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당히 기억력이 좋은 편이여서 한참 카페에서 놀 때에는 사진속에 안경도 씌우고 하트도 넣고 카페 대문 꾸미기 게시판 이름 바꾸기 다 했었는데
휴대폰이 나오면서 카톡질 카페에 글쓰기만 하다보니 또 휴대폰 기능이 점점더 늘어 나면서 아예 바보가 되어 버렸다.
혹시나 동창회를 방문하신 동창들이 들어와 본다면 에고고 이게 무슨 카페냐 참 허술 하기도 하다 할것 같아서 ...
어차피 카페 라는것을 아예 모르는 애들도 많을것 같아서 변명 같지만 이점 이해 바라는 마음이다.
단 기계치지만 다른건 기억력이 무서우리 만치 대단 하다는 것이다.
내가 송지초 1학년 입학을 할 때에는 나 보다 한살 어린 언니의 딸과 함께 형부를 따라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었다. 선생님들이 근무 하시는 교실 건물은 나무로 된 벽체였고 아마 일본식 건물이였을것이다.
교실이 부족하여 1학년 4반까지 있었는데 슬프게도 운동장 가에 프라다나스 나무가 울창 했는데 그 사이를 병아리때 처럼 선생님을 따라다니며 하나 둘 셋 넷 한반에 60명씩였지 싶으다.
1학년 때는 나이가 지긋하신 남자 선생님 이선생님께 단체로 자로 손바닥을 맞아야 했는데 ㅋㅋ 무슨 동요를 부르게 되었는데 선생님께서 줄마다 음을 다르게 하라는 과정에서 지휘하시는 모습이 얼마나 우습던지 까르르 웃었다가 손바닥을 ^^
2학년 때는 총각 선생님 훤칠한 키에 어린 소녀가 봐도 너무 멋이 있는 선생님 참 좋아 했는데... 대 실망... 무슨 시간 이였을까 용이 검사를 한다믄서 반전체 여자 아이들 팬티를 다리아래 까지 내리라고 했었다. 얼마나 창피하던지 시골에서 여름 빼놓고 목욕을 자주 할수가 없었지 그런데 하필 팬티를 벗게하고 때가 보이나 차라리 윗옷을 벗게 했어야지. 유독 때가 많다는 이유로 머리가 꼬시락 (깜둥이 흙인) 처럼 생긴 친구가 있었는데 아마 덩치가 우리 보다는 컷던것 같다 그 아이더러 교실을 한바퀴 돌으라고 했다. 때가 많다는 이유로 ㅜㅜ 그뒤로 그 잘생긴 총각 선생님이 완전 노~~~
그 기억 밖에 안나고 3학년에 올라 갔을 때는 긴 머리에 검은 원피스른 입으신 이안순 선생님 인상도 좋으시고 일본에서 살다 오셨다는데 선생님께서 한국에 처음 오셔서 본 시골 느낌은 초가집들이 버섯 모양이여서 참 신기한 풍경이셨다 하셨고 중간에 다른 곳으로 전근을 가실 때 3학년 3반 여자 아이들은 버스타시는 선생님 을 따라가 선생님도 아이들도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던 기억
4학년 때는 엄남포 쪽 맨끝 교실 이였고 조승아 선생님 ㅎㅎ검정 고무신 뒷굼치를 잘라내고 신으시는 분이셨고 참 인자하신 선생님으로 기억에 남는다. 난 그림 그리는 재주가 남달라서 아이들이 날더러 미술부장을 시켜주는데 너무나 부끄러워서 책상 아래로 숨어야 했었다.
4학년때 기억나는 아이는 허금자 갸는 그어린 나이에 처녀아이처럼 성숙해 보였고 날씬하고 예뻤었고 도시락에는 낚지가 들어 있었다.
또 다른 남자 아이는 아마도 미야리 사는것 같았는데 훈갑이라는 남자 아이였고 동글 남작 귀엽게 생겼는데 앞에 나가서 이야기를 참 잘하는 모습이 참 많이 부러웠었다. 난 문제를 알면서도 부끄러워서 앞에나가 발표를 못했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다니면서 가장 좋아 했던 과목은 국어 사회 도덕 미술 음악 시간 이였고 산수는 지금도 계산을 못하다는 푸후후 지금도 경노당에서 화투를 치는데 계산을 못하는 사람은 나 뿐이다.
컴퓨터 잘하니까 영리하다고 총무를 시켰는뎅 복지센테 통장과 경노당 통장에 기록을 잘못하여 보일러 기름을 남으니까 팔아서 마을 통장에 기록을 했어야 하는데 반대로 올려서 들통이 나버렸다는것
바르게 살기 쓰레기 분리는철저히 이렇게 사는 나인데 도무지 개선이 되질 않으니 지구가 분통이 터지는게 아닌가 ㅎㅎ 요래 쓰잘떼기도 없는 기억이 생생하여 거미똥꼬에서 거미줄 나오듯 중얼 거리는게 나의 삶에 일부분이고 즐거움인지도 모르겠다.
카페 생활 하니 혼자 살아도 항상 따르는 이들도 많고 나처럼 살고 싶다는 이들이 많으니 참 잘살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어떤이는 우울증에 걸려서 너무 외롭다며 저좀 안아 주세요 하면서 엉엉 우는 이도 있드라 다독 다독 이야기 들어주고 안부를 물어 주는 것만으로 치유가 되었다는 이들도 있으니 카페는 나의 유일한 동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