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길호(안)-내 생애의 멘토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창세기 39:23).
이제 서울영어학원 교회에서의 설교가 오늘을 제외하고 한 번이 남았습니다. 이달 말 25일에 마지막 고별 설교를 할 것입니다. 두 번 밖에 남지 않은 설교를 무엇으로 할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많은 고심 후에 요셉의 생애를 나누기로 결정했습니다. 요셉은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신앙해야 하는 지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요셉은 저의 삶의 모든 순간에 끊임없는 영감을 주었던 영적 멘토였습니다. 삶의 중요한 갈림길에 있을 때, 위기의 순간에, 사람들과의 갈등이 있을 때, 낙심될 때, 상담할 때, 언제나 머리 속에 떠올렸던 인물이 요셉입니다. 앞으로 은퇴 후에 삶과 인생을 마무리하고 눈을 감을 때도 그의 자세를 따를 것입니다. 요셉의 생애를 통해서 두 가지 영적인 교훈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행한 요셉
본문 초반부의 말씀을 다시 봅니다.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창 39:23).
요셉의 삶의 특징을 가장 잘 표현하는 한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코람데오” (Coram Deo)란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라틴어의 2단어의 합성어 입니다. 코람Coram은 “면전에서 혹은 앞에서”in the presence of라는 뜻이고 데오는 Deus ‘하나님’God이란 뜻입니다. 성경의 모든 인물은 코람데오의 삶을 살았습니다.
시편 139장에서 다윗은 말합니다. 시 139:1~4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아시오니 여호와야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나이다” 7~10,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예레미야도 말합니다. 예레미야 23:2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신을 은밀하게 숨길 수 있겠느냐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이 코람데오 사상은 종교개혁자들의 삶의 기초가 되었습니다. 마르틴 루터, 쯔빙글리, 칼빈, 윌리암 틴데일 같은 이들이 모두 코람데오의 정신으로 살았습니다. Benjamin Warfield 교수는 말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을 보는 사람입니다. 자연에서 하나님을 보고, 역사에서 하나님을 보고, 모든 현상의 배후에서, 모든 곳에서 하나님을 보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때로 설교를 준비하면서 하늘을 바라봅니다. “하나님 제가 말씀 준비합니다. 저를 보고 계시지요. 저에게 영감을 주십시오. 하나님의 자녀들의 사정이 다 다릅니다. 각자에게 필요한 말씀으로 다가갈 수 있도록 저의 생각을 인도해 주십시오” 길을 걸으면서도 하나님의 임재를 느낍니다. 꽃을 보면서도 하나님 너무나 멋지십니다. 무지개를 보면서도 하나님의 아름다운 마음을 느낍니다. 그러면 마음에 감사와 감동하는 마음이 가득해집니다. 기독교 신앙을 처음 할 때는 하나님이 불꽃 같은 눈으로 나를 감시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니 늘 하나님이 부담스러웠습니다.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제대로 깨닫고 나니 하나님 앞에 살아가는 것은 가장 영광스런 일이었습니다.
아른힐 레우벵(Arnhild Lauverng) 이란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유명한 심리학자가 있습니다. [나는 자주 죽고 싶었고 가끔 정말 살고 싶었다]라는 책을 썼습니다. 책 제목이 많은 사람들의 심정을 대변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녀는 14살에 환각과 환청을 겪는 조현병을 앓았습니다. 그녀는 감정이 극과 극을 오갔습니다. 모든 것을 닥치는 대로 던졌습니다. 예쁜 유리잔과 접시를 쓸 수 없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녀를 위해서는 종이 접시와 종이컵만을 사용했습니다. 그녀는 정신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어느 날 그녀가 잠깐 집에 들렀습니다. 그녀를 위해 식탁이 차려져 있었습니다. 예쁜 장미 잔으로 테이블이 놓여있었습니다. 그녀는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엄마의 마음이 그 장미 잔에 담겨있었습니다. 그것은 딸을 무조건 믿는다는 표현이었습니다. 그녀는 그 장미 잔을 던지지 않았습니다. 그 어머니의 끊임없는 믿음이 그녀를 다시 세워주었습니다.
요셉이 만난 하나님은. 그를 끊임없이 세워주는 하나님이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두려운 존재였다면 일생 동안 그분과 동행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신앙에 지쳐서 죽었을 것입니다. 선하신 하나님을 만나면 요셉의 헌신과 동행이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그러므로 요셉의 이야기는 요셉이 주인공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인공입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창 39:23). 본문의 주어는 요셉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그 하나님께서 요셉을 범사에 형통케 했다고 했습니다.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다는 표현이 반복되어 나옵니다. 창 39:2~3,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창 39:21, “여호와께서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이 구절들을 보면서 형통에 대해 혼동이 생깁니다. 하나님께서 범사에 형통케 하셨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게 보입니다.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다는 말씀 다음에 요셉에게 큰 시련이 닥칩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그를 모함해서 감옥에 갇힙니다. 그가 감옥에 갇혔는데도 하나님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모든 순간은 형통하는 순간입니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하나님 앞에서 행한다면 형통입니다.
하늘을 향해 있는 두 개의 화살 그림이 있습니다. 화살 하나는 직선입니다. 다른 하나는 구불구불한 화살입니다. 사람들은 성공을 직선 화살처럼 생각합니다. 두 번째 화살이 성공의 실제 모습입니다. 성공은 요셉처럼 굽어지고 휘어져 있는 과정을 거칩니다. 세상에서 성공에 이른 사람 중에 실패와 고난 없이 곧장 성공에 이르는 경우는 없습니다. 수없이 쓰러지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성공에 이릅니다. 신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길에도 수 없이 많은 좌절과 넘어짐이 있습니다. 요셉의 삶이 그것을 잘 보여 줍니다.
