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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썅마이웨이 ' 님이 주신표지입니다. 여러분 뒤에 꽃보세요..진짜 아련하지 않아요? 막 정말로 짝사랑하는 것 같고...ㅠㅠㅠㅠㅠㅠ 보기만 해도 되게 따뜻해지는게ㅠㅠㅠㅠ 디테일이 살아있다...난 특히 제목이 너무 좋아요 뭔가 로고가 되게 딱 튀고? 너무 감사합니다 진짜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비스트- 미운사람
용기를 내어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을 했다. 자그마치 8개월이었다. 이렇게 쉬운걸, 그 흔한 인사 한번 못 해보고 혼자 끙끙 앓기를 자그마치 8개월. 김종인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도, 내 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도 아니었다. 그저 내 마음 편하자는 거였다. 더 이상 질긴 짝사랑의 순환을 반복하고 싶지 않아서. 나도 이제는 마음 좀 편한 사랑을 해보고 싶어서. 그러기에는 짝사랑은 너무 힘드니까. 지난 8개월간의 서러웠던 감정, 설렜던 감정, 또 지독히도 쓰라렸던 감정, 미친 사람처럼 좋기만 했던 감정을 모두 더해 입을 열었다. 사실 겉만 멋지게 말한 거지, 정작 눈 하나 못 마주하고 하는 고백이었지만……처음이었다. 이렇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누군가에게 한다는 것. 다시는 못할 것 같은 그런 것. 다시는 못할 것 같은 그런 것.
" 나 좋아하는 사람 그런 거 없는데. "
" ……. "
왜 그런 거 있지 않느냐.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멋지게 고백을 하려 하면 평소에는 오지도 않던 전화가 걸려오거나, 필요 없이 신호등이 너무 길 거나, 혹은 상대방이 뜻밖의 사고가 나버린다거나. 결정적인 순간에 찾아오는 방해요소란 내 인생에 존재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내 인생은 드라마가 아니니까. 내가 드라마 속 주인공? 말도 안 된다. 그런 거라면 이렇게 자질구레한 짝사랑 따위 하지 않았겠지. 그럼 지금 이건 뭐?
" 변백현, 나랑 김종대 먼저 들어간다. "
" ……. "
" 후기. "
아니, 그냥 엿된 상황.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선한 미소와 함께 김종대와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고 발걸음을 옮기는 김종인이었다. 이렇게 놈이 가버리면 자존심까지 버리고 와서 내 모든 걸 털어놓은 보람이 보기 좋게 사라지는 거였다. 다급하게 제 고개를 두어 번 저었다. 그렇게 끝낼 수는 없다. 탁해진 의식을 바로잡으니 눈앞에 선명하게 자리 잡고 있는 변백현의 개 같은 면상이었다. 이 새끼는 왜……종인이 교복을 입고 있어서 이딴 거지 같은 상황을 만드는 건데. 눈을 부라리며 놈을 흘겼다. 그런 내 행동에 이해를 못한다는 듯 어깨까지 으쓱이는 모습에 가운뎃손가락이라도 날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 새끼와 이렇게 투닥거릴 시간이 없었다. 김종인, 종인아. 내가 미안해. 누나가 널 몰라봤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머리카락밖에 보이지 않는 종인이를 따라 자연스럽게 몸부터 움직였다. 8개월간 김종인을 따라다니니, 향기를 맡고도 주인을 찾을 수 있는 달인견이라도 된 것 같은 씁쓸한 기분이었다.
분명 내 몸은 종인이네 반으로 가있어야 마땅한데 그러기에는 내 눈앞에 달라진 거라곤 뭐 하나 전혀 없었다. 이상한 느낌에 뒤를 돌아 변백현을 바라봤다. 내 손목을 잡은 채, 광대까지 실룩 거리며 날 쳐다보고 있는 꼴에 과연 이놈이 정상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너 이름 뭔데. "
' 지랄, 지랄하소서. '
오글거림의 정점을 찍는 변백현의 표정이 가만히 있던 내 몸에 알레르기를 선사할 지경이었다. 그보다 잡혀있는 손목이 그렇게나 난감했다. 지금 난, 누구 때문에 내 인생에 있을까 말까 한 중요한 고백타임을 놓쳤는데 거기다 잡으러 갈 때까지 막아?
