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0월, 시대를 뒤흔드는 한 발의 총성.
인간의 몸은 땅으로 돌아가고 인간의 기운은 땅에서 태어난다!
1979년 10월. 한 무리의 남자들이 도굴을 시도하고 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이 무덤 속에 감춰져 있다는 황금두상이다. 하지만 그들의 행각은 마을사람들에게 발각되고 그중 한 사람은 붙잡히고 만다. 그의 이름은 도학. 당대 최고의 풍수사였지만 현재 자취를 감춘 황창오의 양아들인 그는 군인들에게 끌려가 심문을 받는다. 무사히 도망친 황창오의 친아들 중범은 붙잡힌 도학을 걱정하는 한편 갓 태어난 아이를 건사할 돈이 없다는 고민에 빠져 있다. 이때 걸려오는 전화 한 통. 암장을 해주면 큰돈을 주겠다는 제안이다. 암장이란 명당에 묻혀 있는 시신을 파내고, 그 자리에 다른 시신을 묻는 일이다. 때마침 들려온 대통령의 사망 소식이 마음에 걸리는 중범. 하지만 가릴 처지가 아닌 그는 거대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제안을 수락한다. 한밤중에 암장을 진행하는 중범 일행은 일군의 군인들에게 발각된다. 총격전 끝에 붙잡힌 중범의 눈에 도학이 들어온다. 대통령 가문의 묘 자리를 점지하고 자취를 감춰버린 명 풍수사, 그리고 그의 두 아들의 엇갈린 운명. 권력을 잡기 위한 두 세력의 싸움에 휘말려버린 중범과 도학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잊어서는 안 되는, 하지만 이미 잊어버리고 만 이야기.
“『9일의 묘』는 전민식의 세계를 보여주는 종합판이라 할 만하다.”_박범신 소설가
중범은 부모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으로 살아왔다. 아들을 얻은 그는 이제 평범한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고 싶다. 반면 고아로 자란 도학은 희망이 없다. 사랑마저 중범에게 양보한 그는 중동으로 떠나려 한다. 황금두상을 캐내면 이들은 각자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도굴 시도는 상반된 결과를 낳는다. 살고 싶었던 중범은 죽을 위기에 처하고, 죽고자 작정했던 도학은 더 좋은 삶의 기회를 얻는다. 이제 이들은 자신들의 바람과는 반대로 처신을 해야 한다.
중범과 도학에게 이런 선택을 강요하는 사람은 김동각 중령으로 대표되는 군인 세력이다. 권력을 원하는 그들은 역사란 “진보하든 퇴보하든 반드시 누군가의 피를 요구”한다고 주장하며 개인에게 명분을 위한 희생을 강요한다. 그 결과 한 사람은 애국자가, 다른 한 사람은 빨갱이가 되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1979년 10월, 시대를 뒤흔드는 한 발의 총성.
인간의 몸은 땅으로 돌아가고 인간의 기운은 땅에서 태어난다!
1979년 10월. 한 무리의 남자들이 도굴을 시도하고 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이 무덤 속에 감춰져 있다는 황금두상이다. 하지만 그들의 행각은 마을사람들에게 발각되고 그중 한 사람은 붙잡히고 만다. 그의 이름은 도학. 당대 최고의 풍수사였지만 현재 자취를 감춘 황창오의 양아들인 그는 군인들에게 끌려가 심문을 받는다. 무사히 도망친 황창오의 친아들 중범은 붙잡힌 도학을 걱정하는 한편 갓 태어난 아이를 건사할 돈이 없다는 고민에 빠져 있다. 이때 걸려오는 전화 한 통. 암장을 해주면 큰돈을 주겠다는 제안이다. 암장이란 명당에 묻혀 있는 시신을 파내고, 그 자리에 다른 시신을 묻는 일이다. 때마침 들려온 대통령의 사망 소식이 마음에 걸리는 중범. 하지만 가릴 처지가 아닌 그는 거대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제안을 수락한다. 한밤중에 암장을 진행하는 중범 일행은 일군의 군인들에게 발각된다. 총격전 끝에 붙잡힌 중범의 눈에 도학이 들어온다. 대통령 가문의 묘 자리를 점지하고 자취를 감춰버린 명 풍수사, 그리고 그의 두 아들의 엇갈린 운명. 권력을 잡기 위한 두 세력의 싸움에 휘말려버린 중범과 도학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잊어서는 안 되는, 하지만 이미 잊어버리고 만 이야기.
“『9일의 묘』는 전민식의 세계를 보여주는 종합판이라 할 만하다.”_박범신 소설가
중범은 부모에 대한 원망과 그리움으로 살아왔다. 아들을 얻은 그는 이제 평범한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고 싶다. 반면 고아로 자란 도학은 희망이 없다. 사랑마저 중범에게 양보한 그는 중동으로 떠나려 한다. 황금두상을 캐내면 이들은 각자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도굴 시도는 상반된 결과를 낳는다. 살고 싶었던 중범은 죽을 위기에 처하고, 죽고자 작정했던 도학은 더 좋은 삶의 기회를 얻는다. 이제 이들은 자신들의 바람과는 반대로 처신을 해야 한다.
중범과 도학에게 이런 선택을 강요하는 사람은 김동각 중령으로 대표되는 군인 세력이다. 권력을 원하는 그들은 역사란 “진보하든 퇴보하든 반드시 누군가의 피를 요구”한다고 주장하며 개인에게 명분을 위한 희생을 강요한다. 그 결과 한 사람은 애국자가, 다른 한 사람은 빨갱이가 되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마주서게 된다. 이것은 운명일까? 작가는 아니라고 말한다. 개인의 의지와 희망을 부수는 것은 폭력에 불과하며, 운명이란 인간의 돌봐주는 “따뜻한 기운”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치유를 위해 “스스로의 몸을 끌고” 운명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황창오가 평생을 걸고 찾아낸, 최고의 운명을 만들어준다는 명당 ‘오봉쟁주’가 왕을 만들어주는 자리가 아니라 “빛이 모여드는 자리”인 것은 이 때문이다. ‘오봉쟁주’는 치유를 해주는 곳이며, 원망과 허무, 욕망에 판단이 흐려진 이들은 볼 수 없는 곳이다.
어둠이 사위를 조금씩 포위하면서 거리의 불빛이 밝아지고 있었지만 오봉쟁주 앞에선 거리의 불빛들이 힘을 잃었다. 낮고 약한 불빛이 강한 불빛을 힘들이지 않고 가볍게 제압했다. 그런데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 아무도 헌책방을 관심 있게 바라보지 않았다. [……] 인간의 눈과 귀와 감은 갈수록 탁해졌고 어두워졌다. 보아야 하고 느껴야 할 것들을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다. p.228
『9일의 묘』는 암울하고 얼룩진 사건을 소설적 상상의 매개로 삼아, 인간이 진심으로 지향해야 할 것이 어떤 것인지를 집요하게 묻는 장편소설이다.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까지 작가는 무엇이 옳고 무엇이 틀린지 결론내리지 않는다. 누구도 말하지 못했지만 누구나 알고 있는 슬픔의 역사를 담담하면서도 힘 있게 그려나갈 뿐이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곳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내온 소설가 전민식이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