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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천은 북항 앞바다와 합류하기 전 55보급창 옆을 지난다. |
- 금정·황령·백양산서 시작한 녹지축
- 부산시민공원 잇고 범일동부터 끊겨
- 범4호교~동천삼거리 2.5㎞ 구간
- 풀 한 포기 찾기 힘든 죽음의 땅으로
- "꽉 막힌 북항 공원화로 숨통 틔워야"
그늘 한 점 없다. 부산 남구 문현금융단지에서 부산항 북항까지 2.5㎞ 구간은 풀 한 포기 찾기 힘든 불모지다. 부산진·남·동구를 거쳐 북항과 만나는 동천 역시 콘크리트 제방과 55보급창에 갇혀 외롭다. 동천살리기시민연대인 '숨쉬는 동천' 이용희 대표는 "금정산·황령산·백양산에서 부산시민공원·송상현광장으로 연결된 녹지축이 동천에서 끊긴다. 동천의 최하류인 55보급창을 공원화해 북항의 '허파'로 가꿔야 한다"고 말했다. 취재팀은 31일 모두가 한 번쯤 봤지만 미래가치는 상상하지 않았던 55보급창의 현재를 답사했다.
■동천과 '똥천'의 사이에서
백양산에서 발원한 동천은 부산 경제의 원천이다. 삼성그룹의 모태인 제일제당과 LG의 전신인 락희화학이 동천의 물을 먹고 성장했다. 동천은 부산의 미래이기도 하다. 문현금융단지와 북항이 동천의 중·하류에 자리 잡았다.
동천의 지류인 부전천이 흐르는 부산시민공원에서 출발했다. 상권 1번지 서면 쪽으로 내려오면 길이 700m인 송상현광장(너비 45~78m)이 기다린다. 30분쯤 더 가면 63층인 부산국제금융센터(BIFC)가 위용을 드러낸다. BIFC 앞 범4호교 밑을 흐르는 동천의 물빛은 갈색이다.
생명그물 이준경 정책실장은 "해수와 민물이 만나 생기는 백화현상이라고 하는데 정확한 원인은 아직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부산시는 범4호교에서 약 450m 상류인 광무교까지 바닷물을 끌어다 동천에 공급하고 있다. 한때 '똥천'으로 불렸던 동천의 악취를 잡기 위한 비상수단이다.
범4호교부터 무지개다리~범5호교~동천오작교(부산시민회관)까지는 죽은 공간이다. 부산의 심장부를 관통하는 동천에 한 뼘의 녹지도 없다. 점심시간의 여유를 즐기는 직장인들도 동천을 외면하고 카페를 찾는다. 동천은 눈길 한 번 받지 못한다.
부산시는 BIFC 앞 동천에 공중 부양 형태의 '문화광장' 건설을 검토 중이다. 하천에 다릿발을 놓아 지상에서 5m가량 높이에 가로 6300㎡의 판상 구조물을 설치해 거리공연 무대를 마련한다는 구상. 환경단체는 강하게 반발한다. 한국강살리기네트워크 최대현 사무처장은 "동천의 미래는 수질 개선과 녹지 확보에 달려 있다. 강이 죽었는데 수백억 원을 들여 구조물을 만든다는 발상이 말이 되느냐"고 비판했다. 부산시는 한때 바닷물 대신 직선거리로 10㎞ 이상 떨어진 낙동강의 물을 끌어다 공급하는 대안도 검토했으나 예산 문제로 흐지부지됐다.
■55보급창과 대치 중인 북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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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보급창은 높은 담벼락과 철책에 둘러싸인 '섬'이다. |
범일교를 지나자 북항의 대형 크레인이 보인다. 80m를 더 가면 하구교(자성대노인복지관 옆). 여기서부터 더는 동천을 따라 걸을 수 없다. 55보급창을 둘러싼 담벼락이 동천과 바짝 붙어 있는 탓이다. 담벼락에는 '1950년 통과된 국내보안법에 따라 1954년 8월 20일 자 국방장관 지시로 제한구역으로 선포됐다'는 내용의 경고문이 붙어 있다. 할 수 없이 두산위브포세이돈 아파트~자성대 아파트~자성대 교차로~항만삼거리를 'ㄷ'자로 돌아서 동천삼거리에 도착했다. 동천삼거리는 북항 배후도로인 충장고가로·우암고가로가 교차하는 지점이다. 북항 자성대부두와 미군전용 8부두는 충장고가로를 사이에 두고 55보급창과 마주보고 있다. 동천도 동천삼거리에서 바다와 조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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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부에 화물 수송용 철로가 보인다. |
55보급창 주변의 높은 건물에 올랐다. 군용 화물트럭이 보급창 내부에 즐비하다. 인적은 거의 없다. 컨테이너를 5층 이상 높이로 쌓는 북항 컨테이너부두 운영사와 달리 55보급창은 대부분 2층 내외로 쌓고 있었다. 부산시는 과거에 비해 55보급창의 활용도가 크게 줄었다고 보고 있다.