변백현은 죽었다 깨도 몰랐다. 내가 한 짓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어느 여자가 8개월이나 짝사랑했던 남자에게 제 마음을 고백할 수 있을까. 난 모든 걸 내려놓고 놈을 마주한 거였다. 사실 이렇게나 오랜 시간 한 남자를 좋아하면 일종의 분노감 같은 것도 생기곤 했었다. 난 이렇게 절망적인 짝사랑을 하고 있는데, 김종인은 다른 여자들과 하하 호호 웃으며 복도를 거닐 때의 기분. 그렇다고 김종인이 내 남친도 아닌데 무슨 쓸데없는 이기심이냐고 그러면 또 이야기가 달랐다. 원래 짝사랑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그와 어쩌다 우연히 마주칠 때, 그러다 우연히 썸을 탈 때, 그러다 우연히 사귀게 될 때의 모든 경우의 수를 다 상상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모든 건 수업 시간에 집중 안 될 때, 버스에서 달달한 노래나 슬픈 노래가 나올 때, 잠자리에 들면서 김종인을 생각을 할 때만 가능한 일이었다.
" 그, 잘못말했거든……원래 너한테 말하려고 했던 게 아니라. "
" 누군데? "
" 뭐? "
" 나 아니라며, 그럼 김종인이랑 김종대중에 있을 거 아니야. "
" ……아닐걸? "
" 맞을걸? "
" ……아니라니까? "
" 아. "
" 아니라고. "
" 김종인이네. "
" …… . "
" 우리 중에 좋아하는 여자 있는 애가 김종인밖에 없잖아. "
" ……. "
" 뭐, 대신 말해줘? 나 아니라 김종인 너라고? "
다시 한번 말한다. 지금 내가 한 짓은 가벼운 게 아니었다. 어차피 한번 까발린 거 그냥 무시하고 다시 종인이한테 말하면 되지 않느냐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렇게 쉬운 일이면 8개월 동안 바보 같은 짝사랑을 하지는 않았을 거다. 나름 소중하다고 생각했다. 김종인에게는 그저 '예전에 날 잠깐 좋아했던 여자애'라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난 아니었다. '내 시간을 버리고, 자존심을 버리고, 심지어 순탄한 학교생활도 모두 버린 한때 내가 좋아했던 남자애'로 정의될 것이다. 적어도 일 년 동안의 비참함을 이런 식으로 한방에 들춰내는 변백현의 행동이 씁쓸하기 그지없었다. 놈이 잡고 있던 손목에 줬던 힘이, 무의식적으로 빠져버렸다.
뭘 알고서 이러는지는 모르겠지만, 너한테 내 마음을 들키기 위해서 온 건 아니야. 넌 지금 그것도 모르고 웃기만 하면서 김종인 이름을 불러대지만, 그것 또한 아니니까 무례한 행동은 그만 넣어뒀으면 좋겠다.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왜 사람이 그런 것 있지 않은가. 늘 고민했었던 일이 있다. 큰마음 먹고 도전했는데, 예상 못한 상황에 실패하면 이전에 가졌던 자신감이 모두 사라져버리는 것. 이제 몇 번이고 도전해도 실패로 돌아올 것 같은 패배감.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놈을 찾아왔고, 순수한 내 짝사랑은 변백현이라는 새끼한테 보기 좋게 기만당하고 있었다. 여기서 무슨 자신감이 얼마나 더 필요하며, 무슨 정신으로 놈의 장난에 맞장구쳐주나 이 말이었다. 나도 여자였다. 여자이기 이전에 사람이었다. 그동안 창피함을 몰라서 김종인을 따라다니던 게 아니었다. 나도 창피할 때가 있었고, 숨고 싶을 때가 있었으며, 다시 이전처럼 자신감 따위 없는 존재로 돌아오기도 했다.
