인적인 회개와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에 힘입는 용서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PCM(캠퍼스 선교사 운동)
새롭게 파송된 5기 선교사들(6명)의 현지 적응을 위해
3월 31일
보살핌
“당신의 날개로 덮어 주시고 그 깃 아래 숨겨 주시리라. 그의 진실하심이 너의 갑옷이 되고 방패가 되신다. 밤에 덮치는 무서운 손, 낮에 날아드는 화살을 두려워 마라”(시 91:4~5, 공동)
이 세상은 거대한 선악의 격전장이다. 하나님이 끊임없이 보호해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악한 세력의 공격에 완전히 짓눌릴 것이다. 시편 91편에서는 밤의 두려움과 낮의 화살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 하나님은 자기 자녀를 보호하시며 좋을 때든 힘들 때든 함께하신다.
1847년 12월에 폭스 가족은 뉴욕주 하이즈빌로 이사한 지 몇 달 안 되어 문 두드리는 소리와 가구를 쿵쿵거리는 이상한 소음에 시달렸다. 그 소리는 점점 심해졌고 1848년 3월 31일, 세 자매 중 막내인 열두 살 케이트는 자신이 소리를 내면 이 신비한 소리가 거기에도 반응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케이트와 당시 열다섯 살인 언니 매기는 그 영에게 악마의 별칭인 ‘갈라진 발’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두 자매는 그 영과 소통하는 나름의 신호를 만들어 냈고 그 영은 자신이 나이 서른하나인 행상꾼이며 살해당해 그 집 지하실에 묻혀 있다고 알려 주었다.
1850년 8월 24일에 엘렌 화잇은 “그 ‘신비한 두드림’은 사탄의 세력인데 그중 일부는 직접 사탄에게서, 일부는 간접적으로 그의 심부름꾼들에게 비롯한 것이며 결국 모두 사탄에게서 온 것”이라는 계시를 받았다. 화잇은 이 현상을 “번개처럼 빨리” 세상에 퍼질 현대 강신술의 시작으로 규정했다(초기, 59~60, 87~92). 폭스 가족의 집터인 하이즈빌 기념 공원에는 “현대 심령술의 발생지이자 전당”이라고 새겨진 기초석이 놓여 있다. 폭스 일가와 사탄의 대화 이후로 강신술과 신비주의는 천문학적으로 급증해 갖가지 다른 형태를 띠고 서구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장악했다.
우리는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마 24:24)하는, 문화적으로 용인된 이런 속임수를 모조리 멀리해야 한다. ‘마술적인 사탄의 영역’에는 호기심이나 장난으로라도 결코 발을 들이면 안 된다. 하나님의 보호 아래 있으면 절대적으로 안전하고 악의 세력에 대해 염려할 필요가 없다. 그분의 강한 천사가 우리를 지켜 줄 것이다.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
정성용/장유진 선교사 부부(인도네시아)
동인도네시아 1000명선교사 분원이 맡겨진 선교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