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유일이 사무실로 가는 도중 거래업체로부터 계속해서 전화를 받았다.
색상은 파스텔톤이 더 나을 것 같다. 환한 색상이어야한다. 디자인 전체에 대해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하며 사물실에 들어가 컴퓨터를 켜고 작업을 한시간 정도 지났을 때였다.
- 한유일씨! 통화가능하세요?
- 네!네!. 더 수정하실 게 있으신가요?
- 아니요. 시간이 촉박해서 그냥 그대로 가기로 했어요.
- 네! 네? 그게 무슨?
- 마감을 맞추지 못할 거 같아서 대표님이 그냥 가기로 했다구요.
- 아….
- 수고하셨어요.
달칵하고 전화가 끊겨졌다. 가슴속에서 불쑥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유일의 미간이 찌푸려지고, 눈꺼풀이 떨려왔다. 순간 저도 모르게 들고 있는 핸드폰을 바닥으로 던져버렸다.
갑자기 온몸에 스르르륵 손에 쥔 모래더미가 빠져나가는 듯 힘이 빠져나가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었다. 통화 내용을 들은 직원들도 어이가 없다는 듯 수고했다는 이야기와 함께 퇴근을 했다.
유일은 무엇 때문인지 움직일 수가 없어서 잠시 앉아 있기로 생각했다.
온몸에 힘이 빠지자 의자에 몸을 푹 기대었다.
머리 위로 형광등이 깜박거리는게 보였다. 귀가 윙윙거린다. 머리가 어지럽다.
한참을 앉아 있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자신이 흐느끼는 소리라는 걸 볼에 무언가가 뜨겁게 타고 내려가는 것으로 알 수 있었다.
일어나야 하는데 다리가 늪에 빠져 있는듯 움직이려해도 움직여지지가 않는다. 속이 미식거린다. 핸드폰도 주워야 하는데….
그냥 이대로 잠들어버릴까?
사무실 창밖으로 보이는 네온사이는 반짝거렸다.
회사를 입사하고 나서, 밤마다 반짝거렸다. 야근을 할 때면 이 반짝거림에 가슴 설레였던 적이 있었다. 언젠가 나도 저 반짝거림과 함께 반짝거릴 것이라는 희망에 힘들고 고되어도 기꺼이 이 일을 했었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된 질 모르겠다. 한심스럽고 아쉬우며 후회스러웠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이젠 힘들어서 움직일 수도 없을 것 같은데 말이다.
속이 쓰리다. 갑자기 약밥이 먹고 싶어졌다. 갈색에 윤기나는 보석처럼 이쁜 약밥을 한 입 앙물면 익숙한 달달함이 입가에 맴돈다. 찹쌀의 쫀득함이 이빨에 찰싹 달라붙으면 밤이 어느샌가 훅 들어와 고소함과 퍽퍽함으로 찹쌀과 엉겨붙어 있는 이빨에게서 벗어나 나의 혀 위로 올라와 맛있는 춤을 추었는데..
약밥 생각을 하니 엄마가 보고 싶네. 엄마. 우리엄마!
어릴 적 기억이라 또렷하진 않지만, 보드라운 손으로 항상 나의 왼손을 꼭 잡고 길을 걷곤 했는데.
울면 언제나 나를 안아 올려서 등을 톡톡 두드려 주시던 엄마!
따뜻한 약밥을 사주시며 천천히 호호 불어 먹어! 꼭꼭 씹어 먹어야 한다. 유일아!
나의 어여쁜 몬나이라고 불러 주시던 엄마가 그립다.
유일은 일어나기로 했다. 집으로 가야지! 이렇게 있으면 밤새겠다는 생각이 들어 떨어진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액정이 깨져있다. 너무 세게 던져버렸나보다.
아직까지 머리속이 윙윙거렸지만 못걸을 정도는아니었다. 시계를 보니 12시가 넘었다. 얼마나 앉아 있었던 거지? 지끈거리는 머리에 열이있는지 손가락을 대어본 후 사무실을 나왔다.
택시를 타고 집근처 골목에서 내렸다. 익숙한 동네 냄새가 나니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이제 집에서 쉴 수 있겠구나. 라면을 하나 더 사야하나? 생각하는데 똥고양이가 가로등 밑에서 식빵을 굽고 있었다.
집에 안 간거야? 아님 친구를 기다리고 있나? 혹시 나를 기다린거야?
유일은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마치 고양이가 자신을 기다린 듯 한 고양이가 반가워 고양이 쪽으로 걸어갔다.
고양이도 나를 발견한듯 꼬리를 세우고 나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야옹!야옹
“똥고양이! 혹시 날 기다린거야? “
말이 끝나자 마자 트럭이 미끌어져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뭐지? 속도가 왜 저렇게…
-고양아!
나도 모르게 고양이 쪽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쿵하는 소리와 함께 나는 하늘로 붕 떠올랐다.
첫댓글 잘 읽었어요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