" 말해도 내가 할 거거든? "
" 그럼 하면 되잖아. "
" 그러니까 내가 한다니까? "
" 하면 되잖아요, 지금. "
" 아, 지금 말고 나중에 둘이 있을 때 한다고! "
" 그래놓고 무슨 고백을 한다고. "
" ……. "
" 8개월 동안 좋아한 보람이 없네. "
" 야. "
" 그러니까 8개월 동안 좋아만하지. "
뒤이어 내 눈높이에 맞춰 제 무릎을 굽히는 변백현이었다. 참았던 서러움이 폭발할 지경이었다.
" 너 내가 존나 원망스러운가 보다? "
" ……. "
" 나 그냥 교복 빌린 죄밖에 없는데? "
변백현이 나한테 이렇게 독설을 퍼부을 정도로 친한 사이냐고? 아니, 그러기에는 이전부터 내가 저 새끼를 너무 싫어했는걸. 그럼 뭐겠어? 저 새끼가 개념을 밥 말아 먹었다는 거지. 머리끝부터 차오르는 들끊는 분노감에 양 입술을 앙다물었다. 그랬다간 구차한 눈물이라도 나올 것 같기 때문이었다. 뭘 안다고 지껄이나 싶었다. 고백이 그렇게 쉽다면……그래서 내가 원할 때 할 수 있는 거라면, 세상에 짝사랑은 왜 있으며 몰래 하는 사랑은 왜 있나 이 말이었다. 나와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 같았다. 단순한 가치관의 차이가 아니었다. 놈은 진심으로 나를 이해 못 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이, 굳이 사귀지 않고도 몰래 숨어서 지켜보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고달프면서 끝까지 잘 버틸 수 있는 이유는……김종인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가슴께에 살근거리는 기분이 그렇게나 행복했으니까. 이름만 들어도 행복하다, 그럴 때 쓰는 말이었다. 상대방에게 내 마음을 시원하게 털어놓지 못하는 이유도 있었다. 혼자 좋아하는 이 감정도 철저하게 배제되어 버릴까 봐. 놈이 나를 거절할까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놈이 나를 싫어하게 될까 봐. 거절은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원래 그게 여자 남자 사이의 관계 아니겠냐. 근데 놈이 나를 싫어하게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그건, 세상 어떤 일보다 더 끔찍 할테니.
늘 감수성이 풍부해지는 새벽이면 한바탕 울다 늦게나마 보미에게 전화를 걸어 속상한 감정을 이리저리 다 털어놓곤 했었다. 늘, 같은 날의 반복이었다. 날 답답해하는 사람은 영영 그런 나를 이해 못하고, 또 누군가는 뼈저리게 깊은 공감을 한다. 보미는 그런 나를 특히나 더 답답해 하곤 했었다.
" 나 진짜 이해가 안 가네, 너가 김종인한테 뭐 잘못한 게 있어? 싫어할까 봐 고백을 못한다는 게 말이나 돼? "
" 그렇지? 솔직히 고백해도 김종인이 나 싫어하지는 않겠지? "
" 당연하지, 뭐 욕을 했어 뭘 했어. 괜히 쓸데 없는 걱정이야. "
" 야, 근데……. "
" 응, 뭐. "
" 종인이가 지금도 나 싫어하면 어떡하지? "
" 아, 시발. 너가 뭐 잘못한 게 있냐고! 뭘 했다고 싫어해? "
" 그래도 괜히 김칫국 마시면 안 되니까……. "
" 걔가 너를 안 싫어하는 게 왜 김칫국이야, 당연한 거라고 그건. "
당연한 것. 짝사랑에 있어 약자는 언제나 이 당연한 것에 대해 수백 가지의 사소한 걱정을 늘어놓는다. 예를 들면, 그가 나를 싫어하지 않겠지? 그가 날 욕하지는 않겠지? 내가 좋아하는 게 티 나지는 않겠지? 그래서 나를 싫어하는 건 아니겠지? 혹시 그래서 내 눈을 피하나? 왜 피하지? 내가 뭘 잘못했나? 아, 포기할까. 아니다, 그래도 좋은 걸 어떡해.
