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배나무는 전국 어디서나 자랍니다. 하지만 한곳에 밀집해서 자라는 순림(純林)은 그리 흔하지 않습니다. 뜻밖에도 서울에 팥배나무 순림이 있습니다. 은평구 봉산 자락입니다. 키가 10m를 넘는 팥배나무가 빽빽하게 자랍니다."
"까치 집이 매달린 키 큰 나무들이 아까시나무입니다. 아직 잎이 많이 나진 않았지요. 하지만 그 아래 팥배나무와 참나무 등 다른 활엽수들은 벌써 무성하게 잎을 펼치고 올라오고 있습니다. 이런 나무들 아래서 어린 아까시나무는 자랄 수가 없습니다. 현재의 아까시나무가 나이가 들거나 병들어 죽고 나면 숲은 그 아래에서 올라오는 다른 활엽수들로 대체되고 맙니다. 지금의 팥배나무 숲도 아까시나무를 대체하면서 형성된 겁니다."
"서울시는 봉산 팥배나무 군락지에 생태탐방로를 조성했습니다. 계절에 따라 팥배나무 순림이 보여주는 경관을 시민들이 즐길 수 있도록 한 거지요. 한때 황량했던 봉산이 조림과 그 뒤 자연스러운 숲의 천이 과정을 거쳐 지금은 아름다운 경관을 보여주는 겁니다. 하지만 이렇게 살아나는 봉산의 경관이 그대로 지켜지는 것만은 아닙니다."
"봉산 한쪽 자락이 벌목돼 있습니다. 은평구가 편백 숲을 조성하겠다면서 7ha 면적의 나무를 베어내고 대신 편백 묘목 만 그루를 심은 겁니다. 편백도 일본이 원산지인 외래종입니다. 편백이 내뿜는 피톤치드가 건강에 좋다고는 하지만 굳이 기존의 숲을 베어내고 조림할 필요가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겨울이면 히말라야시다나 편백은 잎이 지지 않기 때문에 주변의 활엽수림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경관을 보여주게 됩니다."
"팥배나무 숲 아래쪽에는 어린 팥배나무들이 많습니다. 큰 나무들이 죽더라도 어린나무들이 대를 이어 팥배나무 숲을 유지해줄 것으로 보입니다. 봄에는 하얀 꽃동산과 가을이면 보석처럼 빛나는 붉은 열매의 장관도 계속될 겁니다. 굳이 사람이 손을 대지 않더라도, 자연은 있는 그대로 충분히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