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드때와 다름없는 수요일 아침이였다. 오늘은 완도서 출장이 있어서 미리 다른 잡무를 해두기 위해 좀 바빴다.
약 8시경(08:05),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해경이 강진 마량에 있는 관우삼춘 배를 확인했는데, 엔진과 양망기는 돌아가고 있는데 사람이 안보인다고 연락이 왔다'고 한다. 큰삼춘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바로 핸드폰을 찾아봤지만 없었고, 막내 웅이 외삼촌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 상태이면 대략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알았던 나는 너무나 막막했다. 하지만 웅이삼춘에게 바로 말하지 않고 전화번호만 달라고 했다. 웅이삼춘도 현장 상황을 모르는지 웃으며 알려주시었다. 하지만 그 번호는 관우삼춘이였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내가 관우삼춘인지 백이삼춘인지 잘못 말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와 다시 통화했더니 계현이 통해서 백이삼춘 전화번호를 해경에 알렸다고 했다.
나는 바로 해경 마량파출소에 전화했다. 서해청 근무자라는 것을 밝히고 사고여부를 물었다. 홍경장이 받았고 내용을 알려주었다.
아침에 삼춘배가 들어와야할 시간에 안들어왔다고 신고가 들어왔고, V-PASS를 확인해보고 해상으로 가보니 어제 9시부터 지금 양식장 해상에 배가 걸려있고 시동은 걸려있고 양망기는 돌아가고 있는 상태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사람은 찾고 있지만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고 했다.
1인조업선이 보통 이런 상황이면 어민이 실종되고 사고로 바다에 빠져 운명을 달리한다는 사례를 많이 알고 있는 나로서는 정말 가슴이 먹먹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제발 살아만 계시길 바래는 마음이였다. 제발 제발...
그리고 어머니를 생각하니 정말정말 더더 삼촌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겨서는 안될 일이 생긴다면....어머니는 더 건강이 않좋아 지실것이다.
해경 통합상황관리시스템을 확인해보니 7시 전후로 실종자 수색이 진행되고 있는 상태였다. 많은 것을 확인하지는 못하고 무었을 해야할까 고민했다. 그리고 김대일 계장님 조언에 따라 휴가를 내고 일단 배가 촬영된 현장 사진한장 프린트해서 마량으로 이동했다. 2주전(11월31일) 김대일계장님과 완도해경 방제훈련 출장다녀오던길에 관우삼춘을 만났다. 점심이가 같이 할까했는데...이미 식당앞인지라 커피한잔 사드렸다. 배정리하고 나오시면서 부두에서 만났다. 관우삼춘 배를 처음보았는데...뭐가 뭔지 모르겠더라.
배가 정박해둔 자리를 알기 때문에 곧바로 그리로 향했다. 향하면서 재난안전통신망를 계속 청취했지만...발견되었다는 사항은 없었다.
9시30분경 마량파출소에 도착했다. 곧바로 파출소로 들어갔고, 웅이삼춘 백이삼춘도 막 도착해 파출소앞에 있었다. 일단 들어가서 상황을 확인했다. 어선에서 사람한명을 인양해서 들어오고 있가고 했다. 제발 관우삼춘이 아니길 바랬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빨리 발견된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제발 관우삼춘이 아니길...
연안구조정이 전용푼툰으로 들어왔다. 들것에 누군가 실려 모포에 덮혀 들어왔다. 손을 하늘로 올린체 내리지를 못한체였다.
얼굴을 확인했다. 관우삼춘이였다. 2주전에 보았던...그리고 농담으로 우리 조카들을 그렇게도 즐겁게 해주던, 누나들과 동생을 위해 성질한번 안내고 유연하게 대처하던, 지나간 속앓는 예기 한번 토해내지 못하고 웃음띤 얼굴만 보여주던 우리 관우삼춘이였다.