필요 없는 옛 생각을 너무 많이 했나 싶었다. 느릿하게 고개를 올려 변백현을 바라봤다. 내가 웃긴 건지, 아니면 내가 김종인을 좋아하는 마음이 웃긴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내 마지막 용기를 무참하게 짓밟아 버린 건 확실했다. 그 끊임없는 무수한 걱정과 질문을 억제하고 간신히 내뱉었던 내 마음이 덕분에 확실하게 망가졌지만.
" 너 때문에 다 망했어. "
" ……. "
" 평생 짝사랑만 하다가 배신 당해 봐라. "
이건 일종의 저주였다. 그것도 아주 지독하고 고약한 저주. 추악한 마녀가 되도 좋으니 그런 마술을 부리고 싶었다. 고개를 돌려 걸음을 재촉했다. 필요 없을 땐, 잘만 옆에 붙어있더니 제일 필요한 상황에선 어디 간 건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개 같은 보미였다. 흘깃흘깃 나를 쳐다보는 시선을 견디기 힘들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냅다 교실 안으로 뛰고 봤다. 난 김종인이 없을 때도, 또 있을 때도 이렇게 숨기만 하는 역할이었다. 뻔하고도 부질없는 짝사랑. 결과를 알고도 그 과정이 좋아서 멋도 모르고 뛰어들었다가 결국엔 참혹한 결과로 끝나는 것. 오늘도 난 그 거지 같은 정의를 똑 부러지게 실천하고 있었다.
짝사랑의 조건 두 번째 : 사소한 걱정은, 큰 망상으로 바뀐다.
" 이게 스토커지 뭐야, 다 신고해야 해 시발. "
" 아, 조용히 좀 해봐. 들리잖아. "
" 너 오늘 김종인 하루종일 따라다닐 거냐? "
" 야, 들린다고! "
" 쟤가 그 김종인이 좋아한다는 여자애야? "
" 응, 존나 예쁘지 진짜……. "
" 아니, 니가 더 예쁜데. "
" 아니야, 쟤가 훨씬 예쁘잖아. "
" 니가 더 예쁘다니까? 쟤가 뭐가 예뻐? 김종인 그 새끼 눈 존나 맛 갔나. "
겉으론 아니라고 하지만 사실 속으론 정열의 살사춤을 추고도 남을 기분이었다. 아, 원래 한번 부정하는 맛에 이 소리 듣는 거 아니겠냐. 무의식적으로 올라간 광대를 애써 내리고 다시금 고개를 내미는 나였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보이는 대로 가방을 싸고 다짜고짜 김종인네 반 앞으로 달려가 놈이 나란히 여자와 교문 밖을 나갈 때까지, 조금 텀을 두고 뒤에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전에 자장가처럼 들려오는 한문시간 동안 제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생각을 해봤다. 차라리 이렇게 된 게 오히려 잘 된 일 아닐까 싶었다. 김종인은 지금 좋아하는 여자애가 있는데 거기서 내가 고백을 해버리면 애 입장이 얼마나 난처해지겠냐. 더군다나 김종인이랑 내가 친한 사이도 아닌데 그렇게 무턱대고 말하면 저 입장에서도 당황스러운 게 이만저만이 아닐 거다.
