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구역의 호루라기
지난 칼럼에서는 새해를 함께 열어가는 우리 평범한 이웃들의 이야기를 썼는데 벌써 많은 시간들이 지나갔다. 오늘은 ‘한 놈, 두시기, 석 삼, 너구리, 오징어, 육개장, 칠면조, 팔다리, 구들장, 앗 뜨거’에서 육개장부터 시작하겠다.
* 육개장
이선재 교장은 1935년 황해도 개성 출생으로 6·25 전쟁 때 내려와 1952년 야학으로 시작해 마포에 위치한 지금의 일성여중고의 교장을 맡고 있다. 학교에는 10대 청소년부터 80대 할머니까지 모여 공부를 하고 있다. 현재 일성학교의 체제는 양원초등학교와 양원주부학교, 일성여자중고등학교로 나누어져 운영되고 있다. 이중 양원초등학교는 어려운 시절 초등학교를 다니지 못한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초등학력 인정학교이다.
지금까지 배출된 졸업생이 국민가수 이미자씨를 포함해 총 6만여명이니, 이선재교장은 향학열에 불타는 씩씩하고 도전적인 아줌마부대들로 구성된 큰 부대의 사단장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사단장에게 어려움이 있는데, 그것은 대한민국 최초의 성인 교육기관이 관련 법령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육재정상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이다. 교사들의 급료와 운영비, 세금 등을 감당할 수 없어서 학교 문을 닫을 실정이라고 한다. 현재 교육부 예산은 어림잡아 약 70조인데 그중 평생교육비는 0.08%에 지나지 않는다.
평생교육은 국가 경쟁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평생교육 참여율을 보면 북유럽 같은 경우에는 70%가 되지만 우리나라는 겨우 40%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의 궁극적 희망은 우리나라에서 문해자들을 교육하는 프로그램이나 사업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다.
* 칠면조
손송화씨는 한 발달장애인의 어머니이다. 그는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탈시설정책을 매우 불안하게 지켜보고 있다.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은 현재 전국의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사는 2만9천명의 정원을 단계적으로 여러 해에 걸쳐 2천명으로 줄이겠다는 내용이다. 정부의 ‘로드맵’은 모든 장애인들이 시설에 갇혀 자신의 인권을 침해당하고 있다는 전제 아래,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서 자유롭게 살게 해주자는 것이다. 그 대책인 ‘시설 밖으로 이주’란 곧 ‘공동주택으로 이주’를 뜻한다.
손송화씨는 정부의 큰 정책취지는 이해하나 이러한 로드맵을 일률적으로 적용하면 안된다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말도 글도 모르고, 의사소통이 안 되는 아이. 캔 뚜껑에 제 손바닥을 베여 피가 솟구쳐도 무관심한 아이, 위험을 몰라 8차선 도로에 뛰어드는 아이. 물건 사고 결제하는 사이에도 사라져 매번 경찰차로 찾아와야 하는 아이, 27살 발달장애인인 제 딸은 지금 한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살고 있습니다. 정원 30명의 이 시설은 1년에 빈자리 한곳이 나기 힘든데, 대기자가 이미 170명을 넘습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이런 장애인거주시설을 사실상 대부분 없애겠다고 합니다. 왜 이런 현실도 모르면서 대기자를 위한 증설은커녕, 무조건 ‘시설은 감옥’이라며 잘 운영되고 있는 모범적인 시설조차 없애려고 합니까? 제 딸을 지역사회로 보내 어떻게 자립시키겠다는 것입니까? 왜 제 딸이 ’탈시설‘ 정책에 따라 다시 ’자립지원주택‘이란 이름의 공동주택에 갇혀 머리를 바닥에 찧으며 살아야 합니까?”
그의 외침은 계속된다. “정부는 로드맵이 본격 시행되기 전부터 장애인 거주시설의 신규 입소를 막았고, 대규모 시설의 정원을 줄여가며 시설과 그 부모들을 압박해 왔습니다. 로드맵을 단계적으로 이행한다고 하지만 역시 현실을 모르는 탁상공론입니다. 정원 감축과 지원 축소는 지금도 힘겹게 버티고 있는 우량 거주시설을 급속히 고사시킬 것입니다. 이런 시설이 없어지면, 또는 제 딸이 이 시설에서 나와야 한다면, 저와 제 딸은 어디로 가야 할까요?”
* 팔다리
요즈음 인기있는 ‘이 구역의 미친 ☓’라는 드라마가 있다. 데이트 폭력으로 처참한 상처를 받고 불안과 공포로 대인기피증 등 세상과 단절하여 사는 한 미혼녀와, 범죄현장서 억울하게 각종 누명을 쓰고 대기중인 분노조절장애의 강력계 형사의 이야기이다. 울분에 찬 두 사람은 자신들이 사는 아파트를 중심으로 자칭 ‘이 구역의 미친 ☓’가 되어 티격태격, 좌충우돌 서로 싸우는데 일련의 과정을 거쳐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하여 서서히 상처가 치유되어 가는 힐링 드라마이다. 아파트에서 혼자 사는 여자는 불안하여 전기충격기를 갖고 다니고, 집안에 남자 신발을 놓아두거나 호신술을 배우는 등 노력을 한다.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여 한편이 된 남자는 위급할 때 사용하라고 비상용 호루라기를 여자의 목에 걸어준다. 그녀가 위급하여, 혹은 절박할 정도로 보고 싶을 때 ‘삐익 삑’ 호루라기를 부르면 남자는 언제든지 힘차게 나타난다. 남자가 정표로 걸어준 목걸이도 호루라기형이다. 나중에 남자와 여자는 같은 편이 된다.
* 구들장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에 나오는 홍두식은 홍반장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마을 곳곳의 민원과 불편함을 척척 해결해주는 뛰어난 해결사이다. 일뿐만 아니라 마을 주민들의 인간관계와 소통, 개인 상담까지 해주는 마을 공동체의 정신적인 지주이다. 이런 홍반장도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젊었을 때 증권투자가들에게 잘못된 투자권유를 하여 그 여파로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도피처로 내려온 고향 공진 갯마을에서 홍반장은 마을 사람들을 돕고 지내는 가운데 서서히 살아가는 의미와 사랑을 깨닫게 된다. 가끔 우리는 힘들때마다 ‘어디선가 누구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나는 홍반장’을 찾게 된다.
* 앗 뜨거!
얼마전 우리는 한국이라는 문화공동체의 살림을 잘 꾸려나갈 머슴을 채용하였다. 새 머슴에게 다음과 같이 일하기를 당부한다. 국민의 머슴은 언제 어디서든 ‘삐익’하는 호루라기 소리가 나면 즉시 출동하여 국민을 보호하여야 한다. 그리고 범죄자를 잡아야 한다. 국민의 머슴은 홍반장처럼 지역사회의 모든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실효적으로 접근하여 해결할 수 있는 만능맨의 역할을 하여야 한다. 머슴은 누구라도 평생 동안 공부할 수 있도록 하여 글을 읽거나 쓰지 못해 은행에 가서 손을 다쳤다고 거짓말을 하는 할머니가 없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국민의 머슴은 점점 노령화되어가는 장애인들이 평생동안 안심하고 살수 있는 실제적인 정책을 펼쳐 이 땅에 소외되고 차별받는 장애인들이 없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머슴에게 마지막 당부이자 경고이다. 혹 주인이 안본다고 다리 쩍 뻗고 빈둥거리거나 게으름을 피우는 등 엉뚱한 욕심으로 공사구분 못하고 맡은바 일들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경우 즉각 해고된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