우리가 ‘코람데오’의 삶을 사는 한 하나님께서 요셉을 인도하시는 것처럼 책임지고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믿으십시오. 요셉이 형제들의 시기를 받지 않았다면, 보디발의 아내의 모함이 아니었다면, 감옥에 갇히지 않았다면 그는 결코 애굽의 총리 대신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작은 그림을 보고 실망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 대한 큰 그림을 그려놓고 있습니다. 요셉이 갇혀 있는 감옥에 애굽 왕의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이 갇혔습니다.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결국 그는 애굽 왕을 만나게 되고 애굽의 총리 대신이 된 것입니다.
전 삼육대학 총장인 서광수 박사님은 “결과적으로 축복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분의 일생의 경험을 기록한 자서전입니다. 그 책에 여러 다양한 경험이 나옵니다. 수많은 좌절이 되는 경험들 이해되지 못하는 경험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경험이 나중에 보면 결과적으로 축복이 되었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축복하시는 하나님”이란 표현이 20번이 나옵니다. “나는 평생 나에게 손해를 끼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혹 무의식적으로나 의식적으로 나에게 손해를 끼쳤다 하더라도 그 손해가 나에게 손해로 끝나지 않고 결과적으로 하나님께서 나의 길을 축복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어떤 면에서 형들은 요셉에게 원수가 아니라 은인인 것입니다” 때로 우리 인간이 이해하지 못해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지혜 속에서 모든 것을 선하게 인도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실패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코람데오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일에서 형통을 경험할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마음에 다가간 요셉
김형석 교수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이 가정을 위해 살면 가정만큼 성장해 있고, 기업을 위해 살면 기업만큼 성장해 있다. 또 사람이 국가를 위해 헌신하면 국가만큼 자라있고, 국가를 넘어 세계를 위해 살면 세계만큼 성장해 있다” 그 말은 사실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섬겼으므로 그의 행동은 세상 모든 죄인들을 품는 하나님만큼이나 넓고 높았습니다. 두 가지 사실이 그것을 증거해 줍니다. 창 45:5,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친 형제인 자신을 팔아 넘긴 형제들을 용서했습니다. 그 모든 과정을 하나님께서 인도하셨다고 믿는 것입니다.
국제 복지사 김혜영씨가 쓴 책 [잠시 쉬었다 가도 괜찮아] 가 있습니다. 그녀의 키는 134센티 미터입니다. 김혜영씨는 여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불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가 아기를 벽에 던져버렸습니다. 평생 척추 장애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울증 걸린 엄마의 화풀이 대상이 되었습니다. 신체와 언어 폭력에 시달렸습니다. 14살에 아버지가 자살했습니다. 그녀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가출을 했습니다. 식모를 하고 공장 노동자를 하면서 생활했습니다. 그러다 선한 기독교인을 만나 공부를 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미국의 명문 콜롬비아 대학에서 석사를 졸업했습니다. 지금은 케냐에서 가난한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사회 복지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여러 곳에서 초청받아 강연을 했습니다. 한번은 강연 중에 뒤 자석에 있는 어머니를 불러서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녀는 밝은 표정으로 엄마를 소개하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 저를 낳아 주셔서 감사해요” 사람들은 세상에 화를 냅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실은 자신들에게 화가 나있습니다. 자신의 상처가 해결되지 않아서 내가 아프다는 소리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에 접촉된 사람은 자신의 상처가 치료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상처를 품을 수 있게 됩니다.
다음으로 요셉의 높은 정신은 그의 죽음의 순간에 드러납니다. 당대에 애굽은 최고로 문명화된 도시였습니다. 그 나라의 총리가 된 것은 세상 영광의 정점에 도달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생각은 애굽에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히브리서의 기자는 히브리서 11장에서 40명의 믿음의 영웅들의 행적을 기록했습니다. 그 중 요셉의 행적에 대해서는 한 줄로 요약합니다. 22절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 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뼈를 위하여 명하였으며” 요셉의 훌륭한 행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요셉의 유언만 언급했습니다. 창 50:25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자기의 뼈를 약속의 땅 가나안에 가져가서 묻어 달라는 것이 그의 마지막 말이었습니다.
그의 몸은 관에 보관되어 그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 후 이스라엘 백성이 노역에 종사하게 된 수 세기 동안 요셉의 임종의 말을 기억나게 하는 그의 관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은 다만 잠시 애굽에 체류하는 자들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거하였으며 구원의 때가 분명히 올 것이므로 허락의 땅에 대한 그들의 희망을 굳게 잡도록 해 주었다” (부조와 선지자, 240). 요셉은 잠시 보이는 영광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유업,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 본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땅에서 최선을 다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갑니다. 요셉처럼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땅에서 영원히 살 사람들이 아닙니다. 요셉처럼 하늘을 사모하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최근에 많은 분들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분들이 믿음으로 살다가 믿음 안에서 죽었습니다. 홍신진 목사님의 아버님 홍성기 장로님이 쓴 글이 있습니다. “여보! 하늘 나라로 갑시다/ 얘들아! 너희도 함께 가자/. 험한 길 인적이 드물게다/. 피 고인 발자국 있으리니/ 믿고 그 발자국 따라가면/ 주님께서 마중 나오셔서/ 하늘 집으로 인도하리/” 단순하게 주님을 섬겼던 그분의 일생을 생각하면 이 글이 더 가슴에 와 닿습니다. 신상균 장로님은 우리는 재림을 기다리는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믿음으로 살고 믿음으로 죽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두 가지 영적인 교훈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마치며
1. 하나님 앞에서 행한 요셉 2. 하나님의 마음에 다가간 요셉.
요셉의 삶을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의 삶을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을 요셉처럼 따를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라며 말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