그래, 차라리 잘 된 일이었다. 안 들키고 변백현에게 고백을 해버린 게. 우선 종인이가 내 마음이 변백현한테로 향해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다행인 일이었다. 그럼 적어도 보미가 걱정하는, 김종인이 날 스토커라 생각해서 욕하는 일은 없지 않겠느냐. 그래, 스토커 역할은 면하는 거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한결 가벼워진 마음에 저도 모르게 두어 번 고개가 끄덕여졌다. 검정색 볼펜으로 재미없는 필기만 해대던 보미가 느릿하게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봤고, 그럼 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해맑게 웃으며 고개를 갸우뚱하니.
" 너 또 합리화 하지마. "
" ……. "
" 이상한 합리화 하지 말라고. "
" 그렇게 합리화하지 말랬더만, 내 말은 귓구멍에 쑤셔 박으셨나 봐요. "
" ……. "
하나뿐인 친구를 걱정하는 보미의 당부가 보기 좋게 하늘 위로 날아가 버렸다. 말은 내가 김종인 옆에 있는 여자아이보다 예쁘다 하지만, 여전히 날이 선 말투에 이상한 죄의식까지 들 지경이었다. 쭈구리마냥 움츠려있던 몸을 피고 보미를 바라봤다. 오, 친구를 병신처럼 보는 보미는 늘 한결같았다. 베실베실 미소를 지었다. 오, 방금 손 날라올 뻔. 그냥 닥치고 용서나 빌어야겠다.
" 야, 보미야. 어떡해 그럼, 응? 이렇게 생각이 드는 걸 어떡해. "
" 또 어떻게 합리화 했는데. 뭐 김종인한테 너 마음 안 들켜서 다행이라고? "
" 야,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지. "
" 아, 시발 싫어. 듣기 싫어. 그냥 너 마음대로 다 해. 내가 몇 번이고 말했지? 너 계속 그거 반복이라고. 오늘도 포기할 거라고 하더니만 이게 뭐야. 왜 계속 네 멋대로 생각하면서 나한테 고민상담은 왜 하는 건데. "
" ……. "
" 너 또 김종인 따라다니면 진짜 뒤진다, 나도 네가 참 한심한데 그거 억지로 참고 있는 거거든? "
" ……아, 보미야. "
" 아, 꼴보기 싫어. 날 추운데 괜히 쟤 따라다녔다가 감기라도 걸리면 진짜 죽어. 일찍 들어가. "
" 집 가서 전화할게! "
" 전화하지마, 꼴보기 싫으니까. "
보미도 참 죄 없이 고통받는 사람이었다. 늘 같은 문제로 몇 번이나 고민 상담을 해오는 친구가 어찌나 개 같고 엿 같을까. 그럼에도 늘 내 사소한 어리광 하나도 놓치지 않고 그대로 받아주는 모습에 저도 모르게 뭉클한 감정이 느껴졌다. 나도 알고 있었다. 이런 희망 없는 짝사랑에 희망 품는 친구가 답답하고 한심하다는걸. 나라고 왜 그런 친구 하나 없었겠냐. 남이 내게 고민 상담을 했을 땐, 설렁 설렁 대답을 해줬지만 막상 그게 내 고민이 돼버리니 상대방 반응 하나하나가 그렇게 위로가 될 수 없더라.
어쩌다 한 번, 긍정적인 청신호를 보내면 그날은 하루 종일 기분이 좋고. 괜히 그 말을 또 듣고 싶어서 부정하기를 수백 번. 참, 한심하고도 아기 같은 존재가 돼버리곤 하는 이…….