민어, 쭈꾸미, 갑오징어, 꽃게...좋은거 큰거 귀한거는 모두 주변사람들을 위해 먼저 내좋으시던 관우삼춘이였다. 한푼두분 돈모아 하시고 싶은일 먼저 챙기는게 하니라 귀하고 좋은거면 주변사람들 먼저 챙겨주려던 관우삼춘이였다. 온갓추위와 씨름하며 모아온 재물을 본인을 위한게 하니라 주변사람들을 위해 나누어주는게 더 기쁘고 좋아하는...
관우삼춘은
우리 어머니의 아래로 두번쩨 동생으로서,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의 9남매중 7번쩨 자식이였다.
딸.딸.딸.딸.딸.아들.딸.아들.아들(서울.군산.목포.장흥.서울.큰삼춘백이.관우삼춘.막내웅이삼춘 으로 기억함) 중 아래에서 두번쩨.
어리때 기억은 코가커서 코구멍에 동전을 집어 넣는 묘기로 조카들을 웃겨주었던 삼춘으로 기억된다. 지금은 없어진 옛 외가집 작은방에 막내삼춘과 둘이 살았던 기억. 그래도 중고등학교 학생으로 제법 커서 자전거 타고 학교다녀오던 모습을 보았던것도 같다.
막내 웅이삼춘은 우리랑 싸우던 삼춘이라면(우리? 나 동진성, 상철성), 관우삼춘은 그래도 동생들(?)이랑 놀아주던 기억.
시간이 흘러 군대에서 바퀴 많이 달린 차를 운전했다고 자랑을 했다. 믿을수 있었던건 운전은 정말 잘했다. 사고 한번 없이. 그리고 아버지를 포함해 주변에서 관우삼춘에게는 차를 안심하고 맏겼다. 그래서 나는 관우삼춘이 세상에서 운전을 제일 잘하는 사람으로 믿었다.
잠깐잠깐 우리 장흥 시골집에서 일하는거 도와준것도 기억나지만, 우리 작은 아버지와 함께 진주에서 화장품 장사를 했다. 당시 화장품 도매상을 했던 작은아버지는 용달차에 화장품을 가득싣고 여기 저기 배송을 하였음으로 운전을 잘하는 외삼춘과 함께 했는지도 모른다. 어쩨건 몇년을 작은 아버지와 같이 하시다가 거제도에서 외삼춘 혼자 화장품 대리점업을 하셨다. 장사가 잘되었던거 갔다. 그때 삼춘이 옷이며, 차며 화사했던 기억이 난다. 포텐샤였던가...쌀롱이였던가...승용차도 좋은거 있었다.
그리고 거제도에서 결혼을 하셨다. 하지만 잠시.
내 기억으론(순전히 어릴적 10살짜리 내기억으론) 장인어른집에서 얼마를 빌려 장사를 했는데 잘 안되었고 망해서 사기결혼이니 뭐니하며 이혼하라고 해서 이혼까지 갔다고 했다. 슬아에 남자 아이가 한명있었는데...어쩔수 없이. 이름은 몰랐지만 어쩨건 어릴때 놀러 갔을때 2~3살 되던 아장아장 걷던 남자애를 데리고 오던 삼춘생각이 난다.
언제 였던가 거제(충무인지 거제인지 해깔림)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해남으로 오던 때였다. 제대로된 이사 하기도 어려운 터였던거 같다.
계현이 아는 동내 형님에게 4.5톤 화물차를 빌려서 동생계현이, 엄마와 거제도로 향했다. 내가 운전을 하고 갔던거 보면 아마도 내가 대학생 때 쯤 되었던거 같다. 저녁에 거제도에 도착해 주택에서 짐을 뺐다. 주변에 소리날까 조심조심...농이며, 냉장고며, 침대며...이것저것 정리없이 4.5톤 화물차에 실고 거제를 떠나 해남으로 왔다. 짐을 둘곳이 마땅치 않아 일부는 해남에, 일부는 장흥우리 시골집과 비닐하우스에 두었던 것도 기억난다. 그렇게 관우삼춘의 거제도 생활은 해남으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