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그림 찾기] ‘나귀 탄 시인과 맨발의 시동(侍童)’이 찾아가는 곳은

[이코맨]

2022. 01. 24

코로나는 종식될까. 과연 이 무서운 역병은 사라지고 예전처럼 마스크 없이 살 수 있을까. 델타변이 바이러스에 이어 오미크론이 우세종이 되자 이런 불안감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한번 고개를 쳐든 불안감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다. 이러다가 혹시 영화에서만 봤던 좀비가 나타나 사람이 사람을 물어 죽이는 참상이 벌어지는 것은 아닐까. 그런 세상이 되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들리느니 어두운 소식뿐이요, 보이느니 잿빛 세상이다 보니 별의별 생각을 다 하게 된다. 봄은 분명히 올 것이고 세상에는 또다시 찬란한 꽃들이 가득 피어나겠지만 지금은 추위가 뼛속까지 뚫고 지나가는 한겨울이다 보니 그럴 것이다. 다가올 봄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매화꽃을 찾아나서야겠다.

▲ 심사정. ‘파교심매도’. 1766년. 115×50.5㎝. 비단에 연한 색./ 국립중앙박물관

시객의 어깨는 산처럼 솟아

언덕과 나무에 눈이 수북하게 쌓였다. 먼 산은 얼음벽처럼 치솟아 한기를 더한다. 기울어진 산등성이에는 헐벗은 나목들이 위태롭게 발을 딛고 서 있다. 거센 바람이라도 불면 눈덩어리가 굴러떨어질 것 같다. 소라껍데기처럼 그려진 언덕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쉽사리 끝날 것 같지 않은 깊은 겨울이다. 이 추위를 뚫고 한 선비가 나귀를 타고 다리를 건너려 한다. 나귀를 탄 선비는 목을 감싸고 허리까지 내려오는 두건을 걸쳤으며 머리에는 방한모자를 썼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는 것일까. 선비는 깊은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앞으로 쑥 내밀고 몸을 잔뜩 움츠렸다. 그 바람에 양어깨가 올라가 등이 굽은 사람처럼 보인다. 나귀는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듯 비틀거리며 겨우겨우 앞으로 나아간다. 그 뒤를 어깨에 책보자기와 거문고를 멘 시동이 뒤따른다. 적막한 겨울을 뚫고 가는 나귀 탄 선비와 시동 양옆으로 거친 필치의 고목들이 대문처럼 서 있다.

심사정(沈師正·1707~1769)의 ‘파교심매도(灞橋尋梅圖)’는 맹호연(孟浩然)의 에피소드를 그린 작품이다. 맹호연은 당나라의 시인으로 진사 시험에 낙방한 뒤 가난과 고독 속에서 은둔생활을 하며 수많은 시를 남겼다. 그는 이른 봄이 되면 매화를 찾아 당나귀를 타고 장안에서 파교라는 다리를 건너 설산으로 떠났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근거로 ‘파교심매도’가 만들어졌다. ‘파교심매도’는 설산을 배경으로 나귀를 탄 인물과 거문고(혹은 가야금)를 멘 시동이 그려지는 것이 기본적인 도상이다. 단순해 보이는 ‘파교심매도’의 도상은 단지 매화를 찾아가는 탐매객의 이미지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니다. 시를 짓는 시인의 위대함이 더 중요하게 묘사되었다.

시를 짓는 맹호연의 이미지는 소식(蘇軾)에 의해 알려지게 되었다. 소식은 ‘초상화를 그린 하수재에게 주다’라는 시에서 이렇게 묘사했다. “그대는 또 눈 속에 나귀 타고 가는 맹호연을 보지 않았는가. 눈썹을 찌푸리고 시를 읊느라 어깨가 산처럼 올라가는 것을.” 맹호연이 나귀 위에서 시작(詩作)에 골몰하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어깻죽지가 올라가게 되었다는 말이다. 사람은 깊은 생각에 잠기면 고개를 들어 먼 산을 바라보지 않는다.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고 땅바닥을 내려다보게 된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고개는 점점 밑을 향하게 되고 반대로 어깨는 위로 솟아 웅크린 자세가 된다. 이런 자세를 소식은 어깨가 산처럼 올라갔다고 표현했다.