" 안 추워? "
" 응, 안 추워! "
" 벗어줄까? "
" 너 안 추워? "
" 추워, 나도. "
" 아, 뭐야 근데 뭘 벗어줘. 바보같아. "
" 바보같아? "
아뿔싸. 난 지금 김종인을 따라가고 있었지. 사실 말이 좋아 따라가는 거지 이건 스토커 짓과 다를 것 없었다. 그럼에도 어쩌겠냐 이거였다. 너무너무 질투가 나는데. 너무너무 짜증이 나는데. 옷은 왜 벗어줘? 그냥 자기나 입고 있지. 쓸데없는 친절이야. 나한테나 베풀던가. 말랑거리던 감정은 점점 제 방향을 잃고 분노로 치솟아갔다. 시도 때도 없는 감정 변화도 내가 놈을 짝사랑하고 나서 겪게 된 현상이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변하는 감정은 나조차 혼란스럽고 징하게 만들곤 했다.
지금은 분노였다. 아니, 사실 열등감이다. 내가 질투하기에는 저 여자애가 너무나도 예뻐서. 무엇보다 난 이렇게 뒤에서 놈을 보고 있는데 저 여자애는 저렇게 옆에 나란히 있으니까. 그리고……종인이가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완벽히 졌다. 일종의 패배자, 딱 그거다. 보미 말이 맞았다. 이렇게 백 번이고 뒤에서 스토커 역할만 하면 뭐 하나, 놈은 날 쳐다보지도 않는데. 애석해지는 상황에 앞으로 나가던 걸음을 멈추고 우두커니 정지해 섰다.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나 오늘 김종인에 대한 마음 정리하려고 한 사람 맞아? 또 그 지독한 의미 부여, 합리화 때문에 이러는 거야?
" 어? 뭐냐, 뭐야. "
" ……. "
" 야, 변백현 아까 걔 아니야? "
" 와, 맞네. "
" 야, 저기 김종인 있네. 저 새끼 여자랑 간다. 야, 시발 김종인! "
" ……. "
" 야, 김종인! "
먹색의 기운에 그윽한 연기가 순식간에 사라지고야 만다. 그건 아마 김종인의 이름을 미친 듯이 외쳐대는 김종대 때문이라고 정의했다. 다급하게 이름의 주인공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이쪽을 쳐다보는 얼굴에 제 심장이 멈춘 듯 찌릿하게 울렸다. 처절하게 떨리는 손을 가지런히 마주 잡았다. 아무 일 없던 것처럼 그냥 그렇게 가버리면 바랄 것 없는데 여자를 놔두고 저 혼자 이곳으로 걸어오는 김종인이었다. 일정한 간격 없이 점점 빠르게 감겨지는 눈이 타고 있는 내 가슴을 그대로 보여줬다. 이대로 무시하고 가면 그만인데 굳어버린 몸은 참 더럽게도 내 마음과 다르게 행동했다. 목각처럼 뻣뻣하게 서서 애타는 손에만 의지할 뿐이었다.
급기야 어지러움 증세까지 가미하곤 했다. 놈의 얼굴을 보고 싶어서, 조금이라도 더 자세히 봤으면 해서 내 시간과 자존심 모두 버리고 따라오기까지 했건만, 막상 놈이 정말 내 앞에 서니 아까 전 용기는 온데 간데 사라진지 오래였다. 불안한 시선은 전혀 상관없는 다른 곳으로 향해 있었다. 세 남자나 날 둘러싸고 있는데 정작 편의점 앞에서 라면을 먹고 있는 백수 아저씨로 향해버렸다. 참 지랄 맞게도 등신 같은 나였다.
" 야, 나 진짜 지금 존나 떨려. 무슨 말 해야할지를 모르겠어. "
" 어떤데? 쟤가 뭐래? "
" 아, 시발 긴장되서 생각도 안 나. 지금 심장 개떨려. 내가 진짜 일 년동안 포기하지 않고 한 여자만 좋아한 보람이 있다. "
그건 나돈데. 나도 지금 아무 생각 없는 건 마찬가진데. 나도 너랑 같은데.