김종환 부산시의원은 "재래식 부두인 북항 1·2단계가 해양경제특구로 지정돼 2030년까지 해양산업클러스터로 상전벽해하는 미래를 상상해보라. 공원으로 변신한 55보급창은 북항을 중심으로 한 원도심의 허파가 되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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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5보급창에서는 북항이 한눈에 보인다. 김화영 기자 |
55보급창은 제1도심인 서면과의 거리가 2.7㎞에 불과하다. 부산역과도 지척이다. 경성대 강동진(도시공학과) 교수는 "북항 재개발의 범위를 재래부두에 한정하지 말고 원도심·산복도로·영도·서면까지 확대해야 한다. 55보급창은 북항과 내륙을 하나로 묶는 키워드"라고 말했다. 부산대 차철욱(한국민족문화연구소) 교수는 "시민, 전문가, 시민단체 등이 55보급창 부지 환원과 활용 방법에 대해 꾸준히 논의해야 할 시기가 됐다"고 말했다.
※북항 일대 주요 개발 계획 (자료 : 부산발전연구원)
북항 재개발 1단계(중앙·여객·1~4부두) 152만㎡
북항 재개발 2단계(자성대부두) 112만㎡
해양산업클러스터(우암·7·8부두 일대) 56만㎡
부산역 일대 철도시설 재배치 54만㎡
55보급창 공원화 22만㎡
동천 재생 프로젝트(하천 길이) 20.46㎞
※동천
부산 부산진구 백양산 자락인 당감동 선암사 계곡에서 발원해 북항으로 이어진다. 총길이는 8.77㎞. 당감천이 포함된 본류 이외에 지류인 부전천·전포천·가야천·호계천이 거미줄처럼 엮여 있다. 현재 동천 상류와 4개 지류는 많은 구간이 복개돼 옛 모습을 찾기 어렵다. 당감천과 부전천의 합류 지점인 광무교에서 부산항으로 유입되는 구간까지 약 3㎞는 복개가 되지 않았지만 오·폐수 유입으로 오염이 심한 상태이다.
# 보상 땅값 놓고 부산시·국방부 3년째 신경전
- 市 싸게 매입하려 용도변경 추진했지만, 국방부 "제값 받겠다" 반발해 지지부진
부산시와 국방부가 55보급창을 둘러싸고 3년째 미묘한 신경전을 하고 있다. 핵심은 땅값이다.
부산시는 2013년 3월 '2030 부산도시기본계획'의 하위 개념인 '2020 부산도시관리계획 재정비(안)'을 고시했다. 55보급창의 토지 용도를 상업(13만1000㎡)과 준공업(9만6000㎡)에서 공원(자연녹지)으로 변경하는 것이 재정비안의 핵심.
용도변경을 추진하게 된 배경은 이렇다. 2000년대 초반 부산시는 미군 철수가 예정된 하야리아 부대를 공원으로 개발하기 위해 국방부에 무상 양여를 요구했다. 국방부는 "제값을 받아야 한다"고 맞섰다.
당시 하얄리아 부대의 토지는 상업·주거·공업지역이 섞여 있었다. 국방부의 강한 반대에 부딪힌 부산시는 결국 감정평가를 거쳐 국·시비 4535억 원을 지불해야 했다.
김종철 부산시 도시계획실장은 "당시 감정평가를 앞두고 급하게 녹지로 바꾸려 했지만 낌새를 눈치챈 국방부가 협의조차 안 해줬다. 조금 서둘렀다면 훨씬 싸게 살 수 있었다"고 아쉬워했다.
교훈을 얻은 부산시는 55보급창도 장래 유사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보고 용도 변경을 추진했다. 이미 공원녹지기본계획에는 55보급창을 공원으로 지정하고 청사진도 그린 상태. 그러나 이번에도 국방부 반대에 부딪혔다. 김 실장은 "국방부도 55보급창이 언젠가 이전해야 한다는 점을 알고 있다. 그때 제값을 받으려고 용도 변경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해양수산부·국방부가 55보급창 이전을 정부 사업으로 추진하면 부산시 부담이 크게 줄어든다. 적절한 시점이 되면 정부를 설득하겠다"고 덧붙였다.
김해몽 부산시민센터장은 "55보급창을 걷어내고 북항재개발이 진행되면 동천 하류는 몰라보게 달라질 것이다. 중류는 부산국제금융센터와 연계하면 부산도시철도 문전역에서 범일동역 일대가 하나의 생활권이 될 수 있다"며 "동천 복개 구간을 걷어내면 백양산에서 북항까지 이어지는 도심형 갈맷길이 완성된다. 부산시가 조금 더 의지를 갖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