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2 발심(發心)하는 도리
도(道)를 원만(圓滿)하게 하기 위하여 방편(方便)과 지혜(智慧)의 두 품(品)을 구족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방편(方便)의 근본은 보리심(菩提心)이요, 지혜(智慧)의 근본은 공성(空性)을 바르게 깨달음에 있기 때문이다.
이는 보살이 지혜(智慧)로운 마음을 가지면, 윤회(輪廻)에 빠지지 않고, 자비심(慈悲心)을 가지면, 열반(涅槃)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하였듯이, 지혜(智慧)로 윤회(輪廻)의 경계(境界)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고, 자비(慈悲)로 적정(寂靜)의 경계(境界)에 머물러 빠지는 것을 방지(防止)한다는 의미이다.
만일 이러한 마음이 없다면,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를 채울 진귀(珍貴)한 보배를 보시(布施)한다고 할지라도 보살행(菩薩行)에 들어갈 수 없다. 이와 같이 계율(戒律)에서 지혜(智慧)까지, 본존(本尊) 수행(修行)과 맥(脈) 기(氣) 정(精) 등을 닦는 것 만으로는 보살행(菩薩行)에 들어갈 수 없다.
이러한 보배로운 마음이 요점(要點)에 이르지 못한다면, 선행(善行)을 아무리 오랫동안 갈고 닦을지라도 무딘 낫으로 풀을 베는 것처럼 어떤 진보(進步)도 없게 되나니, 이는 기와장이나 벽돌을 열심히 갈아서 거울을 만들고자 하는 것과 같이 헛수고가 될 뿐이다.
만일 이러한 마음이 요점(要點)에 이르지 않았다면, 잠시 풀베기를 멈추고, 먼저 낫을 갈아 날카롭게 한 뒤에 풀을 베면, 잠깐 동안에도 많은 풀을 벨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만약 이러한 마음의 요점(要點)에 이르렀다면, 찰나에 업장(業障)을 소멸(消滅)하고, 자량(資糧)을 모을 수 있기 때문에, 비록 조그만 선(善)과 잠깐 동안의 행(行)이라 할지라도 더욱 증장(增長)하게 하여, 사라져 소멸(消滅)되지 않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발심(發心)하는 네 가지의 도리(道理)는, 어떠한 인(因)에 의지하여 어떻게 마음을 낼 것인가, 보리심(菩提心)을 닦는 순서(順序), 마음을 내는 양(量), 의궤(儀軌)를 지니는 방법이다.
발심(發心)하는 인(因)에 의지하여 발심(發心)하는 도리가 있다. 불보살(佛菩薩)의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는 신통(神通)한 힘을 보았거나, 믿고 들은 바에 의지하여 존재하고 안주(安住)하는 깨달음에 큰 위신력이 있다고 인정(認定)하였거나, 이런 견문(見聞)이 없더라도, 위없는 보살의 삼장(三藏)을 듣고 읽어서 불지혜(佛智慧)를 믿고 이해(信解)하였거나, 아직 법을 비록 모두 듣지는 못하였지만, 보리심(菩提心)의 정법(正法)이 시들어가는 것을 보고, 보리심법(菩提心法)이 영구히 머물게 하기 위하거나, 정법(正法)의 쇠퇴(衰退)를 보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악세(惡世)에 우치(愚癡) 무참(無慙) 무괴(無愧) 질투(嫉妬) 인색(吝嗇) 등이 극히 위중(危重)한 이 때. 위 없는 깨달음에 도달(到達)하기 위하여 으레 반드시 이렇게 하여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발심(發心)하는 도리가 있다.
그렇다면, 어떠한 연(緣)에 의지하여 발심(發心)하는 것인가.
첫째는 희유(稀有)한 신통(神通) 변화(變化)를 보았거나, 기이(奇異)한 인연(因緣)을 보고, 깨달음을 얻어야 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둘째는 법을 설하는 스승에게 부처의 공덕(功德)을 듣고 나서, 신심(信心)이 일어나, 그것들을 얻고자 하는 염원(念願)이 생긴 것이다.
셋째는 대승(大乘)의 가르침이 소멸(消滅)되어 가는 것을 막고, 불지혜(佛智慧)를 얻고자 발심(發心)하는 것이니, 가르침이 소멸되면 중생의 모든 괴로움을 제거할 수 없다는 위기를 느끼고, 중생들의 고(苦)를 없애기 위함이지만, 발심(發心)의 주된 인연(因緣)은 위대한 가르침의 소멸(消滅)을 막고자 하는데 있는 것이다.
넷째는 이러한 마음이 매우 희유(稀有)하다는 것을 인식(認識)하고, 부처를 얻고자 염원(念願)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발심(發心)은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것이지, 안립(安立)을 위한 것이 아님을 분명(分明)하게 알아야 한다.
성불(成佛)을 성취(成就)하고자 하는 염원(念願)이 없이, 자리(自利)를 위한 적정(寂靜)에 만족(滿足)하는 마음으로는 모든 고(苦)를 멸진(滅盡)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자비(慈悲)를 수행하는 이타(利他)가 매우 중요함을 인식하여야 한다. 발심(發心)은 이타(利他)를 위해 정등각(正等覺)을 추구(推究)하는 것이니, 이는 깨달음과 이타(利他)를 동시(同時)에 추구(推究)하여야 함을 의미한다.
사인발심(四因發心)이란 어떤 것인가.
네 가지의 인(因)으로 발심(發心)한다는 것은 종성(種姓)이 원만(圓滿)하고, 선지식(善知識)에 섭수(攝受)되고, 중생에 대한 자비심(慈悲心)을 내고, 생사(生死)의 난행(難行)을 싫어하지 않음에 의지하여 발심(發心)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력발심(四力發心)이란 어떤 것인가.
네 가지의 힘으로 발심(發心)한다는 것은, 스스로의 힘으로 원만(圓滿)한 깨달음을 바라는 자력(自力)이 있고, 타인(他人)의 조력(助力)으로 원만한 깨달음을 바라는 타력(他力)이 있고. 대승(大乘)을 익혔으나 불보살의 칭찬을 듣고 발심(發心)하는 인력(因力)이 있고. 큰 스승에 의지하여 법을 듣고 선법(善法)을 오랫동안 수행하는 가행력(加行力)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