" 근데 뭐냐? 왜 셋이 같이 있어? "
" 어, 김종인 안녕……. "
" ……응? 아, 안녕. "
' 나년아, 거기서 인사를 왜해. '
언제부터 우리가 친구였다고 인사를 하죠. 지금 멋대로 움직이는 게 내 입이 아니고, 멋대로 움직이는 심장이 내 심장이 아닙니다만. 당혹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리는 김종인을 보자 드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수없이 뒤만 바라보던 내가 처음으로 놈과 마주하고 서 있다는 사실을. 하늘도 내 비극적인 상황을 딱하게 여기셔서 이런 기회를 주셨나 싶었다. 마음껏 보고 집 가서 마음껏 착각하라고. 절대로 김종인 좋아하는 마음 접지 말라고.
이렇게 잘생겼구나.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까 더 잘생겼었어.
" 뭐야, 진짜. 왜 셋이 있어? 변백현 뭔데. "
" 뭐가. "
" 야, 뭔데? 말해 봐. "
" 왜 나한테 말하래. 쟤한테 물어 봐. "
그러자 일제히 내 쪽으로 쏠리는 시선이었다. 무려 여섯 개의 눈동자가 나를 위해 집중하고 있으니 그에 부응하는 부담감 또한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가만히 있어도 정신분열이 될 것 같은 나한테 이런 미션은 왜 주냐 이거였다. 애처로운 눈빛으로 변백현을 바라봤다. 난 지금 김종인 때문에 충분히 숨이 멎을 것 같으니까 이런 막중한 일 따위는 시키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내 귀한 뜻을 알아들었는지 진득한 한숨을 내뱉으며 오만상을 다 찌푸리는 변백현이었다.
" 종인아, 아직 멀었어? "
" 갈게! "
" ……. "
" 야, 나 효정이때문에 먼저 가본다? 그 ……나 너 이름 알아. ○○○ 맞지? "
" 응? "
" 다음에 만나면 인사하자. "
아, 방금 그건 내가 제일 좋아하는 표정이었다. 예쁘게 주름진 눈꼬리에 저도 모르게 마른침이 넘어갔다. 뒤이어 내 어깨 위를 두어 번 두드리며 등을 돌리는 그 모습에 난 또다시 아무것도 못하는 바보가 될 수밖에 없었다. 놈이 내 이름을 알고 있었다. 나를 알고 있었다. 그동안 그렇게 지겹도록 했던 수많은 걱정들 중에 하나인 '놈이 나를 싫어하고 있으면 어떡하지' 가 보기 좋게 날아가 버린 순간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두드렸어, 내 어깨를 두드렸다고. 또 그뿐이야? 다음에 만나면 인사도 하자고 했어. 나 이거 조금 착각해도 되는 거 맞지? 보미한테 욕먹을 대로 먹어도 이건 진짜 기뻐해야 하는 거 맞지?
미세하게 광대 부근이 아려왔다. 그건 아마도 강압적으로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어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에 지금 내가 얼마나 믿기 힘든 일을 겪은 건지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다. 희망이 왜 없어. 여기 있는데. 이 맛에 힘들어도 짝사랑하는 거잖아. 원래 가뭄 온 뒤 단비가 그렇게나 달콤한 것처럼, 메말랐던 내 심장이 급속도로 젖어들어가는 것처럼.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그 뒷모습을 바라봤다. 이 날을 기억해야지, 하며 행복한 조소를 띠고 있는 내 얼굴이 빠르게 망가져간 건 ……다름 아닌 효정이라는 여자아이 어깨 위로 손을 올리고 있는 김종인을 봤기 때문이었다.
난 작은 토닥임, 저 아이는 다정하게 어깨동무. 분명 차이는 있었다. 바라는 것은 없었다. 그저 지금보다 더 잔인한 존재가 되지만은 않았으면 했다. 내 인생에 전환점에 서서 이 날을 되돌려보면, 적어도 후회는 없기를 바랐다. 그래도 내가 그때는 참 행복했는데. 좋아했다는 감정 하나로도 충분했는데. 딱 거기까지만. 이번엔 조금 다른 의미로 눈동자가 떨려왔다. 훅하고 들어오는 호흡을 뱉을 기미 없이 그대로 담아뒀다. 그랬다간 눈물과 함께 나올 것 같았다.