▲ ‘파교심매도’ 중 시인과 시동 세부

조선의 문인들은 소식의 시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조선 초기의 서거정(徐居正)은 ‘설행도(雪行圖)’라는 시에서 “시객의 두 어깨는 산처럼 솟았고, 절뚝거리는 나귀의 외로운 그림자는 눈길에 비틀거리네. 두 글자 퇴고만 일삼는 게 가련하여라, 언 입으로 읊조리다 뼛속까지 춥겠구나”라고 하였다. 산처럼 솟은 어깨, 절뚝거리는 나귀, 퇴고, 추위 등등은 시작에 골몰한 가난한 시인의 모습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조선 초기의 이승소(李承召)는 ‘맹호연이 파교에서 노는 그림’에서 “파릉 땅에 풍설 정히 아득하고 아득한데, 나귀 등에서 시 읊으며 웅크린 등 산과 같네, 하늘과 땅 맑은 뜻은 맛 헤아려 얻었으니, 되레 기운 타고 속세 벗어난 것 같았으리”라고 하였다. 파릉, 풍설, 나귀, 산처럼 웅크린 등, 시 역시 맹호연을 상징하는 단어다. 이와 같이 맹호연을 상징하는 단어는 ‘솟은 어깨’ ‘나귀 타기’ ‘찌푸린 눈썹’ 등으로 간추려 볼 수 있다. 이런 단어는 결국 ‘시 읊기’로 귀결될 수 있으니 맹호연의 기려행은 시인으로서의 본질에 충실한 모습임을 알 수 있다.

시인은 곤궁해야 좋은 시를 쓴다. 맹호연은 지금 곤궁한 처지에 놓여 있다. 아니 좋은 시를 짓기 위해 자발적으로 곤궁함을 선택했다. 이민진은 ‘심사정의 자의식(自意識) 연구’(2021)라는 논문에서 “파교를 건넌다는 것은 수도로부터의 분리를 의미하며 수도에서 누릴 수 있는 문화적 혜택과 부유한 생활로부터 멀어져 은일의 삶을 산다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 것”이라고 밝혔다. 파교는 당나라 수도 장안의 동쪽으로부터 약 8㎞ 떨어진 다리다. 맹호연은 지금 그 파교를 건너 장안에서 멀어지는 삶으로 들어갔다. 서울에서 경기도로 이사한 셈이다. 망설임 없이 ‘곤궁함’ ‘찬바람’ ‘신산스러움’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였다. 대신 풍족함을 버리고 시를 얻었다. 파교를 건넘으로써 후세 사람들에게 맹호연이라는 이름 석 자를 알려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눈 속에 나귀를 타고 가는 선비의 모습은 의례히 시를 짓는 맹호연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파교는 시상이 잘 떠오르는 곳을 의미하는 용어로 정착되었다. 그런데 시인의 시작의 고달픔을 강조하던 ‘파교심매도’가 어느 순간 매화를 찾아가는 운치 있는 행위로 해석되었다. 고연희는 ‘고전과 경영’(2020)에서 “언제부턴가 ‘기려도’에서 추위의 고통이 사라지고 시인과 동자가 매화를 찾는다는 탐매 혹은 심매라는 매화의 공간으로 바뀌어갔다”고 주장하였다. 멋진 해석이다. ‘파교심매도’ 역시 시작에 골몰한 시인보다는 매화를 찾아가는 탐매객의 의미가 더 크게 부여되었다고 볼 수 있다. 탐매도 혹은 심매도는 신잠(申潛)의 작품으로 전해지는 ‘탐매도’(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일본 야마토분가칸에 소장된 ‘파교심매도’ 등이 있고, 김명국이 그린 여러 점의 ‘탐매도’가 전한다. 어느 경우든 두 가지 해석 모두 주인공인 맹호연을 중심으로 논의가 이루어졌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또한 맹호연이 살았던 시절에도 코로나 바이러스 못지않은 심각한 걱정거리가 있었을 거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 허필. ‘기마원행’ 중 주인과 시동 세부. 견본담채. 16.8×21㎝. / 간송미술관