억지로 울음을 참으니 표정이 참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얼굴이라도 예뻐야 자신감이라도 가질 텐데, 난 참 내 외모에도 자신감이 없었다. 놈을 좋아하고부터, 김종인 주변에 있는 여자들보다 내가 못났다고 생각했다.
" 야. "
" ……. "
" 네가 스스로 말한다며. "
" ……."
" 아, 내가 뭔 죄야 시발. "
" ……. "
" 야, 김종인! "
" 야, 너 뭐……. "
" 얘가 너한테 할말 있대. "
이번에도 제멋대로 우악스럽게 내 손목을 잡고 절대 가서는 안 될 곳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변백현이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눈앞에 일어난 일이 현실일 수가 없었다. 무의식적으로 손목에 힘을 주고 앞뒤 가리지 않고 행동하는 변백현을 막기 위해 발악했다. 화가 난 것 같지는 않지만, 저도 내 답답함에 짜증이 난 것 같았다. 필사적으로 힘을 주고 버텼다. 제발 날 더 비참하게 만들지 말라는 뜻이었다. 만약 변백현이 여기서 나 대신에 내 마음을 김종인에게 말해버린다면 내가 뭐가 되겠냐. 놈이 일 년 넘게 좋아하는 여자는 바로 앞에 있고, 어깨 위에 놈의 팔이 있고, 아무것도 모르는 김종대가 있고, 제 감정만 생각하는 변백현이 있고, 그리고 바보같이 울기만 하는 내가 있는데.
변백현은 결국 그들의 코앞까지 갈 생각인 듯싶었다. 여자로서 마지막 자존심이 사방팔방 으깨지기 직전이었다. 나쁜 놈, 얼마나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어야 통쾌해할까. 아까 내가 이상한 저주를 퍼부어서? 그래서 이러는 거라면……
" 얘도 같이 영화보고 싶대. "
" 나랑. "
" ……. "
" 같이 가면 되겠네. "
짝사랑의 조건 두 번째 :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 당시에 했던 사소한 걱정은 아무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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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짝사랑의 조건 많이 좋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헐.... 백현이 대박이다... 저런 남자가 있을까..
세상 천지에 저렇게 배려해주는 남자는 몇없는데 여주는 좋겠어요 -
여주가 저렇게 따라다니능거 종인이가 알면 싫을듯 ㅠㅠ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2.20 12:39
백현이 멋지담ㅜㅜ
현아..ㅜㅜㅠ넘나좋은것.♡
현아..ㅜㅜㅠ넘나좋은것.♡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2.25 18:17
으윽 백혀나....
어머ㅠㅠ백현이ㅠㅠ멋있어ㅠㅠㅠㅠ
아진짜여주마음너무안타깝다....ㅠㅠㅠㅠ이와중에백현이멋있고요~
백현이 사랑스럽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백현아...츤....데레??
하ㅠㅠㅠ백현짱ㅠㅠㅠ순간 백현아..? 이랬음ㅜㅠㅜㅜ짝사랑하는 입장으로서 저런거 너무 싫다능ㅜㅠㅜ그랴도 뱍현이 의외여
와씨 변백현 멋있는거봐 ㅎ
와........백현이다박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6.15 00:34
흠........같이 영화보면 뭔가 비참해질꺼같은 느낌..?
종인아 니가 인사하자고하면 여주마음은 어떻겠니ㅠㅠㅠㅠ괜히 설레고 더좋아하고 포기못하게 되자나ㅠㅠㅠㅠㅠ
끄앙ㅠㅜㅜㅜ여주가 좀 더 자신감있게 행동했으면좋겠다 백현이 멋진새키...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7.11.04 01: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