“종놈은 피곤하여 걷기조차 괴로우니”

‘파교심매도’는 맹호연의 시 읊기가 주제다. 따라서 ‘파교심매도’를 감상하는 사람들은 나귀를 탄 맹호연이 시를 읊느라 눈썹을 찌푸리고 어깻죽지가 올라간 모습으로 파교를 건너는 모습에 집중한다. 맹호연 뒤에서 어깨에 책보자기와 거문고를 메고 있는 시동에는 관심이 없다. 조선의 바리스타인 다동이에게 관심이 없듯 ‘파교심매도’의 시동도 마찬가지다. 주인의 몸종인 시동이 하는 일은 의외로 많다. 조선시대 그림에 드러난 시동의 일을 보면 차 끓이는 일에서부터 술 시중 들기, 주인 옆에서 먹 갈기, 마당 청소하기, 주인 나들이할 때 말이나 당나귀 등의 고삐 잡기, 짐을 메고 주인 뒤따르기 등 다양하다. 특별한 일 없이 주인을 그림자처럼 밀착수행하는 경우도 많다. 어느 경우든 시동의 삶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고달프기 짝이 없다. 언제라도 주인의 부름에 수족처럼 움직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파교심매도’의 시동 또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는 지금 무거운 거문고와 책을 어깨에 메고 눈길을 걸어간다. 어깨에 짊어진 짐의 무게도 만만치 않을 뿐더러 미끄러운 눈길을 걷는 것도 쉽지 않다. 나귀 탄 맹호연의 시작의 고통이 아무리 크다 한들 무거운 짐을 지고 눈길을 걸어가야 하는 시동의 발 시린 고통에 비할 수 있겠는가.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뒤뚱거리며 걷다 보면 신경이 곤두서서 몇 배는 더 힘들다. 조선 초기의 문인 성현(成俔)이 ‘설중기려도’를 감상한 후에 적은 시 그대로다. “짧은 모자 솟은 어깨, 나귀는 귀가 쫑긋, 종놈은 피곤하여 걷기조차 괴로우니.” 짧은 모자, 솟은 어깨, 나귀 등의 시어는 ‘설중기려도’가 맹호연의 ‘파교심매’를 그린 작품임을 알 수 있다. 그나마 성현의 눈길에는 종(僕)의 괴로움에 대한 측은지심이라도 담겨 있는 듯하다. 문인들이 종을 언급한 시들을 보면 ‘지친 종’이란 표현이 가장 많이 나온다. 간혹 가다 ‘게으른 종’이니 ‘졸고 있는 종’이란 비난 섞인 언사도 없지는 않다. 어느 경우든 종으로 불리던 시동의 삶이 매우 팍팍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파교심매도’에서의 시동은 신발이라도 신었지만 맨발인 시동도 허다했다.

맹호연은 벼슬을 하지 않고 가난과 궁핍함 속에서 시를 짓고 살았다고 전해진다. 그렇게 가난했다는 사람이 시동을 거느릴 정도였으면 그 가난은 어떤 가난일까. 문득 그런 의구심이 든다. 문인은 가난해도 문인으로서의 최소한의 요건은 갖추며 살았다는 의미였을까. 그게 아니라면 후대에 맹호연을 추억하는 사람들이 위대한 시인의 격을 갖춰주기 위해 원래는 없던 시동을 추가해준 것일까. 중국에서 전래된 ‘고씨화보(顧氏畵譜)’(1603)에도 ‘파교심매도’의 도상과 똑같은 나귀 탄 선비와 시동이 그려진 것을 보면 이런 운동은 중국에서부터 시작된 것 같다. 아무리 힘들어도 기본은 갖춰진 주인과, 신발조차 신지 못할 정도로 가난한 시동은 그들이 감내해야 할 고통의 무게가 처음부터 다르다. 주인이 나귀를 타고 갈 때 시동에게 최소한의 방한복을 입히는 것. 그것이 멋진 시를 짓고 매화를 찾으러 가는 것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코로나가 극성을 부리는 시국에 문득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

조정육 / 미술평론가

출처 : 주간조선(http://weekly.chosun.com)